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그러면 저야 좋죠! 나중에 시간 될 때 약속 잡아서 제대로 얘기해 볼까요?”하지만 현빈은 오히려 당장이라도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그도 그럴 게, B시에서 손꼽히는 기업인 FL 그룹과 DS 그룹과 손잡는 건 현빈이 줄곧 꿈꿔왔던 일이었으니.게다가 JJ 그룹은 요즘 발전단계에 있긴 하지만 아직도 자금 문제가 존재하기에 FL 그룹과 DS 그룹처럼 막강한 기업과 손잡으면 전도가 밝을 건 분명하다.“최 사장님, 부 대표님,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오늘 어떻겠습니까? 우리 어디 가서 협력에 관해 얘기 나누지 않을래요?”하연과 상혁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의했다. 그러자 현빈은 얼른 명을 내렸다.“승범 씨, 얼른 가서 옆에 있는 호텔 스위트 룸 예약해요. 내가 당장 부 대표님과 최 사장님과 함께 가서 미팅할 테니.”“네, 주 회장님.”승범은 다급히 대답했다.“그럼 최 사장님, 부 대표님, 이따가 뵙겠습니다.”현빈은 두 사람과 인사를 하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떠나갔다.“상혁 오빠, 주 회장님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이라는 느낌 안 들어요?”하연이 갑자기 의아한 듯 질문하자 상혁은 바로 그 의문점을 풀어주었다.“JJ 그룹은 요즘 갓 일어선 회사라 아직 기초가 단단하지 못하거든. 주 회장이 오늘 여기 직접 나타난 것도 아마 투자 유치 때문일 거야.”상혁의 짤막한 설명에 하연은 바로 내막을 이해했다.“그렇구나. 그렇다면 쌍방 모두 협력할 의향은 충분한 것 같네요?”“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너 정말 쇼트폼에 뛰어들 거야?”하연은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며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이 업계는 비전이 아주 좋아요.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상혁 호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그러자 상혁은 얼른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어두운 눈빛으로 거절 버튼을 눌렀다.“하연아,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절대 딴 데로 새지 마, 금방 올게.”“그
소파의 반대편으로 조용히 물러나던 모연은 다급히 이수애를 끌고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최하연은 역시 몸 함부로 굴리는 가벼운 여자였어요. 어떻게 대낮부터 인플루언서와 호텔 방을 드나드는지!”이수애도 곧바로 하연을 깔보는 듯 맞받아쳤다.“최하연이 이러는 거 한두 번이 아니야. 서준은 이런 애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잊지 못하는지. 오늘 서준한테도 최하연의 진짜 모습을 보여줘야겠어.”이수애는 말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수애가 서준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모연은 얼른 뜯어말렸다.“어머님, 이 일은 조급하게 처리하면 안 돼요. 우리 멀리 봐야죠.”이수애는 이해가 안 되는 듯 물었다.“난 최하연만 생각하면 한 시도 못 참겠어. 당장 서준한테 저년 진짜 모습을 보여야지.”심지어 말하면 말할수록 화가 치밀었다.그 모습을 본 모연은 얼른 이수애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았다.“어머님, 우선 진정하세요. 우리 아직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 서준 씨한테 전화해서 뭐라고 말할 건데요? 최하연이 얼마나 교활한데, 딱 잡아떼면 우리가 오히려 곤란할 거예요.”모연의 말에 이수애는 점차 진정을 되찾았다.“뭐, 정 그렇다면야. 그럼 뭐 좋은 수라도 있나?”모연은 입꼬리를 비틀며 냉소를 지었다.“증거를 모은 다음에 폭로하죠.”이수애도 그 아이디어에 동의하는지 이내 맞장구쳤다.“맞아. 한꺼번에 싸잡아야지.”“최하연, 어쩜 이런 실수를 할까? 어머님, 최하연한테 방키 건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요?”“누구지?”“요즘 가장 핫한 인플루언서예요. 팬도 많아 이 사실이 공개되면 최하연은 아마 여팬들한테 테러당할지도 몰라요. 여자 사생팬들은 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거든요. 최하연은 이제 한씨 집안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 명예가 실추되어도 한씨 집안에 피해가 될 건 없어요.”이수애는 모연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하연한테 많이 당한 탓에 조심하는 건 나쁠 거 없다고 여겼다.“이건 우리가 하면 안 돼. 다른 사람한테 시켜야지...”“혹시 적
상혁은 하연을 보자 얼른 전화 건너편에 말했다.“이 일은 나중에 얘기해. 우선 이만 끊지.”전화를 끊은 상혁은 하연을 향해 걸어왔다.“하연아, 어디 가?”하연은 상혁 앞으로 다가가 호텔 카드키를 흔들어댔다.“주 회장님이 룸 예약했대요. 일 다 마쳤어요? 마쳤으면 같이 가요”“그래.”말을 마친 상혁은 경계하듯 하연의 뒤를 살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하연아, 너 먼저 가서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나 기다려.”“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야, 먼저 가 있어.”하연이 의아한 듯 묻자 상혁은 안심하라는 눈빛을 건넸다. 그때 하연이 상혁의 눈빛을 따라 제 뒤를 확인하며 물었다.“상혁 오빠, 뭘 그렇게 봐요?”상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앞으로 쭉 걸어가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아니야. 내가 잘못 봤나 봐.”하연은 의아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곧이어 두 사람은 맞은편 호텔로 향했다. 두 사람이 멀어지자 구석에 숨어 있던 카메라를 든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호텔 입구.승범은 진작 현빈의 분부대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라 하지만 아직은 그저 사장 밑에서 일하는 직원에 불과했으니 모두 사장의 분부에 따라야 했다.하연과 상혁을 보자 승범은 반갑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최 사장님, 부 대표님, 오셨어요? 주 회장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얼른 올라갑시다.”승범은 안으로 들어가자는 제스처를 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오른 세 사람은 뒤에서 누군가 저들을 찍고 있다는 걸 꿈에도 알지 못했다....호텔 스위트룸.현빈은 비서를 시켜 자료를 가져오도록 명령했다.“부 대표님, 최 사장님, 이건 우리 JJ 그룹이 최근 진행하는 인기 있는 쇼트폼 프로젝트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비서가 자료를 건네자 하연은 곧바로 열심히 확인했다.물론 쇼트폼 업계에 대해 아직은 잘 모르지만 사람들이 쇼트폼에 열광하는 것만
장장 두 시간 동안의 미팅을 마치고 호텔에서 나올 때 현빈은 아쉬운 듯 말했다.“최 사장님, 부 대표님, 만약 두 분이 저희 회사와 손잡을 의향이 있다면, 저희는 언제든 환영입니다.”“네, 주 회장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네, 그럼 다음에 뵙시다.”현빈이 떠나가자 하연은 고래를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빛만 봐도 할 말이 아주 많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기에 상혁이 먼저 물었다.“위 미디어를 하고 싶어?”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물론 나타난 지 얼마 안 되는 사업이지만 비전이 아주 훌륭하다고 봐요. 우리 DS 그룹에서도 한번 뛰어들고 싶어요. 그러자면 우선 연예부를 만들고 실력 있는 인플루언서를 모집하고 팀을 운영하고 또 IP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하연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대략적인 구상을 차근차근 설명했다.그러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게 제 초기 아이디어인데, 어때요?”“형태만 갖추면 바로 실시해도 좋을 것 같아.”하연은 그 말에 기쁜 듯 환호했다.“그럼 다음 주 월요일 임원 회의에서 말해볼 생각이에요. 절반 이상의 임원만 통과하면 바로 실시할 수 있으니까.”하연은 마치 새로운 방향이라도 찾은 듯 집에 도착하자마자 며칠 동안 야근하면서 계획서를 완성했다.월요일 오전 9시.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하연의 열정은 여전히 활활 타올랐고, 온 정신을 회사에 쏟아부었다.“최 사장님, 임원들 모두 회의실에 도착해 사장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태훈이 다가와 작은 소리로 보고하자 하연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알았어, 지금 바로 가지.”오늘 회의실은 유난히 떠들썩했다.그도 그럴 게, 요즘 도는 소문을 이미 들은 임원진 모두가 회의 시간 전에 도착해 있었으니까.심지어 임원 회의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 호현욱마저 도착했으니, 다들 이번 회의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9시가 다 돼가는데 최 사장은 대체 언제 온대?”“그러게 말이야. 최하민 대표가 있을 때도 우리를 이렇게 이른 시간에 부르지
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요즘 인터넷이 발전하고 있으니 쇼트폼이야말로 현재 가장 핫한 프로젝트라고 봅니다. 물론 우리 DS 그룹이 쇼트폼에 처음으로 뛰어드는 거지만 이번이 변화를 가져올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하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호현욱은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테이블 위에 내팽개쳤다.“최 사장님, 저는 동의 못 합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임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혹 무슨 문제가 있나요?”하연의 물음에 호현욱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비틀며 비아냥거렸다.“우리 DS 그룹은 첨단기술 사업을 위주로 해왔어요. 이를테면 나노로봇 기술, 의료기기, 광물 등. 이건 모두 우리가 잘하는 분야라 성적이 좋은 거지. 갑자기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겠다니, 한번 물어보고 싶네요. 성공 확률은 몇 퍼센트나 있습니까?”호현욱의 말에 다른 임원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최 사장님, 무턱대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건 너무 큰 도전입니다. 그러다 실패라도 하면 우리 회사 평판도 떨어질 겁니다.”“사장님, 이 일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세요. 무모하게 행동하지 마시고요.”“위 미디어라면 저도 별로입니다. 오히려 요즘 부동산의 발전 추세가 꽤 좋고, 집값도 계속 오르고 있는데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좋은 선택이라고 봅니다.”“정부가 요즘 신도시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던데, 땅만 차지해 건물을 짓는다면 위 미디어인지 뭔지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임원들이 너도나도 의견을 내놓자 호현욱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보는 듯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앉아 하연의 반응을 살폈다.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보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최 사장님, 다른 임원분들 의견이 좋은 듯한데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위 미디어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분야잖습니까. 차라리 정 이사님 말씀대로 건물을 짓는 게 더 수익이 높을 겁니다.”“...”사람들은 모두 하연이 이대로 물러날 거라고 확신했다.하지만
눈부신 수트 차림의 하성이 자기 매니저를 데리고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순간 회의실에 있던 임원들은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아니, 최하성이 여긴 어떻게?”“최씨 가문 셋째가 연예인이 잖나. 팬도 엄청 많아 대충 아무 계정이나 확인해 봐도 팔로워나 리트윗이 몇백만씩 되네.”“최하성이 워낙 인기 있고 팬층이 두터운 연예인이긴 하지. 그런데 여기엔 웬일이지?”“...”하성의 등장은 회의실 분위기를 바로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호현욱에게 눈빛으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물어봤다.그 순간 호현욱의 낯빛은 잿빛이 되어버렸다.그도 그럴 게, 하연이 이런 카드를 숨기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하성은 성큼성큼 하연에게 걸어가더니 하연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싱긋 웃었다.“오빠...”“응.”하성은 눈썹을 추켜 올리며 가볍게 대답하고는 하연과 나란히 서서 사람들을 바라봤다.“반가워요.”이윽고 가벼운 어투로 인사하자 임원진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최하성 배우님이 여기엔 웬일입니까? 그동안 연예계에 있어 회사 일에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그 질문에 하성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좋은 질문이네요. 오늘부터 DS 그룹에서 엔터 사업을 한다고 해서 첫 번째 연예인으로 계약하게 됐거든요.”그 말이 떨어진 순간 회의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최하성이 누군가? 월드 스타, 노래와 연기 모두 뛰어난 연예계의 최고 스타, 게다가 두터운 팬덤까지 보유한 인기 절정의 연예인이다.만약 하성이 DS 엔터에 들어온다면 아무리 새로 뛰어든 분야라도 단번에 살아날 수 있다.“그게 정말입니까?”하성은 어깨를 으쓱했다.“물론이죠. 제 매니저먼트 계약은 제 손에 있으니 DS 그룹과 계약하는 것도 제가 결정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선 DS 그룹에 연예부가 있어야 제가 들어올 수 있죠.”그 말에 사람들은 순간 이해했다.하성이 DS 그룹에 들어오는 건 순전히 하연이 하는 위 미디어를 지지해 주기 위해서라는
때문에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태도를 바꾸었다.“호 이사님은 어떠신가요?”하연이 던진 질문에 호현욱은 멋쩍게 웃으며 끝내 입을 열었다.“다들 동의한다는 건 그만큼 좋은 프로젝트라는 걸 설명하겠죠. 저도 의견 없습니다.”하연은 이 결과에 매우 만족하는 듯 눈썹을 치켜 올리며 사람들 앞에서 선포했다.“그렇다면 거수로 표결하겠습니다.”그 말이 떨어진 순간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분분히 손을 들었다.심지어 하성마저 옆에서 말을 보탰다.“저도 DS 그룹 지분을 갖고 있으니 주주나 다름없는데, 당연히 표결권이 있겠죠.”말을 마친 하성은 바로 손을 들었다.결국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동의를 얻은 하연은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과반수가 동의했으니 이번 프로젝트는 통과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오늘부로 DS 엔터가 정식으로 성립했음을 알립니다...”일순 회의실에는 열렬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회의가 끝나고 모든 사람이 회의실을 떠나자 하성은 그제야 신이 나서 하연을 바라보며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했다.“하연아, 오늘 오빠 어땠어?”“아주 멋졌어요. 오빠가 나서니까 임원들이 찍소리도 못하잖아요, 오빠가 아니었으면 이번 프로젝트가 이렇게 쉽게 진행되지 못했을 거예요.”“그럼 내가 큰 공신이겠네?”하연은 하성의 팔짱을 끼며 입꼬리를 예쁘게 말아 올렸다.“당연하죠. 그런데 정말 DS엔터랑 계약할 거예요?”“내가 농담하는 거로 보여?”하성이 하연의 이마를 콩 치며 말했다.그러자 하연은 얼른 이마를 비벼대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오빠, 아프잖아요. 그런데... 아파도 좋아요.”“못 말려 정말! 앞으로 나한테 잘해. 내가 DS 엔터의 유일한 기둥이잖아.”하연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오빠는 우리 엔터의 첫 번째 연예인인데, 모든 자원 오빠한테 몰빵할게요. 오빠 한 명만 총애할 거예요.”하성은 미소 지으며 억지로 동의한다는 듯 대답했다.“그래, 뭐. 총애를 한 몸에 받는다니 내키지는 않지만 해볼게.”“저 때문에 더
모연은 골라낸 사진을 쥐고 흔들었다.“이 사진만 잘 다듬으면 최하연이 절대 빠져나갈 수 없어요.”사진을 본 이수애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렇다면 당장 최하연을 지옥으로 보내 버려야지. 어디 한번 사생들한테 갈기갈기 찢기는 걸 지켜보자고.”“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바로 언론사 쪽에 연락할게요. 아마 오늘 저녁 이 사진들은 인터넷에 퍼질 거예요.”“흥, 그럼 너무 좋지.”아니나 다를까, 오후가 되니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은 소리 없이 인터넷에 퍼져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다.#인기 절정의 인플루언서 야밤에 재벌녀와 밀회#눈길을 끄는 타이틀은 인터넷 인기 검색어 순위를 바로 차지하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헐, 진짜야? 오승범이 CS 그룹 공주랑 만난다니!][대박. CS 그룹 아가씨가 인기 인플루언서를 좋아한다고?][오승범 팔자 너무 좋은 거 아니야? 최하연은 몸값만 조 단위인데, 진짜 출세했네.][뭐야? 울 남편이 CS 그룹 공주랑 연애한다니.][나이가 되면 누구나 다 결혼할 텐데. 둘 다 솔로면 만나는 건 자유지.][흑흑... 어떡해? 다른 사람이면 싫다고 말하겠는데 CS 그룹 공주라니까 아무 말도 못 하겠네. 행복해요~][나도. 축하해요+1][축하해요+2][축하해요+N]“...”언론인인 여은은 맨 먼저 이 소식을 접했다. 심지어 처음 봤을 때 헛것을 봤다고 생각해 다급히 눈을 비볐다. 하지만 눈도 비벼 보고 컴퓨터 새로 고침도 했지만 사진에 실린 사람이 하연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심장이 철렁해 바로 하연에게 전화했다.“하연아, 인터넷에 뜬 사진 어떻게 된 거야?”“무슨 소리야?”하연은 어리둥절해하자 여은은 설명 대신 바로 재촉했다.“얼른 인터넷 확인해 봐. 누가 너랑 오승범 사진 찍어서 밀회한다고 인터넷에 뿌렸어.”‘나랑 오승범 씨가 밀회? 뭐라는 거야?’하연은 여전히 어리둥절해 다급히 인터넷을 확인했다.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본인과 승범의 기사가 인기 검색어 1위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얼른 클릭해
상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검진을 마친 뒤, 하연은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 속 동그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요. 이게 우리 아기래요.” 목소리엔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상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엔 이미 감동이 차올라 있었다. 상혁은 조심스레 하연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무 행복해.”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남자아기일까요, 여자아기일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사랑스러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엔 별빛이 머물러 있는 듯 반짝였다. “그래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걸로 충분해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순간, 상혁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곤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화면엔 낯익은 이름이 선명히 떠 있었다. [부동건.]‘이 타이밍에...?’ ‘설마 무슨 일 생긴 건가?’ 지난 연회 이후, 부동건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혜선과 조봉규. 그 두 사람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결국, 부동건은 송혜선을 아이와 함께 본가에서 내쫓았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받아봐요. 무슨 일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은 하연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고, 그녀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부동건은 갑작스레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컥”‘피 맛...?’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고, 이성의 끈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동건의 시선이 천천히 송혜선과 조봉규를 향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너희들... 너희들...” 부동건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송혜선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그녀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부동건의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 우리, 조 선생님이랑 그냥 산후 회복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저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부동건의 손이 송혜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순간 정적. 강하게 내리친 손바닥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송혜선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눈가가 덜덜 떨리며, 눈물도 같이 맺혔다. “이 천하의... 배은망덕 같은 것. 내가 너를 어떻게 믿었는데... 감히 날 기만해?” 뒤에 서 있던 하객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였어?” “저게 진짜였네... 소문이 아니고...” “...”송혜선은 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붙잡았다. “회장님, 제발... 오해예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뿐이었어요.” 그러나 부동건은 그 손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힘껏 송혜선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송혜선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조봉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야... 지금 나섰다간 나도 끝장이야.’ 한 걸음 다가가려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회... 회장님... 저희...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 한마디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부동건은 그대로 조
일 순간 충격의 정점이었다.부동건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저... 저런 미친...!” 그는 화면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송혜선... 네가 감히!’ 주변 하객들도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야?” “부 회장님 딸이... 아니라고?” “와... 이건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미친 패륜이야, 상상도 못 했어.” 오늘의 연회는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 와선 최악의 스캔들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 연회가... 전부 거짓된 일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이야?’ ‘우리, 사기당한 거네. 다 같이.’ 그때 스크린이 멈췄고, 연회장 전체의 조명이 다시 환히 켜졌다.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부동건을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부동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몸을 떨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뭔가 일어나겠군...’ ‘이번엔 진짜 끝장이다.’ ...같은 시각, 2층 방 안. 송혜선은 조봉규의 손등을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올게.” 조봉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움켜쥐었다. “응. 기다릴게, 자기.”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문이 거칠게 흔들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송혜선! 당장 안 나와?!” 송혜선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조봉규의 팔을 꽉 잡았다. ‘망했다.’ “어떡해, 부동건이 올라왔어.” 두 사람은 당황하며 방 안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안 돼... 이렇게 들키면, 끝장이야. 정말 끝이야.’ 송혜선은 급하게 숨을 고르며 애써 이성을 붙잡으려 했다. ‘진정해. 침착해야 돼.
연회장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부동건은 손에 잔을 들고, 연신 들어오는 축하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회장님, 따님이 너무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경사는 자주 있어야죠!”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지. 오늘은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어.’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며 연회장의 분위기도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졌다. 탁! “어, 뭐야?” “불 꺼졌어! 왜 이래?” “아야, 누가 내 발 밟았어!” “...”순식간에 어둠이 덮친 연회장.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퍼졌다. 잔을 들고 있던 부동건은 순간 정지된 듯 멈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확인해봐!” “네, 회장님!” 직원들이 급히 움직였고, 부동건은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기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방 복구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순간, 연회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조용히 켜졌다. “위이잉...”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화면의 빛에 모두가 눈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빛이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가 터트린 외마디 감탄에,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헉,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스크린 안에 있는 건... 분명 두 남녀의 은밀한 장면이었다. 화면 속, 분명히 누군가를 알아본 듯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여자... 그분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는...?” “헐, 이건 진짜 레전드다.” “아, 눈 버렸어. 이게 뭐야, 이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순식간에 연회장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송혜선이 복도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꺄악!” 놀란 송혜선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야! 나야, 혜선아.” 익숙한 목소리에 송혜선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지금 제정신인 거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혜선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흘기듯 말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미쳤어,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 말엔 명백한 불만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봉규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조봉규의 시선이 송혜선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송혜선은 산후라 그런가, 몸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풍성해져 있었다. ‘이러니까, 잊으려고 해도... 더 생각이 나잖아.’ 그는 순간 충동적으로 송혜선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당황한 송혜선이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러나 조봉규는 말없이 송혜선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탁’ 하고 울렸다. 좁은 공간, 차오르는 침묵. 송혜선은 남자를 노려보며 벽에 등을 댔다. “정신 차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조봉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다들 홀에 있잖아. 아무도 몰라.” 남자의 말투엔 간절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었다. 그리움, 억눌림, 그리고 못다 한 말들. 그는 조심스럽게 송혜선의 턱선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혜선아... 나, 정말 많이 참았어.” ‘이 사람 또 이러네...’ 송혜선의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분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정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부동건이 고개를 돌리자, 최하연이 부상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등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잘생긴 남자와 우아한 여자의 조합. 누가 봐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딱 봐도 좋은 그림이야. 저 둘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길을 끌어...’ “회장님, 부상혁 대표님은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 최씨 가문의 따님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부동건의 표정이 확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부동건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좋아하는 걸, 우리 어른들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일일 뿐이지요.” “게다가 상대가 최씨 가문의 따님이라니, 정말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부동건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상혁이다. 내 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상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당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한편, 송혜선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에 띄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져 갔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하연에게 향했다. 오늘의 하연은, 나무나 예쁘고... 아니, 그냥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윤기 흐르는 머릿결,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빛까지. 하연의 행복함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송혜선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정다영... 그년, 나를 속였어.’ 그동안 하연 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려 왔다. 하지만 소식은커녕, 정다영조차 자취를 감췄다. ‘다영이 걔가 하연이에게 약 먹이는 계획이 분명 실패한 거야. 그렇지 않고 선 지금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어.’ 이대로 배가 불러오면, 섣불리 손도 쓸 수 없게 된다. ‘
이 질문에 송혜선은 눈을 반짝이며 부동건을 바라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젠 나를 당당히 소개해 줄 때가 됐겠지.’ 오늘 이 자리에서, 그녀는 부동건의 정식 아내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주변의 시선도 하나둘 송혜선과 부동건을 향했다. 모두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었다. 부동건이 과연 예전 애인을 진짜로 정실로 앉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부동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숨기거나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담백하게 말했다. “오 회장님, 이 사람은 제 딸의 어머니입니다.” 순간, 송혜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딸의... 어머니?’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금세 넘칠 듯한 와인, 애써 잡고 있는 감정. ‘지금...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툭 하고 솟구쳤다. 심지어 손에 힘이 들어가며 하얗게 질린 손등이 떨렸다. 오병지는 단번에 눈치챘고, 싱긋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고, 대신 가볍게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부 회장님, 여전히 복이 많으시네요.” 부동건은 공손하게 웃으며 송혜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엔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저와 이 사람의 결혼식엔 꼭 오셔서 축배 들어주세요.” 그 말에 송혜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결혼식...?’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수줍게 웃었다. “회장님...” 부동건은 말없이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그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시선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송혜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던 눈빛이, 지금은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결국, ‘부동건의 아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송혜선은 온
부지윤의 ‘한 달 잔치’는 그야말로 성대한 수준의 파티였다. 초대받은 인사들만 봐도, 그 위세가 느껴졌다. F국 재계의 실력자들, 정재계의 핵심 인물,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가 자제들이 대거 초청됐고, 심지어 부씨 가문 어른들에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직접 청첩장을 보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 아이를 공식적으로 가문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었다. 부동건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집착하듯 쏟고 있는지, 이날 행사 하나로 증명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동건은 스스로의 체면과 명예를 걸고, 딸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잔치 당일, 연회장은 유난히 붐볐다. 샹들리에의 조명이 화사하게 반짝였고, 고급스러움이 풍겨 나는 악단의 선율이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송혜선은 산후조리를 마친 직후였지만, 여전히 그만의 풍채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예전보다 조금 살이 오른 듯했지만, 그 덕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너그러워 보였다. 그녀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평소 자주 어울리던 재벌가 부인들이 앞다투어 다가왔다. “혜선씨는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고생 끝에 드디어 볕뜰날이 왔네요.” “부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챙기시는 거 보니까, 이제 정말 한 자리 하시겠어요.” “정말 이러다 조만간 ‘겹경사’ 나는 거 아니예요? 우리라도 미리 축하해줘야 하는 거야?” 송혜선은 그 소리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자리가 높아야 대접 받는 거야.’ “지윤이는 회장님의 첫 딸이잖아요. 그러니까 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회장님이 우리 모녀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건, 여기 있는 분들도 느끼셨을 테고요.” 그 말에 다들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이제 우리도 호칭 바꿔야지, 사모님!” 누군가 먼저 그렇게 불렀고, 뒤이어 몇몇이 장난처럼 따라 불렀다. 송혜선은 그 말에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살짝 들며, 그 호칭이 제법 익숙
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남준은 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였어요. 부씨 가문이 이 일에 개입한다면... 여론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감싸려 들면 들수록, 결국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겠죠.”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맞은편 소파에 앉은 상혁은 다리를 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세속의 먼지 따윈 전혀 묻지 않은 사람처럼. 진윤의 말이 끝났지만, 상혁의 표정엔 미동 하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씨 가문은 항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왔습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여사님.” 그는 손짓으로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거기엔 작은 검은색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안에... 고나희 씨가 남긴 게 있습니다. 여사님께 드리라고 하더군요.” 순간, 진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표정으로, USB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희가... 뭔가를 남겼다고...?’ 사고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딸의 마지막을 함께할 시간조차 없이,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유언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줄 알았다. “나희... 그 애가... 무슨 말을 남겼다는 거예요...” 진윤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은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람이 떠난 건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누군가가 반드시 전해야죠.”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거운 공기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시 후.룸 안에서 낮고,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희야...” 진윤은 USB를 손에 쥐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울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