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명이 몸을 돌려 장 어르신의 얼굴로 주먹을 날렸다. 장 어르신이 단번에 그 주먹을 휘어잡았다.쿵!소리와 함께 조일명의 진기가 부서졌다.“뭐야?”조일명이 깜짝 놀랐다. 회심의 일격이 이렇게나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이게 다야?”장 어르신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조일명의 손목을 비틀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아악!”조일명이 비명을 질렀다. 그때 장 어르신이 발을 휘둘러 조일명을 차버렸다. 조일명은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코와 입에서 피를 뿜었다.그 모습에 조씨 가문 사람들이 매우 놀랐다. 조일명의 실력은 호위1팀 팀장에 버금갈 만큼 강했다. 조씨 가문에서도 그를 상대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가 수척한 노인에게 꼼짝도 못 한다니, 믿을 수 없었다!“유진우 이 자식, 어디서 이런 고수를 데려온 거야?”조군해가 인상을 찌푸렸다. 조군수를 내쫒고 비연단 레시피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있었다.“일명아! 괜찮아?”조군표가 급히 아들을 일으켜 세웠다. 조일명이 겁먹은 듯 말했다.“아빠, 이 사람 너무 강해요, 일반 무사가 아닌 것 같아요!”“그런 것 같구나, 유진우가 거금을 들여 모셔 온 분 같아.”“싸울 사람 있습니까?”장 어르신이 냉랭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조씨 가문 사람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조일명도 그에게 졌는데 어떻게 감히 나서겠는가?“아무도 안 나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유진우는 조선미의 손을 잡고 위풍당당하게 사당을 걸어 나왔다. 조아영이 조군수를 부축하고 그 뒤를 따랐다. 계속 조씨 가문에 있을 수는 없었다.“유진우 씨! 오늘 일 아직 안 끝났어요. 죽도록 후회하게 될 거예요!”떠나려는 유진우 일행을 보며 조윤지가 입을 열었다. 성공할 수 있었는데 유진우가 망가뜨려 놓았으니, 화가 나는 것도 당연지사였다.“그래요? 누가 후회할 지 한 번 두고 보죠, 오늘 아저씨를 모함해 끌어내리려 한 건 큰 실수였어요. 조씨 가문은 당신들이 망치고 말 거예요!”“허튼소리 마
깊은 밤, 풍우 산장.“아저씨, 상처는 이제 괜찮아졌으니 며칠 푹 쉬세요.”유진우가 조군수의 상처를 치료한 뒤 보혈단을 건넸다. 다행히 칼이 급소를 모두 피해 갔기에 치료는 어렵지 않았다.“신세 많이 졌어요, 고마워요.”조군수는 옅게 웃었다. 언젠가부터 그는 유진우를 최고의 사윗감으로 여기고 있었다.“괜찮아요,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그런데 아저씨, 다 이겨버릴 수 있으면서 왜 자신을 찌르신 거예요?”유진우가 물었다. 조씨 가문의 호위무사는 모두 조군수의 수하였다. 방금도 쉽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는데, 굳이 왜?“누군가 오늘 일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무력으로 진압하면 사람들의 반발이 커질 테고, 조씨 가문이 풍비박산날 수도 있어요. 요새 조씨 가문이 흔들리고 있어서, 가문만 무사하다면 조금 희생하는 것도 괜찮죠, 뭐.”“대단하십니다. 그 뜻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아쉬울 따름입니다.”유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조선미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맞아요, 아빠. 물러서면 안 됐어요. 지금 큰아버지는 완전히 변해버렸어요. 전엔 그래도 제 사람은 해치지 않았는데, 지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세요!”“네 큰아버지도 그러고 싶지 않으셨을 거야. 순간 판단력이 흐려진 것뿐이야.”오늘 일은 확실히 예상 밖이었다. 형제 사이가 순식간에 멀어진 것 같았다.유진우가 두 사람에게 차를 따르고 말했다.“지금 가장 걱정되는 건 조군해가 아니라 조윤지예요. 욕심 많고 수단 많은 사람이라 자신을 위해서라면 같은 가문 사람도 공격할 수 있어요.”조선미가 옅게 인상을 쓰며 물었다.“조윤지가 이간질하고 있단 뜻이에요?”“아니요, 정확히 말하면 조윤지와 선우희재 두 사람이 짜고 치는 거예요. 아저씨, 선우희재가 왜 조씨 가문과 결혼하려 들겠어요? 선미 씨와 결혼하지 못하게 되니 이제 조윤지에게 들러붙잖아요.”“왜인데요?”조군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선우희재가 자기 딸을 좋아하고, 마침 선우 가문의 비즈니스를 챙기기 위해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조씨 가문이 오늘날의 업적을 이루기까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란 무리였다.“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비즈니스로는 아무도 절 못 이겨요.”“어떻게 할 생각이야?”“서울에서 계속 발전하기란 무리예요. 연경에서 비연단을 내세워 다시 일어날 거예요.”“연경에 간다고? 우리 가문은 연경에는 인맥이 없어서, 가면 힘들 텐데.”“아빠, 벌써 잊은 거예요? 연경에 제 외할아버지가 계시잖아요. 아무도 절 못 건드려요.”“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그럼, 행운을 빈다.”조선미의 실력과 그녀 외할아버지의 도움이 있다면 연경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였다. 조씨 가문의 운명은 이제 조선미에게 달렸다.......그때, 약신궁 안.인여궁 제자들이 한 병실 문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백수정이 쓰러진 뒤 그녀들은 급히 약신궁에 가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약신왕이 외출 중이라 장로 몇 명에게 치료받을 수밖에 없었다.벌컥!문이 갑자기 열렸다. 흰 수염의 장로가 땀벌창이 돼 걸어 나왔다. 그 뒤를 검은 옷 집사 한 명이 따랐다.“장로님, 제 사부님은 괜찮은 거죠?”차연주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죄송합니다, 병세가 너무 깊어 저희도 손쓸 수 없습니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사흘을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네?”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백수정은 인여궁 궁주였고 반보 마스터 급의 강자였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죽는다니?차연주가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장로님, 약신궁의 고수도 고치지 못한다는 말씀이세요?”“강한 사람일수록 주화입마에 더 취약하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궁주님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의술이 고명한 명의를 찾고 영약을 쓰는 겁니다. 두 번째, 실력 있는 무도 마스터에게 전신 수련을 대가로 궁주님을 구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너무 어렵습니다.”장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명의와 무도 마스터를 찾기
“유진우?”그 말을 들은 인여궁 제자들이 멍해졌다. 누구도 그 명의가 풍우 산장의 그놈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은 바로 얼마 전 유진우와 싸웠다. 지금 다시 돌아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그 유진우 의술이 정말 그렇게 좋아?”풍자 할멈이 인상을 쓰고 물었다. 20대의 나이에 약신궁 장로가 되었다는 건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다.“당연하죠! 유 장로님은 수장님이 직접 임명하셨어요. 약신궁의 최연소 장로이기도 하고요. 그 의술은 수장님 말고는 따라갈 사람이 없어요!”유진우가 침 한 대만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그도 똑똑히 보았다.흰 수염 장로도 고개를 끄덕였다.“유 장로는 젊지만, 의술이 좋기로 유명하죠. 그자가 궁주님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설마... 정말 우리가 가서 부탁해야 한다고?”풍자 할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기 전 그는 궁주가 죽더라고 절대 유진우에게 부탁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차연주가 자신 있게 말했다.“걱정 마요, 제가 할게요. 유진우는 제게 반했어요. 제가 미인계를 쓴다면 틀림없이 불러낼 수 있을 거예요.”“좋아, 그럼 부탁한다.”풍자 할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여궁 제자들은 저마다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어 남자를 유혹하기 쉬웠다. 여자들은 자신의 우세를 이용해야 하는 법이다.......다음 날 새벽, 풍우 산장.인여궁 제자들은 백수정을 모셔 들고 산장으로 찾아왔다. 기세만 보면 돈을 받으러 온 사채업자들 같았다.“유진우 어디 있어? 당장 불러와!”맨 앞에 선 차연주가 명령조로 말했다. 유진우가 장 어르신 등 몇몇 사람과 함께 천천히 걸어 나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이 실력 좋은 약신궁 장로라며?”“그런데요?”“그럼 잘됐네, 우리 사부님이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빨리 치료해 줘!”“잠깐... 내가 왜 그래야 하죠? 우리 친한가요?”“아닌 척하지 마, 네가 날 좋아하는 거 다 알고 있어. 우리 사부님을 구해주면 밥이라도 한 끼 먹어줄
“또 이러는 거야? 밥으로 안 되면 데이트라도 해 줄게. 손도 잡아줄 수 있어. 그럼 됐지?”그녀 나름 희생한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와 가까이할 기회조차 없었다.“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왜 이렇게 자신 있어요?”유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확실하게 거절했는데도 이 여자는 주제를 몰랐다. 모든 남자가 모두 그녀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듯했다.차연주가 머리를 넘기며 오만하게 답했다.“난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잖아. 신분도 고귀하고, 흠잡을 데 없어.”“대단하군요. 그럼, 사부님은 그쪽이 치료하는 거로 해요. 전 이만.”“거기 서!”차연주는 달려가 유진우의 앞을 막아서고 말했다.“내가 치료할 수 있었으면 여길 왜 왔겠어? 꾸물대지 말고 어서 치료해. 시기를 놓치면 화낼 거야!”“그래요? 어떻게 화내는지 한 번 볼까요?”“너...”차연주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를 본 남자들은 모두 그녀에게 매혹돼 어쩔 줄 몰랐다. 그녀가 먼저 다가간다면 더욱 그랬다.하지만 유진우는 달랐다. 손잡기로도 유혹하지 못한다면 그녀의 몸을 탐내는 게 분명했다.더러운 놈!사부님을 구해야 하긴 하지만 이 남자에게 몸을 주는 건 죽어도 용납할 수 없었다.“설마, 선배님도 이 남자를 유혹하지 못하는 거야?”“선배에게도 안 넘어가다니, 이 사람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선배님을 안 좋아하는 건 아니고?”“그럴 리가 있어? 누가 선배님을 싫어하겠어? 그런 척하는 거야.”인여궁 제자들이 수군댔다. 그녀들이 유혹하지 못하는 남자는 없었다. 애교 한 번에 윙크라도 날려주면 남자들이 줄을 섰다. 그런데 오늘 그 필살기가 통하지 않은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연주야...”풍자 할멈이 조용히 말했다.“궁주님의 생명이 중하니 네가 희생해서 먼저 이 남자를 설득해. 궁주님이 나으신 뒤 다시 싸워도 늦지 않아.”“네.”차연주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유진우에게 다가가 말했다.“웬만하면 안 넘어가나 보네. 그래, 오늘 서프라이즈를 줄게.”“어떤 것입니까?
짝!마찰음과 함께 차연주가 공중으로 붕 떠 두어 바퀴를 돈 뒤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앞니 두 개는 이미 부러졌고 코피가 줄줄 나고 있었다.장내가 조용해졌다. 인여궁 제자들은 귀신을 본 것처럼 매우 놀랐다. 볼 뽀뽀까지 한 선배가 그 남자에게 맞을 줄은 몰랐다. 매력 있고 아름다운 차연주가!그녀에게 구애하는 남자들은 줄을 섰다. 그들은 모두 차연주에게 잘 보이려 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왜? 좋아하는 기색도 하나 없이 차연주의 뺨을 때렸다.미친 거 아닌가?“감히... 감히 날 때려?”차연주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에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이 가득했다.인여궁 큰 제자가 남자에게 뺨을 맞았다. 화끈거리는 얼굴이 아니었다면 꿈인 줄 알았을 것이다.“그게 왜요? 누가 이상한 짓 하라고 했어요?”유진우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닦았다.‘이 여자 입냄새가 장난 아니네.’“이상한 짓?”차연주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떤 남자가 감히 그녀를 이렇게 대하겠는가?용서할 수 없었다.“아악! 죽여버릴 거야!”차연주가 소리를 지르며 검을 뽑으려는 찰나, 풍자 할멈이 그녀를 막았다.“하지 마! 중요한 게 뭔지 잊었어?”“이놈이 절 모욕해요.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궁주님의 생명이 급선무야. 그리고 넌 저들을 상대할 수 없어!”“하...”차연주가 숨을 몰아쉬며 눈을 부릅떴다. 맞은 거로도 모자라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 사부님만 아니었어도 그에게 본때를 보여줬을 것이다.물론 아직도 그녀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는 고자거나 게이일 것이다.“선배!”이때 홍청하가 걸어 나왔다. 백수정을 본 그녀의 눈빛에 긴장이 더해졌다.“너 마침 잘 왔다.”풍자 할멈이 그녀에게 말했다.“궁주님이 크게 다치셔서 유진우에게 치료를 맡겨야 해. 너와 유진우의 사이가 좋으니, 네가 부탁해 줘.”“유진우 씨가요?”홍청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정말 우리 사부님을 살릴 수 있어요?”어젯밤까지만 해도 그가 자신을
“그건 어렵지 않죠. 하지만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풍자 할멈이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궁주님을 구해준다면 전의 일은 모두 없던 거로 하지. 원한다면 인여궁 제자 중 한 명과 결혼하게 해 줄게.”“인여궁의 사람에게는 관심 없습니다. 구할 수는 있지만,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그게 뭐야?”“첫 번째, 사례금 1조 원을 주세요.”“1조? 그냥 돈을 뺏어가지 그래?”차연주가 급히 말했다.“싫다면 이 말은 없던 거로 하겠습니다.”“줄게, 주면 되잖아?”풍자 할멈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정을 살릴 수만 있다면 돈은 얼마를 주든 상관없었다.“두 번째, 홍청하 씨를 인여궁에 돌아가게 하세요.”“그래!”풍자 할멈이 흔쾌히 수락했다. 이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세 번째, 이 여자를 인여궁에서 내쫓고 평생 돌아올 수 없게 하세요!”유진우가 차연주를 가리키며 말했다.“뭐?”장내가 술렁거렸다. 유진우가 이런 요구를 내놓을 줄은 몰랐다. 차연주는 인여궁의 후계자인데, 그녀가 내쫓긴다면 이제 누가 인여궁을 계승한단 말인가?차연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외쳤다.“너... 네가 감히 이간질해? 죽여버릴 거야!”“제 조건은 이렇습니다. 모두 수락한다면 구해드리죠.”유진우는 차연주를 신경 쓰지 않은 채 풍자 할멈에게 말했다. 차연주를 내쫓으라 한 것은 그녀가 역겨워서인 것도 있지만 홍청하를 위한 것도 있었다. 차연주가 있는 한 홍청하는 인여궁에서 편히 있지 못할 것이다.“앞의 두 가지 조건은 받아들이겠으나, 세 번째 조건은 어려울 것 같은데.”풍자 할멈이 미간을 찌푸렸다. 차연주는 궁주가 아끼는 제자인데, 어찌 내친단 말인가?“그럼, 생각 정리가 끝나면 다시 절 찾아오세요. 궁주님이 얼마나 버티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그 말을 남긴 채 유진우는 뒤돌아 방으로 걸어갔다.풍자 할멈의 표정이 돌변했다.“잠깐! 가지 마! 그렇게 할게!”“미쳤어요? 이놈이 절 내치라고 해서 정말 내치시게요?”“궁주
“뭐 하는 거야? 빨리 가!”풍자 할멈이 차연주를 내쫓았다. 차연주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유진우에게 소리쳤다.“나쁜 놈들! 내가 평생 저주할 거야!”“끌어내!”풍자 할멈은 더 이상 말하기도 싫다는 듯 인여궁 제자들에게 차연주를 끌어내라 명령했다. 유진우의 화를 돋우면 일을 그르칠 터였다.“이미 내쫓았으니, 이제 궁주님을 치료할 수 있겠지?”“먼저 돈부터 내고요.”“그래.”풍자 할멈이 급히 돈을 건넸다. 유진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하들을 지휘해 백수정을 보건실에 데려갔다.리모델링한 풍우 산장에는 온갖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보건실부터 연병장, 소장실까지 없는 게 없었다.방해받지 않기 위해 유진우는 홍청하 한 사람만을 보건실에 데리고 들어갔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문밖에 서 있었다.어느새 점심이 되었다. 풍자 할멈 등 사람들은 보건실 문가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한참이나 됐는데 왜 안 나오지?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그럴 리 없어, 사부님은 무사하실 거야.”“그 사람이 치료할 수 있을까? 사기꾼이면 어떡해?”의논이 분분하던 그때, 보건실 문이 벌컥 열리고 유진우가 손을 닦으며 걸어 나왔다.“궁주님은 괜찮으신 겁니까?”풍자 할멈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떨리는 심정으로 유진우를 쳐다보았다.“이미 깨어났습니다. 며칠간 안정을 취하면 괜찮아질 겁니다.”“너무 잘됐어요!”사람들은 기쁜 얼굴로 급히 보건실에 달려 들어갔다. 백수정은 이미 깨어있었다. 얼굴이 조금 창백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궁주님!”“사부님!”사람들은 저마다 백수정을 부르며 그녀에게 다가가 걱정했다.“유진우 씨, 고마워요.”홍청하가 기쁜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방금 유진우가 백수정을 치료하는 것을 옆에서 똑똑히 지켜보았다. 정말이지 대단한 실력이었다. 특히 침술은 정말 대단했다. 젊은 나이에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을 줄은 몰랐다.“괜찮습니다. 사부님 잘 보살펴드리세요.”유진우가 옅게 웃으며 보건실을 떠났다. 방금 진기를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