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연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이수애를 조롱했다. “여사님, 이건 질투라기보다 후회 아닐까요? 아마 속이 뒤집혔을 거예요. 그렇게 좋은 재벌가의 며느리를 내쳤으니, 이제 와서 이런...”진화연은 임모연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숨김없이 말했다.“이런 보잘것없는 사람을 데리고 다니니 말이죠. 참 뭐라고 말하기도 어렵네요.”이에 이수애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당신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누가 어떻다고요? 확실히 말해요!”진화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멀리 있는 최하연에게로 다가갔다. 그 모습에 이수애는 그 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화를 냈다.“최 사장님.”진화연은 최하연에게 다가가며 인사를 건넸는데 그 태도는 이수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중했다. 이에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화연 사모님, 안녕하세요!”진화영은 하연이 자신을 알아본 것에 크게 만족하며 말했다.“최 사장님, 사업도 잘하시고 점점 더 예뻐지시네요. 역시 기쁜 일이 생기면 기운이 나는 법이죠.”진화영은 자연스럽게 하연과 부상혁에게 시선을 돌리자 하연도 대놓고 인정하며 말했다.“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모든 일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이에 진화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요! 하지만 최 사장님,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어요. 당신의 전 시어머니는 그리 쉬운 사람이 아니니, 뒤에서 뭔가를 할지 모르니 조심하세요.”진화영은 멀리 있는 이수애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지금 저 사람, 당신을 질투하고 있어요!”하연은 이 말을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얼굴에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사모님, 오늘 입으신 옷 정말 예쁘네요. 최신 맞춤 제작인가요?”자기 옷 이야기가 나오자, 진화영은 자연스럽게 가슴을 펴고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이 옷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고급 맞춤 제작이에요. 오늘 오후에야 항공으로 받아봤죠. 어때요, 괜찮죠?”이에 하연이 칭찬했다.“사모님은 원래도 예쁘신데, 어떤 옷을 입으셔도
상혁은 하연의 입술에 살짝 입 맞추며 하연이 하려던 말을 모두 막아버렸다.그 순간 세상은 마치 정지된 것만 같았다.하연은 눈을 크게 뜬 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고, 상혁은 그런 하연이 예뻐 죽겠다는 듯 싱긋 웃으며 힘 있는 손으로 하연을 더 꽉 끌어안았다.“하연아, 난 우리가 하루빨리 연인 더 나아가서 가족이 되고 싶어.”하연은 난감해 상혁을 몇 초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살짝 부끄러운 듯 ‘응’이라고 대답했다.하연의 묵인에 상혁의 눈에 기쁨이 지나갔다.“하연아, 정말이지?”하연은 싱긋 웃으며 눈을 들더니 별빛 같은 눈동자로 상혁을 바라봤다.하연의 예쁜 눈동자 속에 오롯이 드러난 자신을 보더니 상혁은 만족스러운 듯 입고리를 말아 올렸다.상혁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사이 주위 사람들 시선이 모두 두 사람에게로 쏠렸고, 하연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상혁 오빠, 주변에 사람 있어요.”상혁은 그제야 하연을 놓아주었다. 하연은 부끄러워 얼른 얼굴을 돌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며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이런 느낌이 너무 익숙하고도 낯설어 하연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하연아, JJ 그룹 주 회장도 오늘 왔어.”그 한마디는 이내 하연의 집중력을 끌었다.그도 그럴 게, JJ 그룹 주 회장 주현빈은 오늘 두 사람이 여기에 온 목적 중 하나이다.JJ 그룹은 현재 쇼트폼 업계의 최고 기업이다.쇼트폼은 요즘 국내에서 나날이 발전하는 데다 크나큰 전망을 가지고 있어 DS 그룹도 마침 이 업계에 뛰어들 참이었다.때문에 하연은 얼른 물었다.“주 회장님은 어디 있어요?”“같이 만나러 가자.”상혁의 말에 하연은 싱긋 웃으며 상혁의 팔짱을 끼고 파티장 반대편으로 걸어갔다.“부 대표님, 최 사장님!”상혁과 하연이 함께 나타나자 주현빈은 먼저 다가와 반갑게 인사했다. 최근 2년 동안 새롭게 떠오른 상업계의 샛별로서 현빈도 당연히 이 두 대단한 인물을 알고 있다.“주 회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상혁이 먼저 고개를
하연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그러면 저야 좋죠! 나중에 시간 될 때 약속 잡아서 제대로 얘기해 볼까요?”하지만 현빈은 오히려 당장이라도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그도 그럴 게, B시에서 손꼽히는 기업인 FL 그룹과 DS 그룹과 손잡는 건 현빈이 줄곧 꿈꿔왔던 일이었으니.게다가 JJ 그룹은 요즘 발전단계에 있긴 하지만 아직도 자금 문제가 존재하기에 FL 그룹과 DS 그룹처럼 막강한 기업과 손잡으면 전도가 밝을 건 분명하다.“최 사장님, 부 대표님,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오늘 어떻겠습니까? 우리 어디 가서 협력에 관해 얘기 나누지 않을래요?”하연과 상혁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의했다. 그러자 현빈은 얼른 명을 내렸다.“승범 씨, 얼른 가서 옆에 있는 호텔 스위트 룸 예약해요. 내가 당장 부 대표님과 최 사장님과 함께 가서 미팅할 테니.”“네, 주 회장님.”승범은 다급히 대답했다.“그럼 최 사장님, 부 대표님, 이따가 뵙겠습니다.”현빈은 두 사람과 인사를 하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떠나갔다.“상혁 오빠, 주 회장님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이라는 느낌 안 들어요?”하연이 갑자기 의아한 듯 질문하자 상혁은 바로 그 의문점을 풀어주었다.“JJ 그룹은 요즘 갓 일어선 회사라 아직 기초가 단단하지 못하거든. 주 회장이 오늘 여기 직접 나타난 것도 아마 투자 유치 때문일 거야.”상혁의 짤막한 설명에 하연은 바로 내막을 이해했다.“그렇구나. 그렇다면 쌍방 모두 협력할 의향은 충분한 것 같네요?”“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너 정말 쇼트폼에 뛰어들 거야?”하연은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며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이 업계는 비전이 아주 좋아요.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상혁 호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그러자 상혁은 얼른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어두운 눈빛으로 거절 버튼을 눌렀다.“하연아,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절대 딴 데로 새지 마, 금방 올게.”“그
소파의 반대편으로 조용히 물러나던 모연은 다급히 이수애를 끌고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최하연은 역시 몸 함부로 굴리는 가벼운 여자였어요. 어떻게 대낮부터 인플루언서와 호텔 방을 드나드는지!”이수애도 곧바로 하연을 깔보는 듯 맞받아쳤다.“최하연이 이러는 거 한두 번이 아니야. 서준은 이런 애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잊지 못하는지. 오늘 서준한테도 최하연의 진짜 모습을 보여줘야겠어.”이수애는 말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수애가 서준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모연은 얼른 뜯어말렸다.“어머님, 이 일은 조급하게 처리하면 안 돼요. 우리 멀리 봐야죠.”이수애는 이해가 안 되는 듯 물었다.“난 최하연만 생각하면 한 시도 못 참겠어. 당장 서준한테 저년 진짜 모습을 보여야지.”심지어 말하면 말할수록 화가 치밀었다.그 모습을 본 모연은 얼른 이수애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았다.“어머님, 우선 진정하세요. 우리 아직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 서준 씨한테 전화해서 뭐라고 말할 건데요? 최하연이 얼마나 교활한데, 딱 잡아떼면 우리가 오히려 곤란할 거예요.”모연의 말에 이수애는 점차 진정을 되찾았다.“뭐, 정 그렇다면야. 그럼 뭐 좋은 수라도 있나?”모연은 입꼬리를 비틀며 냉소를 지었다.“증거를 모은 다음에 폭로하죠.”이수애도 그 아이디어에 동의하는지 이내 맞장구쳤다.“맞아. 한꺼번에 싸잡아야지.”“최하연, 어쩜 이런 실수를 할까? 어머님, 최하연한테 방키 건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요?”“누구지?”“요즘 가장 핫한 인플루언서예요. 팬도 많아 이 사실이 공개되면 최하연은 아마 여팬들한테 테러당할지도 몰라요. 여자 사생팬들은 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거든요. 최하연은 이제 한씨 집안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 명예가 실추되어도 한씨 집안에 피해가 될 건 없어요.”이수애는 모연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하연한테 많이 당한 탓에 조심하는 건 나쁠 거 없다고 여겼다.“이건 우리가 하면 안 돼. 다른 사람한테 시켜야지...”“혹시 적
상혁은 하연을 보자 얼른 전화 건너편에 말했다.“이 일은 나중에 얘기해. 우선 이만 끊지.”전화를 끊은 상혁은 하연을 향해 걸어왔다.“하연아, 어디 가?”하연은 상혁 앞으로 다가가 호텔 카드키를 흔들어댔다.“주 회장님이 룸 예약했대요. 일 다 마쳤어요? 마쳤으면 같이 가요”“그래.”말을 마친 상혁은 경계하듯 하연의 뒤를 살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하연아, 너 먼저 가서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나 기다려.”“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야, 먼저 가 있어.”하연이 의아한 듯 묻자 상혁은 안심하라는 눈빛을 건넸다. 그때 하연이 상혁의 눈빛을 따라 제 뒤를 확인하며 물었다.“상혁 오빠, 뭘 그렇게 봐요?”상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앞으로 쭉 걸어가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아니야. 내가 잘못 봤나 봐.”하연은 의아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곧이어 두 사람은 맞은편 호텔로 향했다. 두 사람이 멀어지자 구석에 숨어 있던 카메라를 든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호텔 입구.승범은 진작 현빈의 분부대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라 하지만 아직은 그저 사장 밑에서 일하는 직원에 불과했으니 모두 사장의 분부에 따라야 했다.하연과 상혁을 보자 승범은 반갑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최 사장님, 부 대표님, 오셨어요? 주 회장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얼른 올라갑시다.”승범은 안으로 들어가자는 제스처를 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오른 세 사람은 뒤에서 누군가 저들을 찍고 있다는 걸 꿈에도 알지 못했다....호텔 스위트룸.현빈은 비서를 시켜 자료를 가져오도록 명령했다.“부 대표님, 최 사장님, 이건 우리 JJ 그룹이 최근 진행하는 인기 있는 쇼트폼 프로젝트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비서가 자료를 건네자 하연은 곧바로 열심히 확인했다.물론 쇼트폼 업계에 대해 아직은 잘 모르지만 사람들이 쇼트폼에 열광하는 것만
장장 두 시간 동안의 미팅을 마치고 호텔에서 나올 때 현빈은 아쉬운 듯 말했다.“최 사장님, 부 대표님, 만약 두 분이 저희 회사와 손잡을 의향이 있다면, 저희는 언제든 환영입니다.”“네, 주 회장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네, 그럼 다음에 뵙시다.”현빈이 떠나가자 하연은 고래를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빛만 봐도 할 말이 아주 많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기에 상혁이 먼저 물었다.“위 미디어를 하고 싶어?”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물론 나타난 지 얼마 안 되는 사업이지만 비전이 아주 훌륭하다고 봐요. 우리 DS 그룹에서도 한번 뛰어들고 싶어요. 그러자면 우선 연예부를 만들고 실력 있는 인플루언서를 모집하고 팀을 운영하고 또 IP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하연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대략적인 구상을 차근차근 설명했다.그러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게 제 초기 아이디어인데, 어때요?”“형태만 갖추면 바로 실시해도 좋을 것 같아.”하연은 그 말에 기쁜 듯 환호했다.“그럼 다음 주 월요일 임원 회의에서 말해볼 생각이에요. 절반 이상의 임원만 통과하면 바로 실시할 수 있으니까.”하연은 마치 새로운 방향이라도 찾은 듯 집에 도착하자마자 며칠 동안 야근하면서 계획서를 완성했다.월요일 오전 9시.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하연의 열정은 여전히 활활 타올랐고, 온 정신을 회사에 쏟아부었다.“최 사장님, 임원들 모두 회의실에 도착해 사장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태훈이 다가와 작은 소리로 보고하자 하연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알았어, 지금 바로 가지.”오늘 회의실은 유난히 떠들썩했다.그도 그럴 게, 요즘 도는 소문을 이미 들은 임원진 모두가 회의 시간 전에 도착해 있었으니까.심지어 임원 회의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 호현욱마저 도착했으니, 다들 이번 회의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9시가 다 돼가는데 최 사장은 대체 언제 온대?”“그러게 말이야. 최하민 대표가 있을 때도 우리를 이렇게 이른 시간에 부르지
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요즘 인터넷이 발전하고 있으니 쇼트폼이야말로 현재 가장 핫한 프로젝트라고 봅니다. 물론 우리 DS 그룹이 쇼트폼에 처음으로 뛰어드는 거지만 이번이 변화를 가져올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하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호현욱은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테이블 위에 내팽개쳤다.“최 사장님, 저는 동의 못 합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임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혹 무슨 문제가 있나요?”하연의 물음에 호현욱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비틀며 비아냥거렸다.“우리 DS 그룹은 첨단기술 사업을 위주로 해왔어요. 이를테면 나노로봇 기술, 의료기기, 광물 등. 이건 모두 우리가 잘하는 분야라 성적이 좋은 거지. 갑자기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겠다니, 한번 물어보고 싶네요. 성공 확률은 몇 퍼센트나 있습니까?”호현욱의 말에 다른 임원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최 사장님, 무턱대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건 너무 큰 도전입니다. 그러다 실패라도 하면 우리 회사 평판도 떨어질 겁니다.”“사장님, 이 일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세요. 무모하게 행동하지 마시고요.”“위 미디어라면 저도 별로입니다. 오히려 요즘 부동산의 발전 추세가 꽤 좋고, 집값도 계속 오르고 있는데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좋은 선택이라고 봅니다.”“정부가 요즘 신도시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던데, 땅만 차지해 건물을 짓는다면 위 미디어인지 뭔지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임원들이 너도나도 의견을 내놓자 호현욱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보는 듯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앉아 하연의 반응을 살폈다.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보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최 사장님, 다른 임원분들 의견이 좋은 듯한데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위 미디어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분야잖습니까. 차라리 정 이사님 말씀대로 건물을 짓는 게 더 수익이 높을 겁니다.”“...”사람들은 모두 하연이 이대로 물러날 거라고 확신했다.하지만
눈부신 수트 차림의 하성이 자기 매니저를 데리고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순간 회의실에 있던 임원들은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아니, 최하성이 여긴 어떻게?”“최씨 가문 셋째가 연예인이 잖나. 팬도 엄청 많아 대충 아무 계정이나 확인해 봐도 팔로워나 리트윗이 몇백만씩 되네.”“최하성이 워낙 인기 있고 팬층이 두터운 연예인이긴 하지. 그런데 여기엔 웬일이지?”“...”하성의 등장은 회의실 분위기를 바로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호현욱에게 눈빛으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물어봤다.그 순간 호현욱의 낯빛은 잿빛이 되어버렸다.그도 그럴 게, 하연이 이런 카드를 숨기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하성은 성큼성큼 하연에게 걸어가더니 하연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싱긋 웃었다.“오빠...”“응.”하성은 눈썹을 추켜 올리며 가볍게 대답하고는 하연과 나란히 서서 사람들을 바라봤다.“반가워요.”이윽고 가벼운 어투로 인사하자 임원진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최하성 배우님이 여기엔 웬일입니까? 그동안 연예계에 있어 회사 일에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그 질문에 하성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좋은 질문이네요. 오늘부터 DS 그룹에서 엔터 사업을 한다고 해서 첫 번째 연예인으로 계약하게 됐거든요.”그 말이 떨어진 순간 회의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최하성이 누군가? 월드 스타, 노래와 연기 모두 뛰어난 연예계의 최고 스타, 게다가 두터운 팬덤까지 보유한 인기 절정의 연예인이다.만약 하성이 DS 엔터에 들어온다면 아무리 새로 뛰어든 분야라도 단번에 살아날 수 있다.“그게 정말입니까?”하성은 어깨를 으쓱했다.“물론이죠. 제 매니저먼트 계약은 제 손에 있으니 DS 그룹과 계약하는 것도 제가 결정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선 DS 그룹에 연예부가 있어야 제가 들어올 수 있죠.”그 말에 사람들은 순간 이해했다.하성이 DS 그룹에 들어오는 건 순전히 하연이 하는 위 미디어를 지지해 주기 위해서라는
“뭐 하는 거야? 빨리 이 주스를 연회장으로 가져가!” 홀 매니저가 다가와 살짝 꾸짖었다. 여자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질투로 번들거리던 눈빛을 감추고는 얌전히 대답했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다영은 태어나서 가사일 한 번 손댄 적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트레이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매니저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너 신입이야?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다영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가슴 속에서 송혜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고향 친척 중 하나가 DS그룹에서 일하고 있어. 오늘 밤엔 그 사람 신분을 쓰는 게 편할 거야.” 침착함을 되찾은 다영은 고개를 들어 냉정하게 대답했다. “저는 고객지원부의 진미입니다. 연회 인력이 부족해서 임시로 지원 나온 거예요.” 매니저는 그녀의 명찰을 한 번 흘깃 본 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트레이를 건네받았다. “신입이라면 전면에 나가면 실수하기 쉬워. 내실에서 돕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매니저가 떠난 뒤, 다영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다시 연회장을 바라봤을 때, 앞줄에 앉아 있던 하연과 상혁은 이미 모습을 감췄다. 2층 휴게실 안. 원신명은 한 손에 신선한 오렌지 한 봉지를, 다른 손에 포장을 뜯지 않은 녹즙기를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 주문하신 오렌지와 녹즙기입니다.” 원신명은 궁금한 듯 물었다. “대표님, 직접 오렌지 주스를 만드시는 건가요?” 상혁은 짧게 대답했다. “원 비서, 거기 두고 가면 돼.” 원신명은 얼른 다가가 도움을 자청했다. “대표님, 이런 건 제가 할게요.” “와이프가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다는데, 남에게 맡길 수는 없지.” ‘와이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마치 그 단어를 그의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뇌었던 것처럼 익숙했다. 원신명은 곧 깨달았다. ‘아, 대표님이 직접 최하연 씨를 위해 주스를 준비하시고 싶은 거구나!’ “원 비서, 연말인데도
최하성은 오늘 검정색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그의 차가운 분위기와 단정한 모습은 단번에 모든 직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최 대표님!”하성을 마주친 직원들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하성은 살짝 고개를 끄덕일 뿐, 시선을 주지 않고 빠르게 행사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 저녁 만찬은 매우 풍성했다. 동서양의 요리가 조화를 이루며 대부분 직원들의 입맛과 식습관을 세심하게 고려한 모습이었다. 준비에 꽤 공을 들인 것이 분명했고, 결과적으로 반응도 좋았다. 연말 만찬이 시작되기 전, 하성은 DS그룹의 대표이사로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하성은 차분한 걸음으로 무대에 오르며, 그의 존재감은 단번에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가 화려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단 몇 마디 간결한 말로도,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번 연말 행사는 생중계되고 있었으며, 하성이 등장하자마자 팬들과 네티즌들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시청자 수가 십만 명을 돌파했다. [최하성 씨,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연예계에 최하성이 없으니 허전한 기분이에요. 최하성 씨, 돌아와 주세요!][다들 동감! 언제쯤 복귀할 수 있는 거죠?][복귀 요청 99%!!][...] 팬들의 댓글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하성의 인기는 생중계 플랫폼 순위에서도 단연코 1위를 차지했다. 무대 아래에서 생중계를 담당하던 진행자는 이 뜨거운 열기를 놓치지 않고 하성에게 다가갔다. “최 대표님, 생중계 채팅창에 팬들이 사장님의 새해 계획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하고 있어요. 오늘 이 특별한 밤에 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성은 미소를 머금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 순간, 생중계 채팅창은 순식간에 폭발했다. 선물 아이콘이 화면을 뒤덮었고, 댓글은 끊임없이 새로 고침 되었다. “안녕하세요, 하성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와 DS그룹을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DL 그룹
“어머님, 정말로 부 회장님과 결혼하세요?” 이 얘기는 다영에게 있어 꽤 충격적이었다. 세간에서는 송혜선과 부동건의 관계를 두고 여러 말이 떠돌았고, 그중 가장 많이 들려온 것은 송혜선이 ‘첩’이라는 점이었다. 한때 정지철 부인도 이 사실을 꽤 꺼려했던 터라, 다영은 송혜선이 이렇게 대놓고 정식으로 자리 잡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언제 결혼 승낙을 받으신 거예요?” 송혜선은 이미 불룩해진 배를 가볍게 쓸며, 깊은 눈빛 속에 숨겨진 야망을 드러냈다. “부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새해도 지나고 이제 곧 아이가 태어날 테니 우리 모자에게 반드시 정당한 신분을 보장해 주시겠다고 하셨어.” “그러니... 다영아, 우리 남준이를 믿어야 해. 지금은 잠시 밀려난 상황이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잖니?” 다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더욱 굳게 다졌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저는 언제나 남준 씨를 도울 거예요.” 송혜선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더욱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야지. 남준이도 절대 너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그러다 두 사람이 화제를 돌리며 덧붙였다. “지금 부 회장님이 부상혁을 중시하며 DL그룹의 운영을 맡긴 데는 이유가 있어. 결국은 부씨 가문의 장손이라는 명분 때문이지.” “하지만, 임신 초기에는 변수가 많아.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되겠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잖니?” “만약 그 아이가 사라지면, 부상혁 쪽의 지렛대도 없어진 셈이니 남준이한테 분명 유리한 상황이 될 거야. 그렇지 않겠니?” “...” 다영은 멍하니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님, 그게 무슨 뜻이에요?” 송혜선은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조그마한 흰색 약병을 다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약은 무색무취야. 일반인이 먹으면 아무 이상이 없지만, 임신한 사람이 먹으면 삼 일 안에 유산이 돼.” 다영의 손이 떨리며 본능적으로 병을 놓치듯 뺐다. “어머님,
“정다영 씨의 상상력은 참 풍부하시네요.” 상혁은 입꼬리를 비틀며 약간의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 “세상을 잘 모르는 아가씨다운 모습이라 참 순진하긴 한데, 이런 험한 세상에선 지나치게 순진한 건 별로 좋지 않아요.” 더는 말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상혁은 뒤돌아 떠났다. 다영은 마치 머릿속이 폭발이라도 한 듯, 귓가에서 찡하는 이명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럴 리 없어요, 남준 씨는 그럴 리 없어요!” 그녀는 낮게 중얼거리며 자신을 설득하려 애쓰며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이미 수없이 눌렀던 번호를 다급히 눌렀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여전히 차갑고 무미건조한 여성의 자동응답 소리뿐이었다. “안 돼!” 다영은 절망하며 비명을 지르고는 갑작스레 밖으로 뛰쳐나갔다. 깊은 겨울밤, 바람은 더욱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창밖의 거센 바람에 창문이 덜컹이며 울렸다. 병원의 VVIP 병실 안. 다영은 온몸을 떨며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는 텅 빈 듯했고, 난방이 틀어져 있어도 그녀를 감싼 차가운 공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다영아, 이렇게 늦은 밤에 무슨 일이야?” 송혜선은 평소와 같은 말투로 물었고, 전혀 이상한 기색은 비추지 않았다. 실은 송혜선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정지철이 이제는 구속되고 정씨 가문이 더 이상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다영의 마음에는 여전히 남준의 존재가 얽매여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영에게서 더 많은 가치를 끌어낼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송혜선 또한 명확이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송혜선은 표정을 가다듬고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 “자, 물 한 잔 마시고 몸 좀 녹여.” 다영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린 듯, 송혜선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님, 남준 씨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제발요!” 송혜선은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
며칠 사이, 정다영은 차갑게 닫힌 문을 수없이 마주했다. 한때 주변 사람들이 다영을 떠받들며 찬란한 별처럼 여겼지만, 이제 집안의 사건이 터지자 사람들은 그녀를 피하려고만 했다. 마치 다영에게 다가가기만 해도 불행이 전염될 것처럼... 그렇게 다영은 세상의 차가운 이면과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연스레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바꾸었다. “송 여사와 남준이는 요즘 집에 없는 걸로 아는데, 정 다영 씨는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상혁은 평범한 어조로 물었지만, 그 말은 다영을 잠시 멈칫하게 했다. 그녀는 곧바로 대답했다. “남준 씨가 곧 돌아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상혁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날이 추우니 안에서 기다려요.” 말을 마친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건 남자의 차가운 뒷모습뿐이었다. 다영은 상혁을 따라가며 급히 소리쳤다. “부 대표님, 잠깐만요...” 상혁이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할 말이라도?” 다영은 망설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며칠 동안 그녀가 이리저리 뛰어다닌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버지를 이 난관에서 구해내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아버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제 아버지와 관련된 일입니다.” 상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건 검찰 소관이에요. 전문 변호팀을 고용하면 사건의 진행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다영은 초조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부 대표님, 이건 분명 오해입니다. 제 아버지는 회사에 평생을 바친 분입니다. 아버지는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계약서를 조작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자기 아버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즉, 정지철은 딸을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망칠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분명히 이번 일에는 뭔가 숨겨진 진실
최씨 가문 본가 후원에 있는 온실에서는 조용히 바둑알이 내려놓아는 소리가 들렸다. 상혁과 최동신은 마주 앉아 바둑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상혁아, 지금 이 바둑판은 승부가 거의 결정 난 것 같은데!” 바둑판 위에서 흑과 백이 치열하게 맞서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최동신은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자네의 백돌이 반 집 차이로 우위를 점하고 있어. 대단해!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어.” 상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기백이 여전히 넘치시니 제가 아직 배울 점이 많습니다.” 최동신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탄식했다. “늙었지.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그는 곧 말을 돌려 흑돌을 손에 들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자네도 조심해야겠어.” 최동신은 그 말을 하며 흑돌을 바둑판 위에 툭 하고 내려놓았다. 그 돌이 놓인 자리로 인해 한순간 바둑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바둑판 위에 집중되었다. 상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손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위를 점하고 있던 상황이 단 한 수로 인해 역전이 된 것이다. “할아버지의 바둑 실력은 늘 감탄할 따름입니다. 제가 이 점을 간과하고 놓치고 있었네요.” 상혁은 차분하게 패배를 인정하며 판세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최동신은 손에 들고 있던 바둑알을 다시 주우며 훈계하듯 말했다. “그렇지. 이길 수 있는 상황도 한 수의 실수로 모두 망쳐버릴 수 있는 법이다.” 상혁은 최동신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최동신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들리는 말에 DL그룹의 실질적인 권한은 이제 자네가 잡았고, 자네 동생은 동남아 지사로 발령이 났다고 들었네.” “겉으로 보기엔 좋은 상황 같아 보이지만, 상혁이, 네가 한 수라도 실수하는 날엔 모든 걸 망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은 단순한 충고 이상의 뜻을 담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남준은 무심코 말을 뱉었다. 그의 음성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남준은 방 안을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연말 이후로 예정되어 있지 않았나? 어떻게 앞당겨진 거지?” 연지는 침착하게 보고했다. “들리는 말로는 이번 사건이 중대한 만큼 생각보다 빠르게 처리되면서 연말 전에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상혁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 정규인의 입을 열어 내 약점을 찾아내려는 것이겠지.”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부상혁도 모르는 게 있지. 정규인의 입은 결코 열리지 않을 거란 사실을 말이야.” 연지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상무님, 그 말은 혹시...” 그러나 그녀의 말은 남준의 강렬한 눈빛으로 끊겼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 연지는 남준의 의도를 즉각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정규인의 사건은 법원에서 열렸고, 법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찰들이 구치소에서 정규인을 호송해 나오자, 멀리서 그의 초췌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정규인의 기운 없는 모습에서 예전의 당당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법정 방청석을 둘러보다가, 맨 끝자락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순간, 정규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갑작스럽게 방청석을 향해 달려들며 미친 듯이 외쳤다. “여기 왜 왔어! 당장 나가! 나가란 말이야!” 경찰들이 급히 정규인을 제지하려 했으나, 그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저지당했다. “진정해!” 경찰은 엄중히 경고했지만, 그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결국, 경찰봉이 그의 등을 강하게 내려쳤다. 퍽! 정규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고, 그의 몸은 앞으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방청석의 허징인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
“이모...” 하연은 조진숙을 꽉 끌어안으며 말문이 막혔다. 지금은 어떤 말도 조진숙에게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되든 간에, 이모 곁엔 항상 저희가 있어요.” 조진숙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고맙다.” ... 한적한 교외에 위치한 독채 빌라. 고급스러운 소형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차고로 들어섰다. 황연지는 휴대폰으로 위치를 확인한 뒤,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빌라는 꽤 외진 곳에 있었고, 오랜 기간 비어 있었던 듯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연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상무님? 계신가요?”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텅 빈 집안의 메아리뿐이었다. 연지는 2층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용기를 냈다. 계단 끝에 닫혀 있는 문 하나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상무님, 안에 계신가요?” 그녀는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잠시 망설이던 연지는 문을 조심스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코를 찌르는 강렬한 술 냄새가 그녀를 덮쳤다. 연지는 본능적으로 코를 막고 안으로 더 들어갔는데, 방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낯익은 실루엣을 발견했다. “상무님?” 이사회 이후 부남준은 자취를 감췄고, 외부에서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단다. 그렇게 된 지가 삼 일째였다. 연지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상무님, 괜찮으세요?” 남준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비록 지금의 그는 어딘가 지쳐 보였지만, 그 매서운 매의 눈은 여전히 날카로운 빛을 띄고 있었다. 그는 황연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너였구나?” 연지는 아침에 급히 소식을 듣고 서둘러 이곳으로 달려왔다. “상무님, 사라지신 며칠 동안 정다영 씨가 상무님을 계속 찾고 있었습니다.” 정다영은 남준을 찾기 위해 거의 미쳐버린 상태였고, 부남준을 찾을 수 있는 곳은 모조리 뒤지고 있었다.
저녁에 하연과 상혁은 음악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집 안의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 “돌아왔니?” 하연과 상혁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소파에 홀로 앉아 있는 조진숙을 보았다. 지금의 조진숙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어머니, 집에 계셨네요?” 조진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희 기다리고 있었어.” 하연은 활짝 웃으며 조진숙에게 다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이 늦은 시간까지 기다린 거예요? 일찍 주무시지 그러셨어요.” 하연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조진숙은 손을 들어 하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너희가 안 들어오면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 하연은 그녀의 팔짱을 끼며 더 애교를 부렸다. “이모가 이렇게 저희를 걱정해주니까, 너무 좋아요!” 조진숙은 하연의 손등을 살짝 두드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사실 오늘은 너희에게 할 말이 있어서 기다린 거야.” 상혁은 소파의 다른 쪽에 앉아 조진숙의 말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하연과 눈빛을 교환한 상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하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모,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조진숙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네 동건이 삼촌이 송혜선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것뿐이야.” 이 말은 마치 고요한 연못에 큰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분위기를 흔들었다. 상혁은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조진숙이 그를 불러 세웠다. “상혁아, 흥분하지 마라.” 상혁은 걸음을 멈추고 눈빛을 깊게 내리깔았다. “가서 직접 얘기를 해봐야겠어요.” “그럴 필요 없어.” 조진숙이 단호히 말하며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고, 마치 이번 일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했다. “아들아, 이제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란다. 남녀가 서로 좋아해서 함께 사는 건 그저 대수롭지 않은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은 그런 장난스러운 일은 아니잖아. 네 아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