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이른 아침, 천향원 안에서.유진우가 초대받고 별장에 왔을 때 안에는 조선미 외에도 건장한 체구의 중년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그는 검은색 도복을 입고 근육으로 다부진 몸매에 양손 모두 굳은살이 박혀 있었는데 무예를 전공한 자가 틀림없었다.“진우 씨, 미안해서 어쩌죠. 이번에 또 진우 씨를 귀찮게 해드렸네요.”조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겨주었다.“친구끼리 별말씀을요. 게다가 그 사람들이 날 지목해서 오라고 했으니 피할 수도 없어요.”유진우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어제 조아영이 납치된 후 강천호 쪽 사람들이 유진우를 지명하며 함께 오라고 했다.“진우 씨, 제가 소개해드릴게요. 이분은 유강 씨, 조씨 일가 본부에서 파견한 최정예 무사예요.”조선미가 중년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만나서 반가워요, 유강 씨.”유진우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차분하게 말했다.“그쪽이 바로 유진우 씨인가요?”유강은 턱을 치켜세우고 유진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듣자 하니... 유진우 씨가 정윤, 세연 두 사람을 죽였다고 하던데 맞나요?”“그렇다고 하죠.”유진우가 머리를 끄덕였다.“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렇다고 하는 건 뭔가요? 왜 말을 얼버무려요? 설마 비겁한 수단이라도 썼어요?”유강이 의심 가득한 눈길로 쏘아붙였다.“무슨 수단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유용하면 그만이죠.”유진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거 참! 무예를 습득한 자는 정정당당해야 해요. 비겁한 수법으로 이기는 건 그다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에요!”유강이 경멸에 찬 눈길로 말했다.그는 유진우처럼 종파도 없고 정규적이지 못한 사람은 아예 그와 어깨를 견줄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유강 씨 말이 맞아요.”유진우는 반박하기도 귀찮았다.“솔직히 말하자면 정윤, 세연 두 사람은 전부 본인 손에 죽어 나갔어요!”유강이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근본도 없는 무인을 두 명 이겼다고 안하무인 격이 되면 안 되죠! 나 같은 고수를 만나봐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철저히
“유강 씨, 누가 함부로 나서래요?”조선미가 미간을 찌푸리고 살짝 불만 어린 표정으로 그에게 쏘아붙였다.그녀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유강이 제멋대로 가로채고 요구에 응할 줄이야, 위계질서라곤 전혀 없는 인간이었다!“선미 씨, 뭘 그렇게 두려워해요? 고작 이런 인간들은 저 혼자만으로도 가볍게 해결할 수 있어요.”유강은 자신감이 차 넘쳤다.정작 본인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만약 지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어요?”조선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농담도 잘하셔라. 제가 질 리가요? 이따가 두 눈 크게 뜨고 저의 쇼만 지켜보세요!”유강은 갖은 거만을 떨었다.“선미 씨한테 지금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이 바닥 룰대로 모든 재산을 걸고 베팅하거나 아니면 절반 산업을 내게 넘기고 아영 씨를 데려가거나 둘 중 하나예요.”강천호가 적절한 타이밍에 입을 열었다.“알았어요, 천호 씨 말대로 할 테니까 일단 내 동생부터 풀어줘요.”조선미가 차갑게 쏘아붙였다.그녀는 비록 함정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다행히 그녀 쪽에서도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다.“좋아요.”강천호는 거절하지 않고 곧바로 손짓했다.이어서 조아영이 밧줄에 묶인 채로 사람들에게 끌려 나왔다.모습은 초라했으나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다.“아영아, 괜찮아?”조선미는 곧바로 다가가 밧줄을 풀었다.“언니! 드디어 왔네. 나 이번엔 진짜 사고 안 쳤어. 강천호 저 인간이 일부러 날 함정에 빠트렸다고!”조아영은 속상한 얼굴로 말했다.“나도 알아. 일단 옆에서 쉬고 있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조선미가 머리를 끄덕였다.“선미 씨, 사람도 이미 풀어줬으니 우리 인제 계약서를 작성해야죠?”강천호가 손을 흔들자 곧바로 누군가가 종이 한 장을 보내왔다. 이는 마치 생사를 건 계약서를 방불케 했다.격투기 룰대로 지는 쪽에서 계약서 내용대로 이행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이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그렇게 격투기가 좋으시다면 제가 끝까지 함께해드리죠!”
“당신... 정체가 뭐야?!”유강이 바닥에 쓰러진 채 식겁한 얼굴로 물었다. 그에게서 더는 좀전의 거만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세 번의 공격에 무너졌다는 건 상대의 실력이 그를 훨씬 능가했다는 걸 증명한다.이렇게 작은 강능시에 어찌 이런 고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게 바로 가장 큰 의문점이었다.“솔직히 얘기할게. 나는 방민철이고 너희들이 전에 죽인 정윤과 세연은 전부 내 제자들이야!”방민철이 차갑게 말을 꺼냈다.“뭐?! 당신이 바로 강동의 그 방 선생이란 말이야?!”유강은 순간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방 선생이란 칭호를 그는 수없이 들어왔다.강동에서 손꼽히는 고수일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역술인이기도 하다!그는 기괴한 수법으로 소리 없이 처참하게 살인을 저지른다.말 그대로 호환마마처럼 무서운 존재이다.“내 칭호도 들어봤어?!”방민철이 차갑게 웃었다.유강은 이미 식겁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방 선생이 여기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그는 아예 이 미션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방 선생을 건드리는 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린다.“마지막 한 판은 누가 나올래?”강천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조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유 사부도 패배한 마당에 머릿수만 챙기는 그들이 무슨 배짱으로 감히 나서겠냐는 말이다.이는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는 노릇이다!“언니, 어떡해? 인제 어떡하냐고? 이러다 정말 지는 거 아니야?”조아영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세 번의 공격으로 막강한 상대 유강을 해치우는 자인데 누가 감히 나서겠는가?“이봐, 젊은이! 한 판 붙을 자신 있어?!”이때 방 선생의 눈빛이 뜬금없이 유진우에게 꽂혔다.그의 얼굴에 드러난 분노는 감추려야 감출 수 없었다.“자신이 왜 없겠어?”유진우가 담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가 이제 막 앞으로 나가려 하는데 조아영이 불쑥 잡아당겼다.“진우 씨, 뭐 하는 거예요 지금?”“맞서 싸우러 나가는 거죠.”유진우가 고개 돌려 대답했다.“
죽은 개처럼 담벼락에 떡하니 걸린 방 선생을 본 순간 뭇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좀 전까지 위풍당당하게 단 세 번의 공격으로 유강을 격파한 방 선생이 이렇게 패배당하다니? 이는 꿈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게다가 공 치듯 가볍게 뺨 한 대 얻어맞고 쓰러져버렸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말... 말도 안 돼!!!”유강은 넋이 나간 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강동의 최정예 고수 방 선생이 한 방에 무너지다니?!저 녀석은 정녕 괴물이란 말인가?!“이럴 수가?! 진우 씨가 이겼어!!”조아영도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애초에 그녀는 유진우가 반드시 진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정작 이렇게 깔끔하게 이겨버리다니, 귀싸대기 한 방으로 방 선생을 멀리 튕겨버리다니.그의 파워가 얼마나 막강할지 가히 짐작할 수 없었다!“방 선생이... 졌다고?!”강천호가 충격을 받아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방 선생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는 너무 잘 알았다.강능 전체에 방 선생과 맞서 싸울 자는 아무도 없었다!그런 강자가 유진우의 한 방에 쓰러졌단 말인가?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적을 소홀히 대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단지 예외였던 걸까?그것도 아니면... 진짜 실력으로 제압당한 걸까?“내가 진우 씨를 과소평가했네요.”조선미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녀의 얼굴엔 희열과 경악, 그리고 오만함도 살짝 실려 있었다.유진우가 대단한 건 알았지만 이토록 막강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그녀에겐 보물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보아하니 내가 이긴 것 같네.”유진우가 손을 내밀며 담담하게 자리를 떠났다.그 시각 모든 이가 괴물을 쳐다보듯이 유진우를 바라봤다.그중에서도 유강은 좀전의 경멸의 눈빛에서 순간 경외의 눈길로 돌변했다.단 한 번의 스킬로 방 선생을 제친 자는 실력이 얼마나 막강할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뻔하다.“진우 씨, 무예를 조금 익혔다고 했잖아요? 왜 이렇게 강한데요?”조아영이 떠보듯이 물었다.“상대가
갑자기 눈앞에서 휘두르는 칼날에 유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이유 불문하고 무작정 날 스파이라고 몰아붙이네? 이런 횡포가 어디 있어?’“라희 씨,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유진우 씨는 스파이가 아니에요!”조선미가 얼른 해명했다.“오해인지 아닌지는 조사해보면 다 나와요.”라희가 차갑게 쏘아붙였다.“일단 묶어. 감히 반항하면 당장에서 죽여버려!”“날 죽인다고?”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막 밀어붙이는 거야? 너무한 거 아니야?!”“조씨 가문의 대업을 위해서라면 더 한 일도 할 수 있어!”라희가 으름장을 놓았다.“왜 그렇게 내가 스파이라고 확신하는 건데?”유진우가 되물었다.“확신할 필요 없어.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그야말로 일방적인 여인이었다.그녀의 횡포함에 유진우는 낯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그는 줄곧 차분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라희는 다짜고짜 그를 스파이라고 몰아붙였다.이건 대놓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행위였다!“라희 씨, 아직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어요. 일단 진정해요!”조선미가 단호하게 말했다.“난 선미 씨 호위 팀장으로서 선미 씨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어요. 저 자식은 속셈을 헤아릴 수 없으니 딱 봐도 나쁜 놈이에요!”라희가 대답했다.“라희 씨가 오해하셨어요. 진우 씨가 날 구해줬어요. 진우 씨가 아니면 우린 천호 리조트에서 나오지도 못했을 거예요.”옆에 있던 조아영도 한마디 덧붙였다.“그건 단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쇼일 뿐이에요! 다들 감쪽같이 속았다고요!”라희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하지만...”조아영이 말을 이어가려 할 때 라희가 덥석 가로챘다.“됐어요!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잘못 죽이는 한이 있어도 절대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나 참 어이가 없네. 우리 서로 원한을 맺은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렇게 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야?”유진우가 담담하게 물었다.“적당히 해! 이분들을 속일 수 있어도 나한텐 안 통해. 죽기 싫으면 얌전히 묶여있어!
“말도 안 돼! 라희가 스파이였다고?”조아영의 말을 들은 뭇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였다.다들 킬러들의 옷을 벗기고 똑같은 문신을 보았을 때 그제야 안색이 변했다.이는 절대 우연의 일치일 리가 없다.“고작 문신만으로 뭘 설명하겠어?”대머리 호위가 질의를 건넸다.“이 한 개의 문신만으론 설득력이 약하겠지.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문신을 하고 있다면?”유진우는 앞으로 다가가 라희의 부하들의 옷을 싹 다 벗겼다.곧이어 뭇사람들은 이 부하들의 몸 여러 부위에 같은 문신이 새겨져 있는 걸 발견했다.한 명은 우연이라 할 수 있지만 십여 명이 다 있는 건 변명할 여지가 없다.이로써 스파이 사건이 막을 내렸다!“어쩐지... 라희가 나타나자마자 흠집을 잡더라니, 본인이 배신자였어!”유강은 놀랍고도 울화가 치밀었다.다 같은 조씨 일가의 엘리트로서 그는 이런 배신자가 너무 싫었다.“하지만 왜? 조씨 일가에서 줄곧 라희를 중점인물로 배양했는데 왜 배신한 거야?”조아영이 미간을 찌푸리고 의아한 듯 말했다.“명예만큼 사람을 유혹하는 건 없어요. 일단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면 배신을 하게 되죠. 진우 씨가 예리한 눈썰미로 당장에서 스파이를 잡아냈으니 망정이지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위험해졌을 거예요!”유강은 뒷일만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배신자를 옆에 두는 건 시한폭탄과 다름없는 일이니까.언제 등에 칼을 꽂을지 모를 일이다.“언니, 이젠 어떡해?”조아영은 살짝 횡설수설하며 물었다.“햇빛 아래 바퀴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는 건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수천 마리의 바퀴벌레가 더 있다는 걸 말해줘. 이번 일은 아빠한테 알려서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할 거야!”조선미가 진지하게 대답했다.반역자가 나타난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이는 외적의 침입보다 훨씬 엄중하다.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어떤 후폭풍이 휘몰아칠지 모른다!“맞아! 무조건 철저하게 조사해야 해! 이런 배신자들이 제일 가증스러워!”조아영은 머리를 세게 끄덕였다.
배신자를 짓밟아 죽인 후 유진우는 허약한 조선미를 안고 차에 실었다.조선미가 뱀에 물린 부위는 이미 검푸른 자국으로 변했다.게다가 독소가 계속 퍼지고 있어 다리 전체가 마비됐다.“살짝 번거롭게 됐군...”유진우는 자세히 살펴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일반 독은 가볍게 해독할 수 있지만 이번의 독사는 이상하리만큼 흉포했다!게다가 유진우는 약재도 없고 은침도 없어 의술을 펼칠 여건이 못됐다.이젠 입으로 흡입할 수밖에...“조하영 씨,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줘요.”유진우가 고개 돌려 조아영을 불렀다.“저는 조아영이에요! 하영 아니라 아영!!!”조아영은 그의 말을 수정한 후 재빨리 차에 타며 물었다.“내가 뭘 하면 되죠?”“언니분 바지를 벗겨요.”유진우가 분부했다.“이봐요! 지금 뭐 하려는 수작이에요? 경고하는데 함부로 하지 말아요!”조아영은 엉큼한 늑대를 쳐다보듯 그를 바라봤다.“언니분 몸에 독이 퍼져서 내가 전부 흡입해내야 해요.”유진우가 설명했다.“네?”조아영은 흠칫 놀라더니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상처 부위가 다리 안쪽인데! 설마 이 틈을 타서 진우 씨 좋을 노릇만 하려는 건 아니죠?”“사람 목숨이 달렸어요.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찬 거예요?”유진우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의사는 환자의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 못 들어봤나요?”“그런 것도 같네요.”조아영은 그의 말도 제법 일리 있어 보였다.“계속 멍하니 있을 거예요? 얼른 바지 벗기라니까요!”유진우가 다그쳤다.“네, 알았어요.”조아영은 감히 더 망설이지 못한 채 바지를 벗겼다.상처가 훤히 드러나자 유진우는 유심히 살피더니 고도로 집중하여 손을 대기 시작했다.비록 조금 당돌하긴 하지만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이 우선 순이니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유진우는 재빨리 독을 빨아내기 시작했다.그는 한 모금 흡입하여 곧장 검은 피를 내뱉었다.그리고 또다시 흡입하고 내뱉었다.한시라도 쉬지 않고 이 동작만 반복했다.이때 혼미해 있던
황혼 무렵, 병원 모 병실 안에서.한잠 푹 잔 유진우가 드디어 깨어났다.다만 눈을 뜨자마자 괴이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진우 씨 안 죽었어요?”유진우가 소리 나는 방향대로 시선을 돌리자 조아영이 옆에 앉아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요? 내가 안 죽어서 몹시 실망했나 봐요?”유진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쏘아붙였다.“그게 아니라... 살짝 의외여서요.”조아영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선미 씨는요?”유진우는 그녀에게 더 따져 묻고 싶지 않았다.“진우 씨 약 구하러 갔어요.”조아영이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듣기로 진우 씨가 블랙 스네이크의 독을 흡입했다고 하던데 그거 독성이 엄청 강해서 무조건 죽는댔어요! 아직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니까요!”“그러게요. 블랙 스네이크가 대단하긴 한가 봐요. 날 한잠 자게 했으니 말이에요! 역시 10대 기이한 독성 중의 하나답군요.”유진우가 감개무량하게 말했다.그의 체질은 어떠한 독성도 침입해 들어올 수 없다.그런데 블랙 스네이크의 독은 한잠 자고 나서야 해독이 됐으니 실로 대단할 따름이었다!“이 말이 왜 이렇게 이상하게 들리지?”조아영이 머리를 긁적거렸다.그녀가 미처 정신 차리기 전에 불쑥 두 사람이 병실로 들어왔다.한 명은 조선미이고 다른 한 명은 화려한 옷차림에 몸매가 섹시한 젊은 여자분이었다.그 여자는 조선미와 조금 닮아 있었다. 옷차림도 화려할 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었다.온몸에서 윗사람의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진우 씨! 드디어 깼네요! 지금 좀 어때요?”조선미는 두 눈을 반짝이며 병상 가까이 다가왔다.“한잠 잤더니 많이 좋아졌어요.”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자, 이건 내가 방금 구한 비밀 약재예요. 얼른 물과 함께 복용해요. 이걸 먹으면 무사할 거예요.”조선미가 작은 흰색 병을 유진우의 손에 쑤셔 넣으며 온수 한 잔 따랐다.“비밀 약재라니 어떤 비밀 약이죠?”유진우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얕잡아보지 말아요. 이건 신의 강보현 씨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