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아무 움직임도 없다고?”황보 저택의 정원에서 부하의 보고를 듣던 황보추가 의아해하며 물었다.“확실해?”“확실합니다.”부하가 진지하게 말했다.“저희가 온 하루 지켜봤는데 강린파의 제자들이 전부 풍우 산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이 자식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야?”황보추는 고민에 빠졌다. 며칠 동안 유진우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면서 조사를 펼쳤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 움직임도 없으니 당연히 의심할 만 했다.“넌 계속 지켜보고 있어. 새로운 소식 있으면 바로 보고해.”황보추가 분부했다.“알겠습니다.”부하는 대답한 후 바로 자리를 떠났다.사흘째 되는 날에도 강린파 제자들은 풍우 산장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여전히 술을 마시면서 즐겼다. 매일 하는 훈련 말고는 먹고 노는 것밖에 없어 정말 살맛이 났다.풍우 산장의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재난이 곧 닥칠 거라는 불안한 모습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황보추는 더욱 어리둥절했다.“X발, 유진우 이 자식 자포자기한 건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 마지막으로 마음껏 노는 거야?”하지만 황보추는 생각하면 할수록 의문이 풀리지 않아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아는 유진우는 절대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쉽게 포기했더라면 무도 마스터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했을 테니까.그런데 문제는 포기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틀 동안 아무 움직임도 없냐는 것이다. 혹시 뭔가를 알아챘나?“가서 꼼꼼하게 알아봐! 이 자식 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아야겠어.”황보추가 다시 한번 명을 내렸다.나흘째 되는 날에도 강린파 제자들은 여전히 두문불출했고 외부의 일 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다. 흥을 돋우려고 공연단을 불러 공연을 즐기기도 했는데 정말 하루하루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그리고 유진우는 사흘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강린파 제자들도 유진우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정말 증발한 것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그럴수록 황보추는 점점 불안하기만 했다. 맨날 오만가지
그날 저녁, 풍우 산장.순찰하는 제자들 말고 대부분의 강린파 제자들은 술에 잔뜩 취해 거의 인사불성이 되었다.그때 검은 옷차림을 한 열 명이 담장을 뛰어넘어 산장 내부를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이상하리만큼 날렵했고 마치 영혼처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강린파의 순찰팀은 그 어떤 수상한 움직임도 알아채지 못했다.그들 열 명은 전부 황보 가문에서 가장 강한 비밀 호위였다. 수많은 실력자 중에서 어렵게 고른 고수들이었고 엄격한 훈련을 거쳤다. 암살, 잠복, 정보 캐내기 등 임무 성공률이 항상 100%에 달했다.황보 가문이 탑 쓰리 중 하나라고 불리게 된 이유도 무도 마스터인 황보용명이 있어 그런 것도 있지만 비밀 호위의 공로도 빼먹을 수는 없었다. 비밀 호위는 황보 가문을 도와 앞길을 막는 장애물을 제거해 주었고 적을 두려움에 떨게 했기에 그 공로가 상당했다.“바로 여기입니다.”여기저기 찾아다니던 비밀 호위들이 드디어 영령전 근처에 도착했다.영령전 문 앞에 강린파 제자 두 팀이 지키고 있었고 가끔 순찰팀도 지나갈 정도로 경계가 아주 삼엄했다.두 비밀 호위 팀장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다가 각각 향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파란 연기가 피어오를 무렵 비밀 호위 열 명은 코와 입을 막고 숨을 죽였다. 바람 때문에 파란 연기가 순식간에 영령전 문 앞까지 날아갔다.숨을 몇 번 들이쉬자 문 앞을 지키던 강린파 제자들이 전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순찰팀이 5분에 한 번씩 돌아다니니까 빨리 움직여야 해!”명이 떨어지자 비밀 호위 10명은 바로 영령전으로 들어가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영령전이 아주 크고 널찍했다. 가지런히 놓인 위패 앞에 커다란 향로가 하나 놓여있었다.“찾았습니다.”3분 후, 한 비밀 호위가 누군가의 위패 밑에서 숨겨진 곳을 발견했다. 열어보니 안에 검은 비단 주머니가 있었다.비밀 호위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재빠르게 어둠 속에서 사라졌다.그 시각 영
“시신에 증거가 있어? 죽기 전에 남긴 거라고?”황보추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시신을 처리할 때 한 번 꼼꼼히 살펴보았었는데 이상한 점이라곤 없었다.‘혹시... 내가 뭘 놓쳤나?’“애들 몇 명 불러서 당장 뒷산으로 가야겠다. 오늘 밤에 관을 열어서 시신을 다시 살펴봐야겠어.”황보추는 잠깐 생각한 후 결정을 내렸다. 혹시라도 뭔가 놓친 게 있다면 큰일이다. 하여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틈에 시신을 없애서 증거를 인멸해야 했다.30분 후, 황보추는 한 무리 심복들과 함께 몰래 뒷산에 왔다.이곳은 황보 가문 사람들을 묻은 곳인데 황보용명도 죽은 후 이곳에 안치되었다. 황보용명의 묘를 찾은 황보추는 먼저 절을 한 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아버지, 죄송해요. 아들이 한 번만 더 실례하겠습니다.”그러고는 손을 흔들었다.“당장 파!”황보추의 명이 떨어지자 한 무리의 심복들이 묘를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도 채 되지 않아 관을 꺼냈다.그때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사람들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져 몸을 파르르 떨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고는 찔리는 게 있는 표정으로 목을 움츠린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멍하니 서서 뭐 해? 뚜껑 빨리 열어!”황보추가 낮은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이렇게 된 이상 더는 돌아갈 수도 없었다.“열어!”사람들은 이를 꽉 깨물고 관 뚜껑을 열었다.황보용명이 수의를 입은 채 관속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얼굴이 시퍼런 게 전혀 편해 보이질 않았다.“아버지... 죄송해요.”황보추는 침을 꿀꺽 삼킨 후 관속으로 뛰어들어가 여기저기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 번이고 뒤져봤지만 그 어떤 수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입 안, 콧구멍 안, 머리카락, 손톱 밑까지 전부 자세히 살폈지만 깨끗했고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증거는? 왜 없어?”조급해진 황보추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아무것도 찾지 못할수록 더욱 당황했다.“이봐요.”그때 누군가 한 손으로 황보추의 어깨를 툭툭 쳤다.“X발
“거기 서! 경고하는데 함부로 하지 마. 난 황보 가문의 아들이야!”황보추는 뒷걸음질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자기 아버지마저 죽인 사람이 뻔뻔스럽게 그런 소리를 해?”유진우는 그를 경멸스럽게 쳐다보았다.“오늘 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결과가 어떨 것 같아?”“비밀 호위, 저 자식을 죽여버려!”황보추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이런 순간에도 황보추는 싹 다 죽여버리려 했다. 그런데 주변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고 가끔 바람 소리만 들렸다.“비밀 호위! 비밀 호위!”조급해진 황보추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당신 심복들은 다 여기 있어.”장 어르신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람 머리 두 개를 들고 어둠 속에서 달빛이 비치는 환한 곳으로 걸어왔다. 그가 머리를 툭 던지자 데굴데굴 굴러서 황보추의 발밑에 멈췄다. 깜짝 놀란 황보추의 표정이 급변했다.“황보추, 당신은 이미 독 안에 든 쥐야. 절대 도망 못 가. 아직 할 얘기 더 남았어?”유진우가 냉랭하게 말했다.“잠깐!”상황이 여의치 않자 황보추가 갑자기 머리를 굴렸다.“유진우, 영원한 적은 없고 영원한 이익만 있다고 했어. 이 일 우리 아직 협상할 여지가 있어.”“어떻게 협상할 건데?”유진우의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손을 잡자! 손을 잡으면 되지.”황보추가 침을 꿀꺽 삼켰다.“황보 가문은 재산이 아주 많아. 내가 가주 자리에 앉는 걸 도와주면 재산 절반을 너에게 줄게. 그때가 되면 넌 원하는 걸 뭐든지 다 얻을 수 있어. 어때?”“내가 지금 살인죄를 뒤집어쓴 건 어떻게 해결할 건데?”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그거야 쉽지. 아무 희생양이나 찾으면 돼.”황보추의 안색이 금세 환해졌다. 유진우의 마음이 흔들린 줄 알고 재빨리 말했다.“나와 손만 잡으면 가문 내에서 아무나 찾아 희생양으로 만들면 돼. 그러면 넌 아무 일 없을 거야.”“아주 괜찮은 생각인 것 같네.”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 역시 넌 큰일을 할 사람이라니까.”황보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계속 유
황보추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그 영감탱이 얘기 하지 마. 지금은 우리가 힘을 합치는 게 제일 중요해. 날 밀어준다면 며칠 안에 황보 가문을 먹어버릴 수 있어.”“내가 언제 너와 힘을 합친댔어?”“응? 이 조건 혹하지 않아?”“친아버지도 가차 없이 죽이는 너 같은 짐승이랑 합작하는 건 내 명성만 망칠 뿐이야. 네가 한 모든 짓을 이미 모두에게 알렸으니 얌전히 죽을 준비나 해.”유진우가 차갑게 말하며 손을 휙 저었다. 이를 본 장 어르신이 쏜살같이 달려가 황보추를 넘어뜨렸다.“비겁한 놈! 방금 승낙했잖아! 왜 이러는 건데?”황보추가 절규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권력, 지위, 명성은 모두 그의 것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유진우가 차가운 눈길로 말했다.“난 좋은 사람은 못 되어도 짐승 새끼까진 아니야. 이봐, 이자를 때려 기절시킨 뒤 끌고 가. 내일 아침 공개처형이다!”...다음 날 새벽.풍우 산장 문가.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현무문, 음양종, 진혼파 등 각 세력과 파벌들이 모두 소식을 듣고 모여들었다. 강남과 강북 무사 연맹의 맹주들과 원로들도 분분히 이곳을 찾아왔다. 인여궁 사람들도 구경에 열을 올렸다.7일이 지났으니 이젠 황보용명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낼 때였다.“송 맹주님, 최근 유진우의 소식이 들리지 않는데, 죄를 인정하기로 마음먹은 걸까요?”인파의 맨 앞줄에 선 소홍도가 흥미진진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송만규가 딱딱하게 물었다.“소 맹주님,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이십니다?”“오해입니다, 소년 마스터의 명성이 자자한데, 저도 이런 천재는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황보용명 선배님의 죽음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말씀하시기 전에 웃음기부터 거두시죠?”“제가 그랬나요? 아닌데요.”소홍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계속해서 미소 지었다. 유진우가 강북 무사 연맹의 사람이었다면 주저 없이 그를 지켰겠으나, 그는 하필이면 강남의 무사였고, 그를 살려뒀다간 추후 큰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 풍우 산장 문가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 끝도 없는 인파가 풍우 산장으로 몰려들었다.사람들이 모두 도착했다. 유진우를 처리하려는 사람들, 구경꾼들, 그의 적수들까지.유진우가 이 고비만 잘 넘기면 이제 탄탄대로를 걸으리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희대의 천재 한 명이 몰락하고 말 것이었다.“유진우! 안에 있는 거 알아. 약속한 7일이 지났으니 이제 나와서 순순히 죽어줘!”황보 가문의 사람들이 크게 소리쳤다.쾅!이때 문이 천천히 열리고 몇 사람을 거느린 유진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이렇게나 많이 왔어요? 북적북적하니 좋네요.”유진우는 천천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아닌 척하지 마! 내 할아버지를 죽였으니, 오늘은 너도 죽어줘야겠어!”황보곰이 씩씩거리며 말했다.“그래! 송 맹주님이 은혜를 베풀어 7일간 더 살려뒀지만, 오늘 죽음을 피하기는 어려울 거야!”이에 사람들이 하나둘 동조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황보용명을 존경했고, 한편으로는 유진우라는 이 소년 마스터를 질투했다.“유진우 씨, 억울하다고 해서 7일간 시간을 줬는데, 증거는 찾았습니까?”송만규가 물었다.“네, 범인을 찾았습니다.”“웃기시네! 네놈이 할아버지를 죽였잖아?”황보곰이 흥분해 말했다. 이에 유진우가 제스처를 취하며 평온하게 대답했다.“누가 범인인지는 곧 있으면 알게 될 겁니다.”유진우의 손짓과 함께 몸이 꽁꽁 묶인 채 복면이 씌워진 남자가 장 어르신에게 이끌려 나왔다.“흥! 아무 희생양이나 잡아 거짓으로 자백시키면 넘어가 줄 줄 알았어? 꿈 깨!”황보곰이 격분해 말했다. 황보춘도 차가운 표정으로 한 마디 더 얹었다.“유진우 씨!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어서 자백하세요. 쉽게 쉽게 갑시다!”“맞아요! 당장 자백해요!”황보 가문의 사람들이 분분히 거들었다. 모두 유진우가 희생양을 잡아 거짓 자백을 시킨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이 아닌데?“먼저 범인을 확인한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술렁댔다. 놀라움, 의문 등 많은 감정이 오갔지만, 그중에 가장 많은 건 의심이었다.“웃기지 마! 아빤 평생을 정정당당하게 살아오셨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경고하는데, 헛소리 하지 마!”황보곰이 소리쳤고 황보춘도 차갑게 말했다.“아버지를 해친 것도 모자라 이제 내 동생까지 모함하려 들다니, 이런 나쁜 놈!”“모함인지 아닌지는 황보추 씨가 직접 얘기하신답니다.”유진우는 황보추의 입에 쑤셔 넣은 재갈을 빼고는 그를 발로 퍽 차며 말했다.“어젯밤 있은 일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형님! 살려주세요! 어서요! 이 자식 절 잡아 각종 고문에 협박까지 했어요. 제가 자백하지 않으면 가문 전체를 죽이겠대요! 형님, 꼭 제 편을 들어주셔야 해요!”“개 같은 놈! 아직도 허튼짓이야?”장 어르신이 화가 나 손을 치켜들었지만, 유진우에게 제지당했다. 이 상황에서 때리기까지 한다면 더욱더 의심을 살 게 뻔했다.“유진우 씨! 정말 담이 크네요. 어서 셋째를 풀어줘요!”“당장 아버지를 풀어줘! 그렇지 않으면 이깟 산장 따위 싹 다 태워버릴 거야!”“풀어줘!”“풀어줘!”“풀어줘!”사람들이 흥분한 얼굴로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황보용명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 황보추를 희생양으로 세우다니, 양심이 없어도 분수가 있지!“뿌린 대로 거둔다더니, 결국 벌을 받는구나!”인여궁 사람들이 속이 시원한 듯 크게 외쳤다. 유진우가 어려움에 부닥칠수록 그녀들은 기뻐했다. 이제 전세를 뒤집기는 어려워 보였다. 무도 마스터면 뭐해? 이제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갈 일밖에 남지 않았는데.황보추가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하하하... 유진우, 경고했잖아? 나와 힘을 합친다면 죽을 일도 없었을 거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네 꼴을 봐. 공공의 적이 됐잖아? 네 선택에 따른 대가야! 어때? 절망적이지? 후회되지 않아? 내가 황보용명을 죽였는데, 그런데 뭐 어쩔 건데? 네가 날 잡았다 해도 그래서 뭐? 네 말을
쿵...땅에 떨어진 황보추의 머리를 본 모두가 조용해졌다. 방금까지도 소란스럽던 장내가 순간 고요해졌다.송만규와 소홍도 또한 깜짝 놀랐다. 황보 가문, 인여궁, 현무문, 음양종, 대비사, 진혼파 등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무사가 모두 입을 떡 벌렸다.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유진우가 이 정도로 무자비할 줄은 그 아무도 몰랐다.황보 가문이 보는 앞에서, 남북 무도 연맹이 보는 앞에서, 모든 무사가 주시하는 앞에서 황보추의 목을 잘라버렸다.이유도, 설명도 없이, 돼지를 잡는 백정처럼 깔끔하고 무자비한 손놀림이었다.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장내가 술렁거렸다.“유진우! 이렇게 공개적으로 살인을 해?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살인으로 입막음하려는 거잖아!”“네가 이런 놈이라는 건 세상 모두가 알아야 해!”“저놈을 죽여! 맹주님과 황보 가문의 복수를 해!”“...”사람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쳐댔다. 양아치인 건 알았지만 이런 짓을 하다니! 이런 놈은 남겨둘 수 없었다. 하루빨리 처리하는 게 현명하다!“이 자식, 스스로 제 무덤을 파네?”인여궁 사람들은 차갑게 웃으며 구경거리를 보는 듯 유진우를 쳐다봤다. 모두가 쳐다보는 앞에서 황보추를 죽이다니,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었다.정신을 차린 황보춘이 격분해 외쳤다.“짐승 같은 놈! 감히 셋째를 죽여? 오늘부로 황보 가문은 너와 전쟁이야!”“개자식! 아버지를 죽이다니, 오늘 너 죽고 나 죽자!”황보곰이 칼을 뽑아 들고 유진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가까이 가기도 전에 장 어르신의 주먹에 맞아 풀썩 쓰러졌다.“송 맹주님! 이 자식은 제 아버지를 죽였고, 이젠 제 동생까지 죽였습니다. 맹주로서 이런 놈을 가만히 내버려두실 겁니까?”황보춘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실력이 그보다 뛰어났다면 진작에 사람들을 이끌고 풍우 산장을 쓸어버렸을 것이다.“유진우 씨! 이러지 마세요! 이렇게 나오면 당신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어요!”송만규가 화난 듯 외
조이준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미지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바로 땅에서 오령정을 줍고 있었다.이것들은 천금 같은 보물이어서 팔든 직접 사용하든 모두 좋은 선택이었다.“오령정? 이게 모두 오령정이라고?”“어서 와. 빨리 주워.”이 순간 많은 사람이 땅 위에 널려 있는 검은 결정체의 정체를 알고 하나둘씩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더라도 모두가 빼앗는 것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쟁탈 대열에 합류했다.“이 오령정은 내가 먼저 본 거야, 이리 내놔.”“헛소리 집어치워, 지금은 내 손에 있으니 바로 내 것이야. 인정하기 싫으면 한판 붙던가.”“제기랄, 누가 감히 나한테서 뺏어간다면 다 죽을 줄 알아.”이익이 있는 곳에는 항상 싸움이 따르기 마련이다.오령정의 가치를 알게 된 후 각 세력은 미친 듯이 경쟁하기 시작했으며 실력이 강한 사람은 몇 개를 더 얻을 수 있었고 실력이 약한 사람은 남은 찌꺼기만 조금 주워가며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유감없이 정교하게 보여주었다.만약 양측의 실력이 모두 강하고 아무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면 큰 싸움으로 승패를 나누었고 불과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바로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화롭던 곳에서 이미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했다.“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네.”사방에서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것을 본 이청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겨우 몇 조각의 오령정으로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싸우다니, 만약 이보다 더 가치 있는 보물이 나온다면 또 어떤 장면일까?“이봐요,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을 내놔요. 아니면 제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세요.”그때 갑자기 두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청성이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에 시선을 고정하며 앞뒤로 그녀를 에워싸면서 말했다.“어디서 감히 아가씨를 협박해! 너희들 다 뒤지고 싶어?”상황을 목격한 이청성 주변에 있던 근위병들은 바로 칼을 빼 들며 말했다.그들은 모두 반은 종사급 고수들이니 무림인들의 세계 부하들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
갑작스러운 폭발에 모두가 깜짝 놀랐고 에너지파가 휩쓸면서 적지 않은 무사들이 사방으로 날려 아수라장이 되었다.다행히 서지석과 제자들이 빨리 달린 탓에 피해를 면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했더라면 그들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모든 먼지가 다 떨어질 때쯤 다들 시선을 집중하고 보니 마을 이장의 집은 이미 평지로 변해 있었고 사방의 무너진 담벼락에 의해 온 땅이 어질러져 있었다.허공에 매달렸던 바람은 나무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곤룡띠만 덩그러니 땅에 떨어져 있었으며 그 외에도 땅에는 정체 모를 검은 결정체들이 마치 조약돌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유진우는 분명히 바람의 몸이 폭발하면서 튀어나온 물건이라고 확신했다.결정체에서 나오는 피비린내는 아마도 혈액에 의해 녹아서 나는 냄새일 것이고 정상인의 피는 액체 상태이지만 바람이 죽기 전의 피는 고체 상태로 결정체가 되어버렸으니 확실히 이상한 점들이 있어 보였다.유진우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식견이 넓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바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그의 인식을 뛰어넘었다.처음에는 이유 없이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그 뒤로 신체 소질이 갑자기 배로 강해져 고통과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마리의 미친 짐승과도 같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의 몸에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날카로운 이빨, 칼날 같은 손톱, 갑자기 몸에 생겨난 검은 비늘은 칼로도 베기 힘들 정도였고 총적으로 바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보였으며 현재 땅에 널려진 검은색 고체 상태의 결정체들만으로도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도대체 무엇이 바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도 바람은 모든 면에서 정상이었는데 왜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렇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인지.혹시 그가 뭐라도 빠뜨린 것이라도 있었는지.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하였고 비록 무슨 원인인지 모르지만 바람이 짐승처럼 변한 것은 분명 그 괴상한 오아시스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안타깝게도 바람은 이미 죽었으니 더
자부심이 강하고 지려고 하지 않는 성격의 조이준은 몇 번이고 거절당한 유진우한테 다소 불만이 있었지만 생사를 가를 때가 되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고 더는 조르지도 않았다.“당신들은 여기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얼른 가서 서지석 씨를 도와줘요.”유진우는 머리를 돌려 가만히 서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을 보고 말했다.그때 서지석은 한창 미쳐 발광하는 바람과 싸우고 또 싸우고 있었다.다만 기력이 소모됨에 따라 서지석은 속도와 힘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었고 반면, 바람은 여전히 힘이 넘쳤고 지칠 줄을 몰랐다.이대로라면 서지석은 얼마 못 버티고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빨리 대선배를 도우러 가요.”금도문의 몇 명 제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곧 칼을 빼 들고 앞으로 돌진하려 했다.“잠깐만요, 이걸 가지고 가요.”그때 이청성은 갑자기 금빛 밧줄을 꺼내며 금도문 제자에게 던져주었다.이 금색 밧줄은 매우 단단했고 표면에 은은한 빛이 돌고 있어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뭐죠?”금색 밧줄을 본 조이준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며 물었다.“이것은 말로만 듣던 곤룡띠가 아니에요?”“조 선배님 눈썰미가 참 대단하시네요.”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뭐라고요? 곤룡띠라고요?”곤룡띠에 대해 들은 적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은 그 가치를 알고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곤룡띠는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유명한 보물로 매우 보기 드문 물건이었고 어떠한 칼로도 상처를 내기 힘들고 물과 불에도 쉽게 손상되지 않으며 매우 단단하고 질긴 것으로 설령 무도 종사를 묶어 두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다만 곤룡띠는 너무 희귀해서 무림인들의 세계에서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게다가 가진 자는 모두 최고의 대문 파인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여인이 이런 보물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이 여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그만 쳐다보고 빨리 서지석 씨를 도우러 가요.”이청성은 재촉하며 말했다.“네, 그래야죠.”금도문 제자들은 잠깐 꿈에서 깨어난 듯 그제야 정신을
툭!손이현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마치 공처럼 몇 바퀴 굴러다니더니 마침 몇몇 금도문 제자들의 발밑에서 멈추었다.이 상황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손이현은 죽기 전까지도 자신이 미쳐 날뛰는 바람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던 유진우에게 목이 잘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손이현은 도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총잡이 원호를 사부로 모시고 있었으며 배경이 좋아 앞길도 창창하였고 죽음의 사막으로 온 이유는 보물을 찾아 내공을 높여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리려는 목적이었다.자신은 분명 주인공이 될 운명이었고 여태까지 운수가 좋았으며 이번에도 제일 먼저 보물을 찾아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고 작은 마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이 끊어질 줄이야.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어!손이현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고 그의 휘황찬란한 인생은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고 또 뜻밖의 인연이 끊기지 않아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다.사부님 원호의 말대로라면 그의 무도 재능은 미래의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온 천하가 존경하는 최고의 강자로 되였을 것이다.그렇게 아름다운 꿈이었고 그리워했던 일이었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되어 버렸다.‘알고 보니 나는 주역이 아니었고 천명이 아니었으며 결국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후회의 외침 속에서 손이현의 의식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이게 뭐야?”땅에 떨어진 손이현의 머리를 마주한 몇몇 금도문의 제자들은 너무 놀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바로 전에 그들이 가까스로 위험에서 구해낸 손이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가 분리된 상태로 눈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어떻게 된 거지?몇몇 사람이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니 유진우의 손에 든
“너... 이놈!”손이현이 막 맞서려고 할 때 앞에서 갑자기 짐승 같은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눈여겨보니 바람은 이미 사납게 덮쳐오고 있었고 손발을 함께 사용하여 빠르게 달리며 매번 땅을 디딜 때마다 손톱이 땅에 맞닿으며 몇 줄의 깊은 흔적까지 남겼고 그 날카로운 정도가 강철 칼날에 불과했다.“거기 누구 없어? 빨리 날 구해줘! 이 괴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손이현은 안색이 크게 어두워지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야, 이 제기랄.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손이현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흉악한 얼굴로 유진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유진우는 꿈쩍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진우 씨, 지금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요. 손이현이 죽으면 안 돼요.”옆에 있던 서지석이 급해하며 말했다.“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유진우는 여전히 움직이지도 않았다.“됐어요, 됐어요. 보아하니 제가 손을 쓸 수밖에 없겠네요.”유진우가 너무 고집을 부리자 서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칼을 뽑아 들고 직접 손이현을 구하러 나섰다.하지만 실력이 자신보다 더 막강한 손이현도 바람을 굴복시킬 힘이 없는데 자신이 대신하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팍!바람은 피비린내에 이끌려 다시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죽이지 마, 날 죽이지 마.”손이현은 너무 놀라 바짓가랑이는 이미 다 젖어 있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버젓한 도명창마저 놀라 바지에 오줌을 쌀 지경이라니.“망할 놈, 그렇게 날뛰더니!”손이현이 갈기갈기 찢겨 부스러기가 될 뻔할 때 서지석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주며 바람과 혈투를 시작했다.바람의 신체가 더 크게 강화되어 그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서지석은 더는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바람은 이미 공격에 아무런 준비가 없이 이성을 잃었고 진기도 사용할 줄 몰랐기에 서지석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서지석은 민첩한 몸놀림과 함께 손에 쥔 보검으로 바람을 간신히 견제했다.그
“으르렁!”바람은 깊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왜곡된 얼굴, 송곳니로 가득한 입, 그리고 사나운 표정은 마치 악마의 형상처럼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그와 눈이 마주친 손이현은 놀란 나머지 온몸을 움찔했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버렸다.“야! 저기 누구! 어딜 가는 거야! 제발 나 좀 구해줘!”유진우가 등을 돌리고 가는 모습에 손이현은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져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바람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손이현은 싸움의 의지를 잃었다. 그의 눈에 비친 바람의 존재는 이제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콧대가 높으시잖아요? 내가 못된 마음을 품었다고 했죠? 그럼 저도 이제는 신경 끌 게요.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에게 더 이상 신경 쓸 가치를 느끼지 않았다. 손이현이 죽든 말든 그것은 유진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멈춰! 당장 멈춰! 내가 명령한다! 이 미친놈을 빨리 쫓아내!”손이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소리쳤다.하지만 유진우는 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도명창 손이현이야! 내 사부님은 서남 지방 5대 강자 중 하나인 원호야! 오늘 네가 내 목숨을 구하지 않으면 사부님은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손이현은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협박이라도 할 셈이었다.서남 지방에서 원호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다들 숨을 죽이기 마련이었다.“뭐? 원호? 그 사람은 서남 지방에서 실력이 상위 3위 안에 드는 존재잖아!”“손이현의 스승이 원호라니! 그가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이제 알겠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겠지.”“원호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기를 아끼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하다고 들었어. 만약 손이현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속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원호의 명성은 사막의 교룡보다도 더 위세를
“응?”손이현이 뒤를 돌아보자 한 줄기 차가운 빛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속도는 엄청나게 빨랐고 그와 함께 피의 비린내가 짙게 맴돌았다.공격을 가한 자는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나무에 박혀 몸을 움찔거리던 바람은 결국 두 손으로 창대를 붙잡고 비틀어 간신히 반 미터 정도 앞으로 몸을 끌어당겼다.그는 손이현에게 다가가며 그 날카로운 손톱을 펼쳐 내리치려 했다.그의 손톱은 마치 날 선 강철처럼 그 자체로도 무지하게 치명적이었다.“고작 이런 기술로 나를 공격하겠다고?”손이현은 갑작스레 다가오는 공격에 콧방귀를 끼며 팔을 휘둘렀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렸다.손이현의 진기가 바람의 손톱에 의해 가볍게 찢어졌다. 손목마저 그대로 잘려 나가서 뜨거운 피가 튀며 바닥에 떨어졌다.현장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다.“아악!”손이현은 떨어진 손목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가 곧이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바람의 손톱이 이렇게 날카롭고 강력할 줄을 말이다.한순간에 자신의 진기를 뚫고 손목을 자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내 손! 내 손!”손이현은 잘린 손을 붙잡고 고통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그는 바람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다. 바람은 그의 손목을 마치 두부를 베어내듯 손쉽게 잘라버렸다.갑작스레 다가온 공격에 손이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으르렁!”바람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톱을 휘둘러 창대를 부러뜨리고 속박에서 벗어났다.그리고 다시 포효하며 손이현을 향해 달려들었다.“안 돼... 가까이 오지 마!”손이현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바람의 손톱에 이미 트라우마가 생긴 듯했다.잘린 손목은 아픈 데다 창은 나무에 고정되어 있어 바람을 제대로 막아낼 수도 없었다.그는 그저 극심한 통증 속에서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바람을 죽여버려야 했다.바람은 폭주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너무 공포 그 자체였다.
바람은 그로 인해 계속 후퇴하며 포효했다.그는 이미 폭주한 상태였고 진기라는 보호막조차 거두어낸 채 오직 육체만으로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다.그리하여 손이현의 날카로운 창끝이 바람을 찔러대며 그의 온몸을 갈기갈기 베어가자 그의 피는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다.모두가 바람이 이번엔 쓰러질 거라 생각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바람은 고통을 모르는 듯 자신에게 난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또다시 미친 듯이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가장 두려운 점은 그의 상처가 눈에 띄게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그의 회복력은 그 자체로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놀라웠다.“흥! 죽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는군! 한 방에 너를 끝장내겠다!”바람이 다시 달려들었으나 손이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긴 창을 한 손에 쥐고 떨자 은색 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주위를 밝게 밝혔다.“이 창이 세상을 놀라게 하리!”손이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창을 뒤로 당기곤 그것을 무자비하게 앞으로 내질렀다.윙!웅장한 소리가 들렸다.그 순간, 창끝에서 은빛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지며 마치 하늘을 가르는 용처럼 바람을 향해 돌진했다.그의 일격은 너무나 빠르고 강력하여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와, 정말 멋진 창법이야! 기세가 정말 무서워!”“이게 바로 도명창의 실력인가? 역시 대단해!”“이 창 한 방이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바람은 이제 끝장났다고 봐야지!”사람들은 손이현이 내뿜은 은빛용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경외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그들은 손이현의 이름을 익히 들어왔지만 그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이번에야 비로소 도명창 손이현의 위력을 깊이 체감하게 된 것이다.“으르렁!”손정의 공격을 마주한 바람은 여전히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정면으로 돌진했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려 퍼지며 손이현의 은빛 창이 바람의 배를 뚫고 들어갔다.창끝이 그의 배를 관통하고 몸을 뚫고 지나가며 온몸을 꿰뚫었다.하지만 기이하게도 창끝에 묻은 피는
“큰일이에요! 금실망이 곧 터질 거 같아요!”그때, 누군가가 외쳤다.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실망에 갇힌 바람은 거대한 존재로 변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그의 온몸은 검은 문양에 휩싸이게 되었다.그의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치솟았고 손톱은 뾰족하게 변했다. 그의 눈은 붉은빛에서 칠흑처럼 깊고 검은색으로 변했으며 입에서는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그르렁! 으르렁! 크아악!”바람의 포효는 점점 더 커져갔고 그 표정 또한 야수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졌다.그의 등은 천천히 부풀어 올랐으며 팽팽하게 펴진 금실망을 한 줄, 한 줄씩 찢어 나갔다.“으르렁!”바람은 또 한 번 포효했다.그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금실망을 움켜잡고 힘껏 찢었다.“쾅!”튼튼한 금실망이 그대로 두 동강 나며, 거대한 틈이 벌어졌다.금실망을 잡고 있던 청년들은 그 힘에 순간적으로 밀려나며 바닥에 쓰러졌다.“큰일 났다! 이 미친놈이 나왔어!”“빨리! 빨리 그를 막을 방법을 찾아!”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급한 대로 줄을 꺼내 바람을 다시 묶으려 했다.“으르렁!”바람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그의 근육질 몸체를 한 번 더 흔들어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그러자 거대한 밧줄들이 순식간에 부러지며 바람을 막을 힘이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막을 수 없어! 모두 도망쳐!”마을의 청년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빠진 채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바람이 방금 전 마을 사람들을 처참히 무찌르던 그 장면이 눈앞에 떠올라 다시 그에게 다가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이 괴물 같은 존재를 상대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쓸모없는 놈들! 내가 나서마!”그때 갑자기 청색 의복을 입은 한 남자가 군중 속에서 솟구쳐 나와 바람 앞을 가로막았다.긴 창을 든 그 남자는 바람 앞에 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내뿜는 기세는 마치 고요한 폭풍처럼 강렬했다.“봐! 손이현이야!”“손이현? 서남 지역에서 명성을 떨친 도명창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