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2면 우리도 뒤지지 않아요.”황보용명이 덤덤하게 말했다.“맹주님, 아무래도 2대1 같은데요? 안 부장관이 이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 생각이 있는지 먼저 물어보세요.”강동국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뭐라고요?”황보용명은 고개를 돌렸다. 안정양의 안색이 어둡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 걸 보니 중도에 물러날 생각인 게 틀림없었다.안정양에게 선우희재 한 사람과 맞서 싸울 실력은 그래도 있었다. 하지만 강동국까지 합세한다면 그건 또 별개 문제다. 게다가 조씨 가문과의 친분도 그리 깊지 않아 굳이 자신의 앞날까지 희생하면서 도와줄 필요가 없었다.안정양의 침묵에 조씨 가문 사람들의 표정이 잿빛이 되었다. 안 부장관이 이대로 물러선다면 조씨 가문은 이 고비를 넘기기 어려워진다.“족장님, 오늘 족장님의 계획에 놀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부족해요. 인제 어떡하실 생각인가요?”선우희재는 고개를 살짝 들고 조군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강동국이 힘을 보탠다면 황보용명 혼자서는 결코 조씨 가문을 구할 수 없다.조군수는 말없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오늘 정녕 선우 가문에 고개를 숙여야 한단 말인가?“호풍장군, 할 얘기 있으면 말로 해요.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요?”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조군해가 나서서 수습하려 했다. 조금 전까지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더 이상 화를 입고 싶지 않으면 수그러드는 수밖에 없다.“말로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조건이 더 있어요.”선우희재가 덤덤하게 말했다.“무슨 조건이죠?”조군해가 물었다.“저 자식의 목숨을 가져갈 겁니다.”선우희재가 갑자기 유진우를 가리키며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천민 주제에 우리 선우 가문의 위엄에 도발했으니 대가를 치러야지. 오늘 저 녀석을 죽이는 걸로 다른 사람에게 경고를 할 거야!’“그건...”조군해의 표정이 굳어졌고 저도 모르게 옆에 있는 조군수의 눈치를 살폈다. 조군수는 당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하 총독? 하 총독님이 오셨어?”“세상에나! 총독님까지 친히 오시다니, 하늘이라도 무너지려나?”“대체 누구야? 누가 총독님까지 모신 거야?”중년 남자의 등장에 현장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눈앞에 나타난 이 사람은 총독이자 남성 전체의 군정 대권을 쥔 인물이며 1품에 속한다. 그야말로 진정한 지방 수석 장관이다.발만 굴러도 서울을 뒤흔들 수 있는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강 장관이든 호풍장군이든 그의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총독님이 왜 오셨지? 설마 선우희재가 모신 거야?”“망했어, 망했어... 우리 조씨 가문 이젠 완전히 망했어.”“저분은 남성의 일인자신데 누가 감히 저분과 맞서 싸우겠어?”조씨 가문의 진영이 떠들썩해졌고 하나같이 절망적이고 겁에 질린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당연히 총독을 모실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선우희재의 지원군일 가능성밖에 없다.그런데 그 시각 조씨 가문 사람들만 충격에 빠진 게 아니라 선우희재도 경악한 얼굴이었고 영문을 알지 못했다. 사실 선우희재와 하 총독은 그렇다 할 친분이 딱히 없었다.“아니, 저분은...”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후 줄곧 덤덤하던 유진우의 표정도 살짝 흔들렸다. 그의 관직 때문에 놀란 게 아니라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지인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하지원의 아버지 하용만이었다.며칠 전 병원에서 만났을 때는 하용만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총독이자 남성 전체를 거스르는 지방 수석 장관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어머, 총독님,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총독님까지 친히 발걸음을 하셨어요?”잠깐 넋을 놓았다가 정신이 번쩍 든 강동국은 재빨리 활짝 웃으며 다가가 인사했다. 눈앞의 이분은 강동국의 가장 높은 상사였다.“강동국, 방금 내 사람들을 전부 내쫓겠다고 했어? 사실이야?”하용만이 담담하게 물었다.“오해입니다... 전부 오해예요.”강동국이 비굴하게 웃었다.“총독님의 근위병이라면 제가 맞이해도 모자랄 판에 내쫓는다니요.”“그래?”하용만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그럼 이렇게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하용만의 시선이 조군수에게 머물렀다.“예전에 혼약을 맺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문제가 생겨서 다시 상의해야 해요.”조군수가 솔직하게 대답했다.“문제가 있으면 앉아서 천천히 의논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분위기를 살벌하게 하고 그래?”하용만이 불만을 드러냈다.“제가 의논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조씨 가문에서 아예 체면을 세워주지 않아요.”선우희재가 말했다.“결혼은 남녀가 서로 원해서 하는 거죠. 병사까지 데리고 와서 결혼을 강요하는 건 강도질이나 다름없지 않아요?”조선미가 갑자기 목청을 높였다.“아주 맞는 말이네. 결혼은 남녀가 서로 동의해야지. 상대가 싫다고 하면 넌 강요할 자격이 없어.”하용만도 조선미의 말에 동의했다.그의 말에 선우희재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의 태도를 보니 조씨 가문의 편에 서겠다는 마음이 확고한 것 같다.“총독님, 조씨 가문이 대체 총독님께 뭘 주셨습니까? 제가 10배 드릴게요.”선우희재가 한마디 불쑥 던졌다.“무엄하다!”하용만의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매섭게 호통쳤다.“선우희재, 너 날 대체 뭐로 본 거야? 탐관오리? 썩어 문드러진 간신?”“그럴 리가요. 희재 장군이 실수했나 봐요. 부디 화를 가라앉히세요, 총독님.”강동국이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젊고 혈기 왕성해서 그런지 위아래도 모르는구나! 당장 네 사람들을 데리고 꺼져!”하용만이 무섭게 몰아붙였다. 원래는 상대의 체면을 남겨주려 했지만 호의도 모르고 나댈 줄은 생각지 못했다.“희재 장군, 오늘은 이만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강동국이 선우희재에게 눈치를 줬다. 총독 앞에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그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선우희재의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앞날이 창창한 건 사실이지만 하용만과 맞서 싸우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했다.“총독님, 정말 조씨 가문을 도우실 겁니까?”선우희재가 실눈을 뜨고 물었다.“그래. 아무도 조씨 가문을 건드릴 수 없어.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 생각에 조군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유진우를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덤덤하기만 했고 마치 아웃사이더 같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를 더 가늠할 수 없었다.자세히 생각해보면 유진우가 선우희재와 싸운 그 순간부터 조씨 가문의 상황이 역전하기 시작했다.그렇다면 지금까지 눈앞의 젊은이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실로 무서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족장님, 전 다른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하용만은 인사를 마친 후 자리를 떠났다. 유진우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건 혹시라도 그에게 귀찮은 일이 생길까 걱정돼서였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아껴도 좋다.“더 싸울 일이 없는 것 같으니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황보용명은 유진우를 쳐다보고는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족장님, 나중에 또 봐요.”안정양은 두 주먹을 가슴 앞에 맞잡고 예를 표한 후 따라나섰다.거물들이 다 떠나자 연회장 안이 더욱 떠들썩해졌다. 하객들은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렸고 조씨 가문 자제들도 이런저런 추측을 늘려놓았다.“아빠의 체면이 이렇게나 대단할 줄은 몰랐어요. 맹주님과 하 총독님까지 모셔오다니, 정말 대단해요!”조선미는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두 거물이 뒷받침해주고 있으니 선우희재도 더는 결혼을 강요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도 드디어 한시름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셋째야, 그동안 계속 숨기고 있었던 거야? 이 형이 이번에 제대로 한 수 배웠어.”그때 조군해 일행도 다가왔다. 하나같이 흥분한 얼굴로 어깨를 들먹였다.하 총독과 전 무림 맹주가 있는 한 조씨 가문은 앞으로 무슨 일이든 순조로워질 것이다.“큰형님, 저 아니에요. 제가 무슨 재간이 있어서 그분들을 모시겠어요.”조군수는 고개를 내저었고 전혀 우쭐거리지도 않았다.“너 아니면 누구야?”조군해는 어안이 벙벙했다.“저도 누군지 알고 싶어요...”조군수는 아래턱을 어루만지며 유진우를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진우 씨, 대체 누가 이런 엄청
조윤지가 쌀쌀맞게 말했다.“스스로 큰 재간이 없으니까 일명이 잘 되는 걸 질투하는 거지. 넌 정말 속이 좁아. 일명이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디 한번 말해봐. 여기 있는 조씨 가문의 자제들 중에 누가 그분들을 모실 수 있는지?”“그건...”조선미는 말을 잇지 못했다.관직을 놓고 보면 조일명은 조씨 가문의 젊은 세대 중에서 가장 훌륭한 건 사실이었다.“왜? 할 말이 없어? 일명이가 너보다 훌륭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조윤지는 대놓고 조선미를 비웃었다.“선미야, 오늘 네가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건 다 내 덕이야. 그러니까 앞으로는 나에게 잘해.”조일명이 약을 올리자 조선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조일명과 조윤지 둘이서 그녀를 몰아세웠다.“당신 덕이라고요? 볼 덕이라도 있어요?”조선미가 비웃음을 당하자 유진우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그분은 1품 총독이지만 당신은 고작 6품 장교에 불과해요. 신분이 천지 차이인데 당신 때문에 왔다고 하는 건 대체 무슨 근거죠?”“흥! 나 때문이 아니면 너 때문이야?”조일명이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맞아요. 내 체면을 봐서 온 거예요.”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마치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크게 웃었다.“하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유진우, 네까짓 게 뭔데? 무슨 자격으로 총독님을 움직여?”“흥, 자기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구나.”조씨 가문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유진우를 비웃었고 마치 멍청이를 쳐다보듯 했다.아무것도 없는 돌팔이 의사가,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오라비가 무슨 배짱으로 저런 막말을 내뱉는단 말인가?“진우 씨, 정말 하 총독님과 아는 사이예요?”조선미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며칠 전에 총독님 사모님의 목숨을 살려준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총독님께서 신세 진 걸 갚으러 왔다고 한 거예요.”유진우가 사실대로 말했다.“너에게 신세 졌다고? 하하... 잘난 척하긴.
“다들 웃기 좋아하잖아요? 어디 한번 계속 웃어봐요.”유진우가 영패를 꺼내며 질문을 던졌다.조일명은 순간 얼어붙었고 조윤지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으며 나동수 등 3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충격에 빠졌다.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상 위에 놓인 은색 영패에 쏠렸다. 그들은 경악한 얼굴로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얼굴에 웃음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황보 가문의 객경령은 수많은 사람들이 꿈에 그리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이 영패만 손에 쥐고 있으면 황보 가문이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뜻이고 심지어 황보 가문의 여러 자원까지 동원하여 쓸 수 있다.이 객경령의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어마어마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문제는 이 귀한 보물이 왜 유진우의 손에 있냐는 것이다. 설마 진짜로 황보용명의 목숨을 구해줬단 말인가?그 생각에 유진우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말... 말도 안 돼요. 당신이 어떻게 황보 가문의 객경령을 갖고 있을 수 있죠?”조윤지는 도무지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난 이미 정확하게 얘기했으니 더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요.”유진우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두 사람이 조선미를 조롱하지만 않았어도 영패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조윤지, 어때? 아직도 내 남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자신감이 생긴 후 이번에는 조선미가 그녀를 비난했다. 조금 전 비웃음을 당했던 걸 인제야 그대로 갚아줄 수 있게 되었다.“흥, 너무 우쭐거리지는 마. 객경령이 있다고 해도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해.”조윤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맞아!”조일명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네 신분에 어떻게 황보 가문의 객경령을 얻을 수 있겠어? 이 객경령은 가짜인 게 틀림없어!”“가짜라고?”그의 말에 뭇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눈치만 보았다. 객경령은 황보 가문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그런 객경령을 위조한다는 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조일명, 헛소리 지껄이지 마!”조선미가 예쁜 두 눈을 부릅떴다.“이 영패 위에
“맞아요. 황보 가문의 객경령은 엄청 단단해서 절대 망가지지 않아요. 짝퉁이니까 이리 쉽게 망가지죠.”조윤지가 나서서 힘을 보탰다.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결국 가짜였구나. 깜짝 놀랐네.”“정말 파렴치한 놈이야. 허세 한번 부리겠다고 객경령까지 위조하다니, 간덩이가 부어도 아주 단단히 부었어.”“흥, 일명 도련님이 통찰력이 있어서 저 자식의 본색을 까발렸기에 망정이지, 안 그러면 우리 다 속을 뻔했어.”유진우를 비난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그들은 아무 존재감 없는 유진우보다 재벌 도련님인 조일명을 더욱 믿었다.한 사람이 성공하기 전에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아무도 믿지 않지만 성공한 후에는 헛소리를 지껄여도 진리라고 받아들인다.“조일명 씨, 당신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객경령을 망가뜨렸어요. 결과가 어떨지 생각해봤어요?”유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결과? 하하... 짝퉁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한 주제에 되레 큰소리를 쳐? 난 그저 하늘을 대신하여 정의를 실행했을 뿐이야.”조일명이 또박또박 말했다.“맞아요! 당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할 판에 무슨 낯짝으로 큰소리를 쳐요?”조윤지가 씩씩거렸다.“두 사람 적당히 해!”조선미는 화가 슬슬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유진우의 말이라면 거의 백 퍼센트 믿었다. 하여 조일명의 조금 전 행동은 완전히 사실 왜곡이고 일부러 모함한 거라고 생각했다.“됐어, 다들 그만해. 가족끼리 여기서 언성을 높이면 어떡해?”조군해가 제때 나서서 말렸다. 수많은 하객 앞에서 젊은 세대들이 싸우기라도 한다면 조씨 가문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유진우, 큰아버지의 체면을 봐서 더 따지지는 않겠어.”조일명은 앞으로 다가가 망가진 영패를 건네며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자, 짝퉁은 돌려줄게.”“진짜인지 가짜인지 당신이 잘 알겠죠.”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하하...”조일명이 갑자기 웃더니 유진우의 귓가에 대고 두 사람만 들을
“일명아!”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조금 전까지 박장대소하던 조일명이 순식간에 피를 토하며 쓰러질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얼른 병원에 데려가!”조군수는 재빨리 판단을 내려 조일명을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분부했다.“이 자식아, 너 일명이에게 무슨 짓 했어?”나가려던 조군표는 뭔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흉악스럽게 물었다.“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옛날에 다친 상처가 다시 재발한 거예요. 굳이 탓을 하고 싶다면 당신 아들을 때린 선우희재를 탓하세요.”유진우가 어깨를 들먹였다.“너...”조군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정확한 증거가 없어 뭐라 할 수도 없었다.“둘째 형님, 이러다 골든 타임을 놓치겠어요. 일단 사람부터 살려야죠.”조군수가 귀띔했다.“가자!”조군표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유진우를 매섭게 째려보고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조군해 부녀도 그의 뒤를 따랐다.조일명은 가족 중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라 그의 안위가 조씨 가문의 앞날과도 직결된다. 족장인 조군수와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여보, 아까 뭔 짓을 했어요?”조선미가 유진우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 조일명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게 누가 봐도 이상했다.“뭔 짓을 하다니요? 선우희재가 그런 거라니까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조선미가 두 눈을 부릅떴다.“지금 옆에 아무도 없으니까 나에게만 솔직하게 얘기해요.”“알았어요. 아까 그냥 조일명의 상처에 소금 좀 뿌렸어요. 다친 데가 더 아프게.”유진우가 히죽 웃었다.전에 선우희재의 일격에 조일명은 이미 내상을 입었다. 그리고 유진우는 아까 조일명의 어깨를 두드릴 때 진기를 미친 듯이 불어넣었다. 그 바람에 안정을 되찾았던 내상이 다시금 폭발하게 된 것이었다.“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죠?”조선미가 떠보듯이 물었다. 비록 조일명과 사이가 좋지 않지만 둘째 큰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이다. 어쨌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