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점?”그 말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이내 박장대소했다. 유진우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마치 하찮은 인간을 쳐다보는 듯했다.“하하... 정말 웃겨 죽겠네. 무슨 망신을 당하려고 0점짜리 답안지를 내? 그런 배짱은 어디서 생겨난 거야?”“아까 하도 자신감이 넘쳐서 얼마나 대단하나 했더니 그냥 허세였던 거야?”“내가 눈을 감고 써도 한두 개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넌 대체 0점을 어떻게 받은 거야? 우리 좀 웃게 설명해봐 봐.”사람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조롱하기 시작했다.처음에 유진우가 일필휘지할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유진우가 고수인 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0점을 받으면서 본색이 드러났고 현장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너 이 자식 얼굴이 두꺼운 건 인정이야. 0점을 받고서도 이렇게나 당당하다니, 정말 대단해.”유청은 웃음을 참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재간이 없으면 없다고 할 것이지 꼭 여기서 허세를 부려야겠어? 정말 굴욕을 자초하는구나.”강초설이 차갑게 웃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바보를 쳐다보는 듯했다.“0점?”유진우는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검은 옷 집사를 보며 물었다.“당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합니까?”“왜요? 지금 날 의심하는 겁니까?”검은 옷 집사는 눈썹을 치켜올렸다.“난 이 탕약에 들어간 약재를 정확히 적었기에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어떻게 0점을 주신 거죠?”유진우가 물었다.“약재 대부분은 적은 게 맞아요. 하지만 당신은 이 탕약에 없는 오두라는 약재도 넣었어요.”검은 옷 집사가 싸늘하게 말했다.“내가 틀린 건 둘째치고 틀렸다고 해도 10점만 깎아야지, 왜 0점입니까?”유진우는 계속하여 캐물었다. 규정에 따르면 한 번 틀리면 10점 감점, 세 번 틀려야만 탈락이라고 했다. 그는 검은 옷 집사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일반적으로 자주 틀리는 거라면 0점을 주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쓴 오두와 이 탕약 안의
“저자는 틀리지 않았어. 아까 그 탕약 안에 오두를 넣은 게 맞아.”조안태가 다시 한번 사람들이 경악할만한 말을 내뱉었다.“뭐라고요?”검은 옷 집사는 그대로 넋을 잃었고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수장님, 뭔가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 제가 레시피를 보았는데 오두는 없었습니다.”몇몇 장로들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다들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전부 레시피에 따라 지은 탕약이라 함부로 바꿀 수가 없는데 어떻게 오두가 있는 거지?“처음에는 오두가 없었지만 나중에 내가 즉흥적으로 오두를 넣었어.”조안태가 덤덤하게 말했다.“즉흥적으로요?”그 말에 뭇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볼 뿐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즉흥적으로 넣었다는 이 대답은 너무 경솔한 거 아닌가?“수장님, 오두와 패모가 한데 섞이면 독약이 되는데 왜 그걸 넣은 거죠?”검은 옷 집사가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조금 전 이와 비슷한 말로 유진우를 호통쳤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수장이 그의 체면을 깎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그거야 당연히 참가자들을 시험해보려고 그런 거지.”조안태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레시피에 따라 문제를 낸다면 틀에 맞춰진 형식대로 진행할 거잖아. 그건 너무 지루해. 게다가 맞추기도 쉽고. 하지만 오두를 넣으면 달라지지. 왜냐하면 약재의 성질이 서로 맞지 않으니까. 참가자들은 틀에 박힌 생각을 깨뜨려야만 내가 준비한 작은 서프라이즈를 알아챌 수 있어. 그런데 아쉽게도 당신들은 전부 이 점을 간과했지만 유독 이 젊은이만 예리하게 알아챘어. 정확히 말하면 이 젊은이만 만점을 받은 거지.”조안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은 펄쩍 뛰었다. 결국에는 전부 약신왕이 파놓은 함정이었고 그 함정을 알아 본 사람이 바로 유진우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유진우가 과장된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 한다고 비웃었지만 하찮게 날뛴 건 결국 그들이었다.“말도 안 돼. 나도 알아차리지 못한 걸 저 자식이 알아냈다고?”유청이 눈살을 찌푸렸고 안색도 별
“뭐라고요?”조안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뭇사람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들고 있던 약병이 툭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그들이 조금 전 맛본 탕약이 독약일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입문 심사라서 약물의 성분만 구분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젠 목숨까지 위험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굳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이어야 하나?“수장님, 이건 너무 지나친 거 아닐까요?”검은 옷 집사가 눈살을 찌푸렸다.약신궁의 주요 책임은 사람을 구하는 것인데 독약으로 시험한다는 건 아무래도 본말이 전도된 듯싶다.“독약을 먹고 꼭 죽는다는 법은 없어. 가끔 독약으로 사람의 목숨도 구할 수 있어. 너희들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효과만 있다면 방법은 중요하지 않아.”조안태가 여유롭게 말했다.“하지만...”“됐어.”검은 옷 집사가 뭐라 얘기하려는데 조안태가 손을 들고 가로챘다.“약신궁은 쓸모없는 제자는 받지 않으니까 자신 없는 사람은 알아서 물러나고 문 앞에 가서 해독약을 챙기고 꺼져. 물론 계속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죽든 살든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할 거야.”“난... 그만할래요.”“나도 그만할래요. 이런 거라면 포기하겠어요.”“젠장,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데 누가 버틸 수 있겠어? 나도 포기야.”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소리에 대부분 사람들이 포기를 선언했다. 약신궁에 들어가면 벼락출세할 수는 있지만 목숨까지 걸기에는 대가가 너무 컸다.그리고 문제는 첫 번째 단계부터 이렇게 어려운데 두 번째 단계는 얼마나 어렵겠는가? 절대적인 자신이 없는 이상 아무도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지 못할 것이다.하여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대전 내에 팔구십 퍼센트 되는 사람들이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거나 실력이 있는 자들만 남게 되었다.유진우 때문에 정답 중 오두와 패모가 공개되어 첫 번째 단계를 통과하는 사람이 대폭 늘었다.“됐어. 인제 갈 사람은 다 갔어. 심사에 통과한 사람은 바로 두 번째 심사를 진행하도록 한다.”조안태는 깔끔하게 그다음 라운드의
그때 많은 사람들의 몸이 중독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머리가 어지러웠고 어떤 이는 배가 칼로 찌르듯 아팠으며 또 어떤 이는 손발이 경련을 일으키기도 했다.증상이 다 다르긴 했지만 해독단을 제조하는 건 다들 똑같이 어려웠다. 어쨌거나 지금 이 상황에 물러날 길도 없으니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수장님, 오늘 누가 1등 할 것 같습니까?”그때 흰 수염 장로가 갑자기 물었다.“유청과 강초설이 괜찮아 보이네요. 의약 방면에서 천부적인 재능도 있으니 우승할 가능성이 있겠어요. 하지만 난 저 젊은이가 더 마음에 들어요.”조안태의 시선이 유진우에게 향했다.“저 젊은이요?”흰 수염 장로는 조안태의 시선을 따라 쳐다보다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수장님, 저 젊은이는 무명인이에요. 아까는 그저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일 뿐이에요. 유청, 강초설과 같은 천재와 비교하면 그래도 차이가 커요.”가문의 배경으로 보나 천부적인 능력으로 보나 또 의술 조예로 보나 그들은 한 레벨이 아니었다. 가끔 있는 운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하하...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는 이따가 알게 될 겁니다.”조안태는 그저 웃기만 할 뿐 다른 말 없이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단 한마디로 숨겨진 점을 찾아내는 사람이라면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쾅!잠시 후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왔다. 한 남자의 화로가 조작 실패로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부글부글 끓는 탕약과 뜨거운 숯불, 그리고 화로의 파편들이 남자의 얼굴에 가득 튀었다.“으악!”남자는 데인 얼굴을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데리고 나가.”검은 옷 집사가 손을 흔들자 약신궁의 제자 몇 명이 바로 나서서 다친 남자를 데리고 나갔다.펑!펑!펑!한 사람이 실려 나가자마자 몇 사람의 화로도 연이어 폭발했는데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다쳤다. 독에 중독된 데다가 엄청난 부담감을 못 이겨 이 같은 실수를 범한 것이었다.많은 이들의 단약이 타서 모양을 이루지 못하거나 화로가 폭발해버렸다. 그 바
펑!유진우의 화로가 폭발한 순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그에게 돌렸다.경악한 사람도 있었고 고소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유청과 강초설은 잠깐 넋을 놓았다가 이내 매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하하... 화로가 터졌어? 얼마나 대단하나 했더니 고작 이 정도였던 거야?”유청이 다시 비웃기 시작했다.아까 유진우가 눈부신 활약을 펼칠 때 강적이 나타난 줄 알고 한껏 경계했다. 하여 단약을 제조할 때 실력을 100% 전부 다 발휘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괜히 놀란 것 같다. 화로를 터트릴 정도의 형편없는 실력을 지닌 자는 거론할 가치도 없는데 말이다.“역시 쓸모없는 놈은 그저 쓸모없는 놈일 뿐이야. 잠깐 운이 좋았다고 뭔가를 바꿀 수 없어. 조금만 압력을 가하니까 바로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잖아.”강초설이 하찮은 눈빛으로 유진우를 쳐다보았다.한낱 촌뜨기 의사가 어찌 신의문의 천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는가?“예리한 안목을 지닌 수장님께서 오늘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습니다.”흰 수염 장로가 웃을 듯 말 듯 했다.약사에게 있어서 단약을 제조하다가 화로를 터트리는 건 아주 심각한 실수이다. 일반적으로 갓 입문한 사람만이 이런 형편없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조금 전 유진우의 활약이 어떻든 적어도 단약을 제조하는 면에 있어서는 유청, 강초설과의 차이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사람을 잘못 본 건지 아닌지 아직은 판단하기 이릅니다.”조안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수장님, 시간이 이미 다 됐고 화로도 폭발했는데 기사회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흰 수염 장로가 웃으며 말했다. 조안태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단약 제조에 실패하였기에 탈락입니다.”검은 옷 집사는 유진우 앞으로 다가가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잠깐만요... 제가 왜 실패했나요?”유진우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하기 그지없었고 전혀 기죽지도 않았다.“화로마저 다 터졌는데 실패가 아니면 뭡니까?”검은 옷 집사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눈앞
색깔과 향, 그리고 크기 모두 기존의 것과 달랐다.“흥! 단약을 제조하면 뭐? 품질을 딱 보면 별로인 게 알리는데.”강초설이 팔짱을 끼고 시건방을 떨었다.“맞아! 두 번째 심사는 단약의 품질을 심사하는 거야. 화로가 폭발하여 만들어진 단약은 쓰레기일 뿐이야. 거론할 가치도 없다고.”유청은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유청이 제조한 것은 상등품의 단약이지만 유진우의 단약은 하등품이라서 완전히 같은 레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이상하네...”검은 옷 집사는 한참 동안 연구하다가 감히 제멋대로 결정할 수 없어 단약을 들고 조안태 일행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수장님, 장로님들, 이 해독단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 혼자서 결정할 수 없으니 다들 한번 봐주세요.”“그래? 그럼 어디 한번 보자.”흰 수염 장로는 단약을 자세히 살피더니 이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수장님, 이거 평범한 단약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번 보십시오.”흰 수염 장로는 여러 번 확인한 후 조안태에게 건넸다.“이거 재미있네.”단약을 살펴보던 조안태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저 녀석, 역시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수장님, 이 단약의 품질이 어떻나요?”검은 옷 집사가 떠보듯 물었다.“아직도 모르겠어? 이건 최상품의 단약이야.”흰 수염 장로가 말했다.“네? 최상품요?”검은 옷 집사가 화들짝 놀랐다.상등품 단약과 최상품 단약의 효과는 그야말로 천지 차이이다. 상등품 단약 100알이 최상품 단약 한 알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유청과 강초설은 물론이고 그가 직접 나선다고 해도 상등품 단약만 제조할 수 있을 뿐이지, 최상품은 절대 제조하지 못한다.‘설마 저 녀석이 나보다 더 실력이 뛰어난 거야?’“멍하니 서서 뭐 해? 얼른 결과나 발표해.”조안태가 다그쳤다.“네...”검은 옷 집사는 침을 꿀꺽 삼킨 후 돌아서서 단약을 들고 우렁차게 말했다.“토론 결과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이 단약이 최상품이라고 판단하여 이 단약을 제조한
“뭐라고요? 레시피를 개선했다고요?”조안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하나의 레시피는 수천만 번의 실험을 거쳐서 만들어진다. 약을 추가하거나 빼면 균형을 깨뜨려 단약을 제조할 수 없게 된다.레시피를 개선한다는 건 엄청난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하고 또 여러 번 실험해야 한다. 현장에서 레시피를 개선하고 또 단번에 성공한다는 건 운이 아주 좋거나 엄청난 의학 천재라는 걸 뜻한다.“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경악도 잠시 유청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레시피를 개선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상등품의 레시피를 최상품으로 바꾸는 건 저희 사부님이신 최 명의님이라도 불가능한데 저 자식이 성공했다는 게 말이 돼요?”“맞아요! 저런 촌뜨기 의사가 어떻게 레시피를 개선해요?”강초설이 따라서 맞장구를 쳤다.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도 뛰어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촌뜨기의 재능이 그녀보다 뛰어날 거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젊은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젊은이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 같으니 대체 어떻게 했는지 설명 좀 해줄 수 있어요?”조안태가 웃을 듯 말 듯 한 얼굴로 말했다.“딱히 설명할 것도 없어요. 그냥 몇 가지 약재를 더 넣었을 뿐이에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흥. 약재를 더 넣었다고? 그럼 어떤 약재를 더 넣었는데?”유청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당귀, 감초, 백렴, 그리고 금은화를 넣었어.”유진우는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레시피가 노출되는 걸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최상품의 단약을 제조하려면 자신의 능력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한 단약도 아니고 해독단일 뿐이기에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다.“아니야!”곰곰이 생각하던 유청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당귀와 감초, 그리고 백렴은 해독단의 약효를 강화하긴 하지만 금은화는 레시피에 적힌 약재들과 상극이라 넣으면 오히려 유해효과를 일으킬 수 있어.”“아무것도 모르면 으스대지나 마.”유진우는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했다.“해독
조안태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두 번째 심사가 끝난 후 통과한 사람은 고작 몇 명밖에 없었다. 전부 비범한 의술을 지녔거나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자들이었다.“제가 먼저 하겠습니다.”한 중년 남자가 자신만만하게 자발적으로 나섰다. 20년 동안 갈고 닦은 침술을 드디어 쓸 수 있게 되었다.그는 노인의 앞으로 다가가 꼼꼼하게 살펴본 후 진맥했다. 그러고는 노인의 다리 부분 혈 자리에 은침을 열몇 개 꽂았다. 하지만 노인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응?”중년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계속하여 여러 번 시도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시간이 다 됐어요. 탈락입니다!”검은 옷 집사가 불쑥 말했다.“잠깐만요... 한 번만 더 해볼게요.”중년 남자는 전혀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끌어내!”쓸데없는 얘기를 섞고 싶지 않았던 검은 옷 집사는 바로 명을 내려 중년 남자를 끌어내게 했다.“흥. 원인도 모르면서 침을 꽂아? 정말 돌팔이 의사가 따로 없군. 내가 어떻게 하는지 봐봐.”그때 한 여자가 갑자기 나서더니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어혈을 풀어주는 단약을 꺼내 노인에게 먹였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노인의 다리와 허리를 마사지하고 두드리기 시작했다.처음에 그녀는 노인의 경맥이 막힌 줄 알고 경맥만 뚫어주면 감각을 회복할 거라 생각하여 아주 자신만만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가 아무리 힘을 쓰고 땀범벅이 되어도 노인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시간이 다 됐어요. 탈락입니다.”검은 옷 집사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그 뒤로 또 두 명이 시도해봤지만 여전히 실패였다. 노인은 목각처럼 그 자리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쓸모없는 것들. 내가 할게.”몇몇이 실패한 후 유청이 참다못해 드디어 나섰다. 조금 전 관찰하면서 그는 노인이 마비된 원인을 알아냈기에 감각을 되찾게 할 자신이 있었다.“야 이 자식아, 네가 단약을 제조하는 건 나보다 나을지는 몰라도 환자를 치료하는 건 날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