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험관은 서로 쳐다보더니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당신은 테스트할 필요 없어요. 통과입니다.”“통과요?”유진우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조금 전 당신의 활약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어요. 우리는 당신의 상대가 아니에요. 그러니 바로 통과입니다.”한 시험관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될지 기대되네요. 이번 무도대회에서 당신 분명히 다크호스로 떠오를 겁니다.”다른 한 시험관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앞서 네 가지 테스트에서 유진우는 매번 기록을 깼다. 그의 대단한 실력에 두 시험관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유진우는 웃으며 두 손을 다시 가슴 앞에 맞잡고 예를 표하고는 링 아래로 내려왔다.두 시험관이 그래도 나름 눈치는 있었다. 괜히 무리하여 나섰다가 된통 얻어맞을 게 분명했다.“젠장! 테스트도 하지 않고 바로 통과라니, 이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야?”“어쩔 수 없어. 실력이 너무 강하니까 시험관들도 두려워하잖아.”“나 같았어도 덤비지 못했어. 주먹 한 방에 십만 근의 괴력을 누가 버티겠어?”“그리고 무엇보다 힘, 속도, 방어력, 내공 모두 뛰어나다는 거야. 이런 강자라면 당연히 존중받을만 하지.”무사들은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유진우를 쳐다보는 눈빛에 경외감이 짙어졌다.세간에서는 실력을 가장 중요시 한다. 출신이 어떻든 실력만 강하면 존경을 받을 수 있다.“테스트 다 끝났어. 우리 어디 가서 맛있는 거 먹자.”유진우는 조홍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행과 함께 여유롭게 떠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무문의 제자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X발, 훌륭한 명예를 지닌 우리가 저런 놈에게 지다니. 분통이 터져서 원.”근육남이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첫째 선배가 있었더라면 저 녀석의 코를 아주 납작하게 만들었을 텐데.”뚱뚱한 여자도 내키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사부와의 관계 때문에 첫째 제자는 다섯 가지 테스트를 건너뛰고 바로 마지막 테스트에 참여하게 되었기에 오늘 모습을 드러
테스트 통과 후 유진우 일행은 무맹분타를 떠났다.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한 통 받은 조홍연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그래, 알았어. 최대한 빨리 들어갈게.”간단히 두어 마디만 한 후 조홍연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녀석아, 왜 그래?”유진우가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연경에서 걸려온 전화인데 누군가 내가 군대를 거느리고 지위를 강화하여 반역을 일으키려 했다고 신고했대요. 아무래도 돌아가서 설명 좀 해야겠어요.”조홍연이 덤덤하게 말했다.“반역요? 누가 그런 헛소리를 지껄여요?”그녀의 말에 공요가 순간 노발대발했다.“장군님께서 변방에서 나라를 지키면서 피 흘리며 싸우느라 얼마나 고생이신데. 연경의 그 쓸모없는 자식들은 할 일도 없대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장군님을 모함하다니, 정말 너무하네요.”“확 죽여버려도 시원치 않은 놈들!”줄곧 침묵하던 유란이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반역죄는 참수를 당할만한 큰 죄이다. 그들이 아무리 한 점 부끄럼없이 떳떳하다고 해도 명성에 누가 될 것이고 사람들이 이런저런 추측을 늘려놓게 된다.“너의 신분이라면 사소한 일이라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또 계속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생기면 크게 떠들어 대거든.”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진작 예상했었다. 공로를 많이 세운 사람은 늘 이러했다.용국의 전쟁 여제인 조홍연은 삼십만의 범표사를 거느리고 있고 지위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았다. 이젠 왕이 될 일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엄청난 병권을 손에 쥔 데다가 출신까지 평범하지 않아 사람들이 질투하고 적대시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진우 오빠, 아무래도 돌아가 봐야겠어요. 이런 일이 터졌으니 개미 새끼 몇 마리를 죽이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요.”조홍연이 말했다.“그래.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지.”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일을 절대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온몸에 똥물이 튈지도
“강린파에 마침 인재도 부족한데 그 사람들이 남겠다고 하면 남으라고 해. 그리고 악당파를 하나 새로 만들어서 영감님이 이끌게 하도록 해.”유진우가 결책을 내렸다.“알겠습니다.”홍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아 참, 강린파를 너무 빠르게 확장하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야. 속도를 좀 늦춰야겠어. 차라리 부족한 대로 놓아둘망정 아무 사람이나 마구 들일 수는 없어. 그리고 지금 사람이 많아서 본부를 더 큰 곳으로 옮겨야겠어. 이 일도 너에게 맡길게.”유진우가 분부했다.“보스, 본부 문제는 저도 생각해봤어요. 미리 괜찮은 곳을 물색해봤는데 보스가 마음에 들어 하실지 모르겠어요.”홍길수가 대답했다.“그래? 어디인데?”유진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교외의 풍우 산장입니다.”유진우가 어리둥절해 하자 홍길수가 재빨리 이어서 설명했다.“그곳이 예전에는 백작의 저택이었다고 해요. 면적이 클 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옆에 산과 물이 흐르고 있어서 풍경도 아름답고 교통도 아주 편리해요. 제가 서울 전체를 다 뒤져봤는데 여기가 가장 적합하더라고요.”“좋아. 신경 꽤 많이 썼구나. 그럼 그렇게 진행해. 강린파 본부를 풍우 산장으로 한다.”유진우가 결정을 내렸다.“역시 보스는 현명하십니다.”홍길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유진우가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허락한 건 물론이고 권력까지 그에게 다 줄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홍길수는 저도 모르게 감동하여 가슴이 먹먹해졌다.“아저씨, 강린파를 관리하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 요즘 친구를 새로 사귀었거든요. 아주 똑똑하고 재주도 있어요. 아저씨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인 것 같아요.”황은아가 불쑥 한마디 했다.“그래? 어떤 친구인데?”유진우가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히히... 지금 마침 염룡 무관에서 훈련을 도와주고 있어요. 저 따라와요.”황은아는 유진우를 잡고 무관으로 들어갔다.그 시각 무관의 링 위.십여 명의 염룡파 에이스들이 한 젊은 여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설연홍?”유진우의 말에 황은아는 더욱 의아해했다.미녀 언니는 확실히 성이 설 씨지만, 상대방은 자신이 설화라고 했다.“왜요? 인정하지 않아요? 제가 당신의 그 가짜 가면 벗겨 드릴까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호호호... 명의님, 명의님은 갈수록 눈치가 빠르네요.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정성껏 꾸몄는데도 명의님을 속일 수 없다니.”설연홍은 아름다운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언니 진짜 이름이 설연홍이에요?”황은아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그녀는 자신이 설연홍에게 속은 것 같다고 느꼈다.“설화도 나고 설연홍도 나야. 그러니 난 널 속인 적이 없어.”설연홍이 웃으며 설명했다.“여긴 왜 왔어요?”유진우가 설연홍을 심문하듯 물었다.이렇게 또라이인 미인에 대해 그는 줄곧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자신의 사부를 죽이고 조씨 가문에 그 사부의 머리까지 보내는 사람을 그는 완전히 신뢰하기 어려웠다.“명의님, 우리가 이렇게 많이 만났는데 친구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이렇게 쌀쌀맞게 굴지 말아 줄래요?”설연홍은 유진우의 주위를 빙빙 돌며 탐욕스러운 눈빛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마치 무슨 애지중지하는 물건을 보는 것 같았다.“당신과 나 사이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이지 친분이라고 할 수 없어요.”유진우는 덤덤하게 말을 뱉었다.“그렇게 말하니 정말 실망이에요. 역시 남자들은 좋은 놈이라곤 하나도 없네요, 모두 배신자예요!”설연홍은 한 맺힌 얼굴이었다. 그 가련한 모습은 마치 버림받은 어린 아내와도 같았다.“콜록... 저 아직 여기 있는데, 시시덕거리지 말아 줄래요?”황은아는 이상한 얼굴을 했다.“은아야, 너 먼저 가서 훈련해. 내가 이 사람이랑 얘기 좀 할게.”유진우가 황은아에게 다른 데로 가 있으라고 눈짓을 했다.“그래요, 그럼 둘을 방해하지 않을게요.”황은아는 혀를 날름 내밀고 훈련장에 가서 자신의 곤봉술을 연습하기 시작했다.‘아, 연애하기 좋을 때다!’“이제 얘기할 수 있는 거죠? 무슨 꿍꿍이인 거죠?”유진우가 다시 물었다.
“응?”유진우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내가 당신의 정체를 까발리지 않겠지만 당신도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제가 계속 지켜볼 거예요”“절 지켜본다고요?” 설연홍은 섹시한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제가 이따가 샤워할 건데 그때도 지켜보는 게 어때요?”“미쳤어요?”설연홍을 상대하기 귀찮은 유진우는 바로 뒤로 돌아서 위층으로 올라가 휴식했다.당분간은 설연홍이 나쁜 마음이 없는 게 확실하지만, 이런 요사스러운 여자는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다.이튿날 아침.유진우가 황은아를 데리고 아침 운동을 하고 있을 때 검은색 승합차가 갑자기 문 앞에 멈춰 섰다.문이 열리자 황보걸은 얼굴에 웃음꽃을 띠며 걸어 들어왔다.“진우 씨, 축하해요.”황보걸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주먹을 쥐며 웃었다.“어제 심사 결과가 나왔는데, 진우 씨가 성공적으로 선발되었어요. 오늘 진우 씨는 다른 4대 고수들과 함께 강북 무맹에 출전해요!”“그래요? 듣자 하니 좋은 소식이네요.”유진우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 결과에 대해, 그는 결코 놀라지 않았다.다섯 가지 심사를 모두 만점 받고도 탈락하면 그게 이상하지.“아저씨, 무도대회에 나가신다고요?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황은아는 잔뜩 기대한 얼굴로 유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되긴 되지만 말썽을 피워서는 안 돼.”유진우가 황은아에게 경고했다.“문제없어요! 반드시 말썽 피우지 않을게요.”황은아는 손가락 세 개를 펴며 맹세했다.“저도요, 저도 갈래요.”설연홍이 달려와 유진우에게 말했다.‘이런 재미난 일에 어떻게 내가 빠질 수 있겠어?’유진우는 힐끗 쳐다보더니 신경도 쓰지 않고 승합차에 올라탔다.황은아도 그 뒤를 따랐고 설연홍도 뒤질세라 유진우 옆에 찰싹 앉았다.시동이 걸리고 일행은 곧바로 무도대회 현장으로 향했다.이번 무도대회가 열리는 곳은 청양호에 위치해 있다.청양호는 청양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 경치가 아름답고 인적이 드물어 무술 시합에 더없이 적합하다.유진우 일
“뭐?”갑작스럽게 누명을 쓰자 유진우는 잠시 얼떨떨했다.“왜, 네 선배가 죽기라도 했어?”“맞아, 네가 죽인 거야, 이 살인자야!”뚱뚱한 여자가 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말 똑바로 해, 네 선배의 죽음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유진우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흥, 아직도 변명을 해? 네가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 선배가 어떻게 죽었겠어?”뚱뚱한 여자가 소리쳤다.“인마,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 어제 압력 테스트 후 넌 일부러 풀로드를 놓지 않고 선배를 유인했지. 결과 문이 닫히자 선배는 백배의 무게를 못 이겨 깔려 죽었어!”근육질의 남자는 얼굴이 어두워졌다.말을 들은 유진우는 어이가 없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테스트를 통과한 후 압력기를 복원하지 않았을 뿐인데 누가 바보같이 뛰어들어가서 아무것도 안 보고 시작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이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 아닌가?멍청한 놈을 봤어도 이렇게 멍청한 놈은 본 적이 없다.무엇보다 사람이 죽고 난 후 엉뚱한 누명을 쓴 게 우스웠다.“먼저 한 가지 말하자면 나는 모함을 꾸미지 않았기에 너희 선배의 죽음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전부 그 사람의 탓이지.”유진우가 손을 뗐다.“헛소리하지 마! 내가 보기엔 넌 분명 고의적이야!”뚱뚱한 여자는 아예 믿지 않았다.“난 어차피 설명할 건 다 설명했으니 믿거나 말거나 마음대로 해.”유진우는 쓸데없는 말을 하기 귀찮았다.한 무리의 어릿광대들은 전혀 그의 안중에 없었다.“인마, 사람을 죽이고도 감히 이렇게 날뛰다니?”그때 사람들 속에서 검은 옷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남자는 평범한 외모에 카리스마가 돋보이고 손에 큰 칼을 들고 있어 패기가 넘쳐 보였다.이 사람이 바로 소양타의 대선배, 박철이었다.“넌 또 어디서 나타난 거야?”유진우가 눈썹을 치켜세웠다.“건방지다! 이분은 우리 대선배이자 오늘 출전하는 5대 고수 중 한 명이다!”근육질의 남자가 소리쳤다.“오, 그래서 뭐?”유진우
빠른 속도로 퍼지는 독소를 보며 뚱뚱한 여자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슉!박철은 아무 말 없이 칼을 휘둘러 뚱뚱한 여자의 팔을 단칼에 잘랐다.뚱뚱한 여자는 멍하니 땅바닥에 있는 자신의 팔을 보다가 피를 뿜는 상처를 보고 나서야 반응이 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무도대회가 끝나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매섭게 한마디 던지고 박철은 일행을 데리고 발길을 돌렸다.“진우 씨, 박철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 앞으로 조심해요.”황보걸이 유진우에게 귀띔했다.“조심해야 할 사람은 박철이지 내가 아니에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말을 뱉었다.방금 황보걸이 막지 않았더라면 박철을 그 자리에서 죽였을 것이다.“시간이 거의 다 되었으니 우리 할아버지를 뵈러 가요.”황보걸은 한 손으로 안내하며 유진우 일행을 데리고 호화로운 별장으로 들어갔다.별장은 펜션 스타일로 넓은 면적에 넓은 공간을 자랑하고 출전 선수나 무맹 내부자 모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다.그 시각, 별장 홀 안.황보용명은 영무한 얼굴의 중년 남자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중년 남자는 다름 아닌 강남 무림의 맹주, 송만규였다.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자 할 말이 끊이지 않았다. “스승님, 최근에 좋은 인재를 찾으셨다면서요? 도규현을 이겼을 뿐만 아니라 어제 테스트에서도 빛을 발했다고 들었어요.”송만규가 싱긋 웃었다.“이 사람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잘만 가르친다면 훗날 너의 후계자가 될 것이다.”황보용명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정말요? 스승님께서 이렇게 칭찬하시니 너무 궁금하네요.”송만규는 절로 흥이 났다.황보용명은 원래 눈이 많이 높아서 보통 무도 천재는 눈에 들지 않는다.“할아버지, 진우 씨 왔어요.”그때 황보걸이 불쑥 걸어 들어왔다.“만규야, 봐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도착했어.”황보용명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들어오라고 해.”“네.”황보걸은 대답하고 돌아서서
“뭐라고? 중독?”이 말이 나오자 모두들 안색이 변했다.무도 대회 당일, 세 명의 참가자가 의문의 중독에 빠졌다는 건 분명 심상치 않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누가 한 짓이야?”송만규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아직 조사 중이라 알 수 없습니다.”무맹요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가자! 지금 당장 보러 가야겠어!”송만규는 망설이지 않고 서둘러 문을 나섰다.그 시각, 임시 훈련장 안.무맹요원들이 이미 모든 출입구를 봉쇄해 누구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었다.송만규 일행이 문을 들어서 훈련장 한가운데 젊은 남자 3명이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세 사람은 의식을 잃은 채 호흡이 약했고 얼굴은 창백했지만 입술은 꺼맸다.“역시 독극물에 중독됐네!”송만규는 한 번 더 살펴더보니 안색이 좋지 않았다.이 세 사람은 모두 스카이 랭킹의 고수이고 강남 무맹이 승리를 거두는 관건인데 지금 모두 중독되어 혼수상태에 빠졌으니 무도대회는 어떡하지?“빨리! 약신궁으로 가서 사람을 불러와!”반응이 돌아오자 송만규는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 사람을 구하는 일은 진우 씨 한 명으로도 충분해.” 황보용명이 불쑥 입을 열었다.예전에 그가 중상을 입고 사도에 빠졌을 때 약신궁의 동장로도 속수무책이었는데 다행히 유진우가 구해줘서 죽음을 면했다.“유진우 씨, 의술을 아세요?”송만규는 뒤를 돌아보며 약간 의외였다.“조금 할 줄 알아요.”유진우는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자, 그럼 한번 봐주세요.”송만규는 자리를 비켰고 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세 사람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곧 그의 얼굴빛이 굳어졌다.“이 세 사람은 만성 독극물에 중독됐어요. 평소에는 눈치채기 어려운데 운공이 시작되면 바로 폭발해 가볍게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심하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기도 해요.”유진우가 설명했다.“어때요? 살릴 수 있나요?”송만규는 조금 걱정했다.이 세 사람은 모두 중임을 맡는 훌륭한 인재들이라 절대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