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조금 전 물에 빠졌던 자양지존이었다.헝클어진 머리에 물에 빠진 생쥐 꼴처럼 온몸이 흠뻑 젖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다친 곳이 없긴 했지만 처음에 보았던 마스터의 위엄은 사라지고 말았다.“사부님이 살아계셨어? 너무 다행이야!”그 모습에 도규현 일행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다시 배짱이 두둑해졌다. 조금 전까지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도 희망을 되찾았다.유진우가 소년 마스터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자양지존도 마스터라서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조금 전에는 상대를 너무 얕잡아본 바람에 당한 것이었다.제대로 붙는다면 마스터 경지에 다다른 지 오랜 시간인 자양지존의 실력이 훨씬 뛰어날 것이다.“인마, 감히 날 기습해?”물에서 나온 자양지존이 이를 꽉 깨물고 흉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눈빛은 마치 당장이라도 상대를 집어삼킬 듯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렇게 초라했던 적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 때문에 위엄을 잃고 말았다. 이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기습? 방금 먼저 공격한 건 당신이야.”유진우는 뒷짐을 진 채 호수면 위에 서 있었다. 물결이 일렁임에 따라 몸도 따라서 움직였다.“흥! 방금은 내가 널 얕잡아봐서 틈을 준 거야. 이번에는 절대 봐주지 않아. 마스터와 마스터의 차이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게.”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양지존이 발끝으로 호수 면을 밟자 물보라가 사방에 튀었다. 동시에 그는 마치 화살처럼 튕겨 나가 유진우에게 맹공격을 가하려 했다.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호수 면이 갈라지면서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유진우는 전혀 두려움 없는 기색으로 동시에 몸을 날려 정면으로 맞섰다. 두 사람은 마치 쏜살같이 달리는 자동차처럼 좌우로 날아가 그대로 부딪혔다.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산과 땅이 뒤흔들렸다. 부딪힌 곳을 중심으로 호수 면에서 순식간에 십여 미터에 달하는 물보라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에너지가 갑자기 폭발하여 대량의 파도가 일렁이면서 사방으로 맹렬
“헐...”하늘을 뒤덮은 피를 보며 사람들은 넋을 잃고 말았다. 다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이렇게도 충격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질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아까 이긴 거 아니었나? 그런데 왜 갑자기 폭발한 걸까?자양지존이 누구인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무도 마스터이자 하늘의 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 존재가 죽었다고? 이게 정말 사실이란 말인가?“사... 사부님?”도규현은 입을 쩍 벌린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재주가 대단하신 사부가 갑자기 몸이 폭발해버렸다. 심지어 시신조차 남지 않았다.“죽... 죽었어? 자양지존 님이 죽었어?”잠깐의 침묵 후 현장이 바로 소란스러워졌다.“세상에나!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내가 꿈꾼 거 아니지?”“말... 말도 안 돼. 무도 마스터가 어떻게 죽어?”“하늘이 무너졌어... 하늘이...”그 시각 도씨 가문, 황보 가문, 인여궁, 그리고 남북 무도 연맹뿐만 아니라 수많은 무사들이 충격에 빠졌다. 하나같이 겁에 질려 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였다.유진우가 피를 토했을 때 그들은 자양지존이 무조건 이겼다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자양지존의 몸이 폭발하면서 즉사했다. 이런 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저 자식... 대체 무슨 괴물이야?”호수면 위에 우뚝 서 있는 유진우를 보며 사람들의 마음은 여러 가지 감정으로 휩싸였다.충격, 경악, 분노, 질투, 공포 등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모두 있었다.믿기 어려웠지만 오늘부로 소년 마스터가 세상에 명성을 떨치고 만인의 존경의 대상이 될 거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유진우는 호숫가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안색이 조금 창백했고 입가에 검은 핏자국이 묻어있었다.겉으로는 조금 전의 전투에서 힘겹게 이긴 것 같지만 사실 피를 토한 게 자양지존 때문이 아니라 7일 탈명단의 독 때문이라는 걸 유진우만
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자양지존이 날 죽이려 했는데, 내가 자양지존을 왜 살려둬야 해?”“우리 사부님을 죽이다니, 복수할 거야!”도규현이 붉어진 눈시울로 절규했다.“규현아! 그만해!”도장수가 깜짝 놀라 그를 제지했다. 그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양지존도 이겨버린 마스터인데, 그들이 유진우를 이길 리 없었다.“당당하게 도전하는 건 좋지만, 꼼수 쓰면 다 죽여버릴 거야!”유진우가 차가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도씨 가문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저마다 급히 뒤로 물러났다. 무도 마스터가 그들을 쓰러뜨리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영감님, 갑시다.”유진우는 더 이상 말하기도 싫다는 듯 산 아래로 걸어갔다. 이때 홍청하가 달려와 죄책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우 씨! 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사과할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돼? 조금만 일찍 말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잖아. 우리 친하게 지낼 수 있었잖아. 안 그래?”유진우가 무도 마스터인 줄 알았다면 홍청하는 절대 배신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꺼져.”유진우는 미동 없이 단 두 글자만을 내뱉었다. 한 번 배신당한 사람은 절대 다시 쓸 수 없었다.“유진우 씨, 내게 죄책감 있는 거 알아. 우리 오빠를 봐서라도...”“꺼져! 내 앞에서 당신 오빠 얘기 꺼내지 마.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어.”차가운 한 마디만을 남긴 채 유진우는 떠났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홍청하는 이를 악물고 어쩔 줄 몰랐다.“왜? 왜 내게 안 알려준 거야? 진작 신분을 알려줬다면 내가 그렇게 했겠어? 다 당신 때문이야! 인여경 돌려줘! 돌려달라고!”그녀는 아쉬움과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포효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후회가 가장 컸다. 창창한 앞길을 스스로 막은 꼴이 되었다.“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유진우의 조소 어린 목소리가 바람에 흩날렸다.인여궁의 제자가 불현듯 물었다.“사부님, 이제 어떡해요? 저녁에 풍우 산장을 공격해요?”“공격은 무슨! 미쳤니? 무도 마스터를 어떻게 칠 건데?
저녁 무렵, 로즈 레스토랑.유진우는 창가 자리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마스터 싸움 뒤 남북 두 연맹은 철저히 뒤흔들렸다. 외국 조직을 포함한 각종 세력이 그를 호시탐탐 넘보고 있었다. 물론 유진우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오늘 그는 조선미와 밥을 먹기로 했다.띵동.레스토랑 문이 갑자기 열렸다. 기장이 긴 검은 원피스 차림의 조선미가 사뿐사뿐 걸어들어왔다. 옅은 화장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더욱 생기를 더해주었다.“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나 안 예뻐요?”조선미가 유진우의 앞에서 한 바퀴 돌았다. 그에 그녀의 몸매가 더욱 두드러졌다.유진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예뻐요.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하하하... 여보, 이런 말도 할 줄 알았어요?”조선미가 놀란 듯 입을 가리고 웃었다. 무뚝뚝한 줄 알았던 유진우가 이런 로맨틱한 말까지 할 줄은 몰랐다. 따로 배우기라도 했나?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사실인걸요, 뭐.”“좋아요. 그런 말 아주 좋아요.”조선미는 웃으며 자리에 앉고는 가방에서 선물상자 하나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여기, 선물이에요.”“갑자기 선물은 왜요?”유진우는 미심쩍은 듯 상자를 열어보았다. 선물의 정체는 청동 자물쇠 장식이 달린 목걸이였다.“무슨 뜻이에요?”“진우 씨가 어디 가지 못하게, 제 옆에 잠가두려고요.”“지금 시대가 언젠데 아직도 이런 걸 믿어요?”“지금 내 옆에 있기 싫다는 거예요?”조선미가 밉지 않은 눈길로 유진우를 째려보았다. 그 눈빛에는 약간의 협박마저 들어있었다.유진우는 씁쓸한 웃음으로 목걸이를 걸며 말했다.“그런 뜻 아닌 거 알잖아요.”“당연히 그래야죠.”조선미가 입꼬리를 삐죽 올리며 애교스럽게 말했다.“그런데 선미 씨, 왜 식사하자고 했어요? 무슨 일 있어요?”유진우의 물음에 조선미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일이 좀 생겼어요. 연경 쪽 회사에서 준비를 마쳐서 오늘 밤 가봐야 해요, 진우 씨한테 작별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이렇
조선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 아버지는 절대 보물 지도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상대방의 화를 돋우어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네, 사람을 불러 아저씨를 보호할게요.”“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놓이네요. 물론 너무 오래 가있지는 않을 거예요. 연경의 새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바로 서울로 돌아올게요. 빠르면 일주일 안에 돌아올 수도 있어요.”“네, 기다릴게요.”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두 사람은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했다.띵동.이때 또다시 대문이 열렸다. 한껏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웃으며 들어왔다.유진우는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훑어보다 흠칫하며 놀라운 표정으로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왜요?”조선미는 금세 이상함을 느꼈다.“별거 아니에요, 아는 사람을 봐서.”“아는 사람이요? 가서 인사할래요?”조선미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젊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옷차림과 행동을 봤을 때 모두 부유한 사람들이었다.“아뇨, 저희끼리 먹죠.”유진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리고는 식사를 계속했다. 지금의 안정이 좋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선미와 함께 있을 때면 더없이 편안했다. 그를 괴롭히던 일들도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여보, 비행기를 타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 며칠 뒤 봐요.”배불리 먹은 뒤 조선미가 몸을 일으켰다. 유진우도 따라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그래요, 데려다줄게요.”“그럴 필요 없어요. 차를 이미 불렀거든요. 피곤해 보이는데, 들어가서 푹 쉬어요. 맞다, 나 없을 때 한눈팔면 나한테 죽어요.”조선미는 일부러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엄포를 놓고는 피식 웃으며 유진우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갈게요.”그 말을 남긴 채 조선미는 손을 흔들며 레스토랑을 나갔다.유진우는 멍하니 조선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마음속 어딘가가 구멍이 뚫린 듯 공허했다.“진우 오빠?”이때 맑은 여자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울렸다.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몇 명이 호기심 어린
“온 지는 좀 됐는데 너무 바빠서 아직 장군님께 인사드리지 못했어요.”유진우는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맞다, 몸은 좀 어때요? 불편한 덴 없어요?”극한 신체는 100년에 한 번 나올지 하는 희귀병으로서 치료가 극히 어려웠다. 누에로 그 기를 눌렀어도 10년 동안만 버틸 수 있었다. 10년이 지나면 다른 변수가 없는 이상 남궁은설은 죽은 목숨이었다.남궁은설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네, 괜찮아요. 다 진우 오빠 덕분이죠.”“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은설아, 이분 누구야?”남궁은설의 옆에 선 붉은 옷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남궁은설이 재빨리 그를 소개했다.“연지 언니, 이 분이 전에 말한 진우 오빠세요. 제 병을 고쳐주신 분이요!”남궁은설이 고개를 조금 쳐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오, 그쪽이 은설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에요?”유연지가 유진우를 아래 우로 훑어보며 말했다.얼굴은 괜찮았지만, 옷차림이 시골 사람 같은 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급이 아니었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남궁은설의 마음을 앗아갔지? 단지 얼굴이 잘생겨서?정말 그렇다면 너무 격 떨어지는 일이었다.“진우 오빠, 밥 아직 안 드셨죠? 같이 먹을래요?”“아, 방금 먹었어요.”남궁은설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급히 말을 덧붙였다.“그럼 같이 커피라도 마셔요. 마침 의학 관련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말을 마친 남궁은설은 기대 넘치는 표정으로 유진우를 쳐다보았다.“그래요.”유진우는 조금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거절했다가는 그녀를 울릴 수도 있었다.“좋아요! 진우 오빠 이리 오세요!”남궁은설은 활짝 웃으며 유진우의 팔을 끌고 호화롭게 장식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가장 가운데에는 정장을 입은 반듯한 인상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20대 정도로 보이는 그는 보기만 해도 압도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앉아만 있어도 눈에 띌 정도로 출중한 용모였다.“은설아, 옆에 선 분은 누구셔? 본 적이 없는데.”정장
이때 한 매부리코 남자가 물었다.“둘 다 아닙니다.”유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매부리코 남자가 다시 물었다.“그럼? 어디 지잡대 나왔어?”다른 사람들도 모두 흥미진진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대학을 안 나왔습니다.”유진우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매부리코가 일부러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진짜야? 대학을 안 나왔는데 어떻게 의사가 돼?”“저는 한의학을 배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배워 자연스럽게 할 줄 알게 되었어요.”매부리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한의학? 지금 장난치는 거야? 그거 다 속임수 아니야? ”“하하하... 요즘도 한의학 믿는 사람이 있어? 머리가 어떻게 됐나 봐.”“하긴 폐지 줍는 노인들은 이런 거 믿을 테니까. 한 명이라도 더 속이면 좋잖아.”사람들이 웃으며 비아냥댔다. 서양식 교육을 받은 그들에게 한의사는 돌팔이나 다름없었다.“은설아, 정말 저 사람이 널 살려준 거야? 속은 건 아니고?”유연지가 비꼬았다.“아니에요! 진우 오빠는 정말 실력 있는 사람이에요!”“실력? 하하하... 난 왜 안 믿기지?”매부리코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한의사라며? 내 건강이 어떤지 한 번 봐봐. 맞히면 상을 줄게.”매부리코가 손을 내밀며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표정을 지었다.유진우는 그를 쓱 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요즘 들어 추위를 많이 타고, 허리가 아프고, 땀도 많아졌죠?”“응? 어떻게 알았어?”매부리코가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최근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두 눈에 초점이 없고, 호흡도 가쁘고, 얼굴빛도 좋지 않아요. 거기다 춥고 허리가 아프고 땀이 많이 난다면, 아마 성기능이 쇠약할 겁니다.”“웃기지 마! 난 멀쩡해, 하룻밤에 일곱 번도 거뜬하다고!”“그뿐만 아니라 성병도 있는 것 같네요. 빨리 병원에 가 보는 게 좋겠어요. 병이 진행되면 그곳이 썩어버릴 거예요.”“너... 허튼소리 마! 다시 한번 이상한 소리 하면 본때를 보여줄 거야!”매부리코가 얼굴이 빨개진 채 외쳤다. 성기능 쇠약도 모
뚝... 뚝...바닥에 흥건한 오줌을 본 사람들이 모두 경악했다. 매부리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혈 자리 두 개를 눌렀을 뿐인데 오줌을 지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가장 난처한 것은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 광경을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악!”매부리코가 비명을 지르고는 바지를 잡고 자리를 뛰쳐나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오줌 발자국이 찍혔다.사람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망신당한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죽음이었다.“유진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유연지가 책상을 쾅 치며 말했다. 대학도 나오지 않은 사람 하나가 감히 명문가 도련님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다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방금 성기능 쇠약이라고 했잖아요, 신장이 약하다고. 그런데 안 믿으시니, 이렇게 증명해 드리는 수밖에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너...”유연지는 말문이 막혔다. 핑계를 찾아 그를 난처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팀 킬을 할 줄은 몰랐다.“흥! 일부러 이러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한솔이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 절친한 황우가 이렇게 망신당하는 꼴을 본 그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안 믿으시는 겁니까? 당신도 한 번 봐 드려요?”유진우의 시선이 그에게 옮겨갔다. 그 말을 들은 한솔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유진우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황우의 최후를 바로 옆에서 본 터라 모험하고 싶지 않았다.“난 안 믿어, 네가 정말 그 정도 실력이라면 나도 한 번 봐봐!”유연지가 건들거리며 한 쪽 팔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한의학을 믿지 않았고, 유진우가 한 번 보기만 해도 병을 보아낼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정당한 방법이 아닌 속임수가 확실했다.유진우가 그녀를 유심히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은 더 심하네요. 호흡이 일정하지 않고 이상한 소리도 들려요. 쉽게 흥분하고, 정신도 맑지 않아 보이는 게, 폐에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두루뭉술하게 말하지 마. 폐에 어떤 문제가 있는데? 난 왜 아무 느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