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요, 삼촌? 진우 씨 의술, 마음에 드시나요?”조선미가 입꼬리를 올리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쨌거나 유진우는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이니 말이다.“알약 한 알이 이 정도로 신기할 줄은 정말 몰랐어.”안도균의 두 눈이 빛이 날 정도로 반짝였다.“진우 씨, 이 알약 이름이 뭐예요? 몇 알만 더 줄 수 있어요? 높은 가격에 살게요.”“이 약은 우금환이라고 하는데 특별한 비법으로 제조한 약이에요. 하지만 필요한 약재가 너무 귀해서 나한테도 한 알밖에 없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괜찮아요. 비법을 나한테 팔아도 돼요.”안도균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의약계 거물인 그는 이 묘약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면 엄청난 부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특별한 비법이라고 했잖아요. 절대 못 팔아요.”그런데 유진우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물론 희귀 약재를 하나만 더 구해준다면 우금환을 만드는 비법을 공짜로 알려줄 수도 있고요.”“그게...”안도균이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오백 년 된 인삼을 구하는 것도 무척이나 힘든데 더 희귀한 천년 청련을 어디 가서 구한단 말인가?그리고 현주과, 혈정화, 칠색 영지 등은 들어보지도 못한 것들이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삼촌, 조급해하지 말아요. 일단 인삼부터 구한 뒤에 다시 얘기해요.”조선미가 배시시 웃으며 배를 어루만졌다.“갑자기 배가 고프네요. 삼촌, 클라우드 레스토랑 가서 식사할까요? 이참에 명의도 바꿔버리고요.”안도균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정말 성질도 급해!’너무 아까웠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이미 뱉은 말이니 다시 번복하기엔 너무 체면이 서지 않았다.그들은 간단하게 몇 마디 나눈 후 함께 차를 타고 클라우드 호텔에 도착했다.클라우드 호텔은 명양 호수 옆에 있어 지리적 위치도 아주 좋았다. 그리고 호텔에서 가장 유명한 건 바로 맨 꼭대기 층에 있는 클라우드 레스토랑이었다.높은 데 올라가면 멀리 내
“지금 장난해? 고급 VIP 회원이 되려면 10억을 내야 한다고?”이현이 경악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말이야! 그냥 대놓고 뺏지 그래!”장경화도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조금 전 카드를 냉큼 거두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러면 큰일이 날뻔했다.“이건 저희 대표님께서 내린 규정입니다. 고급 VIP가 비싸다고 생각되시면 일반 VIP로 하셔도 됩니다.”종업원의 표정은 여전히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그럼... 일반 VIP는 얼마 충전해야 하는데?”장경화가 떠보듯 물었다.“2억 충전하시면 일반 VIP 회원이 되실 수 있습니다.”종업원이 소개했다.“2억? 그것도 적지 않은데?”장경화가 눈살을 찌푸렸다.“우린 그저 한 끼 식사하러 왔을 뿐이야.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될까? 차라리 당신한테 팁을 더 주는 게 낫지.”클라우드 레스토랑의 가격이 이 정도로 비싼 줄 알았더라면 아예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죄송합니다. 저희는 VIP 손님만 받습니다.”직업 정신이 투철한 종업원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어이!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 당장 매니저 불러. 매니저한테 직접 얘기할 테니까!”장경화가 버럭 화를 냈다.“죄송합니다. 매니저님께서 지금 귀빈 세 분을 모시느라 시간이 없어요.”종업원의 미소가 점점 굳어졌다.“너...”장경화가 불같이 화를 냈다.“엄마, 그만해. 그냥 다른 데로 갈까?”이현이 슬쩍 떠보았다.클라우드 레스토랑이 좋긴 하지만 그들의 형편에 소비하기에는 너무 비쌌다.“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데로 가면 남들이 웃어.”장경화가 두 눈을 부릅떴다.“아주머니, 제가 한번 얘기해 볼까요?”그때 여호준이 미소 지으며 우아하게 골든 카드를 꺼내 종업원에게 건넸다.“전 여기 골든 VIP라서 20퍼센트 할인도 해줘요.”“골든 VIP?”장경화가 화들짝 놀랐다.“그럼 얼마나 충전해야 해?”“얼마 안 돼요. 20억이면 돼요.”여호준이 싱긋 웃었다.“20억?!”장경화 모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장난해? 2
“뭐? 대표님?”미처 반응하지 못한 이현은 그대로 넋을 놓고 말았다.“지금 장난해? 저 자식이 어떻게 대표일 수가 있어?”장경화도 믿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왜 말이 안 돼? 당신들이 뭔데 함부로 사람을 무시해? 당신들처럼 오만방자한 사람은 처음 봤어. 상황 파악도 못 하고 계속 떠들어대?”매니저도 더는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조금 전 그는 룸에서 전 대표 안도균이 클라우드 호텔 전체를 유진우에게 넘기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말... 말도 안 돼. 빈털터리인 거지가 무슨 돈으로 레스토랑을 차려?”이현이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무슨 돈으로 차렸든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고. 그냥 지금 이 레스토랑은 내 것인 것만 알면 돼. 그러니까 나만 너희들을 내쫓을 수 있어.”유진우의 표정은 한없이 침착했다. 그의 말에 장경화 모자의 안색이 말이 아니게 어두워졌다.원래는 골든 VIP라고 유진우 앞에서 거들먹거리려 했지만 그가 레스토랑의 대표가 됐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정말 이보다 더 창피한 일은 없을 것이다!“대표님, 소란 피운 이 자들을 전부 내쫓을까요?”매니저가 물었다.“됐어요. 식사하러 왔으니 손님이긴 하죠. 그래도 골든 VIP인데 잘 대접하세요. 와인 한 병 서비스로 드리세요, 계산은 제 걸로 하고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네!”매니저가 깍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건방 떨긴. 그래봤자 여자 덕에 높은 자리에 앉았으면서.”“그래! 기생오라비 주제에 잘난 척은!”불만이 가득했던 장경화와 이현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와인은 됐어요. 난 어디 가서 남이 공짜로 주는 건 안 받아요.”그때 여호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잘생긴 얼굴에 우아한 분위기, 거기에 매혹적인 미소까지 장착한 그를 보는 주변 여자들의 마음이 마치 봄바람에 휘날리듯 설렜다.정신이 번쩍 든 장경화가 바로 자랑질했다.“유진우, 호준이는 유학을 마치고 방금 돌아왔어. 명문가 출신인 데다가 능력까지 뛰어나서 너보다 백 배는 나아!”“그래!
그 시각 클라우드 레스토랑 창가 쪽 테이블.장경화 모자는 아직도 구시렁거렸다.“유진우 그 쓸모없는 놈이 대표가 되다니. 정말 말도 안 돼!”이현은 분노가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흥! 기생오라비일 뿐이야! 조선미 씨가 없었더라면 오늘 같은 부를 누릴 수가 있었겠어?”장경화가 입을 삐죽거렸다.“맞아! 조선미 씨가 유진우한테 싫증 나면 바로 가차 없이 차버릴 거야. 그때 가서도 시건방을 떠는지 볼 거야.”이현의 질투가 폭발했다.“여자한테 빌붙어서 사는 남자는 발전성이 없어. 호준이처럼 재능이 뛰어난 청년이야말로 진정한 인재지!”장경화는 유진우를 짓밟으면서 여호준을 추어올렸다.“호준이 형 그때 유학만 가지 않았어도 내 매형이 됐을 텐데. 너무 아쉬워요.”이현이 고개를 내저었다.“그러게나 말이야. 네가 유학 가고 나서 우리 청아가 엄청 오래 속상했었어.”장경화도 맞장구를 쳤다.“엄마! 두 사람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이청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드러냈다.“헛소리라니? 호준이가 유학 가지 않았더라면 네가 유진우 그 자식이랑 결혼했겠어?”장경화가 또박또박 말했다.“엄마.”이청아가 화를 내려 하자 여호준이 재빨리 나서서 상황을 수습했다.“됐어요, 그만들 해요. 다 지나간 일 다시 꺼내서 뭐 해요. 자, 식사해요. 여기 음식 아주 맛있어요.”두 모자는 그제야 입을 다물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저기, 나랑 이현이 내려가서 뭐 좀 살 테니까 두 사람 천천히 먹고 있어.”장경화가 갑자기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아들에게 눈치를 주었다.“아, 그래그래. 나 엄마랑 나갔다 올게.”눈치 빠른 이현이 장경화와 함께 자리를 비켜주었다. 여호준과 이청아가 단둘이 있을 기회를 마련해준 것이었다.“청아야, 그땐 내가 말도 없이 떠나서 미안해.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두 사람이 떠난 후 여호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이미 지나간 일은 다 잊었어요.”이청아의 표정은 한없이 무덤덤했다. 그에 대한 마음이 없으니 당
이청아는 고개를 돌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유진우에게 물었다.“너 그게 무슨 뜻이야?”“술에 이미 약을 타서 마시면 끝장이야.”유진우가 경고했다.“약을 타?”이청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여호준을 쳐다봤다.“진우 씨, 뭔가 오해했나 본데요.”여호준의 표정이 살짝 굳더니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다.“오해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겠죠.”유진우가 차갑게 쏘아붙였다.“청아야, 내가 그렇게 비겁한 사람으로 보여?”여호준이 고개 돌려 진지하게 물었다.이청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유진우에게 되물었다.“진우 너 증거 있어?”“레스토랑 매니저가 직접 봤대. 증인이 돼줄 수 있어.”유진우가 답했다.“맞아요! 저 방금 똑똑히 지켜봤어요. 바로 저 사람이 술에 약을 탔어요!”매니저가 여호준을 가리켰다.“누가 알아요? 다들 한통속일지. 작정하고 모함하니 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군요.”여호준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는 사뭇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유진우, 여기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어. 너 진짜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말하지 말아 줄래?!”이청아가 진지하게 말했다.그녀는 여호준이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닐 거로 믿었다.“직접 목격한 증인까지 있는데 또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해? 넌 그냥 무작정 여호준 씨를 믿어도 내 말은 전혀 안 믿겠다는 거잖아!”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가슴이 답답했다.“그게...”이청아는 문득 말문이 막혔다.여호준은 어찌 됐든 여씨 일가의 도련님이라 고귀한 신분에 품위가 흘러넘치는데 어찌 이런 비겁한 수단을 쓴단 말인가?하지만 유진우가 저토록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아 거짓말은 아닌 듯싶었다.이청아는 한순간 갈피를 잡지 못했다.“청아야, 진우 씨가 나한테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괜찮아. 내가 직접 결백을 증명할게. 네 술에 약을 탔다고 했었지? 그럼 우리 잔을 바꿔 마시자.”여호준이 이청아의 술잔을 가져오더니 원샷을 했다.깔끔한 동작에 이청아의 의심이 모두 사라졌다
그는 이청아가 분노에 찬 표정으로 가시 같은 말만 내뱉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유진우는 입이 쩍 벌어진 채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얼굴에 부은 술이 턱을 따라 바닥에 한 방울씩 뚝뚝 떨어졌다.그 모습은 실로 초라할 따름이었다.그는 둘 사이가 조금 호전됐다고 여겼지만 여전히 종잇장처럼 가볍고 연약했다.“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일부러 여호준 씨를 모함했다는 거네?”유진우가 미간을 구기고 복잡한 눈빛으로 물었다.“네 눈엔 내가 그토록 신뢰 가치가 없는 거야?”“맞아!”이청아가 곧바로 대답했다.그녀는 살짝 후회가 밀려왔지만 늘 강한 성격이었던지라 체면을 내려놓고 해명하지 못했다.“그래... 아주 좋아. 드디어 네 진심을 드러냈네.”유진우는 저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그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여 말을 이어갔다.“내가 괜히 오지랖이 넓었어.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넌 여전히 미련이 남아있었나 봐.”“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청아가 미간을 구겼다.“내가 틀린 말 했어? 전에 나한테 저 사람과 절대 다시 연락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결국 그날 밤에 함께 술 먹고 데이트했잖아. 넌 겉과 속이 너무 달라!”“그건...”이청아가 해명하려 했지만 유진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가로챘다.“어쩌면 넌 아예 여호준 씨가 약을 탔는지 신경 쓰지도 않았어. 오히려 그렇게 하길 바랐을 거야. 그렇게 되면 두 사람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잖아. 내 말 틀려?”이청아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그녀의 얼굴에 실망감이 드러났다. 마음이 시리고 또 한편으로는 믿을 수가 없었다.유진우가 이런 말을 하다니, 그에게 이청아는 고작 이런 이미지였단 말인가?3년 동안 부부로 지내왔는데 믿음이라곤 전혀 없었던 걸까?“유진우! 너 진짜 너무 실망이야!”이청아가 이를 악물고 씩씩거리며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마음이 한없이 쓰라렸다.“흥!”유진우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서 있었다.그도 마치 무언가로 가슴을 꽉 메운 듯 답답할 따름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천향원 안에서.유진우가 초대받고 별장에 왔을 때 안에는 조선미 외에도 건장한 체구의 중년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그는 검은색 도복을 입고 근육으로 다부진 몸매에 양손 모두 굳은살이 박혀 있었는데 무예를 전공한 자가 틀림없었다.“진우 씨, 미안해서 어쩌죠. 이번에 또 진우 씨를 귀찮게 해드렸네요.”조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겨주었다.“친구끼리 별말씀을요. 게다가 그 사람들이 날 지목해서 오라고 했으니 피할 수도 없어요.”유진우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어제 조아영이 납치된 후 강천호 쪽 사람들이 유진우를 지명하며 함께 오라고 했다.“진우 씨, 제가 소개해드릴게요. 이분은 유강 씨, 조씨 일가 본부에서 파견한 최정예 무사예요.”조선미가 중년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만나서 반가워요, 유강 씨.”유진우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차분하게 말했다.“그쪽이 바로 유진우 씨인가요?”유강은 턱을 치켜세우고 유진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듣자 하니... 유진우 씨가 정윤, 세연 두 사람을 죽였다고 하던데 맞나요?”“그렇다고 하죠.”유진우가 머리를 끄덕였다.“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렇다고 하는 건 뭔가요? 왜 말을 얼버무려요? 설마 비겁한 수단이라도 썼어요?”유강이 의심 가득한 눈길로 쏘아붙였다.“무슨 수단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유용하면 그만이죠.”유진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거 참! 무예를 습득한 자는 정정당당해야 해요. 비겁한 수법으로 이기는 건 그다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에요!”유강이 경멸에 찬 눈길로 말했다.그는 유진우처럼 종파도 없고 정규적이지 못한 사람은 아예 그와 어깨를 견줄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유강 씨 말이 맞아요.”유진우는 반박하기도 귀찮았다.“솔직히 말하자면 정윤, 세연 두 사람은 전부 본인 손에 죽어 나갔어요!”유강이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근본도 없는 무인을 두 명 이겼다고 안하무인 격이 되면 안 되죠! 나 같은 고수를 만나봐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철저히
“유강 씨, 누가 함부로 나서래요?”조선미가 미간을 찌푸리고 살짝 불만 어린 표정으로 그에게 쏘아붙였다.그녀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유강이 제멋대로 가로채고 요구에 응할 줄이야, 위계질서라곤 전혀 없는 인간이었다!“선미 씨, 뭘 그렇게 두려워해요? 고작 이런 인간들은 저 혼자만으로도 가볍게 해결할 수 있어요.”유강은 자신감이 차 넘쳤다.정작 본인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만약 지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어요?”조선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농담도 잘하셔라. 제가 질 리가요? 이따가 두 눈 크게 뜨고 저의 쇼만 지켜보세요!”유강은 갖은 거만을 떨었다.“선미 씨한테 지금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이 바닥 룰대로 모든 재산을 걸고 베팅하거나 아니면 절반 산업을 내게 넘기고 아영 씨를 데려가거나 둘 중 하나예요.”강천호가 적절한 타이밍에 입을 열었다.“알았어요, 천호 씨 말대로 할 테니까 일단 내 동생부터 풀어줘요.”조선미가 차갑게 쏘아붙였다.그녀는 비록 함정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다행히 그녀 쪽에서도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다.“좋아요.”강천호는 거절하지 않고 곧바로 손짓했다.이어서 조아영이 밧줄에 묶인 채로 사람들에게 끌려 나왔다.모습은 초라했으나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다.“아영아, 괜찮아?”조선미는 곧바로 다가가 밧줄을 풀었다.“언니! 드디어 왔네. 나 이번엔 진짜 사고 안 쳤어. 강천호 저 인간이 일부러 날 함정에 빠트렸다고!”조아영은 속상한 얼굴로 말했다.“나도 알아. 일단 옆에서 쉬고 있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조선미가 머리를 끄덕였다.“선미 씨, 사람도 이미 풀어줬으니 우리 인제 계약서를 작성해야죠?”강천호가 손을 흔들자 곧바로 누군가가 종이 한 장을 보내왔다. 이는 마치 생사를 건 계약서를 방불케 했다.격투기 룰대로 지는 쪽에서 계약서 내용대로 이행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이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그렇게 격투기가 좋으시다면 제가 끝까지 함께해드리죠!”
그의 옷자락은 바람에 나부끼며 속세를 벗어난 듯 초탈한 기운을 뿜어냈다.보통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곧바로 무릎을 꿇고 선인을 외쳤을 것이다.슉!흰옷의 검객이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가던 중 갑자기 하얀 보검 하나가 땅에서 솟구쳐 오르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그 검은 마치 도전장을 내미는 듯했다.“누가 내 길을 막는 것이냐!”흰옷의 검객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검선 선배님의 검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들어왔습니다. 하여 후배가 가르침을 청하러 왔습니다.”이때 웃통을 벗은 준수한 청년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라 하얀 보검 위에 가볍게 발을 디뎠다.허공에 떠오른 청년과 검이 검선 백준과 마주 섰다.“네 놈은 누구냐?”백준이 청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후배 검종, 홍군림이라 합니다. 천 리 길을 달려와 검선 선배님께 몇 수 가르침을 청하고자 합니다.”준수한 청년 홍군림이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 그의 태도는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았다.“홍군림? 검종에서 천하를 누비며 다니는 자?”백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약간 놀란 기색을 보였다.“검종에서 절세의 천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보니 과연 소문대로네. 어린 나이에 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니... 유장혁 그 자식보다 낫구나.”“선배님, 과찬입니다.”홍군림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홍군림, 오늘 중요한 일이 있으니 정말 가르침을 청하려 한다면 다음 기회로 미뤄라.”백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다음을 기약하기보다 어렵게 만났으니 이번 기회에 부디 선배님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홍군림은 물러서지 않았다.“네 말은 일부러 날 막고 있다는 거냐? 설마 검종이 호룡각이 부리는 개가 된 것은 아니겠지?”백준의 얼굴이 서서히 차가워졌다.“제 행동은 검종과도, 호룡각과도 무관합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흥미일 뿐입니다.”홍군림은 담담히 대답했다.“저는 세 살 때부터 검을 익혀 검도의 극한에 이르렀습니다. 선배님의 검이 빠를지 제 검이 빠를지
“뭐라고?”부규환의 말에 유진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유진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만수는 서경에 머물면서 막대한 병력을 쥐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에는 실력 있는 고수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너희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호룡각의 세력이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서경왕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호룡각이 눈엣가시 같은 서경왕부의 존재를 참을 리가 없었다.호룡각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서경왕부를 상대하기에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다시 말해 유만수가 건재한 서경왕부의 세력은 절대 약화하지 않을 것이며 호룡각또한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세력이라는 뜻이었다.그러나 부규환의 말투를 보니 지금은 상황이 이미 많이 바뀐 듯했다.“도련님,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부규환이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호룡각은 10년간 치밀하게 준비해 왔습니다. 언젠가 서경왕부를 제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제 그날이 머지않았습니다.”“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거야!”유진우가 외쳤다.“도련님,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오늘 살아서 나갈 수 없을 테니까요.”부규환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흥! 나를 죽이려고?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야!”유진우가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아무리 숨겨둔 병력이 많다고 해도 나도 혼자 온 게 아니다! 지원군이 오고 있으니 누가 이길지는 두고 봐야겠지.”“도련님의 계획은 이미 호룡각에 간파되었습니다. 말씀하신 지원군은 아마 오늘 도착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의 도련님은 저희 수중에 들어온 먹잇감에 불과합니다.”부규환이 담담하게 말했다.“하하하, 유장혁!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겠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실력이 강하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겠구나!”문관옥이 참지 못하고 조소를 터트렸다.경천 랭킹 10위에 오른 강자가 직접 나섬과 더불어 10만 외성 군의 정예병을 내세웠으니 유장혁이 아무리 숨겨둔 비장의 수가 있다고 해도 마지막 발버둥
왜 무림에는 고수들이 넘쳐나고 강자가 끊임없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공무원과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는지를 사람들은 이제야 알았다.그 이유는 실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수십만 대군이 밀고 들어오면 설령 하늘을 찌르는 능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어떤 문파라도 관군의 정예 병력과 대적하게 되면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될 뿐이다.“포위하라!”명령과 함께 10만 대군이 안팎으로 유진우와 일행을 완전히 둘러쌌다.병사들은 각자 창과 칼을 들고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으며 살기 가득한 기운이 사방을 압도했다.“나는 옥면 군신 무관옥이에요. 팔방제후는 어디 있어요?”그 순간 무관옥이 앞으로 나와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초품 군신의 위엄을 지닌 그는 이품 고급 장교에게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처럼 느껴졌다.팔방제후로 불리는 실권자들도 무관옥의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그의 질문은 대답 없이 공허하게 메아리쳤고 병사들은 오직 무표정하게 대형을 유지하며 무관옥을 무시했다.“이게 무슨 일이죠? 당신들의 고급 장교 어디 있는 거예요?”무관옥은 불만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무관옥은 30만의 백호랑을 연경으로 보낼 수 없지만, 군신으로서 어떠한 고급 장교도 그를 보고 정중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군신님, 오늘 외성군의 지휘는 제가 맡고 있습니다.”그때 중앙 대열에서 하얀 옷을 입은 얼굴 창백하고 수염이 없는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노인의 키는 훤칠하고 체격은 마른 편이며 날카로운 음성이 다소 섬뜩하게 들렸다.“부 내관님?”부 내관을 본 순간 무관옥의 눈동자가 급격히 수축하였다. 좀 전까지 드러냈던 거만한 태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비록 관직은 높지 않지만, 그 지위는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그는 천자의 측근이자 대내 제1고수로 꼽히는 인물이고 경천 랭킹 10위에 오른 절정 고수 부규환이었다.“군신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문제는 이제 제가 처리하겠습니다.”부규환은 고개를 살
문관옥이 어찌 할 바를 몰라 할 때 발밑의 땅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그와 함께 약간의 ‘쿵쿵’ 소리가 들려왔다.“뭐야? 지진이 난 건가?”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무관옥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후방의 산림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수천, 수만의 병마들이 나타나 있었다.눈길이 닿는 곳마다 빽빽하게 가득 찬 병마들로 산과 들이 전부 뒤덮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거대한 병력은 하나로 합쳐진 단일 부대가 아니었다.오히려 여덟 개의 정예 부대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몰려들고 있었다.땅의 진동은 바로 이 여덟 부대가 달려오며 만들어낸 소리였다.“저거 봐요! 저게 뭐예요?”“맙소사! 엄청난 규모잖아요! 산 전체가 덮일 것 같아요!”“저기 깃발을 봐요. 우리 지원군인 것 같아요!”“뭐라고요? 지원군이 왔다고요? 정말 잘됐어요!”사람들은 상황을 자세히 살핀 뒤 크게 기뻐하며 외쳤다.너무나 강력한 힘을 지닌 유장혁을 그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더 많은 병력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했으며 그들이 바라던 대로 엄청난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사람을 압도하는 수적 우위로 유장혁을 포위하거나 아니면 절대 강자가 나서서 그를 제압해야만 했다.현재 이곳에 도착한 방대한 군력은 무려 10만에 달했다. 사람마다 한 개 기술을 써도 유장혁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하하...팔방제후에요! 팔방제후의 병력이 도착했어요!”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무관옥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연경에는 세 개의 주요 군사력이 존재한다. 첫째는 치안을 유지하는 성위군 둘째는 자금성 안에서 황족을 보호하는 금위군이다.그리고 셋째가 바로 외성에서 제8대 총수가 지휘하는 특수 군대인데 이는 연경의 안전을 지키고 반란이나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대이다.팔방 제후라고 불리는 이 총수는 높은 관직이 아니지만, 실제 권력은 거의 제1제후와 맞먹는다.그래서 이들은 종종 ‘팔방제후’라는 존칭으로 불리며 고위 관료들도 이들에게 함부로
“으윽!”전신 법상이 산산조각 난 순간 한비영은 마치 심각한 타격을 입은 듯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몸은 힘이 빠진 듯 휘청거렸다. 마치 기운을 전부 뺏긴 것 같은 모습이었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가...내가 졌다고?”한비영은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그는 늘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어떤 천재가 나타나더라도 그 앞에서는 빛을 잃었다.자신이 무적이라 믿었고 누구도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으리라 자부했다.그러나 오늘 한비영은 아주 처참하게 패배했다.천신사상결의 모든 기술을 남김없이 펼쳤지만, 결국 상대를 넘지 못했다.반면 유장혁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매 순간 정면으로 맞섰다.이번 싸움은 오직 절대적인 힘과 기술의 대결이었고 속임수 같은 건 없었다.결과적으로 한비영이 졌고 유장혁은 강력한 실력으로 천신사상결을 완전히 깨부수며 자신의 불패 신화를 끝장냈다.한비영은 자신이 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맙소사! 유장혁이 이겼다고요? 유장혁이 한비영을 이겼다고?”“천신사상결을 막아낸 사람이 있다니 이건 기적이에요!”“이게 바로 전설 속의 천재인가? 정말 두렵군요!”“...”유장혁이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유장혁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경악했다.한비영마저 이길 수 없다면 이들 중 유장혁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젠장! 천하회의 도련님이라는 사람인데 이런 망신을 당하다니!”문관옥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문관옥은 한비영과 유장혁이 서로 치명적인 상처 입기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한비영은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유장혁은 멀쩡한 상태였다.유장혁이 얼마나 숨겨온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천신사상결은 정말 대단한 기술이에요. 도련님께서 대 마스터 경지에 도달했다면 나는 이 기술을 막지 못했을지도 몰라요.”유장혁은 담담히 말
“왔다! 드디어 천신사상결의 최강 필살기가 나왔어요!”“전설에 따르면 전신의 분노를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죠. 오늘 우리가 그것을 직접 볼 줄은 몰랐어요!”“천신사상결에 의해 죽는다면 그 또한 유장혁의 명성에 어울리는 최후가 될 것 같아요.”“...”공중에 떠올라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낸 한비영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두려움과 경외심에 휩싸였다.천신사상결은 천하회의 종주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필살기로 무림의 5대 필살기 중 하나로 꼽힌다.사람들은 그저 소문으로만 들어왔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조금 전 보여준 세 가지 기술만으로도 이미 천지개벽할 정도였는데 이제 마지막 기술이 펼쳐질 순간이었다.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었다.“전신의 분노!”공중에 떠 있는 한비영이 갑자기 포효했다.순간 한비영의 몸에서 전신 법상이 폭발적으로 나타났고 순식간에 키가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거인으로 변했다.유진우는 그 발끝에서 마치 개미처럼 보잘것없어 보였다.마치 발을 한 번 내디디기만 해도 간단히 짓밟힐 것처럼 보였다.“검법 파장술!”한비영은 천천히 손을 들어 던지는 자세를 취하더니 거칠게 손을 아래로 내리눌렀다.그의 머리 위 거대한 법상 역시 똑같은 동작을 취했지만, 그 손에는 푸른 번개로 뒤덮인 거대한 창이 들려 있었다!“쿵!”번개 창은 마치 미사일처럼 유진우를 향해 내리꽂혔다.순식간에 천지가 뒤바뀌고 공간이 뒤틀렸다.극에 달한 공포스러운 위압감이 순식간에 온 사방을 덮쳤다.마치 하늘에서 신이 벌을 내려주듯 사람들을 공포와 전율로 몰아넣었다.번개 창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그 강력한 힘은 이미 대지를 붕괴시키고 바위를 산산조각 냈다. 백 미터 이내에 있던 풀과 나무는 모두 먼지로 변했다.멀리서 지켜보던 무사들은 겁에 질려 연신 뒤로 물러나며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강린!”번개 창이 내려오는 순간 유진우의 몸에 새겨진 강린 문신이 갑자기 빛을 발했다.검은 불빛이 그의 몸에서 터져 나와 거대한
허공에 드리운 거대한 형상은 온몸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뜨거운 열기는 대지를 녹일 듯 위협적이었다.“화신의 분노!”기운이 최고조에 달하자 한비영은 양손을 앞으로 세차게 밀어내었다.그의 등 뒤에 나타난 화신 또한 똑같이 손바닥을 내지르는 동작을 취했다.곧이어 새빨간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화염 용이 하늘로 솟구치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유진우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주작!”유진우는 기운을 전환하며 몸에서 뿜어져 나온 현청진기를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그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불꽃의 신조 주작이 모습을 드러냈다.“끼오!”주작은 커다란 날개를 힘차게 펼치며 수많은 불빛을 흩뿌렸다. 화살처럼 치솟아 오른 주작은 한비영의 용과 정면으로 충돌했다.“쾅!”굉음과 함께 두 거대한 존재는 격렬히 부딪혔다.주작은 폭발하여 수많은 불꽃 조각으로 흩어졌고 용 또한 흔적만 남긴 채 사라졌다. 두 사람의 대결은 다시 한번 무승부로 끝났다.이 결과를 본 한비영의 표정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세 번째 기술을 준비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한비영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배는 바다를 삼키는 고래처럼 부풀어 오르며 천지의 영기를 거칠게 빨아들였다.그 순간 그의 등 뒤에 검은 구름 같은 형상을 띤 신상이 나타났다.이 신상은 흉측한 얼굴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하고 있었다.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무사들은 공포에 질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기세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짓눌러왔다.“천둥의 분노!”한비영이 긴 함성을 내지르며 허공을 향해 강렬한 주먹을 내질렀다.그의 등 뒤의 천둥의 형상 또한 거대한 주먹을 휘둘러 유진우를 향해 내리쳤다.그 주먹은 마치 태산이 내려앉는 듯한 기세로 막강한 압박감을 뿜어냈다.“청룡!”유진우는 다시 한번 몸속의 현청진기를 뿜어내 머리 위에 푸른 청룡을 소환했다.푸른 용은 생동감이 넘쳤으며 비늘 하나하나가 빛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였다.용의 신비롭
“너희들 생각엔 한비영이랑 유진우 둘 중에 누가 더 셀 것 같아?”“만약 두 사람 모두 전성기 시절의 실력대로라면 아마 비등비등하지 않을까 싶은데. 결국은 누가 더 전략을 잘 짜느냐가 관건이겠지만.”“말도 안 돼! 당연히 한비영 도련님께서 훨씬 월등하시지! 유진우는 이미 한물갔어. 이제는 한비영 도련님께서 진정한 천하제일 천재란 말이야!”“나도 도련님께서 이기실 것 같아. 어쨌든 유진우는 방금까지 싸워서 체력을 다 써버렸으니 꽤 지쳤을 거야.”“...”대치 중인 한비영과 유진우를 바라보며 무인들은 귓속말로 여러 추측들을 주고받았다.두 사람 모두 알아주는 천재로서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이런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맞붙는다고 하니 그 누가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있으랴.물론 대다수는 한비영의 승리를 예상했다.한비영은 최근 몇 년간 천하에 이름을 떨치며 대단한 기세를 뽐냈고 자질로 봤을 때는 이미 무적이었다.그 반면, 유진우도 과거엔 알아주는 무인이었지만 지금의 한비영과 비교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그래, 싸워라, 싸워. 얼른 너희 둘이 싸우다가 둘 다 죽거나 크게 다쳐야 내가 얻는 게 있지.”문관옥은 두 사람을 조롱하는 듯한 냉소를 지었다.생사가 걸렸는데 아직까지 무슨 무림인들의 규칙을 지킨다고 설쳐대는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전략으로 상대의 빈틈을 노려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결투의 기본 상식이거늘.“유진우, 난 지금부터 천신사상결을 사용할 거다. 잘 사리는 게 좋을 거야.”“받아라!”한비영은 경고 한 마디를 마친 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그의 몸에서는 강렬한 기운이 폭발하더니 푸른빛의 잔상이 등 뒤에서 뿜어져 나왔다.그 잔상은 여섯에서 일곱 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로 마치 신마와 같은 위풍당당하고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었다.“세상에, 시작부터 천신사상결이라니. 아무래도 도련님께서 싸움을 한 번에 끝내실 생각인가 보구나!”“천신사상결이라니, 저건 천하에 위세를 떨친 기술이야. 신이 앞을
백발의 노인은 구세주를 본 듯한 표정을 지으며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경원종이 유명하다고는 해도 천하회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말도 안 될 정도였다.이미 2년 전부터 한비영이 대 마스터에 접어들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이런 절세의 천재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존재였다.“한비영 도련님이 나서주셨으니 이제 유진우도 도망치지는 못할 거야!”미모의 부인은 기쁨으로 두 눈을 반짝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망쳐야 하나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한비영이 와주었으니 이제는 마음 놓고 전투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한비영 도련님을 뵙습니다!”한비영이 땅으로 착지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공손한 인사를 건네며 존경을 표했다.“다들 물러나 계십시오. 이제 전투는 제가 맡습니다.”한비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네!”사람들 역시 큰 소리로 대답하며 양옆으로 물러서 자리를 내어주었다.위험을 피하면서도 공로를 나눌 수 있는 이 상황에 사람들은 기꺼이 옆으로 물러나 한비영의 실력을 구경할 준비를 마쳤다.“도련님, 유진우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혼자서 상대하시기엔 무리일 수도 있으니 같이 힘을 합치는 건 어떨까요?”“관옥 도련님,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는 혼자 싸우는 걸 좋아해서요. 그러니 도련님께선 잠시 쉬시는 게 좋을 겁니다.”“하지만 비영 도련님, 이번 일은 중대한 사안입니다. 만일의 사태를 위해 함께 싸우시는 편이 어떠신지요.”문관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왜 그러십니까, 도련님께선 이 한비영을 못 믿으신다는 겁니까? 설마 제가 유진우 하나 상대 못 할 것 같나요?”한비영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도련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우실 때가 아니라 임무가 우선입니다. 만에 하나 문제라도 생긴다면 도련님 혼자 책임을 지시기 버거울 겁니다.”문관옥이 경고하듯 말했다.“저는 무림인으로서 무림인들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겁니다. 도련님께서 책임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이봐요!”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