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폐인 따위가!”조선미는 울화가 치밀어 장 교수의 멱살을 잡고 으름장을 놓았다.“그러게 내가 침을 빼지 말랬잖아. 기어코 빼더니 끝내 이 사달을 내! 너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아니요, 이건 저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저도 최선을 다했다고요.”장 교수가 고개를 내저으며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아참, 그 돌팔이 때문이에요. 그 돌팔이가 함부로 침을 놔서 어르신을 해쳤어요!”“찰싹!”조선미는 장 교수의 뺨을 한 대 갈겼다.“X발, 개 같은 놈! 본인이 멍청한 것도 모르고 남 탓하려고 해? 경고하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너 절대 가만 안 둬! 껍질을 다 발라버릴 거야!”장 교수는 순간 사색이 되었다.조씨 일가의 실력으로 그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무슨 일이죠?”바로 이때 유진우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다만 그는 안색이 어둡고 입과 코에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어르신을 보더니 미간을 확 찌푸렸다.“침을 빼지 말라고 했잖아요! 왜 말을 안 듣는 건데!”유진우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진우 씨, 아까는...”조선미가 해명하기도 전에 장 교수가 불쑥 앞으로 다가오더니 유진우의 멱살을 잡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너였어? 야 이 자식아, 그렇게 침을 놓으면 어떡해! 네가 함부로 치료한 탓에 어르신이 위태로워진 거야, 알아? 네가 어떻게 책임질지 제대로 지켜볼 거야!”드디어 죄를 뒤집어쓸 자가 나타났으니 장영호는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보아하니 당신이 침을 뺐겠네?”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래, 나다. 어쩔래?”“아니야, 아무것도. 그저 당신같이 능력 없고 책임을 회피할 줄밖에 모르는 뻔뻔스러운 인간들이 대체 어떻게 의사가 됐는지 몹시 궁금했거든!”“너...”“그 입 닥쳐!”조선미가 장 교수를 밀치고는 재빨리 유진우를 병상 옆으로 끌고 갔다.“진우 씨, 지금 상황이 위급해요. 어서 할아버지부터 구해주세요!”“선미 씨, 이 녀석은 돌팔이라 아무 실력 없어요.
“깼어, 정말 깼다고?!”갑자기 깨어난 조 어르신을 보며 모두가 다시 충격에 빠졌다.그들은 기기의 각종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된 걸 확인하자 입이 쩍 벌어졌다.전문 의료진도 속수무책이었던 난치병을 젊은 의사가 치료하다니, 이는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우와! 할아버지 드디어 깨셨네요!”어르신의 안색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조아영은 기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줄곧 조마조마해하던 조선미도 드디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진우 씨, 이 은혜를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네요. 앞으로 진우 씨를 저희 가문의 손님으로 극진히 모시겠습니다!”그녀는 정중하게 허리 숙여 경례를 올렸다.“아닙니다, 선미 씨. 뭐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그의 겸손한 말투가 장 교수에겐 가시처럼 콕콕 박혔다.그들이 갖은 심혈을 기울여도 치료하지 못한 병을 상대는 정작 별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한다!이보다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이봐요, 거기! 지네는 어떻게 된 일이죠? 우리 할아버지 몸속에 왜 그딴 게 들어있냐고요?”조아영이 불쑥 물었다.“이건 보통 지네가 아니라 인공 재배한 독충이에요.”유진우가 문득 어르신께 물었다.“어르신 혹시 최근에 외지에 다녀오시지 않았나요? 혹은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다던가요.”“맞아요. 며칠 전에 서울에 있는 연회에 참가했다가 술도 조금 마셨어요.”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제 예상이 맞는다면 누군가가 어르신께 독충을 탄 것 같아요.”유진우의 말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독충을 탔다고요?”어르신도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다른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봤다.어찌 됐든 그의 말이 충격적인 것은 사실이니까.“헛소리 그만 지껄여! 독충을 타다니? 제발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 내가 볼 때 어르신은 지네 알을 잘못 드신 게 틀림없어!”장 교수가 입을 나불거렸다.“장 교수라고 했나? 한 가지만 물을게. 일반적인 지네 알이 인간의 체내에서 생존할 수 있어? 무식한 건 죄
그 시각, 도로를 달리는 실버색 벤틀리 안에서.“진우 씨, 할아버지를 구해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저희 가문의 청룡 카드를 드립니다. 달갑게 받아주세요.”조선미가 금테를 두른 블랙 카드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이 카드를 소지하고 있으면 진우 씨는 앞으로 우리 가문의 귀빈이 되실 겁니다. 조신 그룹 산하의 모든 산업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요.”“선미 씨, 제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에요.”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그냥 저의 소소한 마음이에요. 안 회장이 말씀하신 용심초는 내일 바로 분부해서 댁으로 가져다드릴 겁니다.”조선미가 웃으며 말했다.“선미 씨, 역시 통쾌하시네요. 그럼 넙죽 잘 받겠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청룡 카드를 건네받았다.조선미가 선뜻 내민 물건은 절대 초라한 물건이 아닐 것이다.“끼익!”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 기사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길옆에 세웠다.“죄송해요, 대표님. 그 사람들이 저를 협박했어요!”기사는 뜬금없이 이 한마디만 남긴 채 부랴부랴 도망쳤다.그와 동시에 검은색 대포차 두 대가 갑자기 나타나 앞뒤로 벤틀리를 막아버렸다.이어서 차 문이 열리고 얼굴을 가린 채 손에 몽둥이를 든 십여 명의 사람이 기세등등하게 뛰어왔다.맨 앞장선 사람은 대머리에 뚱뚱한 남자였다.“조선미 씨, 저희 사장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함께 가시죠.”대머리 남자가 칼을 들고 한쪽 발로 차 덮개를 디디며 말했다."간이 단단히 부은 모양이네. 지금 감히 내 차를 막은 거야?"조선미는 당황해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었다.“경호원들이 전부 옆에 있으면 저희도 감히 나서지 못하겠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전부 병원에서 조 어르신을 경호하고 있네요. 옆엔 고작 앳된 남자만 한 명 데리고 있으니 이런 절호의 기회를 우리가 놓칠 리가 있겠어요?”대머리 남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생각보다 머리는 좀 쓰네. 내 기사를 매수할 줄도 알고 말이야. 하지만 나 진짜 너무 궁금
“네?”유진우는 표정이 확 얼어붙었다.조선미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할 줄이야.그녀의 아름다움은 이청아의 차갑고 도도한 아름다움과는 또 달랐다.농염하고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그런 아름다움이었다.웃을 때 혼을 쏙 빼놓을 것 같은 눈매가 유난히 매력적이었다.간단히 말하자면 타고난 여우상이라 유혹을 뿌리칠 남자가 얼마 없다.“꺄르륵... 장난 좀 친 거예요. 뭘 이렇게 식겁해요?”조선미가 자지러지게 웃자 가슴팍의 새하얀 속살이 끊임없이 흔들리며 시선을 강탈했다.유진우는 입꼬리가 씩 올라가 재빨리 눈길을 피했다.이 여자는 너무 유혹적이라 볼수록 머리가 아찔거렸다.“진우 씨, 그건 그렇고 아마 또 한 가지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조선미가 웃음기를 거두고 말했다.“무슨 일인데요?”유진우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알다시피 내 경호원들은 병실을 지키고 있어요. 주변에 경호해 줄 사람도 없고 또 마침 날 노리는 자들이 생겨 위험한 처지에 이르렀네요. 그래서 말인데, 진우 씨가 날 24시간 보호해 줄 수 있을까요?”조선미가 그에게 부탁했다.“보호요?”유진우는 미간을 들썩거렸다.“선미 씨가 안전한 곳을 찾아 숨어있는 게 더 나을 텐데요?”“아직 모르시나 본데 저희 가문에서 오늘 밤 매우 중요한 자선 파티를 열어요. 주최인으로서 제가 빠질 수 없어요. 만에 하나 중도에 소란이라도 피우면 연약한 제가 감당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용심초를 봐서라도 제가 봉변을 당하는 걸 원치 않겠죠?”조선미가 요염하게 눈을 깜빡이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그건...”유진우는 2초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머리를 끄덕였다.“좋아요.”살짝 번거롭긴 하지만 용심초를 위해서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용심초에 그 어떤 변고도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녀의 부탁을 들어 준 것이다.“고마워요, 진우 씨.”조선미가 입꼬리를 씩 올리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보호는 핑계고 주요하게 유진우가 몹시 궁금해졌다....황혼 무렵 봉황루.강능에서 유명한 중식당 봉황루
“아... 이 대표님이시구나. 뭐 하실 말씀이라도?”이청아를 본 유진우가 흠칫 놀라더니 이내 차갑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그냥 지나가다가 보이길래 인사나 한 번 하려고 왔어.”이청아는 본래 설명하려고 했던 말을 그대로 삼켜버렸다.유진우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엄마의 말을 그녀는 전혀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일 줄이야. 두 사람은 이미 이혼한 사이였으나 한때 남편이었던 사람이 이렇게나 빨리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 영문 모를 불편함이 몰려왔다.“진우 씨, 친구분이세요?”조선미가 넌지시 물었다.여자의 민감한 직감으로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상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적의를 말이다.“전처예요.”유진우가 대답했다.“네?”순간 조선미가 눈썹을 치켜들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조선미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그녀가 친절히 손을 내밀었다. 그 살짝 올라간 아래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의 압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네. 안녕하세요.”이청아가 예의를 차리며 대답했다.그녀는 자신감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그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선미가 자신을 압도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이 여자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몸매, 얼굴, 분위기 어느 곳 하나 빠지는 곳이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인 절세미인이었다!남자라면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끌리게 될 것이다.“유진우, 나 예전엔 왜 이 친구분을 본 적이 없었지?”이청아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네가 예전에 나한테 관심이 있기라도 했어?”유진우가 담담히 물었다.그 말에 이청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유진우가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받아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유진우, 난 그냥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몇 초간 침묵한 뒤 이청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무슨 얘기?”유진우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여기에선 말하기가 좀 그래. 날 따라와.”
“아가씨, 아직도 못 알아들은 거예요? 저 자식은 사기꾼이라고요! 저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건 아가씨한테 하나도 도움이 안 돼요!”자신의 말이 아무런 효과도 나타내지 못하자 양의성은 확연히 조급해 보였다.그는 저토록 아름다운 여자가 유진우 때문에 망가지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이봐요! 오지랖 좀 그만 부려요! 내가 누구랑 어울리든 무슨 상관이에요!”조선미도 이제 인내심의 한계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당신...”양의성은 답답함에 피까지 토해낼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어찌 저토록 멍청할 수 있단 말인가? 속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사기꾼을 두둔하고 나서다니. 반반한 얼굴이 그토록 대단한 거란 말인가?“양 도련님, 저런 여자는 속아도 싸요. 좋은 마음으로 충고해 줬음에도 받아들이지 않는 건 본인 문제죠. 본인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도 모르고 오히려 역정을 내다니!”옆에 있던 장 비서가 말했다.“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좋은 사람이 되기도 쉽지 않네!”양의성이 질투심에 시뻘게진 눈으로 씩씩거리며 말했다.“당신들 알게 된 지 꽤 오래됐죠?”돌연 이청아가 물었다.조선미의 태도를 보니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을 나누었음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어떻게 저토록 단호하게 유진우의 편을 들 수 있단 말인가?“시간이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우리 두 사람이 지금 같은 마음이라는 거죠.”조선미가 빙긋 웃더니 자신의 풍만한 가슴으로 유진우의 팔을 비볐다. 마치 유진우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는 듯 말이다.그 모습을 본 이청아의 눈빛이 더 차갑게 얼어버렸다.조선미가 일부러 자신을 자극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쾌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아가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유진우, 뒤로 호박씨를 까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 이혼하기도 전에 이미 돌아갈 곳을 만들어 놓은 거였다니. 네가 널 너무 얕잡아봤네!”이청아가 애써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이혼을 요구한 일 때
봉황루에 들어간 뒤에도 장 비서는 여전히 화가 나 씩씩거리고 있었다.“흥! 저 여자 외모는 봐줄 만한 것 같은데 눈은 정말 삐엇나봐요. 유진우 같은 쓰레기를 마음에 들어 하다니요.”“그러니까 말이야. 그 얼굴과 몸매가 아까워!”양의성도 탄식을 내뱉으며 말을 보탰다.외모와, 재력, 그리고 능력까지 모두 구비한 그는 대체 왜 그런 완벽한 여자를 얻지 못한단 말인가?“됐어요. 그 얘긴 이제 하지 말아요. 우린 오늘 일하러 온 거예요.”이청아가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장 비서, 가서 오늘 밤 조씨 가문의 파티를 누가 진행하는지 알아봐.”“제 친구가 마침 이곳에서 일하는데 전화를 걸어 물어볼게요.”장 비서가 대답을 마친 후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얼마 후 그녀가 돌아와 말했다.“대표님, 알아 왔습니다. 오늘 밤 자선 파티는 조 회장님이 직접 진행하신다고 합니다. 누가 그분을 도와 함께 일하는지는 회장님의 마음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조 회장님? 설마 그 비지니스계 여왕?”순간 이청아의 눈빛이 반짝였다.조 여왕의 명성에 대해 이청아는 익히 알고 있었다. 여자의 몸으로 오직 실력으로 강능 모든 남자들을 발아래에 두고 강림했다. 그러한 존재를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아직까지 조 여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장 비서, 친구한테 다시 물어봐. 우리와 조 회장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추진해줄 수 있는지 말이야.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이청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제가 말해볼게요. 하지만 될 거란 보장은 없어요.”장 비서가 말했다.“그래! 그럼 부탁해. 일이 잘되면 장 비서의 친구에게 톡톡히 보상해줄게!”이청아의 마음속에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조씨 가문과 협력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건 그녀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만약 사전에 조 회장과 만남을 갖는다면 그녀는 반드시 상대를 설득해 인정받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봉황루는 점점 더 많
그때, 파티장의 분위기는 이미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무대 위에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무용수들이 아리따운 자태를 뽐내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은 미소, 몸짓 하나하나 모두 우아함을 자아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무대 아래엔 고급스러운 정장을 차려입은 사회적 유명 인사들이 와인잔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다.유진우도 빈자리를 찾아 앉아 음료를 마시며 무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어이! 유씨! 너 진짜 기어들어 왔네?”한창 흥미진진하게 공연을 보고 있을 때, 옆쪽에서 삐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양의성과 이청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정말 짜증 나네요. 왜 가는 곳마다 저 사람이 있는 거예요?” 이청아는 말 대신 차갑게 그를 쳐다보고는 앞줄 빈자리에 자리를 잡았다.“유씨, 곧 자선 경매가 시작될 거야. 너 돈 있어? 감히 이 자리에 앉아?”양의성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돈이 없으면 못 앉아?”유진우가 반문했다.“잘 알고 있네. 돈이 없으면 앉을 수 없어! 뻔뻔하게 돈 한 푼 안 내고 먹고 마시는 너 같은 놈이 우리와 함께 앉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양의성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들었어요? 들었으면 당장 일어서서 우리한테 자리를 양보해요.”장 비서가 의자를 툭툭 차며 말했다.“그러기 싫다면?”유진우가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싫다고요? 그럼 경비원이라도 불러서 쫓아내야죠!”장 비서가 협박했다.“그럼 어디 한 번 해봐.”유진우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좋아요! 이건 다 당신이 자초한 일이에요. 창피를 당해도 날 원망하면 안 돼요!”장 비서가 팔을 들어 사람을 부르려고 한 순간, 이청아가 그녀를 제지했다.“됐어. 그냥 앉으라고 해.”“대표님?”장 비서가 이마를 찌푸렸다.“제 몸 간수나 잘해.”이청아가 담담히 말했다.“흥! 운 좋은 줄 알아요!”장 비서가 다시 한번 유진우를 쏘아보고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그때 돌연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장 비서의 얼굴이
전에는 경원종이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방금 경원종 고수가 쓰는 진법을 보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경원종이 명불허전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채 종주님, 경원종의 오행 진법을 보니까 정말 눈이 번쩍 트이네요. 우리가 도울 필요도 없어 보여요. 경원종 혼자서도 유진우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요!”노윤하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와 채지웅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공로를 빼앗을 수 있을꺼 생각했었는데 사호문 문주가 죽고 나니까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유진우도 정말 대단하긴 해요. 오행 진법을 쓰지 않았더라면 감당할 수 없었을 겁니다.”채지웅은 두 손을 짊어지고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물론입니다. 그래도 오행 진법에 의해서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만할 수 있어요. 그만큼 그자가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는 의미니까요.”도금칼과 이화검 모두 유진우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그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증명하기에 충분했다.오행 진법이 변화무쌍한 진법이어서 다행이었다. 하늘과 땅의 힘을 빌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채 종주님, 공로를 세우셨으니 돌아가시면 반드시 큰 상을 받게 될 겁니다. 그때 가서도 저희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노윤하가 요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노 교주님 걱정 마세요. 저희 경원종이 상을 받게 된다면 비연교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채지웅은 들뜬 마음으로 직접 다짐했다.“채 종주님께 감사드립니다.”노윤하가 공손하게 말했다.두 사람이 승리를 축하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돌멩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돌멩이들은 온 지면을 뒤덮으며 굉음을 냈다.순간, 산더미처럼 쌓인 돌덩어리가 폭발하는 것이었다.누군가가 돌멩이들 사이로 날아올라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었다.그는 수십 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르고 나서야 다시 천천히 바닥에 착지했다.아니나 다를까 흙을 헤치고 나온 유진우였다.“뭐? 안 죽었다고?”조금도 다치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다섯 자루의 검을 보면서도 유진우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손바닥을 살짝 들어 올려 위로 치켜올릴 뿐이었다.쾅!강력한 에너지가 손바닥에서 폭발하더니 빠른 속도로 그 이화검들을 삼켜버렸다.펑!다섯 발의 폭음과 함께 다섯 개의 이화검이 폭죽처럼 동시에 터지며 하늘의 불꽃이 되어 바람에 흩날려갔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채지웅이 깜짝 놀라면서 중얼거렸다.나머지 경원종 고수들도 서로 마주 보며 놀라워했다. 이화검의 순발력과 파괴력은 도금칼보다 훨씬 뛰어난 데다가 그들은 방금까지 전력을 다해서 그를 공격했기 때문이었다.그들의 예상대로 유진우가 이 살인을 막아냈더라도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하지만 유진우는 멀쩡할 뿐만 아니라 이화검의 공격도 손쉽게 피했으니 말이다.그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계속해! 마법진 변경!”채지웅은 깜짝 놀랐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오행 진법은 변화무쌍하여 7가지 공격방법이 있었다. 이화검도 안 되면 또 다른 공격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그는 유진우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약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곤지함!”채지웅은 손목을 바들바들 떨면서 황토색 부적 한 장을 꺼내 바닥으로 내리쳤다.나머지 고수들도 그를 따라서 부적을 바닥에 내던졌다.펑!황토색 부적 다섯 장이 땅에 떨어지면서 폭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유진우가 서 있는 지면이 갑자기 움직이더니 빠른 속도로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우 주위 10미터 반경의 땅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더니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유진우는 반응할 틈도 없이 깊은 구덩이에 빠져버렸다.“곤산붕!”그 순간, 채지웅은 즉시 진법을 바꿔버렸다.그는 방금 생긴 깊은 웅덩이를 빠른 속도로 메꿔버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유진우는 완전히 생매장당했다.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경원종 고수를 지휘하며 진법으로 큰 바위들을 옮겨와서 유진우가 생매장된 곳을 막아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는 산처럼 쌓여버렸다.생매장된 유
독성을 가지고 았는 다트는 마치 비 내리듯 끝없이 유진우를 향해 쏟아졌다.순식간에 유진우가 모두의 타깃으로 되었다.“마법진!”다트들이 떨어지려고 할 때 채지웅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그 후 경원종 고수들은 몇 명이 즉시 뿔뿔이 흩어져 유진우 곁에 원 모양으로 둘러섰다.그들 손에는 어느새 금색 부적 한 장이 들려 있었다.“도금칼!”채지웅은 명령과 함께 손에 든 금색 부적을 내던졌다.유진우를 에워싸고 있던 나머지 경원종 고수들도 즉시 부적을 내던졌다.다섯 장의 부적이 유진우를 향해갔다.곧이어 기괴한 장면이 발생했다.하늘하늘하던 부적에서 순간 빛이 크게 번지더니 다섯 자루의 거대한 금색 칼로 변해 유진우를 찌르려 하는 것이었다.그 칼은 아주 날카롭고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으며 파괴력이 강해 보였다.무도 마스터라도 감히 정면으로 맞서지 못할 정도의 위력을 가진 칼이었다.그리고 이 마법진은 경원종의 오행 진법으로 변화무쌍한 데다가 위력이 무궁무진한 진법이었다.또 다섯 사람이 힘을 합쳤기에 실력이 배로 늘어났을 것이었다.죽음에 가까워진 상황이 아니면 결코 쉽게 쓰지 않는 진법이었다.하지만 유진우를 죽이기 위해 경원종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질질 끌지 않고 한 방에 죽여버릴 생각이었다.“고작 이것밖에 못 하나요?”다섯 자루의 금빛 검을 본 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안색을 바꾸지 않고 발을 한 번 굴렀다.흰색 진기가 몸에서 터져 나와 타원형의 보호막을 만들어 주었다.그 보호막은 유진우를 감싸고 있었다.철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다섯 자루의 금빛 검이 유진우의 보호막에 부딪혔다. 그러자 그 검들이 순식간에 부서지더니 빛이 되어 흩어지는 것이었다.결국 유진우는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았다.“응”채지웅은 미간을 찌푸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오행 진법의 도금칼은 날카롭기로 유명한 무기였다.하지만 유진우의 보호막조차 뚫지 못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마법진 변경!”채지웅은 주저하지 않고 즉시 경원종 고수를 지휘하여 진법을
“뭐죠? 안 오너님은요? 왜 갑자기 사라진 거죠?”“이상하네요.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어요.”“설마 안 오너님께서 또 무슨 신기한 재주를 부리는 건 아니겠죠?”사람들은 사방을 둘러보면서 의논하고 있었다. 사태가 심각한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말이다.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방금 기세등등하던 안호준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으니 말이다.“오너님은요? 어디 가신 거죠?”“스승님! 스승님!”사호문의 제자들이 저마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응답이 없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간파한 사람은 극소수였다.“소리 지르지 않아도 돼. 너희 스승님은 이미 돌아가셨어.”백발노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남들은 몰라도 무도 마스터인 그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히고 나서 안호준의 몸은 마치 가스가 찬 풍선처럼 바로 폭발하였다는 것을 말이다.시체도 남아 있지 않다.“죽었다고요? 그럴 리가요?”“채 종주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저희 스승님은 천하무적이라고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이겨왔는데 고작 한 방에 죽었다뇨?”사호문 제자들은 이러쿵저러쿵하며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그들에게 놓고 말해서 안호준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존재였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상대가 누구든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채 종주님 말이 맞아. 안 오너님은 죽었어.”비연교 오너도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좋지만 바닥에 있는 살덩어리가 안 오너님 시체야...”그녀의 말을 듣고 온 장내가 떠들썩해졌다.사호문 제자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만약 경원종 종주인 채지웅만 그렇게 말했다면 거짓말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비연교 교주인 노윤하도 그렇게 말했기에 그들은 믿고 싶지 않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사호문 제자들은 땅바닥의 잘게 부스러진 살덩어리를 보고 비통해하며 울분을 토해냈다.한편, 나머지 문
“죽고 싶다면 도전해 보시든가요.”유진우는 줄곧 무표정이었고 눈빛은 차가웠다.“흥, 무서운 줄도 모르는 놈. 오늘 내가 사호문 권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마!”중년 남자가 고함을 지르며 유진우에게 달려들 때, 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잠깐만요!”경원종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가며 말했다.“안 오너님, 당신도 실력은 괜찮지만 유장혁의 적수는 못 돼요. 제가 하죠.”유장혁을 죽이라는 건 호룡각에서 내린 명령이었기에 일등 공신을 세운 사람이 좋은 대우를 받을 게 당연했다.이런 좋은 기회를 남에게 양보해서는 안 됐다.“채 종사님, 좀 저희를 무시하시는 것 같은데요?”안호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제가 거느리고 있는 사호문은 채 종사가 생각하는 것보다 뛰어나거든요. 이놈도 상대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제가 사호문을 닫아버릴게요.”“맞습니다. 경원종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저희 사호문도 호락호락하진 않거든요!”사호문 제자들이 분분히 떠들어댔다.“안 오너, 당신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채지웅은 계속해서 말했다.“오늘 유장혁한테 진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명예는 물론, 목숨도 위태로워질 거니까요.”“채 종사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만 만약 제가 지게 된다면 그건 제 권술이 부족한 탓이겠죠.”안호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분,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이때 비연교에서 몸매가 좋은 한 여자가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동맹을 맺은 사이인데 이런 작은 일로 화를 낼 필요는 없지 않나요?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어때요? 제가 두 오너님을 대신해서 앞장서보겠습니다. 유장혁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시험해 보는 거죠.”큰 공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비연교 교주도 당연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다들 한몫 챙기려는 모양이네요.”채지웅은 좌우를 둘러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선착순으로 보면 제가 먼저입니다.”안호준도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
이곳에 나타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투비 레벨 고수들이었는데 무도 마스터들도 종종 숨어있었다. 게다가 문관옥과 그리고 그의 지휘 아래 있는 부하 백호랑까지...“유장혁, 이게 끝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문관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사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를 좀 오래 했거든. 네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단지 선봉대일 뿐이고 아직도 많은 고수들이 여기로 올 거야. 네가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오늘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거라는 말이지.”사실 문관옥은 유장혁을 죽이는 것쯤은 이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유장혁 쪽에서 지원군이라도 오게 될까 봐 사람들을 많이 부른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었기에 경계해서 나쁠 건 없었다.“문관옥, 설마 문왕부도 호룡각 밑에 있는 세력 중 하나인 거야?”유진우가 소리 내 물었다.“호룡각의 명을 받아 널 처리하게 된 건 내 영광이야. 너한테 놓고 말해서는 불행한 일이겠지만 말이지.”문관옥은 매우 태연하게 말했다.“네가 만약 죽은 척하고 남은 인생을 보냈더라면 아무 일 없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넌 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했어. 그러니까 왜 그랬어? 그러지 말았어야지. 네가 자초한 거야.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널 제거하라는 명을 받았을 뿐이고.”호룡각은 황제보다도 더 큰 권력을 가졌다. 천자마저도 꼭두각시일 뿐이니 그가 전력을 다해 호룡각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도 이상해할 것 없었다.문관옥의 태도에 의해 충성도가 높다고 판단되면 평가에 통과할 수 있었다. 그에게 놓고 말해서는 호룡각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였다.그때가 되면 그도 권력을 가져서 서경왕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될 수 있을 것이었다.“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네.”유진우가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자,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은 얼마든지 덤벼. 얼마나 대단한지 보기나 하자!”“흥! 정말 끝까지 해보자는 거지?”문관옥이 손을
“쿵!”문이 닫히는 순간, 유진우의 이마가 세게 찌푸려졌다.두려워서가 아니라 명재원의 행동이 불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임강왕이 명재원에게 유진우를 안전하게 산기슭으로 내려보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킬러들이 매복하고 있는 곳으로 데려갔기 때문이었다.이건 그저 상관없는 일인 척 옆에서 구경하는 것보다 더 얄미운 일이었다.“유장혁, 아무리 둘러봐도 소용없어. 아무도 널 도와주지 않을 거야. 오늘이 네 제삿날이거든.”어떤 늑대 무늬가 새겨진 마스크를 쓴 남자가 사람들 사이로 걸어 나오더니 굵은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했다.“문관옥, 왜 가면을 쓰고 있는 거야? 차마 얼굴을 들고 나올 수 없는 일이라도 있어서 그래?”유진우가 차갑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마스크를 벗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유진우의 예상대로 그는 문관옥이 맞았다.“변장했는데도 알아본다고? 예상 밖이네.”문관옥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기운도 숨기고 목소리도 바꾼 상태인데 알아봤다고? 쉽지 않네.’“기운이든 목소리든 다 바꿀 수 있지만 너한테서 나는 그 역겨운 냄새는 숨길 수 없거든.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어.”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당장 죽게 될 놈이 입은 잘 놀리네!”문관옥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유장혁, 넌 우리한테 포위당했어. 도망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거야. 그래도 우리 구면이긴 하잖아? 그러니까 옛정을 생각해서 너한테 자살할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줄 수 있어. 죽는다고 해도 체면을 지키면서 죽는 게 좋지 않겠어?.”유진우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비웃으면서 입을 열었다.“도망친다고? 너희들이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예전에 옥면 산장에서 소란이 일어났을 때, 문관옥의 부하들을 살려준 건 문설봉의 체면을 봐서였다.하지만 이젠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기에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부하들까지 데리고 공격하러 온 더 이상 아무런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그때, 문관옥이 냉
류현은 뭐라 더 말하려 했으나 각진이 손을 휘저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더 말할 필요 없어. 내 말대로 해.”“네.”류현은 유진우를 한 번 노려보고는 급히 밖으로 나갔다.“재원아, 너는 유 시주님을 데리고 뒷산으로 가. 꼭 시주님을 안전하게 잘 모셔야 해.”각진이 다시 말했다.“그럼 주지스님은 어떡하나요?”명재원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명재원은 임강왕의 호위 팀장이었기에 항상 그를 호위해 왔었다.이제 와서 왕이 아닌 다른 사람을 호위하라고 하니 약간의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지훈이랑 현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괜찮아. 빨리 가 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각진이 이렇게 말했다.“네.”명재원은 두 손을 모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유진우를 데리고 나가 버렸다.나가기 전에 유진우는 뒤를 돌아 각진을 한 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명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유 시주님, 이쪽으로 오세요.”명재원은 유진우를 데리고 서하사 뒤쪽으로 갔다. 그리고는 숨겨져 있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안은 생각보다 어두컴컴했다. 손을 뻗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하지만 명재원은 이 길을 잘 알았다. 그는 성냥을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 불빛은 길을 환히 밝혀주었다.유진우는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이 길은 산에서 내려가는 비밀 통로임을 알게 되었다.통로는 매우 길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데다가 좁아서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이었다.“유 시주님, 이 길은 산기슭까지 이어집니다. 비밀리에 만들어진 거라서 외부인들은 모르는 길이죠. 시주님은 제가 안전하게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다시는 오지 마세요.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명재원이 길을 안내하며 이렇게 말했다.“감사합니다.”유진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오늘 방문한 것으로 의문은 다 풀렸어요. 그러니까 다시는 오지 않을게요. 더 이상 여러분을 방해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배신자라고요?”그 말을 들은 유진우가 미간을 찡그렸다.그는 어딘가에서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임강왕이 이렇게 말한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각진 스님, 그럼 그 배신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있나요?”유진우가 다시 물었다.“그 사람은 바로 장혁 씨 아버지의 부하였던 송원호입니다.”각진이 말했다.“원호 삼촌이라고요? 그럴 리가요. 원호 삼촌은 이미 전사하지 않았나요?”유진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유진우도 알다시피 송원호는 아버지가 신임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형제처럼 여겼고 동고동락하며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료였다.십 년 전, 송원호가 호위 팀장의 역할을 맡아 그들 가족을 연경으로 호송하던 때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는 여러 명의 암살자를 처치했다.특히 자금성에서의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송원호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머니를 호위하여 성을 빠져나가다 전사했다.‘그런 사람이 어떻게 배신자일 수 있다는 거지?’“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저도 많이 놀랐어요. 그래서 다시 한번 조사했지만 단서들은 모두 송원호 씨를 가리키고 있었죠.”“저도 송원호 씨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협박을 받았을 수도 있고 배반을 당했을 수도 있지만 이 사건이 그와 관련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어요.”“장혁 씨가 말한 죽음은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사람을 보내서 확인했거든요. 송원호 씨는 죽지 않았어요. 시신은 사람을 찾아서 위장한 것입니다.”각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원호 삼촌이 바로 그 배신자라고요?”유진우는 눈살을 찌푸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아보려는 듯했다.그는 계략을 당하거나 암살당하는 것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가까운 사람들의 배신은 참을 수 없었다.송원호는 유진우에게 놓고 말해서 반쯤 스승 같은 존재였고 예전에는 무술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적도 있었다. 게다가 군을 이끄는 경험마저도 송원호에게서 전수 받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