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청아가 분노에 찬 표정으로 가시 같은 말만 내뱉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유진우는 입이 쩍 벌어진 채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얼굴에 부은 술이 턱을 따라 바닥에 한 방울씩 뚝뚝 떨어졌다.그 모습은 실로 초라할 따름이었다.그는 둘 사이가 조금 호전됐다고 여겼지만 여전히 종잇장처럼 가볍고 연약했다.“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일부러 여호준 씨를 모함했다는 거네?”유진우가 미간을 구기고 복잡한 눈빛으로 물었다.“네 눈엔 내가 그토록 신뢰 가치가 없는 거야?”“맞아!”이청아가 곧바로 대답했다.그녀는 살짝 후회가 밀려왔지만 늘 강한 성격이었던지라 체면을 내려놓고 해명하지 못했다.“그래... 아주 좋아. 드디어 네 진심을 드러냈네.”유진우는 저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그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여 말을 이어갔다.“내가 괜히 오지랖이 넓었어.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넌 여전히 미련이 남아있었나 봐.”“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청아가 미간을 구겼다.“내가 틀린 말 했어? 전에 나한테 저 사람과 절대 다시 연락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결국 그날 밤에 함께 술 먹고 데이트했잖아. 넌 겉과 속이 너무 달라!”“그건...”이청아가 해명하려 했지만 유진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가로챘다.“어쩌면 넌 아예 여호준 씨가 약을 탔는지 신경 쓰지도 않았어. 오히려 그렇게 하길 바랐을 거야. 그렇게 되면 두 사람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잖아. 내 말 틀려?”이청아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그녀의 얼굴에 실망감이 드러났다. 마음이 시리고 또 한편으로는 믿을 수가 없었다.유진우가 이런 말을 하다니, 그에게 이청아는 고작 이런 이미지였단 말인가?3년 동안 부부로 지내왔는데 믿음이라곤 전혀 없었던 걸까?“유진우! 너 진짜 너무 실망이야!”이청아가 이를 악물고 씩씩거리며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마음이 한없이 쓰라렸다.“흥!”유진우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서 있었다.그도 마치 무언가로 가슴을 꽉 메운 듯 답답할 따름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천향원 안에서.유진우가 초대받고 별장에 왔을 때 안에는 조선미 외에도 건장한 체구의 중년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그는 검은색 도복을 입고 근육으로 다부진 몸매에 양손 모두 굳은살이 박혀 있었는데 무예를 전공한 자가 틀림없었다.“진우 씨, 미안해서 어쩌죠. 이번에 또 진우 씨를 귀찮게 해드렸네요.”조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겨주었다.“친구끼리 별말씀을요. 게다가 그 사람들이 날 지목해서 오라고 했으니 피할 수도 없어요.”유진우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어제 조아영이 납치된 후 강천호 쪽 사람들이 유진우를 지명하며 함께 오라고 했다.“진우 씨, 제가 소개해드릴게요. 이분은 유강 씨, 조씨 일가 본부에서 파견한 최정예 무사예요.”조선미가 중년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만나서 반가워요, 유강 씨.”유진우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차분하게 말했다.“그쪽이 바로 유진우 씨인가요?”유강은 턱을 치켜세우고 유진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듣자 하니... 유진우 씨가 정윤, 세연 두 사람을 죽였다고 하던데 맞나요?”“그렇다고 하죠.”유진우가 머리를 끄덕였다.“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렇다고 하는 건 뭔가요? 왜 말을 얼버무려요? 설마 비겁한 수단이라도 썼어요?”유강이 의심 가득한 눈길로 쏘아붙였다.“무슨 수단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유용하면 그만이죠.”유진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거 참! 무예를 습득한 자는 정정당당해야 해요. 비겁한 수법으로 이기는 건 그다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에요!”유강이 경멸에 찬 눈길로 말했다.그는 유진우처럼 종파도 없고 정규적이지 못한 사람은 아예 그와 어깨를 견줄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유강 씨 말이 맞아요.”유진우는 반박하기도 귀찮았다.“솔직히 말하자면 정윤, 세연 두 사람은 전부 본인 손에 죽어 나갔어요!”유강이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근본도 없는 무인을 두 명 이겼다고 안하무인 격이 되면 안 되죠! 나 같은 고수를 만나봐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철저히
“유강 씨, 누가 함부로 나서래요?”조선미가 미간을 찌푸리고 살짝 불만 어린 표정으로 그에게 쏘아붙였다.그녀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유강이 제멋대로 가로채고 요구에 응할 줄이야, 위계질서라곤 전혀 없는 인간이었다!“선미 씨, 뭘 그렇게 두려워해요? 고작 이런 인간들은 저 혼자만으로도 가볍게 해결할 수 있어요.”유강은 자신감이 차 넘쳤다.정작 본인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만약 지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어요?”조선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농담도 잘하셔라. 제가 질 리가요? 이따가 두 눈 크게 뜨고 저의 쇼만 지켜보세요!”유강은 갖은 거만을 떨었다.“선미 씨한테 지금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이 바닥 룰대로 모든 재산을 걸고 베팅하거나 아니면 절반 산업을 내게 넘기고 아영 씨를 데려가거나 둘 중 하나예요.”강천호가 적절한 타이밍에 입을 열었다.“알았어요, 천호 씨 말대로 할 테니까 일단 내 동생부터 풀어줘요.”조선미가 차갑게 쏘아붙였다.그녀는 비록 함정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다행히 그녀 쪽에서도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다.“좋아요.”강천호는 거절하지 않고 곧바로 손짓했다.이어서 조아영이 밧줄에 묶인 채로 사람들에게 끌려 나왔다.모습은 초라했으나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다.“아영아, 괜찮아?”조선미는 곧바로 다가가 밧줄을 풀었다.“언니! 드디어 왔네. 나 이번엔 진짜 사고 안 쳤어. 강천호 저 인간이 일부러 날 함정에 빠트렸다고!”조아영은 속상한 얼굴로 말했다.“나도 알아. 일단 옆에서 쉬고 있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조선미가 머리를 끄덕였다.“선미 씨, 사람도 이미 풀어줬으니 우리 인제 계약서를 작성해야죠?”강천호가 손을 흔들자 곧바로 누군가가 종이 한 장을 보내왔다. 이는 마치 생사를 건 계약서를 방불케 했다.격투기 룰대로 지는 쪽에서 계약서 내용대로 이행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이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그렇게 격투기가 좋으시다면 제가 끝까지 함께해드리죠!”
“당신... 정체가 뭐야?!”유강이 바닥에 쓰러진 채 식겁한 얼굴로 물었다. 그에게서 더는 좀전의 거만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세 번의 공격에 무너졌다는 건 상대의 실력이 그를 훨씬 능가했다는 걸 증명한다.이렇게 작은 강능시에 어찌 이런 고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게 바로 가장 큰 의문점이었다.“솔직히 얘기할게. 나는 방민철이고 너희들이 전에 죽인 정윤과 세연은 전부 내 제자들이야!”방민철이 차갑게 말을 꺼냈다.“뭐?! 당신이 바로 강동의 그 방 선생이란 말이야?!”유강은 순간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방 선생이란 칭호를 그는 수없이 들어왔다.강동에서 손꼽히는 고수일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역술인이기도 하다!그는 기괴한 수법으로 소리 없이 처참하게 살인을 저지른다.말 그대로 호환마마처럼 무서운 존재이다.“내 칭호도 들어봤어?!”방민철이 차갑게 웃었다.유강은 이미 식겁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방 선생이 여기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그는 아예 이 미션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방 선생을 건드리는 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린다.“마지막 한 판은 누가 나올래?”강천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조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유 사부도 패배한 마당에 머릿수만 챙기는 그들이 무슨 배짱으로 감히 나서겠냐는 말이다.이는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는 노릇이다!“언니, 어떡해? 인제 어떡하냐고? 이러다 정말 지는 거 아니야?”조아영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세 번의 공격으로 막강한 상대 유강을 해치우는 자인데 누가 감히 나서겠는가?“이봐, 젊은이! 한 판 붙을 자신 있어?!”이때 방 선생의 눈빛이 뜬금없이 유진우에게 꽂혔다.그의 얼굴에 드러난 분노는 감추려야 감출 수 없었다.“자신이 왜 없겠어?”유진우가 담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가 이제 막 앞으로 나가려 하는데 조아영이 불쑥 잡아당겼다.“진우 씨, 뭐 하는 거예요 지금?”“맞서 싸우러 나가는 거죠.”유진우가 고개 돌려 대답했다.“
죽은 개처럼 담벼락에 떡하니 걸린 방 선생을 본 순간 뭇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좀 전까지 위풍당당하게 단 세 번의 공격으로 유강을 격파한 방 선생이 이렇게 패배당하다니? 이는 꿈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게다가 공 치듯 가볍게 뺨 한 대 얻어맞고 쓰러져버렸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말... 말도 안 돼!!!”유강은 넋이 나간 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강동의 최정예 고수 방 선생이 한 방에 무너지다니?!저 녀석은 정녕 괴물이란 말인가?!“이럴 수가?! 진우 씨가 이겼어!!”조아영도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애초에 그녀는 유진우가 반드시 진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정작 이렇게 깔끔하게 이겨버리다니, 귀싸대기 한 방으로 방 선생을 멀리 튕겨버리다니.그의 파워가 얼마나 막강할지 가히 짐작할 수 없었다!“방 선생이... 졌다고?!”강천호가 충격을 받아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방 선생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는 너무 잘 알았다.강능 전체에 방 선생과 맞서 싸울 자는 아무도 없었다!그런 강자가 유진우의 한 방에 쓰러졌단 말인가?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적을 소홀히 대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단지 예외였던 걸까?그것도 아니면... 진짜 실력으로 제압당한 걸까?“내가 진우 씨를 과소평가했네요.”조선미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녀의 얼굴엔 희열과 경악, 그리고 오만함도 살짝 실려 있었다.유진우가 대단한 건 알았지만 이토록 막강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그녀에겐 보물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보아하니 내가 이긴 것 같네.”유진우가 손을 내밀며 담담하게 자리를 떠났다.그 시각 모든 이가 괴물을 쳐다보듯이 유진우를 바라봤다.그중에서도 유강은 좀전의 경멸의 눈빛에서 순간 경외의 눈길로 돌변했다.단 한 번의 스킬로 방 선생을 제친 자는 실력이 얼마나 막강할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뻔하다.“진우 씨, 무예를 조금 익혔다고 했잖아요? 왜 이렇게 강한데요?”조아영이 떠보듯이 물었다.“상대가
갑자기 눈앞에서 휘두르는 칼날에 유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이유 불문하고 무작정 날 스파이라고 몰아붙이네? 이런 횡포가 어디 있어?’“라희 씨,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유진우 씨는 스파이가 아니에요!”조선미가 얼른 해명했다.“오해인지 아닌지는 조사해보면 다 나와요.”라희가 차갑게 쏘아붙였다.“일단 묶어. 감히 반항하면 당장에서 죽여버려!”“날 죽인다고?”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막 밀어붙이는 거야? 너무한 거 아니야?!”“조씨 가문의 대업을 위해서라면 더 한 일도 할 수 있어!”라희가 으름장을 놓았다.“왜 그렇게 내가 스파이라고 확신하는 건데?”유진우가 되물었다.“확신할 필요 없어.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그야말로 일방적인 여인이었다.그녀의 횡포함에 유진우는 낯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그는 줄곧 차분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라희는 다짜고짜 그를 스파이라고 몰아붙였다.이건 대놓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행위였다!“라희 씨, 아직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어요. 일단 진정해요!”조선미가 단호하게 말했다.“난 선미 씨 호위 팀장으로서 선미 씨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어요. 저 자식은 속셈을 헤아릴 수 없으니 딱 봐도 나쁜 놈이에요!”라희가 대답했다.“라희 씨가 오해하셨어요. 진우 씨가 날 구해줬어요. 진우 씨가 아니면 우린 천호 리조트에서 나오지도 못했을 거예요.”옆에 있던 조아영도 한마디 덧붙였다.“그건 단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쇼일 뿐이에요! 다들 감쪽같이 속았다고요!”라희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하지만...”조아영이 말을 이어가려 할 때 라희가 덥석 가로챘다.“됐어요!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잘못 죽이는 한이 있어도 절대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나 참 어이가 없네. 우리 서로 원한을 맺은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렇게 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야?”유진우가 담담하게 물었다.“적당히 해! 이분들을 속일 수 있어도 나한텐 안 통해. 죽기 싫으면 얌전히 묶여있어!
“말도 안 돼! 라희가 스파이였다고?”조아영의 말을 들은 뭇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였다.다들 킬러들의 옷을 벗기고 똑같은 문신을 보았을 때 그제야 안색이 변했다.이는 절대 우연의 일치일 리가 없다.“고작 문신만으로 뭘 설명하겠어?”대머리 호위가 질의를 건넸다.“이 한 개의 문신만으론 설득력이 약하겠지.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문신을 하고 있다면?”유진우는 앞으로 다가가 라희의 부하들의 옷을 싹 다 벗겼다.곧이어 뭇사람들은 이 부하들의 몸 여러 부위에 같은 문신이 새겨져 있는 걸 발견했다.한 명은 우연이라 할 수 있지만 십여 명이 다 있는 건 변명할 여지가 없다.이로써 스파이 사건이 막을 내렸다!“어쩐지... 라희가 나타나자마자 흠집을 잡더라니, 본인이 배신자였어!”유강은 놀랍고도 울화가 치밀었다.다 같은 조씨 일가의 엘리트로서 그는 이런 배신자가 너무 싫었다.“하지만 왜? 조씨 일가에서 줄곧 라희를 중점인물로 배양했는데 왜 배신한 거야?”조아영이 미간을 찌푸리고 의아한 듯 말했다.“명예만큼 사람을 유혹하는 건 없어요. 일단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면 배신을 하게 되죠. 진우 씨가 예리한 눈썰미로 당장에서 스파이를 잡아냈으니 망정이지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위험해졌을 거예요!”유강은 뒷일만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배신자를 옆에 두는 건 시한폭탄과 다름없는 일이니까.언제 등에 칼을 꽂을지 모를 일이다.“언니, 이젠 어떡해?”조아영은 살짝 횡설수설하며 물었다.“햇빛 아래 바퀴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는 건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수천 마리의 바퀴벌레가 더 있다는 걸 말해줘. 이번 일은 아빠한테 알려서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할 거야!”조선미가 진지하게 대답했다.반역자가 나타난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이는 외적의 침입보다 훨씬 엄중하다.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어떤 후폭풍이 휘몰아칠지 모른다!“맞아! 무조건 철저하게 조사해야 해! 이런 배신자들이 제일 가증스러워!”조아영은 머리를 세게 끄덕였다.
배신자를 짓밟아 죽인 후 유진우는 허약한 조선미를 안고 차에 실었다.조선미가 뱀에 물린 부위는 이미 검푸른 자국으로 변했다.게다가 독소가 계속 퍼지고 있어 다리 전체가 마비됐다.“살짝 번거롭게 됐군...”유진우는 자세히 살펴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일반 독은 가볍게 해독할 수 있지만 이번의 독사는 이상하리만큼 흉포했다!게다가 유진우는 약재도 없고 은침도 없어 의술을 펼칠 여건이 못됐다.이젠 입으로 흡입할 수밖에...“조하영 씨,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줘요.”유진우가 고개 돌려 조아영을 불렀다.“저는 조아영이에요! 하영 아니라 아영!!!”조아영은 그의 말을 수정한 후 재빨리 차에 타며 물었다.“내가 뭘 하면 되죠?”“언니분 바지를 벗겨요.”유진우가 분부했다.“이봐요! 지금 뭐 하려는 수작이에요? 경고하는데 함부로 하지 말아요!”조아영은 엉큼한 늑대를 쳐다보듯 그를 바라봤다.“언니분 몸에 독이 퍼져서 내가 전부 흡입해내야 해요.”유진우가 설명했다.“네?”조아영은 흠칫 놀라더니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상처 부위가 다리 안쪽인데! 설마 이 틈을 타서 진우 씨 좋을 노릇만 하려는 건 아니죠?”“사람 목숨이 달렸어요.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찬 거예요?”유진우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의사는 환자의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 못 들어봤나요?”“그런 것도 같네요.”조아영은 그의 말도 제법 일리 있어 보였다.“계속 멍하니 있을 거예요? 얼른 바지 벗기라니까요!”유진우가 다그쳤다.“네, 알았어요.”조아영은 감히 더 망설이지 못한 채 바지를 벗겼다.상처가 훤히 드러나자 유진우는 유심히 살피더니 고도로 집중하여 손을 대기 시작했다.비록 조금 당돌하긴 하지만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이 우선 순이니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유진우는 재빨리 독을 빨아내기 시작했다.그는 한 모금 흡입하여 곧장 검은 피를 내뱉었다.그리고 또다시 흡입하고 내뱉었다.한시라도 쉬지 않고 이 동작만 반복했다.이때 혼미해 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