이번에 하연과 손을 잡은 방송사는 황금시간대에 프로그램을 편성했으며, 티켓은 판매 시작과 동시에 순식간에 매진되었다.일 년에 한 번 있는 큰 행사라 보안이 철저해 하연은 상혁이 들어오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미리 메시지를 보냈다.[비행기에서 내린 다음에 스태프 통로에 오면 태훈이 보고 데리러 나가라고 할게요.]답장이 없자 하연이 시간을 체크해 봤는데, 상혁이 아직 비행기에 있을 시간이었다.하연이 무대 뒤로 가서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 방으로 들어갔다. 준비를 끝낸 하성이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하성의 목소리가 떨렸다.“하연아, 데뷔하고부터 이렇게 떨린 적이 없어.”하연이 웃으며 하성의 어깨를 도닥였다.“정말 마음먹은 거죠?”“난, 이익만 따지고 감정이 없는 사람입니다.”하성은 자신감이 넘쳤다.최씨네 집안 아이들은 다 이런 것 같다. 부모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받아본 적이 없으므로 누구보다도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것 같다.시간이 일분일초 지나가고 프로그램도 하나씩 끝이 났다. 스크린의 숫자는 놀랄 정도가 되었고 곧 10시 반이 된다. 계획대로라면 다음은 하성의 무대다.현장과 방송으로 보고 있는 수많은 관객이 기대에 부풀어 있다.무대 아래서, 운석이 서준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말했다.“지금까지 안 나온 거 보면, 혹시 그냥 홍보 전략인 거 아니야?”서준도 무대 뒤편을 응시하고 있었다.“홍보 전략이라고 해도 원하는 효과는 나왔잖아.”선유는 형광봉을 들고 즐기고 있었다.운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호현욱은 주먹을 쥐고 마구 솟는 숫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부동산에서 얻은 이익에 10배를 곱해도 비교할 수 없는 숫자였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숫자가 저렇게 클 수 있어? 조작 아니야?”옆에 있던 비서가 숨을 헐떡였다.“이렇게 큰 행산데, 그럴 리가 없겠죠? 이사님, 최 사장님이 한 결정이 맞았네요!”호현욱은 눈앞이 캄캄했다. 연말이 되면 재무가 공시돼서 하연이 DS그룹에서 쫓겨날 줄 알
“최하성의 친동생이니까 이렇게 말해주는 거겠죠. 그 일에 대해 해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런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제가 만약 당신이라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네요.”하연은 호현욱이 질까 봐 두려워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이사님께서는 우리 하성 오빠의 열애설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연세가 이렇게 많으신데도 그런데 관심이 많으시고, 남자는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소년이라고 하던데, 맞는 말인가 보네요.”하연은 호현욱의 화를 돋웠다.“아니!”하연은 여전히 웃으며 스태프에게 말했다.“이사님 무대 잘 보실 수 있게 앞자리 안배해 주세요.”하연은 호현욱이 나이가 그렇게 많은데, 하성의 열애설에 관심이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스태프가 말했다.“이사님, 이쪽으로 오세요.”호현욱은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에 있을 겁니다!”스태프는 당황했다.“그럼, 저 앞에 스크린 이사님 쪽으로 마주하게 놓아주세요.”하연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호현욱은 하연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가자!”가려고 하는데, 무대가 조용해지고 불이 꺼졌다. 관객석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호현욱도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노래가 나오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3초도 안 됐는데, 관객들은 이미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챈 듯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무대 위의 조명이 밝아지더니 남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윗옷 단추를 잠그지 않고 복근을 드러냈다.남자는 단정한 이목구비에 카메라를 보는 시선에서 빛이 났다.마이크를 지고 노래를 부르는데, 클라이맥스가 다가오자, 무대에서 뛰어내리며 가뿐히 착지했다.그러자 폭죽이 터지면서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최하성! 최하성! 최하성!”호현욱은 폭죽 소리에 놀라 비서의 품에 넘어졌고 놀란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최하성? 그럴 리가?”“하성?”스태프들 가운데 있던 가흔도 놀란 듯 무대를 바라보았다.‘여기에 왔다고?
“아!”하연은 다급히 귀를 막았다. 하마터면 관객들의 환호성에 귀가 멀뻔했다.“저는...”하성은 마이크를 꼭 쥐고 긴장한 듯 말을 이었다.“제가 아이돌을 10년 동안 해오면서 많은 영예를 얻었는데, 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한 건 그 여자가 예전에 했던 말 때문입니다.”가흔은 멍하니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는 하성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하성이 무대 아래를 둘러보더니 가흔에게서 시선이 멈추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이렇게 저한테 말했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이 말을 들은 가흔은 눈물을 글썽거렸다.가흔은 하성이 이 말을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다.“10년이 지났어요. 이제는 제 감정을 표현해도 되는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 연애합니다. 그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고, 전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합니다.”하성이 몸을 앞으로 숙이자, 목에 끼고 있던 목걸이가 흘러나왔다. 그 목걸이는 핸드메이드 목걸이로 끝부분의 달이 닳아 없어져 더욱 소중해 보였다.무대 아래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저번 콘서트에서 하연이가 자신의 친동생이라고 얘기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번에 공개한 것은 연애이기 때문에 하성의 연예계 활동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그래서 호현욱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뭐라는 거야...? 지금 연애한다고 공개한 거야...?”이렇게 큰 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제 팬분들에게 사과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영향력 있는 연예인보다 책임감 있는 남자가 되고 싶습니다.”하서의 말이 끝나자, 몇 초간 정적이 흐르더니 곧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하연도 눈물을 글썽이며 보고 있었다.서준은 그런 하연을 바라보며, 하성의 완벽한 발언으로 인한 최대 수익자가 하연이라고 생각했다.스크린의 숫자는 750조를 돌파했다.현빈은 현장에서 너무 좋아 입을 다물
하연은 가흔에게 휴지를 건네주면서 웃었다.“가흔아, 너의 디자이너 재능은 벌써 10년 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구나.”가흔은 하연이 하성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보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너무 떠벌리는 거 아니야? 좀 막지 그래?”“기분 좋아, 안 좋아?”“좋지...!”하연이 질투했다.“넌 나한테 핸드메이드 목걸이 해준 적도 없으면서.”가흔은 눈물이 쏙 들어갔다.“왜 질투하는데? 내가 너한테 준 거 핸드메이드보다 더 값진데?”하성이 무대에서 내려오고 사회자가 진행을 이어 나갔다.“그건 다르지. 핸드메이드는 만드는 사람 성의가 있으니, 사랑이 듬뿍 담겼잖아?”하성이 왜 그 목걸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가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부상혁도 너한테 선물해 줄 거야.”‘오빠가 이제 선물 준다고 했었지.’하연은 웃으며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오빠가 무대 뒤에서 너 기다린대.”“오늘 저녁에 사람 너무 많아서, 만나기 좀 그런데...?”가흔이 망설였다.“내가 다 안배해 놔서 사람 없어. 우리 오빠한테 뭐 할 말 없어?”하연은 미화에게 눈치를 주었다.“이쪽으로 오세요.”가흔은 입술을 깨물며 동료들 몰래 미화를 따라 무대 뒤로 갔다.“저 사람 그 사람 아닌가요...?”호현욱의 비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호현욱이 그쪽을 보았다.호현욱이 화를 내며 말했다.“빨리 따라가서 봐봐. 사진 찍을 수 있으면 찍고! 하성에게 무조건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야!”비서가 가흔의 뒤를 따라 무대 뒤로 갔다.파티가 곧 끝나기 때문에 사회자가 관련 지도자를 무대로 초청하여 인사말을 하고 있었다.“최 사장님,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먼저 말씀 주시죠.”주현빈이 말했다.하연은 손사래를 쳤다.“오늘 밤은 바이트의 홈그라운드라 제가 먼저 말하면 안 되죠. 외부에서 제가 규칙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주 회장님께서 절 욕 먹이려고 이러시는 겁니까?”하연이 유머러스하게 넘기자 다른 회장님들이 웃었다.결국 주
하연은 진정하고 대답했다.“여기서 이 사람 잘 보고 있어요. 제 허락 없이 다른데 가게 하면 안 돼요.”말을 마친 하연은 외투를 벗고 무대 쪽으로 갔다. 그녀는 드레스를 흩날리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무대로 올라갔다.연예인과 다름이 없는 외모와 아우라를 갖고 있어 무대 아래가 술렁였다.“여신이라 그런지 확실히 카메라에 예쁘게 나오네.”운석이 웃으며 말했다.서준이 운석을 노려보며 말했다.“하선유 씨,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이렇게 말하면 화 안 나요?”운석이 반격했다.“왜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해?”하연을 보는 선유의 눈에서 빛이 났다.“괜찮아요. 언니도 저의 여신인걸요.”운석이 웃었다.서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하연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주 회장님께서 절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바이트가 이런 성적을 거두게 된 것은, 모든 직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자 상거래가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은 좋은 정책과 좋은 시대를 만났기 때문입니다.”동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말씀 정말 잘하시네.”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하연이 무대 아래를 훑어보더니 빈자리에 시선이 멈췄다.상혁이 아직 오지 않았다.하연은 실망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10분 뒤면 12시가 된다. 상혁은 분명 12시 전에 올 수 있다고 했다.하연은 종일 높은 하이힐을 신어 발목이 아팠다. 시간은 일분일초 지나고 있었고 상혁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연회장으로 오는 길, 수십 대의 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피터가 창문을 열고 말했다.“대표님, 앞에 가서 알아봤는데, 도로가 함몰돼서 복구하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상혁은 애써 기분을 조절하며 핸드폰을 꼭 쥐었다.“시 교통국의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늦어도 한 시간 안에는 해결하라고 전해.”피터는 침을 삼켰다.“한 시간 안에 해결한다고 해도 늦었는데요?”파티는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라이브 방송에서 현빈이 인사말을 하고 하연
임모연이 서 있었다.그녀도 현장에서 하연이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하연의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은 모연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이것은 그녀가 단 한 번도 얻지 못했다.‘얘는 왜 이렇게 운이 좋은 거야?”“사장님...?”모연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제가 알기로는 이사님과 하연이 내기했다고 하던데, 하연이 DS그룹의 업적을 30% 올리지 못하면 회사에서 나가기로 하고, 올리면 이사님이 DS그룹의 결정권을 포기하는 거 맞습니까?”호현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지금 상태로 보면 하연이 목표치를 배로 완성해서 이사님이 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 되겠군요!”“진작에 알았더라면 이렇게 쉬운 걸 목표로 걸지 않았을 텐데.”호현욱이 가까운 것만 바라보기 때문이다.“다 끝난 뒤에 후회해서 뭐 해요? 제가 만약 이사님이었다면 이사회를 열기 전에 이 모든 걸 끝내겠어요.”모연의 차가운 말투에 호현욱이 깜짝 놀랐다.“임 사장님의 뜻은...?”“오늘 밤이 아주 좋은 기회예요. 이 연회장이 저희 공지랑 아주 가까워요. 이사님, 전 이사님을 여기까지 도와드릴 수 있어요. 결정은 이사님이 하세요.”모연이 암시했다. 그녀는 연회장에 있기 싫은 듯 자리를 떠났다.이때 관객들도 퇴장하고 있었는데, 호현욱만이 자리에 그대로 앉아 땀을 흘리고 있었다.모연의 말이 맞다. 이사회가 열리면 하연이 호현욱보고 결정권을 포기하라고 하고 배당금도 나눠주지 않을 것이다.호현욱은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하연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비서가 다급히 그녀에게 외투를 걸쳐주었다. 하연이 고개를 들자, 이현과 눈이 마주쳤다.관객들이 대부분 퇴장했고 이현이 혼자 자리에 앉아 있으니,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여자애가 이현이 연예인이 아닐지 생각하고 있었다.하연이 웃으며 이현한테 가려고 하는데,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대표님.”하연은 발걸음을 멈췄다.“이사님? 무대 재미없으셨나 봐요?”호현욱은 하연의 비꼬는 말투에 화가 났다.“제 비서가 대표
이현이 나가는 하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괜찮아요. 무대에서 하연 씨 셋째 오빠의 아우라를 느꼈어요.]이현이 이곳에 온 목적은 하성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었다.하연은 이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출구에 도착했는데 태훈과 마주쳤다.“사장님, 부 대표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하연은 실망감을 감추기 힘들었지만 힘겹게 웃어 보였다.“상혁 오빠, 무슨 일 때문에 조금 늦어지는 걸 거야. 안 올 사람이 아니야. 너 여기에 남아서 오빠 기다려. 만나면 나 DS그룹에 갔다고 전해줘.”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하연의 곁에 있는 사람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호 이사님...?”태훈의 표정이 안 좋아지자, 호현욱이 말했다.“태훈아, 네가 회사에서 전후 사장들을 다 모셨다고 해서, 지금 나를 얕보는 거야?”“그런 뜻이 아닙니다.”“됐어.”하연이 말을 끊었다.“이사님, 갑시다.”같은 시각, 관객들이 한 번에 출구로 몰리자, 서준도 인파에 휩쓸려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는 하연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동후가 말했다.“최 사장님 이미 가셨을 겁니다.”서준이 말했다.“부상혁은 아직도 길에 있어?”“방금 소식을 받았는데, 시 교통국에서 도로를 빠른 속도로 수리해서 현재 뚫린 상황이랍니다. 아마 거의 도착하셨을 듯합니다.”길이 뚫렸다고 해도 파티는 이미 끝났다.서준은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익숙한 모습에 시선이 갔다. 이때 갑자기 급정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상혁이 차에서 다급히 내렸다.“태훈!”서준은 그 모습을 보느라 뒤에서 지나간 남자를 놓쳐버렸다.“부 대표님, 왜 이제야 오신 겁니까?”상혁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었다.“하연은?”“방금 회사로 가셨습니다. 사장님께서 저보고 여기서 대표님 오시길 기다리라고 하셨어요.”상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바쁜 시각에도 자신을 배려해 준 하연을 생각하니 상혁은 부끄러웠다.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자, 상혁은 고개를 돌렸다. 상혁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서
새벽 두 시가 되었는데, 실시간 검색어가 뜨거웠다.실시간 검색어는 모두 오늘 행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하성이 무대에 서서부터 고백에 이르기까지, 하연의 미모와 최종 거래액 등등.너무 화젯거리여서 서버가 여러 번 버그가 생겼다.이렇게 핫한 분위기에 위험이 숨겨져 있었다.어둡고 습한 공지에 물방울이 여자의 이마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차가운 물이 이마에 떨어지자, 그녀는 의식을 회복하고 눈을 천천히 떴다.“음...?”하연은 아무도 없는 공지에 자신이 묶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손에는 멍이 가득했고 움직일 수 없었다. 파티 때 입었던 드레스는 이미 어지럽혀져 있었다. 하연의 얼굴이 창백했다.“내가 왜 여기에...?”제일 마지막 기억은 호현욱의 차에서 가고 있었는데, 호현욱이 갑자기 화장실을 가겠다고 길옆에 차를 세운 내용이었다.그러나 호현욱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사가 갑자기 돌더니 하연을 세게 때렸다.그렇게 하연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절해 있었다.“거기 누구 있어요?”하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하연은 아주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납치를 당했다고 생각했다.하연은 복수할 생각을 뒤로 미루고 일단 누구라도 있으면 상의해서 자신을 풀어달라고 하고 싶었다. 만약에 아무도 없다면 그녀는 이곳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다.하연은 누군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아무도 없다는 것이 더 두려웠다.“소리치기는 뭘 쳐! 닥쳐!”쇠몽둥이가 땅에 끌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소리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다리를 절뚝거리는 중년 남자였는데, 수염이 덥수룩하고 흉악하게 생겼다. 그 남자의 뒤에는 열몇 명의 어른 남자들이 있었다.“당신들은 누구시죠? 왜 저를 납치하시는 거예요...?”하연은 몸이 떨리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물었다.다리를 절는 남자가 웃으며 몽둥이로 하연의 턱을 들어 올렸다.“그거야 당연히 최 사장님이 꼴 보기 싫어서죠. 너무 나대요.”하연은 침을 삼켰다.“어느 조직에 소속된 분이신
“시간 없어.” 하연은 단호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하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메시지를 확인했고, 내용을 본 후 손에 힘이 들어갔다. 10분 후.하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남준의 눈에 띄는 빨간색 스포츠카가 비상등을 켠 채 호텔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번화한 호텔 입구에서 유독 도드라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잠시 후, 차 문이 열리고 남준이 내렸다. 그는 오늘 블랙 패딩을 걸친 채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풍기며 여유롭게 하연을 바라보았다. “역시 올 줄 알았어.” 남자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고, 말투에는 확신이 묻어 있었다.찬바람이 부는 겨울밤, 차가운 바람이 하연의 얼굴을 스치며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하연은 몇 걸음 옮긴 뒤 걸음을 멈췄고, 남준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손을 들어 흩날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말해. 문자에 적힌 상혁 씨하고 관련해서 중요한 일이 뭔데?”남준은 팔짱을 끼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형이 걱정돼?”“그건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하연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남준은 그녀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가더니, 불과 반걸음 거리에 멈춰서 몸을 약간 숙였다. “너의 그 관심 나 한테도 좀 나눠 주면 안 돼?”그가 가까이 다가오며 내뱉은 말에 은은한 술 냄새가 풍겨왔다. 하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술 마셨어?”남준은 입가를 비틀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 혹시 나 걱정하는 거야?”“착각하지 마.”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부남준,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여기서 시간 끌 여유 없어.”남준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어딘가 불만 섞인 어조로 말했다. “너 갈수록 성격이 우리 형이랑 닮아가네. 역시 잘 어울리는 커플이야.” 하연
하연은 밝게 웃으며 상혁이 건넨 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갓 짠 오렌지 주스는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부 대표님이 직접 짠 오렌지 주스라 그런가, 확실히 맛이 다르네요. 정말 맛있어요.”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렸다. “맛있으면 자주 짜줄게.” 하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 감사히 잘 마실게요, 부 대표님!” “아니, 한참을 찾았는데 여기서 둘이서만 꽁냥거리고 있었네?” 문 앞에 기대어 서 있던 하성이 두 팔을 교차하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혁, 너 요즘 이 녀석을 너무 애지중지하더라. 그러다 버릇 나빠지겠어.” “오빠!!” 하연은 볼이 부풀어올라 약간 투덜거렸지만, 옆에 있던 상혁은 태연하게 그녀를 감싸며 말했다. “애지중지하든 말든 내 마음이지. 네가 무슨 상관이야?” 하성은 두 손을 들며 장난스레 투항했다. “알았어, 알았어. 난 그냥 너희 둘이 잘 지내는 거 보니 마음이 놓여서 하는 소리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래, 계속 이렇게 잘 지내줘, 아주 보기 좋아!”그때 하연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부남준’이라는 이름이 뜨자 그녀는 잠시 긴장한 듯 눈빛이 흔들렸다. “오빠들, 먼저 얘기하고 있어요. 난 전화 좀 받고 올게요.” 하연이 자리를 비우고 복도로 나가자, 하성은 방금 전과는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상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요즘 너희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있더라. 동건 삼촌 쪽에서 뭔가 일이 있는 것 같던데?” 상혁은 하연이 마시다 남긴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시선을 복도 쪽에 고정한 채 무심하게 말했다. “첩이 ‘본처’의 자리를 노리는 거야. 흔한 일이잖아.” 하성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동건 삼촌이 그 여자를 꽤 오랫동안 봐줬던 모양이던데. 이제는 꽤 많은 걸 쌓아둔 듯하고, 한번 크게 판을 벌일
“뭐 하는 거야? 빨리 이 주스를 연회장으로 가져가!” 홀 매니저가 다가와 살짝 꾸짖었다. 여자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질투로 번들거리던 눈빛을 감추고는 얌전히 대답했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다영은 태어나서 가사일 한 번 손댄 적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트레이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매니저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너 신입이야?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다영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가슴 속에서 송혜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고향 친척 중 하나가 DS그룹에서 일하고 있어. 오늘 밤엔 그 사람 신분을 쓰는 게 편할 거야.” 침착함을 되찾은 다영은 고개를 들어 냉정하게 대답했다. “저는 고객지원부의 진미입니다. 연회 인력이 부족해서 임시로 지원 나온 거예요.” 매니저는 그녀의 명찰을 한 번 흘깃 본 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트레이를 건네받았다. “신입이라면 전면에 나가면 실수하기 쉬워. 내실에서 돕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매니저가 떠난 뒤, 다영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다시 연회장을 바라봤을 때, 앞줄에 앉아 있던 하연과 상혁은 이미 모습을 감췄다. 2층 휴게실 안. 원신명은 한 손에 신선한 오렌지 한 봉지를, 다른 손에 포장을 뜯지 않은 녹즙기를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 주문하신 오렌지와 녹즙기입니다.” 원신명은 궁금한 듯 물었다. “대표님, 직접 오렌지 주스를 만드시는 건가요?” 상혁은 짧게 대답했다. “원 비서, 거기 두고 가면 돼.” 원신명은 얼른 다가가 도움을 자청했다. “대표님, 이런 건 제가 할게요.” “와이프가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다는데, 남에게 맡길 수는 없지.” ‘와이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마치 그 단어를 그의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뇌었던 것처럼 익숙했다. 원신명은 곧 깨달았다. ‘아, 대표님이 직접 최하연 씨를 위해 주스를 준비하시고 싶은 거구나!’ “원 비서, 연말인데도
최하성은 오늘 검정색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그의 차가운 분위기와 단정한 모습은 단번에 모든 직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최 대표님!”하성을 마주친 직원들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하성은 살짝 고개를 끄덕일 뿐, 시선을 주지 않고 빠르게 행사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 저녁 만찬은 매우 풍성했다. 동서양의 요리가 조화를 이루며 대부분 직원들의 입맛과 식습관을 세심하게 고려한 모습이었다. 준비에 꽤 공을 들인 것이 분명했고, 결과적으로 반응도 좋았다. 연말 만찬이 시작되기 전, 하성은 DS그룹의 대표이사로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하성은 차분한 걸음으로 무대에 오르며, 그의 존재감은 단번에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가 화려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단 몇 마디 간결한 말로도,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번 연말 행사는 생중계되고 있었으며, 하성이 등장하자마자 팬들과 네티즌들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시청자 수가 십만 명을 돌파했다. [최하성 씨,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연예계에 최하성이 없으니 허전한 기분이에요. 최하성 씨, 돌아와 주세요!][다들 동감! 언제쯤 복귀할 수 있는 거죠?][복귀 요청 99%!!][...] 팬들의 댓글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하성의 인기는 생중계 플랫폼 순위에서도 단연코 1위를 차지했다. 무대 아래에서 생중계를 담당하던 진행자는 이 뜨거운 열기를 놓치지 않고 하성에게 다가갔다. “최 대표님, 생중계 채팅창에 팬들이 사장님의 새해 계획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하고 있어요. 오늘 이 특별한 밤에 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성은 미소를 머금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 순간, 생중계 채팅창은 순식간에 폭발했다. 선물 아이콘이 화면을 뒤덮었고, 댓글은 끊임없이 새로 고침 되었다. “안녕하세요, 하성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와 DS그룹을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DL 그룹
“어머님, 정말로 부 회장님과 결혼하세요?” 이 얘기는 다영에게 있어 꽤 충격적이었다. 세간에서는 송혜선과 부동건의 관계를 두고 여러 말이 떠돌았고, 그중 가장 많이 들려온 것은 송혜선이 ‘첩’이라는 점이었다. 한때 정지철 부인도 이 사실을 꽤 꺼려했던 터라, 다영은 송혜선이 이렇게 대놓고 정식으로 자리 잡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언제 결혼 승낙을 받으신 거예요?” 송혜선은 이미 불룩해진 배를 가볍게 쓸며, 깊은 눈빛 속에 숨겨진 야망을 드러냈다. “부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새해도 지나고 이제 곧 아이가 태어날 테니 우리 모자에게 반드시 정당한 신분을 보장해 주시겠다고 하셨어.” “그러니... 다영아, 우리 남준이를 믿어야 해. 지금은 잠시 밀려난 상황이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잖니?” 다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더욱 굳게 다졌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저는 언제나 남준 씨를 도울 거예요.” 송혜선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더욱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야지. 남준이도 절대 너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그러다 두 사람이 화제를 돌리며 덧붙였다. “지금 부 회장님이 부상혁을 중시하며 DL그룹의 운영을 맡긴 데는 이유가 있어. 결국은 부씨 가문의 장손이라는 명분 때문이지.” “하지만, 임신 초기에는 변수가 많아.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되겠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잖니?” “만약 그 아이가 사라지면, 부상혁 쪽의 지렛대도 없어진 셈이니 남준이한테 분명 유리한 상황이 될 거야. 그렇지 않겠니?” “...” 다영은 멍하니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님, 그게 무슨 뜻이에요?” 송혜선은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조그마한 흰색 약병을 다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약은 무색무취야. 일반인이 먹으면 아무 이상이 없지만, 임신한 사람이 먹으면 삼 일 안에 유산이 돼.” 다영의 손이 떨리며 본능적으로 병을 놓치듯 뺐다. “어머님,
“정다영 씨의 상상력은 참 풍부하시네요.” 상혁은 입꼬리를 비틀며 약간의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 “세상을 잘 모르는 아가씨다운 모습이라 참 순진하긴 한데, 이런 험한 세상에선 지나치게 순진한 건 별로 좋지 않아요.” 더는 말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상혁은 뒤돌아 떠났다. 다영은 마치 머릿속이 폭발이라도 한 듯, 귓가에서 찡하는 이명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럴 리 없어요, 남준 씨는 그럴 리 없어요!” 그녀는 낮게 중얼거리며 자신을 설득하려 애쓰며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이미 수없이 눌렀던 번호를 다급히 눌렀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여전히 차갑고 무미건조한 여성의 자동응답 소리뿐이었다. “안 돼!” 다영은 절망하며 비명을 지르고는 갑작스레 밖으로 뛰쳐나갔다. 깊은 겨울밤, 바람은 더욱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창밖의 거센 바람에 창문이 덜컹이며 울렸다. 병원의 VVIP 병실 안. 다영은 온몸을 떨며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는 텅 빈 듯했고, 난방이 틀어져 있어도 그녀를 감싼 차가운 공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다영아, 이렇게 늦은 밤에 무슨 일이야?” 송혜선은 평소와 같은 말투로 물었고, 전혀 이상한 기색은 비추지 않았다. 실은 송혜선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정지철이 이제는 구속되고 정씨 가문이 더 이상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다영의 마음에는 여전히 남준의 존재가 얽매여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영에게서 더 많은 가치를 끌어낼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송혜선 또한 명확이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송혜선은 표정을 가다듬고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 “자, 물 한 잔 마시고 몸 좀 녹여.” 다영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린 듯, 송혜선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님, 남준 씨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제발요!” 송혜선은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
며칠 사이, 정다영은 차갑게 닫힌 문을 수없이 마주했다. 한때 주변 사람들이 다영을 떠받들며 찬란한 별처럼 여겼지만, 이제 집안의 사건이 터지자 사람들은 그녀를 피하려고만 했다. 마치 다영에게 다가가기만 해도 불행이 전염될 것처럼... 그렇게 다영은 세상의 차가운 이면과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연스레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바꾸었다. “송 여사와 남준이는 요즘 집에 없는 걸로 아는데, 정 다영 씨는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상혁은 평범한 어조로 물었지만, 그 말은 다영을 잠시 멈칫하게 했다. 그녀는 곧바로 대답했다. “남준 씨가 곧 돌아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상혁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날이 추우니 안에서 기다려요.” 말을 마친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건 남자의 차가운 뒷모습뿐이었다. 다영은 상혁을 따라가며 급히 소리쳤다. “부 대표님, 잠깐만요...” 상혁이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할 말이라도?” 다영은 망설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며칠 동안 그녀가 이리저리 뛰어다닌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버지를 이 난관에서 구해내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아버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제 아버지와 관련된 일입니다.” 상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건 검찰 소관이에요. 전문 변호팀을 고용하면 사건의 진행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다영은 초조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부 대표님, 이건 분명 오해입니다. 제 아버지는 회사에 평생을 바친 분입니다. 아버지는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계약서를 조작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자기 아버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즉, 정지철은 딸을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망칠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분명히 이번 일에는 뭔가 숨겨진 진실
최씨 가문 본가 후원에 있는 온실에서는 조용히 바둑알이 내려놓아는 소리가 들렸다. 상혁과 최동신은 마주 앉아 바둑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상혁아, 지금 이 바둑판은 승부가 거의 결정 난 것 같은데!” 바둑판 위에서 흑과 백이 치열하게 맞서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최동신은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자네의 백돌이 반 집 차이로 우위를 점하고 있어. 대단해!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어.” 상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기백이 여전히 넘치시니 제가 아직 배울 점이 많습니다.” 최동신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탄식했다. “늙었지.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그는 곧 말을 돌려 흑돌을 손에 들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자네도 조심해야겠어.” 최동신은 그 말을 하며 흑돌을 바둑판 위에 툭 하고 내려놓았다. 그 돌이 놓인 자리로 인해 한순간 바둑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바둑판 위에 집중되었다. 상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손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위를 점하고 있던 상황이 단 한 수로 인해 역전이 된 것이다. “할아버지의 바둑 실력은 늘 감탄할 따름입니다. 제가 이 점을 간과하고 놓치고 있었네요.” 상혁은 차분하게 패배를 인정하며 판세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최동신은 손에 들고 있던 바둑알을 다시 주우며 훈계하듯 말했다. “그렇지. 이길 수 있는 상황도 한 수의 실수로 모두 망쳐버릴 수 있는 법이다.” 상혁은 최동신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최동신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들리는 말에 DL그룹의 실질적인 권한은 이제 자네가 잡았고, 자네 동생은 동남아 지사로 발령이 났다고 들었네.” “겉으로 보기엔 좋은 상황 같아 보이지만, 상혁이, 네가 한 수라도 실수하는 날엔 모든 걸 망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은 단순한 충고 이상의 뜻을 담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남준은 무심코 말을 뱉었다. 그의 음성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남준은 방 안을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연말 이후로 예정되어 있지 않았나? 어떻게 앞당겨진 거지?” 연지는 침착하게 보고했다. “들리는 말로는 이번 사건이 중대한 만큼 생각보다 빠르게 처리되면서 연말 전에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상혁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 정규인의 입을 열어 내 약점을 찾아내려는 것이겠지.”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부상혁도 모르는 게 있지. 정규인의 입은 결코 열리지 않을 거란 사실을 말이야.” 연지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상무님, 그 말은 혹시...” 그러나 그녀의 말은 남준의 강렬한 눈빛으로 끊겼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 연지는 남준의 의도를 즉각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정규인의 사건은 법원에서 열렸고, 법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찰들이 구치소에서 정규인을 호송해 나오자, 멀리서 그의 초췌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정규인의 기운 없는 모습에서 예전의 당당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법정 방청석을 둘러보다가, 맨 끝자락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순간, 정규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갑작스럽게 방청석을 향해 달려들며 미친 듯이 외쳤다. “여기 왜 왔어! 당장 나가! 나가란 말이야!” 경찰들이 급히 정규인을 제지하려 했으나, 그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저지당했다. “진정해!” 경찰은 엄중히 경고했지만, 그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결국, 경찰봉이 그의 등을 강하게 내려쳤다. 퍽! 정규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고, 그의 몸은 앞으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방청석의 허징인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