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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엄마, 일단 현이 데리고 병원부터 가요.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몇 초 동안 고민한 후 이청아가 끝내 마음을 정했다.

“청아야, 현이가 당한 굴욕 반드시 갚아야 해. 절대 그놈 봐주지 마!”

장경화가 표독스럽게 말했다.

“걱정 말아요. 내가 알아서 해요.”

이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두 경호원에게 장경화와 이현을 병원으로 실어 가라고 분부했다.

“장 비서는 이번 일 어떻게 생각해?”

이청아는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대표님, 보다시피 유진우 씨가 먼저 이현 씨를 때렸어요. 방금 경호원들도 다 봤다잖아요.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장 비서가 대답했다.

“다만 우리 엄마의 입방정이...”

이청아는 말을 잇지 않았다.

엄마의 표독스러움과 동생의 막무가내가 어느 지경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어쨌거나 사람을 때린 건 잘못이에요!”

장 비서가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 무슨 오해가 있더라도 대화로 풀어야 하잖아요? 게다가 이현 씨는 대표님 친동생인데 이 지경으로 때렸다는 것은 대표님이 전혀 안중에 없다는 뜻이에요. 이 점만으로 유진우 씨가 얼마나 저질스러운 사람인지 충분히 증명되지 않나요?”

이청아는 미간을 구기고 의심의 골이 점점 더 깊어졌다.

‘그래, 엄마와 현이가 아무리 표독스럽고 막무가내여도 손을 대는 건 잘못이야. 게다가 이렇게 심하게 때리다니. 전에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가졌어, 내가. 인제 보니 이혼은 더할 나위 없이 현명한 선택이야.’

“대표님, 이번 일은 이대로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반드시 끝까지 추궁해야 해요! 감히 사람을 때리다니, 유진우 씨는 무조건 대가를 치러야 해요!”

장 비서가 차갑게 말했다.

안 그래도 심란했던 이청아는 이 말을 듣자 화가 울컥 치밀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유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도로를 질주하는 실버 벤틀리 안에서.

유진우는 휴대폰에 뜬 발신자 표시를 보더니 미간을 살짝 구겼다.

다만 결국 수신 버튼을 눌렀다.

“유진우, 나한테 해명할 거 없어?”

이청아가 다짜고짜 명령 조로 쏘아붙였다.

“뭘 해명해?”

“아까 현이 때린 거 너지?”

“그래, 맞아. 하지만...”

유진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청아가 덥석 가로챘다.

“역시 너였어! 네가 이런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 왜? 나랑 이혼하고 나니 내 가족한테 복수하는 거야?!”

유진우는 문득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청아가 이유도 불문한 채 이런 식으로 공격을 퍼부을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3년 동안 부부로 지내오면서 믿음이라곤 전혀 없었던 걸까?

낯선 사람이라 해도 이 지경까진 몰아붙이지 않을 텐데!

“청아야, 너한테 내가 이 정도로 볼품없었어? 내가 손댄 것만 중요하고 왜 그랬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아?”

유진우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이유가 어찌 됐든 손댄 건 네 잘못이야!”

이청아가 강경하게 나왔다.

유진우는 저 자신이 한심할 따름이었다.

그는 철저히 실망해 버렸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이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청아가 제 동생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니까.

“유진우, 한때 부부인 걸 봐서 너에게 만회할 기회를 줄게.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서 현이한테 사과해. 그럼 나도 이번 일 없던 거로 해줄게. 그렇지 않으면...”

“않으면 뭐? 경찰에 신고해서 나 잡아가게? 아니면 사람 불러서 나 혼내려고?”

유진우가 야유조로 물었다.

“유진우! 너 진짜 갈 데까지 가는구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거야?!”

이청아가 언성을 높였다.

“인정사정? 우리 사이에 인정이 아직 남아있긴 해? 이현은 내가 때렸어. 이 대표님께서 어떻게 복수하든 알아서 해.”

“너...”

이청아가 쏘아붙이려 할 때 유진우가 전화를 꺼버렸다.

그녀는 화가 나서 휴대폰을 내팽개칠 뻔했다.

그녀는 오늘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누구보다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대표님, 유진우가 겁 없이 달려드네요. 제가 사람 불러서 따끔하게 혼낼까요?”

장 비서가 이 기세에 힘입어 말했다.

“아니야, 전에 빚 진 거 이참에 다 갚았다고 쳐.”

이청아가 숨을 깊게 몰아쉬며 들끓는 분노를 겨우 가라앉혔다.

“하지만...”

장 비서가 말을 이으려 했으나 이청아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됐어, 이번 일은 더 언급하지 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조씨 일가의 자선 파티야.”

“자선 파티요? 설마 파트너와 관련된 일이에요?”

“맞아. 방금 얻은 소식에 의하면 조씨 일가에서 이미 우리 청성 그룹을 예선 명단에 올렸대. 표현만 좋으면 우리가 조씨 일가의 새로운 파트너가 될 확률이 아주 커!”

“정말 잘 됐어요.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다른 한편.

전화를 끊은 유진우는 조선미의 차를 타고 강능 제1 병원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여 VIP 병실로 도착했다.

그 시각 병상에는 수척한 백발의 노인이 누워 있었다.

노인은 사색이 된 얼굴에 입술도 핏기가 없었고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겨우 숨을 쉬었는데 언제든지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았다.

주위엔 의사 몇 명이 서 있었다.

다들 심각한 표정인 걸 보아 환자의 상태가 낙관적이지 않은 듯싶었다.

“언니! 드디어 왔네! 이 의사들 전부 폐인이야. 아무 소용도 없어!”

이때 포니테일을 한 예쁜 소녀가 마중 왔는데 그녀는 바로 조씨 일가의 둘째 딸 조아영이었다.

“조 대표님, 저희는 이미 최선을 다했어요. 위세척도 하고 투석도 하고 관류도 했어요. 약이란 약은 다 써봤는데 근본을 치료할 수가 없어요.”

한 의사가 막연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들이 해내지 못하면 사람을 바꿔야죠. 유진우 씨가 치료할 겁니다.”

조선미가 싸늘하게 말했다.

“유진우 씨요?”

뭇사람들은 흠칫 놀라더니 옆에 서 있는 유진우을 쳐다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유진우는 너무 젊어 실력 있는 의사로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니! 장난 그만 쳐! 이분이 바로 유진우 씨라고?”

조아영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정말 잘할 수 있겠어?”

“사람은 외모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 안 회장님의 소개로 모셔 온 분이니까 믿고 맡기자고.”

조선미가 대답했다.

사실 그녀도 자신이 없지만 안병서가 강력 추천한 분이니 분명 실력이 있을 거로 여겼다.

“안 회장님이 사기당한 건 아니겠지?”

조아영이 여전히 의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음, 저기요, 정말 의술을 알아요?”

“조금 알고 있어요.”

유진우가 대답했다.

“조금이요?”

조아영이 하찮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이 병실에 들어오는 의사는 강능에서 유명한 전문 교수여야 해요. 그런 분들도 속수무책인데 당신 같은 돌팔이가 감히 문을 넘나들어요?”

“아영아, 말 가려서 해!”

조선미가 질책했다.

“언니! 이 녀석 딱 봐도 사기꾼 같아. 이러다 할아버지가 정말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조아영이 쏘아붙였다.

“너 이 계집애, 못 하는 말이 없어!”

조선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튼 난 안 믿어. 실력을 직접 보여주기 전까진!”

조아영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어떻게 증명할까요?”

유진우가 담담하게 물었다.

“내가 무슨 병이 있는지 맞혀보세요.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면 믿어줄게요!”

“정말 말해요?”

“왜요? 무서워요? 그럴 실력 없으면 얼른 돌아가세요. 여기서 시간 낭비나 하지 말고요!”

조아영이 쓴웃음을 지었다.

“혀 내밀어봐요.”

유진우가 손을 들었다.

“아...”

조아영은 고분고분하게 혀를 내밀었다.

유진우는 혀를 관찰한 후 직설적으로 말했다.

“간에 열이 많고 내분비계통이 균형을 잃어서 생리가 불규칙적이고 편두통이 자주 있을 거예요. 이 밖에도 오늘 음식을 잘못 먹어서 위장 기능이 장애를 일으켜 반나절에 적어도 6번은 배탈이 났을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치질이 있어서...”

순간 조아영의 표정이 확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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