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혁이 어떤 사람인가. 중주에 피바람이 불게 한 살아있는 재난 그 자체였다. 수많은 사람을 벌벌 떨게 만든 괴물이었다. 10년 전, 도시에 재난을 몰고 온 장본인이었다. 그전까지는 누구도 열다섯밖에 안 되는 소년이 세상을 발칵 뒤집을 줄 몰랐다. 어쩐지 장군이 이 사람을 보고는 놀라더라니. 그들의 앞에 서 있는 이 자가 10년 동안 잠적한 천재, 유장혁이었다. “쿵!”부관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희망을 잃었다. 유진우는 고개를 돌려 조웅과 두 사람을 본 후 무시하고는 그대로 조천룡 앞으로 걸어갔다. “큰아버지, 살려주세요! 큰아버지!”조천룡은 부러진 다리를 감싼 채 몸을 웅크리고 뒤로 물러나며 계속해서 소리쳤다. “내가 말했지, 시체도 안 남게 만들어 주겠다고.”유진우는 바닥의 채찍을 집어 들고 조천룡의 얼굴에 대고 힘껏 휘둘렀다. “악!”조천룡이 고통 섞인 비명을 질렀다. 얼굴의 살점이 뜯겨 나가고 피가 사방에 튀었다. 유진우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또 한번 힘껏 채찍을 휘둘렀다. “퍽!”채찍의 소리와 함께 조천룡의 피부가 옷처럼 발가벗겨졌다. “악!”조천룡이 또 한번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큰아버지! 살려주세요!”조웅은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하며 그대로 굳어있었다. 유진우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조천룡의 몸에 채찍을 휘둘렀다. 사방에 피와 살점이 튀었다. 고통 섞인 비명이 고막을 찢을 듯했다. “그, 그만! 잘못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조천룡이 바닥에 꿇은 채 울면서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진우는 귀가 먹은 것처럼 계속해서 채찍을 휘둘렀다. 이청아가 받은 고통의 열 배, 백 배는 돌려줄 작정이었다. “잘한다! 죽여버려!”구석에 숨어있는 양의성은 속으로 기뻐하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조천룡 같은 뛰는 놈도 유진우라는 나는 놈을 만나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유진우가 복수를 이어가고 있을 때 길게
고요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한복을 입은 노인이 유진우의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입을 벌렸다. 안병서가 고개를 숙이게끔 하는 노인이 유진우의 앞에서 무릎을 꿇다니!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하인이 주인을 만난 상황이라니. 이게 진짜 무슨 상황인가. “어...”양의성은 믿을 수 없어 입만 딱 벌렸다. 유진우가 그저 무술 실력만 좋은 줄 알았는데 이토록 강한 뒷배가 있었다니. 안병서의 지위는 매우 높았다. 하지만 한복을 입은 노인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기도 했다. 그러니 한복을 입은 노인은 지위가 더 높을 것이었다. 그런 인물이 유진우 앞에서 꿇다니! 누군가가 뒤통수를 세게 친 느낌이었다. 평소에 아무 것도 아니던 유진우가 이런 뒷배를 가지고 있다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이때의 조천룡은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노인이 유진우 앞에서 무릎을 꿇은 그 순간부터 그의 정신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유일한 희망마저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희망 대신 절망과 공포가 자리 잡았다. 구세주인 줄 알았던 사람이 유진우의 아래 사람이라니? 젠장! 보통 괴물을 건드린 게 아니었다. 양의성과 조천룡과는 다르게 조웅은 이미 죽을 각오를 마친 상태였다. 유진우의 신분을 안 그 순간부터 그는 자기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만약 반항한다면 죽는 것은 그뿐이 아니라 그의 전체 가족일 것이었다. “도련님, 10년만입니다... 소인, 드디어 도련님을 찾았습니다!”용복 어르신은 바닥에 꿇은 채 눈물을 흘렸다. 전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유진우는 미동 없이 차가운 표정으로 얘기했다.“꺼져!”두 글자를 내뱉은 유진우는 용복 어르신을 무시하고 그대로 조천룡 앞에 걸어갔다. 그는 살기로 가득한 상태였다. “죽, 죽이지마... 제발 죽이지마... 날 살려준다면 뭐든지 다 할게!”조천룡은 놀란 나머지 소변을 지린 상태로 머리를 조아렸다.
이틀 후, 평안 의원. 기절해 있던 이청아는 드디어 깨어났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평범한 방이었다.테이블 하나, 의자 두 개 그리고 침대까지.살짝 익숙했다. 마치 전에 와 본 것처럼.“일어났어?”이때 유진우가 손에 쇠고기 야채죽을 든 채 들어왔다.별거 아니었지만 이틀을 연속 굶은 이청아에게는 꽤 유혹적이었다.그리고 그녀의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났다. “네가 날 구해준 거야?”이청아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물었다. “네가 다친 채로 길가에 있는 것을 주워 왔을 뿐이야.”유진우가 담담하게 얘기했다. “주워 와?”이청아는 눈썹을 찌푸리며 묻다가 그제야 또 물었다. “아, 나 얼마나 쓰러져 있었어? 조씨 가문은 지금 무슨 상황이야? 내 부모님은 괜찮으시고?”연이은 질문 폭탄에 유진우는 골치가 아팠다.그저 일일이 대답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넌 이틀을 기절해 있었고 가족은 다 괜찮아. 조씨 가문은 이미 불에 타서 다 사라졌어.”가족이 무사하다는 소리에 이청아는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곧 놀라서 되물었다. “불에 탔다고? 무슨 일이야?”“자세히는 모르는데 가스가 샜나 봐. 조씨 가문의 이삼십 명 되는 사람들이 다 화재에서 죽었다고 하더라고.”유진우가 대답했다. “가스가 새? 이렇게 타이밍 좋게?”이청아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다 자업자득이야. 그동안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이렇게 된 거지.”유진우가 대답했다. 그러자 이청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시름을 놓았다. 조씨 가문이 없어지면 보복당할 위험도 없었다. “됐어. 그만 생각하고 죽부터 먹어.”유진우는 쇠고기 야채죽을 건넸다. “고마워.”배가 고픈 이청아는 거절하지 않고 죽을 건네받은 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따뜻한 죽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런데도 아쉬운 것인지 이청아가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내가 가서 한 그릇 더 가져올게.”유진우는 가서 또 한 그릇 떠왔다. 이청아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두 번째 그릇도 다 먹어버렸다. 뜨끈한 죽이 위를
한바탕 소동 끝에 이청아는 얼굴이 붉어지고 땀에 흠뻑 젖게 되었다.그 원한에 가득 찬 눈빛은 유진우를 소름이 끼치게 했다. ‘단지 약을 발랐을 뿐이잖아? 왜 모욕을 당한 것처럼 그러는 건데.’“다 봤냐고, 다 봤으면 빨리 나가!”이청아는 이불로 몸을 가렸다. 저 가는 허리 라인과 탐스러운 엉덩이는 사람을 유혹시키는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었다.“이 약은 네가 가져가. 닷새 정도 바르고 나면 흉터가 사라질 거야.”유진우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약병을 내려놓고는 문밖으로 나갔다.시간이 얼마 흐른 뒤, 옷을 정리하고 입은 이청아도 방문을 열고 나왔다.불과 아까까지만 해도 화를 내던 그녀는 다시 도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핸드폰 좀 빌려줘, 전화 좀 하게.”이청아는 죽을 먹고 있던 유진우에게 손을 뻗었다.유진우도 아무 말 없이 순순히 핸드폰을 그녀에게 바쳤다.“잠금 비번은?”이청아가 물었다.“네 생일.”유진우는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말을 들은 이청아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입꼬리가 작게 올라갔지만 이내 다시 그 모습을 감췄다.“흥!”이청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잠금을 해제한 뒤, 그녀는 먼저 집에 연락해 안부를 전했다.이어서 그녀는 장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대표님! 드디어 연락이 되는군요! 요 며칠 도대체 어디에 계셨어요? 왜 아무런 소식도 없으셨던 겁니까?!” 장 비서의 말투는 꽤나 격동되어 있었다.“일이 좀 있어서 연락을 못 했어. 회사는 어때?” 이청아가 물었다.“새 회사는 괜찮아요. 금방 개업한 데다가 조씨 가문이 뒤에서 받쳐주고 계시고, 아무튼 여러 방면에서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청성 그룹에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장 비서가 대답했다.“무슨 문제?” 이청아는 조금 불안했다.“자금을 회수하는 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러 사업 파트너들이 돈을 갚지 않으셔서 회사가 금융위기에 놓였습니다. 다행히 대표님이 가지고 계신 160억 비상 자금
“천한 년! 죽여버릴 거야!”따끔거리는 볼을 만지던 정영준 은행장이 노발대발하며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민첩한 이청아는 곧장 다리를 뻗어 정영준 은행장의 가랑이를 힘껏 걷어찼다.“으악!”정영준 은행장이 비명을 지르며 가랑이를 붙잡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찌나 고통스러웠던지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역겨운 것!”이청아가 나가려던 그때 마침 문 앞에서 몰래 엿듣고 있던 유진우를 발견하고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여기서 뭐 해?”“아니야. 혹시라도 네가 괴롭힘당할까 봐.”유진우가 어깨를 들썩였다. 바닥에 누운 채 비명을 지르는 정영준 은행장을 본 그의 두 눈에 싸늘함이 스쳐 지나갔다.조금 전 다행히 이청아가 완승했길래 망정이지, 그가 나선다면 두 손을 영영 못 쓰게 만들어버렸을 것이다.“일 다 봤어. 그만 가자.”더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이청아는 하이힐을 또각또각 밟으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기분이 말이 아니게 다운되었다.“거기 서, 이 년아!”그때 정영준 은행장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람을 쳐놓고 도망치려고? 우리를 무시해?”그의 분부와 함께 몇몇 경비원이 달려와 두 사람이 못 나가게 문을 막아섰다.“천한 년! 감히 나한테 발길질을 해? 죽여버릴 거야!”정영준 은행장이 노기등등하게 다가오며 손찌검을 하려 했다. 그런데 유진우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넌 또 누구야? 감히 내 일에 끼어들어? 죽고 싶지 않으면 썩 꺼져!”정영준 은행장이 매섭게 쏘아붙였다.“청아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그 입 찢어버리겠어!”유진우의 낯빛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사과는 개뿔.”분노가 치밀어 오른 정영준 은행장이 주먹을 휘두르려 하자 유진우는 민첩하게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먼저 내리쳤다.“찰싹!”커다란 체구의 정영준 은행장이 그대로 맥없이 튕겨 나갔다. 맞은 얼굴이 살짝 비틀어졌고 입을 벌리자 이가 우르르 빠졌다.“뭐?”튕겨 나간 정영준 은행장을 본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유진우가
“대체 어떤 놈이 감히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워? 죽고 싶어 환장했나 봐?”조민이 시가를 물고 위세를 부리며 걸어 들어왔다.혹시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저절로 길을 비켜주었다. 이청아마저도 낯빛이 잔뜩 어두워졌다.조훈이 죽은 후에 모든 세력을 물려받은 조민은 전보다 훨씬 더 위풍당당해 보였다. 게다가 강천호까지 뒤를 봐주고 있어 그를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다들 옆문으로 가. 여긴 내가 막고 있을게.”이청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유진우 앞을 막아섰다. 그녀가 나름 신분이 있어 조민이 아무리 미쳐 날뛴다고 해도 그녀를 어찌하진 못할 것이다.하지만 유진우는 달랐다. 신분도 배경도 없는 그가 조민의 손에 잡힌다면 죽음 아니면 평생 장애가 남을 정도로 두들겨 맞을 것이다.“간다고? 어딜?! 조민 회장님이 온 이상 오늘 누가 와도 너희들을 못 구해! 그냥 얌전히 죽길 기다려.”비웃음과 함께 정영준 은행장이 조민에게 뒤뚱뒤뚱 걸어갔다.“회장님, 드디어 오셨군요. 제 얼굴 좀 보십시오. 잔뜩 얻어맞았습니다.”“응?”조민이 그를 흘겨보았다.“대체 무슨 일이야?”“어떻게 된 거냐면요. 아까 저 여자가 대출하겠다면서 절 찾아왔는데 신용이 별로 좋지 않아서 제가 거절했거든요. 그런데 글쎄 파렴치한 년이 절 꼬시지 뭐예요? 그것도 다른 남자들이랑 다 같이 놀재요. 제가 싫다고 거절하니까 대뜸 손찌검부터 날렸어요. 정말 극악무도한 여자예요!”정영준 은행장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사실을 왜곡했다.“그래? 그렇게나 나댔어? 내 이름 얘기 안 했니?”조민의 표정이 무척이나 싸늘했다.“당연히 얘기했죠. 그런데 회장님을 전혀 안중에 두질 않더라고요. 회장님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쥐어패 버리겠다나 뭐라나!”정영준 은행장이 거짓말을 잔뜩 부풀려 말했다.“그래, 아주 좋아!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아주 등신으로 아나 보지?”조민이 흉물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대박 그룹의 회장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아니야! 말도 안 돼!’이청아는 그 생각을 바로 접었다.유진우는 그냥 일반인이다. 얼굴이 잘생긴 것 말고는 별다른 재주도 없는 사람이다.그와 달리 조민은 조훈 어르신의 뒤를 이었고 대박 그룹의 회장인 데다가 부하도 수백 명에 달한다. 그런 그가 유진우를 두려워할 리가 있겠는가?‘내가 괜한 생각한 걸 거야.’조민은 아직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심하게 얻어맞은 정영준 은행장은 피까지 토하며 고통스러워했다.그는 정영준 은행장을 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유진우가 화를 내어 그의 목숨을 앗아가면 큰일이니까.“회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만 때리세요... 제발 그만요!”정영준 은행장이 울며불며 처량하게 빌었다.조민은 유진우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유진우의 낯빛이 조금 풀린 걸 확인하고 나서야 주먹을 멈추었다.‘화풀이할 놈이 있었길래 망정이지, 안 그러면 큰일 날뻔했어.’“나한테 사과해서 뭐 해! 이 대표님이 널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너 오늘 여기서 죽어.”조민이 으름장을 놓았다.“이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까 제발 용서해 주세요.”정영준 은행장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손이야 발이야 하고 빌었다. 전의 오만방자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됐어.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이청아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네네, 바로 꺼지겠습니다.”정영준 은행장은 연신 머리를 끄덕이고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어찌나 급히 도망치는지 벗겨진 신발을 주울 새도 없었다.“이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다 제가 잘못 가르친 탓이에요. 이번 일을 제대로 반성하겠습니다.”조민이 한껏 자세를 낮추었다. 머리가 좋은 조민은 유진우가 평소에도 겸손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의 정체를 까발리지 않았다.“조민 씨가 이토록 정의로운 분인 줄은 정말 몰랐어요. 조민 씨를 다시 보게 되었네요.”이청아가 덤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별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요, 뭐.”조민이 제 발 저린 듯 말했다.
점심시간 천향원.조선미와 안도균이 차를 음미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선미야, 우리 전에 했던 내기 기억하고 있지? 벌써 사흘이 지났고 난 여전히 무사해. 약속 지켜야지?”안도균이 차를 한 모금 홀짝이고는 히죽 웃었다.“삼촌, 뭐가 그리 급해요? 아직 사흘이 되려면 반나절이나 남았어요.”조선미의 표정이 한없이 여유로웠다.“하하... 너 정말 그 사기꾼 놈을 믿는 건 아니지?”안도균은 그저 가소롭기만 했다.“수년간 무술을 연마한 내가 내 몸 상태가 어떤지조차 모를 리가 있겠어? 날 지금 봐봐, 아픈 사람 같아 보여?”“그건 모르겠지만 전 유진우 씨의 판단을 믿어요.”조선미가 여유롭게 웃었다.“흥, 그 자식이 대체 너한테 뭔 짓을 했길래 이렇게까지 믿는 거야?”안도균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그러게요. 이것도 인연인가 보죠...”유진우의 얼굴을 떠올리던 조선미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아무튼 아직 반나절 남았어요. 날이 저물기 전까지 삼촌이 무사하다면 패배를 인정할게요.”“그래. 그럼 반나절만 더 기다릴게. 그 사기꾼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해줄게.”안도균은 경호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차에 올라탄 후 한 경호원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대표님, 조선미 씨처럼 훌륭한 분이 왜 그런 사기꾼을 마음에 들어 한대요? 전 정말 이해가 안 가요.”“여자들은 원래 생각을 벗어나는 법이지. 이제 유진우라는 자식 좀 조사해 봐. 대체 어디서 온 누구인지 알아야겠어.”안도균이 분부했다.“알겠습니다.”대답을 마친 경호원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차가 천천히 달렸고 안도균은 평소처럼 옆에 기대 두 눈을 감았다.그런데 잠시 후 갑자기 흉통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여 그리 신경 쓰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이 점점 심해지더니 나중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돼버렸다.마치 칼로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고통이었다. 평소 강인한 성격의 그마저도 고통에 몸부림쳤다.“그 사기꾼 얘기가 다 사실이란 말이야? 이렇게나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