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하용만의 시선이 조군수에게 머물렀다.“예전에 혼약을 맺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문제가 생겨서 다시 상의해야 해요.”조군수가 솔직하게 대답했다.“문제가 있으면 앉아서 천천히 의논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분위기를 살벌하게 하고 그래?”하용만이 불만을 드러냈다.“제가 의논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조씨 가문에서 아예 체면을 세워주지 않아요.”선우희재가 말했다.“결혼은 남녀가 서로 원해서 하는 거죠. 병사까지 데리고 와서 결혼을 강요하는 건 강도질이나 다름없지 않아요?”조선미가 갑자기 목청을 높였다.“아주 맞는 말이네. 결혼은 남녀가 서로 동의해야지. 상대가 싫다고 하면 넌 강요할 자격이 없어.”하용만도 조선미의 말에 동의했다.그의 말에 선우희재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의 태도를 보니 조씨 가문의 편에 서겠다는 마음이 확고한 것 같다.“총독님, 조씨 가문이 대체 총독님께 뭘 주셨습니까? 제가 10배 드릴게요.”선우희재가 한마디 불쑥 던졌다.“무엄하다!”하용만의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매섭게 호통쳤다.“선우희재, 너 날 대체 뭐로 본 거야? 탐관오리? 썩어 문드러진 간신?”“그럴 리가요. 희재 장군이 실수했나 봐요. 부디 화를 가라앉히세요, 총독님.”강동국이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젊고 혈기 왕성해서 그런지 위아래도 모르는구나! 당장 네 사람들을 데리고 꺼져!”하용만이 무섭게 몰아붙였다. 원래는 상대의 체면을 남겨주려 했지만 호의도 모르고 나댈 줄은 생각지 못했다.“희재 장군, 오늘은 이만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강동국이 선우희재에게 눈치를 줬다. 총독 앞에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그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선우희재의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앞날이 창창한 건 사실이지만 하용만과 맞서 싸우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했다.“총독님, 정말 조씨 가문을 도우실 겁니까?”선우희재가 실눈을 뜨고 물었다.“그래. 아무도 조씨 가문을 건드릴 수 없어.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 생각에 조군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유진우를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덤덤하기만 했고 마치 아웃사이더 같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를 더 가늠할 수 없었다.자세히 생각해보면 유진우가 선우희재와 싸운 그 순간부터 조씨 가문의 상황이 역전하기 시작했다.그렇다면 지금까지 눈앞의 젊은이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실로 무서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족장님, 전 다른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하용만은 인사를 마친 후 자리를 떠났다. 유진우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건 혹시라도 그에게 귀찮은 일이 생길까 걱정돼서였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아껴도 좋다.“더 싸울 일이 없는 것 같으니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황보용명은 유진우를 쳐다보고는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족장님, 나중에 또 봐요.”안정양은 두 주먹을 가슴 앞에 맞잡고 예를 표한 후 따라나섰다.거물들이 다 떠나자 연회장 안이 더욱 떠들썩해졌다. 하객들은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렸고 조씨 가문 자제들도 이런저런 추측을 늘려놓았다.“아빠의 체면이 이렇게나 대단할 줄은 몰랐어요. 맹주님과 하 총독님까지 모셔오다니, 정말 대단해요!”조선미는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두 거물이 뒷받침해주고 있으니 선우희재도 더는 결혼을 강요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도 드디어 한시름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셋째야, 그동안 계속 숨기고 있었던 거야? 이 형이 이번에 제대로 한 수 배웠어.”그때 조군해 일행도 다가왔다. 하나같이 흥분한 얼굴로 어깨를 들먹였다.하 총독과 전 무림 맹주가 있는 한 조씨 가문은 앞으로 무슨 일이든 순조로워질 것이다.“큰형님, 저 아니에요. 제가 무슨 재간이 있어서 그분들을 모시겠어요.”조군수는 고개를 내저었고 전혀 우쭐거리지도 않았다.“너 아니면 누구야?”조군해는 어안이 벙벙했다.“저도 누군지 알고 싶어요...”조군수는 아래턱을 어루만지며 유진우를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진우 씨, 대체 누가 이런 엄청
조윤지가 쌀쌀맞게 말했다.“스스로 큰 재간이 없으니까 일명이 잘 되는 걸 질투하는 거지. 넌 정말 속이 좁아. 일명이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디 한번 말해봐. 여기 있는 조씨 가문의 자제들 중에 누가 그분들을 모실 수 있는지?”“그건...”조선미는 말을 잇지 못했다.관직을 놓고 보면 조일명은 조씨 가문의 젊은 세대 중에서 가장 훌륭한 건 사실이었다.“왜? 할 말이 없어? 일명이가 너보다 훌륭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조윤지는 대놓고 조선미를 비웃었다.“선미야, 오늘 네가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건 다 내 덕이야. 그러니까 앞으로는 나에게 잘해.”조일명이 약을 올리자 조선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조일명과 조윤지 둘이서 그녀를 몰아세웠다.“당신 덕이라고요? 볼 덕이라도 있어요?”조선미가 비웃음을 당하자 유진우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그분은 1품 총독이지만 당신은 고작 6품 장교에 불과해요. 신분이 천지 차이인데 당신 때문에 왔다고 하는 건 대체 무슨 근거죠?”“흥! 나 때문이 아니면 너 때문이야?”조일명이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맞아요. 내 체면을 봐서 온 거예요.”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마치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크게 웃었다.“하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유진우, 네까짓 게 뭔데? 무슨 자격으로 총독님을 움직여?”“흥, 자기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구나.”조씨 가문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유진우를 비웃었고 마치 멍청이를 쳐다보듯 했다.아무것도 없는 돌팔이 의사가,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오라비가 무슨 배짱으로 저런 막말을 내뱉는단 말인가?“진우 씨, 정말 하 총독님과 아는 사이예요?”조선미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며칠 전에 총독님 사모님의 목숨을 살려준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총독님께서 신세 진 걸 갚으러 왔다고 한 거예요.”유진우가 사실대로 말했다.“너에게 신세 졌다고? 하하... 잘난 척하긴.
“다들 웃기 좋아하잖아요? 어디 한번 계속 웃어봐요.”유진우가 영패를 꺼내며 질문을 던졌다.조일명은 순간 얼어붙었고 조윤지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으며 나동수 등 3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충격에 빠졌다.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상 위에 놓인 은색 영패에 쏠렸다. 그들은 경악한 얼굴로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얼굴에 웃음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황보 가문의 객경령은 수많은 사람들이 꿈에 그리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이 영패만 손에 쥐고 있으면 황보 가문이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뜻이고 심지어 황보 가문의 여러 자원까지 동원하여 쓸 수 있다.이 객경령의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어마어마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문제는 이 귀한 보물이 왜 유진우의 손에 있냐는 것이다. 설마 진짜로 황보용명의 목숨을 구해줬단 말인가?그 생각에 유진우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말... 말도 안 돼요. 당신이 어떻게 황보 가문의 객경령을 갖고 있을 수 있죠?”조윤지는 도무지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난 이미 정확하게 얘기했으니 더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요.”유진우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두 사람이 조선미를 조롱하지만 않았어도 영패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조윤지, 어때? 아직도 내 남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자신감이 생긴 후 이번에는 조선미가 그녀를 비난했다. 조금 전 비웃음을 당했던 걸 인제야 그대로 갚아줄 수 있게 되었다.“흥, 너무 우쭐거리지는 마. 객경령이 있다고 해도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해.”조윤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맞아!”조일명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네 신분에 어떻게 황보 가문의 객경령을 얻을 수 있겠어? 이 객경령은 가짜인 게 틀림없어!”“가짜라고?”그의 말에 뭇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눈치만 보았다. 객경령은 황보 가문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그런 객경령을 위조한다는 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조일명, 헛소리 지껄이지 마!”조선미가 예쁜 두 눈을 부릅떴다.“이 영패 위에
“맞아요. 황보 가문의 객경령은 엄청 단단해서 절대 망가지지 않아요. 짝퉁이니까 이리 쉽게 망가지죠.”조윤지가 나서서 힘을 보탰다.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결국 가짜였구나. 깜짝 놀랐네.”“정말 파렴치한 놈이야. 허세 한번 부리겠다고 객경령까지 위조하다니, 간덩이가 부어도 아주 단단히 부었어.”“흥, 일명 도련님이 통찰력이 있어서 저 자식의 본색을 까발렸기에 망정이지, 안 그러면 우리 다 속을 뻔했어.”유진우를 비난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그들은 아무 존재감 없는 유진우보다 재벌 도련님인 조일명을 더욱 믿었다.한 사람이 성공하기 전에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아무도 믿지 않지만 성공한 후에는 헛소리를 지껄여도 진리라고 받아들인다.“조일명 씨, 당신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객경령을 망가뜨렸어요. 결과가 어떨지 생각해봤어요?”유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결과? 하하... 짝퉁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한 주제에 되레 큰소리를 쳐? 난 그저 하늘을 대신하여 정의를 실행했을 뿐이야.”조일명이 또박또박 말했다.“맞아요! 당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할 판에 무슨 낯짝으로 큰소리를 쳐요?”조윤지가 씩씩거렸다.“두 사람 적당히 해!”조선미는 화가 슬슬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유진우의 말이라면 거의 백 퍼센트 믿었다. 하여 조일명의 조금 전 행동은 완전히 사실 왜곡이고 일부러 모함한 거라고 생각했다.“됐어, 다들 그만해. 가족끼리 여기서 언성을 높이면 어떡해?”조군해가 제때 나서서 말렸다. 수많은 하객 앞에서 젊은 세대들이 싸우기라도 한다면 조씨 가문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유진우, 큰아버지의 체면을 봐서 더 따지지는 않겠어.”조일명은 앞으로 다가가 망가진 영패를 건네며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자, 짝퉁은 돌려줄게.”“진짜인지 가짜인지 당신이 잘 알겠죠.”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하하...”조일명이 갑자기 웃더니 유진우의 귓가에 대고 두 사람만 들을
“일명아!”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조금 전까지 박장대소하던 조일명이 순식간에 피를 토하며 쓰러질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얼른 병원에 데려가!”조군수는 재빨리 판단을 내려 조일명을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분부했다.“이 자식아, 너 일명이에게 무슨 짓 했어?”나가려던 조군표는 뭔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흉악스럽게 물었다.“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옛날에 다친 상처가 다시 재발한 거예요. 굳이 탓을 하고 싶다면 당신 아들을 때린 선우희재를 탓하세요.”유진우가 어깨를 들먹였다.“너...”조군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정확한 증거가 없어 뭐라 할 수도 없었다.“둘째 형님, 이러다 골든 타임을 놓치겠어요. 일단 사람부터 살려야죠.”조군수가 귀띔했다.“가자!”조군표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유진우를 매섭게 째려보고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조군해 부녀도 그의 뒤를 따랐다.조일명은 가족 중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라 그의 안위가 조씨 가문의 앞날과도 직결된다. 족장인 조군수와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여보, 아까 뭔 짓을 했어요?”조선미가 유진우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 조일명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게 누가 봐도 이상했다.“뭔 짓을 하다니요? 선우희재가 그런 거라니까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조선미가 두 눈을 부릅떴다.“지금 옆에 아무도 없으니까 나에게만 솔직하게 얘기해요.”“알았어요. 아까 그냥 조일명의 상처에 소금 좀 뿌렸어요. 다친 데가 더 아프게.”유진우가 히죽 웃었다.전에 선우희재의 일격에 조일명은 이미 내상을 입었다. 그리고 유진우는 아까 조일명의 어깨를 두드릴 때 진기를 미친 듯이 불어넣었다. 그 바람에 안정을 되찾았던 내상이 다시금 폭발하게 된 것이었다.“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죠?”조선미가 떠보듯이 물었다. 비록 조일명과 사이가 좋지 않지만 둘째 큰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이다. 어쨌
유진우는 그대로 얼어붙었다.“이... 이렇게나 갑자기요? 저 아직 마음의 준비도 채 못했단 말이에요.”조선미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물었다.“날은 잡았어요? 언제 결혼하는데요?”“얘 좀 봐라? 진심으로 받아들인 거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조군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내가 뭘요. 아빠가 먼저 그 얘기를 꺼내셨잖아요.”조선미가 입을 삐죽거리며 툴툴거렸다.“됐어. 농담 그만해.”조군수는 미소를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오늘 잠시 위기는 넘겼지만 아직 완전히 끝나진 않았어. 선우희재의 성격에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하 총독님과 맹주님이 계시는데 선우희재가 함부로 할까요?”조선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선우희재가 대놓고 나서진 않아도 뒤에서 몰래 손을 쓸 거야.”조군수가 진지하게 말했다.“그리고 하 총독님과 맹주님도 이미 신세 진 걸 다 갚았으니 우릴 두 번은 돕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해.”“그럼 앞으로도 귀찮은 일이 생길 거란 말씀이에요?”조선미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귀찮은 일이 적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진우 씨의 안전이야.”조군수의 시선이 유진우에게 향했다.“선우희재는 아주 건방진 사람이에요. 진우 씨가 선우영채를 죽인 것과 오늘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도발한 건 전부 선우희재 입장에서 용서치 못할 행동이긴 하죠. 그러니 앞으로 진우 씨가 위험해질 수 있어요.”“충고 고마워요, 아저씨. 제가 조심할게요.”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선우희재가 꼭 복수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미만 무사하다면 그는 전혀 두려울 게 없었다.“요즘에 호위무사 1팀을 붙여줄게요. 귀찮은 일을 어느 정도는 해결해줄 수 있을 거예요.”조군수가 말했다.“호위무사 1팀요? 1팀은 아빠가 늘 데리고 다니는 팀 아닌가요?”조선미가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물었다.조씨 가문의 호위무사는 총 여섯 팀이다. 1팀의 실력이 가장 강했는데 본투비 레벨 고수들만 있었고 조씨
이튿날 오전, 이씨 그룹.유진우는 여느 때와 같이 회사에 나왔다.안전부 부장인 그는 매일 하는 일이 별로 없어 아주 한가했다. 아침에 출근 도장을 찍은 후에는 사람들과 함께 순찰을 진행한다. 순찰을 마친 다음에는 쭉 자유시간이다. 어차피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 하고 싶은 걸 해도 되었다.“똑똑똑...”유진우가 사무실 의자에 앉자마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회사의 부회장 박호철이었다.“유 부장님, 지금 시간 돼요? 얘기 좀 할까요?”박호철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들어왔다.“부회장님이셨군요. 무슨 일이시죠?”유진우는 일어나지 않고 계속 의자에 앉아있었다.“이건 제가 친구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중국의 무이산에서 가져온 최상품의 대홍포차예요.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박호철은 정교하게 포장한 선물 박스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최상품의 대홍포차요? 가격이 엄청날 건데요?”유진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얼마 안 돼요. 그냥 2억이 조금 넘어요.”박호철이 웃으며 말했다.“이런 귀한 차를 제가 어찌 감히 마시겠어요. 부회장님이 가져가서 마시세요.”유진우가 거절했다.“차를 싫어하시는군요. 괜찮아요. 또 다른 선물을 준비했어요.”박호철은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수표 한 장을 꺼냈다.“6억이에요. 제 마음이니 부장님께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선물도 모자라 돈까지 줘요? 부회장님, 대체 무슨 뜻입니까?”유진우가 되물었다.“하하... 그냥 유 부장님과 친구 하고 싶어서요.”박호철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부장님이 이청아 회장님과 가까운 사이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계속 회장님 밑에만 있는다면 승승장구할 수 없어요. 어쨌거나 여자가 큰일을 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니까요.”“그래서요?”유진우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절 위해서 일을 하셨으면 해서요. 절대 섭섭지 않게 해줄게요. 오늘 이건 그저 인사일 뿐이에요. 앞으로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거예요.”박호철이 본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부회장님, 지금 저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