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유진우의 손에 들린 검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안간힘을 써도 뽑히지 않던 검이 스스로 튀어나와 유진우의 손에 들어갈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유진우는 애초에 검을 만지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손가락 두 개를 까딱한 게 다였다. 그런데 검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갑자기 튀어나와 유진우의 손에 들어갔다.대체 왜?‘젖 먹던 힘을 써도 뽑히지 않던 검이었는데, 왜 유진우의 손짓 하나에 스스로 튀어나왔을까? 차별 대우? 인종차별? 우린 사람도 아니다 이건가?’“이, 이럴 리 없어. 어떻게 이렇게 쉽게 해결한 거야?”심호중이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다.‘사부님도 뽑지 못한 검이었는데, 왜 유진우의 손짓 하나에 해결된 거지? 어떻게 된 거야?’“헐,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저절로 튀어나온 거야?”한예슬이 침을 꿀꺽 삼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검이 정말 사람을 가리기라도 하는 거야?”심연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대... 대체 어떻게 한 거야?”한중섭이 평정심을 잃고 인상을 썼다. 자신은 안 되는데 왜 유진우는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유진우보다 못하다는 건가?“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손짓하니 오던데요.”유진우는 손의 검을 쳐다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검을 잘 다뤘지만 자주 쓰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검은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검은 달랐다. 마치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검인 것처럼 튼튼하고 날카로웠다. 심지어 그 검에서 무시무시한 힘을 느낄 수도 있었다.“확실히 괜찮네.”유진우는 웃으며 검을 쓰다듬었다.“축하해요. 검이 사람을 가리나 보네요.”심연수가 웃으며 축하를 건넸다. 이때 한중섭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잠깐! 젊은이, 이 검을 지니고 있으면 큰일이 날 거야. 내가 대신 보관해 주지, 어떻나?”“네? 아, 괜찮습니다. 저와 인연이 깊은 검이기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자네를
이 늙은이는 이익에 눈이 멀어 검을 가로채려 하고 있다.“젊은이,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난 지금 자네 의견을 묻는 게 아니야. 이 검은 자네한테 어울리지 않아. 내게 넘기는 게 자네한테도 좋을 거야.”“지금 절 협박하시는 건가요?”“충고하는 거야. 자넨 아직 젊고, 기회도 많잖아. 고작 검 한 자루를 위해 자네 미래를 포기할 순 없지. 안 그래?”한중섭이 계속 부추겼다. 그는 반드시 이 검을 가져와야만 했다. 체면만 아니었으면 이미 빼앗았을 것이다.“사부님, 이 검은 사람을 가리는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심연수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정직했던 사부님이 검 한 자루를 위해 이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닥쳐! 네까짓 게 뭘 알아? 이 검은 원래부터 주인 없는 물건이었어. 가지는 사람이 임자야!”“아빠! 하지만 이 검은 이미 진우 오빠가 가졌는데, 이렇게 빼앗아도 되는 거예요?”한예슬이 화가 난 듯 물었다.“고얀 놈! 넌 내 딸인데, 왜 다른 사람 편을 드는 거야?”“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에요! 진우 오빠가 저흴 구해줬는데, 아직 보답도 못했단 말이에요.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한 것 같아요!”“흥! 우리가 저자를 데려오지 않았으면 보물을 보지도 못했을 거잖아! 그리고 검 한 자루만 달라는 게 뭐 어때서? 나중에 다른 보물을 찾으면 먼저 고르라고 하면 될 거 아니야?”“하지만...”“됐어! 난 이 검이 마음에 무척 들어. 어떻게 되든 꼭 얻어내고 말 거야!”“제가 싫다면요?”유진우가 차갑게 물었다.“안 주겠다는 거야? 그럼 미안하게 됐네!”한중섭이 크게 외쳤다. 강한 에너지가 그의 몸에서 폭발해 사나운 맹수처럼 이빨을 드러냈다.“잠깐!”이때 한예슬이 유진우의 앞을 막아섰다.“아빠! 진우 오빠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죽이려거든 먼저 절 죽여요!”“나쁜 년! 당장 꺼져!”한중섭이 급히 외쳤다. 딸 키워봤자 좋을 거 없다더니.“아빠! 은혜를 원수로 갚지 말라고 하셨잖아요!”한예슬은 입술을 깨물고
“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뽑아봐요.”유진우는 더 이상 말하기도 싫다는 듯 검을 원위치에 돌려놓고는 문으로 걸어갔다. 총 세 개의 돌 문이 있었는데, 아무 문이나 골라 열고 들어갔다.심연수와 한예슬을 봐서 더 이상 따지지 않고 흩어진 것이었다. 어차피 한중섭은 검을 뽑지 못하니, 원래 자리에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검은 꽃무릇이었다. 그걸 찾고 다시 검을 가지러 와도 시간은 충분했다.“자식! 거기 멈춰!”유진우가 떠나려 하자 한중섭은 그를 공격하려는 듯 손을 치켜들었다.“그만해요!”한예슬이 다시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한중섭이 깜짝 놀라 손을 내리고는 유진우 일행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지켜보았다.“나쁜 년! 감히 외간 사람 편을 들어? 멍청하긴!”한중섭이 가슴을 퍽퍽 치며 아쉬움을 표했다. 대체 왜 이러지?“아빠! 보물도 물론 중요하지만, 양심을 저버리면 안 되죠!”“너...”한중섭이 손을 들어 한예슬을 때리려 하다 결국 천천히 손을 내렸다.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뿐인데, 어떻게 때릴 수 있겠는가?심호중이 조심스레 물었다.“사부님, 그 자식은 갔지만 검은 아직 여기 있어요. 다시 한번 해보는 건 어때요?”“흥! 그 자식만 검을 뽑을 수 있을 리 없어!”한중섭이 이를 악물고는 칼자루를 꽉 쥐고 힘껏 위로 당겼다. 하지만 검은 유진우에게 반응할 때와는 달리 꼼짝하지 않았다.“쓰레기 같은 것! 널 없애버릴 거야!”몇 번의 시도 끝에 인내심이 바닥난 한중섭이 칼자루를 힘껏 내리쳤다.펑!굉음이 울렸다. 한중섭은 정체 모를 힘에 부딪쳐 몇 걸음 물러났다. 이어 팔이 저릿해졌다.뽑지도 부수지도 못하는 검이라니, 한중섭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조금 진정한 뒤 그는 제자 두 명을 남겨 자리를 지키게 하고는 사람들을 이끌고 다른 돌 문을 열었다.계속 이러고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어쩌면 다른 곳에 더 좋은 보물이 있을 수도 있었다.“아저씨, 그 노인네 너무 못됐어요.
황은아가 물었다.“아저씨, 저흰 인여궁 제자가 아닌데, 그래도 절해야 해요?”“예는 갖춰야지.”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인에 대한 존중은 필수였다.“네.”황은아는 짧게 대답하고는 관 앞에서 세 번 깊이 절했다.콰르릉!이때 석판이 흔들리더니 천천히 밑으로 내려앉다가 사라졌다. 동시에 정교한 나무상자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아저씨! 여기 뭔가 있어요!”황은아는 눈을 반짝이며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금색 구슬이 들어있었는데, 몹시도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 안의 금색 액체는 자동으로 돌아가며 회오리처럼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헐! 천영 구슬이야?”설연홍이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언제나 담담하던 유진우도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상자 안의 물건이 말로만 듣던 무림계의 보물, 천영 구슬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천영 구슬? 그게 뭔데요?”황은아가 고개를 갸웃했다.‘그냥 예쁜 구슬 아니야? 이렇게 놀랄 것까지야 있어?’설연홍이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은아야! 이건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거야! 천영 구슬은 무림계의 3대 보물 중 하나야, 이거 하나 가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 이 구슬의 가장 큰 효능은 수련 속도를 올려주는 거야, 그것도 열 배, 백 배씩이나! 이것만 있으면 아무 능력 없는 사람도 최고의 무사가 될 수 있어! 물론 천재가 이 구슬을 가진다면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지. 천영 구슬이 세상에 나타난다면 이걸 차지하기 위한 피바람이 몰아칠 거야!”설연홍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것만 있으면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었다! 누가 탐내지 않겠는가?“네? 그 정도예요?”황은아가 놀란 듯 물었다. 장신구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좋은 물건일 줄이야.“은아야, 잘 들어.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는 나도 못 책임져!”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런 보물은 그에게도 유혹적인 존재였다.“아저씨, 이건 너무 귀중해요. 아저씨가 갖고 있는 게 낫겠어요.”황은아는 무서운 듯 천영
“둘 다 안 가질 거면, 나 주지 그래요?”두 사람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설연홍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만에 하나 정말 그녀에게 준다면?“저리 가요!”유진우는 고개를 돌려 설연홍을 째려보고는 천영 구슬을 억지로 황은아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잘 가지고 있어. 이건 네 물건이야. 계속 양보하면 정말 화낼 거야!”“음... 그럼 그렇게 하죠. 얼마간 쓰고 다시 돌려줄게요.”황은아는 망설임 끝에 구슬을 몸에 지니는 쪽을 택했다. 자신이 강해지면 유진우에게도 더욱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었다.천영 구슬이 피부에 닿자, 그녀는 시원한 기운이 몸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 기운은 그녀의 단전에 흘러들어 힘을 강화하고 있었다.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능력이 강화될 것이었다. 놀라운 속도였다!“됐어. 먼저 검은 꽃무릇을 찾아보자.”유진우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사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 묘실에는 무기, 비법서, 특이한 장신구 등 보물이 많이 숨겨져 있었다. 아무 물건 하나만 가지고 나가도 여생을 풍족하게 살 수 있을 터였다.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유진우의 관심 밖이었다. 오히려 설연홍이 보물에 정신이 팔려있었다.묘실을 모두 뒤졌는데도 그들은 검은 꽃무릇을 발견하지 못했다. 뒤질 곳은 이제 청동관 안쪽만 남았다.“선배님, 실례합니다!”유진우는 관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인 뒤 관뚜껑을 힘껏 밀었다.끼익!금속 마찰음과 함께 관이 천천히 열리며 먼지가 날렸다. 유진우는 관 안쪽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안에는 화려한 차림을 한 남자 시체가 들어있었다. 시체의 가슴 쪽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었는데, 검은색의 꽃잎 주위로 음산한 빛이 맴돌았다. 신비하고 처량했지만, 너무도 아름다웠다. 한 번 보아도 금세 매혹될 것 같은 게,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았다.이 꽃이 바로 유진우가 애타게 찾던 검은 꽃무릇이었다!“역시 여기 있었어!”유진우의 안색이 밝아지며 호흡이 저도 모르게 가빠졌다. 이 꽃만 있으면 조선
황은아는 깜짝 놀라 급히 설연홍의 뒤에 숨어 몸을 덜덜 떨었다. 담력이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유독 귀신은 무서워했다.“누구십니까?”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굳은 얼굴로 물었다. 급습이었지만 그를 물러서게 했다는 것은 상대의 실력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았다. 이 사람은 아마 대 마스터일 것이었다!“여긴 내 묘인데, 내가 누구일 것 같아?”인영 주변의 안개가 천천히 걷히더니 동안의 얼굴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아름다운 외모의 여자였다. 비록 백발이 성성했지만, 얼굴은 젊은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의 두 눈만이 모든 것을 읽었다는 듯 빛나고 있었다.유진우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당신의 묘라고요? 설마 당신이... 고영은 선배님?”“고영은!”그 말을 들은 황은아와 설연홍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고영은은 50년 전에 죽은 거 아닌가? 왜 아직 살아있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내 명성을 알고도 감히 묘를 파러 오다니, 죽고 싶은 거야?”고영은의 말은 담담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힘이 있었다.유진우가 해명했다.“선배님, 그게 아니라, 검은 꽃무릇을 구하러 왔습니다. 급히 살릴 사람이 있어서요.”“그렇게 귀중한 물건을 내가 왜 너희들에게 줘야 해?”“조건이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조건? 하, 내 남편을 살려주면 이 꽃을 줄게.”“너무하시네요. 죽은 사람을 무슨 수로 살려냅니까?”유진우가 옅게 인상을 썼다. 관 속의 사람은 뼈만 남은 시체였다. 그 누가 와도 살려낼 수 없었다.“그래, 잘 아네. 죽은 사람은 못 살려내. 그럼, 꽃무릇을 가지겠다는 건 접어두고 그만 가. 예의 있게 행동한 걸 봐서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선배님! 저희는 꼭 꽃무릇을 가져가야 합니다!”“그래? 그럴 능력은 있고?”“한 번 해보겠습니다.”“죽는 게 무섭지도 않나 봐?”“죽어도 꽃무릇은 가져가고 죽을 겁니다!”“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고영은은 화가 난 듯 훌쩍 뛰어올라 유진우를 내리쳤다.
휙!유진우가 강제로 경지를 돌파할 때, 고영은의 주먹은 이미 유진우의 앞에 다다랐다. 유진우는 피할 틈도 없이 주먹을 뻗어 수비하는 수밖에 없었다.펑!두 주먹이 맞닿을 때, 유진우는 저 멀리 튕겨가 벽에 부딪혔다. 묘실 전체가 흔들리며 돌들이 떨어졌다.“풉!”유진우가 창백한 얼굴로 시뻘건 피를 뿜어냈다.“아저씨!”황은아가 그를 도우려 했지만 설연홍에게 저지당했다. 이 정도 급의 전투에 그들이 낄 자리는 없었다.고영은은 50년 전 이미 천하를 제패했다. 오랜 시간의 수련을 거친 지금은 더욱더 대적할 자가 없었다.이런 실력자에 맞선 유진우가 당장에 맞아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일이었다.“실력은 괜찮네, 단 한 가지 아쉽다면 너무 젊어. 그만 가, 나도 널 죽이고 싶지 않아.”고영은이 담담하게 말했다.20대의 나이에 이 정도 실력을 갖춘 것도 이미 엄청난 일이었다. 20대 시절의 고영은에게는 절대 밀리지 않을 실력이었다.“쿨럭...”유진우는 기침을 토해내며 안간힘을 다해 기어 나왔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실력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비밀 기술을 동원해 억지로 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하더라도 고영은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그녀와 맞설 능력조차 없었다.“꼭, 검을 꽃무릇을 가져갈 겁니다.”유진우는 입가의 피를 닦고는 비틀거리며 걸어갔다.“이래봤자 죽기밖에 못 해!”고영은이 차가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제게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유진우는 조금도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고집스러운 눈빛이 청동관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어리석긴!”고영은이 다시 한번 손을 내리쳤다.훅!금색의 손자국이 엄청난 힘을 싣고 유진우의 몸을 가격했다.펑!유진우는 다시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그는 다시 피를 뿜어냈다. 치명타를 두 번씩이나 맞은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유진우는 이를 악물고 애써 몸을 세우고는 휘청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피로 얼룩진 발자국이 새겨
유진우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다시 땅에 처박혔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괴이한 호선을 그렸다.“아저씨!”황은아는 붉어진 두 눈으로 처량하게 유진우를 불렀다. 그녀의 얼굴은 분노와 슬픔으로 얼룩졌다. 당장이라도 가서 그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설연홍이 그녀를 단단히 끌어안은 탓에 이 광경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조금만... 조금만 더... 선미 씨가 날 기다리는데... 여기서 쓰러지면 안 돼!”유진우는 이를 악물고 휘청거리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폭풍우 속의 촛불처럼 언제 어디서든 쓰러질 것 같았다.“아저씨! 그만해요! 꽃무릇 필요 없어요. 이대로 가다간 아저씨 정말 죽어요!”황은아가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유진우는 이제 정말 한계였다. 한 번만 더 맞았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뚝, 뚝, 뚝...유진우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휘청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끊임없이 땅에 떨어지는 피가 마치 꽃처럼 번졌다.“유진우 씨! 그만해요! 여자 한 명 때문에 이러는 거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이 죽으면 그 여자도 못 살 거예요!”설연홍이 소리쳤다. 그녀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유진우를 이해할 수도 없었다. 세상에 정말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있단 말인가?그녀는 유진우의 눈빛에 감동되었다. 조선미를 질투하기도 했다. 그녀를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왜? 왜 이렇게 죽으려고 하는 건데?”고영은은 복잡한 표정으로 인상을 썼다. 유진우의 의지력은 정말 박수칠 만 했다. 특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이 보이기도 했다.“꽃무릇... 꽃무릇을 가질 겁니다... 그 사람을 꼭 구할 거예요!”유진우가 중얼거렸다. 그의 발걸음은 힘겨웠지만 강인했다. 죽지만 않는다면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고영은이 멍해졌다. 유진우의 고집에서 그녀는 오래 전의 자신을 보아냈다.그 시절 그녀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않았던가?하지만 그 결과는 어땠던가? 그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