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술렁댔다. 놀라움, 의문 등 많은 감정이 오갔지만, 그중에 가장 많은 건 의심이었다.“웃기지 마! 아빤 평생을 정정당당하게 살아오셨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경고하는데, 헛소리 하지 마!”황보곰이 소리쳤고 황보춘도 차갑게 말했다.“아버지를 해친 것도 모자라 이제 내 동생까지 모함하려 들다니, 이런 나쁜 놈!”“모함인지 아닌지는 황보추 씨가 직접 얘기하신답니다.”유진우는 황보추의 입에 쑤셔 넣은 재갈을 빼고는 그를 발로 퍽 차며 말했다.“어젯밤 있은 일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형님! 살려주세요! 어서요! 이 자식 절 잡아 각종 고문에 협박까지 했어요. 제가 자백하지 않으면 가문 전체를 죽이겠대요! 형님, 꼭 제 편을 들어주셔야 해요!”“개 같은 놈! 아직도 허튼짓이야?”장 어르신이 화가 나 손을 치켜들었지만, 유진우에게 제지당했다. 이 상황에서 때리기까지 한다면 더욱더 의심을 살 게 뻔했다.“유진우 씨! 정말 담이 크네요. 어서 셋째를 풀어줘요!”“당장 아버지를 풀어줘! 그렇지 않으면 이깟 산장 따위 싹 다 태워버릴 거야!”“풀어줘!”“풀어줘!”“풀어줘!”사람들이 흥분한 얼굴로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황보용명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 황보추를 희생양으로 세우다니, 양심이 없어도 분수가 있지!“뿌린 대로 거둔다더니, 결국 벌을 받는구나!”인여궁 사람들이 속이 시원한 듯 크게 외쳤다. 유진우가 어려움에 부닥칠수록 그녀들은 기뻐했다. 이제 전세를 뒤집기는 어려워 보였다. 무도 마스터면 뭐해? 이제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갈 일밖에 남지 않았는데.황보추가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하하하... 유진우, 경고했잖아? 나와 힘을 합친다면 죽을 일도 없었을 거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네 꼴을 봐. 공공의 적이 됐잖아? 네 선택에 따른 대가야! 어때? 절망적이지? 후회되지 않아? 내가 황보용명을 죽였는데, 그런데 뭐 어쩔 건데? 네가 날 잡았다 해도 그래서 뭐? 네 말을
쿵...땅에 떨어진 황보추의 머리를 본 모두가 조용해졌다. 방금까지도 소란스럽던 장내가 순간 고요해졌다.송만규와 소홍도 또한 깜짝 놀랐다. 황보 가문, 인여궁, 현무문, 음양종, 대비사, 진혼파 등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무사가 모두 입을 떡 벌렸다.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유진우가 이 정도로 무자비할 줄은 그 아무도 몰랐다.황보 가문이 보는 앞에서, 남북 무도 연맹이 보는 앞에서, 모든 무사가 주시하는 앞에서 황보추의 목을 잘라버렸다.이유도, 설명도 없이, 돼지를 잡는 백정처럼 깔끔하고 무자비한 손놀림이었다.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장내가 술렁거렸다.“유진우! 이렇게 공개적으로 살인을 해?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살인으로 입막음하려는 거잖아!”“네가 이런 놈이라는 건 세상 모두가 알아야 해!”“저놈을 죽여! 맹주님과 황보 가문의 복수를 해!”“...”사람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쳐댔다. 양아치인 건 알았지만 이런 짓을 하다니! 이런 놈은 남겨둘 수 없었다. 하루빨리 처리하는 게 현명하다!“이 자식, 스스로 제 무덤을 파네?”인여궁 사람들은 차갑게 웃으며 구경거리를 보는 듯 유진우를 쳐다봤다. 모두가 쳐다보는 앞에서 황보추를 죽이다니,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었다.정신을 차린 황보춘이 격분해 외쳤다.“짐승 같은 놈! 감히 셋째를 죽여? 오늘부로 황보 가문은 너와 전쟁이야!”“개자식! 아버지를 죽이다니, 오늘 너 죽고 나 죽자!”황보곰이 칼을 뽑아 들고 유진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가까이 가기도 전에 장 어르신의 주먹에 맞아 풀썩 쓰러졌다.“송 맹주님! 이 자식은 제 아버지를 죽였고, 이젠 제 동생까지 죽였습니다. 맹주로서 이런 놈을 가만히 내버려두실 겁니까?”황보춘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실력이 그보다 뛰어났다면 진작에 사람들을 이끌고 풍우 산장을 쓸어버렸을 것이다.“유진우 씨! 이러지 마세요! 이렇게 나오면 당신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어요!”송만규가 화난 듯 외
유진우는 사방을 둘러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모두 보셨죠? 황보추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맹주 자리에 앉기 위해 친아버지까지 죽인 사람입니다. 이런 짐승을 살려둬도 되겠습니까?”그 말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가장 큰 소리로 얘기하던 황보 가문 또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황보춘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황보곰이 중얼댔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 아빠가 할아버지를 죽였다고? 아니... 아니야!”자신의 아버지가 이런 짓을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권력과 지위를 위해서 천륜까지 거스르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난 유진우가 범인일 줄 알았는데, 황보 가문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난 거네.”“친아버지를 죽이다니, 짐승 같은 놈!”“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의리 넘치던 셋째 도련님이 이런 사람일 줄 누가 알았겠어?”사람들이 쑥덕거렸다.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은 황보 가문에게로 옮겨갔다.이때 백수정이 의심의 화살을 던졌다.“잠깐! 황보추의 힘이 아주 약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무도 마스터를 암살할 수 있어요?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맞아요! 마스터만이 마스터를 죽일 수 있는데, 황보추가 무슨 힘으로 마스터를 죽여요? 누군가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희생양으로 황보추를 세운 건 아니에요?”차연주가 질세라 말을 꺼냈다. 유진우가 이렇게 위기를 벗어나는 꼴은 죽어도 볼 수 없었다. 모함일지라도 어떻게든 죄를 덮어씌워야 했다.“맞아! 황보추 실력에 어떻게 맹주님을 다치게 하겠어?”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또다시 의심을 시작했다. 무도 마스터는 신과도 같은 존재라, 일반 마스터들은 그들을 다치게 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암살이라니?의심되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유진우는 인여궁 쪽을 힐긋 쳐다보고는 설명했다.“황보추 한 사람만으론 당연히 안 되죠. 맹주님을 직접 죽인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송만규가 인상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 누군데요?”“영살문 에이스 청부업자, 미야모토 코지로입니다.”
“뭐? 황보춘이라고?”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황보 가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아니겠지? 황보춘은 인품 좋고, 정직하기로 소문났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꾸밀 수가 있어?”“내 생각도 그래. 황보춘은 모두가 인정하는 보살이잖아.”“뭔가 잘못된 거 아냐?”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황보 가문 4대 호걸 중 대외의 평가가 가장 좋은 사람이 바로 황보춘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사교성이 좋고 의리가 있어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다. 거지가 찾아온다 해도 한 끼 푸짐히 먹일 사람이었다. 그의 인품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황보춘은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화를 내기 시작했다.“무슨 소립니까? 유진우 씨! 난 당신과 엮인 적이 없는데, 왜 저를 모함하는 겁니까?”“모함인지 아닌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아실 테지요. 황보추는 머리보다 의욕이 앞서는 사람인데, 홀로 맹주님의 암살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제게 죄까지 덮어씌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황보추는 그럴만한 그릇이 못 됩니다.”황보추가 함정에 빠지고부터 스스로 자백할 때까지 보여준 모습은 너무 허술했다. 그런 그가 스스로 이토록 치밀한 암살을 준비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사건을 자세히 조사했더니 역시나 배후가 있었다.황보춘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말 잘 맞추시죠. 언제는 셋째, 언제는 미야모토 코지로라더니, 이젠 제게 죄를 덮어씌우는 겁니까? 대체 뭐 하는 짓이에요?”“자식! 허튼소리 말아! 족장님을 모함한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황보 가문 사람들이 유진우를 질책했다. 황보용명이 죽은 뒤 황보춘이 뒷일을 정리하고 가문을 안정시켜 가문의 중심이 되었다.송만규가 물었다.“유진우 씨, 이렇게 얘기만 하고 끝날 게 아니라, 증거를 가져와야죠. 황보춘이 배후라는 증거가 있습니까?”“증거가 없다면 이런 말 하지도 않았죠. 여봐라, 그 자식들 몇 명을 끌어와!”유진우의 명령과 함께 검은 옷을 입고 복면이 쓰인 사람 몇 명이 강린파 제자들에게 끌려왔다. 복면과 상의를 벗기자, 그들 모두의 가슴에 특별한
황보춘이 담담하게 말했다.“맹주님, 편지는 조작할 수 있습니다. 서예가를 찾아 필적을 따라 해 편지를 위조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맞아! 유진우 당신이 일부러 모함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황보춘 씨, 정말 대단하네요. 아직도 발뺌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완벽히 지게 해 드리죠.”유진우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그러자 강린파 제자들이 두 줄로 갈라지며 길을 내주었다. 그 뒤에서 흰 수염에 흰 눈썹의 노인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노인을 본 사람들이 그 자리에 굳어졌다. 죽은 줄 알았던 황보용명이었다!“이, 이게 가능해? 맹주님은 돌아가신 거 아니었어?”“미친, 대낮에 귀신이라도 본 거야?”“이게 뭐야? 부활이라도 한 거야?”사람들은 아연실색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황보용명은 7일 전에 죽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장례까지 마쳤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살아난 거지? 영혼인 건가?“스, 스승님?”송만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소홍도가 당황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이럴 리 없어! 안 죽은 거야?”“부활하다니, 세상에!”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안, 안 죽었어?”황보춘이 눈을 크게 떴다. 얼마 전까지 덤덤하던 그는 지금 공포에 질려 온몸을 덜덜 떨며 식은땀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맹주님, 이제 맹주님이 처리하실 차례입니다.”유진우가 예를 표하고는 자리를 내주었다.“못된 놈! 더 할 말이 남았냐?”황보용명이 서늘하게 물었다. 황보춘이 공포에 질려 대답했다.“주, 죽은 거 아니었어요? 왜 아직 살아있는 건데요?”“내가 죽은 척하지 않았으면 너 같은 버러지들을 잡을 수가 있었겠어?”“죽은 척했다고요? 어떻게요? 제가 직접 확인했어요!”황보춘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랜 시간 참고 참아 드디어 족장 자리에 오르나 했더니 이렇게 모든 게 끝나버렸다. 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무도 마스터인데 너희들도 못 속이면, 몇십 년간 수련한 게 다 뭐가 돼?”“왜?
한바탕 쏟아낸 뒤 황보춘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엔 각종 감정으로 가득했다. 분노, 원한, 질투, 진한 아쉬움.그는 왜 일이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의 차질도 없이 완벽한 계획이었다. 황보용명을 죽이기만 한다면 그는 차세대 족장이 될 테고,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의 치밀한 계획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애초에 그의 계획에는 두 가지 결과밖에 없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족장이 되거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불행하게도 그는 실패하고 말았다. 황보용명은 죽지 않았다. 그의 계획은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너무도 아쉬웠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하면 성공했을 텐데, 왜?“황보춘이 배후라니, 정말 상상도 못 했어.”“사람 좋아 보이더니 그게 다 꾸며낸 거였어?”“맹주님이 죽은 척하지 않았다면 이놈이 족장이 됐을 거잖아!”“...”정신이 거의 나간 황보춘을 보며 사람들은 분개했다. 얼마 전까지 황보춘의 편을 들었는데, 모두 황보춘에게 놀아난 꼴이었다.송만규가 크게 외쳤다.“이봐! 이 짐승놈을 묶어!”“네!”두 사람이 대답하고는 황보춘의 다리를 부러뜨려 꽁꽁 묶었다.“영감탱이! 죽어! 죽어!”황보춘은 정신이 나간 듯 외치고 있었다.“지하 감옥에 처넣고 잘 감시해. 내일 공개처형이다!”송만규가 명령을 내리고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해산시켰다.“진실은 이미 드러났으니 모두 돌아가시죠.”사람들은 아쉬워하면서도 하나둘 돌아갔다.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들의 첫 목표는 유진우였는데, 황보추와 황보춘의 악행이 수면 밖으로 드러났다. 황보 가문의 두 효자가 모든 사람을 속일 뻔했다.“송 맹주님, 강남 무도 연맹엔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많네요. 구경 잘 했습니다. 그럼, 이만.”소홍도는 의미심장하게 말하고는 강북 무도 연맹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자리를 떴다.백수정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흥! 또 저 자식을 놓치고 말았네, 아쉬워라.”“황보용명이 살아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운 좋기
송만규만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만규야, 뭐 해? 어서 돌아가.”황보용명이 담담하게 말했다. 송만규는 대답 없이 그를 훑어보고는 유진우에게 물었다.“유진우 씨, 이분은 어디서 데려온 겁니까?”“만규야, 그게 무슨 소리야?”“당신, 언제까지 연기할 거야?”“무엄하다! 감히 스승님께!”“흥! 당신 정체가 뭔지 한번 보자!”송만규는 차갑게 웃고는 황보용명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 뒤 뭔가 잘못됐다는 듯이 뒷걸음쳤다. 곧 잡히려 할 때, 유진우가 송만규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맹주님, 대화로 풉시다.”“못된 놈! 감히 스승님을 공격해? 이 배신자야!”“됐어요, 연기 그만 해요. 송 맹주님 이미 알아챘어요.”유진우가 뒤를 쳐다보며 경고했다. 그 말을 들은 황보용명의 얼굴에 분노가 사라지고 장난기 어린 웃음이 떠올랐다. 이어 쨍한 여자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무도 마스터는 역시 다르네요,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었는데도 가면인 걸 알아챌 줄은 몰랐어요.”그가 얼굴을 잡아당기자 황보용명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가히 절세미인이라 칭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설연홍이었다.송만규가 인상을 쓰고 말했다.“누굽니까?”“변신술 전문인 제 친구입니다. 황보춘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탁한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그렇군요. 좋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선택이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유진우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설연홍더러 황보용명으로 변장해 연기를 펼치게 했으니, 고인을 존중하지 않았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용건만 말하죠. 결백을 증명했으니, 저도 기쁩니다. 강남 무도 연맹은 당신 같은 젊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얼마 후면 이곳은 당신들의 무대가 될 겁니다.”“과찬입니다.”송만규가 뭔가 생각난 듯 약병 하나를 유진우에게 건넸다.“맞다. 이걸 까먹을 뻔했네요. 7일 탈명단의 해독제입니다. 어서 마셔요. 독이 뼈에까지 침투하면 후유증이
풍우 산장의 한 방 안.유진우는 보랏빛 얼굴을 하고 침대에 누워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몸속의 독소와 진기가 서로 맞부딪치며 치열하게 겨루고 있었다. 그의 코에서는 가끔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약왕 경철호는 침대 옆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조심스레 유진우의 몸에 침을 꽂아 독소를 빼내고 있었다.장 어르신, 설연홍, 황은아 등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7일 탈명단도 해독하지 못했는데 맹독 하나가 더 들어오다니, 불 난 집에 기름 뿌리는 격이었다.송만규는 강남 무도 연맹을 거느리고 소홍도를 찾아 헤맸지만, 아직 소식이 없었다. 이제 모든 건 약왕에게 달렸다.시간이 흐르며 경철호의 이마에는 땀이 돋아났고, 호흡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은바늘이 한 개씩 꽂히자, 유진우의 가슴에 일렁거리는 검은 기가 보였다.침을 꽂은 후 경철호는 유진우에게 특효 해독단을 먹였다. 이는 많은 독을 해독할 수 있었지만, 이 희귀한 독약에는 약간의 억제 작용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경철호가 몸을 일으켰다.“후...”“선배님! 어떻게 됐어요? 괜찮은 거죠?”황은아가 급히 물었다. 그녀는 수련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유진우의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유 장로님의 몸에는 7일 탈명단과 화기산, 두 가지 독이 있는데, 그 두 가지 독이 만나 더 큰 독성을 내뿜고 있어요.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7일 탈명단도 해독하기 힘든데 거기다 무도 고수를 상대하는 화기산까지 더해졌으니 설상가상이었다. 유진우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도 남았을 것이다.“약왕이시잖아요. 의술이 고명하다며, 이런 것도 못 해요?”황은아는 당황했다. 유진우는 아버지를 제외하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대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선배님! 돈은 얼마든지 상관없으니, 살려만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장 어르신이 그대로 바닥에 꿇어앉았다.“부탁드립니다!”다른 사람들도 질세라 꿇어앉았다.“이러실 필요 없어요. 유 장로님은 약신궁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