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불빛이 반짝이는 어느 한 클럽의 VIP 룸.사장인 박호철은 안경을 쓴 한 민머리 남자를 정성스럽게 대접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예쁘장한 아가씨들이 교태를 부리면서 아양을 떨고 있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대접은 없을 것이다.“강 집사님, 이렇게 친히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저의 마음이니 부디 받아주세요.”박호철은 수표 한 장을 꺼내 민머리 남자의 테이블 앞에 내려놓았다. 민머리 강 집사는 수표를 힐끗 보고는 더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하여 옆에 있는 아가씨와 러브샷 하며 즐겼다.“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선물을 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그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린 박호철은 옆에서 선물 박스를 꺼내 두 손으로 그에게 건넸다. 박스를 열어보니 금으로 만든 소가 놓여있었는데 딱 봐도 몇 킬로그램은 돼 보였다. 적어도 이삼억은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하하... 부회장, 뭘 이런 것까지 준비했어? 우리 사이에 이런 귀한 선물까지 준비할 필요가 있나?”금을 보자마자 강 집사의 안색이 환해졌고 골든 소와 수표를 자연스럽게 받았다.“강 집사님께서 저 먼 중주에서부터 힘들게 오셨는데 이 정도 선물은 당연히 드려야죠.”박호철은 웃는 낯으로 대했지만 속으로는 욕설을 퍼부었다.‘여우 같은 영감탱이, 욕심이 점점 더 과해진다니까.’하지만 부탁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손해를 보고도 뭐라고 하소연할 수가 없었다.“강 집사님, 이번에 오시면서 그것도 가져오셨죠?”박호철이 떠보듯 물었다.“걱정하지 마. 한두 번도 아니고 당연히 잊지 않았지.”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자색 약병을 꺼내 박호철에게 건넸다. 박호철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면서 손을 내밀어 받으려는데 강 집사가 뒤로 빼며 귀띔했다.“부회장, 이거 엄청 귀한 거야. 일 년에 이 한 병밖에 없다고. 그 집 할머니가 이 영약으로 목숨을 부지한댔지?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돼. 내 말 명심해.”“네네, 이 약을 제 목숨보다도 중히 여기는걸요?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게요.”박호철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허! 개 같은 자식.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전혀 뉘우칠 생각이 없구나?”홍길수가 노발대발하며 손을 쓰려던 그때 유진우가 말렸다.“이 일이 이씨 가문과 연관이 있단 말이야?”“왜? 인제야 두려워?”박호철이 코웃음을 쳤다.“인제라도 두려워하면 됐어. 날 건드리는 건 이씨 가문을 건드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지금 당장 꺼져!”“한 번만 기회를 줄게. 자초지종을 전부 설명하고 죄를 인정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유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개소리 집어치워!”박호철이 두 눈을 부릅떴다.“당신이 염룡파 보스라고 내가 무서워할 것 같아? 이씨 가문 앞에서 그깟 조직이 무슨 대수야? 당신들을 없애는 건 일도 아니야.”“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을 생각이구나? 여봐라, 일단 저놈의 한쪽 손부터 잘라.”유진우는 더는 그와 쓸데없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알겠습니다.”홍길수가 섬뜩한 웃음을 짓더니 두 부하에게 박호철을 테이블에 눌러놓으라고 명령했다.“잠깐! 경고하는데 함부로 하지 마.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이씨 가문에서 당신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당황한 박호철이 미친 듯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계속 큰소리 쳐봐. 네가 언제까지 큰소리치는지 두고 볼 테니까.”홍길수는 칼을 들자마자 박호철의 손목을 가차 없이 잘라버렸다.“으악!”시뻘건 피가 사방에 튀었고 처참한 비명이 룸 전체를 가득 채웠다.“당... 당신들...”박호철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고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유진우가 진짜로 손을 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씨 가문의 복수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인가?“아직도 말 안 해? 나머지 한쪽도 잘라버려.”유진우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네!”홍길수는 두말없이 칼을 들고 자르려 했다.“강 집사님, 저 좀 살려주세요.”겁에 질린 박호철이 소리를 질렀다.“멈춰!”그때 옆에서 줄곧 방관하던 강 집사가 드디어 일어났다.“넌 또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야? 경고하는데 쓸데없이 오지랖 부리지 마.”홍길
“너무 시끄럽네.”유진우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강 집사를 발로 걷어찼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거친 동작이었다.“뭐야?”그 모습에 홍길수 일행은 넋이 나갔다. 박호철도 고통을 잊어버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유진우가 이토록 잔인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시끄러워서 거슬린다고 바로 손을 썼다. 상대는 아무나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강씨 가문의 집사이자 중주의 거물이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상대의 생사를 결정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강 집사가 강씨 가문의 체면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강 집사를 때렸다는 건 강씨 가문의 체면을 짓밟은 거나 마찬가지다.이 자식 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걸까? 죽으려고 환장했나?“너... 너... 감히 강 집사님을 다치게 했어? 자신이 죽을죄를 지었다는 걸 알기나 해?”놀라면서도 겁에 질린 박호철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강씨 가문의 개일 뿐인데 죽을죄는 무슨.”유진우가 시선을 옮기고 냉랭하게 말했다.“문제는 너야.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곧 큰 화를 입게 될 거야.”유진우의 싸늘한 눈빛과 마주친 순간 박호철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엄청난 공포감이 그를 덮쳤다.박호철도 이젠 드디어 겁을 먹기 시작했다. 강 집사마저 서슴없이 때리는 이 녀석은 분명 미친 게 틀림없다.“말 안 해? 그럼 손발을 전부 다 잘라버려.”유진우가 다시 한번 명을 내렸다.“네.”홍길수가 섬뜩하게 웃으며 칼을 들고 자르려 했다.“잠깐! 말할게...”혼비백산한 박호철이 바로 깨갱거렸다.쾅!칼로 내리치자 그의 나머지 한쪽 손이 결국 잘려 나가고 말았다.순간 멍해진 박호철이 고개를 들자 복수해서 고소해하는 홍길수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너 이 X자식!”박호철이 뭐라 얘기하려던 그때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더니 눈앞에 캄캄해지면서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죽지 않게 대충 싸매서 이씨 그룹으로 데려가.”유진우가 명을 내렸다.“알겠습니다.”두 부하는 재빨리 박호철을 끌고 가면서 잘린 두 손도 챙기
이청아는 커피를 마시면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그런데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장경화와 단소홍이 허둥지둥 들어왔는데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엄마, 강능으로 돌아간 거 아니었어요? 어떻게 벌써 왔어요?”이청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딸, 너 솔직하게 얘기해. 이씨 가문의 족장이 되었다는 게 사실이야?”장경화가 다급하게 물었다.“어떻게 알았어요?”이청아가 화들짝 놀랐다.“하하... 역시 사실이었구나.”장경화는 싱글벙글 웃으며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어제 네 할아버지가 네가 곧 이씨 가문의 족장이 될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 그때까지는 믿지 않았는데. 우리 딸이 이렇게나 대단할 줄은 정말 몰랐어. 너무 잘됐어.”“언니, 출세한 걸 축하해요. 앞으로는 언니가 이 재벌가의 주인이네요.”단소홍이 알랑거리며 말했다.예전에는 이청아를 질투했고 불만도 많았지만 이젠 잘 보이는 수밖에 없다.강북의 이씨 가문은 백 년 역사를 지닌 명문가이고 권세가 하늘을 찌른다. 지금의 이청아는 벼락출세하여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아직 재벌가의 주인은 아니야. 배우는 단계라서 이씨 가문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먼 길을 더 가야 해.”이청아는 정신을 가다듬었다.이씨 가문 족장이라는 타이틀이 듣기에는 엄청난 것 같지만 현재의 그녀에게는 그저 빈 이름뿐이었다. 성공적으로 그 자리에 앉으려면 이세훈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딸, 그만 겸손해도 돼. 족장님이 널 후계자로 선택한 것만으로도 네 능력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어. 이씨 가문이 언젠가는 네 것이 될 거야.”장경화는 몹시 뿌듯해했다. 자신이 정성 들여 키운 덕에 딸이 훌륭하게 자랐다는 자부심이 들기도 했다.“맞아요, 맞아요. 우린 앞으로 언니와 함께 행복을 누릴 일만 남았어요.”단소홍이 웃으며 말했다.한 사람이 출세하면 주변 사람도 그 빛을 톡톡히 보게 된다. 이청아가 족장이 된다면 그녀 가족들도 따라서 덕을 보게 될 것이다.“청아 씨, 며칠 못 본 사이에 족장이 됐구나. 축하해.”그
“응?”박호철의 황당무계한 거짓말에 유진우의 안색이 굳어지면서 살기가 스쳤다.‘이런 상황에서도 나에게 죄를 덮어씌워? 정말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X발, 어디서 함부로 지껄여? 죽여버릴 거야!”놀라움도 잠시 홍길수가 노발대발하며 칼을 뽑아 들더니 박호철을 죽이려 했다.“회장님, 살려주세요.”박호철은 기겁하며 재빨리 뒤로 숨었다.“잠깐만요.”이청아가 두 걸음 앞으로 나서서 홍길수를 말렸다.“제대로 파악하기 전까지는 손을 써서는 안 돼요.”“회장님, 저 자식이 방금 한 말 전부 거짓말이에요. 혼쭐을 내야 정신을 차린다니까요.”홍길수가 살기등등하게 말했다.오는 길에서는 무조건 솔직하게 얘기하고 죄를 인정하겠다고 하더니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말을 바꾸는 건 물론이고 되레 죄를 뒤집어씌우기까지 했다.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흥. 아주 사람을 죽이려고 작정했구나?”그때 단소홍이 불쑥 한마디 했다.“부회장님이 희생양이 되기 싫어서 진실을 얘기하니까 화를 내는 거야?”“유진우, 세력을 믿고 남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죄를 뒤집어씌우기까지 해? 내 아들을 죽이더니 이젠 내 딸까지 속이려고?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장경화가 바로 욕설을 퍼부었다.“그래! 넌 인간도 아니야!”박호철은 뒤에 숨어서 한마디 거들었다. 오늘 사람을 죽였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 반드시 죽을 거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럴 바엔 이청아 일행의 동정심을 이용하여 유진우를 제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길수야, 잠깐 물러나 있어.”유진우가 손을 뒤로 흔들었다.“네.”홍길수는 이를 꽉 깨물고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살벌한 눈빛으로 박호철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박호철, 내 앞에서 잔머리를 굴린다고 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유진우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회장님, 들으셨죠? 저 자식 지금 절 죽이려 해요. 얼른 사람을 불러서 저 자식을 잡아요.”박호철이 당황해하며 말했다.“진우 씨, 부회장님이 배후에 있는 진범
남자는 휴대 전화를 꺼내 동영상 하나를 틀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촬영 장소는 한 커피숍이었는데 박호철과 남자가 마주하여 앉아있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또렷하여 대화 내용도 잘 들렸는데 바로 이현을 어떻게 죽인 다음 유진우에게 어떻게 덮어씌우라는 내용이었다. 상의를 마친 후 박호철은 그 자리에서 남자에게 약속한 돈의 일부분을 먼저 주었다. 범인을 매수하고 살인을 지시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몽땅 찍혔다.동영상을 본 후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조금 전까지 흉악한 모습이던 장경화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아니꼬운 태도로 일관하던 단소홍도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줄곧 유진우를 진범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유진우는 정말로 결백했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을 한순간에 받아들이자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박호철은 그대로 얼어버렸고 표정도 잿빛이 되었다.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다면 증명할 길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교활한 자식이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동영상을 찍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자, 다들 보셨죠?”홍길수가 씩씩거렸다.“당신들은 조금 전까지 보스를 의심하고 욕설을 마구 퍼부었어요. 진실이 드러난 지금은 어때요? 아직도 할 말 있어요?”“그게...”장경화와 단소홍은 민망한 나머지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박호철,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상황 파악을 마친 이청아는 몸을 돌려 박호철의 얼굴을 힘껏 후려갈겼다. 그 바람에 박호철은 비틀거리면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고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부어올랐다.“네가 내 아들을 죽였어! 죽여버릴 거야!”장경화는 포효하면서 박호철을 덮쳤다.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는 것으로나마 마음속의 화를 풀었다.아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었고 살인범이 바로 앞에 있는데 어찌 참을 수 있단 말인가?박호철은 그들에게 얻어맞으면서 연신 울부짖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머리를 감싸 쥐고 비는 수밖에 없었다.한참이 지난 후 장경화 일행이 어느 정도 화풀이하고 나서야 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왜 이러세요?”따끔거리는 얼굴을 부여잡은 이청아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상대를 건드린 적도 없는데 왜 보자마자 따귀를 날리는 걸까?“이봐! 당신은 또 어디에서 온 미친 할망구이기에 내 딸을 때려? 당신도 맞고 싶어?”이청아가 얻어맞은 모습을 보자 장경화는 펄쩍 뛰면서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무엄하다!”그때 키가 훤칠한 한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험상궂은 얼굴로 말했다.“버릇없이 감히 우리 할머니께 대들어? 죽고 싶어 환장했어?”상대의 사나운 기세에 장경화는 깨갱거렸지만 입으로는 여전히 센 척 몰아붙였다.“왜? 사람이 많다고 우릴 괴롭히려고? 내가 당신들을 무서워할 것 같아?”“경비, 이 사람들을 당장 끌어내!”단소홍이 그들을 내쫓으려 했다.“우릴 끌어내겠다고?”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이씨 그룹 전체가 우리 것인데 감히 우릴 내쫓아?”“아이고, 큰소리치기는. 대체 누구이기에 이렇게 나대는 거야?”단소홍이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난 이씨 가문의 3대 직계 장손 이원기다.”남자는 가슴을 쫙 펴고 오만하게 말했다.“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이씨 가문의 현 여주인이시다.”“이씨 가문의 여주인?”그 말에 단소홍과 장경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대신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강북의 이씨 가문에서 족장 이세훈을 제외하고는 여주인의 권력이 가장 컸다. 이씨 가문의 모든 자원을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었고 그녀 한마디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쥐고 흔들 수 있었다.이런 다른 레벨의 거물을 그들은 감히 건드릴 수 없다.“흥. 눈치도 없는 촌뜨기들.”이원기는 그들을 하찮게 내려다보았다.단소홍과 장경화는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큰할머니, 제가 대체 뭘 잘못하였기에 큰할머니께서 이렇게 노하신 겁니까?”이청아는 최대한 침착하려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왜? 아랫사람 하나 혼내는데 이유까지 필요해?”손미란이 싸늘하게 말했
동영상을 보여주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손미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휴대 전화를 냅다 바닥에 던지더니 발로 쾅 밟아 깨뜨려버렸다.“이젠 증거가 없네?”손미란이 덤덤하게 말했다.그 광경에 사람들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이건 또 무슨 경우지? 일부러 감싸주는 것도 모자라 증거 인멸까지 한다고? 이래도 되는 거야?’“큰할머니,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이청아가 눈살을 찌푸렸다.“다들 봤잖아. 뭐 불만 있어?”손미란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계속 이러시면 큰할아버지께 이르는 수밖에 없어요.”이청아의 표정도 얼음장같이 차가웠다.“족장님으로 날 누르겠다? 너에게 그럴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손미란이 피식 웃었다.“왜 없어요? 내 딸은 족장님이 직접 선택한 후계자예요. 그리고 곧 새로운 족장 자리에 앉을 거라고요. 그때가 되면 당신들 모두 고개를 숙이고 굽신거려야 할 겁니다.”장경화는 배짱이 점점 두둑해지면서 목소리도 높아졌다.“후계자? 새로운 족장? 누가 그래?”손미란은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했다.“족장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못 믿겠으면 전화해서 물어보세요.”장경화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전화? 그럴 기회가 없을 것 같은데?”손미란이 덤덤하게 말했다.“어젯밤에 족장님이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진 바람에 지금 의식불명이셔.”“네? 의식불명이요?”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어젯밤에도 멀쩡하셨는데 왜 갑자기 의식불명이 됐어요?”이청아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어젯밤에 이세훈이 전화 왔을 때만 해도 잘도 웃고 목소리에 힘도 넘치면서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았는데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쓰러졌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족장님의 연세가 많은 데다가 과로한 탓에 한 번 쓰러지니까 일어나지 못하시는 거야. 지금 가문의 크고 작은 일은 전부 다 내가 관리하고 있어. 또 다른 의견 있어?”손미란이 싸늘하게 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