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청하가 인상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이에요? 저희한테 파는 게 아니었나요?”“인여경을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참 난처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한자리에 불러서 의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공평하게요.”“공평?”유진우가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언변이 뛰어나시네요, 경매를 이렇게나 고상하게 말씀하시고.”모두를 불러내 의논한다는 건 경매하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인여경의 값은 이제 몇십 배로 불어날 것이다.“과찬입니다. 전 상인이니, 당연히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하죠.”황성태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그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흥! 당신 같은 사람이 제일 싫어!”홍청하가 흥분해 소리쳤다. 확실하게 값을 정하면 될 거 아닌가? 돈 있으면 사고, 없으면 말고. 간단한 일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지?시간 낭비에 불과했다.쾅!몇 사람이 얘기하고 있을 때 문이 또다시 열리고 금색 가면을 쓴 남자가 들어왔다.“오셨습니까? 앉으시죠.”“네.”가면을 쓴 남자가 머리를 끄덕이며 앉으려 하다 유진우를 보고는 깜짝 놀라 뒷걸음치며 물었다.“당신... 당신이 여긴 어떻게?”“절 압니까?”유진우가 의아하게 물었다. 남자는 실수한 걸 깨달은 듯 침을 삼키며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죄송합니다, 사람을 잘못 봤어요.”“뭐야, 놀랐잖아요!”홍청하가 불만스레 말했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다니, 이럴 필요 있나?남자는 심호흡하고 자리에 앉았다. 유진우를 보는 눈에 원한이 가득했다.또다시 몇 명의 구매자가 들어왔다. 모두 명품을 몸에 두른 것이, 아무리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다 온 것 같은데, 시작하죠?”홍청하가 짜증스레 말했다.“급해 마시죠, 아직 한 분 남았습니다.”“왜 이렇게 느려요? 그럼, 그 사람 올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재촉하긴 뭘 재촉해? 지금 왔잖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부잣집 도련님이 여자 몇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그 사람은 이원기였다!“방금 누가 재촉했어? 싫으
“오지 마, 경고했어!”때릴 기세인 유진우를 본 이원기가 놀란 듯 몇 걸음 물러섰다. 오늘은 경호원도 없어 그를 제압하기 힘들었다.“좋은 날인데, 싸우지들 마시고. 앉아서 천천히 얘기하시죠.”“한 번만 봐주는 거다.”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인여경을 사기 위해 왔으니 함부로 사람을 때릴 수 없었다. 이원기 같은 사람은 언제든 처리할 수 있었다.“얼마나 대단한가 했더니 속 빈 강정이었네!”이원기가 차갑게 웃었다. 유진우가 자신의 신분 때문에 때리지 못한 줄 알았다.“그런 몰골을 하고 감히 도련님께 덤벼? 주제를 모르네.”이원기 옆의 여자들이 비웃었다. 그녀들이 유진우를 보는 시선에도 비웃음이 더해졌다.“그만하세요, 모두 도착했으니 이제 시작합시다.”모두 자리에 앉자, 황성태가 손짓했다. 경호원 한 명이 옆의 금고를 열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나무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양피지 고서 한 권이 들어있었다. 인여경이라는 세 글자가 크게 쓰여있었다.“인여경?”이를 본 사람들이 눈이 반짝 빛났다. 홍청하는 흥분한 듯 숨을 몰아쉬기까지 했다. 조금 의심했었는데, 진짜일 줄 몰랐다.황성태가 인여경을 가리키며 얘기하기 시작했다.“여러분, 이건 제가 힘들게 구한 겁니다. 인여경은 사라진 지 오랜 책이죠. 이 안에 엄청난 비밀들이 들어있습니다. 인여경을 수련한 사람들은 실력이 몰라보게 늘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외모 또한 가질 수 있답니다.”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 무리 여자들의 눈에 탐욕이 가득했다. 실력은 관심 없었지만, 외모가 주는 유혹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어떤 여자가 아름다움을 싫어하겠나?영원히 젊음을 누릴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유혹이었다.“도련님! 이거 저희가 꼭 가져가야 해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면 절대 안 돼요!”“걱정하지 마, 내가 있는 한 누구도 뺏지 못해!”이원기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이걸 가져가면 아주 좋아하겠지?”가면 쓴 남자가 중얼거렸다.“값 부르시죠. 제가 가져갈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몰렸다.“하, 2,000억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3,000억!”이원기가 다시 값을 올렸다. 이씨 집안은 다른 건 없지만 돈은 많았다. 특히 최근엔 돈이 남아돌 지경이었다.“4,000억!”홍청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인여궁에서 낼 수 있는 돈은 1조 정도였다. 인여경을 살 수만 있다면 그 돈을 모두 낼 수도 있었다.“감히 나와 흥정해? 6,000억!”이원기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몇몇 사람은 이미 포기하고 자리를 떠났다. 인여경이 귀하긴 하지만 여성들만 쓸 수 있었다. 몇십억 정도로 여자 친구를 기쁘게 해줄 수는 있었지만 몇천억은 너무 큰 돈이었다.“인여궁에는 돈이 어느 정도 있나요?”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1조 정도요. 왜요?”“아, 그래요?”유진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이내 손을 들었다.“1조!”“응?”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아나?“미쳤어요? 이런 게 어디 있어요?”“안 해, 이걸 어떻게 해?”또 몇몇 사람들이 욕을 뱉으며 떠났다.“어디까지 하나 보자.”가면 쓴 남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자리를 떴다. 그는 구석진 곳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어, 나야, 방금 그 자식 봤어. 이번엔 절대 놓치면 안 돼!”2층 룸 안.유진우의 말에 이원기조차 놀란 모습이었다. 그 옆의 여자들도 경악했다. 이원기가 물었다.“1조를 낼 수는 있고?”“그건 알 바 아니고, 돈 없으면 빨리 꺼져. 방해하지 말고.”“그래! 어서 가!”홍청하가 소리쳤다. 마음 아프지만 인여경을 살 수 있다면 무엇이든 괜찮았다.이원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감히 날 무시해? 오늘 너와 내 차이를 알려주지. 2조!”“뭐라고?”사람들이 모두 놀란 얼굴로 술렁거렸다. 1조를 더 붙이다니, 그렇게 돈이 넘쳐나나?“2조?”홍청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부를 수 있는 값은 1조가 최대였다. 2조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이원기가 유진우를 비웃기 시작했다.“자식, 방금까지도 설치더
홍청하가 이원기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오히려 유진우가 구경하듯 이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이원기가 계속해 비웃었다.“자식, 돈 없으면 빨리 꺼져, 뭐 하는 거야? 날로 먹게?”“흥, 도련님에게 덤비다니, 꼴 좋다!”“2조도 없다니, 너무 창피한 거 아니야?”이원기 주변에 선 여자들이 저마다 비웃었다. 그녀들에게 돈은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홍청하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진우 씨, 돈 얼마나 있어요? 다 빌려줘요. 오늘 꼭 인여경을 사서 저 자식 기를 눌러놔야겠어요.”유진우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오늘 돈 안 가져왔어요. 영감님은요?”“저도 없습니다.”장 어르신이 손을 펼쳐 보였다. 그에게 있는 돈은 턱도 없이 적었다.“그렇게 큰 산장도 있는 사람이 이만한 돈도 없어요?”홍청하가 인상을 쓰며 의심했다.“진짜 없어요. 사람 많아서 돈 들어갈 데도 많은데, 어떻게 갑자기 그만한 돈을 빌려줘요?”유진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돈이야 있었지만 빌려주기는 싫었다. 굳이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럼 어떡해요? 이대로 양보해야 하는 거예요?”홍청하가 조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인여궁의 보물이자 앞으로 그들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물건인 인여경을 이렇게 양보할 수는 없었다.이원기가 입을 열었다.“마음에 드나 봐? 그럼 와서 나랑 놀자. 그렇다면 뭐든 가질 수 있을 거야. 저런 놈과 다니는 것보다 나을걸? 어때?”“꺼져!”홍청하가 눈을 부릅떴다. 몸을 파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이런 기회 잘 없어. 잘 생각해.”이원기가 턱을 만지작댔다. 그는 홍청하의 보이시한 분위기에 빠졌다. 가끔은 다른 스타일의 여자를 보는 것도 좋았다.“다시 한번 그런 소리 하면 죽여버릴 거야.”홍청하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왜 이렇게 주제를 몰라? 도련님이 널 마음에 들어 하시는데, 고맙다고 절해도 모자랄 판에.”“그러게, 도련님과 함께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데.”“하! 아직도 고상한 척하는 거야? 웃
이원기는 기분 나쁜 듯 눈을 부릅떴다. 지금까지 보는 사람마다 그를 도련님이라 불렀다. 직접 이름을 부르다니, 너무 건방졌다.“당신이 이원기였군.”목표를 확인한 남자의 눈이 번뜩 빛나더니 손에 든 칼로 이원기를 찔렀다.커헉!날카로운 칼이 이원기의 배를 찔렀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다짜고짜 사람을 찌르다니, 미친 거 아닌가?“악!”이원기가 비명을 지르고는 뒷걸음질 쳤다. 그는 겁에 질린 얼굴로 배를 부여잡고 물었다.“당신들... 뭐야?”“널 죽이러 왔지.”복면을 쓴 남자들이 살기 어린 눈으로 점점 이원기에게 다가갔다.“난 당신들과 아는 사이도 아닌데, 왜 날 죽이는데?”이원기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선두에 선 남자가 외쳤다.“돈을 받았으면 일을 해야지. 유청, 유 도련님께 죄를 지었으니 죽어!”“그게 누군데? 난 전혀 모르는 사람이야. 잘못 안 거 아니야?”“지금 발뺌하는 거야? 유 도련님은 신의문 사람이야. 지난번에 약신궁에서 도련님 얼굴 망쳤잖아. 벌써 잊어버린 거야?”“난 정말 몰라, 사람 잘못 본 게 분명해!”이원기는 곧 울 것 같았다.‘어디서 온 놈들이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죽이려 들다니.’“허튼소리 그만해! 넌 이제 죽은 목숨이야!”남자가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달려들었다.“멈춰!”한 여자가 남자의 앞을 막아서고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미친놈들! 도련님이 누군지 알아? 도련님 집안이 얼마나 빵빵한 줄 알아? 너희 오늘...”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칼을 휘둘러 단칼에 여자를 베어버렸다. 피가 온 책상에 튀었다.“아!”다른 여자들이 소리를 내지르며 혹여나 불똥이 튈까 이원기에게서 멀리 떨어졌다.“죽여!”복면 쓴 남자들이 두말없이 칼을 들고 이원기를 찔렀다. 이원기는 금세 이곳저곳을 찔려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빌어도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유청?”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유청을 때릴 때 이원기의 이름을 언급한 게 이렇게 돌아
이원기가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다. 괴한들은 이원기를 죽인 뒤 바로 떠났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유진우는 복수를 했을 뿐만 아니라 2조 원짜리 인여경까지 얻었다. 일거양득이었다.방금 봤던 가면 쓴 남자가 아마 얼굴이 망가진 유청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큰 반응을 보일 리 없었다.“세 분, 축하드립니다.”황성태가 웃으며 말했다.“덕분에요.”유진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방금 황성태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면서 인여경을 다시 가져오려 했었다. 하지만 인여경은 돌고 돌아 유진우의 손에 들어갔다.“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황성태가 공손하게 물었다.“유진우입니다.”“진우 씨, 보아하니 일반인은 아닌 것 같은데, 앞으로도 잘해봅시다.”“어떻게 하실 생각인데요?”“저흰 정보를 수집하고 진귀한 보물들을 팔아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도와드리겠습니다.”“그래요? 지금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답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그럼요.”“첫 번째, 황보 가문 맹주님을 죽인 범인을 알고 싶습니다. 두 번째, 칠색 영지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그 정보를 사고 싶어요. 값은 부르는 대로 드리겠습니다.”이렇게 빨리 인여경을 찾을 수 있다는 건 황성태가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의 정보라면 뭔가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뭔가 있다면 바로 알려드리죠.”“네, 감사합니다. 그럼.”유진우는 허리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두 사람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하하하... 1원도 안 쓰고 인여경을 가져오다니, 너무 잘됐어요!”홍청하는 흥분이 극에 달했다. 못 사는 줄 알았는데 너무도 뜻밖이었다.“이거 좀 이상한데요.”인여경을 손에 든 유진우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각종 책을 보며 자랐다. 이 책의 수련 방법은 예전에 한 책에서 보고 심지어는 달달 외우기까지 한 것이었다. 다만 그 책의 이름은 인여경이 아니었다.또한 그가 손에 든 인여경은 내용도 완전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이상했다.
“그냥 한 번 말해본 거예요, 싫으면 말고요.”유진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인여경은 여자만 수련할 수 있었기에 그에게는 별 쓸모가 없었다.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그럼 됐어요.”홍청하가 숨을 돌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여경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의 공이 컸다. 돌아가서 사부님한테 잘 말해 그에게 상을 주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20분 뒤.차가 풍우 산장 문가에 멈춰 섰다. 세 사람이 차에서 내리자, 차연주가 제자 몇 명을 데리고 그들을 마중 나왔다.“청하야, 인여경을 구했다며? 어디 있어? 빨리 보여줘!”“여기 있어요.”홍청하가 인여경이 든 상자를 넘겨줬다. 차연주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너무 잘됐네.”“축하드려요!”제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다 너희들 덕분이지.”차연주가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오늘은 유진우 씨 공이 컸어요.”“응?”차연주가 유진우를 흘깃 보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못 참겠나 봐? 남자들은 다 똑같아, 솔직하지 않아.”유진우가 곧바로 정정했다.“말은 똑바로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당신 때문에 이렇게 한 건 아니에요.”“아직도 고집부려? 나 안 좋아한다면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데? 다 알아, 아닌 척하지 마.”“...”유진우는 말문이 막혔다. 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어떤 일이나 모두 자신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다니.차연주가 거만하게 말했다.“됐어, 날 위해 수고해 준 걸 봐서 전의 일은 얘기하지 않는 거로 해. 오늘부터 나한테 잘해줄 수 있게 해줄게.”“뭐 해? 감사 안 하고?”“우리 선배한테 잘해줄 수 있는 건 네 행운이야. 영광으로 생각해!”몇몇 제자들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유진우는 그들을 상대하기도 싫었다.‘미친 사람들.’“무슨 일이야?”이때 예복을 차려입은 백수정이 한 할머니와 함께 걸어 나왔다. 왕비처럼 당당한 모습이었다.“사부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인여경을 찾았습니다!”차연주가 기쁜 얼굴로 인여경을 두 손에 받쳐 들었다.“그래?”
“선배?”홍청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차연주가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모든 걸 자신의 공으로 돌려버렸다. 홍청하와 유진우의 수고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너무한 거 아닌가?“응?”유진우가 인상을 썼다. 공로 따위를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은 싫었다.백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연주야, 역시 날 실망하게 하지 않는구나! 네 공을 높이 사, 인여경을 수련한 뒤 네게 전수해 줄게.”“감사합니다!”차연주의 표정이 환해졌다. 인여경을 전수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영광이었다.“선배님, 뭐 잊어버리신 건 없나요?”홍청하가 넌지시 물어봤다. 어차피 사부님을 위해 한 일이었기에 그녀 자신은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유진우의 수고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뭐? 내 말이 틀렸어?”차연주가 서늘한 얼굴로 물어봤다.‘선배인데, 안 될 게 뭐 있나?’홍청하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선배님, 인여경은 유진우 씨가 찾은 건데, 그걸 빼먹을 순 없겠죠?”“응? 청하야, 이상한 말 하지 마. 인여경은 내가 얻은 거야. 말하기 전에, 네 기억이 잘못된 건 아닌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제 기억은 정확해요. 유진우 씨의 공이 컸어요! 제가 직접 봤어요. 유진우 씨가 인여경을 구해주셨어요.”그 말을 들은 인여궁 제자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선배에게 도전하려는 기세였다.“헛소리 마! 홍청하,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선배, 전 사실대로 말한 것뿐입니다.”“사실? 하, 이거 하극상이야! 우리가 본 시간이 있는데, 생판 남 때문에 나한테 기어올라?”그녀는 지금까지 선배라는 신분을 이용해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부려 먹었다. 누구도 감히 그녀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그런데 홍청하가 공개적으로 그녀를 의심하다니! 위계질서라고는 없는 행동이었다.“선배, 유진우 씨가 우리를 도와줬는데, 모른 척하면 안 되죠.”“닥쳐!”차연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홍청하의 뺨을 있는 힘껏 때리고는 외쳤다.
툭!손이현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마치 공처럼 몇 바퀴 굴러다니더니 마침 몇몇 금도문 제자들의 발밑에서 멈추었다.이 상황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손이현은 죽기 전까지도 자신이 미쳐 날뛰는 바람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던 유진우에게 목이 잘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손이현은 도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총잡이 원호를 사부로 모시고 있었으며 배경이 좋아 앞길도 창창하였고 죽음의 사막으로 온 이유는 보물을 찾아 내공을 높여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리려는 목적이었다.자신은 분명 주인공이 될 운명이었고 여태까지 운수가 좋았으며 이번에도 제일 먼저 보물을 찾아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고 작은 마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이 끊어질 줄이야.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어!손이현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고 그의 휘황찬란한 인생은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고 또 뜻밖의 인연이 끊기지 않아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다.사부님 원호의 말대로라면 그의 무도 재능은 미래의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온 천하가 존경하는 최고의 강자로 되였을 것이다.그렇게 아름다운 꿈이었고 그리워했던 일이었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되어 버렸다.‘알고 보니 나는 주역이 아니었고 천명이 아니었으며 결국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후회의 외침 속에서 손이현의 의식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이게 뭐야?”땅에 떨어진 손이현의 머리를 마주한 몇몇 금도문의 제자들은 너무 놀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바로 전에 그들이 가까스로 위험에서 구해낸 손이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가 분리된 상태로 눈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어떻게 된 거지?몇몇 사람이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니 유진우의 손에 든
“너... 이놈!”손이현이 막 맞서려고 할 때 앞에서 갑자기 짐승 같은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눈여겨보니 바람은 이미 사납게 덮쳐오고 있었고 손발을 함께 사용하여 빠르게 달리며 매번 땅을 디딜 때마다 손톱이 땅에 맞닿으며 몇 줄의 깊은 흔적까지 남겼고 그 날카로운 정도가 강철 칼날에 불과했다.“거기 누구 없어? 빨리 날 구해줘! 이 괴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손이현은 안색이 크게 어두워지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야, 이 제기랄.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손이현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흉악한 얼굴로 유진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유진우는 꿈쩍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진우 씨, 지금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요. 손이현이 죽으면 안 돼요.”옆에 있던 서지석이 급해하며 말했다.“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유진우는 여전히 움직이지도 않았다.“됐어요, 됐어요. 보아하니 제가 손을 쓸 수밖에 없겠네요.”유진우가 너무 고집을 부리자 서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칼을 뽑아 들고 직접 손이현을 구하러 나섰다.하지만 실력이 자신보다 더 막강한 손이현도 바람을 굴복시킬 힘이 없는데 자신이 대신하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팍!바람은 피비린내에 이끌려 다시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죽이지 마, 날 죽이지 마.”손이현은 너무 놀라 바짓가랑이는 이미 다 젖어 있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버젓한 도명창마저 놀라 바지에 오줌을 쌀 지경이라니.“망할 놈, 그렇게 날뛰더니!”손이현이 갈기갈기 찢겨 부스러기가 될 뻔할 때 서지석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주며 바람과 혈투를 시작했다.바람의 신체가 더 크게 강화되어 그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서지석은 더는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바람은 이미 공격에 아무런 준비가 없이 이성을 잃었고 진기도 사용할 줄 몰랐기에 서지석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서지석은 민첩한 몸놀림과 함께 손에 쥔 보검으로 바람을 간신히 견제했다.그
“으르렁!”바람은 깊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왜곡된 얼굴, 송곳니로 가득한 입, 그리고 사나운 표정은 마치 악마의 형상처럼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그와 눈이 마주친 손이현은 놀란 나머지 온몸을 움찔했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버렸다.“야! 저기 누구! 어딜 가는 거야! 제발 나 좀 구해줘!”유진우가 등을 돌리고 가는 모습에 손이현은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져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바람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손이현은 싸움의 의지를 잃었다. 그의 눈에 비친 바람의 존재는 이제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콧대가 높으시잖아요? 내가 못된 마음을 품었다고 했죠? 그럼 저도 이제는 신경 끌 게요.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에게 더 이상 신경 쓸 가치를 느끼지 않았다. 손이현이 죽든 말든 그것은 유진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멈춰! 당장 멈춰! 내가 명령한다! 이 미친놈을 빨리 쫓아내!”손이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소리쳤다.하지만 유진우는 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도명창 손이현이야! 내 사부님은 서남 지방 5대 강자 중 하나인 원호야! 오늘 네가 내 목숨을 구하지 않으면 사부님은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손이현은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협박이라도 할 셈이었다.서남 지방에서 원호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다들 숨을 죽이기 마련이었다.“뭐? 원호? 그 사람은 서남 지방에서 실력이 상위 3위 안에 드는 존재잖아!”“손이현의 스승이 원호라니! 그가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이제 알겠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겠지.”“원호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기를 아끼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하다고 들었어. 만약 손이현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속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원호의 명성은 사막의 교룡보다도 더 위세를
“응?”손이현이 뒤를 돌아보자 한 줄기 차가운 빛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속도는 엄청나게 빨랐고 그와 함께 피의 비린내가 짙게 맴돌았다.공격을 가한 자는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나무에 박혀 몸을 움찔거리던 바람은 결국 두 손으로 창대를 붙잡고 비틀어 간신히 반 미터 정도 앞으로 몸을 끌어당겼다.그는 손이현에게 다가가며 그 날카로운 손톱을 펼쳐 내리치려 했다.그의 손톱은 마치 날 선 강철처럼 그 자체로도 무지하게 치명적이었다.“고작 이런 기술로 나를 공격하겠다고?”손이현은 갑작스레 다가오는 공격에 콧방귀를 끼며 팔을 휘둘렀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렸다.손이현의 진기가 바람의 손톱에 의해 가볍게 찢어졌다. 손목마저 그대로 잘려 나가서 뜨거운 피가 튀며 바닥에 떨어졌다.현장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다.“아악!”손이현은 떨어진 손목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가 곧이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바람의 손톱이 이렇게 날카롭고 강력할 줄을 말이다.한순간에 자신의 진기를 뚫고 손목을 자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내 손! 내 손!”손이현은 잘린 손을 붙잡고 고통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그는 바람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다. 바람은 그의 손목을 마치 두부를 베어내듯 손쉽게 잘라버렸다.갑작스레 다가온 공격에 손이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으르렁!”바람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톱을 휘둘러 창대를 부러뜨리고 속박에서 벗어났다.그리고 다시 포효하며 손이현을 향해 달려들었다.“안 돼... 가까이 오지 마!”손이현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바람의 손톱에 이미 트라우마가 생긴 듯했다.잘린 손목은 아픈 데다 창은 나무에 고정되어 있어 바람을 제대로 막아낼 수도 없었다.그는 그저 극심한 통증 속에서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바람을 죽여버려야 했다.바람은 폭주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너무 공포 그 자체였다.
바람은 그로 인해 계속 후퇴하며 포효했다.그는 이미 폭주한 상태였고 진기라는 보호막조차 거두어낸 채 오직 육체만으로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다.그리하여 손이현의 날카로운 창끝이 바람을 찔러대며 그의 온몸을 갈기갈기 베어가자 그의 피는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다.모두가 바람이 이번엔 쓰러질 거라 생각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바람은 고통을 모르는 듯 자신에게 난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또다시 미친 듯이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가장 두려운 점은 그의 상처가 눈에 띄게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그의 회복력은 그 자체로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놀라웠다.“흥! 죽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는군! 한 방에 너를 끝장내겠다!”바람이 다시 달려들었으나 손이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긴 창을 한 손에 쥐고 떨자 은색 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주위를 밝게 밝혔다.“이 창이 세상을 놀라게 하리!”손이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창을 뒤로 당기곤 그것을 무자비하게 앞으로 내질렀다.윙!웅장한 소리가 들렸다.그 순간, 창끝에서 은빛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지며 마치 하늘을 가르는 용처럼 바람을 향해 돌진했다.그의 일격은 너무나 빠르고 강력하여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와, 정말 멋진 창법이야! 기세가 정말 무서워!”“이게 바로 도명창의 실력인가? 역시 대단해!”“이 창 한 방이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바람은 이제 끝장났다고 봐야지!”사람들은 손이현이 내뿜은 은빛용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경외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그들은 손이현의 이름을 익히 들어왔지만 그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이번에야 비로소 도명창 손이현의 위력을 깊이 체감하게 된 것이다.“으르렁!”손정의 공격을 마주한 바람은 여전히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정면으로 돌진했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려 퍼지며 손이현의 은빛 창이 바람의 배를 뚫고 들어갔다.창끝이 그의 배를 관통하고 몸을 뚫고 지나가며 온몸을 꿰뚫었다.하지만 기이하게도 창끝에 묻은 피는
“큰일이에요! 금실망이 곧 터질 거 같아요!”그때, 누군가가 외쳤다.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실망에 갇힌 바람은 거대한 존재로 변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그의 온몸은 검은 문양에 휩싸이게 되었다.그의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치솟았고 손톱은 뾰족하게 변했다. 그의 눈은 붉은빛에서 칠흑처럼 깊고 검은색으로 변했으며 입에서는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그르렁! 으르렁! 크아악!”바람의 포효는 점점 더 커져갔고 그 표정 또한 야수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졌다.그의 등은 천천히 부풀어 올랐으며 팽팽하게 펴진 금실망을 한 줄, 한 줄씩 찢어 나갔다.“으르렁!”바람은 또 한 번 포효했다.그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금실망을 움켜잡고 힘껏 찢었다.“쾅!”튼튼한 금실망이 그대로 두 동강 나며, 거대한 틈이 벌어졌다.금실망을 잡고 있던 청년들은 그 힘에 순간적으로 밀려나며 바닥에 쓰러졌다.“큰일 났다! 이 미친놈이 나왔어!”“빨리! 빨리 그를 막을 방법을 찾아!”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급한 대로 줄을 꺼내 바람을 다시 묶으려 했다.“으르렁!”바람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그의 근육질 몸체를 한 번 더 흔들어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그러자 거대한 밧줄들이 순식간에 부러지며 바람을 막을 힘이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막을 수 없어! 모두 도망쳐!”마을의 청년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빠진 채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바람이 방금 전 마을 사람들을 처참히 무찌르던 그 장면이 눈앞에 떠올라 다시 그에게 다가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이 괴물 같은 존재를 상대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쓸모없는 놈들! 내가 나서마!”그때 갑자기 청색 의복을 입은 한 남자가 군중 속에서 솟구쳐 나와 바람 앞을 가로막았다.긴 창을 든 그 남자는 바람 앞에 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내뿜는 기세는 마치 고요한 폭풍처럼 강렬했다.“봐! 손이현이야!”“손이현? 서남 지역에서 명성을 떨친 도명창 아니야?”
5분 뒤, 진이수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청성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청성 씨, 청성 씨 말이 맞았어요. 우리 사람들 대부분이 중독되었는데 청성 씨가 해독단을 준 덕분에 다행히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네요.”“죽은 사람은 없죠?”이청성이 걱정스레 물었다.“몇몇은 중상을 입고 움직일 수 없게 되었어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요.”진이수가 대답했다.“그럼 다행이네요.”이청성은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그녀의 눈빛에는 서늘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그녀는 먼저 사람들 건드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하기만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이렇게 비열하고 음흉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이려는 자는 절대 가만두면 안 될 것이다.“진 대장님, 몇 명을 골라 보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건지 철저히 조사해 주시길 바랍니다. 들려오는 소식이 있다면 바로 저에게 알려주세요.”이청성이 지시를 내렸다.“알겠습니다.”진이수는 대답하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그가 이끄는 블랙스콜피온 탐험대의 팀원들도 중독되었고 모두가 배후의 자들을 향한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큰일 났습니다! 이장님 쪽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이청성의 집사 왕 아저씨가 급한 걸음으로 들어왔다.“문제? 무슨 일이야?”“아까 이장님께서 낙타를 수령하고 잔금을 치르러 오라 연락하셨는데 제가 그 자리에 도착하고 보니 이장님 집이 완전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수없이 많았고 그 오행문의 바람이라는 자가 갑자기 미쳐버린 듯 보이는 사람마다 죽이고 있더라고요. 너무 사나워서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었어요.”그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 바람 씨는 거의 다 낫지 않았던가?”이청성은 당황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이미 마을 내 여러 세력들에게 이 사건이 알려진 상황입니다.”왕 아저씨가 답했다.“가서 한번 확인해 보자.”얼마간 침묵하던 이청성은 단호하게 사람
“고객님... 고객님...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 손 좀 풀어주세요, 숨이 막혀요.”두 발이 땅에서 떨어진 중년 여성은 얼굴을 붉힌 채 몸을 필사적으로 뒤틀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유진우 손안의 그녀는 마치 날개를 잡힌 연약한 잠자리처럼 언제 죽을지 모를 상태였다.“진우 씨, 이게 대체 뭐 하는 거예요?”서지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다.무고한 사람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건 정의로운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됐다.“유진우 씨! 미쳤어요? 좋은 마음으로 촛불을 가져다줬는데 왜 그런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거예요? 그게 사람이 할 짓이에요?”그 모습을 본 진이수는 즉시 성난 목소리로 비난했다.반면 조이준은 여유롭게 술을 마시며 마치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있었다.이청성은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그녀는 유진우가 이렇게 행동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이 사람은 문제가 있어. 우리를 해치려는 거야.”유진우는 중년 여성을 노려보았다. 손을 놓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객님, 저...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분명 오해하신 거예요.”중년 여성은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었다. 목소리는 갈라졌고 연약하고 무력해 보였다.“진우 씨, 그녀가 우리를 해치려 한다고요? 무슨 증거가 있어요?” 서지석이 물었다.“그래요! 시골 여자가 무슨 나쁜 마음을 먹겠어요? 그냥 일부러 시비 거는 거 아니에요?” 진이수가 말했다.그는 진작에 유진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를 빌려 그를 꾸짖으려 했다.“이 여자가 켜준 촛불엔 독이 있어요. 삼 분 이상 향을 맡으면 어지럽고 오 분이 넘어가면 숨이 멎을 거예요. 그런데도 나쁜 마음이 없다고요?”유진우는 고개를 돌려 진이수를 노려보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중년 여성의 동공이 움찔하며 작아졌고 얼굴엔 공포가 스쳤다.“허튼소리!”진이수는 전혀 믿지 않으며 계속해서 소리쳤다.“촛불 두 개일 뿐인데, 무슨 독이 있다고 그래요? 그냥 의심이 많
어둠은 빠르게 내려앉았다.사막의 마을에는 각 세력들이 모여들었다. 명문 정파도 있었고 사도들도 있으며,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든 무도 마스터도 있었고 악명 높은 빌런들도 있었다.그야말로 혼잡하기 그지없었다.각기 다른 신분과 입장을 가진 이들이지만, 그들 모두의 공통된 목표는 단 하나였다. 바로 오아시스의 보물을 찾는 것.그렇게 마을이 사람들로 가득 차자 마찰과 다툼이 피어나기 시작했다.사도 악당들은 몰래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고 강제로 사람들을 협박했다. 반면, 정파의 인물들은 ‘악을 처단한다’는 명분 아래 이 상황을 경쟁자를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밤이 깊어지면서 마을 안에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기운이 서서히 퍼져갔다.보물을 찾기도 전에 이미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그 시각 마을 입구 근처의 한 여관에서 유진우, 이청성, 서지석 그리고 진이수는 바람이 그린 지도를 함께 살펴보고 있었다.지도는 대충 그려져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었다.가장 큰 이유는 이 지도는 바람이 기억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많았기 때문이다.“이 지도 대체 뭐예요? 전혀 못 알아보겠어요!”서지석은 머리를 쥐어 뜯으며 말했다.“머리 쓰는 일은 내 담당이 아니야. 난 그냥 싸우기만 해.”조이준은 한쪽에 앉아 술을 홀짝이며 대답했다.그는 번거로운 일은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만약 이 지도가 사막 마을을 시작점으로 한다면 오아시스를 찾는 데 적어도 하루는 걸릴 거예요. 그 과정에서 두 군데의 위험 지대를 지나쳐야 해요.”이청성은 대충 그려진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여기, 유독 모래가 많은 지역이 있어요. 지나갈 때 조심해야 해요. 그곳에 빠지면 금방 숨을 쉴 수 없게 될 거예요. 그리고 여기는 더 고된 환경이에요. 땅의 온도가 70도 이상 올라갈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모래폭풍을 만날 수도 있지요.”“정말이에요? 이 지도를 알아볼 수 있어요?”서지석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