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기습에 실패한 도규현은 유진우의 주먹을 맞고 튕겨 나갔다가 마침 도장수의 발 옆에 떨어졌다.복부에 피가 흘러넘치고 호흡이 점점 사라지는 도규현을 본 도장수는 노발대발하며 상을 탁 치면서 일어났다.“빌어먹을 놈이 감히 내 아들에게 중상을 입혀? 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혹시 눈이 멀었어요? 방금 날 기습한 건 그쪽 아들이라고요. 난 그저 내 몸을 지키고자 반격한 것일 뿐이고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헛소리 집어치워!”도장수가 분노하며 호통쳤다.“아직 승부가 가려지지 않았는데도 먼저 돌아서고선 기습이라니!”아들이 먼저 잘못하긴 했지만 이 상황에서 절대 인정해서는 안 되었다.“그래요. 그럼 승부가 채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정상적으로 공격한 건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유진우가 되물었다.“당연히 문제 되지. 이런 고의 상해야.”도장수가 흉악스럽게 말했다.“링 위의 결투에서 죽고 사는 건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규정이 있어요. 당신 아들이 다친 건 실력이 뒤떨어져서 그런 거예요. 옛 무세가라는 도씨 가문이 설마 지고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겠죠?”유진우가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너!” 도장수는 화가 치밀었지만 딱히 할 말은 없었다.“말에 가시가 돋쳐 있네?”그때 도민향이 갑자기 나서서 말했다.“큰아버지, 저런 놈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저놈이 규현 오빠의 단전을 망가뜨렸으니 오늘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요.”“맞아요. 우리 도씨 가문의 천재를 다치게 했으니 이대로 내버려 둬서는 절대 안 돼요.”“저 자식은 극악무도하고 인간성이란 추호도 없어서 이 세상에 남아있어봤자 해만 돼요.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그때 도씨 가문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마다 눈빛이 어찌나 흉악한지 당장이라도 유진우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도규현은 도씨 가문의 희망이자 무도 마스터가 될 기회가 있는 천재였다. 그런 그가 단전이 망가지고 지금까지 수련한 모든 걸 잃게 되었으니 도씨 가문에는 엄청난 충격이
그때 줄곧 침묵하던 황보용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도 족장님, 세간의 룰을 깨서는 안 됩니다. 링 위에 올라갔으면 죽든 살든 그건 본인의 역량입니다.”“하지만 저희 아들이...”도장수가 반박하려 하자 황보용명이 싸늘하게 째려보았다.“왜요? 설마 세상 사람에게 욕 얻어먹을 짓을 할 셈인가요?”“제가 어찌 감히...”도장수는 이를 꽉 깨물고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세간의 위신으로 보나 가족의 세력으로 보나 도씨 가문은 황보용명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도 족장님, 얼른 아들을 데리고 약신궁에 가보세요. 약신왕이 나선다면 다시 회복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황보용명이 귀띔했다.“여봐라. 당장 차 대기시켜.”그제야 정신을 차린 도장수는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아들을 안고 황급히 연무장을 뛰어나갔다. 그의 뒤로 도씨 가문 사람들도 따라나섰다. 지금은 복수보다 다친 곳을 치료하는 게 급선무였다.“젊은이, 잠깐 얘기 나눌 시간 있어요?”황보용명의 시선이 유진우에게 향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영광입니다.”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보용명과 함께 연무장을 나섰다.그들이 나가자 현장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저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오늘 결투는 정말 대박이었어요. 반전에 반전이 아주 재미있었다니까요.”“그러게나 말이에요. 스카이 랭킹 13위인 도규현이 무명인에게 패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만약 제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못 믿었을 거예요.”“오늘부로 염룡파 보스는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겠네요.”“어린 나이에 저 정도 실력을 지녔으니 당연하죠.”“저런 젊은 인재가 우리 청운종에 들어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그런 허황한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이미 우리 추풍파에서 데려오기로 했어요. 무슨 대가를 치르든 우리 제자로 들일 겁니다.”“하하... 우리 현무문은 아예 안중에 없어요?”“여러분은 이미 한발 늦었어요. 맹주님께서 벌써 선수 치셨습니다.”“젠장!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 선수 쳤다고
도씨 가문 대문 밖.마이바흐 한 대가 한무리 사람을 뒤로한 채 빠르게 달려 나갔다.“빨리 빠져나왔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젊은이와 얘기할 시간도 없을 뻔했어요.”황보용명은 고개를 돌려 조급해서 안달이 난 무사들을 보며 자신의 선견지명을 몰래 감탄했다.“그 정도인가요?”유진우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하하... 아직 자신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나 봐요?”황보용명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오늘 도규현을 이긴 것만으로도 젊은이의 실력과 천부적인 재능을 충분히 증명했어요. 강남 무림의 젊은 세대 중에서 젊은이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드물걸요? 지금 얼마나 많은 파벌에서 젊은이를 제자로 들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지 몰라요.”“이거 귀찮게 됐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겸손하게 있는 건데.”유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도규현에게 도전장을 내민 건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고 도씨 가문에 경고하기 위해서였는데 도씨 가문이 기세를 돋우려고 많은 사람까지 불러 관전하게 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국 도씨 가문은 제 발등을 찍었고 되레 유진우가 이름을 날렸다.“당신 꽤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남들은 이름을 날리고 싶어도 날릴 기회가 없는데 젊은이는 오히려 싫어하네요?”황보용명이 웃으며 말했다.“명성이 있다고 해서 돈을 벌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해지면 걸핏하면 사람들이 찾아와서 도전장을 내밀 거 아니에요. 이게 스스로 귀찮은 일을 자초한 거나 다름없죠.”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젊은 나이인데 명성을 중요시하지 않다니,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젊은이는 정말 적어요.”황보용명은 유진우가 점점 마음에 들었다.“맹주님, 듣기 좋은 소리 그만 하세요. 저는 큰 포부도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에요. 할 얘기 있으면 그냥 하세요.”유진우가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빙빙 돌리지 않을게요.”황보용명을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사실 젊은이와 무도 대회에 관해 얘기 좀 나누려고
유진우가 씁쓸하게 웃었다.“알았어요. 어차피 그냥 몇 판 싸우는 건데 출전할게요.”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다 문제 될 게 없었다.“좋아요. 그럼 나와 약속한 겁니다.”황보용명이 씩 웃었다.“맹주님은 은퇴하셨는데 왜 아직도 무도 연맹의 일에 신경 쓰십니까?”유진우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내가 몸은 비록 무도 연맹에 있지 않아도 마음은 여전히 무도 연맹에 있어요. 그리고 지금의 무림 맹주는 내 큰 제자예요. 큰 제자를 위해 인재를 끌어모으면 안 돼요?”황보용명이 웃으며 말했다.“성품이 고결하고 지조가 굳은 맹주님을 진심으로 탄복합니다.”유진우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예를 표했다.“됐어요. 그만 아부해요. 어디 가요? 데려다 줄게요.”“염룡파로 돌아가려고요.”...오후 시각 부운산의 약신궁.도규현은 창백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옥침대에 누워있었다. 흰 가운을 입을 몇몇 의사들이 조심스럽게 그를 치료해주었다.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도장수는 그저 안절부절못하며 옆에 서 있었다. 하지만 치료하는 데 방해될까 봐 감히 소리도 내질 못했다.한참이 지난 후 드디어 도규현의 찢어진 상처를 전부 다 꿰맸다.“동장로님, 우리 아들의 상태는 어떠합니까?”치료를 마치자 도장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다행히 제때 모셔와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동장로는 옷소매로 흐르는 땀방울을 쓱 닦았다.“너무 다행이네요.”도장수는 한시름을 놓다가 이내 다시 캐물었다.“생명에 지장이 없다면 무도 수련은요? 영향이 있나요?”“그게 지금 가장 큰 문제예요.”동장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아드님의 단전이 심각하게 망가져서 다시 예전의 상태로 회복하는 건 불가능해요. 무도 수련도 더는 안 되고요.”“네? 어떻게 이럴 수가...”도장수의 낯빛이 확 굳어졌다.“동장로님의 의술이 뛰어나시잖아요. 제발 다른 방법 좀 생각해 주세요. 돈이 얼마가 들든, 무슨 대가를 치르든 우리 아들만 치료할 수 있다면 다 상관없어요.”“족장님, 재능이 모자라고
그날 저녁 염룡 무관의 2층 사무실.“보스, 오늘 정말 멋있었습니다. 도씨 가문의 체면을 짓밟아버렸을 뿐만 아니라 염룡파의 명성도 널리 알렸어요. 지금 염룡파의 천여 명의 제자들이 보스를 얼마나 우러러보고 존경하는지 몰라요.”홍길수는 유진우에게 차를 따르며 끊임없이 아부했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입이 다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전에는 유진우가 패하여 도씨 가문이 복수할까 봐 조마조마했었지만 이젠 완전히 전세가 바뀌었다.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상황에서 도규현을 압승할 정도로 유진우의 실력이 대단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단 한 번의 결투로 유진우는 이름을 떨쳤다.“됐어. 그 말만 벌써 팔백 번은 더 들었겠다. 다른 새로운 건 없어?”유진우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그가 돌아오고 나서부터 홍길수는 아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머리에 떠오른 칭찬이란 칭찬은 전부 다 쏟아낸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요염한지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유진우를 유혹하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새로운 거요? 알겠어요.”홍길수는 잇몸을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보스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후부터 적지 않은 엘리트 고수들이 몰려와서 우리 염룡파에 가입하겠다고 했어요. 제가 아까 봤는데 하나같이 실력이 뛰어나더라고요. 조금만 더 훈련한다면 우리 염룡파의 튼튼한 기둥이 될 것 같아요. 이 기세로 계속 이어간다면 3년 이내에 염룡파가 서울의 최고 자리에 앉을 거라 확신합니다.”그의 말에 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건 좋은 소식이구나. 하지만 이것만은 명심해. 염룡파가 부족한 대로 놓아둘망정 인품이 나쁜 사람은 절대 들여선 안 돼.”염룡파가 발전할수록 유진우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확장해서는 안 되고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 안 그러면 쉽게 내란이 일어날 수 있다.“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보스. 그쪽은 제가 잘하잖아요. 사람인지 귀신인지 척 보면 알아요.”홍길수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이 복잡한 세간에서 수년 동안 버텨온 그는 재간
“증거? 어디 있어?”이청아가 화들짝 놀랐다.“증거를 항상 갖고 다녀.”유진우는 미리 준비하기라도 한 듯 증거 두 개를 꺼내놓았다.“이건 부검 결과서인데 이현이 누군가 탄 독에 사망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 그리고 이 검은 침이 바로 살인 흉기야.”“뭐?”이청아는 의문 가득한 얼굴로 자세히 살펴보았다.“만약 내 말을 못 믿는다면 직접 사람을 찾아서 알아봐도 돼.”유진우는 한마디 더 보탰다. 비록 증거가 있어도 아직 범인을 찾지 못했기에 상대를 설득하는 건 조금 어려웠다.“그럴 필요 없어. 난 당신을 믿어.”이청아의 표정이 무척이나 복잡해 보였다.“사실 당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오해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어.”“정말 다행이야. 당신이 그렇게 생각해서...”유진우는 씩 웃어 보였다.“오해해서 미안해. 하지만 이해해줘. 나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 이현이 그렇게 죽고 나서 정말 힘들고 막막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리고 당신을 잃을까 봐 두려웠고 우리 둘이 원수가 될까 봐 두려웠고... 또 더는 기댈 곳 없이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웠어. 나...”이청아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히더니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물을 뚝뚝 흘려도 유진우의 눈에는 예쁘기만 했다.“괜찮아. 다 지나간 일이야.”유진우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그의 토닥임에 이청아는 순간 마음이 무너져내린 듯 유진우의 품에 와락 안겨 엉엉 울었다.심하게 흐느끼는 바람에 어깨마저 떨렸고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오랫동안 꾹꾹 참아왔던 감정이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폭발해버렸다.“어휴...”유진우는 한숨을 푹 내쉬고 이청아를 꽉 끌어안더니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그래, 마음껏 울어... 울면 한결 나아질 거야... 아 참, 비밀 하나 알려줄게. 사실 내가 당신 동생을 죽인 게 맞아.”“뭐?”이청아의 몸이 굳어지더니 고개를 들고 경악한 얼굴로 쳐다보았다.“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
“당... 당신 뭐 하는 짓이야?”이청아의 표정이 급변했고 미친 듯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가슴이 실로 매력적이었다.“당신 장난하는 거 좋아하잖아. 내가 끝까지 놀아준다니까?”유진우가 냉랭하게 말했다.“미친놈, 당장 멈추지 못해?”이청아가 성을 냈다.“언제까지 연기할 셈이야? 얼굴 가죽이 다 떨어졌는데 몰랐어?”유진우가 말했다.“뭐?”이청아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무심결에 얼굴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이리저리 어루만지다가 그제야 상대에게 들켰다는 걸 깨달았다. 어루만지든 만지지 않든 이 행동만으로도 가짜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내 연기가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벌써 들킬 줄은 몰랐네.”정체가 들통나자 ‘이청아’ 는 더는 숨기지 않고 손으로 가면을 힘껏 벗겼다.이청아는 사라졌고 그 대신 한 낯선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안색은 어디가 아픈지 창백했다. 특히 두 눈에 독기가 가득하고 음험한 게 전형적인 악녀였다.“당신 누구야? 왜 청아 씨인 척하는 건데?”유진우가 싸늘하게 물었다.“내 답을 듣기 전에 내가 이청아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부터 말해.”여자는 그 답이 궁금했다. 스승에게 전수받은 그녀의 역용술은 용모와 골격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어 웬만하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본인과 비슷했다.100%까지 똑같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싱크로율이 90%는 되었다.이 정도가 된다면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짧은 시간 내에 알아차린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여 그녀를 만나자마자 어떻게 가짜라는 걸 구별해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당신의 역용술이 뛰어나긴 해. 외모로만 본다면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몇 가지 간과한 게 있어. 첫째, 청아 씨는 향수를 쓰지 않아. 하지만 당신 몸에서는 옅은 향기가 나. 그리고 둘째, 청아 씨는 고집이 세서 남을 함부로 믿지 않아. 이 증거들로는 청아 씨를 설득하기 어려워. 방금 당신은 지나치게 감정을 호소했어. 나의 경계를 늦추려 일부러 그런 거겠지. 마
한무리 가면을 쓴 여자들이 칼을 뽑아 들고 이청아의 목을 겨누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피부를 스쳐 시뻘건 피가 흘러내렸다.유진우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경우 이청아의 목숨을 끊어버릴 기세였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결국 하는 수 없이 손을 풀었다.상대 인원이 너무 많이 이청아의 목숨으로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었다.“진작 이럴 것이지.”은경은 목을 비틀며 이미 승기를 잡은 것처럼 말했다.“유진우, 스승님이 당신을 눈여겨본 건 당신의 영광이야. 지금 고개만 끄덕이면 앞으로 우린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 하지만 거절한다면 당신이 죽는 건 물론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 전부 다 죽게 될 거야.”“꼭 그렇게 끝까지 몰아붙여야겠어?”유진우가 서늘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스타일이 늘 이래. 당신 같은 천재를 얻을 수 없다면 죽여야지.”은경이 말했다.“고작 당신들 주제에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유진우가 되물었다.“하하... 당신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나도 아무 준비 없이 오지 않았어.”은경이 싸늘하게 웃었다.“방금 당신이 마신 차에 십향연근제를 넣었어. 이 독은 색깔도 냄새도 없어. 일단 중독되면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진기조차 쓸 수 없게 돼. 시간을 보니까 곧 발작할 것 같은데?”“십향연근제?”유진우의 표정이 급변했다.십향연근제는 10대 기이한 약 중 하나였는데 사람에게 해로운 독성은 없으나 수많은 무사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진기를 봉인하고 근육과 뼈를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이 두 가지 특징만으로도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다만 이 기이한 약이 이젠 거의 사라졌는데 은경의 손에 남아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해독약 이리 내.”유진우는 손을 내밀어 은경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비틀거리더니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이마에 저도 모르게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십향연근제는 당신 같은 무도 고수를 제압하기에 아주 딱이야. 당신이 기운을 끌어모을수록 약효가 더 빨리 퍼져.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