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연주는 귀신 들린 듯 소리를 질러댔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듯했다.“청하야, 어떻게 된 거야? 약을 탄 게 아니었어?”백수정은 곱지 않은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특제 약은 마스터 급 아래의 사람들은 당해낼 수 없었다.“탔는데요, 술에 분명히 탔어요.”홍청하가 급히 대답했다. 분명 술을 마셨는데 왜 아직도 멀쩡하지?“운 좋게 빠져나갔나 보군.”백수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직접 검을 뽑았다.“본투비 레벨까지 다다른 것도 이미 천재적인 거야. 하지만 난 천재 죽이는 일이 가장 재미있다? 내 손에 죽는 걸 영광으로 알아.”“누가 죽을지는 아직 모르지. 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꿇어앉아 사과해. 그럼 살려는 줄게.”그 말을 들은 모두가 크게 놀라더니 깔깔 웃어댔다.“야! 너 미쳤어? 네가 뭔데 큰소리야?”“나쁜 놈! 사부님은 반보 마스터 급 강자신데 그 앞에서 설치다니, 죽고 싶나 봐?”“어떤 꼴을 당할지 두고 보자!”인여궁 제자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던졌다.백수정은 인여궁 궁주, 반보 마스터 급 강자로서 연경시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였다. 그런 사람에게 유진우 따위는 상대도 안 될 것이다.“자식,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해? 나더러 빌라고? 네가 감히?”백수정이 이상한 눈길로 유진우를 쏘아보았다. 20대의 청년이 그녀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못 믿겠으면 직접 실험해 보든지.”유진우는 백수정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했다.“건방진 놈, 널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무시당한 백수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주저 없이 검을 뽑아 들고 유진우를 향해 돌진했다. 검의 위력은 실로 강력해 주변의 책상과 술병들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녀가 지나간 길 위에 칼자국이 주욱 그어졌다.“검과 한 몸이 됐어!”“역시 사부님이야, 마스터 급이 아닌 사람들은 이 검을 받아칠 수 없을 거야.”“사부님 손에 죽는다는 게 어디야.”인여궁 제자들은 정신이 번쩍 들어 연신 감탄했다. 그녀들에게 유진우는 이미 죽은
“아...”벽에 매달린 백수정을 본 인여궁 제자들은 매우 놀랐다.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백수정은 그들의 사부였고, 인여궁 궁주였고, 반보 마스터급 강자였고, 최고의 검술 고수였다. 그런 사람이 유진우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말도 안 돼!“이...이럴 수가? 사부님이 지다니?”“내 착각일 거야. 사부님이 질 리가 없어.”“왜? 왜 이런 건데?”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강하게만 보였던 백수정이 이렇게 패배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너... 대체 누구야?”풍자 할멈은 표정이 금세 변해 안절부절못했다. 백수정의 상처가 다 낫지 않았다지만 일반인에게 질 정도는 아니었다.“내 땅에서 설치고 다니면서 내가 누구냐니?”유진우는 살기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그럴 리 없어! 넌 사부님한테 안 돼. 비열한 방법을 쓴 거지?”정신을 차린 차연주가 유진우를 질책했다.“맞아! 사부님이 왜 너한테 지겠어? 급습이라니 정말 비겁하다.”인여궁 제자들이 그에 맞장구를 쳤다. 방금 일어난 일은 너무 빨라서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하기에 유진우가 비겁한 방법을 썼을 거라 단정지은 것이다.그리고 백수정의 상처가 채 회복되지 않았고, 적을 쉽게 봤기에 이런 상황이 생겼을 것으로 생각했다.생각을 정리한 그들은 안정을 회복했고, 유진우라는 적을 더욱 괄시하게 되었다.이때 벽의 돌들이 조금 떨어지며 벽에 박힌 백수정도 정신을 회복했다. 그녀는 어지러운 머리를 털며 볼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입을 벌리자, 치아 몇 개가 떨어져 나왔다. 피로 얼룩진 얼굴은 보기 흉했다.“감히 날 때려? 네가 감히?”백수정은 이를 악물었다. 사람에게 맞고 벽에 박히기까지 하다니, 인여궁 궁주로서 오늘보다 창피한 날은 없었다. 그녀의 위엄과 체면이 모두 깨져버렸다.“넌 죽었어, 너와 네 가족까지 모두 죽여버릴 거야!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백수정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 고함을 지르며 유진우에게 달려들었다
짝!“이건, 앞뒤가 모순된 것.”짝!“이건, 감히 제자를 받은 것.”짝!“이건,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유진우는 한 대씩 설명을 덧붙이며 힘껏 백수정을 때렸다. 백수정은 처참한 몰골이 되어있었다.“아...”미친 듯이 맞아대는 백수정을 보며 인여궁 제자들은 놀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입을 쩍 벌리고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진우가 비겁한 방법으로 백수정을 이긴 줄 알았는데, 이 광경을 보니 그녀들이 한참 잘못 짚었다!짝, 짝, 짝...유진우는 아직도 백수정을 때리고 있었다. 인여궁 제자들은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 없이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사부님도 당했는데, 그녀들이 유진우와 맞서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그만해요!”백수정의 숨이 간들간들해졌을 때, 홍청하가 뛰쳐나가 백수정의 앞을 막은 채 단호하게 말했다.“때리려면 날 때려요! 저희 사부님은 건드리지 마요!”“응?”유진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내리치려다 홍길수의 얼굴이 떠올라 손을 서서히 내렸다.“유진우 씨, 못 할 짓한 거 알아요. 하지만 제 사부님이 다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어요. 차라리 절 때려요.”홍청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효심이 지극하네요. 이렇게 사부님을 감싸고 돌다니, 이런 걸 보통, 의리 있다고 하죠?”유진우는‘의리 있다’ 에 악센트를 실어 말했다.“아...”홍청하는 말문이 막혔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안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을 위해 사부와 척질 수는 없었다.“유진우 씨, 내게 원한 있는 거 알아요. 반격 안 할 테니 몇 대 때리고 화 풀어요. 하지만 때리고 나서는 넘어가야 해요!”“됐어요. 당신을 때려봤자 제 손만 더러워질 뿐이에요.”홍길수의 동생이라 열심히 도와주고 양보도 했는데 그 성의를 무시하다니, 그럼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여기까지 한 걸로 족했다.“유진우 씨, 잘 대해주신 거 알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오늘부로 사부님과의 일은
그 말을 들은 유진우가 피식 웃었다.“홍청하 씨, 왜 이렇게 이중잣대를 들이밀어요? 당신 사부가 앞뒤 다른 말 할 때, 은혜를 원수로 갚을 때, 내 술에 약을 타라고 당신을 사주할 때, 방금 날 죽이려 들었을 때는 막무가내란 생각 안 했어요? 힘으로 안 될 것 같으니 어떻게든 설득하려 하고, 웃긴다는 생각 안 해요?”유진우가 위험에 처했을 때 홍청하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백수정이 위험에 처하니 갖은 방법을 다 쓰고 있었다. 정말 눈 뜨고 봐줄 수 없었다.“난...”유진우의 질문 공격에 홍청하는 말문이 턱 막혔다. 핑곗거리를 찾지 못한 그녀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다.“다 당신을 위한 거예요!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사부님 인맥이 얼마나 넓은데, 잘못했다간 고수들에게 미움받을 거예요. 그럼, 유진우 씨에게 좋을 것 하나도 없어요.”“다들 절 눈엣가시로 보는데, 인여궁 하나 정도는 일도 아니죠.”유진우가 차갑게 말했다. 그는 이미 공공의 적이었는데, 인여궁 하나가 더 들어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말이 안 통하네요!”홍청하는 화가 나 어쩔 줄 몰랐다. 백수정이 다치지 않았다면 유진우에게 질 수 있었을까? 좋은 마음으로 알려줬더니 유진우는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홍청하 씨, 더 이상 그쪽이랑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당신 오빠를 봐서 한 번은 놓아줄게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다시 절 건드린다면 그땐 정말 놔주지 않을 거예요. 지금 당장 풍우 산장에서 꺼져요!”유진우가 소리쳤다. 강한 위압이 풍겨 나왔다. 인여궁 제자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물러났다. 홍청하도 깜짝 놀라 입을 반쯤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빨리! 빨리 궁주님을 모셔가!”풍자 할멈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백수정을 데려가라 명령하고 도망쳤다. 오늘은 이대로 망한 것이다. 하지만 백수정이 무사하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유진우! 나와서 죽어!”이때 위엄 있는 고함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풍우 산장을 들
지난번 유진우에게 지고 단전이 망가진 뒤 도규현은 암암리에 힘을 모으며 복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됐다.“지금 넌 전보다 더 약한데, 어떻게 하려고?”유진우는 도규현을 훑어보다 그의 단전은 고치긴 했지만 이미 크게 상했다는 걸 알아보았다. 일반적인 후천 무사에게도 아무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흥! 내가 싸운다는 게 아니야. 도전장을 던진 사람은 내 사부님이야!”“사부님이 누군데?”“잘 들어. 내 사부님은 바로 자양지존 님이야!”순간 장내가 술렁거렸다.“뭐? 자양지존? 무도 마스터의 강자 아니야?”“맞아!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정말 유명하신 분이야. 강남 5대 마스터로 불리기도 했어.”“대박, 저 사람 누군데? 어떻게 자양지존 님의 제자가 된 거야?”인여궁 제자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도 마스터는 그녀들에게 신과도 다름없는 존재였다. 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무도 마스터 아래는 모두 똑같다’ 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었다. 무도 마스터에게는 실력이 얼마나 강하든, 얼마나 유명하든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모두 똑같은 존재였다. 마스터란 모든 무사의 최종 목표였다.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면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자양지존이었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유진우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말했다.“어때서? 유진우! 내 사부님 이름도 못 들어본 건 아니겠지?”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양지존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공포에 떨었다. 그런데 유진우는 아무 반응도 없이 태연했다.“그게 중요해? 도전장을 냈으면 받아야지.”“받는다고?”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미친 거 아니야? 자양지존 님과 붙는다고?”“그분은 진짜 무도 마스터야. 신이라고. 이런 사람과 싸운다니, 죽고 싶은 거 아니야?”“죽을 때가 돼서도 모르나 보지.”사람들은 놀람과 동시에 유진우를 무시했다. 무도 마스터 앞에서는 아무리 강해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하하하... 역시 저돌적이네. 그래! 그럼 그렇게 해야지. 이건 도전장이니, 잘 가지
다음날.놀라운 소식이 이리저리 퍼지기 시작했다. 천재 무사 유진우가 공개적으로 마스터 자양지존에게 도전한다. 장소는 청양호 경기장.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술렁댔다. 무도 대회 우승자인 유진우는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었다. 특히 황보용명이 죽은 뒤 용의자로 특정된 후, 그를 향한 관심은 더 커졌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암암리에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와 자양지존의 결투 소식이 퍼지자, 강남, 강북 무도 연맹이 모두 놀랐다.해가 뜰 무렵.청양호 근처에는 이미 구경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은 자양지존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강한 무도 마스터로서 자양지존의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강남 무도 연맹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비록 최근의 활동은 잦아들었지만, 그 위엄은 여전했다.강한 무도 마스터 한 사람은 하늘의 용처럼 쳐다볼 수만 있을 뿐 가닿을 수는 없었다.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무사들의 영광이었다.이때, 호수의 넓은 정자 안.각종 유명인이 모두 이 자리에 모였다. 맹주 송만규, 무도 연맹의 원로들, 천재 제자들, 황보 가문의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맹주님, 오늘 결투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유진우 그 자식 정말 자양지존에게 도전하는 겁니까?”황보춘이 물었다.“진짜일 거야. 도씨 가문에서 도전장을 보내 오늘 점심 여기서 싸운다고 했어.”송만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연맹은 유진우를 조사하고 있었다. 풍우 산장의 그 어떤 일도 그들의 감시를 피하지 못했다.“그 자식 죽고 싶은 겁니까? 감히 자양지존 님과 붙다니?”황보춘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흥! 무도 대회에서 이름 좀 날렸다고 무도 마스터에게 도전할 수 있는 줄 아는 거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옆의 황보추가 콧방귀를 뀌었다. 젊은 무사들 가운데서는 눈에 띌 수 있다지만 자양지존 같은 사람들과는 같은 차원이 아니었다.“아빠, 유진우 그 자식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에요?”황보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황보추가 눈썹을 까딱하며 대답했다.
황보용명이 죽은 뒤 그는 계속해 주시하고 있었다. 강남 무도 연맹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다.“어서 앉으시죠.”송만규는 담담하게 웃으며 그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소홍도는 스스럼없이 자리에 앉아 질문했다.“송 맹주님, 오늘 결투 어떻게 보십니까?”“당연히 눈으로 보죠.”“하하... 정말 재미있으시네요. 자양지존은 제자 도규현의 복수를 위해 왔다던데, 그 천재 오늘은 좀 위험하겠네요.”“그건 운명에 맡겨야죠.”“강남 무도 연맹에서 어렵게 나온 천재인데, 죽어도 괜찮다는 말씀입니까?”“천재긴 하지만 성품이 좋지 못하면 안 되죠.”“맞아요! 아버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범인으로서 죽어 마땅합니다.”황보추가 끼어들었다.“죽을지 말지는 곧 알게 되겠지.”소홍도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는 오늘 구경하러 온 거였다. 강남 무도 연맹의 내부 싸움도 격렬할수록 좋다고 생각했다.“와! 예쁜 여자들이 왜 이렇게 많아?”이때 탄성이 들려왔다. 수려한 외모의 여자들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모두 손에 장검을 든 것이 보통 여자들은 아니었다. 바로 인여궁 사람들이었다!“어머! 어디서 여자 무사들이 이렇게나 많이 온 거야? 너무 예쁜 거 아니야?”“옷을 보니 연경 인여궁 사람들 같아.”“인여궁? 모두 재능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여자 제자들이라 들었는데, 역시 그러네!”“눈 호강이네. 저들 중 한 명과 결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사람들이 웅성댔다. 특히 남자 무사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여자 무사는 원래도 적은데, 한꺼번에 이렇게나 많이 등장하니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선배, 여기 무사들은 다 왜 이래요? 너무 역겨워요.”“강남과 연경을 어떻게 비교해. 이런 곳은 볼 가치도 없어.”“우리가 너무 예뻐서 그런가 봐요. 가끔은 예쁜 게 죄네요.”인여궁 제자들의 콧대가 한껏 올라갔다. 그녀들은 주목받는 걸 은근히 즐겼다. 그녀들의 특권 같은 거였다. 남자들은 그들에게 굽신거리며 한껏 떠받들어야 했다.“사부님, 유진우
유진우가 나오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분노, 원한, 놀라움, 비웃음, 무시. 각종 감정을 담은 시선들이 한데 얽혀 유진우의 몸에 내리꽂혔다.황보용명의 죽음으로 유진우는 거의 모든 무사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오늘도 자양지존이 어떻게 그를 죽일까 보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네요.”장 어르신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청양호 주위에 사람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대부분 사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절 깎아내리려고 왔을 거예요.”유진우는 태연하게 그들을 마주했다. 도전장을 받는 순간부터 오늘 싸움은 일반 싸움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지금이라도 돌아가죠? 무도 마스터는 일반 상대가 아니에요. 체면보단 목숨이 중요하지 않아요?”장 어르신이 낮게 말했다. 그는 유진우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자양지존은 강남에 이름을 알린 무도 마스터였다. 두 사람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마스터 아래는 모두 똑같다. 그건 누구도 깰 수 없는 철칙이었다.“이제 와서 도망가는 게 어디 있어요?”“무도 마스터는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신 같은 존재입니다.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세요!”“걱정 마요. 전 다 계획이 있어요.”유진우가 작게 웃었다. 자양지존은 강한 상대였지만 유진우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유진우 씨...”이때 홍청하가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걸어왔다.“무슨 일입니까?”유진우는 금세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 두 사람은 완전히 갈라섰다.“진우 씨, 결투를 포기하세요.”“이유는요?”“진우 씨 생각해서요. 자양지존은 무도 마스터예요. 유진우 씨보다 훨씬 강하다고요.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제 일에 신경 쓰지 마시고, 사부님한테 가세요.”“이러지 마요. 진우 씨가 살아있었으면 해서 하는 말인데 왜 계속 죽으려 들어요?”“싸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내가 죽는다고 확신합니까?”“꼭 싸워봐야 알아요? 자양지존은 무도 마스터라고요. 당신은 뭔데요? 사부님이 다치지 않으셨다면 어제 같은 일은 없었을
조이준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미지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바로 땅에서 오령정을 줍고 있었다.이것들은 천금 같은 보물이어서 팔든 직접 사용하든 모두 좋은 선택이었다.“오령정? 이게 모두 오령정이라고?”“어서 와. 빨리 주워.”이 순간 많은 사람이 땅 위에 널려 있는 검은 결정체의 정체를 알고 하나둘씩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더라도 모두가 빼앗는 것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쟁탈 대열에 합류했다.“이 오령정은 내가 먼저 본 거야, 이리 내놔.”“헛소리 집어치워, 지금은 내 손에 있으니 바로 내 것이야. 인정하기 싫으면 한판 붙던가.”“제기랄, 누가 감히 나한테서 뺏어간다면 다 죽을 줄 알아.”이익이 있는 곳에는 항상 싸움이 따르기 마련이다.오령정의 가치를 알게 된 후 각 세력은 미친 듯이 경쟁하기 시작했으며 실력이 강한 사람은 몇 개를 더 얻을 수 있었고 실력이 약한 사람은 남은 찌꺼기만 조금 주워가며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유감없이 정교하게 보여주었다.만약 양측의 실력이 모두 강하고 아무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면 큰 싸움으로 승패를 나누었고 불과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바로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화롭던 곳에서 이미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했다.“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네.”사방에서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것을 본 이청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겨우 몇 조각의 오령정으로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싸우다니, 만약 이보다 더 가치 있는 보물이 나온다면 또 어떤 장면일까?“이봐요,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을 내놔요. 아니면 제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세요.”그때 갑자기 두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청성이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에 시선을 고정하며 앞뒤로 그녀를 에워싸면서 말했다.“어디서 감히 아가씨를 협박해! 너희들 다 뒤지고 싶어?”상황을 목격한 이청성 주변에 있던 근위병들은 바로 칼을 빼 들며 말했다.그들은 모두 반은 종사급 고수들이니 무림인들의 세계 부하들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
갑작스러운 폭발에 모두가 깜짝 놀랐고 에너지파가 휩쓸면서 적지 않은 무사들이 사방으로 날려 아수라장이 되었다.다행히 서지석과 제자들이 빨리 달린 탓에 피해를 면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했더라면 그들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모든 먼지가 다 떨어질 때쯤 다들 시선을 집중하고 보니 마을 이장의 집은 이미 평지로 변해 있었고 사방의 무너진 담벼락에 의해 온 땅이 어질러져 있었다.허공에 매달렸던 바람은 나무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곤룡띠만 덩그러니 땅에 떨어져 있었으며 그 외에도 땅에는 정체 모를 검은 결정체들이 마치 조약돌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유진우는 분명히 바람의 몸이 폭발하면서 튀어나온 물건이라고 확신했다.결정체에서 나오는 피비린내는 아마도 혈액에 의해 녹아서 나는 냄새일 것이고 정상인의 피는 액체 상태이지만 바람이 죽기 전의 피는 고체 상태로 결정체가 되어버렸으니 확실히 이상한 점들이 있어 보였다.유진우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식견이 넓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바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그의 인식을 뛰어넘었다.처음에는 이유 없이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그 뒤로 신체 소질이 갑자기 배로 강해져 고통과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마리의 미친 짐승과도 같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의 몸에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날카로운 이빨, 칼날 같은 손톱, 갑자기 몸에 생겨난 검은 비늘은 칼로도 베기 힘들 정도였고 총적으로 바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보였으며 현재 땅에 널려진 검은색 고체 상태의 결정체들만으로도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도대체 무엇이 바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도 바람은 모든 면에서 정상이었는데 왜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렇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인지.혹시 그가 뭐라도 빠뜨린 것이라도 있었는지.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하였고 비록 무슨 원인인지 모르지만 바람이 짐승처럼 변한 것은 분명 그 괴상한 오아시스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안타깝게도 바람은 이미 죽었으니 더
자부심이 강하고 지려고 하지 않는 성격의 조이준은 몇 번이고 거절당한 유진우한테 다소 불만이 있었지만 생사를 가를 때가 되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고 더는 조르지도 않았다.“당신들은 여기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얼른 가서 서지석 씨를 도와줘요.”유진우는 머리를 돌려 가만히 서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을 보고 말했다.그때 서지석은 한창 미쳐 발광하는 바람과 싸우고 또 싸우고 있었다.다만 기력이 소모됨에 따라 서지석은 속도와 힘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었고 반면, 바람은 여전히 힘이 넘쳤고 지칠 줄을 몰랐다.이대로라면 서지석은 얼마 못 버티고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빨리 대선배를 도우러 가요.”금도문의 몇 명 제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곧 칼을 빼 들고 앞으로 돌진하려 했다.“잠깐만요, 이걸 가지고 가요.”그때 이청성은 갑자기 금빛 밧줄을 꺼내며 금도문 제자에게 던져주었다.이 금색 밧줄은 매우 단단했고 표면에 은은한 빛이 돌고 있어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뭐죠?”금색 밧줄을 본 조이준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며 물었다.“이것은 말로만 듣던 곤룡띠가 아니에요?”“조 선배님 눈썰미가 참 대단하시네요.”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뭐라고요? 곤룡띠라고요?”곤룡띠에 대해 들은 적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은 그 가치를 알고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곤룡띠는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유명한 보물로 매우 보기 드문 물건이었고 어떠한 칼로도 상처를 내기 힘들고 물과 불에도 쉽게 손상되지 않으며 매우 단단하고 질긴 것으로 설령 무도 종사를 묶어 두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다만 곤룡띠는 너무 희귀해서 무림인들의 세계에서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게다가 가진 자는 모두 최고의 대문 파인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여인이 이런 보물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이 여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그만 쳐다보고 빨리 서지석 씨를 도우러 가요.”이청성은 재촉하며 말했다.“네, 그래야죠.”금도문 제자들은 잠깐 꿈에서 깨어난 듯 그제야 정신을
툭!손이현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마치 공처럼 몇 바퀴 굴러다니더니 마침 몇몇 금도문 제자들의 발밑에서 멈추었다.이 상황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손이현은 죽기 전까지도 자신이 미쳐 날뛰는 바람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던 유진우에게 목이 잘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손이현은 도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총잡이 원호를 사부로 모시고 있었으며 배경이 좋아 앞길도 창창하였고 죽음의 사막으로 온 이유는 보물을 찾아 내공을 높여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리려는 목적이었다.자신은 분명 주인공이 될 운명이었고 여태까지 운수가 좋았으며 이번에도 제일 먼저 보물을 찾아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고 작은 마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이 끊어질 줄이야.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어!손이현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고 그의 휘황찬란한 인생은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고 또 뜻밖의 인연이 끊기지 않아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다.사부님 원호의 말대로라면 그의 무도 재능은 미래의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온 천하가 존경하는 최고의 강자로 되였을 것이다.그렇게 아름다운 꿈이었고 그리워했던 일이었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되어 버렸다.‘알고 보니 나는 주역이 아니었고 천명이 아니었으며 결국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후회의 외침 속에서 손이현의 의식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이게 뭐야?”땅에 떨어진 손이현의 머리를 마주한 몇몇 금도문의 제자들은 너무 놀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바로 전에 그들이 가까스로 위험에서 구해낸 손이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가 분리된 상태로 눈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어떻게 된 거지?몇몇 사람이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니 유진우의 손에 든
“너... 이놈!”손이현이 막 맞서려고 할 때 앞에서 갑자기 짐승 같은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눈여겨보니 바람은 이미 사납게 덮쳐오고 있었고 손발을 함께 사용하여 빠르게 달리며 매번 땅을 디딜 때마다 손톱이 땅에 맞닿으며 몇 줄의 깊은 흔적까지 남겼고 그 날카로운 정도가 강철 칼날에 불과했다.“거기 누구 없어? 빨리 날 구해줘! 이 괴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손이현은 안색이 크게 어두워지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야, 이 제기랄.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손이현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흉악한 얼굴로 유진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유진우는 꿈쩍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진우 씨, 지금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요. 손이현이 죽으면 안 돼요.”옆에 있던 서지석이 급해하며 말했다.“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유진우는 여전히 움직이지도 않았다.“됐어요, 됐어요. 보아하니 제가 손을 쓸 수밖에 없겠네요.”유진우가 너무 고집을 부리자 서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칼을 뽑아 들고 직접 손이현을 구하러 나섰다.하지만 실력이 자신보다 더 막강한 손이현도 바람을 굴복시킬 힘이 없는데 자신이 대신하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팍!바람은 피비린내에 이끌려 다시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죽이지 마, 날 죽이지 마.”손이현은 너무 놀라 바짓가랑이는 이미 다 젖어 있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버젓한 도명창마저 놀라 바지에 오줌을 쌀 지경이라니.“망할 놈, 그렇게 날뛰더니!”손이현이 갈기갈기 찢겨 부스러기가 될 뻔할 때 서지석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주며 바람과 혈투를 시작했다.바람의 신체가 더 크게 강화되어 그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서지석은 더는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바람은 이미 공격에 아무런 준비가 없이 이성을 잃었고 진기도 사용할 줄 몰랐기에 서지석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서지석은 민첩한 몸놀림과 함께 손에 쥔 보검으로 바람을 간신히 견제했다.그
“으르렁!”바람은 깊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왜곡된 얼굴, 송곳니로 가득한 입, 그리고 사나운 표정은 마치 악마의 형상처럼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그와 눈이 마주친 손이현은 놀란 나머지 온몸을 움찔했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버렸다.“야! 저기 누구! 어딜 가는 거야! 제발 나 좀 구해줘!”유진우가 등을 돌리고 가는 모습에 손이현은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져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바람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손이현은 싸움의 의지를 잃었다. 그의 눈에 비친 바람의 존재는 이제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콧대가 높으시잖아요? 내가 못된 마음을 품었다고 했죠? 그럼 저도 이제는 신경 끌 게요.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에게 더 이상 신경 쓸 가치를 느끼지 않았다. 손이현이 죽든 말든 그것은 유진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멈춰! 당장 멈춰! 내가 명령한다! 이 미친놈을 빨리 쫓아내!”손이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소리쳤다.하지만 유진우는 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도명창 손이현이야! 내 사부님은 서남 지방 5대 강자 중 하나인 원호야! 오늘 네가 내 목숨을 구하지 않으면 사부님은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손이현은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협박이라도 할 셈이었다.서남 지방에서 원호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다들 숨을 죽이기 마련이었다.“뭐? 원호? 그 사람은 서남 지방에서 실력이 상위 3위 안에 드는 존재잖아!”“손이현의 스승이 원호라니! 그가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이제 알겠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겠지.”“원호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기를 아끼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하다고 들었어. 만약 손이현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속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원호의 명성은 사막의 교룡보다도 더 위세를
“응?”손이현이 뒤를 돌아보자 한 줄기 차가운 빛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속도는 엄청나게 빨랐고 그와 함께 피의 비린내가 짙게 맴돌았다.공격을 가한 자는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나무에 박혀 몸을 움찔거리던 바람은 결국 두 손으로 창대를 붙잡고 비틀어 간신히 반 미터 정도 앞으로 몸을 끌어당겼다.그는 손이현에게 다가가며 그 날카로운 손톱을 펼쳐 내리치려 했다.그의 손톱은 마치 날 선 강철처럼 그 자체로도 무지하게 치명적이었다.“고작 이런 기술로 나를 공격하겠다고?”손이현은 갑작스레 다가오는 공격에 콧방귀를 끼며 팔을 휘둘렀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렸다.손이현의 진기가 바람의 손톱에 의해 가볍게 찢어졌다. 손목마저 그대로 잘려 나가서 뜨거운 피가 튀며 바닥에 떨어졌다.현장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다.“아악!”손이현은 떨어진 손목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가 곧이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바람의 손톱이 이렇게 날카롭고 강력할 줄을 말이다.한순간에 자신의 진기를 뚫고 손목을 자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내 손! 내 손!”손이현은 잘린 손을 붙잡고 고통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그는 바람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다. 바람은 그의 손목을 마치 두부를 베어내듯 손쉽게 잘라버렸다.갑작스레 다가온 공격에 손이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으르렁!”바람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톱을 휘둘러 창대를 부러뜨리고 속박에서 벗어났다.그리고 다시 포효하며 손이현을 향해 달려들었다.“안 돼... 가까이 오지 마!”손이현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바람의 손톱에 이미 트라우마가 생긴 듯했다.잘린 손목은 아픈 데다 창은 나무에 고정되어 있어 바람을 제대로 막아낼 수도 없었다.그는 그저 극심한 통증 속에서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바람을 죽여버려야 했다.바람은 폭주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너무 공포 그 자체였다.
바람은 그로 인해 계속 후퇴하며 포효했다.그는 이미 폭주한 상태였고 진기라는 보호막조차 거두어낸 채 오직 육체만으로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다.그리하여 손이현의 날카로운 창끝이 바람을 찔러대며 그의 온몸을 갈기갈기 베어가자 그의 피는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다.모두가 바람이 이번엔 쓰러질 거라 생각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바람은 고통을 모르는 듯 자신에게 난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또다시 미친 듯이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가장 두려운 점은 그의 상처가 눈에 띄게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그의 회복력은 그 자체로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놀라웠다.“흥! 죽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는군! 한 방에 너를 끝장내겠다!”바람이 다시 달려들었으나 손이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긴 창을 한 손에 쥐고 떨자 은색 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주위를 밝게 밝혔다.“이 창이 세상을 놀라게 하리!”손이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창을 뒤로 당기곤 그것을 무자비하게 앞으로 내질렀다.윙!웅장한 소리가 들렸다.그 순간, 창끝에서 은빛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지며 마치 하늘을 가르는 용처럼 바람을 향해 돌진했다.그의 일격은 너무나 빠르고 강력하여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와, 정말 멋진 창법이야! 기세가 정말 무서워!”“이게 바로 도명창의 실력인가? 역시 대단해!”“이 창 한 방이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바람은 이제 끝장났다고 봐야지!”사람들은 손이현이 내뿜은 은빛용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경외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그들은 손이현의 이름을 익히 들어왔지만 그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이번에야 비로소 도명창 손이현의 위력을 깊이 체감하게 된 것이다.“으르렁!”손정의 공격을 마주한 바람은 여전히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정면으로 돌진했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려 퍼지며 손이현의 은빛 창이 바람의 배를 뚫고 들어갔다.창끝이 그의 배를 관통하고 몸을 뚫고 지나가며 온몸을 꿰뚫었다.하지만 기이하게도 창끝에 묻은 피는
“큰일이에요! 금실망이 곧 터질 거 같아요!”그때, 누군가가 외쳤다.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실망에 갇힌 바람은 거대한 존재로 변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그의 온몸은 검은 문양에 휩싸이게 되었다.그의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치솟았고 손톱은 뾰족하게 변했다. 그의 눈은 붉은빛에서 칠흑처럼 깊고 검은색으로 변했으며 입에서는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그르렁! 으르렁! 크아악!”바람의 포효는 점점 더 커져갔고 그 표정 또한 야수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졌다.그의 등은 천천히 부풀어 올랐으며 팽팽하게 펴진 금실망을 한 줄, 한 줄씩 찢어 나갔다.“으르렁!”바람은 또 한 번 포효했다.그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금실망을 움켜잡고 힘껏 찢었다.“쾅!”튼튼한 금실망이 그대로 두 동강 나며, 거대한 틈이 벌어졌다.금실망을 잡고 있던 청년들은 그 힘에 순간적으로 밀려나며 바닥에 쓰러졌다.“큰일 났다! 이 미친놈이 나왔어!”“빨리! 빨리 그를 막을 방법을 찾아!”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급한 대로 줄을 꺼내 바람을 다시 묶으려 했다.“으르렁!”바람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그의 근육질 몸체를 한 번 더 흔들어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그러자 거대한 밧줄들이 순식간에 부러지며 바람을 막을 힘이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막을 수 없어! 모두 도망쳐!”마을의 청년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빠진 채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바람이 방금 전 마을 사람들을 처참히 무찌르던 그 장면이 눈앞에 떠올라 다시 그에게 다가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이 괴물 같은 존재를 상대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쓸모없는 놈들! 내가 나서마!”그때 갑자기 청색 의복을 입은 한 남자가 군중 속에서 솟구쳐 나와 바람 앞을 가로막았다.긴 창을 든 그 남자는 바람 앞에 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내뿜는 기세는 마치 고요한 폭풍처럼 강렬했다.“봐! 손이현이야!”“손이현? 서남 지역에서 명성을 떨친 도명창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