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은경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설연홍과 자신의 가슴팍에 꽂힌 칼을 내려다보는 은경의 얼굴에 충격과 경악이 가득했다.조금 전까지 배시시 웃던 후배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과감하게 칼로 찌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심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 어떤 징후도 없었다.“뭐야?”뜻밖의 상황에 유진우도 넋을 잃은 건 마찬가지였다.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라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설연홍은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게다가 과감하게 실행하기까지 했다. 정말 머뭇거림이라곤 전혀 없이 선배의 가슴팍을 쿡 찔렀다.‘잔인한 여자인 거야? 아니면 그냥 미친 여자야?’“왜... 대체 왜?”은경은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힘겹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경악과 분노, 그리고 원망이 가득했고 무엇보다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대체 왜 날 죽이는 거지? 설마 유진우의 한마디 때문에?’“선배님, 그런 눈으로 절 쳐다보지 말아요. 선배님도 들으셨겠지만 방금 명의님이 선배님을 죽이라고 해서 저도 난감했어요. 절 탓하진 않으실 거죠?”설연홍은 악의가 없었던 척했다.“너...”은경이 입을 벌리고 뭐라 얘기하려던 그때 갑자기 시뻘건 피를 토해냈다.“선배님, 이것 보세요. 제 옷이 다 더러워졌잖아요.”설연홍은 짜증 섞인 얼굴로 몸에 묻은 피를 툭툭 털더니 그녀의 가슴팍에 꽂힌 칼을 뽑았다. 그 순간 피가 콸콸 쏟아졌고 은경은 몸이 축 처지면서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옅어져만 갔다.“연홍 선배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은경이 갑자기 쓰러지자 가면을 쓴 한무리 여자들이 아연실색했다. 자기 편끼리 서로 죽일 줄은 정말 몰랐다.“너희들도 입 닥치고 있어.”설연홍은 손을 펼치더니 가면을 쓴 여자들을 향해 뭔가를 불었다.후!빨간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순식간에 그녀들을 전부 뒤덮었다. 미처 막을 새도 없었던 그녀들은 하나둘 바닥에 쓰러졌고 이청아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렇게 준비를 철저히 하고 방비해도 내부의 적은 막기
“명의님, 난 명의님을 위해 파벌도 배신하고 선배까지 죽였어요. 그렇게 얘기하는 건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요?”설연홍이 원망 섞인 얼굴로 말했다.“대체 뭐 하자는 겁니까?”유진우가 물었다.“쓸데없는 생각 말아요. 난 그저 당신과 친구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설연홍이 웃으며 말했다.“어찌 감히 당신의 친구가 되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뒤에서 칼로 찌를지 누가 알아요.”유진우가 직설적으로 말했다.“하하... 내가 어찌 귀한 명의님을 찌르겠어요. 찔러도 명의님이 날 찌르겠죠.”설연홍의 웃음이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말에 유진우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이 여자 보통이 아닌데?’“다른 일이 없다면 먼저 가볼게요.”더는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유진우는 정신을 잃은 이청아를 안고 가려 했다.“잠깐만요.”설연홍은 갑자기 약병 하나를 꺼내 유진우에게 건넸다.“이건 십향연근제의 해독약이니 마셔요. 안 마시면 후유증이 심해요.”“괜찮아요. 난 중독되지 않았어요.”유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중독되지 않았다고요?”설연홍은 순간 움찔했다.“그럼 아까 땀을 뻘뻘 흘리고 사지에 힘이 풀린 건 어떻게 된 거예요?”“당신들만 연기하라는 법이 있어요? 난 연기하면 안 돼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십향연근제의 약효가 강하긴 하지만 마스터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무사에게만 효과가 있었다. 무도 마스터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십향연근제가 거의 말을 듣지 않고 체내에 들어와도 스스로 쉽게 해독할 수 있다.“실력을 잘도 숨기고 있었네요? 나까지 속인 걸 보면.”놀라움도 잠시 설연홍은 저도 모르게 눈을 희번덕거렸다.“당신이 중독되지 않은 걸 알았다면 이렇게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은경 선배를 죽이지 않았을 텐데. 스스로 내 무덤을 파버렸네요.”“그쪽 호의는 감사히 받을게요. 이번에 신세 진 걸로 하죠.”유진우의 말투가 달라졌다. 어쨌거나 상대는 그를 도와주기 위해서였고 먼저 해독약까지 주었다. 이 마음을
이튿날 아침 이씨 그룹.이청아가 천천히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사무실 소파에 누워있었다.두꺼운 담요를 덮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유 한잔이 놓여있었다. 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어루만졌다. 하지만 어젯밤의 기억이 흐릿한 게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목이 마른 그녀는 우유를 단숨에 마셨다. 다 마시고 나니 속이 따뜻해졌고 불편하던 몸도 훨씬 나아진 것 같았다.“청아 씨, 깼어?”그때 유진우가 따끈따끈한 아침을 들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이청아는 바로 눈살을 찌푸렸고 표정도 싸늘해졌다.“당신 집이 어딘지 몰라서 회사로 데려왔어.”유진우는 도시락통에서 죽과 밑반찬 몇 개를 꺼냈다.“당신이 왜 여기 있냐고 묻잖아.”이청아가 퉁명스럽게 물었다.“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유진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어젯밤?”이청아는 기억을 천천히 더듬고 나서야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약을 쓴 바람에 정신을 잠깐 잃었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 사지가 묶여 꼼짝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를 납치한 사람은 그녀를 이용하여 유진우를 협박하려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다.“기억 안 나도 괜찮아. 마취제의 약효가 아직 안 빠져서 그래. 한동안의 기억이 뒤죽박죽될 거야. 일단 뭐 좀 먹어.”유진우는 따끈한 야채죽을 이청아에게 건넸다.“비켜. 당신의 그런 위선적인 관심은 필요 없어.”이청아는 그의 호의를 단칼에 거절하면서 죽을 바닥에 확 엎어버리고는 싸늘하게 말했다.“어젯밤에 날 구해줬다고 내가 고마워할 거라는 생각 하지도 마, 이 살인범아!”남동생이 죽은 지 며칠밖에 안 되었기에 아무 일이 없었던 척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청아 씨, 이현의 죽음은 정말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내저었다.“엄마와 이모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데 거짓말일 리가 있겠어?”이청아가 언성을 높였다.“그분들이 본 건 겉모습일 뿐이야. 진짜 내막이 어떤
여기는 30층이다. 뛰어내리면 몸이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그녀는 유진우더러 물러서게 하여 빨리 떠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좋아, 뛰어내릴게.”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돌아서서 돌진하여 창문을 깨부수고 30층에서 뛰어내렸다.“어...”이청아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방금 화가 나서 한 말일뿐인데, 상대방이 진짜 뛰어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진우 씨!”정신이 든 이청아는 큰소리를 지르고 깨진 창문으로 달려가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창밖에는 이미 유진우가 보이지 않았다.사람이라면 100미터 상공에서 뛰어내린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쿵.이청아는 다리가 나른해지더니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당신, 왜 이렇게 멍청한 거야, 왜 뛰어내렸어? 당신이 죽으면 난 어떡하라고, 난 어떻게 해야 해?”이청아는 울부짖으며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그녀는 방금 충동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유진우를 믿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상대에게 자살로 결백을 증명하게 한 것을 후회했다. ‘내가, 내가 진우 씨를 죽게 만들었어.’“진우 씨, 나 당신 믿어, 나 이제 당신 믿어. 그러니 빨리 돌아와, 돌아오란 말이야.”이청아는 슬픔을 못 이겨 소리 없이 울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랐다. 눈앞의 모든 것은 모두 거짓일 뿐 꿈에서 깬다면 유진우가 다시 그녀 앞에 설 수 있게 말이다.“다 내 잘못이야, 내가 당신을 죽게 만들었어. 동생도 죽고 당신도 죽었는데 내가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 기다려, 나도 금방 따라가 같이 있어 줄게.”이청아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창문 쪽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그 예쁜 얼굴 위에 확고함이 가득했다.“당신, 어디서 나랑 같이 있어줄 거야?”그때 갑자기 낯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순간 이청아는 벼락을 맞은 듯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돌렸
“됐어, 그만 울어. 나 아직 멀쩡히 살아있잖아.”유진우는 이청아의 등을 살살 두드리며 위로했다.두 사람이 이렇게 꼭 껴안는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상대방의 매혹적인 체향을 맡으며 가슴의 놀라운 탄력을 느꼈다. 유진우는 마음이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흥, 말할 낯짝이 있어? 방금 당신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이청아는 또 유진우의 가슴을 쳤다.“어쩔 수 없었어, 당신이 뛰어내리라고 했잖아.”유진우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뛰어내리라고 하면 뛰어내린다고? 그럼, 내가 똥 먹으라고 한다면 먹을 거야?” 이청아는 퉁명스럽게 물었다.“콜록콜록... 그건 고민해 볼게.”유진우는 난처해했다.“똥 먹는 건 고민해 보는데 뛰어내리는 건 모르겠다고? 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이청아는 검지를 펴서 유진우의 이마를 콕콕 찔렀다.“아까는 충동적이었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유진우는 서둘러 잘못을 인정했다.방금의 상황을 그는 모두 눈여겨보았다. 자신이 투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청아가 가슴이 찢어지 듯 울며 지어는 동반자살도 마다하지 않았다.놀라기도 하면서 그의 마음은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의 마음에서 자신의 무게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흥, 당신 목숨은 당신 것이니 당신 마음대로 해. 나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이청아는 눈물을 훔치고 다시 냉랭한 얼굴을 되찾았다.“그리고 나는 당신이 내 동생의 죽음과 무관하다는 걸 잠시 믿을게. 그렇다고 일이 끝났다는 건 아니야. 내 동생이 정확한 사유 없이 죽었으니 내가 반드시 범인을 잡아 복수할 거야.”“범인을 찾는 일은 나에게 맡겨, 이미 사람을 불러 조사했으니 곧 결과가 나올 거야.”유진우는 진지하게 답했다.감히 자신을 모함했으니 유진우는 쉽사리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누가 됐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너희 둘, 뭐 하는 거야?”그때 갑자기 가벼운 목소리가 문 앞에서 울렸다.뒤를 돌아보니 장경화, 장홍매, 단소홍 세 사람이 기세등등하게 걸
“딸, 도대체 저 녀석이 너에게 무슨 약을 먹였길래 네가 유진우를 그렇게 믿는 거야?”장경화는 놀라 하며 한편으로 화가 났다.그녀는 자기 딸이 이렇게까지 타락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한 남자 때문에 동생의 죽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인범을 벗어나게까지 하다니.‘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내가 진우 씨를 믿는 이유는 이 일에 의심 가는 점이 있기 때문이에요. 난 좋은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고 싶지 않아요.”이청아가 설명했다.“좋은 사람은 개뿔! 이 교활한 놈은 딱 봐도 좋은 놈은 아니니, 나는 오늘 반드시 유진우를 잡아갈 거다.”장경화는 다른 사람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소란을 피우며 손을 쓰려고 했다.“엄마, 좀 진정하면 안 돼요?”이청아는 계속 앞을 가로막으며 자신의 어머니를 막았다.“비켜!”장경화는 화가 치밀어 딸을 밀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이청아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몸으로 막아냈다.두 사람은 서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짝!이청아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화가 치밀어 오른 장경화는 갑자기 손을 들어 이청아의 뺨을 때렸다.“이청아, 너 도대체 뭐 하는 거야? 현이 시체가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넌 이 살인범이나 지키려 들다니, 네 양심은 개를 줬느냐? 현이는 네 친동생이야, 그런데 누나인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장경화가 눈을 부릅뜨고 크게 소리 질렀다.이렇게 클 때까지 딸을 때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늘이 처음이었다.“언니, 어찌 됐든 소란을 피웠으면 피웠지 자식을 때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상황이 심상치 않자 장홍매는 서둘러 원만하게 수습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청아 너, 너도 잘못했어. 다른 사람을 위해 네 엄마와 맞설 거야?”“그래요, 언니. 고집부리지 말고 얼른 비켜요.”단소홍이 옆에서 설득했다.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낀 이청아는 화를 내지 않고 도리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나 한 번만 믿어줄래요? 진우 씨에게 자신의 결백을
딩딩딩...염룡파로 돌아가는 길에 유진우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받아보니 황은아에게서 온 전화였다.“아저씨, 큰일 났어요! 우리 집에 문제가 생겼어요.”“문제? 무슨 문제?”유진우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정확한 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밖에 사람들이 많이 둘러싸인 데다 굴착기가 두 대나 있어요. 저희 집을 강제로 철거할 것 같아요.”황은아가 답했다.“감히 철거를 강행하다니. 정말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는군.”유진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시간을 좀 끌어봐, 내가 금방 갈게.”“안 돼요. 저 사람들이 이미 진행하고 있다고요.”그러던 중 황은아는 무언가를 본 듯 갑자기 깜짝 놀라 소리쳤다.“이 짐승 같은 놈들아, 감히 우리 아빠를 때려? 나 너희들이랑 끝장을 볼 거다.”“은아야, 흥분하지 마!”유진우가 황급히 설득하던 중에 황은아와의 전화가 끊겼다.상대방이 위험에 처한 것이 분명했다.유진우는 망설이지 않고 방향을 돌려 성중 마을로 급히 향했다.20분 뒤.성중 마을, 어느 2층짜리 작은 양옥 입구.황은아는 양손에 방망이를 잡고 혼자 맨 앞에 서서 가로막았다.지금 그녀는 온 얼굴에 땀이 나고, 숨이 차며 얼굴이 창백했다. 분명 힘이 달렸다.그녀의 발밑에는 이미 십여 명의 깡패들이 쓰러져 있었다.이 사람들은 모두 강제로 그녀의 집을 철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지만, 전부 그녀에게 패했다.하나둘씩 손발이 부러지고 땅에 누워 슬피 울부짖었다.나머지 건달들은 우왕좌왕하며 놀라서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시발, 이 계집애 왜 이렇게 강한 거야? 너무 센데?”“시발, 이게 무슨 고등학생이야? 분명 여패왕이 따로 없어.”몇몇 건달들은 낮은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표정은 험악했지만 눈에는 두려움이 더했다.그들은 평소에 행세하는 데 습관이 되었고, 사람이 많아 세력도 커서 무엇을 하든 순풍에 돛을 다는 격이었다.하지만 오늘 뜻밖에도 큰 걸림돌을 만날 줄이야.18살 여학생이 자신의 힘으로 그들 십여 명의 형제들을 직접 해치웠다.
“잘했어!”“강자 앞에서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놈들은 혼내는 게 마땅해.”황은아가 다 물리친 것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이들은 모두 인근에 사는 이웃으로 평소 이런 건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이제야 겨우 업신 당한 걸 푸는 느낌이었다.“은아야, 넌 너무 충동적이야. 이 사람들 때려서는 안 돼.”그때 황백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절뚝절뚝 걸어왔다.“왜 때리면 안 돼요? 저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히는데, 설마 나더러 화를 참으라는 거예요?”황은아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자신의 용감한 행동이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런 말을 들었다.“은아야, 넌 아직 어려서 사회의 험악함을 잘 몰라. 이 사람들 뒤에는 모두 후원자가 있어. 네가 저 사람들을 때리면 일은 더욱 악화될 뿐이야.”황백은 씁쓸한 얼굴이었다.“후원자가 있으면 어때요? 내가 무서워할 것 같아요? 게다가, 내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우리 집은 벌써 허물어 없어졌을 거예요.”황은아는 쌀쌀맞게 말했다.“돈과 재산은 모두 몸 이외의 것이야. 집이 없어지는 건 상관없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무사하면 되는 거야. 너 반드시 기억해야 해, 안전이 최우선이야.”황백은 노파심에 거듭 충고했다.“흥, 아빠는 매번 이렇게 겁이 많아서 일낼까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맞아도 반격 한번 하지 않아요. 그거 알아요? 사람이 선하면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약하면 약할수록, 다른 사람은 더더욱 업신여긴다고요. 아빠는 언제쯤이면 남자답게 굴 수 있죠?”황은아가 소리쳤다.“나는...”황백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아버지로서 딸이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설령 자신이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어이 거기, 생각 밖으로 싸움을 잘하네.”그때 차에 타고 있던 선글라스를 낀 청년이 갑자기 문을 열고 걸어왔다.그 뒤로 양복 차림의 우람한 덩치의 경호원 두 명이 따라붙었다.“너는 또 누구야?”황은아는 다시 방망이를 움켜쥐고 경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