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건우는 이에 맞장구쳤다. “유진우, 당신에게 조언 하나 해 주죠. 가능한 빨리 선미를 떠나는 게 좋을 거예요. 아니면 스스로 굴욕을 자초하는 꼴이에요.” 이에 대해 유진우는 신경도 쓰지 않고 차만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거만한 태도가 여러 사람을 더 화나게 했다.“흥, 방금까지 거만하지 않았어요? 왜 지금은 말을 못 하는 거죠? 이 정도밖에 안 되나요?” 주하늘이 비웃었다.그녀가 보기에 상대방은 분명히 자신을 부끄러워했다.“됐어, 누군가의 체면 좀 살려주자. 아니면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게 돼 있어.”나동수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주먹질 좀 하는 루저라고 생각하며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응? 저분은 또 누구야? 정말 잘생겼고 또 품격이 남다르네.”이때, 주하늘은 뭔가를 본 듯 현관 쪽을 가리켰다.몇 사람은 목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부채를 들고 당당하게 걸어들어오고 있었다.남자는 미소를 띠며 품위 있게 걸어왔고 그의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귀티가 났다.“아니! 저분은 황보 가문의 황보걸 도련님 아닌가! 황보걸도 올 줄이야.”남자를 보고 정건우는 깜짝 놀랐다.“황보걸? 그 유명한 남성 10 공자 중 한 명 아닌가?” 주하늘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맞아! 바로 그 사람이야!”정건우는 머리를 세게 끄덕였다. “황보걸은 서울에서 가장 최상등의 집권자야. 그 신분과 지위는 조일명보다 한 단계더 높아.”“호호호... 정말 대박이야! 여기서 황보걸을 만나다니, 오늘은 정말 운이 좋네.” 주하늘은 놀라고 기뻐했다.황보 가문은 탑쓰리 중의 하나이다. 종합적인 실력으로 보면 조씨 가문을 완전히 압도한다. 황보 가문의 도련님은 자연히 신분이 더 높다.“솔직히 말할게, 나는 황보걸과도 꽤 친분이 있어.” 이때 나동수가 불쑥 말을 꺼냈다. “뭐라고? 네가 황보걸을 알아?” 그 말에, 주하늘 등 몇 명은 다시 얼굴색이 변했다.“물론이지, 우린 함께 식사도 했고 골프도 쳤다고.” 나동수는 자랑스러
“응?”유진우에게 정중하고 공손한 황보걸을 보고 나동수 몇 사람은 놀라 멍해졌다.하나 둘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을 수가 없었다.‘버젓한 황보 가문의 도련님이자 남성 10 공자 중 한 명으로 최고의 권세로 알려진 황보걸이 어떻게 루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맞이할 수 있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뭐, 뭐야. 유진우가 황보걸이랑 아는 사이라니?”주하늘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황보걸이 나동수를 보고 온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상대의 목표는 유진우였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는 꽤 가까운 것 같았다.“저 녀석이 어떻게? 황보걸과 아는 사이라니?” 정건우는 깜짝 놀랐고 질투심이 더 커졌다.루저가 어떻게 최상등 귀족과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있겠는가?“어떻게 그럴 수 있지?”나동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황보걸에게 무시당하면 그만이지만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존재가 뜻밖에도 유진우에게 공손하게 대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저 녀석 한낱 이름 없는 의사 아닌가? 어떻게 이런 큰 인물을 아는 거지?’“보아하니 선미 남자친구는 역시 만만치 않은가 봐.”지켜보던 현미리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며 궁금증이 더해졌다.“도련님, 다 지나간 일입니다. 게다가 그 일은 도련님과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유진우가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황백이 맞은 일로 황보 가문은 이미 직접 사과했고, 황보곰도 대가를 치렀다.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면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진우 씨는 역시 도량이 크시네요. 우리 할아버지는 당신 같은 호걸을 매우 좋아하세요. 시간이 있으면 황보 가문에 방문해 주셨으면 해요.”황보걸은 미소를 지으며 러브콜을 보냈다.“네, 시간이 나면 반드시 황보 어르신을 찾아뵙겠어요.”유진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황보용명 맹주에 대해 유진우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실력뿐만이 아니라 의협심이 강하고 은혜와 원한을 분명히 하시는 분이다.“도련님께서 이렇게 오셨는데 마중을 못
“자, 제가 먼저 여러분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조군수는 두 손으로 술잔을 들고 여러 사람을 향해 일일이 보고는 단숨에 들이켰다.이를 보고 사람들도 일어나 잔을 들어 답례했다.한 차례의 인사말이 끝난 후, 곧 선물코너에 들어섰다.“어르신, 이것은 제가 어르신을 위해 공들여 만든 금말입니다. 원기왕성하고 모든 일을 다 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어르신, 이 옥패는 조선시대의 전유물입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족장님, 이 그림은 중국 당백호의 진품입니다. 저는 족장님의 몸이 건강하고 웃음이 항상 활짝 피기를 바랍니다.”하객들이 하나둘씩 선물을 들고 나타나 축하 인사를 건넸다.현장에는 부자들이 많고 권력자들이 모여 있었다. 선물을 주는 이 코너는 은근히 서로 겨루어 보는 뜻이 숨겨져 있었다.준 선물이 귀중하고 희귀할수록 크게 나타낸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씨 집안과 친해질 수 있다. 그래서 선물을 주는 사람마다 거의 갖은 방법을 생각했다. 보물이거나 신기한 물건 등이다. 그리고 많은 보물들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었다.“그래요... 여러분, 애 많이 쓰셨네요.”조군수는 미소를 지으며 선물을 주는 사람마다 응답했다.현장에 기쁨이 가득 넘칠 때, 종소리 같은 큰소리가 갑자기 공중에서 터졌다.“선우 가문에서 왔습니다!”말이 끝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향했다.만인의 주목 속에 잘생긴 얼굴에 기세가 드높으며 몸집이 큰 남자가 하인을 데리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남자의 얼굴은 차갑고, 칼 같은 눈빛에 놀라운 카리스마, 온몸에는 스산한 기운이 짙게 풍겨 사람을 추위에 떨게 해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선우희재? 선우희재라니?”“헉, 조씨 가문의 체면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네. 호풍장군인 선우희재가 직접 찾아와 축하하다니!”선우희재를 보고 현장은 순식간에 술렁거렸다.선우희재의 이름을 남성 전체에서 누가 모르는가? 선우희재는 공인하는 천재이다. 나이가 서른도 안 되
“무슨 상황이지?”꽃가마가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속삭였다.오늘이 조군수의 50번째 생신잔치 아닌가? 선우희재가 꽃가마를 들고 온 건 무슨 뜻이지? 일부러 행패를 부리는 건가?“선우희재 씨, 이건 무슨 뜻입니까?”조군수가 미소를 천천히 걷혔다. 그는 상대방이 이렇게 단호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고, 나타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줄 몰랐다.“혼약에 따라 오늘 저는 조선미를 제 아내로 맞이할 것입니다.”선우희재는 담담하게 말했다.“혼약? 아내로 맞이?”“뭐? 설마 선우희재와 조선미가 이미 약혼한 건가?”“두 사람은 잘 어울리니 약혼을 하는 것쯤이야 정상이야. 그런데 신부를 맞이하는 방식이 너무 당돌하네.”뭇사람들은 의아해하고 의심이 되고 호기심도 많았으며 지어는 질투하기까지 했다.생신 잔치 당일에 신부를 맞이하려 하다니, 이건 아마 사상 초유의 일이다.“선우희재 씨, 혼약은 나중에 다시 의논해요. 오늘이 제 생일인데 체면을 세워주실 수 없겠습니까?”조군수는 얼굴 하나 바뀌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제가 한 결정은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선우희재는 단칼에 거절하고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말했다. “제가 오늘 여기에 왔으니 무조건 사람을 데리고 돌아가야 합니다. 선미 씨, 가마에 오르세요!”이 말이 나오자 장내가 떠들썩해졌다.아무도 선우희재가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바로 데려가려 하다니. 이건 신부를 맞이하는 게 아니라 분명 결혼을 강요하는 것이다.“선우희재 씨, 너무한 거 아닌가요?”조군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결혼이란 원래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결혼을 강요하면 비웃음을 받을까 두렵지 않나요?”“나 선우희재는 평생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어요. 오늘 부탁하든 강요하든, 나는 꼭 선미 씨를 신부로 맞이해야겠어요.”선우희재는 목소리를 높였다.“내 딸이 시집을 안
이때 조일명이 갑자기 상을 치며 일어나 호통쳤다.“선우희재 씨! 당신이 능력이 좀 있다고 해서 여기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 조씨 가문은 당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만만한 가문이 아니라고요.”“당신은 누구죠? 무슨 자격으로 나랑 말을 하는 거죠?”선우희재는 싸늘한 눈으로 힐끗 보았다.“흥, 잘 들어요!”조일명은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었다. “저는 조일명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범표사의 고급 장교예요. 십여 차례의 전쟁에서 수백 명을 죽였어요.”“어린 군관 하나가 장군도 아니면서 감히 내 앞에서 제멋대로라니?”선우희재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장교에 불과하지만 나의 장군은 홍연 전쟁 여제예요. 당신이 홍연 전쟁 여제와 싸워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조일명이 거만하게 말했다.“조홍연?”선우희재가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마침내 얼굴이 약간 동요했다.용국 제일의 전쟁의 여제인 조홍연은 공적이 뛰어나고 배경도 두텁고 무도 조예도 훌륭하다.이런 여자에 비하면 선우희재는 아무것도 아니다.하지만 단지 현재뿐이다. 그는 10년도 안 되어 상대방을 따라잡을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왜요? 두렵나요?”조일명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전쟁 여제의 이름을 들으니 다리가 후들거리죠? 내 말 잘 들어요. 자신의 조그마한 공적을 믿고 안하무인 하면 안 돼요. 이 세상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요.”이 말이 나오자 조씨 집안사람들은 잇달아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좋아, 말 잘했어!”“호풍장군이라 한들 뭐 어때요? 홍연 전쟁 여제 앞에서는 굴복해야 하는데.”“흥, 제멋대로더니. 지금 체면이 안 서죠?”선우희재가 곤욕을 치르는 걸 보니, 무릇 조씨 가문의 자제들은 모두 정신이 들었다.“역시 내 아들이야... 몇 마디 말에 선우희재를 압도하다니.”앞줄에 선 조군표는 자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들이 나서니 그도 덩달아 덕을 보았다.“좋네, 오늘 일명이가 없었으면 선우희재를 혼내주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야.”
“응?”중상을 입고 쓰러진 조일명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선우희재가 손가락 하나만으로 범표사의 고급 장교를 무너뜨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이 실력, 강해도 너무 강한 거 아닌가?가장 관건적인 것은 조일명의 뒤에는 홍연 전쟁 여제가 있는데 선우희재가 여러 사람 앞에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은 홍연 전쟁 여제의 체면을 깎이게 하는 것과 같다. 상대는 오만하고 제멋대로인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어 두려움이 없는지 모르겠다.“선우희재! 감히 우리 조씨 가문의 자제를 다치게 하다니, 정말 우리 조씨 가문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인가?”잠시 멍한 표정을 지은 후, 조씨 가문 사람들은 잇달아 상을 치며 일어났고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선우희재, 난 범표사 장교야. 감히 나를 다치게 한다면, 홍연 전쟁 여제가 절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조일명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놀라고 노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부적인 재능이 있고 이해력이 뛰어나서 젊은 나이에 본투비 고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실력이 선우희재 앞에서 아무것도 아닐 줄은 꿈에도 몰랐다.“자네가 자네의 주제도 모르는군.”선우희재는 내려다보며 말했다.“조홍연이 여기 있으면 자연히 조홍연에게 체면을 세워주겠지만 당신은 뭐야? 홍연전쟁 여제를 등에 업은 쓰레기일 뿐인데, 어디서 감히 날 협박하는 거지? 그리고 범표사 20만 대군 안에 고급 장교만 해도 무려 백 명이나 들어 있어. 조홍연의 신분으로는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를 텐데, 당신이 왜 여기서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리는 거지?”이 말이 나오자 조일명은 순간 안색이 변했다. 조일명은 상대방이 그의 비장의 카드를 한눈에 꿰뚫어 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맞다, 조일명은 확실히 범표사의 고급 장교이긴 하지만, 평일에는 조홍연을 만날 자격도 없다.다만 범표사로서 그는 습관적으로 조홍연의 명망 있는 이름을 입에 올릴 뿐이다. 그렇다면 어딜 가나 위세를 떨치고
선우희재가 갑자기 발을 쾅쾅 구르자 광포한 진기가 바로 조일명의 몸에 부딪혔다.“푸!”조일명은 그 충격에 연신 뒷걸음질을 치며 다시 한번 피를 뿜었다.“너...”조일명은 이를 악물고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오늘 정말 고꾸라지겠다는 예감이 들었다.“선우희재! 우리를 너무 업신여기지 마!”아들이 다시 다치는 것을 보고 조군표는 자신도 모르게 벌컥 화를 냈다.“쓸데없는 소리 말고 선택해요. 꽃가마에 오를 것인지, 관에 들어갈 것인지.”선우희재가 뒷짐을 지고 서 있으니, 사람 전체가 위풍당당하게 보였다.“선우희재! 너 혼자만이 조씨 가문 전체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해?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조군표가 분노했다.“제가 혼자겠어요?”선우희재는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들어와.”“쿵쿵쿵...”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밖에서 갑자기 질서 있는 발소리가 났다.먼 곳에서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탁자 위의 잔에 있는 술이 조금씩 출렁이기 시작했다.곧이어 많은 사람들의 경악하는 눈길 속에 검은 옷과 복면을 무장한 호위병들이 기세가 드높게 뛰어들어왔다. 이 호위병들은 몸집이 크고 눈빛이 날카로우며 카리스마가 넘쳤다. 온몸에 살벌한 기운이 감돌고 있어, 분명 오랜 세월 모래벌판을 거친 정예의 군대일 것이다. 등장하자마자 모든 사람을 진정시켰다.특히 그 검은 총구는 사람을 오싹하게 했다.“응?”그 시커먼 호위병을 보고 조씨 집안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안색이 크게 변했다.선우희재가 신부를 맞이하는 날, 뜻밖에도 한 부대를 동원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무서웠다.“이제 누가 불복한다면 앞으로 나오세요.”선우희재가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을 멸시했다. 시선을 마주친 사람은 누구나 고개를 숙였다.‘시발, 호위병까지 나섰는데 누가 감히 앞장서겠어? 이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응?”조군수는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안색이 좀 좋지 않았다.가장 걱정했던 일이 결국 일어났다.“너 이 자식
“조선미를 데려가는 거, 나한테 물어봤어?”유진우는 앞을 가로막고 냉담한 표정으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응?”많은 손님들이 경악하며 매우 뜻밖이라고 생각했다.이 시점에서 감히 선우희재와 맞서는 사람이 있을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겁이 없네?’“유진우 저 자식이 나서서 뭐 하는 거야? 죽고 싶은 건가?”주하늘은 눈을 부릅뜨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선우희재의 신분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뒤에 있는 군대만으로도 충분히 억지력이 있었다.“흥, 감히 호풍장군을 도발하다니? 정말 함부로 덤벼드네!”정건우가 냉소했다.선우희재는 군대를 손에 쥐고 횡포를 부린다. 명령만 내리면 유진우 같은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멍청한 놈! 자기가 황보걸을 안다고 해서 선우희재 앞에서 위풍을 부리며 우쭐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말 웃겨.”나동수는 곧 죽은 사람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황보걸은 비록 신분이 낮지는 않았지만 벼슬도 직위도 없어 선우희재와는 비교도 안된다.“이크, 큰일 났다.”현미리는 미간을 가볍게 찡그렸다. 그녀는 사랑 때문에 나서는 유진우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감히 나를 막아?”선우희재는 두 손을 짊어지고 위아래로 훑어보았으며 눈빛은 매서웠다. 마치 맹호처럼 자신의 사냥감을 노리고 있었다.“못 할 게 뭐가 있어?”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선미 씨는 너한테 시집가지 않겠다고 하잖아, 그건 선미 씨의 자유야. 네가 사람들 앞에서 결혼을 강요하고 가차 없이 빼앗아 가는 건 내가 허락하지 않아.”“허락하지 않는다고?”선우희재는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렇다면 어쩔 건데? 네가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해 볼 테면 해봐. 하지만 네가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를 갈기갈기 찢을 거야.”유진우는 똑바로 말했다.“뭐?”이 말이 나오자 장내가 떠들썩해졌다.“시발, 저 놈이 진짜 미쳤나? 감히 이렇게 날뛰다니?”“참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네!
“네 말은 누군가 4대 제후가 동시에 반란을 일으키게 조종하고 있단 말이야?”이의진이 얼굴을 찌푸렸다.“맞아요.”유천우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지금 서경에서 4대 제후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죠.”“유태범!”이의진은 깊게 고민하지도 않고 말했다.“작은아버지는 야심이 크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에요. 4대 제후의 손을 빌려서 우리가 병부를 내놓게 압박하고 있는 거예요.”유천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분석했다.“만약 우리가 따르지 않는다면 4대 제후는 반란을 일으켜 우리가 군대를 동원하게 압박한 다음 유태범이 중간에서 방해하면서 우리한테 불리하게 할 겁니다. 우리가 반란을 진압하는 데 실패하면 서경왕부의 위엄이 크게 손상될 거예요. 그러다가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해질 때 구세주처럼 나타나서 백성들을 구하고 4대 제후를 제압할 계획인 거죠. 그때가 되면 유태범은 만인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왕이 될 겁니다.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듯이 유태범이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되면 새로운 서경왕이 되겠죠. 아주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웠네요.”유천우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심각해졌다. 유태범이 꾸민 건 음모가 아니라 공공연한 모의였다. 하지만 상대가 나쁜 짓을 꾸미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해결하기 어려웠다. 이게 바로 공공연한 모의의 무서운 점이다.“그렇다면 유태범이 진작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네.”이의진이 얼굴을 찌푸렸다.“지금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거야. 군대를 동원할 수도 없고 설득도 불가능하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해?”“나머지 4대 제후와 아버지의 옛 부하들과 손을 잡아야만 유태범과 겨룰 수 있을 겁니다.”유천우가 대답했다.“일리 있어.”이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나머지 4대 제후를 모셔오도록 할게. 같이 모여서 상의하는 게 좋겠어.”“어머니, 제가 직접 갈게요. 그래야 성의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죠.”유천우가 직접 나섰다. 나머지 4대 제후
“형, 난 진짜 안 돼요.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은 형밖에 없어요.”유천우의 얼굴에 조급한 기색이 드러났다.“됐어. 왕위 얘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 안팎으로 불안이 끊이지 않아. 일단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야.”유진우가 화제를 돌렸다.“형이 나서서 이끌어준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난 지금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어.”그러자 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유태범 일당이 아직 내가 서경으로 돌아온 걸 모르고 있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어. 내가 돌아온 걸 몰라야 유태범이 무슨 꿍꿍이라도 꾸민다면 제때 해결할 수 있지. 그리고 호룡각의 잔당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어. 기회를 봐서 싹 다 일망타진할 거야.”“그런 거였군요.”유천우는 그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알겠어요. 그럼 서경왕부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일은 나한테 맡기고 형은 보이지 않는 음모들을 해결해주세요.”“그래. 그렇게 하자.”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아 참. 그리고 이거.”유천우는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금색 영패 하나를 꺼내 유진우에게 건넸다.“이건 내 군령이에요. 이것만 있으면 내 결사대원 800명을 동원할 수 있고 필요한 순간에 꽤 도움이 될 겁니다.”그의 결사대원 800명은 모두 엄선해서 뽑은 고수들이었다.유천우가 태어난 순간부터 이의진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몰래 그들을 훈련시키면서 힘을 비축했다.20년이 지난 지금 결사대원 800명은 무서울 정도로 성장했다.“알았어. 영패는 일단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돌려줄게.”유진우도 거절하진 않았다.지금 이청성의 도움을 받고 있긴 했지만 호룡각의 잔당들에 비하면 아직 역부족이었다. 이젠 유천우의 결사대원 800명이 더해졌으니 싸울 힘이 생겼다.“천우야!”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조금 전 나갔던 이의진이 다시 다급하게 빈소로 들어왔다. 유진우는 재빨리 가면을 쓰고 근위병인 척 옆에 섰다.유천우와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었던 건 형제끼리의 믿음 때문이
“형?”유천우는 인피 가면을 벗은 남자를 보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이내 기쁨에 겨워했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서경왕부에 위장 잠입한 유장혁이었다.“많이 컸구나, 천우야. 이젠 혼자서도 일을 척척 해내고.”유진우는 배다른 동생 유천우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사실 조금 전 유천우와 이의진의 얘기를 전부 다 들었다. 유천우가 자신을 믿어준 것에 대해 무척이나 고마웠다. 물론 이의진이 걱정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지금까지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형제끼리 물고 뜯고 부자끼리 서로 죽이는 걸 수두룩하게 봐왔다. 자기 아들을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형, 서경에는 언제 왔어요?”유천우가 물었다.“이틀 정도 됐어.”유진우가 대답했다.“아버지 돌아가신 거 알았어요?”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유진우는 빈소의 영정사진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부자는 1년 전 강능에서 만났다. 그런데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다시 만났을 때 유진우는 빈소에 서 있었고 유만수는 관 속에 누워있었다.‘이건 뭐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유진우는 관 앞으로 걸어가 반쯤 열린 관뚜껑 사이로 그 안에 누워있는 유만수를 보았다. 얼굴이 평온한 걸 보니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았다.하지만 어찌 된 건지 그렇게 미워했던 유만수의 얼굴을 본 순간 슬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내가 만약 서경에 빨리 돌아왔더라면, 빨리 만났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왜?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유진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형, 사실 최근 2년 사이 아버지 건강이 점점 나빠져서 특효약으로 연명하셨어요. 의사는 아버지가 천인오쇠라고 하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어요. 천천히 쇠약해져서 죽는 것보다 이 결과가 아버지한테는 오히려 해방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어요.”유천우가 울먹거리며 말했다.“범인은 잡았어?”유진우가 돌아서서 물었다.“홍복홍이 지금 조사하고 있어요.”유천우가 대답했다.“서경왕부에 숨은 스파
그래야만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라도 지킬 수 있다.지금 왕위를 이어받을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은 표기 대장군 유태범밖에 없었다.첫째로 유태범은 유씨 가문 사람이라 왕족에 속했기에 명분이 정당했다. 둘째로 표기 대장군으로서 서경의 절반에 달하는 군대를 거느리고 있어 권력이 하늘을 찔렀다. 셋째로 유태범은 오랜 시간 동안 힘을 키워왔다. 인맥, 위신, 공로 모두 왕위에 오르기에 충분했다.현재 유태범이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적지 않은 관원들은 애도를 표한 후 바로 대장군 저택으로 가서 유태범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었다.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히 서경왕부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의진은 그들을 제압할 힘이 없었다.“어머니, 벌써 종일 여기 계셨어요. 들어가서 쉬세요. 이러다가 몸이 상하실까 걱정됩니다.”수심과 피곤이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을 본 유천우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어찌 편히 쉴 수 있겠어.”이의진이 고개를 내저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더 조심해야죠. 서경왕부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왕비인 어머니가 버티셔야 합니다. 절대 쓰러져선 안 돼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이의진은 뭐라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유천우가 가로챘다.“어머니, 이번에는 제 말을 들어주세요. 먼저 들어가서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아버지 곁을 지켜도 괜찮아요.”이의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천우는 도우미 두 명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너희 둘, 어머니를 방으로 모시고 잘 보살펴드려.”“알겠습니다.”두 도우미는 대답한 후 이의진을 부축했다. 무릎을 하도 오랜 시간 꿇고 있어 다리가 저린 나머지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천우야, 너도 몸 잘 챙겨. 절대 방심해선 안 돼.”이의진이 당부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유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나가는 걸 본 후에야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다들 돌아가. 여긴 나 혼자 지키면
그 시각 서경왕부 문 앞.유태범 등 3인은 한 무리의 근위병들을 이끌고 서둘러 걸어 나왔다.서경왕부를 떠난 후 조군영이 참다못해 물었다.“대장군님, 이의진 모자가 주제도 모르고 저렇게 날뛰는데 계속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합니까?”“당연히 내버려 둘 순 없지. 하지만 너무 대놓고 움직여서도 안 돼. 흑용군의 대부분 고급 장교들이 서경왕부에 충성해서 정말 싸우기라도 한다면 우리한테 좋을 게 없어.”유태범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조군영이 또 물었다.“대놓고 움직일 수 없다면 몰래 압력을 가해야지.”유태범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서경에 내란이 일어서 서경왕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진정한 리더가 누구인지 알게 될 거야.”“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이간질시킬게요. 백성들의 원한이 커져서 서경왕부도 감당이 안 될 때 대장군님이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겁니다. 그때가 되면 서경의 백성들은 대장군님께 고마워할 것이고 새로운 서경왕으로 모시겠죠.”눈치가 참 빠른 조군영이었다.“맞아. 아주 영특하구나, 너. 나중에 내가 서경왕 자리에 앉으면 표기 대장군 자리는 네 것이 될 거야.”유태범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대장군님.”조군영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얼른 움직여. 빠를수록 좋아. 절대 그 어떤 흔적도 남겨선 안 된다는 거 명심해.”유태범이 신신당부했다.“알겠습니다. 제가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조군영은 인사를 올린 후 자리를 떠났다.“대장군님, 일반적인 내란이라면 서경왕부의 뿌리를 흔드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반드시 강력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고원이 귀띔했다.“그건 나도 알고 있어.”유태범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동안 난 내 사람을 몰래 키워왔어. 8대 제후 중에 절반이 내 사람이야. 내 명령 한마디면 주저하지 않고 날 도와줄 거야.”“진작 준비하고 계셨군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고원이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서경왕이 되면 절대 섭섭지 않게 해줄게.”
“유태범은 오랫동안 야심을 숨겨왔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이 기회에 무조건 권력을 빼앗으려고 할 겁니다. 이 일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요.”유천우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맞아. 대놓고 움직이진 못해도 뒤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할 거야. 앞으로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해.”이의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위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절대 함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형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유천우가 한탄하듯 말했다.“천우야, 네 능력도 네 형 못지않아. 네 형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이의진이 그를 격려했다.“어머니, 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어요. 형님에 비하면 한참 부족합니다.”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이의진이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 장례식이 끝난 후에 폐하께 말씀드려서 너한테 왕위를 물려주게 할 거야. 앞으로 서경왕은 너고 그 중책을 맡아야 해.”“어머니, 왕위는 형 거예요. 전 그 자리를 물려받을 생각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서경왕은 형만이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고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천우야, 다른 일은 남한테 양보해도 이건 절대 안 돼!”이의진이 어두운 목소리로 호통쳤다.“그 자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꿈에 그리는 자리인지 알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거라고!”“전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저한테 있어서 권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아버지처럼 매일 애쓰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왕이 되면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걱정거리만 태산일 텐데. 그럴 바엔 맨날 먹고 놀면서 편히 살겠어. 그게 더 좋은 거 아닌가?’“이 녀석아, 일이 네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전에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건 다 네 아버지가 있어서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금 아무 권력도 손에 쥐지 않는다면 나중에 아주 처참한 결말을 맞이할 거란
“유장혁?”그 소리에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때 유씨 가문의 천재는 이름을 널리 떨쳤었다. 그런데 10년 전 자금성의 난이 터진 후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고 현재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런 그의 이름을 갑자기 들으니 놀랄 만도 했다.“도련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세자 전하의 생사도 불투명한 데다가 어디 있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그런 분한테 서경왕의 자리를 맡긴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 아닌가요?”조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두 손까지 펼쳐 보였다.“그러게요, 도련님. 제발 현실을 잘 알고 말씀하세요. 세자 전하께 기댈 바엔 차라리 대장군님께 기대는 게 더 낫죠.”고원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유천우가 자기 자신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실종된 지 10년이나 된 사람을 얘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얘기는 없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형도 꼭 돌아올 겁니다. 그때 가서 형이 왕위를 이어받아도 문제없죠.”유천우가 싸늘하게 말했다.“도련님, 제가 하는 말이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세자 전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면 어떡해요? 서경왕의 자리를 계속 비워둘 작정인가요?”조군영이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형님 죽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조 장군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유천우가 말했다.“살아있다면 지금 어디 계시는 거죠? 왜 나타나지 않는 겁니까?”조군영은 일부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형님한테 소식을 전했으니 꼭 올 겁니다.”유천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설마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니죠?”조군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위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퍼지면 서경 전체가 크게 흔들릴 거예요.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고요. 지금 당장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도 나서서 유천우를 설득했다.“형한테 자리를 물려주는 건 아버지의 유언이에요. 지금 명령을 거역하겠단 겁니까?”
사람들이 뒤돌아보니 거친 삼베옷을 입고 상복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차가운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남자는 위엄이 넘쳤고 온몸에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빈 조군영과 고원마저도 그를 보자마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표정이 진지해졌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유만수의 작은 아들 유천우였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유천우는 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여 예전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도 많이 저질렀었고 서경의 사고뭉치라 불리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2년 동안 유천우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더는 빈둥빈둥 놀지 않고 군에 들어가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처음에 사람들은 유천우가 군대에서 3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도련님이 군대의 혹독한 훈련을 버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런데 뜻밖에도 유천우는 군대에서 자리를 잡았고 공까지 세웠다.짧은 2년 사이에 병사에서 흑용군의 부장으로 성장했다. 든든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놀라운 성과였다.사람들은 그제야 유천우가 응석받이로 자란 도련님이 아니라 군사 천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천우야, 드디어 온 거야?”아들을 보자마자 이의진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 저도 모르게 밀려왔다.“어머니, 소식 다 들었어요.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유천우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군영과 고원에게 시선을 옮겼다.“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몰아붙이는 겁니까?”“그게...”조군영은 고원의 눈치를 슬쩍 봤다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도련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도 대국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현재 서경왕부에 리더가 없어서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많은 문제가 생길 거예요.”“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은 충성을 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대국?”유천우는 코웃음을 치고는 더는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
“서경 대원수의 직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부 투표를 거칠 뿐만 아니라 폐하께 보고하여 최종적으로는 폐하의 결정을 받아야 해요.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어요.” 이의진의 눈빛이 경계로 가득했다.유태범이 왔을 때 그녀는 처음에는 형제 간의 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군영과 고원의 몇 마디 말에 그녀는 갑자기 깨달았다.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유태범은 흑용군에서 유만수 다음가는 위망을 가지고 있었다.표기대장군으로서 그는 많은 심복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반의 병권도 장악하고 있었다.왕이 세상을 떠난 후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유태범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유태범이 지금 이미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다는 점이다.왕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권력을 탈취하려 하다니, 그녀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유만수의 죽음이 이 자들과 호룡각 잔당들이 암묵적으로 결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만약 유태범이 병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할 것이다.“마마, 급할 때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찌 폐하의 결정을 기다릴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빨리 국면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조군영이 계속해서 말했다.“맞습니다!”고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장수가 밖에 있으면 군령도 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폐하는 상황을 전혀 모르니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그래야만 소인배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폐하에게 보고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내부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승복할 수 있어요.”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투표라니요? 이게 투표할 일입니까? 전 서경을 둘러봐도 대장군님보다 원수 자리에 더 적합한 분이 누가 있습니까?” 조군영이 말했다.“그렇습니다, 왕비마마! 공적으로 보나, 위망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어르신을 제외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