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풍우 산장.순찰하는 제자들 말고 대부분의 강린파 제자들은 술에 잔뜩 취해 거의 인사불성이 되었다.그때 검은 옷차림을 한 열 명이 담장을 뛰어넘어 산장 내부를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이상하리만큼 날렵했고 마치 영혼처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강린파의 순찰팀은 그 어떤 수상한 움직임도 알아채지 못했다.그들 열 명은 전부 황보 가문에서 가장 강한 비밀 호위였다. 수많은 실력자 중에서 어렵게 고른 고수들이었고 엄격한 훈련을 거쳤다. 암살, 잠복, 정보 캐내기 등 임무 성공률이 항상 100%에 달했다.황보 가문이 탑 쓰리 중 하나라고 불리게 된 이유도 무도 마스터인 황보용명이 있어 그런 것도 있지만 비밀 호위의 공로도 빼먹을 수는 없었다. 비밀 호위는 황보 가문을 도와 앞길을 막는 장애물을 제거해 주었고 적을 두려움에 떨게 했기에 그 공로가 상당했다.“바로 여기입니다.”여기저기 찾아다니던 비밀 호위들이 드디어 영령전 근처에 도착했다.영령전 문 앞에 강린파 제자 두 팀이 지키고 있었고 가끔 순찰팀도 지나갈 정도로 경계가 아주 삼엄했다.두 비밀 호위 팀장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다가 각각 향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파란 연기가 피어오를 무렵 비밀 호위 열 명은 코와 입을 막고 숨을 죽였다. 바람 때문에 파란 연기가 순식간에 영령전 문 앞까지 날아갔다.숨을 몇 번 들이쉬자 문 앞을 지키던 강린파 제자들이 전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순찰팀이 5분에 한 번씩 돌아다니니까 빨리 움직여야 해!”명이 떨어지자 비밀 호위 10명은 바로 영령전으로 들어가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영령전이 아주 크고 널찍했다. 가지런히 놓인 위패 앞에 커다란 향로가 하나 놓여있었다.“찾았습니다.”3분 후, 한 비밀 호위가 누군가의 위패 밑에서 숨겨진 곳을 발견했다. 열어보니 안에 검은 비단 주머니가 있었다.비밀 호위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재빠르게 어둠 속에서 사라졌다.그 시각 영
“시신에 증거가 있어? 죽기 전에 남긴 거라고?”황보추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시신을 처리할 때 한 번 꼼꼼히 살펴보았었는데 이상한 점이라곤 없었다.‘혹시... 내가 뭘 놓쳤나?’“애들 몇 명 불러서 당장 뒷산으로 가야겠다. 오늘 밤에 관을 열어서 시신을 다시 살펴봐야겠어.”황보추는 잠깐 생각한 후 결정을 내렸다. 혹시라도 뭔가 놓친 게 있다면 큰일이다. 하여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틈에 시신을 없애서 증거를 인멸해야 했다.30분 후, 황보추는 한 무리 심복들과 함께 몰래 뒷산에 왔다.이곳은 황보 가문 사람들을 묻은 곳인데 황보용명도 죽은 후 이곳에 안치되었다. 황보용명의 묘를 찾은 황보추는 먼저 절을 한 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아버지, 죄송해요. 아들이 한 번만 더 실례하겠습니다.”그러고는 손을 흔들었다.“당장 파!”황보추의 명이 떨어지자 한 무리의 심복들이 묘를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도 채 되지 않아 관을 꺼냈다.그때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사람들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져 몸을 파르르 떨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고는 찔리는 게 있는 표정으로 목을 움츠린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멍하니 서서 뭐 해? 뚜껑 빨리 열어!”황보추가 낮은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이렇게 된 이상 더는 돌아갈 수도 없었다.“열어!”사람들은 이를 꽉 깨물고 관 뚜껑을 열었다.황보용명이 수의를 입은 채 관속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얼굴이 시퍼런 게 전혀 편해 보이질 않았다.“아버지... 죄송해요.”황보추는 침을 꿀꺽 삼킨 후 관속으로 뛰어들어가 여기저기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 번이고 뒤져봤지만 그 어떤 수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입 안, 콧구멍 안, 머리카락, 손톱 밑까지 전부 자세히 살폈지만 깨끗했고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증거는? 왜 없어?”조급해진 황보추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아무것도 찾지 못할수록 더욱 당황했다.“이봐요.”그때 누군가 한 손으로 황보추의 어깨를 툭툭 쳤다.“X발
“거기 서! 경고하는데 함부로 하지 마. 난 황보 가문의 아들이야!”황보추는 뒷걸음질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자기 아버지마저 죽인 사람이 뻔뻔스럽게 그런 소리를 해?”유진우는 그를 경멸스럽게 쳐다보았다.“오늘 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결과가 어떨 것 같아?”“비밀 호위, 저 자식을 죽여버려!”황보추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이런 순간에도 황보추는 싹 다 죽여버리려 했다. 그런데 주변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고 가끔 바람 소리만 들렸다.“비밀 호위! 비밀 호위!”조급해진 황보추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당신 심복들은 다 여기 있어.”장 어르신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람 머리 두 개를 들고 어둠 속에서 달빛이 비치는 환한 곳으로 걸어왔다. 그가 머리를 툭 던지자 데굴데굴 굴러서 황보추의 발밑에 멈췄다. 깜짝 놀란 황보추의 표정이 급변했다.“황보추, 당신은 이미 독 안에 든 쥐야. 절대 도망 못 가. 아직 할 얘기 더 남았어?”유진우가 냉랭하게 말했다.“잠깐!”상황이 여의치 않자 황보추가 갑자기 머리를 굴렸다.“유진우, 영원한 적은 없고 영원한 이익만 있다고 했어. 이 일 우리 아직 협상할 여지가 있어.”“어떻게 협상할 건데?”유진우의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손을 잡자! 손을 잡으면 되지.”황보추가 침을 꿀꺽 삼켰다.“황보 가문은 재산이 아주 많아. 내가 가주 자리에 앉는 걸 도와주면 재산 절반을 너에게 줄게. 그때가 되면 넌 원하는 걸 뭐든지 다 얻을 수 있어. 어때?”“내가 지금 살인죄를 뒤집어쓴 건 어떻게 해결할 건데?”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그거야 쉽지. 아무 희생양이나 찾으면 돼.”황보추의 안색이 금세 환해졌다. 유진우의 마음이 흔들린 줄 알고 재빨리 말했다.“나와 손만 잡으면 가문 내에서 아무나 찾아 희생양으로 만들면 돼. 그러면 넌 아무 일 없을 거야.”“아주 괜찮은 생각인 것 같네.”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 역시 넌 큰일을 할 사람이라니까.”황보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계속 유
황보추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그 영감탱이 얘기 하지 마. 지금은 우리가 힘을 합치는 게 제일 중요해. 날 밀어준다면 며칠 안에 황보 가문을 먹어버릴 수 있어.”“내가 언제 너와 힘을 합친댔어?”“응? 이 조건 혹하지 않아?”“친아버지도 가차 없이 죽이는 너 같은 짐승이랑 합작하는 건 내 명성만 망칠 뿐이야. 네가 한 모든 짓을 이미 모두에게 알렸으니 얌전히 죽을 준비나 해.”유진우가 차갑게 말하며 손을 휙 저었다. 이를 본 장 어르신이 쏜살같이 달려가 황보추를 넘어뜨렸다.“비겁한 놈! 방금 승낙했잖아! 왜 이러는 건데?”황보추가 절규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권력, 지위, 명성은 모두 그의 것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유진우가 차가운 눈길로 말했다.“난 좋은 사람은 못 되어도 짐승 새끼까진 아니야. 이봐, 이자를 때려 기절시킨 뒤 끌고 가. 내일 아침 공개처형이다!”...다음 날 새벽.풍우 산장 문가.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현무문, 음양종, 진혼파 등 각 세력과 파벌들이 모두 소식을 듣고 모여들었다. 강남과 강북 무사 연맹의 맹주들과 원로들도 분분히 이곳을 찾아왔다. 인여궁 사람들도 구경에 열을 올렸다.7일이 지났으니 이젠 황보용명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낼 때였다.“송 맹주님, 최근 유진우의 소식이 들리지 않는데, 죄를 인정하기로 마음먹은 걸까요?”인파의 맨 앞줄에 선 소홍도가 흥미진진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송만규가 딱딱하게 물었다.“소 맹주님,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이십니다?”“오해입니다, 소년 마스터의 명성이 자자한데, 저도 이런 천재는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황보용명 선배님의 죽음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말씀하시기 전에 웃음기부터 거두시죠?”“제가 그랬나요? 아닌데요.”소홍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계속해서 미소 지었다. 유진우가 강북 무사 연맹의 사람이었다면 주저 없이 그를 지켰겠으나, 그는 하필이면 강남의 무사였고, 그를 살려뒀다간 추후 큰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 풍우 산장 문가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 끝도 없는 인파가 풍우 산장으로 몰려들었다.사람들이 모두 도착했다. 유진우를 처리하려는 사람들, 구경꾼들, 그의 적수들까지.유진우가 이 고비만 잘 넘기면 이제 탄탄대로를 걸으리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희대의 천재 한 명이 몰락하고 말 것이었다.“유진우! 안에 있는 거 알아. 약속한 7일이 지났으니 이제 나와서 순순히 죽어줘!”황보 가문의 사람들이 크게 소리쳤다.쾅!이때 문이 천천히 열리고 몇 사람을 거느린 유진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이렇게나 많이 왔어요? 북적북적하니 좋네요.”유진우는 천천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아닌 척하지 마! 내 할아버지를 죽였으니, 오늘은 너도 죽어줘야겠어!”황보곰이 씩씩거리며 말했다.“그래! 송 맹주님이 은혜를 베풀어 7일간 더 살려뒀지만, 오늘 죽음을 피하기는 어려울 거야!”이에 사람들이 하나둘 동조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황보용명을 존경했고, 한편으로는 유진우라는 이 소년 마스터를 질투했다.“유진우 씨, 억울하다고 해서 7일간 시간을 줬는데, 증거는 찾았습니까?”송만규가 물었다.“네, 범인을 찾았습니다.”“웃기시네! 네놈이 할아버지를 죽였잖아?”황보곰이 흥분해 말했다. 이에 유진우가 제스처를 취하며 평온하게 대답했다.“누가 범인인지는 곧 있으면 알게 될 겁니다.”유진우의 손짓과 함께 몸이 꽁꽁 묶인 채 복면이 씌워진 남자가 장 어르신에게 이끌려 나왔다.“흥! 아무 희생양이나 잡아 거짓으로 자백시키면 넘어가 줄 줄 알았어? 꿈 깨!”황보곰이 격분해 말했다. 황보춘도 차가운 표정으로 한 마디 더 얹었다.“유진우 씨!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어서 자백하세요. 쉽게 쉽게 갑시다!”“맞아요! 당장 자백해요!”황보 가문의 사람들이 분분히 거들었다. 모두 유진우가 희생양을 잡아 거짓 자백을 시킨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이 아닌데?“먼저 범인을 확인한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술렁댔다. 놀라움, 의문 등 많은 감정이 오갔지만, 그중에 가장 많은 건 의심이었다.“웃기지 마! 아빤 평생을 정정당당하게 살아오셨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경고하는데, 헛소리 하지 마!”황보곰이 소리쳤고 황보춘도 차갑게 말했다.“아버지를 해친 것도 모자라 이제 내 동생까지 모함하려 들다니, 이런 나쁜 놈!”“모함인지 아닌지는 황보추 씨가 직접 얘기하신답니다.”유진우는 황보추의 입에 쑤셔 넣은 재갈을 빼고는 그를 발로 퍽 차며 말했다.“어젯밤 있은 일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형님! 살려주세요! 어서요! 이 자식 절 잡아 각종 고문에 협박까지 했어요. 제가 자백하지 않으면 가문 전체를 죽이겠대요! 형님, 꼭 제 편을 들어주셔야 해요!”“개 같은 놈! 아직도 허튼짓이야?”장 어르신이 화가 나 손을 치켜들었지만, 유진우에게 제지당했다. 이 상황에서 때리기까지 한다면 더욱더 의심을 살 게 뻔했다.“유진우 씨! 정말 담이 크네요. 어서 셋째를 풀어줘요!”“당장 아버지를 풀어줘! 그렇지 않으면 이깟 산장 따위 싹 다 태워버릴 거야!”“풀어줘!”“풀어줘!”“풀어줘!”사람들이 흥분한 얼굴로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황보용명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 황보추를 희생양으로 세우다니, 양심이 없어도 분수가 있지!“뿌린 대로 거둔다더니, 결국 벌을 받는구나!”인여궁 사람들이 속이 시원한 듯 크게 외쳤다. 유진우가 어려움에 부닥칠수록 그녀들은 기뻐했다. 이제 전세를 뒤집기는 어려워 보였다. 무도 마스터면 뭐해? 이제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갈 일밖에 남지 않았는데.황보추가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하하하... 유진우, 경고했잖아? 나와 힘을 합친다면 죽을 일도 없었을 거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네 꼴을 봐. 공공의 적이 됐잖아? 네 선택에 따른 대가야! 어때? 절망적이지? 후회되지 않아? 내가 황보용명을 죽였는데, 그런데 뭐 어쩔 건데? 네가 날 잡았다 해도 그래서 뭐? 네 말을
쿵...땅에 떨어진 황보추의 머리를 본 모두가 조용해졌다. 방금까지도 소란스럽던 장내가 순간 고요해졌다.송만규와 소홍도 또한 깜짝 놀랐다. 황보 가문, 인여궁, 현무문, 음양종, 대비사, 진혼파 등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무사가 모두 입을 떡 벌렸다.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유진우가 이 정도로 무자비할 줄은 그 아무도 몰랐다.황보 가문이 보는 앞에서, 남북 무도 연맹이 보는 앞에서, 모든 무사가 주시하는 앞에서 황보추의 목을 잘라버렸다.이유도, 설명도 없이, 돼지를 잡는 백정처럼 깔끔하고 무자비한 손놀림이었다.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장내가 술렁거렸다.“유진우! 이렇게 공개적으로 살인을 해?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살인으로 입막음하려는 거잖아!”“네가 이런 놈이라는 건 세상 모두가 알아야 해!”“저놈을 죽여! 맹주님과 황보 가문의 복수를 해!”“...”사람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쳐댔다. 양아치인 건 알았지만 이런 짓을 하다니! 이런 놈은 남겨둘 수 없었다. 하루빨리 처리하는 게 현명하다!“이 자식, 스스로 제 무덤을 파네?”인여궁 사람들은 차갑게 웃으며 구경거리를 보는 듯 유진우를 쳐다봤다. 모두가 쳐다보는 앞에서 황보추를 죽이다니,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었다.정신을 차린 황보춘이 격분해 외쳤다.“짐승 같은 놈! 감히 셋째를 죽여? 오늘부로 황보 가문은 너와 전쟁이야!”“개자식! 아버지를 죽이다니, 오늘 너 죽고 나 죽자!”황보곰이 칼을 뽑아 들고 유진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가까이 가기도 전에 장 어르신의 주먹에 맞아 풀썩 쓰러졌다.“송 맹주님! 이 자식은 제 아버지를 죽였고, 이젠 제 동생까지 죽였습니다. 맹주로서 이런 놈을 가만히 내버려두실 겁니까?”황보춘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실력이 그보다 뛰어났다면 진작에 사람들을 이끌고 풍우 산장을 쓸어버렸을 것이다.“유진우 씨! 이러지 마세요! 이렇게 나오면 당신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어요!”송만규가 화난 듯 외
유진우는 사방을 둘러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모두 보셨죠? 황보추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맹주 자리에 앉기 위해 친아버지까지 죽인 사람입니다. 이런 짐승을 살려둬도 되겠습니까?”그 말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가장 큰 소리로 얘기하던 황보 가문 또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황보춘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황보곰이 중얼댔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 아빠가 할아버지를 죽였다고? 아니... 아니야!”자신의 아버지가 이런 짓을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권력과 지위를 위해서 천륜까지 거스르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난 유진우가 범인일 줄 알았는데, 황보 가문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난 거네.”“친아버지를 죽이다니, 짐승 같은 놈!”“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의리 넘치던 셋째 도련님이 이런 사람일 줄 누가 알았겠어?”사람들이 쑥덕거렸다.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은 황보 가문에게로 옮겨갔다.이때 백수정이 의심의 화살을 던졌다.“잠깐! 황보추의 힘이 아주 약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무도 마스터를 암살할 수 있어요?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맞아요! 마스터만이 마스터를 죽일 수 있는데, 황보추가 무슨 힘으로 마스터를 죽여요? 누군가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희생양으로 황보추를 세운 건 아니에요?”차연주가 질세라 말을 꺼냈다. 유진우가 이렇게 위기를 벗어나는 꼴은 죽어도 볼 수 없었다. 모함일지라도 어떻게든 죄를 덮어씌워야 했다.“맞아! 황보추 실력에 어떻게 맹주님을 다치게 하겠어?”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또다시 의심을 시작했다. 무도 마스터는 신과도 같은 존재라, 일반 마스터들은 그들을 다치게 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암살이라니?의심되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유진우는 인여궁 쪽을 힐긋 쳐다보고는 설명했다.“황보추 한 사람만으론 당연히 안 되죠. 맹주님을 직접 죽인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송만규가 인상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 누군데요?”“영살문 에이스 청부업자, 미야모토 코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