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모연은 자기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가 뗐다가 하며 설명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저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이었다. 이수애는 이를 들으며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정말 못된 사람이네요. 예전에 서영이한테도 그렇게 하더니, 나한테도 그렇게 하고.”모연은 눈을 내리깔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저는 힘이 없으니 최하연을 이길 수 없어요. 그 여자는 최씨 집안의 딸이라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냥 속으로 삭이고 있어야죠.”이수애는 그 기분을 잘 알았는데 하연에게 수모를 당한 기억이 떠올랐다. 또한 한서영은 아직도 아프리카에서 소식이 없었기에 이수애와 서영은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이에 이수애는 모연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말했다.“모연 씨, 당신은 잘못이 없어요. 모든 게 그 사람의 계략 때문이에요. 악인은 반드시 벌을 받으니, 우리 두고 봅시다. 그 끝이 얼마나 비참할지.”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수애의 팔짱을 꼈는데 아주 친밀한 사이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둘이 친모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순간, 대문 쪽에서 소란이 일어나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저기 봐요, 누가 왔어요.”모두의 눈길이 대문 쪽으로 향했는데 오렌지색 드레스를 입은 하연이 부성윤의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에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최 사장님,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기품도 넘치고.”“맞아요. 사람은 자기 삶을 살아야 가치가 있죠. 예전엔 최 사장님이 한씨 가문에 시집가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제 이혼하고 나서 오히려 더 아름다워졌어요.”“게다가 DS그룹을 맡고 나서 회사 실적이 날로 좋아지고 있다네요. 반면 한씨 가문은 요즘 많이 어려운 것 같아요.”“맞아요. 우리가 최 사장님과 잘 지내면, 나중에 우리 회사도 도움받을 기회가 있을 거예요.”“그렇죠. 꼭 그래야죠.”한편, 이수애와 모연은 하연을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는데 모연의 눈에는 질투심이 가득했다. 하연이 이 자리에 있을 때는
진화연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이수애를 조롱했다. “여사님, 이건 질투라기보다 후회 아닐까요? 아마 속이 뒤집혔을 거예요. 그렇게 좋은 재벌가의 며느리를 내쳤으니, 이제 와서 이런...”진화연은 임모연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숨김없이 말했다.“이런 보잘것없는 사람을 데리고 다니니 말이죠. 참 뭐라고 말하기도 어렵네요.”이에 이수애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당신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누가 어떻다고요? 확실히 말해요!”진화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멀리 있는 최하연에게로 다가갔다. 그 모습에 이수애는 그 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화를 냈다.“최 사장님.”진화연은 최하연에게 다가가며 인사를 건넸는데 그 태도는 이수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중했다. 이에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화연 사모님, 안녕하세요!”진화영은 하연이 자신을 알아본 것에 크게 만족하며 말했다.“최 사장님, 사업도 잘하시고 점점 더 예뻐지시네요. 역시 기쁜 일이 생기면 기운이 나는 법이죠.”진화영은 자연스럽게 하연과 부상혁에게 시선을 돌리자 하연도 대놓고 인정하며 말했다.“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모든 일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이에 진화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요! 하지만 최 사장님,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어요. 당신의 전 시어머니는 그리 쉬운 사람이 아니니, 뒤에서 뭔가를 할지 모르니 조심하세요.”진화영은 멀리 있는 이수애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지금 저 사람, 당신을 질투하고 있어요!”하연은 이 말을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얼굴에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사모님, 오늘 입으신 옷 정말 예쁘네요. 최신 맞춤 제작인가요?”자기 옷 이야기가 나오자, 진화영은 자연스럽게 가슴을 펴고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이 옷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고급 맞춤 제작이에요. 오늘 오후에야 항공으로 받아봤죠. 어때요, 괜찮죠?”이에 하연이 칭찬했다.“사모님은 원래도 예쁘신데, 어떤 옷을 입으셔도
상혁은 하연의 입술에 살짝 입 맞추며 하연이 하려던 말을 모두 막아버렸다.그 순간 세상은 마치 정지된 것만 같았다.하연은 눈을 크게 뜬 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고, 상혁은 그런 하연이 예뻐 죽겠다는 듯 싱긋 웃으며 힘 있는 손으로 하연을 더 꽉 끌어안았다.“하연아, 난 우리가 하루빨리 연인 더 나아가서 가족이 되고 싶어.”하연은 난감해 상혁을 몇 초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살짝 부끄러운 듯 ‘응’이라고 대답했다.하연의 묵인에 상혁의 눈에 기쁨이 지나갔다.“하연아, 정말이지?”하연은 싱긋 웃으며 눈을 들더니 별빛 같은 눈동자로 상혁을 바라봤다.하연의 예쁜 눈동자 속에 오롯이 드러난 자신을 보더니 상혁은 만족스러운 듯 입고리를 말아 올렸다.상혁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사이 주위 사람들 시선이 모두 두 사람에게로 쏠렸고, 하연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상혁 오빠, 주변에 사람 있어요.”상혁은 그제야 하연을 놓아주었다. 하연은 부끄러워 얼른 얼굴을 돌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며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이런 느낌이 너무 익숙하고도 낯설어 하연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하연아, JJ 그룹 주 회장도 오늘 왔어.”그 한마디는 이내 하연의 집중력을 끌었다.그도 그럴 게, JJ 그룹 주 회장 주현빈은 오늘 두 사람이 여기에 온 목적 중 하나이다.JJ 그룹은 현재 쇼트폼 업계의 최고 기업이다.쇼트폼은 요즘 국내에서 나날이 발전하는 데다 크나큰 전망을 가지고 있어 DS 그룹도 마침 이 업계에 뛰어들 참이었다.때문에 하연은 얼른 물었다.“주 회장님은 어디 있어요?”“같이 만나러 가자.”상혁의 말에 하연은 싱긋 웃으며 상혁의 팔짱을 끼고 파티장 반대편으로 걸어갔다.“부 대표님, 최 사장님!”상혁과 하연이 함께 나타나자 주현빈은 먼저 다가와 반갑게 인사했다. 최근 2년 동안 새롭게 떠오른 상업계의 샛별로서 현빈도 당연히 이 두 대단한 인물을 알고 있다.“주 회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상혁이 먼저 고개를
하연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그러면 저야 좋죠! 나중에 시간 될 때 약속 잡아서 제대로 얘기해 볼까요?”하지만 현빈은 오히려 당장이라도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그도 그럴 게, B시에서 손꼽히는 기업인 FL 그룹과 DS 그룹과 손잡는 건 현빈이 줄곧 꿈꿔왔던 일이었으니.게다가 JJ 그룹은 요즘 발전단계에 있긴 하지만 아직도 자금 문제가 존재하기에 FL 그룹과 DS 그룹처럼 막강한 기업과 손잡으면 전도가 밝을 건 분명하다.“최 사장님, 부 대표님,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오늘 어떻겠습니까? 우리 어디 가서 협력에 관해 얘기 나누지 않을래요?”하연과 상혁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의했다. 그러자 현빈은 얼른 명을 내렸다.“승범 씨, 얼른 가서 옆에 있는 호텔 스위트 룸 예약해요. 내가 당장 부 대표님과 최 사장님과 함께 가서 미팅할 테니.”“네, 주 회장님.”승범은 다급히 대답했다.“그럼 최 사장님, 부 대표님, 이따가 뵙겠습니다.”현빈은 두 사람과 인사를 하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떠나갔다.“상혁 오빠, 주 회장님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이라는 느낌 안 들어요?”하연이 갑자기 의아한 듯 질문하자 상혁은 바로 그 의문점을 풀어주었다.“JJ 그룹은 요즘 갓 일어선 회사라 아직 기초가 단단하지 못하거든. 주 회장이 오늘 여기 직접 나타난 것도 아마 투자 유치 때문일 거야.”상혁의 짤막한 설명에 하연은 바로 내막을 이해했다.“그렇구나. 그렇다면 쌍방 모두 협력할 의향은 충분한 것 같네요?”“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너 정말 쇼트폼에 뛰어들 거야?”하연은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며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이 업계는 비전이 아주 좋아요.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상혁 호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그러자 상혁은 얼른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어두운 눈빛으로 거절 버튼을 눌렀다.“하연아,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절대 딴 데로 새지 마, 금방 올게.”“그
소파의 반대편으로 조용히 물러나던 모연은 다급히 이수애를 끌고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최하연은 역시 몸 함부로 굴리는 가벼운 여자였어요. 어떻게 대낮부터 인플루언서와 호텔 방을 드나드는지!”이수애도 곧바로 하연을 깔보는 듯 맞받아쳤다.“최하연이 이러는 거 한두 번이 아니야. 서준은 이런 애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잊지 못하는지. 오늘 서준한테도 최하연의 진짜 모습을 보여줘야겠어.”이수애는 말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수애가 서준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모연은 얼른 뜯어말렸다.“어머님, 이 일은 조급하게 처리하면 안 돼요. 우리 멀리 봐야죠.”이수애는 이해가 안 되는 듯 물었다.“난 최하연만 생각하면 한 시도 못 참겠어. 당장 서준한테 저년 진짜 모습을 보여야지.”심지어 말하면 말할수록 화가 치밀었다.그 모습을 본 모연은 얼른 이수애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았다.“어머님, 우선 진정하세요. 우리 아직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 서준 씨한테 전화해서 뭐라고 말할 건데요? 최하연이 얼마나 교활한데, 딱 잡아떼면 우리가 오히려 곤란할 거예요.”모연의 말에 이수애는 점차 진정을 되찾았다.“뭐, 정 그렇다면야. 그럼 뭐 좋은 수라도 있나?”모연은 입꼬리를 비틀며 냉소를 지었다.“증거를 모은 다음에 폭로하죠.”이수애도 그 아이디어에 동의하는지 이내 맞장구쳤다.“맞아. 한꺼번에 싸잡아야지.”“최하연, 어쩜 이런 실수를 할까? 어머님, 최하연한테 방키 건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요?”“누구지?”“요즘 가장 핫한 인플루언서예요. 팬도 많아 이 사실이 공개되면 최하연은 아마 여팬들한테 테러당할지도 몰라요. 여자 사생팬들은 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거든요. 최하연은 이제 한씨 집안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 명예가 실추되어도 한씨 집안에 피해가 될 건 없어요.”이수애는 모연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하연한테 많이 당한 탓에 조심하는 건 나쁠 거 없다고 여겼다.“이건 우리가 하면 안 돼. 다른 사람한테 시켜야지...”“혹시 적
상혁은 하연을 보자 얼른 전화 건너편에 말했다.“이 일은 나중에 얘기해. 우선 이만 끊지.”전화를 끊은 상혁은 하연을 향해 걸어왔다.“하연아, 어디 가?”하연은 상혁 앞으로 다가가 호텔 카드키를 흔들어댔다.“주 회장님이 룸 예약했대요. 일 다 마쳤어요? 마쳤으면 같이 가요”“그래.”말을 마친 상혁은 경계하듯 하연의 뒤를 살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하연아, 너 먼저 가서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나 기다려.”“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야, 먼저 가 있어.”하연이 의아한 듯 묻자 상혁은 안심하라는 눈빛을 건넸다. 그때 하연이 상혁의 눈빛을 따라 제 뒤를 확인하며 물었다.“상혁 오빠, 뭘 그렇게 봐요?”상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앞으로 쭉 걸어가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아니야. 내가 잘못 봤나 봐.”하연은 의아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곧이어 두 사람은 맞은편 호텔로 향했다. 두 사람이 멀어지자 구석에 숨어 있던 카메라를 든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호텔 입구.승범은 진작 현빈의 분부대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라 하지만 아직은 그저 사장 밑에서 일하는 직원에 불과했으니 모두 사장의 분부에 따라야 했다.하연과 상혁을 보자 승범은 반갑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최 사장님, 부 대표님, 오셨어요? 주 회장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얼른 올라갑시다.”승범은 안으로 들어가자는 제스처를 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오른 세 사람은 뒤에서 누군가 저들을 찍고 있다는 걸 꿈에도 알지 못했다....호텔 스위트룸.현빈은 비서를 시켜 자료를 가져오도록 명령했다.“부 대표님, 최 사장님, 이건 우리 JJ 그룹이 최근 진행하는 인기 있는 쇼트폼 프로젝트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비서가 자료를 건네자 하연은 곧바로 열심히 확인했다.물론 쇼트폼 업계에 대해 아직은 잘 모르지만 사람들이 쇼트폼에 열광하는 것만
장장 두 시간 동안의 미팅을 마치고 호텔에서 나올 때 현빈은 아쉬운 듯 말했다.“최 사장님, 부 대표님, 만약 두 분이 저희 회사와 손잡을 의향이 있다면, 저희는 언제든 환영입니다.”“네, 주 회장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네, 그럼 다음에 뵙시다.”현빈이 떠나가자 하연은 고래를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빛만 봐도 할 말이 아주 많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기에 상혁이 먼저 물었다.“위 미디어를 하고 싶어?”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물론 나타난 지 얼마 안 되는 사업이지만 비전이 아주 훌륭하다고 봐요. 우리 DS 그룹에서도 한번 뛰어들고 싶어요. 그러자면 우선 연예부를 만들고 실력 있는 인플루언서를 모집하고 팀을 운영하고 또 IP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하연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대략적인 구상을 차근차근 설명했다.그러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게 제 초기 아이디어인데, 어때요?”“형태만 갖추면 바로 실시해도 좋을 것 같아.”하연은 그 말에 기쁜 듯 환호했다.“그럼 다음 주 월요일 임원 회의에서 말해볼 생각이에요. 절반 이상의 임원만 통과하면 바로 실시할 수 있으니까.”하연은 마치 새로운 방향이라도 찾은 듯 집에 도착하자마자 며칠 동안 야근하면서 계획서를 완성했다.월요일 오전 9시.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하연의 열정은 여전히 활활 타올랐고, 온 정신을 회사에 쏟아부었다.“최 사장님, 임원들 모두 회의실에 도착해 사장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태훈이 다가와 작은 소리로 보고하자 하연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알았어, 지금 바로 가지.”오늘 회의실은 유난히 떠들썩했다.그도 그럴 게, 요즘 도는 소문을 이미 들은 임원진 모두가 회의 시간 전에 도착해 있었으니까.심지어 임원 회의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 호현욱마저 도착했으니, 다들 이번 회의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9시가 다 돼가는데 최 사장은 대체 언제 온대?”“그러게 말이야. 최하민 대표가 있을 때도 우리를 이렇게 이른 시간에 부르지
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요즘 인터넷이 발전하고 있으니 쇼트폼이야말로 현재 가장 핫한 프로젝트라고 봅니다. 물론 우리 DS 그룹이 쇼트폼에 처음으로 뛰어드는 거지만 이번이 변화를 가져올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하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호현욱은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테이블 위에 내팽개쳤다.“최 사장님, 저는 동의 못 합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임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혹 무슨 문제가 있나요?”하연의 물음에 호현욱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비틀며 비아냥거렸다.“우리 DS 그룹은 첨단기술 사업을 위주로 해왔어요. 이를테면 나노로봇 기술, 의료기기, 광물 등. 이건 모두 우리가 잘하는 분야라 성적이 좋은 거지. 갑자기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겠다니, 한번 물어보고 싶네요. 성공 확률은 몇 퍼센트나 있습니까?”호현욱의 말에 다른 임원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최 사장님, 무턱대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건 너무 큰 도전입니다. 그러다 실패라도 하면 우리 회사 평판도 떨어질 겁니다.”“사장님, 이 일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세요. 무모하게 행동하지 마시고요.”“위 미디어라면 저도 별로입니다. 오히려 요즘 부동산의 발전 추세가 꽤 좋고, 집값도 계속 오르고 있는데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좋은 선택이라고 봅니다.”“정부가 요즘 신도시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던데, 땅만 차지해 건물을 짓는다면 위 미디어인지 뭔지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임원들이 너도나도 의견을 내놓자 호현욱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보는 듯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앉아 하연의 반응을 살폈다.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보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최 사장님, 다른 임원분들 의견이 좋은 듯한데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위 미디어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분야잖습니까. 차라리 정 이사님 말씀대로 건물을 짓는 게 더 수익이 높을 겁니다.”“...”사람들은 모두 하연이 이대로 물러날 거라고 확신했다.하지만
상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검진을 마친 뒤, 하연은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 속 동그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요. 이게 우리 아기래요.” 목소리엔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상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엔 이미 감동이 차올라 있었다. 상혁은 조심스레 하연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무 행복해.”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남자아기일까요, 여자아기일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사랑스러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엔 별빛이 머물러 있는 듯 반짝였다. “그래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걸로 충분해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순간, 상혁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곤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화면엔 낯익은 이름이 선명히 떠 있었다. [부동건.]‘이 타이밍에...?’ ‘설마 무슨 일 생긴 건가?’ 지난 연회 이후, 부동건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혜선과 조봉규. 그 두 사람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결국, 부동건은 송혜선을 아이와 함께 본가에서 내쫓았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받아봐요. 무슨 일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은 하연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고, 그녀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부동건은 갑작스레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컥”‘피 맛...?’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고, 이성의 끈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동건의 시선이 천천히 송혜선과 조봉규를 향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너희들... 너희들...” 부동건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송혜선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그녀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부동건의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 우리, 조 선생님이랑 그냥 산후 회복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저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부동건의 손이 송혜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순간 정적. 강하게 내리친 손바닥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송혜선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눈가가 덜덜 떨리며, 눈물도 같이 맺혔다. “이 천하의... 배은망덕 같은 것. 내가 너를 어떻게 믿었는데... 감히 날 기만해?” 뒤에 서 있던 하객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였어?” “저게 진짜였네... 소문이 아니고...” “...”송혜선은 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붙잡았다. “회장님, 제발... 오해예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뿐이었어요.” 그러나 부동건은 그 손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힘껏 송혜선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송혜선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조봉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야... 지금 나섰다간 나도 끝장이야.’ 한 걸음 다가가려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회... 회장님... 저희...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 한마디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부동건은 그대로 조
일 순간 충격의 정점이었다.부동건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저... 저런 미친...!” 그는 화면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송혜선... 네가 감히!’ 주변 하객들도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야?” “부 회장님 딸이... 아니라고?” “와... 이건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미친 패륜이야, 상상도 못 했어.” 오늘의 연회는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 와선 최악의 스캔들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 연회가... 전부 거짓된 일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이야?’ ‘우리, 사기당한 거네. 다 같이.’ 그때 스크린이 멈췄고, 연회장 전체의 조명이 다시 환히 켜졌다.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부동건을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부동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몸을 떨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뭔가 일어나겠군...’ ‘이번엔 진짜 끝장이다.’ ...같은 시각, 2층 방 안. 송혜선은 조봉규의 손등을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올게.” 조봉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움켜쥐었다. “응. 기다릴게, 자기.”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문이 거칠게 흔들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송혜선! 당장 안 나와?!” 송혜선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조봉규의 팔을 꽉 잡았다. ‘망했다.’ “어떡해, 부동건이 올라왔어.” 두 사람은 당황하며 방 안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안 돼... 이렇게 들키면, 끝장이야. 정말 끝이야.’ 송혜선은 급하게 숨을 고르며 애써 이성을 붙잡으려 했다. ‘진정해. 침착해야 돼.
연회장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부동건은 손에 잔을 들고, 연신 들어오는 축하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회장님, 따님이 너무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경사는 자주 있어야죠!”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지. 오늘은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어.’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며 연회장의 분위기도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졌다. 탁! “어, 뭐야?” “불 꺼졌어! 왜 이래?” “아야, 누가 내 발 밟았어!” “...”순식간에 어둠이 덮친 연회장.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퍼졌다. 잔을 들고 있던 부동건은 순간 정지된 듯 멈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확인해봐!” “네, 회장님!” 직원들이 급히 움직였고, 부동건은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기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방 복구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순간, 연회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조용히 켜졌다. “위이잉...”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화면의 빛에 모두가 눈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빛이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가 터트린 외마디 감탄에,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헉,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스크린 안에 있는 건... 분명 두 남녀의 은밀한 장면이었다. 화면 속, 분명히 누군가를 알아본 듯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여자... 그분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는...?” “헐, 이건 진짜 레전드다.” “아, 눈 버렸어. 이게 뭐야, 이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순식간에 연회장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송혜선이 복도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꺄악!” 놀란 송혜선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야! 나야, 혜선아.” 익숙한 목소리에 송혜선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지금 제정신인 거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혜선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흘기듯 말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미쳤어,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 말엔 명백한 불만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봉규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조봉규의 시선이 송혜선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송혜선은 산후라 그런가, 몸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풍성해져 있었다. ‘이러니까, 잊으려고 해도... 더 생각이 나잖아.’ 그는 순간 충동적으로 송혜선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당황한 송혜선이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러나 조봉규는 말없이 송혜선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탁’ 하고 울렸다. 좁은 공간, 차오르는 침묵. 송혜선은 남자를 노려보며 벽에 등을 댔다. “정신 차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조봉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다들 홀에 있잖아. 아무도 몰라.” 남자의 말투엔 간절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었다. 그리움, 억눌림, 그리고 못다 한 말들. 그는 조심스럽게 송혜선의 턱선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혜선아... 나, 정말 많이 참았어.” ‘이 사람 또 이러네...’ 송혜선의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분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정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부동건이 고개를 돌리자, 최하연이 부상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등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잘생긴 남자와 우아한 여자의 조합. 누가 봐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딱 봐도 좋은 그림이야. 저 둘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길을 끌어...’ “회장님, 부상혁 대표님은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 최씨 가문의 따님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부동건의 표정이 확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부동건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좋아하는 걸, 우리 어른들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일일 뿐이지요.” “게다가 상대가 최씨 가문의 따님이라니, 정말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부동건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상혁이다. 내 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상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당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한편, 송혜선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에 띄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져 갔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하연에게 향했다. 오늘의 하연은, 나무나 예쁘고... 아니, 그냥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윤기 흐르는 머릿결,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빛까지. 하연의 행복함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송혜선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정다영... 그년, 나를 속였어.’ 그동안 하연 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려 왔다. 하지만 소식은커녕, 정다영조차 자취를 감췄다. ‘다영이 걔가 하연이에게 약 먹이는 계획이 분명 실패한 거야. 그렇지 않고 선 지금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어.’ 이대로 배가 불러오면, 섣불리 손도 쓸 수 없게 된다. ‘
이 질문에 송혜선은 눈을 반짝이며 부동건을 바라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젠 나를 당당히 소개해 줄 때가 됐겠지.’ 오늘 이 자리에서, 그녀는 부동건의 정식 아내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주변의 시선도 하나둘 송혜선과 부동건을 향했다. 모두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었다. 부동건이 과연 예전 애인을 진짜로 정실로 앉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부동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숨기거나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담백하게 말했다. “오 회장님, 이 사람은 제 딸의 어머니입니다.” 순간, 송혜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딸의... 어머니?’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금세 넘칠 듯한 와인, 애써 잡고 있는 감정. ‘지금...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툭 하고 솟구쳤다. 심지어 손에 힘이 들어가며 하얗게 질린 손등이 떨렸다. 오병지는 단번에 눈치챘고, 싱긋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고, 대신 가볍게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부 회장님, 여전히 복이 많으시네요.” 부동건은 공손하게 웃으며 송혜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엔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저와 이 사람의 결혼식엔 꼭 오셔서 축배 들어주세요.” 그 말에 송혜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결혼식...?’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수줍게 웃었다. “회장님...” 부동건은 말없이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그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시선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송혜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던 눈빛이, 지금은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결국, ‘부동건의 아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송혜선은 온
부지윤의 ‘한 달 잔치’는 그야말로 성대한 수준의 파티였다. 초대받은 인사들만 봐도, 그 위세가 느껴졌다. F국 재계의 실력자들, 정재계의 핵심 인물,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가 자제들이 대거 초청됐고, 심지어 부씨 가문 어른들에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직접 청첩장을 보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 아이를 공식적으로 가문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었다. 부동건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집착하듯 쏟고 있는지, 이날 행사 하나로 증명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동건은 스스로의 체면과 명예를 걸고, 딸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잔치 당일, 연회장은 유난히 붐볐다. 샹들리에의 조명이 화사하게 반짝였고, 고급스러움이 풍겨 나는 악단의 선율이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송혜선은 산후조리를 마친 직후였지만, 여전히 그만의 풍채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예전보다 조금 살이 오른 듯했지만, 그 덕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너그러워 보였다. 그녀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평소 자주 어울리던 재벌가 부인들이 앞다투어 다가왔다. “혜선씨는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고생 끝에 드디어 볕뜰날이 왔네요.” “부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챙기시는 거 보니까, 이제 정말 한 자리 하시겠어요.” “정말 이러다 조만간 ‘겹경사’ 나는 거 아니예요? 우리라도 미리 축하해줘야 하는 거야?” 송혜선은 그 소리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자리가 높아야 대접 받는 거야.’ “지윤이는 회장님의 첫 딸이잖아요. 그러니까 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회장님이 우리 모녀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건, 여기 있는 분들도 느끼셨을 테고요.” 그 말에 다들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이제 우리도 호칭 바꿔야지, 사모님!” 누군가 먼저 그렇게 불렀고, 뒤이어 몇몇이 장난처럼 따라 불렀다. 송혜선은 그 말에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살짝 들며, 그 호칭이 제법 익숙
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남준은 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였어요. 부씨 가문이 이 일에 개입한다면... 여론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감싸려 들면 들수록, 결국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겠죠.”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맞은편 소파에 앉은 상혁은 다리를 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세속의 먼지 따윈 전혀 묻지 않은 사람처럼. 진윤의 말이 끝났지만, 상혁의 표정엔 미동 하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씨 가문은 항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왔습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여사님.” 그는 손짓으로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거기엔 작은 검은색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안에... 고나희 씨가 남긴 게 있습니다. 여사님께 드리라고 하더군요.” 순간, 진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표정으로, USB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희가... 뭔가를 남겼다고...?’ 사고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딸의 마지막을 함께할 시간조차 없이,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유언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줄 알았다. “나희... 그 애가... 무슨 말을 남겼다는 거예요...” 진윤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은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람이 떠난 건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누군가가 반드시 전해야죠.”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거운 공기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시 후.룸 안에서 낮고,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희야...” 진윤은 USB를 손에 쥐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울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