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둘째는? 어떻게 할 거야?”“DL의 권력은 제가 이어받을 거예요.”조진숙은 손을 천천히 내렸다.“하연에게 알리지 마. 이런 일에 손대면 안 돼.”상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조진숙이 뒤돌자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들고 초롱초롱한 눈빛과 마주쳤다.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피했다.“상혁 오빠, DL에 돌아가기로 결정했어요?”하연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상혁은 최대한 가볍게 웃었다.“왜, 내가 못할 것 같아?”“아니요! 그저 당할까 봐 두려워요.”“당하는 건 한번 있어도 두 번은 용납 못해!”상혁의 안색이 엄청 어두웠다. 전혀 감정이 없어 하연은 겁에 질렸다. 하연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용기를 내여 상혁의 손을 잡았다.“상혁 오빠. 어렸을 때 DL에 간 적이 있어요. 지금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렸어요. 가서 보고 싶어요.”상혁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가고 싶어?”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기태에게 내일 오후 비행기를 바꿔라고 했어요. 오전에 가도 돼요?”하연은 상혁의 손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 평소 DS 사장님의 카리스마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상혁은 웃었다.“그래.”다음날, 상혁은 대표님으로서 갑자기 돌아와 DL 그룹에 손란을 일으켰다. 아침 일찍 여자를 데리고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사람들은 의논했다.“황연지이 짤렸어?”하지만 황연지는 예정대로 문서를 품에 안고 나타났다.“대표님, 10에 이사회가 열려요. 아직 준비할 시간이 있어요.”황연지의 시선이 하연에게 멈추었다.“이 분은...”눈길을 사로잡는 아람다운 외모에 활기와 지성이 부족하지 않은 아가씨로서 오랜 세월의 기질이 쌓여 있었다.“동생이야.”상혁은 머뭇거렸다.“하연아. 우리 비서, 황연지야.”짧은 30초 동안의 교류로 하연은 황연지가 유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눈에는 비서 답지 않는 욕심이 있다.“황 비서님, 걱정하지 마요. 오늘은 그냥 방문하러 온 거예요.”“제가 동행할 비서를 찾아올게요.”하연은 주머니에 손을 놓고 두리번거렸다. 디지털 기기와 신
“이유가 뭐예요?”“부 사장님께서 사무실에서 비서와, 놀고 있어요.”비서는 하연이 상혁의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을 듣자 하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남준은 그들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저 주먹을 쥐고 다가갔다.“왜 웃어?”하연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남준을 보더니 비서에게 물었다.“누구세요?”비서는 전전긍긍했다.“부, 부 사장님...”‘부.’하연은 그제야 눈 옆의 점을 보았다. 그 모습은 부동건을 닮았다. 남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넌 어느 부서의 사람이야?”비서가 대답하려하자 하연이 말렸다.“부 사장님이시군요. 제가 실례했어요. 오늘 새로 온 비서예요.”남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코트에 있는 로고를 보았다.“비서가 명품을 입고 출근해?”그리고 하연은 전혀 남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연은 바로 손을 꺼내 공손하게 말했다.“옷은 가짜예요. 디자인이 비슷할 뿐이에요. 부 사장님. 설마 직원이 모조품을 사지 못하게 해요?”남준은 눈썹을 찌푸렸다. 뒤에 있는 사람은 똑똑한 척했다.“부 사장님, 어제 새로 채용한 비서가 도착했을 거예요. 어제 부 대표님께서.”남준은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따라와!”하연은 앞으로 다가갔다. 비서는 말릴 틈도 없었다. 하연은 몰래 오케이 제스퍼를 취했다.‘큰일났어. DL에 큰일 날 거야.’원래 사무실은 부숴져서 남준은 다른 사무실에 들어갔다. 사무실은 원래 곳보다 두 배나 작았다. 남준은 부하와 일 얘기를 하여 평범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하연은 비서의 일을 하며 그들의 말을 들었다.“부상혁의 실권은 점차 줄어들고 있어. 몇 가지 큰 프로젝트가 내 손에 있어, 아버지는 날 믿어줄 거야!”“하지만 부 사장님, 신분이 있잖아요.”“허.”남준은 심호흡을 했다.“그럼 오늘 이사회에서 몇 표를 받을 수 있는지 봐야겠어.”하연은 아무런 표정 없이 잔을 잡았다. 부남준은 하연을 쳐다보았다.“이름이 뭐야?”하연은 고개를 숙였다.“하연이라고 부르면 되요
이때 부동건이 말했다. “남준, 일단 앉아.”남준은 진퇴양난이었고 하연을 째려보더니 그대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연은 눈치껏 자리를 피했고 문을 닫는 찰나 부동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혁의 말대로 해. 이번 프로젝트는 네가 책임지는 거로 하고 먼저 임주시에 가서 현지 조사부터 해.” 남준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아주 원치 않는 것처럼 보였으나 거절할 방법이 없었고 눈 앞에 있는 물만 벌컥벌컥 마실 뿐이었다. 이에 하연은 피식 미소를 지었고 얼른 엘리베이터 앞으로 향했다. 이때 방금의 비서가 쫓아 나오며 물었다. “최하연 씨, 뭘 한 건 아니죠?” 하연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제가 뭘 했겠어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봐요.” 하연의 미소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그녀가 막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순간 부남준은 배를 부여잡고 회의실을 뛰쳐나왔고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그 모습은 매우 우스꽝스러웠다. 회의는 끝났고 황연지가 가장 먼저 비서를 찾으러 왔다. “너 일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왜 최하연이 부 사장님의 비서가 된 건데?” “저, 저도 최하연 씨를 말릴 수 없었어요!” 부동건은 맨 뒤에 회의실을 나왔는데 남준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 애는 항상 네 편이구나.” 상혁은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고 뒤따라 나오며 대답했다. “안 그러면요?” “나도 네 편이야.” 부동건이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만약 네가 FL 그룹을 포기한다면 난 지금 당장 남준을 사직할 수도 있어.” “그럴 필요 있을까요?” 상혁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전 아버지를 난처하게 만들기 싫어요. 제가 알아서 할 게요.” “그런데 아버지, 이제 송혜선 아주머니 뵈러 가실 때 저 대신 말 한 마디만 전해주세요. 제 어머니를 괴롭히지 말라고요.” “그를 만나러 가? 그게 무슨 말이냐? 그가 진숙이한테 뭘 한 거냐!” 상혁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고 묵묵히 부동건 곁을 떠났다. 이때 황연지가
하연은 무의식으로 CCTV를 힐끔 보았는데 얼굴은 아주 아름다웠고 풍기는 분위기 또한 아주 우아했다. 남준은 정지 버튼을 누르고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부상혁이라 했지? 이 여자가 내 눈에 다시 한번 띄는 날엔 두고 봐!” 이때 비행기는 이륙했고 하늘을 가로 질러갔다. 마침 해외에서 출장 중이던 서여은은 하연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제일 빠른 티켓을 끊었고 두 사람은 공항에서 마주쳤다. “쯧, 이번 출장은 왜 이렇게 길었어? 외부에선 모두 네가 JJ 그룹과의 프로젝트 때문이라고 말이 많아. 진짜야?” 여은은 차문을 열며 떠보았다. 이때 하연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진짜야. 외부에서 또 뭐래?” “또 아직도 별다른 소식이 없는 거로 보면 십중팔구는 실패했을 거라던데?” 여은은 흥미진진하여 물었다. “정말이야?” 하연은 서여은은 쳐다보며 말했다. “맞춰봐.” “장난 치지 말고 제대로 말해봐. 이런 빅 뉴스는 성공이든 실패든 이번 달 실시간 검색어를 아주 뜨겁게 달구게 될 걸?” “뭐래!” 하연이 웃으며 말했다. “성공인지 실패인지 아직은 말해줄 수 없어. 하지만 이제 정확해지면 가장 먼저 너에게 알려 줄게.” “좋아!” 여은도 더 이상 하연이 난처할 까봐 묻지 하지 않았고 저녁에 클럽에서 모이자고 했다. 이에 하연도 거절하지 않았는데 며칠 간 힘들었으니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어보려 했다. 늦은 밤, 클럽은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 찼고 사람은 차 넘쳤으며 도처에 부잣집 도련님과 아가씨들이 수두룩했다. 하연과 몇 사람은 가장 비싼 위치에 자리를 잡았고 술을 몇 잔 마시던 하연이 주위를 돌아보다가 물었다. “가흔은 안 왔어? 합작이 어떻게 진전되어 가고 있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말이야.” 하연이 신가흔에 대해 묻자 정예나가 흥미진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며칠 전 가흔이네 가계에 옷 가지러 갔다가 함께 점심을 먹자고 했더니 죽어도 싫다는 거야. 계속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말이지. 그래서 뭔가 이상하다 싶어 몰래
임모연은 짙은 화장을 했고 비웃는 듯한 눈빛과 공격성 넘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DS그룹과 JJ그룹이 협력한다는 건 이미 거의 확정된 사실이야. 곧 연말이 다가오는데 한서준 너 정말 나 안 도울 거야?” 모연 앞에 앉은 서준은 담배만 끊임없이 피웠고 시선은 계속 하연에게 머물러 있었는데 오늘의 그녀는 아주 기뻐 보였고 홀가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전에 서준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뭘 도와야 하는 건데?” 서준이 귀찮다는 듯 물었다. “난 하연의 이번 프로젝트가 절대 성사되게 둘 수 없어.” 모연이 아주 확고하게 말했다. 이에 서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모연, 대체 왜? 네가 뭔데 하연의 이번 프로젝트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거지? 말 했잖아, 절대 내가 그녀를 건드리는 일은 없을 거야.” 이 말을 들은 모연은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말했다. “옛 감정에 가득 잠겨 있네? 왜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야.” “네가 저 여자를 좋아할 진 몰라도 상대방은 이젠 아닐 걸? 모르겠어? 저 여자는 널 죽도록 싫어한다고!” “그런 김에 나와 함께 하는 건 어때?” 이 말에 서준은 태양혈을 누르더니 술을 한잔 벌컥 들이마시고 말했다. “더 할 말이 없으면 먼저 갈게!” “거기 서.” 모연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힘 있었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뱉았다. “저 여자가 죽길 바라는 건 아니야. 단지 실패하길 바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모연은 한 걸음 한 걸음 서준의 뒤로 걸어가더니 손을 넓은 그의 어깨에 대고 말했다. “만약 최하연 저 여자가 당시 자기가 첫눈에 반했던 사람이 사실...” “그만 해.” 서준은 손바닥으로 모연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너 평생 이거로 협박할 거야?” 모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건 한 대표가 저 여자를 평생 신경 쓰는지 아닐지에 달렸겠지? 평생 신경 쓴다면 그것 또한 네 평생의 약점이 될 거니 말이야.” 서준은 지겨운 듯
이에 하연이 쳐다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 진미화는 핸드폰 스크롤을 내리며 대답했다. “하정인의 아이가 사생아래요. 완전 빅 뉴스예요!” 하연은 의아한 듯 핸드폰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오전에 디스패치가 하정인에게 아이가 있다는 걸 밝힌 지 얼마가 되지도 않아 오후에 곧바로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불륜남을 만나러 가는 영상이 올라왔다. 심지어 아이는 그 남자를 아빠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에 실시간 댓글창은 폭발하고 있었다. [다 아는 글자인데 왜 조합해 놓으니까 못 알아듣겠지?] [결혼했는데 다른 남자의 사생아가 있다고? 미친 거 아니야?] [남편만 완전히 멍청하게 바보 됐잖아?] 진미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탄했다. “제가 하정인의 매니저를 좀 아는데 당시 결혼할 때도 주위에서 말이 많았다고 해요. 이제 각 매체들이 바빠지겠네요.” 하연은 그 영상 속의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꽉 잡았다. “혹시 그 아이가 하정인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잖아?” “절대 아닐 걸요. 최 사장님, 저 아이가 하정인을 얼마나 닮았는지 한 번 보세요. 유전자는 거짓말을 못한다고요. 게다가 아이가 직접 하정인을 엄마라고 불렀잖아요.” 이에 하연은 심장이 철렁했고 바로 연락처를 뒤지더니 주현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연은 그 영상 속의 모자이크 처리된 남자가 분명 주현빈이라는 걸 눈치 챘다. 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진미화는 아직도 주절주절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 결혼도 했으면서 바람을 필 수 있죠? 정말 미친 거 아니예요? 스스로 자기 앞길을 망친 거네요.” 이때 하연은 갑자기 벌떡 일어났고 곧바로 사무실 밖으로 나갔는데 정태훈이 따라오며 물었다. “최 사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지금 당장 나와 함께 JJ그룹으로 가!” JJ그룹은 줄곧 해외와의 합작을 성사시키려 했고 앞으로 크리스마스라는 아주 관건적인 이벤트를 앞두고 있었는데 이 시기에 스캔들이 터지는 건 상장은 완
주현빈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최 사장님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협력 파트너로서 와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주현빈은 태양혈을 주무르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제 사적인 일 때문에 DS그룹에 피해를 끼쳤네요.”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아이는 정말 주 회장님의 아이가 맞습니까?” 하연이 앉으며 물었다. “네.” “저와 하정인은 확실히 몇 년 만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제 쪽 사정으로 헤어졌고 그녀는 당시 저에게 임신을 했다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다 낳고 나서야 다시 연락이 왔고요.” 하연은 하정인의 이 수단이 놀라울 뿐이었다. 괜찮은 남편감을 찾아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한평생 돈을 지원해줄 돈줄도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 “그럼 주 회장님 부인께서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별 것도 아니라는 거 최 사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집사람은 신경도 안 씁니다.” 이들의 결혼은 각자의 이득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기에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확실히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이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수준이라면 그게 뭐든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을 지 몰라도 지금은?” 이 말에 주현빈은 잠시 멈칫했다. “혹시 이번 일을 사모님께서 폭로했을 가능성은 있나요?” 주현빈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저와 하정인 둘 뿐입니다. 다른 사람은 누구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정인의 남편은 이 사실을 알았잖아요. 주 회장님께서 당하신 것 같네요.” 주현빈은 침묵하고 말았다. “지금 하정인과 연락됩니까?” “현재 많은 매체들을 그녀를 노리고 있어서 연락하려면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하연은 잠시 눈을 감더니 말했다.“여론이 이렇게까지 커졌으니 만일 F국 쪽에서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한다면 우리 협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주현빈은 몸을 앞으로 내밀고 두 손으로 깍지를 꼈는데 머리가 깨질 듯했다. “그럼
하연은 머리가 아팠고 이 뉴스가 며칠 더 부풀려 진다면 그땐 정말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게 뻔했다. 정태훈은 명단을 정리하여 하연의 손에 건넸다. “하정인의 매니저가 의심되는데?” 이 매니저는 하정인의 곁에 5년이나 함께 한 사람이었는데 그녀가 아무런 인기도 없던 무명 시절부터 지금의 대스타가 될 때까지 쭉 옆에 있어 주었기에 하정인이 가장 믿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매니저가 HT그룹에서 일을 했었다니!’ 하연은 손의 그 명단을 꽉 잡고 냉소했다. 이 모습을 본 정태훈이 입을 열었다. “최 사장님?” “나 괜찮아. 단지 믿기지 않을 뿐이야. 나에게 무수한 상처를 준 남자가 지금 또 내 일을 망가뜨리려 한다는 게 말이지.” 하연은 말을 마친 후 밖으로 나갔고 마침 호현욱을 마주쳤는데 그가 비꼬듯 말했다. “최 사장, 어디를 그렇게 잔뜩 화가 나서 가는 거야?” 이에 하연은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호 이사님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JJ그룹에 일이 터졌는데 최 사장이 머리 좀 아프겠어? 내가 진작에 말했잖아. 이런 신흥 산업은 다 물거품이라고 말이야. 살짝만 톡 건드려도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 있어. 말을 안 듣더니, 참.” 하연은 꼿꼿이 선 채 겨우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물거품이라 해도 그 결과는 다 제가 책임집니다.” “책임질 수 있겠어? 우리가 했던 내기 잊지 마. 만약 내가 이기면 최 사장은 즉시에 그 자리에서 물러나고 다시는 DS그룹에 얼씬도 하지 않는 거야!” 하연은 주먹을 꽉 쥐었는데 일년 동안 이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았던 적이 없었다. JJ그룹과의 합작 업무는 그녀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제가 하는 게 시대를 앞서갔다고요? 흥, 두고 봅시다.” 하연의 뒷모습은 아주 확고했고 호현욱은 멀어지는 그녀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침까지 뱉으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자신의 성동 쪽이 잘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틀 동안 하정인에 관한 뉴스
상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검진을 마친 뒤, 하연은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 속 동그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요. 이게 우리 아기래요.” 목소리엔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상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엔 이미 감동이 차올라 있었다. 상혁은 조심스레 하연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무 행복해.”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남자아기일까요, 여자아기일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사랑스러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엔 별빛이 머물러 있는 듯 반짝였다. “그래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걸로 충분해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순간, 상혁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곤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화면엔 낯익은 이름이 선명히 떠 있었다. [부동건.]‘이 타이밍에...?’ ‘설마 무슨 일 생긴 건가?’ 지난 연회 이후, 부동건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혜선과 조봉규. 그 두 사람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결국, 부동건은 송혜선을 아이와 함께 본가에서 내쫓았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받아봐요. 무슨 일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은 하연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고, 그녀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부동건은 갑작스레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컥”‘피 맛...?’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고, 이성의 끈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동건의 시선이 천천히 송혜선과 조봉규를 향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너희들... 너희들...” 부동건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송혜선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그녀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부동건의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 우리, 조 선생님이랑 그냥 산후 회복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저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부동건의 손이 송혜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순간 정적. 강하게 내리친 손바닥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송혜선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눈가가 덜덜 떨리며, 눈물도 같이 맺혔다. “이 천하의... 배은망덕 같은 것. 내가 너를 어떻게 믿었는데... 감히 날 기만해?” 뒤에 서 있던 하객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였어?” “저게 진짜였네... 소문이 아니고...” “...”송혜선은 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붙잡았다. “회장님, 제발... 오해예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뿐이었어요.” 그러나 부동건은 그 손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힘껏 송혜선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송혜선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조봉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야... 지금 나섰다간 나도 끝장이야.’ 한 걸음 다가가려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회... 회장님... 저희...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 한마디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부동건은 그대로 조
일 순간 충격의 정점이었다.부동건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저... 저런 미친...!” 그는 화면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송혜선... 네가 감히!’ 주변 하객들도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야?” “부 회장님 딸이... 아니라고?” “와... 이건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미친 패륜이야, 상상도 못 했어.” 오늘의 연회는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 와선 최악의 스캔들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 연회가... 전부 거짓된 일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이야?’ ‘우리, 사기당한 거네. 다 같이.’ 그때 스크린이 멈췄고, 연회장 전체의 조명이 다시 환히 켜졌다.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부동건을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부동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몸을 떨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뭔가 일어나겠군...’ ‘이번엔 진짜 끝장이다.’ ...같은 시각, 2층 방 안. 송혜선은 조봉규의 손등을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올게.” 조봉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움켜쥐었다. “응. 기다릴게, 자기.”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문이 거칠게 흔들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송혜선! 당장 안 나와?!” 송혜선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조봉규의 팔을 꽉 잡았다. ‘망했다.’ “어떡해, 부동건이 올라왔어.” 두 사람은 당황하며 방 안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안 돼... 이렇게 들키면, 끝장이야. 정말 끝이야.’ 송혜선은 급하게 숨을 고르며 애써 이성을 붙잡으려 했다. ‘진정해. 침착해야 돼.
연회장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부동건은 손에 잔을 들고, 연신 들어오는 축하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회장님, 따님이 너무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경사는 자주 있어야죠!”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지. 오늘은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어.’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며 연회장의 분위기도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졌다. 탁! “어, 뭐야?” “불 꺼졌어! 왜 이래?” “아야, 누가 내 발 밟았어!” “...”순식간에 어둠이 덮친 연회장.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퍼졌다. 잔을 들고 있던 부동건은 순간 정지된 듯 멈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확인해봐!” “네, 회장님!” 직원들이 급히 움직였고, 부동건은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기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방 복구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순간, 연회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조용히 켜졌다. “위이잉...”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화면의 빛에 모두가 눈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빛이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가 터트린 외마디 감탄에,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헉,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스크린 안에 있는 건... 분명 두 남녀의 은밀한 장면이었다. 화면 속, 분명히 누군가를 알아본 듯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여자... 그분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는...?” “헐, 이건 진짜 레전드다.” “아, 눈 버렸어. 이게 뭐야, 이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순식간에 연회장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송혜선이 복도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꺄악!” 놀란 송혜선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야! 나야, 혜선아.” 익숙한 목소리에 송혜선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지금 제정신인 거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혜선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흘기듯 말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미쳤어,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 말엔 명백한 불만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봉규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조봉규의 시선이 송혜선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송혜선은 산후라 그런가, 몸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풍성해져 있었다. ‘이러니까, 잊으려고 해도... 더 생각이 나잖아.’ 그는 순간 충동적으로 송혜선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당황한 송혜선이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러나 조봉규는 말없이 송혜선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탁’ 하고 울렸다. 좁은 공간, 차오르는 침묵. 송혜선은 남자를 노려보며 벽에 등을 댔다. “정신 차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조봉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다들 홀에 있잖아. 아무도 몰라.” 남자의 말투엔 간절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었다. 그리움, 억눌림, 그리고 못다 한 말들. 그는 조심스럽게 송혜선의 턱선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혜선아... 나, 정말 많이 참았어.” ‘이 사람 또 이러네...’ 송혜선의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분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정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부동건이 고개를 돌리자, 최하연이 부상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등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잘생긴 남자와 우아한 여자의 조합. 누가 봐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딱 봐도 좋은 그림이야. 저 둘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길을 끌어...’ “회장님, 부상혁 대표님은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 최씨 가문의 따님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부동건의 표정이 확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부동건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좋아하는 걸, 우리 어른들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일일 뿐이지요.” “게다가 상대가 최씨 가문의 따님이라니, 정말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부동건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상혁이다. 내 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상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당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한편, 송혜선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에 띄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져 갔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하연에게 향했다. 오늘의 하연은, 나무나 예쁘고... 아니, 그냥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윤기 흐르는 머릿결,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빛까지. 하연의 행복함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송혜선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정다영... 그년, 나를 속였어.’ 그동안 하연 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려 왔다. 하지만 소식은커녕, 정다영조차 자취를 감췄다. ‘다영이 걔가 하연이에게 약 먹이는 계획이 분명 실패한 거야. 그렇지 않고 선 지금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어.’ 이대로 배가 불러오면, 섣불리 손도 쓸 수 없게 된다. ‘
이 질문에 송혜선은 눈을 반짝이며 부동건을 바라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젠 나를 당당히 소개해 줄 때가 됐겠지.’ 오늘 이 자리에서, 그녀는 부동건의 정식 아내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주변의 시선도 하나둘 송혜선과 부동건을 향했다. 모두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었다. 부동건이 과연 예전 애인을 진짜로 정실로 앉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부동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숨기거나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담백하게 말했다. “오 회장님, 이 사람은 제 딸의 어머니입니다.” 순간, 송혜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딸의... 어머니?’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금세 넘칠 듯한 와인, 애써 잡고 있는 감정. ‘지금...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툭 하고 솟구쳤다. 심지어 손에 힘이 들어가며 하얗게 질린 손등이 떨렸다. 오병지는 단번에 눈치챘고, 싱긋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고, 대신 가볍게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부 회장님, 여전히 복이 많으시네요.” 부동건은 공손하게 웃으며 송혜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엔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저와 이 사람의 결혼식엔 꼭 오셔서 축배 들어주세요.” 그 말에 송혜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결혼식...?’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수줍게 웃었다. “회장님...” 부동건은 말없이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그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시선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송혜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던 눈빛이, 지금은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결국, ‘부동건의 아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송혜선은 온
부지윤의 ‘한 달 잔치’는 그야말로 성대한 수준의 파티였다. 초대받은 인사들만 봐도, 그 위세가 느껴졌다. F국 재계의 실력자들, 정재계의 핵심 인물,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가 자제들이 대거 초청됐고, 심지어 부씨 가문 어른들에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직접 청첩장을 보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 아이를 공식적으로 가문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었다. 부동건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집착하듯 쏟고 있는지, 이날 행사 하나로 증명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동건은 스스로의 체면과 명예를 걸고, 딸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잔치 당일, 연회장은 유난히 붐볐다. 샹들리에의 조명이 화사하게 반짝였고, 고급스러움이 풍겨 나는 악단의 선율이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송혜선은 산후조리를 마친 직후였지만, 여전히 그만의 풍채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예전보다 조금 살이 오른 듯했지만, 그 덕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너그러워 보였다. 그녀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평소 자주 어울리던 재벌가 부인들이 앞다투어 다가왔다. “혜선씨는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고생 끝에 드디어 볕뜰날이 왔네요.” “부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챙기시는 거 보니까, 이제 정말 한 자리 하시겠어요.” “정말 이러다 조만간 ‘겹경사’ 나는 거 아니예요? 우리라도 미리 축하해줘야 하는 거야?” 송혜선은 그 소리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자리가 높아야 대접 받는 거야.’ “지윤이는 회장님의 첫 딸이잖아요. 그러니까 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회장님이 우리 모녀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건, 여기 있는 분들도 느끼셨을 테고요.” 그 말에 다들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이제 우리도 호칭 바꿔야지, 사모님!” 누군가 먼저 그렇게 불렀고, 뒤이어 몇몇이 장난처럼 따라 불렀다. 송혜선은 그 말에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살짝 들며, 그 호칭이 제법 익숙
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남준은 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였어요. 부씨 가문이 이 일에 개입한다면... 여론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감싸려 들면 들수록, 결국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겠죠.”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맞은편 소파에 앉은 상혁은 다리를 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세속의 먼지 따윈 전혀 묻지 않은 사람처럼. 진윤의 말이 끝났지만, 상혁의 표정엔 미동 하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씨 가문은 항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왔습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여사님.” 그는 손짓으로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거기엔 작은 검은색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안에... 고나희 씨가 남긴 게 있습니다. 여사님께 드리라고 하더군요.” 순간, 진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표정으로, USB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희가... 뭔가를 남겼다고...?’ 사고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딸의 마지막을 함께할 시간조차 없이,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유언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줄 알았다. “나희... 그 애가... 무슨 말을 남겼다는 거예요...” 진윤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은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람이 떠난 건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누군가가 반드시 전해야죠.”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거운 공기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시 후.룸 안에서 낮고,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희야...” 진윤은 USB를 손에 쥐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울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