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섭이 도발하자 유진우도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제자가 되든 말든 그건 개인의 뜻이지, 강요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그리고 고작 반보 마스터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유진우의 사부가 되겠다는 거지?“사부님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데 진우 씨가 내키지 않을 리가 있겠어요? 아직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가 봐요. 시간 좀 더 주면 어떨까요? 사부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알게 되면 알아서 사부님으로 모실 겁니다.”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심연수가 재빨리 나서서 수습했다.“네, 아빠. 지금 중요한 건 제자를 들이는 게 아니라 보물이에요. 중요한 일을 그르쳐선 안 되죠.”한예슬도 나서서 말렸다. 아쉽긴 했지만 유진우를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괜히 강요했다가 사이만 틀어지면 큰일이니까.“젊은이, 그럼 생각할 시간 3일 줄게. 3일 내로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날 찾아와도 좋아. 하지만 3일이 지난다면 아무리 빌어도 쳐다도 안 볼 테니까 알아서 해.”말을 마친 한중섭은 뒷짐을 지고 묘의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고영은의 묘였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 때문에 기분을 망쳐선 안 되었다.“흥! 당신 인생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바로 우리 사부님을 거절한 일일 거야. 언젠가는 후회할 테니까 두고 봐.”심호중은 한마디 던진 후 벽하파 제자들과 함께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벼락출세할 절호의 기회였지만 제 발로 차버린 유진우가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다.“진우 씨, 우리 사부님 성격이 좀 직설적이에요.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심연수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제자로 들이냐 마냐 하는 것 때문에 하마터면 사이가 틀어질 뻔했다.“괜찮아요. 별일도 아닌데요, 뭐.”유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됐어요. 지나간 일은 지나간 거고 다시는 꺼내지 말자고요. 이만 들어갑시다. 저 안에 대체 무슨 보물이 있는지 보러 가요.”한예슬은 기대하면서도 떨렸다.“진우 씨, 가요.”심연수는 웃으면서 일행과 함께 따라나섰
그의 힘으로 봐서 몇천 근쯤 드는 건 아무 문제도 없겠는데, 어떻게 검 한 자루도 못 뽑지?“다시 해봐.”한중섭이 재촉했다. 명철은 주저 없이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칼자루를 잡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팔에는 힘줄이 불끈 솟아났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명철이 땀투성이가 돼 말했다.“사부님, 못 해요. 전 못 뽑아요.”“쓸데없는 놈! 검 한 자루도 못 뽑다니, 비켜! 내가 할게.”심호중이 더는 못 보겠다는 듯 앞으로 걸어 나와 명철을 떠밀고 손바닥에 침을 뱉어 힘껏 비볐다. 준비동작이 끝나자, 그는 두 손으로 칼자루를 단단히 잡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온몸의 진기를 끌어모아 힘껏 위로 당겼다.하지만 검은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젠장! 이럴 리 없어!”심호중은 인상을 구기고는 포기하지 않고 몇 번 더 뽑아보았다. 하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칼은 산과 한 몸이 된 듯 그저 고요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심호중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뭇거리며 말했다.“사부님, 검이 좀 이상해요, 뽑히지 않아요. 사부님이 직접 하셔야겠는데요.”“흥! 검 한 자루도 못 뽑다니, 밖에 나가선 내 제자라고 하지 마, 창피해서 원!”한중섭이 굳은 표정으로 뒷짐을 지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는 검을 에워싸고 한 바퀴 빙 돌고는 별다른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한쪽 손을 뻗어 칼자루를 잡고 위로 당겼다.검은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응?”한중섭이 옅게 인상을 쓰며 계속 힘주어 당겼지만 검은 여전히 뽑히지 않았다.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망신을 당하기 싫었던 한중섭은 결국 두 손으로 칼자루를 단단히 잡고 몸을 구부렸다.“뽑혀라!”한중섭의 고함과 함께 그의 몸에서 진기가 폭발했다.콰르릉!땅이 울리더니 돌 몇 개가 떨어지며 먼지를 일으켰다. 지진이라도 난 듯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감히 날 업신여기다니!”한중섭은 이를
사람들은 유진우의 손에 들린 검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안간힘을 써도 뽑히지 않던 검이 스스로 튀어나와 유진우의 손에 들어갈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유진우는 애초에 검을 만지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손가락 두 개를 까딱한 게 다였다. 그런데 검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갑자기 튀어나와 유진우의 손에 들어갔다.대체 왜?‘젖 먹던 힘을 써도 뽑히지 않던 검이었는데, 왜 유진우의 손짓 하나에 스스로 튀어나왔을까? 차별 대우? 인종차별? 우린 사람도 아니다 이건가?’“이, 이럴 리 없어. 어떻게 이렇게 쉽게 해결한 거야?”심호중이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다.‘사부님도 뽑지 못한 검이었는데, 왜 유진우의 손짓 하나에 해결된 거지? 어떻게 된 거야?’“헐,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저절로 튀어나온 거야?”한예슬이 침을 꿀꺽 삼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검이 정말 사람을 가리기라도 하는 거야?”심연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대... 대체 어떻게 한 거야?”한중섭이 평정심을 잃고 인상을 썼다. 자신은 안 되는데 왜 유진우는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유진우보다 못하다는 건가?“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손짓하니 오던데요.”유진우는 손의 검을 쳐다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검을 잘 다뤘지만 자주 쓰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검은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검은 달랐다. 마치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검인 것처럼 튼튼하고 날카로웠다. 심지어 그 검에서 무시무시한 힘을 느낄 수도 있었다.“확실히 괜찮네.”유진우는 웃으며 검을 쓰다듬었다.“축하해요. 검이 사람을 가리나 보네요.”심연수가 웃으며 축하를 건넸다. 이때 한중섭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잠깐! 젊은이, 이 검을 지니고 있으면 큰일이 날 거야. 내가 대신 보관해 주지, 어떻나?”“네? 아, 괜찮습니다. 저와 인연이 깊은 검이기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자네를
이 늙은이는 이익에 눈이 멀어 검을 가로채려 하고 있다.“젊은이,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난 지금 자네 의견을 묻는 게 아니야. 이 검은 자네한테 어울리지 않아. 내게 넘기는 게 자네한테도 좋을 거야.”“지금 절 협박하시는 건가요?”“충고하는 거야. 자넨 아직 젊고, 기회도 많잖아. 고작 검 한 자루를 위해 자네 미래를 포기할 순 없지. 안 그래?”한중섭이 계속 부추겼다. 그는 반드시 이 검을 가져와야만 했다. 체면만 아니었으면 이미 빼앗았을 것이다.“사부님, 이 검은 사람을 가리는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심연수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정직했던 사부님이 검 한 자루를 위해 이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닥쳐! 네까짓 게 뭘 알아? 이 검은 원래부터 주인 없는 물건이었어. 가지는 사람이 임자야!”“아빠! 하지만 이 검은 이미 진우 오빠가 가졌는데, 이렇게 빼앗아도 되는 거예요?”한예슬이 화가 난 듯 물었다.“고얀 놈! 넌 내 딸인데, 왜 다른 사람 편을 드는 거야?”“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에요! 진우 오빠가 저흴 구해줬는데, 아직 보답도 못했단 말이에요.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한 것 같아요!”“흥! 우리가 저자를 데려오지 않았으면 보물을 보지도 못했을 거잖아! 그리고 검 한 자루만 달라는 게 뭐 어때서? 나중에 다른 보물을 찾으면 먼저 고르라고 하면 될 거 아니야?”“하지만...”“됐어! 난 이 검이 마음에 무척 들어. 어떻게 되든 꼭 얻어내고 말 거야!”“제가 싫다면요?”유진우가 차갑게 물었다.“안 주겠다는 거야? 그럼 미안하게 됐네!”한중섭이 크게 외쳤다. 강한 에너지가 그의 몸에서 폭발해 사나운 맹수처럼 이빨을 드러냈다.“잠깐!”이때 한예슬이 유진우의 앞을 막아섰다.“아빠! 진우 오빠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죽이려거든 먼저 절 죽여요!”“나쁜 년! 당장 꺼져!”한중섭이 급히 외쳤다. 딸 키워봤자 좋을 거 없다더니.“아빠! 은혜를 원수로 갚지 말라고 하셨잖아요!”한예슬은 입술을 깨물고
“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뽑아봐요.”유진우는 더 이상 말하기도 싫다는 듯 검을 원위치에 돌려놓고는 문으로 걸어갔다. 총 세 개의 돌 문이 있었는데, 아무 문이나 골라 열고 들어갔다.심연수와 한예슬을 봐서 더 이상 따지지 않고 흩어진 것이었다. 어차피 한중섭은 검을 뽑지 못하니, 원래 자리에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검은 꽃무릇이었다. 그걸 찾고 다시 검을 가지러 와도 시간은 충분했다.“자식! 거기 멈춰!”유진우가 떠나려 하자 한중섭은 그를 공격하려는 듯 손을 치켜들었다.“그만해요!”한예슬이 다시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한중섭이 깜짝 놀라 손을 내리고는 유진우 일행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지켜보았다.“나쁜 년! 감히 외간 사람 편을 들어? 멍청하긴!”한중섭이 가슴을 퍽퍽 치며 아쉬움을 표했다. 대체 왜 이러지?“아빠! 보물도 물론 중요하지만, 양심을 저버리면 안 되죠!”“너...”한중섭이 손을 들어 한예슬을 때리려 하다 결국 천천히 손을 내렸다.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뿐인데, 어떻게 때릴 수 있겠는가?심호중이 조심스레 물었다.“사부님, 그 자식은 갔지만 검은 아직 여기 있어요. 다시 한번 해보는 건 어때요?”“흥! 그 자식만 검을 뽑을 수 있을 리 없어!”한중섭이 이를 악물고는 칼자루를 꽉 쥐고 힘껏 위로 당겼다. 하지만 검은 유진우에게 반응할 때와는 달리 꼼짝하지 않았다.“쓰레기 같은 것! 널 없애버릴 거야!”몇 번의 시도 끝에 인내심이 바닥난 한중섭이 칼자루를 힘껏 내리쳤다.펑!굉음이 울렸다. 한중섭은 정체 모를 힘에 부딪쳐 몇 걸음 물러났다. 이어 팔이 저릿해졌다.뽑지도 부수지도 못하는 검이라니, 한중섭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조금 진정한 뒤 그는 제자 두 명을 남겨 자리를 지키게 하고는 사람들을 이끌고 다른 돌 문을 열었다.계속 이러고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어쩌면 다른 곳에 더 좋은 보물이 있을 수도 있었다.“아저씨, 그 노인네 너무 못됐어요.
황은아가 물었다.“아저씨, 저흰 인여궁 제자가 아닌데, 그래도 절해야 해요?”“예는 갖춰야지.”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인에 대한 존중은 필수였다.“네.”황은아는 짧게 대답하고는 관 앞에서 세 번 깊이 절했다.콰르릉!이때 석판이 흔들리더니 천천히 밑으로 내려앉다가 사라졌다. 동시에 정교한 나무상자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아저씨! 여기 뭔가 있어요!”황은아는 눈을 반짝이며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금색 구슬이 들어있었는데, 몹시도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 안의 금색 액체는 자동으로 돌아가며 회오리처럼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헐! 천영 구슬이야?”설연홍이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언제나 담담하던 유진우도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상자 안의 물건이 말로만 듣던 무림계의 보물, 천영 구슬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천영 구슬? 그게 뭔데요?”황은아가 고개를 갸웃했다.‘그냥 예쁜 구슬 아니야? 이렇게 놀랄 것까지야 있어?’설연홍이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은아야! 이건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거야! 천영 구슬은 무림계의 3대 보물 중 하나야, 이거 하나 가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 이 구슬의 가장 큰 효능은 수련 속도를 올려주는 거야, 그것도 열 배, 백 배씩이나! 이것만 있으면 아무 능력 없는 사람도 최고의 무사가 될 수 있어! 물론 천재가 이 구슬을 가진다면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지. 천영 구슬이 세상에 나타난다면 이걸 차지하기 위한 피바람이 몰아칠 거야!”설연홍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것만 있으면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었다! 누가 탐내지 않겠는가?“네? 그 정도예요?”황은아가 놀란 듯 물었다. 장신구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좋은 물건일 줄이야.“은아야, 잘 들어.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는 나도 못 책임져!”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런 보물은 그에게도 유혹적인 존재였다.“아저씨, 이건 너무 귀중해요. 아저씨가 갖고 있는 게 낫겠어요.”황은아는 무서운 듯 천영
“둘 다 안 가질 거면, 나 주지 그래요?”두 사람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설연홍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만에 하나 정말 그녀에게 준다면?“저리 가요!”유진우는 고개를 돌려 설연홍을 째려보고는 천영 구슬을 억지로 황은아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잘 가지고 있어. 이건 네 물건이야. 계속 양보하면 정말 화낼 거야!”“음... 그럼 그렇게 하죠. 얼마간 쓰고 다시 돌려줄게요.”황은아는 망설임 끝에 구슬을 몸에 지니는 쪽을 택했다. 자신이 강해지면 유진우에게도 더욱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었다.천영 구슬이 피부에 닿자, 그녀는 시원한 기운이 몸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 기운은 그녀의 단전에 흘러들어 힘을 강화하고 있었다.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능력이 강화될 것이었다. 놀라운 속도였다!“됐어. 먼저 검은 꽃무릇을 찾아보자.”유진우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사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 묘실에는 무기, 비법서, 특이한 장신구 등 보물이 많이 숨겨져 있었다. 아무 물건 하나만 가지고 나가도 여생을 풍족하게 살 수 있을 터였다.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유진우의 관심 밖이었다. 오히려 설연홍이 보물에 정신이 팔려있었다.묘실을 모두 뒤졌는데도 그들은 검은 꽃무릇을 발견하지 못했다. 뒤질 곳은 이제 청동관 안쪽만 남았다.“선배님, 실례합니다!”유진우는 관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인 뒤 관뚜껑을 힘껏 밀었다.끼익!금속 마찰음과 함께 관이 천천히 열리며 먼지가 날렸다. 유진우는 관 안쪽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안에는 화려한 차림을 한 남자 시체가 들어있었다. 시체의 가슴 쪽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었는데, 검은색의 꽃잎 주위로 음산한 빛이 맴돌았다. 신비하고 처량했지만, 너무도 아름다웠다. 한 번 보아도 금세 매혹될 것 같은 게,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았다.이 꽃이 바로 유진우가 애타게 찾던 검은 꽃무릇이었다!“역시 여기 있었어!”유진우의 안색이 밝아지며 호흡이 저도 모르게 가빠졌다. 이 꽃만 있으면 조선
황은아는 깜짝 놀라 급히 설연홍의 뒤에 숨어 몸을 덜덜 떨었다. 담력이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유독 귀신은 무서워했다.“누구십니까?”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굳은 얼굴로 물었다. 급습이었지만 그를 물러서게 했다는 것은 상대의 실력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았다. 이 사람은 아마 대 마스터일 것이었다!“여긴 내 묘인데, 내가 누구일 것 같아?”인영 주변의 안개가 천천히 걷히더니 동안의 얼굴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아름다운 외모의 여자였다. 비록 백발이 성성했지만, 얼굴은 젊은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의 두 눈만이 모든 것을 읽었다는 듯 빛나고 있었다.유진우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당신의 묘라고요? 설마 당신이... 고영은 선배님?”“고영은!”그 말을 들은 황은아와 설연홍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고영은은 50년 전에 죽은 거 아닌가? 왜 아직 살아있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내 명성을 알고도 감히 묘를 파러 오다니, 죽고 싶은 거야?”고영은의 말은 담담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힘이 있었다.유진우가 해명했다.“선배님, 그게 아니라, 검은 꽃무릇을 구하러 왔습니다. 급히 살릴 사람이 있어서요.”“그렇게 귀중한 물건을 내가 왜 너희들에게 줘야 해?”“조건이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조건? 하, 내 남편을 살려주면 이 꽃을 줄게.”“너무하시네요. 죽은 사람을 무슨 수로 살려냅니까?”유진우가 옅게 인상을 썼다. 관 속의 사람은 뼈만 남은 시체였다. 그 누가 와도 살려낼 수 없었다.“그래, 잘 아네. 죽은 사람은 못 살려내. 그럼, 꽃무릇을 가지겠다는 건 접어두고 그만 가. 예의 있게 행동한 걸 봐서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선배님! 저희는 꼭 꽃무릇을 가져가야 합니다!”“그래? 그럴 능력은 있고?”“한 번 해보겠습니다.”“죽는 게 무섭지도 않나 봐?”“죽어도 꽃무릇은 가져가고 죽을 겁니다!”“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고영은은 화가 난 듯 훌쩍 뛰어올라 유진우를 내리쳤다.
그 무엇보다도 배신이 가져온 심리적 충격이 가장 컸다. “유장혁 씨, 제가 한 가지 충고하겠어요. 말라죽은 낙타가 말보다 크다고 하잖아요. 호룡각이 비록 큰 타격을 입었지만 남은 잔당들 역시 여전히 강력한 세력입니다. 절대 방심하면 안 됩니다.” 이청성은 엄중한 말투로 말했다. “알고 있어요.” 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할 겁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제가 혼수상태에 있던 이 사흘 동안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유진우가 다시 물었다. “당신 말에 생각난 게 있네요.” 이청성은 무언가 떠올린 듯 말했다. “황실 정보에 따르면 최근 호룡각 잔당들이 연경을 떠난 것 같아요. 그들이 운영하던 은밀한 사업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하더군요.” “연경을 떠났다고요? 어디로 갔죠?” 유진우는 다급히 물었다.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판단해 보면 호룡각 잔당들은 서경으로 향한 것 같아요.” 이청성이 말했다. “서경?” 유진우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설마 서경왕부를 노리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겠어요! 지금 바로 서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상처가 땅겨 아팠고 이내 숨을 들이켰다. “움직이지 말아요!” 이청성은 그의 어깨를 눌렀다. “지금 당신은 원기가 크게 손상됐고 관통상을 입었어요. 비록 제가 옥로고를 발라줬지만 완전히 회복하려면 며칠 더 쉬어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호룡각은 이미 준비를 마쳤을 테니 이번 서경행에는 큰 음모가 있을 거예요. 반드시 그들을 막아야 합니다!” 유진우는 단호히 말했다. “지금 당신 상태로 어떻게 막으려는 건가요?” 이청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채원진의 실력은 깊이를 알 수 없고 곁에는 강력한 고수들이 있어요. 당신이 전성기라 해도 그들을 막기 어렵겠죠. 지금처럼 부상 중인 상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 채 유진우는 점차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그의 상반신은 두꺼운 붕대로 감겨 있었고 팔다리는 무겁고 힘이 없었으며 숨결 또한 매우 약했다. “나 안 죽었나?” 유진우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방 안의 환경을 둘러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 와본 적이 있는 곳 같았다. “깨어났군요?” 이때, 이청성이 맑은 죽 한 그릇을 들고 천천히 방으로 들어왔다. “당신 부상이 심각했지만 기초 체력이 좋아 다행히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구했나요?” 유진우는 놀란 기색을 띠며 물었다. “그럼 누구겠어요?” 이청성은 담담히 대답했다. “전에 내가 준 호신 부적이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의 심맥을 지켜주고 강력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줬어요. 덕분에 당신을 저승 문턱에서 끌어낼 수 있었죠.” “그 호신 부적에 그런 기적 같은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런 귀한 물건, 혹시 남은 거 없나요? 두어 개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유진우는 뻔뻔스럽게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 최근 그의 상황이 너무 위험했다. 강적을 만나지 않으면 가까운 주변에서 내통자가 나오기 일쑤였다. 며칠 만에 몇 번이나 생사를 오갔으니 목숨을 지킬 보물이 간절히 필요했다. “흥! 당신은 그걸 장바구니에 들어 있는 배추쯤으로 아는 건가요? 있다고 쉽게 줄 수 있는 물건인 줄 알아요?” 이청성은 짜증 섞인 말투로 답했다. “호신 부적 하나를 만들려면 제가 10년의 수명을 소모해야 해요. 게다가 호신 부적이 파괴되면 저도 그만큼 부상을 입어요. 지금껏 제 생에 단 두 사람에게만 호신 부적을 준 적 있습니다. 한 사람은 우리 아바마마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10년 수명을 소모한다고요? 그렇게 귀한 건가요?” 유진우는 깜짝 놀랐다. 수명을 대가로 만든 보물은 확실히 범상치 않았지만 동시에 위험성도 매우 컸다. 특히 이처럼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지는 소모품이라면 그 가치가 더욱 어마어마했다. “제가 농담하는 줄 알았어
놀랍게도 그는 바로 유진우에게 중상을 입은 사철수였다. “사 장로님, 부상당하셨습니까?” 용좌에 앉아 있던 가면을 쓴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쉰 듯한 음색이었다. “작은 부상입니다. 죽지는 않겠지요.” 사철수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다시 또 기침하며 피를 토해냈다. “보아하니 꽤 심각한 것 같은데 이 약을 복용하십시오.” 가면을 쓴 남자가 갑자기 손을 휘두르자 검은색 약이 공중으로 튀어 날아갔다. “감사합니다.” 사철수는 약을 재빨리 잡아들고는 망설임 없이 머리를 젖혀 그것을 삼켰다. 호룡각의 영단묘약은 엄청 귀중한 보물로 아무리 심각한 부상이라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영단묘약은 상층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송 어르신...” 사철수가 뭔가를 말하려던 찰나 가면을 쓴 남자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지금 저는 채 씨입니다. 저를 채 선생이라 부르든 채 각주라 부르세요. 과거의 이름은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채 각주.” 사철수는 몸을 낮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 장로님, 제가 맡긴 임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면을 쓴 채원진이 물었다. “유장혁의 심장을 칼로 찔렀습니다.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지금쯤 이미 죽었을 겁니다.” 사철수가 보고했다. “훌륭하네요!” 채원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 장로님, 또 한 건의 큰 공을 세우셨군요!” “채 각주, 당신이 시킨 대로 했으니 제 딸을 풀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철수는 간절히 부탁했다. 그가 여전히 호룡각의 명을 따르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딸 때문이었다. 그의 사랑하는 딸은 이미 호룡각에 의해 감금된 상태였다. 1년에 한 번밖에 얼굴을 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명령에 불복하거나 배반하려는 기색을 보이면 그의 생명은 물론 딸 역시 끔찍한 고문과 굴욕을 겪게 될 터였다. 이것이 호룡각이 간첩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단순하고도 폭력적이며 매우
삼 분 후, 모든 호룡각의 킬러들은 이미 피를 뿌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온몸이 피로 물든 유진우는 흔들리며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의 몸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내면의 강력한 진기 역시 모두 사라지면서 그는 이제 거의 죽음에 가까웠다. 눈앞의 풍경은 점점 흐릿해지고 심장박동은 거의 멈춰 있었다. “이렇게 많은 위험을 겪고도 결국엔 내가 내 사람의 손에 죽다니, 정말 웃기네.” 유진우는 차가운 웃음을 짓고 가슴에 박힌 칼을 내려다보며 두 손으로 칼을 움켜잡고 힘껏 뽑았다. 순간,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죽을 때 칼이 몸에 꽂혀 있는 건 보기 싫었다. 칼을 빼자 유진우는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결국 ‘쿵!’하고 땅에 쓰러졌다. 이내 의식이 완전히 끊어졌다. 유진우가 쓰러질 때 그의 몸에 항상 지니고 있던 부적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금빛으로 변하며 유진우의 이마에 흡수되더니 사라졌다. 영혼 부적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면서 그 안의 강력한 에너지가 유진우의 사지와 백골을 휘감으며 퍼졌다. 이전에 사철수가 뿌린 이상한 독은 이 에너지에 접촉하자마자 급속히 분해되었고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었다. 유진우의 내부 상처와 방금 뚫린 치명적인 칼자국도 이 에너지를 받고 조금씩 회복되었다. 그 에너지 안에는 생명의 기운이 넘쳐흘러 원래 생명을 잃었던 유진우를 천천히 죽음의 문턱에서부터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 시각, 수십 리 떨어진 어느 비밀 저택에서 명상 중이던 이청성은 갑자기 몸이 움찔하더니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그녀의 완벽한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호신 부적이 손상된 건가?” 이청성은 이마를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수를 놓으며 계산을 했고 그 결과를 확인하고 얼굴이 크게 변했다. “큰일 났다!” 생각할 틈도 없이 이청성은 곧바로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을 한 줄기의 빛으로 바뀌더니 황급히 어딘가로 향했다. 이 시각, 호룡각의 비밀 기지 안에서는 가면을 쓴 한 남자가 금색 의
이제 유진우가 할 수 있는 건 함께 죽는 것뿐이었다. “응?” 유진우의 빠른 철권을 맞닥뜨린 사철수는 눈이 커지며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 “펑!”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철수의 두 팔이 그대로 부러졌고 그의 몸은 마치 자루처럼 10미터 정도 날아가다가 땅에 떨어졌고 입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배신자!” 유진우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터뜨리며 계속 공격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사철수는 상황이 급박해지자 두 손으로 인을 그렸고 발을 힘껏 구르자 갑자기 그의 몸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한 무더기의 옷만 남았다. 이건 분명히 기문둔술이었다. “와!” 사철수가 도망친 뒤 유진우는 거칠게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흔들리며 쓰러질 듯한 몸을 지탱했다. 전 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몸은 독에 중독되었으며 가슴을 관통한 그 칼이 여전히 그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제 유진우는 죽음 직전까지 다가갔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전하!” 손도운은 절망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중상을 입은 상태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진우 형님!” 왕현 역시 비틀거리며 일어설 수 없었다. 세 사람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고 게다가 호룡각의 킬러들이 여전히 주변에 많았다. “왕현 씨! 손도운을 데리고 먼저 가요!” 유진우는 부서진 몸을 힘겹게 지탱하며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으려고 했다. 칼이 몸에서 뽑지 않는 한 대략 한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진우 형님! 그럼 형님은요?” 왕현은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 세 사람 중 유진우의 부상이 가장 심각했다. “걱정하지 마요. 저는 수련이 깊으니 죽지 않아요.” 유진우는 겨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만 떠들고 손도운 데리고 가요!” 왕현은 계속 말하려 했지만 유진우의 호통에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손도운을 부축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호룡각의 킬러들은 두 사람을 쫓지 않고 오히려 유진우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했다. 다른 두 명
유진우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자신을 습격한 사철수를 보며 순간적으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내통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의심해 왔다. 왕현, 유공권 등도 그중 하나였지만 유독 사철수만은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철수는 그동안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왕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래서 그는 사철수에 대해 항상 죄책감을 느껴왔고 그랬기에 아까 전심을 다해 치료해 주었던 것이다. 자신이 독에 걸리고 상처를 입어도 사철수를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왕부의 결사대원이었고 마치 가족처럼 여기던 사철수가 뒤에서 칼을 꽂을 줄은... ‘도대체 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아저씨? 뭐 하시는 거예요?” 유진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장혁아, 미안하다. 이렇게 해야만 했어.” 사철수의 얼굴은 복잡해 보였고 그 눈빛에는 죄책감이 섞여 있었다. “예전에 내가 말했지. 그때의 진실을 조사하지 말라고. 그런 건 죽음을 부를 위험이 크다고. 그런데 왜? 왜 너는 그걸 듣지 않았니? 너는 잘 살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스스로 죽으려 드는 거야?” “당신... 도대체 누구야?” 유진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 사철수는 서경 중군 부장이지만 그전에 내 진짜 신분은 호룡각의 밀사였다.” 사철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호룡각의 밀사?” 유진우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사철수가 호룡각에서 보낸 첩자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들이 그를 습격한 것은 사철수가 미리 정보로 전달했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때 터졌던 검은 독기 역시 사철수의 짓이라고?’ 사철수는 일부러 자신을 독에 중독시켜 유진우에게 독을 풀게 하면서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공격할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얽힌 계략은 그를 완벽하게 속여왔고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있던 것들이 전부 거
두 손이 맞붙으며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유진우는 몸을 한 번만 움찔했을 뿐인데 모든 힘을 가볍게 막아냈다. 반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유진우의 한 손에 의해 수십 미터나 날아가며 땅에 떨어졌고 코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온몸의 경락이 반쯤 부서져버렸다. “너... 너 어떻게 이렇게 강한 거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가슴을 움켜잡았고 얼굴에는 놀람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유진우는 분명 독에 중독되었고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단순한 한 방으로 나를 이렇게 쉽게 물리친 거지? 우리의 실력 차이가 이렇게 컸던 건가?’ “내가 기습당하기 전에 내 실력을 조사하지 않았나?” 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입가에는 검은 피가 묻어 있었다. 사철수 몸속의 독은 이미 모두 빠져나갔고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유진우 자신은 부상을 입고 독에 중독되었지만 깊은 수련 덕분에 당장 쓰러지지는 않았다. “넌 아무리 강해도 결국 그냥 무도 마스터에 불과하다. 우리는 충분히 널 죽일 수 있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큰 소리로 외쳤다. 호룡각이 파괴된 날, 그곳의 고위 인물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남은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 싸웠고 사실상 더 이상 조직을 구성할 수 없었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는 잘 모르지만 서경 왕부의 음모였고 유진우가 그 모든 일의 주범이라고 알고 있었다. 오늘 그는 유진우가 서경 왕부의 밀사를 만나러 온다는 비밀 정보를 받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복수를 꿈꿨지만 상대가 이토록 강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흥! 만약 내가 그저 평범한 무도 마스터였다면 아마 오래전에 죽었을 거야. 지금 살아있는 게 기적이지.” 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건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눈을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유진우가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라면 이렇게 젊은 나이에 대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빠르고 정확하게 내리쳤다. 전신의 강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고 뒤에서 기습 공격을 한 탓에 방어할 틈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유진우가 여전히 사철수를 치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주변 상황을 전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긴 칼을 내리칠 때 유진우는 재빨리 호신 진기를 발동시켜 몸에 방어막을 만들었다. “쾅!”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긴 칼이 유진우의 호신 진기를 강하게 가격했다. 그 충격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진기의 파장이 퍼져 나갔다. 엄청난 반동에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칼은 튕겨져 나가고 그는 몸이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자신은 전력을 다해 칼을 내리쳤고 심지어 기습 공격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유진우는 죽지는 않아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를 보면 전혀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밀려서 뒤로 물러섰다. ‘이 어린놈이 나보다 더 강하다고?’ “윽!” 그때, 치료 중이던 유진우가 갑자기 검은 피를 토했다. 얼굴은 온통 새카맣게 변했다. 방금 전 독기는 너무 강력해서 유진우의 몸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막을 수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사철수를 치료하는 데 너무 많은 진기를 소모한 탓이었다. 그로 인해 독소를 억제할 수 없었고 그대로 오장육부에 침투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기습에 맞서려고 무리하게 방어를 했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충격이 겹쳐 결국 피를 토하게 된 것이다. “하하하, 결국 너도 다 죽어가고 있구나!”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유진우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 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한 방에 바로 무너지네.’ “이번엔 너의 목숨을 가져가겠다!”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떨어진 칼을 다시 움켜잡고 유진우에게 달려들어 한 번 더 칼을 휘둘렀다. “전하!” 중상을 입
“난 너랑 시간 낭비할 생각 없어! 꺼져!”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더 이상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맹렬히 공격을 시작했다. 원래 서로 비슷한 수준이던 손도운은 금세 밀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실력은 결국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전에 손도운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와 팽팽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의 뜨거운 혈기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손도운의 그 우세는 사라졌고 남은 건 오직 순수한 실력 차이였다. 이제 싸움은 더 이상 간단한 기술이나 혈기 싸움이 아니었다. 실력의 차이가 승패를 가를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죽어라!”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 공격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격렬해졌다. 손도운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직 방어할 뿐 반격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3분 내로 손도운은 완전히 패배할 것이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 모습을 본 유진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고 앞에 나서려는 순간 갑자기 경계심이 솟구쳤다. 아직 반응하기도 전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발아래에서 검은 안개가 퍼져 나갔다. 유진우는 본능적으로 호신 진기를 발동시켜 방어막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검은 안개는 마치 영혼처럼 유진우의 호신 진기를 뚫고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 안개가 눈, 귀, 입, 코, 그리고 피부의 모든 모공을 통해 침투해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유진우는 깜짝 놀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아무리 많은 것을 봐왔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호신 진기마저 막지 못하는 이런 괴이한 안개는 대체 뭐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유진우는 곧바로 기운을 모아 독을 빼내려 했다. 비록 이 검은 안개가 매우 이상하긴 했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그것을 제거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장혁아! 괜찮아?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