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는 사방을 둘러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모두 보셨죠? 황보추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맹주 자리에 앉기 위해 친아버지까지 죽인 사람입니다. 이런 짐승을 살려둬도 되겠습니까?”그 말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가장 큰 소리로 얘기하던 황보 가문 또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황보춘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황보곰이 중얼댔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 아빠가 할아버지를 죽였다고? 아니... 아니야!”자신의 아버지가 이런 짓을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권력과 지위를 위해서 천륜까지 거스르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난 유진우가 범인일 줄 알았는데, 황보 가문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난 거네.”“친아버지를 죽이다니, 짐승 같은 놈!”“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의리 넘치던 셋째 도련님이 이런 사람일 줄 누가 알았겠어?”사람들이 쑥덕거렸다.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은 황보 가문에게로 옮겨갔다.이때 백수정이 의심의 화살을 던졌다.“잠깐! 황보추의 힘이 아주 약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무도 마스터를 암살할 수 있어요?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맞아요! 마스터만이 마스터를 죽일 수 있는데, 황보추가 무슨 힘으로 마스터를 죽여요? 누군가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희생양으로 황보추를 세운 건 아니에요?”차연주가 질세라 말을 꺼냈다. 유진우가 이렇게 위기를 벗어나는 꼴은 죽어도 볼 수 없었다. 모함일지라도 어떻게든 죄를 덮어씌워야 했다.“맞아! 황보추 실력에 어떻게 맹주님을 다치게 하겠어?”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또다시 의심을 시작했다. 무도 마스터는 신과도 같은 존재라, 일반 마스터들은 그들을 다치게 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암살이라니?의심되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유진우는 인여궁 쪽을 힐긋 쳐다보고는 설명했다.“황보추 한 사람만으론 당연히 안 되죠. 맹주님을 직접 죽인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송만규가 인상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 누군데요?”“영살문 에이스 청부업자, 미야모토 코지로입니다.”
“뭐? 황보춘이라고?”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황보 가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아니겠지? 황보춘은 인품 좋고, 정직하기로 소문났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꾸밀 수가 있어?”“내 생각도 그래. 황보춘은 모두가 인정하는 보살이잖아.”“뭔가 잘못된 거 아냐?”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황보 가문 4대 호걸 중 대외의 평가가 가장 좋은 사람이 바로 황보춘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사교성이 좋고 의리가 있어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다. 거지가 찾아온다 해도 한 끼 푸짐히 먹일 사람이었다. 그의 인품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황보춘은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화를 내기 시작했다.“무슨 소립니까? 유진우 씨! 난 당신과 엮인 적이 없는데, 왜 저를 모함하는 겁니까?”“모함인지 아닌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아실 테지요. 황보추는 머리보다 의욕이 앞서는 사람인데, 홀로 맹주님의 암살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제게 죄까지 덮어씌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황보추는 그럴만한 그릇이 못 됩니다.”황보추가 함정에 빠지고부터 스스로 자백할 때까지 보여준 모습은 너무 허술했다. 그런 그가 스스로 이토록 치밀한 암살을 준비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사건을 자세히 조사했더니 역시나 배후가 있었다.황보춘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말 잘 맞추시죠. 언제는 셋째, 언제는 미야모토 코지로라더니, 이젠 제게 죄를 덮어씌우는 겁니까? 대체 뭐 하는 짓이에요?”“자식! 허튼소리 말아! 족장님을 모함한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황보 가문 사람들이 유진우를 질책했다. 황보용명이 죽은 뒤 황보춘이 뒷일을 정리하고 가문을 안정시켜 가문의 중심이 되었다.송만규가 물었다.“유진우 씨, 이렇게 얘기만 하고 끝날 게 아니라, 증거를 가져와야죠. 황보춘이 배후라는 증거가 있습니까?”“증거가 없다면 이런 말 하지도 않았죠. 여봐라, 그 자식들 몇 명을 끌어와!”유진우의 명령과 함께 검은 옷을 입고 복면이 쓰인 사람 몇 명이 강린파 제자들에게 끌려왔다. 복면과 상의를 벗기자, 그들 모두의 가슴에 특별한
황보춘이 담담하게 말했다.“맹주님, 편지는 조작할 수 있습니다. 서예가를 찾아 필적을 따라 해 편지를 위조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맞아! 유진우 당신이 일부러 모함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황보춘 씨, 정말 대단하네요. 아직도 발뺌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완벽히 지게 해 드리죠.”유진우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그러자 강린파 제자들이 두 줄로 갈라지며 길을 내주었다. 그 뒤에서 흰 수염에 흰 눈썹의 노인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노인을 본 사람들이 그 자리에 굳어졌다. 죽은 줄 알았던 황보용명이었다!“이, 이게 가능해? 맹주님은 돌아가신 거 아니었어?”“미친, 대낮에 귀신이라도 본 거야?”“이게 뭐야? 부활이라도 한 거야?”사람들은 아연실색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황보용명은 7일 전에 죽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장례까지 마쳤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살아난 거지? 영혼인 건가?“스, 스승님?”송만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소홍도가 당황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이럴 리 없어! 안 죽은 거야?”“부활하다니, 세상에!”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안, 안 죽었어?”황보춘이 눈을 크게 떴다. 얼마 전까지 덤덤하던 그는 지금 공포에 질려 온몸을 덜덜 떨며 식은땀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맹주님, 이제 맹주님이 처리하실 차례입니다.”유진우가 예를 표하고는 자리를 내주었다.“못된 놈! 더 할 말이 남았냐?”황보용명이 서늘하게 물었다. 황보춘이 공포에 질려 대답했다.“주, 죽은 거 아니었어요? 왜 아직 살아있는 건데요?”“내가 죽은 척하지 않았으면 너 같은 버러지들을 잡을 수가 있었겠어?”“죽은 척했다고요? 어떻게요? 제가 직접 확인했어요!”황보춘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랜 시간 참고 참아 드디어 족장 자리에 오르나 했더니 이렇게 모든 게 끝나버렸다. 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무도 마스터인데 너희들도 못 속이면, 몇십 년간 수련한 게 다 뭐가 돼?”“왜?
한바탕 쏟아낸 뒤 황보춘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엔 각종 감정으로 가득했다. 분노, 원한, 질투, 진한 아쉬움.그는 왜 일이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의 차질도 없이 완벽한 계획이었다. 황보용명을 죽이기만 한다면 그는 차세대 족장이 될 테고,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의 치밀한 계획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애초에 그의 계획에는 두 가지 결과밖에 없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족장이 되거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불행하게도 그는 실패하고 말았다. 황보용명은 죽지 않았다. 그의 계획은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너무도 아쉬웠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하면 성공했을 텐데, 왜?“황보춘이 배후라니, 정말 상상도 못 했어.”“사람 좋아 보이더니 그게 다 꾸며낸 거였어?”“맹주님이 죽은 척하지 않았다면 이놈이 족장이 됐을 거잖아!”“...”정신이 거의 나간 황보춘을 보며 사람들은 분개했다. 얼마 전까지 황보춘의 편을 들었는데, 모두 황보춘에게 놀아난 꼴이었다.송만규가 크게 외쳤다.“이봐! 이 짐승놈을 묶어!”“네!”두 사람이 대답하고는 황보춘의 다리를 부러뜨려 꽁꽁 묶었다.“영감탱이! 죽어! 죽어!”황보춘은 정신이 나간 듯 외치고 있었다.“지하 감옥에 처넣고 잘 감시해. 내일 공개처형이다!”송만규가 명령을 내리고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해산시켰다.“진실은 이미 드러났으니 모두 돌아가시죠.”사람들은 아쉬워하면서도 하나둘 돌아갔다.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들의 첫 목표는 유진우였는데, 황보추와 황보춘의 악행이 수면 밖으로 드러났다. 황보 가문의 두 효자가 모든 사람을 속일 뻔했다.“송 맹주님, 강남 무도 연맹엔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많네요. 구경 잘 했습니다. 그럼, 이만.”소홍도는 의미심장하게 말하고는 강북 무도 연맹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자리를 떴다.백수정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흥! 또 저 자식을 놓치고 말았네, 아쉬워라.”“황보용명이 살아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운 좋기
송만규만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만규야, 뭐 해? 어서 돌아가.”황보용명이 담담하게 말했다. 송만규는 대답 없이 그를 훑어보고는 유진우에게 물었다.“유진우 씨, 이분은 어디서 데려온 겁니까?”“만규야, 그게 무슨 소리야?”“당신, 언제까지 연기할 거야?”“무엄하다! 감히 스승님께!”“흥! 당신 정체가 뭔지 한번 보자!”송만규는 차갑게 웃고는 황보용명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 뒤 뭔가 잘못됐다는 듯이 뒷걸음쳤다. 곧 잡히려 할 때, 유진우가 송만규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맹주님, 대화로 풉시다.”“못된 놈! 감히 스승님을 공격해? 이 배신자야!”“됐어요, 연기 그만 해요. 송 맹주님 이미 알아챘어요.”유진우가 뒤를 쳐다보며 경고했다. 그 말을 들은 황보용명의 얼굴에 분노가 사라지고 장난기 어린 웃음이 떠올랐다. 이어 쨍한 여자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무도 마스터는 역시 다르네요,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었는데도 가면인 걸 알아챌 줄은 몰랐어요.”그가 얼굴을 잡아당기자 황보용명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가히 절세미인이라 칭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설연홍이었다.송만규가 인상을 쓰고 말했다.“누굽니까?”“변신술 전문인 제 친구입니다. 황보춘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탁한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그렇군요. 좋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선택이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유진우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설연홍더러 황보용명으로 변장해 연기를 펼치게 했으니, 고인을 존중하지 않았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용건만 말하죠. 결백을 증명했으니, 저도 기쁩니다. 강남 무도 연맹은 당신 같은 젊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얼마 후면 이곳은 당신들의 무대가 될 겁니다.”“과찬입니다.”송만규가 뭔가 생각난 듯 약병 하나를 유진우에게 건넸다.“맞다. 이걸 까먹을 뻔했네요. 7일 탈명단의 해독제입니다. 어서 마셔요. 독이 뼈에까지 침투하면 후유증이
풍우 산장의 한 방 안.유진우는 보랏빛 얼굴을 하고 침대에 누워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몸속의 독소와 진기가 서로 맞부딪치며 치열하게 겨루고 있었다. 그의 코에서는 가끔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약왕 경철호는 침대 옆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조심스레 유진우의 몸에 침을 꽂아 독소를 빼내고 있었다.장 어르신, 설연홍, 황은아 등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7일 탈명단도 해독하지 못했는데 맹독 하나가 더 들어오다니, 불 난 집에 기름 뿌리는 격이었다.송만규는 강남 무도 연맹을 거느리고 소홍도를 찾아 헤맸지만, 아직 소식이 없었다. 이제 모든 건 약왕에게 달렸다.시간이 흐르며 경철호의 이마에는 땀이 돋아났고, 호흡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은바늘이 한 개씩 꽂히자, 유진우의 가슴에 일렁거리는 검은 기가 보였다.침을 꽂은 후 경철호는 유진우에게 특효 해독단을 먹였다. 이는 많은 독을 해독할 수 있었지만, 이 희귀한 독약에는 약간의 억제 작용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경철호가 몸을 일으켰다.“후...”“선배님! 어떻게 됐어요? 괜찮은 거죠?”황은아가 급히 물었다. 그녀는 수련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유진우의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유 장로님의 몸에는 7일 탈명단과 화기산, 두 가지 독이 있는데, 그 두 가지 독이 만나 더 큰 독성을 내뿜고 있어요.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7일 탈명단도 해독하기 힘든데 거기다 무도 고수를 상대하는 화기산까지 더해졌으니 설상가상이었다. 유진우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도 남았을 것이다.“약왕이시잖아요. 의술이 고명하다며, 이런 것도 못 해요?”황은아는 당황했다. 유진우는 아버지를 제외하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대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선배님! 돈은 얼마든지 상관없으니, 살려만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장 어르신이 그대로 바닥에 꿇어앉았다.“부탁드립니다!”다른 사람들도 질세라 꿇어앉았다.“이러실 필요 없어요. 유 장로님은 약신궁 사람
“조선미 씨의 심정은 백번 이해하나 독은 이미 유 장로의 뼛속까지 파고 들어갔어요. 제가 여러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다 쓸모가 없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조안태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유진우를 중히 여겼고 심지어 약신왕 자리까지 물려주려 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해독이 불가능한 독에 중독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말... 말도 안 돼요.”당황한 조선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만약 약신왕마저 치료할 방법이 없다면 대체 누가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잠깐만요!”그때 조선미의 뇌리에 문득 뭔가 떠올랐다.“선배님, 약신궁에 송장꽃이라는 아주 신기한 약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비법과 함께 사용하면 기사회생한다던데 그게 정말입니까?”“송장꽃이요?”조선미의 말에 조안태가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선미 씨, 송장꽃은 불길한 물건이라서 절대 사용해서는 안 돼요.”“왜 안 되는데요? 선배님 설마 저희가 살 돈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조선미는 애간장이 탔다.“돈이 문제가 아니에요.”조안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설명했다.“송장꽃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약이 아니라 아주 맹독성 물질이에요. 사용 조건도 까다로워서 의학계에서는 금지 약품으로 지정되었어요.”“좋은 약이든 독약이든 진우 씨만 살리면 돼요. 선배님은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조선미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유 장로의 지금 상태로 송장꽃을 사용한다면 다른 사람이 목숨을 걸어야 해요. 그러니까 체내의 모든 독소를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목숨과 목숨을 바꿔야만 일말의 생존 기회가 생긴단 말이죠.”조안태가 한탄하며 말했다.“다른 사람의 목숨과 바꾼다고요?”그의 말에 적지 않은 사람의 표정이 급변했다. 치료하는 대가가 상상 이상으로 컸다.“다른 사람의 목숨과 바꾸는 건 단지 기본적인 조건일 뿐이에요. 문제는 아무나 목숨을 바꿀 자격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조안태가 계속하여 말했다.“목숨을 바꾸는 과정에서 희생하는 그 사람은 수만
“안녕, 내 사랑...”흐리멍덩한 의식 속 유진우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떠지지 않았다.몸이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에 빠진 듯 계속 밑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공포와 절망이 유진우를 덮쳤고 온 세상이 암흑이다 못해 빛이라곤 전혀 없었다. 이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도 모르겠다.1년? 10년? 아니면 100년?그런데 유진우의 정신세계가 완전히 무너져내릴 것만 같던 그때 한 줄기의 빛이 나타났다. 그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친 듯이 발버둥 쳐서 빛이 보이는 쪽으로 헤엄쳐갔다. 그렇게 빛과 점점 가까워지면서 드디어 빛과 한 몸이 되었다...“쓰읍!”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유진우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기운이 폐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심장도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치 환생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체내의 독이 신기하게도 전부 사라졌다는 것이다. 몸이 아직 허약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유 장로, 드디어 깨어났군요. 이번 고비를 넘기지 못할까 봐 걱정 많이 했습니다.”지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유진우가 눈을 떠보니 약신왕 조안태가 침대 옆에 앉아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안색이 창백했고 숨도 거칠게 내쉬는 게 진기를 아주 많이 소모한 듯했다.“약신왕 선배님께서 살려주셨군요.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유진우가 재빨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가 중독된 독은 거의 해독 불가능한 독이었다. 조안태가 황천길에서 맴도는 유진우를 끌어오느라고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모른다. 정말 생명의 은인이었다.“유 장로, 난 그저 진기를 조금 소모했을 뿐 딱히 한 거 없어요. 유 장로가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은 이분입니다.”조안태가 한숨을 내쉬었다.“이분이요?”유진우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옆 침대에 얼굴에 핏기라곤 전혀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호흡이 아주 미약하다 못해 가슴팍도 움직이지 않았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유진우의 손에 있는 검은 기체 덩어리를 보고 모두 놀라 멍해졌다.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멀쩡했던 영기가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통째로 삼켜 없어질 수가 있을까.머리카락보다도 더 가는 사악한 기운이 이렇게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을 줄이야.“이 물건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오늘 많은 것을 배워가네요.”서지석은 당황한 표정으로 침만 삼켰다.유진우가 때맞게 확인시켜 주어서 다행히 큰 불행은 모면했지만 사실을 모르고 오령정의 영기를 그대로 흡수하여 사악한 기운을 체내에 끌어들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고 사악한 기운이 폭발할 때쯤이면 결국 바람처럼 될 것이 분명했다.“과연 내 예상대로 이 물건은 흉악하기 그지없네.”유진우의 손가락에 가해지는 압력이 점점 커지자 에너지 커버에 싸인 검은 색의 사악한 기체가 완전히 발광하여 미친 듯이 솟구치고 전력 질주하며 에너지 커버에 끊임없이 부딪혀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듯하였다.희미하게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소리도 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이 사악한 기운은 이미 영성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이렇게 좋은 보물이 안타깝게도 사악한 기운에 오염되다니, 정말 낭비네요.”서지석은 한숨을 내쉬며 손에 쥐었던 오령정을 모두 바닥에 던지고 발로 부스러뜨려 사악한 기운이 사람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였다.“사건이 비정상적으로 넘어갈 땐 반드시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니 바람의 최후는 오아시스와 관련이 있을 것이에요. 우리는 앞으로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해요.”유진우가 말하면서 한 손을 꽉 움켜쥐자 손에 있던 검은 기체가 순식간에 폭발하여 완전히 사라졌다.현장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손에 든 오령정을 처리한 후 모두의 시선은 일제히 조이준한테로 향했다.조금 전 조이준은 가장 먼저 앞다투어 오령정을 빼앗아 지금은 손에 달걀만큼 한 크기의 오령정을 40여 개나 쥐고 있었으며 품질은 매우 좋아 보였고 모두 합치면 그 가치는 엄청났다.“왜 다들 날 쳐다봐?”
조금 전의 바람은 이미 인간이 아닌 짐승처럼 변화되었었고 그로 인해 또 다른 불가능도 있었을 것이다.“설령 오령정은 바람의 혈육의 결정체라 하여도 뭐가 문제에요? 당신이 방금 말한 3일을 못 버틴다는 말은 또 어떤 뜻일까요?”서지석은 이어 의문을 제기했다.“오령정은 이미 오염되었어요.”유진우는 엄숙한 표정으로 계속하여 말했다.“바로 전에 바람의 상황을 여러분들도 보셨겠지만 이유 없이 발광하고 인성을 잃고 몸까지 변화된 것을 보면 이 오령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 있을까요?”“진우 씨,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단지 이런 추측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능력이 부족할 것 같은데 혹시 증거라도 있나요?”서지석은 다시 물었다.금도문 제자들은 방금 꽤 큰 오령정을 8개나 주워 넉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약 이 오령정을 사용할 수 없다면 그들에게 큰 손실이기에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이러한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매개 오령정에는 모두 한 가닥의 사악한 기운이 숨어 있고 겉으로 보면 발견하기 매우 어려울 거예요. 다만 그 안의 영기를 추출한다면 비로소 증거를 찾을 수 있어요.”유진우는 말하면서 한 손을 평평하게 하여 자신의 오령정을 여러 사람 앞에 보여 주었고 이어 다른 손을 내밀어 손바닥으로 오령정을 향해 살며시 짓누르자 쟁쟁한 소리가 들려왔다.짝!소리와 함께 오령정은 순식간에 터졌고 그와 동시에 짙은 영기가 그 속에서 뿜어져 나왔다.유진우는 손가락을 약간 구부리고 사악한 가운을 감쌀 수 있는 투명한 에너지 커버를 준비해 두었고 이 영기들은 매우 짙은 유백색으로 구름과 안개처럼 끊임없이 밀려왔으며 이것을 모두 흡수하면 무자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이 영기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자세히 보세요.”유진우의 말에 서지석과 몇몇 금도문 제자들이 자세히 눈여겨보더니 갑자기 놀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들은 이 유백색의 영기 속에 뜻밖에도 한 가닥의 검은 기체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이 검은 기체는 유백색의 영기에
“이청성 씨, 방금 그 두 놈이 당신의 오령정을 빼앗은 거 맞죠? 제가 바로 되찾아 올게요.”상황을 지켜보던 서지석은 조금 전에 이청성의 곤룡띠만 아니었으면 자신은 바람을 대처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심지어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를 대신해 오령정을 되찾아 오려고 바로 결단력 있게 손을 쓸 준비를 했다.“ 서지석 씨, 쫓아가지 않아도 돼요.”이청성은 쫓아가려는 서지석을 급히 멈춰 세우며 말했다.“빼앗긴 것이 아니라 제가 그들에게 준 것이니 저한테는 소용없는 물건이에요.”“네?”서지석은 머뭇거리더니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의문스러운 태도로 물었다.“이청성 씨, 오령정은 무사에게는 아주 귀한 보물이잖아요. 내공을 향상할 수 있고 설령 당신이 쓰지 않더라도 돈으로 팔면 가치도 매우 높아요.”“전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이청성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네, 그게….”서지석은 한순간 말문이 막혀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그러고보니 눈앞의 이 여성은 부잣집 아가씨로 부족한 것이 없었고 게다가 곤룡띠 같은 보물도 가지고 있었으니 오령정 한두 개 정도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이청성에게는 돈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서지석은 돈이 부족했으니 신세를 한 번 더 진다 치고 그녀가 원치 않은 오령정을 자신한테 줘도 되는 건데 돌처럼 던져버리다니 너무 낭비라고 생각했다.“서지석 씨, 제가 보물을 그냥 버린 것이 아니라 이 오령정은 뭔가 이상했어요.”이청성은 이어 해명하며 말했다.“당신 손에 있는 오령정을 자세히 봐봐요. 어딘가 특별한 점이 없어요?”“특별한 점요?”서지석은 오령정 하나를 집어 들고 자세히 관찰했지만 아무런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하고 의아해하며 물었다.“대체 어디가 특별해요? 안에 있는 짙은 영기는 바로 흡수할 수 있으니 수련에 사용해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아요.”“서지석 씨, 만약 이 물건으로 수련하면 아마 3일도 못 살고 죽을 거예요.”이때 유진우는 손톱만 한 크기의 오령정을 손에 집어 들고 천천히 앞으
조이준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미지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바로 땅에서 오령정을 줍고 있었다.이것들은 천금 같은 보물이어서 팔든 직접 사용하든 모두 좋은 선택이었다.“오령정? 이게 모두 오령정이라고?”“어서 와. 빨리 주워.”이 순간 많은 사람이 땅 위에 널려 있는 검은 결정체의 정체를 알고 하나둘씩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더라도 모두가 빼앗는 것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쟁탈 대열에 합류했다.“이 오령정은 내가 먼저 본 거야, 이리 내놔.”“헛소리 집어치워, 지금은 내 손에 있으니 바로 내 것이야. 인정하기 싫으면 한판 붙던가.”“제기랄, 누가 감히 나한테서 뺏어간다면 다 죽을 줄 알아.”이익이 있는 곳에는 항상 싸움이 따르기 마련이다.오령정의 가치를 알게 된 후 각 세력은 미친 듯이 경쟁하기 시작했으며 실력이 강한 사람은 몇 개를 더 얻을 수 있었고 실력이 약한 사람은 남은 찌꺼기만 조금 주워가며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유감없이 정교하게 보여주었다.만약 양측의 실력이 모두 강하고 아무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면 큰 싸움으로 승패를 나누었고 불과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바로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화롭던 곳에서 이미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했다.“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네.”사방에서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것을 본 이청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겨우 몇 조각의 오령정으로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싸우다니, 만약 이보다 더 가치 있는 보물이 나온다면 또 어떤 장면일까?“이봐요,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을 내놔요. 아니면 제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세요.”그때 갑자기 두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청성이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에 시선을 고정하며 앞뒤로 그녀를 에워싸면서 말했다.“어디서 감히 아가씨를 협박해! 너희들 다 뒤지고 싶어?”상황을 목격한 이청성 주변에 있던 근위병들은 바로 칼을 빼 들며 말했다.그들은 모두 반은 종사급 고수들이니 무림인들의 세계 부하들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
갑작스러운 폭발에 모두가 깜짝 놀랐고 에너지파가 휩쓸면서 적지 않은 무사들이 사방으로 날려 아수라장이 되었다.다행히 서지석과 제자들이 빨리 달린 탓에 피해를 면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했더라면 그들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모든 먼지가 다 떨어질 때쯤 다들 시선을 집중하고 보니 마을 이장의 집은 이미 평지로 변해 있었고 사방의 무너진 담벼락에 의해 온 땅이 어질러져 있었다.허공에 매달렸던 바람은 나무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곤룡띠만 덩그러니 땅에 떨어져 있었으며 그 외에도 땅에는 정체 모를 검은 결정체들이 마치 조약돌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유진우는 분명히 바람의 몸이 폭발하면서 튀어나온 물건이라고 확신했다.결정체에서 나오는 피비린내는 아마도 혈액에 의해 녹아서 나는 냄새일 것이고 정상인의 피는 액체 상태이지만 바람이 죽기 전의 피는 고체 상태로 결정체가 되어버렸으니 확실히 이상한 점들이 있어 보였다.유진우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식견이 넓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바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그의 인식을 뛰어넘었다.처음에는 이유 없이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그 뒤로 신체 소질이 갑자기 배로 강해져 고통과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마리의 미친 짐승과도 같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의 몸에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날카로운 이빨, 칼날 같은 손톱, 갑자기 몸에 생겨난 검은 비늘은 칼로도 베기 힘들 정도였고 총적으로 바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보였으며 현재 땅에 널려진 검은색 고체 상태의 결정체들만으로도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도대체 무엇이 바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도 바람은 모든 면에서 정상이었는데 왜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렇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인지.혹시 그가 뭐라도 빠뜨린 것이라도 있었는지.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하였고 비록 무슨 원인인지 모르지만 바람이 짐승처럼 변한 것은 분명 그 괴상한 오아시스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안타깝게도 바람은 이미 죽었으니 더
자부심이 강하고 지려고 하지 않는 성격의 조이준은 몇 번이고 거절당한 유진우한테 다소 불만이 있었지만 생사를 가를 때가 되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고 더는 조르지도 않았다.“당신들은 여기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얼른 가서 서지석 씨를 도와줘요.”유진우는 머리를 돌려 가만히 서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을 보고 말했다.그때 서지석은 한창 미쳐 발광하는 바람과 싸우고 또 싸우고 있었다.다만 기력이 소모됨에 따라 서지석은 속도와 힘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었고 반면, 바람은 여전히 힘이 넘쳤고 지칠 줄을 몰랐다.이대로라면 서지석은 얼마 못 버티고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빨리 대선배를 도우러 가요.”금도문의 몇 명 제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곧 칼을 빼 들고 앞으로 돌진하려 했다.“잠깐만요, 이걸 가지고 가요.”그때 이청성은 갑자기 금빛 밧줄을 꺼내며 금도문 제자에게 던져주었다.이 금색 밧줄은 매우 단단했고 표면에 은은한 빛이 돌고 있어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뭐죠?”금색 밧줄을 본 조이준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며 물었다.“이것은 말로만 듣던 곤룡띠가 아니에요?”“조 선배님 눈썰미가 참 대단하시네요.”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뭐라고요? 곤룡띠라고요?”곤룡띠에 대해 들은 적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은 그 가치를 알고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곤룡띠는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유명한 보물로 매우 보기 드문 물건이었고 어떠한 칼로도 상처를 내기 힘들고 물과 불에도 쉽게 손상되지 않으며 매우 단단하고 질긴 것으로 설령 무도 종사를 묶어 두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다만 곤룡띠는 너무 희귀해서 무림인들의 세계에서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게다가 가진 자는 모두 최고의 대문 파인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여인이 이런 보물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이 여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그만 쳐다보고 빨리 서지석 씨를 도우러 가요.”이청성은 재촉하며 말했다.“네, 그래야죠.”금도문 제자들은 잠깐 꿈에서 깨어난 듯 그제야 정신을
툭!손이현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마치 공처럼 몇 바퀴 굴러다니더니 마침 몇몇 금도문 제자들의 발밑에서 멈추었다.이 상황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손이현은 죽기 전까지도 자신이 미쳐 날뛰는 바람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던 유진우에게 목이 잘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손이현은 도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총잡이 원호를 사부로 모시고 있었으며 배경이 좋아 앞길도 창창하였고 죽음의 사막으로 온 이유는 보물을 찾아 내공을 높여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리려는 목적이었다.자신은 분명 주인공이 될 운명이었고 여태까지 운수가 좋았으며 이번에도 제일 먼저 보물을 찾아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고 작은 마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이 끊어질 줄이야.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어!손이현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고 그의 휘황찬란한 인생은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고 또 뜻밖의 인연이 끊기지 않아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다.사부님 원호의 말대로라면 그의 무도 재능은 미래의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온 천하가 존경하는 최고의 강자로 되였을 것이다.그렇게 아름다운 꿈이었고 그리워했던 일이었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되어 버렸다.‘알고 보니 나는 주역이 아니었고 천명이 아니었으며 결국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후회의 외침 속에서 손이현의 의식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이게 뭐야?”땅에 떨어진 손이현의 머리를 마주한 몇몇 금도문의 제자들은 너무 놀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바로 전에 그들이 가까스로 위험에서 구해낸 손이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가 분리된 상태로 눈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어떻게 된 거지?몇몇 사람이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니 유진우의 손에 든
“너... 이놈!”손이현이 막 맞서려고 할 때 앞에서 갑자기 짐승 같은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눈여겨보니 바람은 이미 사납게 덮쳐오고 있었고 손발을 함께 사용하여 빠르게 달리며 매번 땅을 디딜 때마다 손톱이 땅에 맞닿으며 몇 줄의 깊은 흔적까지 남겼고 그 날카로운 정도가 강철 칼날에 불과했다.“거기 누구 없어? 빨리 날 구해줘! 이 괴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손이현은 안색이 크게 어두워지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야, 이 제기랄.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손이현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흉악한 얼굴로 유진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유진우는 꿈쩍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진우 씨, 지금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요. 손이현이 죽으면 안 돼요.”옆에 있던 서지석이 급해하며 말했다.“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유진우는 여전히 움직이지도 않았다.“됐어요, 됐어요. 보아하니 제가 손을 쓸 수밖에 없겠네요.”유진우가 너무 고집을 부리자 서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칼을 뽑아 들고 직접 손이현을 구하러 나섰다.하지만 실력이 자신보다 더 막강한 손이현도 바람을 굴복시킬 힘이 없는데 자신이 대신하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팍!바람은 피비린내에 이끌려 다시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죽이지 마, 날 죽이지 마.”손이현은 너무 놀라 바짓가랑이는 이미 다 젖어 있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버젓한 도명창마저 놀라 바지에 오줌을 쌀 지경이라니.“망할 놈, 그렇게 날뛰더니!”손이현이 갈기갈기 찢겨 부스러기가 될 뻔할 때 서지석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주며 바람과 혈투를 시작했다.바람의 신체가 더 크게 강화되어 그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서지석은 더는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바람은 이미 공격에 아무런 준비가 없이 이성을 잃었고 진기도 사용할 줄 몰랐기에 서지석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서지석은 민첩한 몸놀림과 함께 손에 쥔 보검으로 바람을 간신히 견제했다.그
“으르렁!”바람은 깊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왜곡된 얼굴, 송곳니로 가득한 입, 그리고 사나운 표정은 마치 악마의 형상처럼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그와 눈이 마주친 손이현은 놀란 나머지 온몸을 움찔했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버렸다.“야! 저기 누구! 어딜 가는 거야! 제발 나 좀 구해줘!”유진우가 등을 돌리고 가는 모습에 손이현은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져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바람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손이현은 싸움의 의지를 잃었다. 그의 눈에 비친 바람의 존재는 이제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콧대가 높으시잖아요? 내가 못된 마음을 품었다고 했죠? 그럼 저도 이제는 신경 끌 게요.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에게 더 이상 신경 쓸 가치를 느끼지 않았다. 손이현이 죽든 말든 그것은 유진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멈춰! 당장 멈춰! 내가 명령한다! 이 미친놈을 빨리 쫓아내!”손이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소리쳤다.하지만 유진우는 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도명창 손이현이야! 내 사부님은 서남 지방 5대 강자 중 하나인 원호야! 오늘 네가 내 목숨을 구하지 않으면 사부님은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손이현은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협박이라도 할 셈이었다.서남 지방에서 원호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다들 숨을 죽이기 마련이었다.“뭐? 원호? 그 사람은 서남 지방에서 실력이 상위 3위 안에 드는 존재잖아!”“손이현의 스승이 원호라니! 그가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이제 알겠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겠지.”“원호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기를 아끼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하다고 들었어. 만약 손이현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속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원호의 명성은 사막의 교룡보다도 더 위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