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서!”그때 이청아가 갑자기 앞을 막아서며 소리를 질렀다.“진우 씨,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오늘은 우리 엄마 생신인데 오자마자 다짜고짜 난장판을 만들어? 당신 날 안중에 두기나 해?”“이건 나와 강백준의 일이야. 당신과는 상관없어.”유진우의 표정이 냉랭하기 그지없었다.“왜 나와 상관없어? 우리 엄마를 때리고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 가만히 놔둘 것 같아?”이청아의 예쁘장한 얼굴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유진우는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난동을 부리며 주먹을 날렸다. 계속 이대로 내버려 뒀다간 일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지도 모른다.“청아 씨와 나 사이의 원한은 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은 일단 물러나 있어.”유진우가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이젠 그의 인내심도 슬슬 바닥나기 시작했다.“물러서지 않겠다면? 설마 나도 때리려고?”이청아가 몰아붙였다.“내 인내심을 테스트하지 마.”유진우가 눈살을 찌푸렸고 눈빛도 아주 서늘했다.“진우 씨, 대체 언제 이렇게 변한 거야? 내가 알던 그 사람 맞아?”이청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진우가 이렇게도 매정하게 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동안 쌓인 정 같은 건 아예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난 늘 이랬어. 당신이 보는 눈이 없어서 그렇지.”유진우가 매정하게 쏘아붙였다.“이... 나쁜 자식아!”분노가 치밀어 오른 이청아가 손찌검을 날리려 하자 유진우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냉랭하게 말했다.“당신은 지금 나에게 손댈 자격이 없어. 난 당신에게 빚진 게 없으니까 저리 물러가 있어.”그러고는 그녀를 옆으로 밀어냈다. 순간 중심을 잃은 이청아는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하얗고 부드러운 손에 시뻘건 손가락자국이 선명하게 생겼다.“뭐야?”유진우의 시선이 다시 강백준에게 향했을 때 강백준은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던 틈을 타서 도망치고 말았다.“X발!”유진우의 표정이 확 어두워지더니 곧바로 쫓아나갔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이청아가 다시 앞을 막아섰다.“진우
“빨리! 더 빨리! 그 자식 거의 쫓아온다고. 액셀 더 밟아!”검은색 벤츠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강백준은 끊임없이 다그치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 겁에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그런데 조금 전 겨우 도망친 후 얼마 도망치지도 못하고 또 누가 쫓아오는 걸 발견했다. 뒤차가 어찌나 끈질기게 달라붙는지 아무리 떼어놓으려고 해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하여 운전기사에게 계속 빨리 달리라고 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강백준은 유진우에게 잡히면 절대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X발, 정말 미친놈이야. 천한 목숨 하나 가지고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내가 연경으로 돌아가면 바로 군대를 동원해서 강린파인지 뭔지 하는 그 잡것들을 전부 다 죽여버릴 거야.”강백준은 입으로는 욕설을 퍼부었지만 이마에는 식은땀이 멈추지 않았다.오늘처럼 이렇게 초라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큰소리치며 다니던 강씨 가문의 직계이자 용국의 소장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그리고 문제는 근위병마저 전부 잃었다는 것이다. 실력이 가장 강한 정혁마저도 주먹 한 방에 천장에 꽂혀 지금까지도 내려오지 못했다.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미친 듯이 도망치는 것밖에 없었다. 물론 연경으로 돌아가면 자기 구역이니 다시 큰소리를 칠 수 있다. 유진우의 실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연경에서는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될 뿐이다.“도련님, 점점 더 많은 차가 쫓아오고 있어요. 계속 이대로 뒀다간 연경으로 못 갈 수도 있어요.”운전기사가 갑자기 당황해하며 말했다. 백미러로 점점 많은 차가 그들을 포위하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X발, 정말 끈질기네.”더는 머뭇거릴 겨를이 없었던 강백준은 휴대 전화를 꺼내 구원 요청을 보냈다.그 시각 연경의 강씨 저택.“뭐? 쫓기고 있다고?”위엄이 넘치는 한 중년 남자가 전화를 든 채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사람이 바로 강씨 가문의 둘째이자 강백준의 아버지 강성덕이었
강백준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노발대발했다. 하필 생사가 오가는 중요한 순간에 기름이 없다니, 그더러 죽으라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도련님, 어떡하죠?”거의 바닥난 기름을 보며 운전기사는 땀을 뻘뻘 흘렸다. 주변이 온통 허허벌판이라 숨을 곳도 없었다.“조금만 더 버텨. 지원병이 곧 도착해.”강백준이 이를 꽉 깨물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지원병이 제때 도착하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만약 제때 도착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10분 후, 검은색 벤츠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다가 결국 길가에 멈춰 섰다. 그 순간 승합차 십여 대가 우르르 몰려와 벤츠를 물샐틈없이 포위했다.차 문이 열리자 강린파의 엘리트 고수 수십 명이 기세등등하게 내렸다. 어떤 이는 총을 들고 어떤 이는 칼을 쥔 채 그를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었다.유진우는 장 어르신의 칼을 건네받고 벤츠 앞으로 다가가 발을 보닛 위에 올려놓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차 안의 강백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내려서 내 칼을 받아.”“인마, 함부로 나대지 마. 내 지원병이 곧 도착해.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여기 있는 놈들 전부 다 죽을 거야.”강백준이 흉악스러운 표정으로 협박했다.“불 질러서 차를 태워버려.”더는 그와 쓸데없는 얘기를 섞고 싶지 않았던 유진우는 바로 명령을 내렸다.“태워버려!”장 어르신이 손을 흔들자 부하들이 기름을 가져와 벤츠에 냅다 부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성냥에 불을 붙여 벤츠에 던져버렸다.화르르!불길이 순식간에 자동차 전체를 집어삼켰고 사나운 기세로 하늘 위로 치솟았다.“절 죽이지 말아주세요! 제발요.”당황한 운전기사가 재빨리 차에서 내려 무릎 꿇고 손이야 발이야 빌었다. 강백준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차 문을 걷어차고 부랴부랴 도망쳤다.“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장 어르신이 앞으로 달려가 강백준을 단번에 제압했다. 마스터급 이하의 무사 중에 본투비 대원만 고수인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강백준 같은 보잘것없는 실력을
“인제야 잘못한 걸 깨달았어? 네가 사람을 해칠 땐 오늘이 있을 줄 생각 못 했어?”머리를 조아리며 손이야 발이야 비는 강백준을 보고 있는 유진우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고 두 눈에 찬 살기도 여전히 그대로였다.“내가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되었었나 봐. 사과할게. 그러니까 넓은 아량으로 한 번만 용서해 줘. 날 놓아주면 앞으로는 정말 인간답게 살게.”강백준이 미친 듯이 머리를 조아렸고 한 마리의 개처럼 비굴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자존심 따위 다 버렸다. 목숨만 부지할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었다.“왜 내가 너에게 인간답게 살 기회를 줄 거라고 생각해?”유진우가 싸늘하게 물었다.“나... 돈도 있고 인맥도 있어. 목숨만 살려준다면 그 어떤 조건이든 다 들어줄게.”강백준은 유진우를 회유하려 했다.“난 다른 조건 없어. 그저 네가 죽길 바랄 뿐이야.”유진우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죽이지만 말아줘! 제발. 날 살려두면 나중에 쓸모가 있을 거야. 널 더 높은 자리에 앉힐 수 있고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게.”당황한 강백준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울었다.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그 모습은 진작 사라지고 없었다.“관심 없어.”유진우는 다시 한번 칼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강백준의 등을 베었는데 기다란 상처가 생겨났다.그는 강백준을 바로 죽일 생각이 없었다. 죽을 때까지 공포와 고통이 무엇인지 제대로 맛보게 할 생각이었다. 하여 강백준이 아무리 빌고 처참하게 울부짖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것이었다.유진우는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게 강백준의 몸을 여기저기 찔렀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강백준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고 피를 철철 흘렸다.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유진우가 급소를 전부 다 피했다는 것이다. 강백준에게 더 많은 고통을 주려고 심지어 침을 놓고 약까지 먹이면서 지혈해 주었다.칼에 백여 번이나 찔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몰골이었지만 여전히 힘이 남았고 단지 비명만 처참할 뿐이었다.
적외선 빛이 유진우의 몸에 빼곡하게 나타났다.“셋...”안 장관이 손을 들고 카운트다운하기 시작했다. 말투가 매우 느리긴 했지만 위압감만큼은 아주 강했다. 특히 수많은 무장 병사들까지 더해져 더욱더 위압적이었다.“하하, 인마, 넌 결국에는 날 죽이지 못해. 네가 머리를 짜내서 날 상처투성이로 만들어버린들 어쩌겠어? 내가 죽지 않는 한 가문의 자원만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회복할 수 있어. 그런데 넌? 이젠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 신세가 돼버렸잖아. 내 말 한마디면 넌 바로 목이 날아갈걸? 일이 왜 이렇게 된 줄 알아? 네가 천민이어서 그래.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천민이면 천민답게 굴어야지. 개미 새끼 한 마리 주제에 감히 나에게 덤벼?”강백준이 흉악스럽게 웃었다. 안 장관이 나타난 후로 그는 마치 승리를 손에 거머쥔 듯 배짱이 두둑해졌다.“강백준, 네 말이 맞긴 한데 아쉽게도 한 가지가 틀렸어.”유진우가 불쑥 말했다.“그게 뭔데?”강백준이 잠깐 멈칫했다.“너의 생사는 내 손에 달려있어.”말을 마친 유진우는 가차 없이 칼을 휘둘렀다.“안 돼!”“멈춰!”성난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강백준의 목을 스치고 말았다.“너... 너 감히...”강백준이 두 눈을 크게 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목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오면서 목이 툭 떨어졌고 마치 공처럼 바닥에서 몇 바퀴 구르고 나서야 멈췄다.죽기 직전까지도 강백준은 유진우가 진짜로 자신을 죽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무주의 장관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이 녀석은 정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인가?“너... 너... 이 미친놈! 짐승만도 못한 놈아, 감히 강 장군님을 죽여? 오늘 그 누가 와도 널 구하지 못해! 총 쏴! 당장 쏴!”정신을 차린 안 장관이 노발대발했다. 그런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칼이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꼼짝 마!”장 어르신은 한 손에
“너희들 도망 못 가니까 그만 발버둥 쳐. 지금 당장 죄를 인정하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몰라.”안 장관은 계속 입을 나불거리며 압력을 가했다.연경의 재벌가인 강씨 가문은 세력이 탄탄했고 수단도 비상했다. 이런 엄청난 거물을 건드렸으니 죽음을 자초한 거나 다름없었다.“닥쳐!”장 어르신이 안 장관의 입을 후려갈기자 앞니 하나가 툭 빠지고 말았다. 안 장관은 더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고 화가 나도 꾹 참는 수밖에 없었다.두두두...헬기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더니 이내 바닥에 착륙했다. 기내 문이 열리자 강성덕이 결사대원 36명과 함께 살기등등하게 뛰어내렸다.비록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다들 최고의 실력을 지닌 무도 고수였고 게다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강성덕의 명령 한마디면 결사대원들은 망설임 없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었다.“둘째 어르신, 드디어 오셨군요. 저 좀 살려주세요. 저놈들은 법 따위 우습게 알고 제멋대로 날뛰는 놈들이에요. 반드시 잡아들여서 엄벌을 내려야 합니다.”강성덕을 보자마자 안 장관이 소리를 질렀다.강씨 가문의 결사대원은 강하기로 소문난 존재들이다. 무도 고수를 상대하기에는 아주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안 장관, 왜 인질로 잡혀있어? 우리 아들은?”강성덕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불안감이 문득 밀려왔다.“그게...”안 장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명을 받고 지원하러 왔지만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되레 자신이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이 상황을 설명하자니 참으로 난감했다.“더듬거리지 말고 빨리 말해!”강성덕이 호통쳤다.“물어봐도 소용없어. 네 아들은 이미 죽었어.”유진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강백준의 머리를 발로 툭 찼다.머리는 마치 공처럼 십여 미터 날아가 정확히 강성덕의 발 옆에 떨어졌다.“뭐?”강성덕이 고개를 숙인 순간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강백준의 머리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죽... 죽었어?”아들의 잘린 머리를 보며 강성덕은 믿을 수
그렇게 극적인 상황이 발생했다.유진우는 안 장관을 인질로 잡고 있었고 강성덕은 유진우를 죽이려 했다. 그리고 안 장관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고 총구를 강성덕에게 돌려 위협하는 수밖에 없었다.각기 다른 세 개의 세력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안 장관, 감히 나와 등을 돌려?”강성덕이 흉악스럽게 말했다.“날 이 지경으로 몰아붙인 건 너야! 내가 살지 못한다면 같이 죽어야지!”안 장관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매섭게 몰아붙였다. 생사가 걸린 마당에 체면이고 뭐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래, 좋아!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가 그 소원 들어주지.”강성덕이 손을 흔들었다.“일단 방해되는 놈들부터 전부 해결해.”“알겠습니다.”결사대원 36명의 칼날이 순식간에 무주의 병사들에게 향하더니 마치 호랑이처럼 달려들었다.“총 쏴! 빨리 총 쏴!”안 장관이 연신 고함을 질렀다.탕, 탕, 탕...불꽃이 튀고 총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양측은 혼전에 빠졌다. 무주 병사들의 인원수가 많긴 했지만 결사대원들 전부 무도 고수라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렵했다. 그 바람에 총을 정확히 조준할 수가 없었다.한 차례 전투가 휘몰아친 후 사상자가 절반이나 넘은 무주 병사와 달리 강씨 가문의 결사대원은 고작 몇 명만 경상을 입었다.피 튀기며 싸우는 양측을 보며 강린파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이게 뭐야? 개들끼리 서로 싸운다고?’갑작스럽게 전투가 펼쳐졌고 또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고 말았다.짧디짧은 2분 동안에 무주의 모든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강씨 가문의 결사대원은 많은 후보 중에서 신중하게 고른 후 엄격한 훈련을 거친 자들이다. 육탄전을 펼친다면 일반 병사는 절대 당해내지 못한다.“말... 말도 안 돼.”바닥에 널브러진 병사들을 보며 안 장관은 순간 멍해졌다. 결사대원들의 실력이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리도 무서울 줄은 몰랐다. 살인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고 아주 손쉽게 처리했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단단한 총까지 전부 잘려 나
“뭐야?”바닥에 굴러다니는 36개의 사람 머리를 보며 안 장관은 거의 실성했다.조금 전 결사대원 36명의 실력이 어떠한지 그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완전 무장한 무주 병사들을 2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몽땅 도살해버렸다. 정말 괴물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한 사람이 그런 괴물들을 전부 죽여버렸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어... 어떻게 이런 일이!”강성덕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들은 전부 강씨 가문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운 결사대원들이다. 그리고 혼자서도 백 명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무도 고수들이다. 지금까지 36명이 힘을 합쳐서 패배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마스터급 아래의 무사 중에 그들의 상대가 될만한 자도 없었다.그런데 결과가 어떠한가? 유진우에게 전부 몰살당하고 말았다. 이게 진짜 인간이란 말인가?쿵, 쿵, 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36구의 머리 없는 시체가 하나둘 넘어졌다.강성덕은 사색이 된 얼굴로 연신 뒷걸음질 쳤다. 그의 두 눈에 충격과 경악, 그리고 공포 등 여러 가지가 한데 섞여 있었다.“너... 대체 정체가 뭐야?”강성덕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혼비백산했다.처음에는 유진우를 쉽게 처리하여 아들의 복수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유진우의 실력이 이토록 강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내가 누군지 넌 아직 알 자격이 없어.”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지금 너에게 두 가지 선택을 줄게. 분쟁을 그치고 앞으로 다시는 강남에 발을 들이지 않거나 지금 깔끔하게 죽는 것, 이 두 가지야.”그의 말에 강성덕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배후 세력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에 다시 배짱이 생겼다.“인마, 네까짓 게 감히 우리 강씨 가문에 덤빌 수 있을 것 같아? 연경의 8대 재벌가 중에서 우리 강씨 가문이 4위야. 너 같은 삼류파 보스가 무슨 배짱으로 연경의 재벌가에 덤비는 건데? 지금 스스로 두 손을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