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 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진우 오빠가 우릴 구해줬잖아요!”“은설아, 저 자식한테 속지 마. 절대 좋은 마음으로 그런 게 아니야! 우리 술 안의 독은 이 자식이 탄 거야! 일부러 자리를 뜨고는 중요한 타이밍에 등장해 호감을 사지. 이까짓 꼼수로 날 속일 수 있을 것 같아?”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처음 본 유진우보다는 유연지에게 더 믿음이 갔다.“자신감이 너무 넘치는 거 아니에요? 난 그런 거 할 시간이 없어요.”유진우가 차갑게 말했다. 좋은 마음으로 도와준 건데 이렇게 돌아올지는 몰랐다. 짐승도 은혜 갚을 줄 안다고 했는데!유연지가 계속해서 다그쳤다.“흥! 인정하지 않는 거야? 그럼 하나만 물어볼게. 어떻게 마침 그 직원을 마주쳤고, 마침 이 독약을 손에 넣었어? 이게 다 우연의 일치야?”“맞아요. 우연의 일치입니다.”“하하, 다들 들었지? 이 자식 할 말이 없어졌어.”유연지가 차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것 말고도 더 치명적인 게 있어. 그 은침 말이야. 누가 미쳤다고 은침을 가지고 다녀? 진작 계획한 거잖아!”“저 자식이 독을 탄 거라니,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은 믿을 수 없어!”“연지가 똑똑해서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우리 다 속을 뻔했어.”“찢어 죽일 놈, 감히 우리 앞에서 꼼수 쓰다니, 살고 싶지 않은 거야?”사람들이 유진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처음의 감격이 이제는 분노로 뒤바뀌었다.“유진우, 이렇게 빨리 들통날 줄은 몰랐지? 더 할 말 있어?”유연지는 팔짱을 끼고 신이 나 말했다. 미제사건을 해결한 것인 양 득의양양한 모습이었다.“안 믿으니 어쩔 수 없네요. 전 못 본 걸로 하세요. 그럼.”말을 마친 유진우는 몸을 휙 돌려 걸어 나갔다.“거기 서!”유연지가 유진우의 앞을 막고 소리쳤다.“우리 술에 독을 탔으면서 그냥 가려고? 그런 게 어디 있어?”“자식!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사람들이 웅성댔다. 모두가 기회를
“응?”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유연지는 멍해졌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가슴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놀라움, 경악, 의문, 공포가 담긴 복합적인 표정이었다.자신이 총에 맞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아무런 징조 없이 이렇게나 갑자기.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그녀는 단말마의 비명만을 남긴 채 그대로 쓰러졌다.“킬러야, 빨리 엎드려!”한솔이 크게 외쳤다. 사람들이 급히 땅에 엎드렸다. 그와 동시에 가면을 쓴 킬러들이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왔다. 모두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들고, 보이는 사람마다 가차 없이 쏘아댔다.빵, 빵, 빵, 빵...총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땅에 쓰러졌다.“젠장!”한솔은 화가 나 킬러들 쪽으로 테이블을 뒤엎었다.킬러들이 테이블을 피하는 사이 그는 킬러 두 사람의 목을 잡고는 손에 힘을 줬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을 잡힌 두 사람이 쓰러졌다.둘을 해치운 뒤 한솔은 다시 주먹을 뻗었다. 그 위력은 천둥번개처럼 강력했다.쿵. 쿵. 쿵.소리와 함께 남은 킬러들도 가슴이 관통당한 채 고꾸라졌다. 단 몇 분 만에 한솔은 모든 킬러를 처리했다. 그 실력에 모두가 놀랐다.“쓰레기들.”한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콧방귀를 뀌고는 땅에 널브러진 테이블보를 들어 손에 묻은 피를 닦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모두가 환호했다.“역시 도련님이에요! 너무 대단해요!”“당연하지, 도련님은 가문의 후계자시고 천하회 회원이기도 하시니, 이 정도는 기본이지!”“이 사람들, 운 없기도 하지. 도련님을 만났으니.”사람들은 저마다 한솔을 칭송했다. 한솔은 그들 사이에서도 리더였다. 신분도 고귀하고 실력도 강했다. 서울 전체에서도 그와 대적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이제 네 차례야.”한솔은 고개를 돌려 곱지 않은 시선으로 유진우를 빤히 쳐다보았다.“이 킬러들, 네가 보낸 거지?”“저는 당신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제가 왜 당신들을 죽이려 하겠습니까?”“네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잖아. 사실대로 말하는
“미친 사자? 미친 개겠지!”“네가 누구든 오늘 한솔 도련님을 만난 이상 죽음뿐이야!”몇몇 젊은 남녀들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조금 전 한솔이 총을 든 킬러 몇 명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똑똑히 봤다. 그들마저 손쉽게 해결했는데 맨주먹인 이 녀석은 더욱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는가?“저 사람은 딱 봐도 힘이 엄청나게 강한 무사야. 방심한 틈을 타서 재빨리 해결해야 해.”한솔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더니 두 무릎을 살짝 구부려 힘을 끌어모았다. 두 발을 쾅 구르자 마치 폭탄처럼 쏜살같이 튕겨 나갔다.“천둥권!”한솔은 포효하듯 소리를 지르면서 온몸의 내공을 순식간에 폭발한 후 미친 사자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쾅!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솔의 주먹이 미친 사자의 탄탄한 복부를 가격했다. 하지만 미친 사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마치 커다란 산처럼 끄떡없었다. 미친 사자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한 듯했다.“고작 이 정도야?”미친 사자는 팔짱을 낀 채 한솔을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지금 날 간지럽혀?”“뭐?”한솔은 그대로 얼어붙었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내가 최선을 다해 날린 주먹인데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고? 말도 안 돼!’“너무 약해빠졌어.”미친 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손을 뻗어 한솔의 목을 덥석 잡더니 그대로 들어 올렸다.“으악...”한솔의 두 발이 허공에 둥둥 떴고 또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미친 사자 앞에서 그는 그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었다.“뭐야?”그 광경에 젊은 남녀들은 놀란 나머지 안색이 급변했다. 조금 전까지 시건방을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대신 공포가 덮쳤다.위풍당당하게 적을 쓸어버리던 한솔이 근육남 앞에서는 반항조차 하지 못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이
“이게 대체...”휙 날아간 미친 사자를 본 사람들은 넋을 잃고 말았다. 하나같이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잘못 본 건 아닌지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미친 사자는 키가 2m 넘었고 체격이 우람했다. 게다가 근육도 탄탄하여 끄떡없는 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와 반대로 유진우는 삐쩍 말라 바람만 불어도 휙 날아갈 것만 같았다.이렇게나 체격이 천지 차이인 두 사람이 맞붙는다면 미친 사자가 완승을 해야 말이 된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X발, 저 자식 정체야 뭐야? 뭔데 저렇게 강해?”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솔마저 미친 사자의 상대가 안 되는데 한낱 돌팔이 의사가 이겼다고?“진우 오빠, 정말 대단해요.”놀라움도 잠시 남궁은설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조금 전 유진우가 제때 나서지 않았더라면 목숨마저 잃을 뻔했다.“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절대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말고 목숨부터 지켜야 해요. 알았죠?”유진우가 경고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마저 다 버리다니, 정말 어리석을 정도로 착했다.“알았어요.”남궁은설이 달콤하게 히죽 웃었다. 유진우가 그녀의 목숨을 또 한 번 살려줬으니 꼭 제대로 보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너 본투비 레벨 무사였어?”바닥에서 일어난 한솔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의 천부적인 재능도 나름 뛰어났지만 그래봤자 지금은 그저 익스트림 레벨에 불과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유진우가 무도 고수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내가 무슨 레벨인지는 당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요?”유진우는 그를 싸늘하게 흘겨보았다.“너...”말문이 막힌 한솔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X발, 어디서 허세야? 고작 본투비 레벨인 주제에. 아무리 강해봤자 무사잖아. 우리 한씨 가문의 권력이라면 본투비 레벨 무사가 아니라 무도 마스터도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당장 구급차 불러!”그때, 총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던 유연지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총알이 가슴팍을 뚫긴
“너!”유연지는 치가 떨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꾹 참아야만 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유진우가 조금 더 빨리 움직이길 바랄 뿐이었다. 왜냐하면 피가 점점 많이 흘러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3분 후, 두 번째 남자의 치료도 끝났다. 지혈만 한다면 당분간은 죽지 않을 것이다.“인제 내 차례지? 얼른, 얼른 치료해 줘!”유연지는 다급한 마음에 끊임없이 재촉했다. 하지만 유진우는 유유자적하게 먼저 손을 닦고 기지개를 켜더니 찻잔을 들고 차를 음미하기 시작했다.“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얼른 지혈해달라고!”유연지가 발끈했다.‘피가 지금 철철 흐르는데 차가 목구멍에 넘어가?’“뭘 그리 닦달해요? 죽지도 않을 건데.”유진우는 그녀를 보고도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죽지 않는다니? 나 총에 맞은 거 안 보여? 넌 인간미도 없어? 빨리 날 살려달라고!”유연지가 노발대발했다. 그런데 갑자기 흥분한 바람에 피가 더 철철 흘러나왔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했다.“살려달라는 사람의 태도가 고작 이거예요?”유진우는 차를 느긋하게 마시며 말했다.“유진우, 실력 조금 있다고 건방 떨지 마!”유연지는 화가 나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평소였더라면 유씨 집안의 귀한 딸인 그녀에게 다들 굽신거리기 바빴을 것이다. 그런데 한낱 돌팔이 의사 주제에 그녀 앞에서 시건방을 떤다는 건 그야말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성의가 없으니 됐어요. 난 이만 가볼게요.”유연지와 얘기를 섞고 싶지 않았던 유진우는 차를 단숨에 들이킨 후 그냥 가려 했다.“잠깐만요, 가지 마세요... 명의님, 유진우 명의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실례했네요. 명의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상황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자 유연지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어쨌거나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니까.“진우 오빠, 연지 언니 얼마 못 버틸 것 같아요. 얼른 살려주세요.”남궁은설도 나서서 부탁했다.“그래요. 은설 씨 체면을
밤이 점점 깊어졌다.그 시각 진성 식당 안.시끌벅적하고 사람들로 붐비는 대낮과 달리 밤이 깊어진 진성 식당은 아주 고요했다. 하나는 위치가 조금 외진 곳에 있었고 또 하나는 밤에 영업하지 않기 때문이다.슉!그때 우람한 체격의 누군가가 갑자기 담장을 뛰어넘고 들어오더니 한두 번이 아닌 듯 아주 익숙하게 2층의 룸으로 향했다. 문 앞에 도착한 그 사람은 가볍게 똑똑 노크했다.“들어와.”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누군가의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한쪽 무릎을 꿇더니 병풍 앞에서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예의를 갖췄다.“미친 사자가 특사님께 인사 올립니다.”“다쳤어?”병풍 뒤에서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특사님,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방금 엄청난 실력자를 만난 바람에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습니다.”미친 사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다친 팔에서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밤이라 더욱 잘 들리는 것 같았다.“실패해놓고 무슨 낯짝으로 다시 돌아와?”병풍 뒤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워졌고 무서운 위압감이 느껴졌다.“특사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무조건 성공하겠습니다.”미친 사자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식은땀을 흘렸다.“이 빌어먹을 놈아, 뒤에 꼬리를 달고 온 것도 몰랐어?”특사가 호통쳤다.“꼬리요?”미친 사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재빨리 부정했다.“그럴 리가 없어요. 오는 내내 주변을 경계했는데 아무도 없었어요.”“이봐, 왔으면 그냥 나올 것이지 뭘 그렇게 숨어있어?”병풍 뒤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그 순간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서 어렴풋하게 들려왔는데 유진우가 덤덤하게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네가 여길 어떻게...”미친 사자의 표정이 급변했다.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친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누군가 자신을 뒤따라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뛰어난 실력의 킬러인 미친 사자는 어릴 적부터 엄격한
“유진우 씨?”“황 사장님?”눈앞의 뚱뚱한 남자를 본 유진우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왜냐하면 미친 사자의 배후에 있던 특사가 바로 예전에 인여경을 팔았던 황성태였기 때문이다.“진우 씨, 우리 참 인연이 있나 봐요? 이렇게 만난 걸 보면.”황성태는 조금 전의 싸늘함을 지우고 마치 보살처럼 자상하게 웃었다. 악의라곤 전혀 없는 사람인 듯 상냥했다.“황 사장님이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유진우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블랙 랭킹에 3대 특사가 있는데 다들 못 하는 게 없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황 사장님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그냥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예요. 거론할 가치도 없습니다.”황성태는 환하게 웃으며 한 손으로 자리를 안내했다.“앉으시죠, 진우 씨.”유진우는 사양하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진우 씨가 오늘 자양지존을 이기면서 소년 마스터라는 명성이 아주 세상을 뒤흔들었어요. 정말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황성태는 갓 우려낸 따뜻한 차를 잔 두 개에 따랐다.“황 사장님은 소식도 참 빠르세요.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다 알고 계시네요.”유진우는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허허, 이렇게나 큰일을 아직도 모른다면 지금까지 특사를 괜히 했죠.”황성태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사장님,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오늘 타깃이 혹시 남궁은설이었나요?”유진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미친 사자를 뒤쫓은 건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남궁을용과 유진우의 어머니는 오랜 벗이었고 유진우를 두 번이나 도와주었다. 게다가 남궁은설도 바른 사람이라 오지랖이 넓더라도 이 일에 관여할 생각이었다.“맞아요.”황성태는 부정하지 않았다.“돈을 받고 액막이를 해주는 게 블랙 랭킹의 룰이죠.”“임무를 철수할 수 있나요?”유진우가 캐물었다.“안 됩니다. 의뢰인이 스스로 포기하면 모를까.”황성태가 계속하여 고개를 내저었다.“황 사장님, 제가 상이라도 엎어야
“스파이가 하도 꽁꽁 숨어서 아직 알아내지 못했어요.”황성태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이 사람이 황보 가문에서 엄청난 권력을 가졌다는 거예요. 황보 가문의 사형제 아니면 직계 가족임이 분명해요.”사형제라면 황보용명의 네 아들 춘, 하, 추, 동이었다. 그들 모두 엄청난 자원을 손에 쥐고 있고 야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꿍꿍이속을 도통 헤아리기 힘든 사람들이었다.“결국에는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은 거나 다름없네요?”유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황보 가문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짧은 시간 내에 어디 가서 그 스파이를 찾는단 말입니까?”유진우는 예전부터 의심하긴 했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조급해하지 말아요, 진우 씨. 스파이가 누군지 알아내려면 사실 그리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해요.”황성태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그래요? 황 사장님께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보죠?”유진우는 바로 구미가 당겼다.“좋은 방법까지는 아니고 그저 미끼가 되는 거죠.”황성태는 검지에 차를 톡 묻히더니 상 위에 글 몇 줄을 끄적였다. 내용을 확인한 유진우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이것도 방법이긴 한데 성공할지는 모르겠네요.”“일단 하는 데까진 해보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겨야죠.”황성태가 덤덤하게 말했다.“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황 사장님.”유진우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이 정보는 얼마인가요?”“친구가 된 셈 치고 공짜로 드릴게요.”황성태가 웃으며 말했다.“제 친구가 되는 건 쉽지 않아요. 남궁은설을 죽이라고 사주한 사람이 누군지 알려주시면 친구로 받아들일게요.”유진우는 조건을 내걸었다.“진우 씨, 더는 절 곤란하게 하지 말아요.”황성태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의뢰인의 정보를 발설하게 되면 앞으로 저 장사 못해요.”“사장님과 저만 입을 다문다면 누가 또 알겠어요?”유진우는 웃을 듯 말 듯 했다.“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했어요. 전 괜한 모험 같은 거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