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 이젠 너한테 바보라는 소리를 하는 것도 지겨워. 아무 값어치도 없는 쓰레기를 보물 취급하는 너도 정말 대단해.”단소홍은 마치 큰 이득이라도 얻은 것처럼 우쭐거리며 웃었다.수십억을 투자했다가 한 푼도 건지지 못할 줄 알았는데 누군가 덥석 사가다니, 이게 웬 떡?“유진우, 이번에 네 덕에 우리가 살았어. 안 그러면 진짜 빈털터리가 될 뻔했어.”장경화는 카드 안의 금액을 보며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었다.“유진우, 넌 정말 살아있는 보살이야. 인정!”이현은 고소해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하하, 대박 나면 우리에게 한턱내는 거 잊지 마.”장홍매가 조롱 섞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도현에게 사기당한 건 재수가 없었지만 호구를 만난 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진짜 전 재산을 날릴 뻔했다.“당신들이 후회만 하지 않으면 돼요.”유진우가 웃을 듯 말 듯 했다.“후회?”그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다가 크게 웃었다.‘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다니, 너 같은 바보는 사기당해도 싸.’“난 진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돈이 좀 있다고 해도 이렇게 막 써도 돼?”이청아가 눈살을 찌푸렸다.‘평소에는 아주 똑똑하던 사람이 왜 중요한 순간에 이런 실수를 하는 거지?’“지금 그 어떤 얘기를 해봤자 소용없어. 시간이 지나면 당신도 알게 될 거야.”유진우는 덤덤하게 웃기만 할 뿐 긴 설명은 생략했다.조금 전 그는 여러 번이나 충고했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나중에 확실한 결과가 나온다면 진정한 승자가 누구일지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흥, 마음대로 해!”이청아는 밖으로 나가려다가 문 앞에서 다시 발걸음을 멈췄다.“가만히 서서 뭐 해? 회사로 가야지.”“저기, 나 휴가 좀 내면 안 될까? 지인이 병원에 입원해서 좀 가보려고.”유진우가 갑자기 말했다.황백도 마침 이 병원에 있어 온 김에 가볼 생각이었다.“그러든지 말든지.”이청아는 흥 하고 쏘아붙이고는 그대로 가버렸다.5분 후, 유진우는 다른 병실로
“아저씨가 다쳤다는데 당연히 와봐야지.”하지원은 준비해 온 선물을 침대 옆에 내려놓았다.“이건 몸에 좋은 보양식이야. 아저씨가 하루빨리 쾌차하셨으면 좋겠어.”“고마워.”황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아 참, 소개한다는 걸 까먹었네. 이분은 우리 엄마셔.”하지원이 옆에 있는 젊은 여자를 소개했다.“안녕하세요.”황은아는 허리를 살짝 굽혀 인사했다.“그래, 안녕.”젊은 여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머... 오빠도 여기 있었네요?”하지원의 시선이 갑자기 옆에 있는 유진우에게 향하더니 사뭇 놀란 얼굴로 말했다.“도씨 가문에서 찾아오진 않았죠?”“응, 오지 않았어.”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도석현 같은 사람을 아예 안중에 둔 적이 없었다.“엄마, 지난번에 술집에서 다른 사람이 집적거릴 때 이 오빠가 나서서 해결해줬었어요.”하지원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정말 고마워요.”젊은 여자는 예의 바르게 웃어 보였다.“별것도 아닌데요, 뭐.”그런데 유진우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사모님, 실례지만 하나만 묻겠습니다. 혹시 최근에 머리가 자주 어지러우신가요?”“어떻게 알았어요?”젊은 여자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저 의학을 좀 알거든요. 어딘가 좀 불편해 보여서요.”유진우가 설명했다.“그렇군요...”젊은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저혈당이라서 가끔 머리가 어지러워요. 하지만 큰 문제는 없어요.”“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사모님의 눈에 핏발이 가득 섰고 호흡도 짧으며 몸도 딱딱하게 굳어있어요. 그리고 관자놀이의 핏줄도 튀어나왔고요. 아무래도 뇌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 같아요.”“뇌출혈이요?”젊은 여자는 눈살을 찌푸렸고 안색도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봐요, 젊은이. 말 좀 가려서 해요. 지난달에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뇌출혈이라니요?”‘멀쩡하게 생겨서 거슬리는 소리만 하네?’“사모님, 다시 한번 제대로 검사해 보시
“엄마!”갑자기 쓰러진 어머니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하지원은 재빨리 그녀를 부축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려고 소리를 지르면서 인중도 계속 눌렀다. 하지만 젊은 여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의식을 완전히 잃은 듯했다.“의사! 의사 선생님 어디 있어요?”하지원은 어머니를 업고 병원으로 뛰쳐 들어가며 소리를 질렀다.소란스러운 소리에 의료인들이 달려와 응급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그렇게 1시간 후, 응급실 문 앞.“지원아.”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몇몇 경호원과 함께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왔다.“아빠, 드디어 오셨네요.”남자의 등장에 하지원은 의지할 구석이 생긴 듯 상황을 설명했다.“엄마가 아까 갑자기 쓰러지셔서 지금 응급실로 들어갔어요. 의사 선생님이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면서 저에게 위독 통지서에 사인까지 하라고 했어요.”“갑자기 쓰러졌다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하용만이 눈살을 찌푸렸다.“저도 모르겠어요. 분명 멀쩡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됐어요.”하지원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지금 당장 군 병원으로 가서 단 선생님을 모셔와!”하용만이 옆에 있던 경호원에게 분부했다.“알겠습니다.”경호원은 바로 휴대 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그렇게 30분도 채 안 되어 백발이 성성하고 검은 옷차림의 한 영감이 전문 의료팀과 함께 부리나케 병원에 도착했다. 그들은 전부 군 병원에서 실력이 있기로 유명한 의사들이었고 아무나 내세워도 웬만한 의사들보다 훨씬 뛰어났다.“안녕하세요, 하용만 씨.”검은 옷 영감이 허리 굽혀 인사했다.“단 선생님, 저희 아내가 위독하다고 합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하용만이 진지하게 말했다.“최선을 다하겠습니다.”검은 옷 영감은 곧장 응급실로 들어가 신분을 밝힌 후 함께 응급 치료를 시작했다.항남 병원 의사들의 실력도 꽤 훌륭했지만 군 병원의 명의에 비교하면 그래도 차이가 있었다.몇 시간 동안의 응급 치료를 마친 후 검은 옷 영감이 드디어 응급실에서 나왔다.“선생님, 저희 아내는 어떤가요?”
“알겠어요.”하지원은 지체없이 바로 휴대 전화를 꺼내 유진우에게 연락하여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했다.“지금 바로 갈게.”유진우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그 시각 젊은 여자는 이미 VIP 병실로 옮겨졌다. 비록 잠시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나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유진우가 병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대부분 모두 의사들이었고 경호원도 몇 명 있었다.“오빠, 왔어요?”유진우를 본 순간 하지원의 두 눈에 기대가 가득했다.“지원아, 이분이 바로 네가 말한 그 명의야?”하용만은 유진우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눈앞의 사람은 생각보다 너무도 어렸다.‘20대 정도 돼 보이는 젊은이가 그런 뛰어난 의술을 지녔다고?’“아빠,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죠. 오빠가 젊어 보여도 실력이 정말 뛰어나요. 엄마를 보자마자 바로 병을 알아봤다니까요.”하지원이 설명했다.“아가씨, 제가 주제넘게 한마디 하겠는데요. 아무리 봐도 이 젊은이는 그저 어쩌다가 우연히 알아맞힌 것 같아요.”검은 옷 영감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유진우의 나이는 고작 20대였고 그는 의학에 발을 담근 지 40년이 넘었다. 그마저도 보아내지 못한 것을 상대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젊은이, 자신 있어요?”하용만이 떠보듯 물었다.“자신이 없었으면 여길 오지도 않았죠.”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좋아요. 내 아내의 병을 치료해준다면 절대 섭섭지 않게 사례하겠습니다.”하용만이 진지하게 말했다.“용만 씨, 정말로 이자에게 맡기려고요?”검은 옷 영감이 눈살을 찌푸렸다.“지금 사모님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데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합니까?”“지금보다 더 최악인 상황은 없어요.”하용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데... 그게 죽은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하지만...”검은 옷 영감이 또 뭐라 하려 하자 하용만이 손을 들었다.“젊은이, 이쪽으로 와요.”“네.”유진우는 고
“일... 일어났어요?”갑자기 의식을 되찾은 젊은 여자를 보자 사람들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저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검은 옷 영감마저 치료하지 못한 병을 젊은이가 침 몇 방으로 쉽게 치료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치료 과정도 딱히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럴수록 충격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어... 어떻게 이런 일이...”검은 옷 영감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뇌에 어혈이 쌓여서 식물인간이 될 거라는 진단까지 받은 환자를 침 몇 방으로 치료했다고? 지금 장난해?’“엄마가 의식이 돌아왔어요!”놀라움도 잠시 하지원은 흥분하여 펄쩍 뛰기까지 했다.어머니가 곧 식물인간이 될 거라는 소리를 듣고 그녀는 절망에 빠졌었지만 이리 빨리 깨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여보, 좀 어때?”하용만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재빨리 다가가 물었다.“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것 말고는 다 괜찮아요. 왜 그래요?”젊은 여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의 기억은 아직 쓰러지기 전 상황에 머물러있었다.“괜찮으면 됐어, 괜찮으면.”아내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하용만은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젊은이가 명의인 건 맞네요. 아까 하마터면 명의님을 못 알아볼 뻔했어요. 젊은이의 뛰어난 의술에 진심으로 탄복합니다.”그러고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예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치료비만 주시면 됩니다.”유진우의 태도는 비굴하지도 건방지지도 않았다.그나마 안면이 있는 사이라 도와준 것이기에 치료비는 당연히 받아야 했다.“하하... 역시 통쾌한 젊은이네요. 액수는 얼마든지 불러요.”하용만의 입이 귀에 걸릴 정도였다.“알아서 주시면 돼요.”유진우는 정확한 금액을 제시하지 않았다. 하용만도 망설이지 않고 60억이 적힌 수표를 통쾌하게 건넸다.“젊은이, 이 돈 먼저 받아요. 내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 해결해줄 테니까 언제든지 날 찾아와요.”“고맙습니다.”유진우는 손가락으로
그때 검은 옷 영감이 머뭇거리다가 결국 용기 내어 물었다.단지 침 몇 방으로 사람의 목숨을 살리다니, 정말로 너무도 신기했다. 체면을 차리지 않는다면 유진우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심정이었다.“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어요. 나중에 다시 얘기하죠.”유진우는 약 처방을 적어 하지원에게 건넸다.“어머님께 이 처방대로 약을 드시게 하면 돼. 한 달 정도면 완치될 거야.”“고마워요, 오빠.”하지원이 눈웃음을 지었다.“그럼 전 다른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유진우는 오래 머무르지 않고 인사를 건넨 뒤 바로 병원을 나섰다. 그런데 병원 대문을 나서자마자 오늘 조선미에게 약을 갈아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하여 택시를 잡고 곧장 조씨 별장으로 달려갔다....그 시각 조씨 별장 회의실.조군수를 중심으로 조씨 가문의 핵심 인물들이 한데 모여 조선미의 결혼을 상의하고 있었다.“셋째야, 정말 파혼할 셈이야? 파혼하면 결과가 어떨지 생각해봤어?”조군해가 눈살을 찌푸렸다.“형님, 전 이미 결정했어요. 무조건 파혼할 겁니다.”조군수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오늘 가족회의를 연 건 파혼에 관해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선우 가문의 행동은 이미 선을 넘었기에 절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 없었다.“선우영채가 죽은 바람에 선우 가문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우리가 파혼하겠다고 하면 저쪽에 빌미를 주게 돼. 그때가 되면 두 가문은 그야말로 전쟁이야.”조군해가 경고했다.“전쟁은 이미 진작 시작되었어요. 선우 가문이 저와 제 딸을 모함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두 가문의 혼사는 이미 파탄 났어요.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건 경계를 강화하는 겁니다.”조군수가 차갑게 말했다.“진짜 일을 그 지경까지 만들어야 해? 만약 선우 가문과 완전히 틀어지면 우리에게는 그 어떤 퇴로도 없어.”조군해가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형님, 저도 우리 가문이 무사하게 발전하길 누구보다 바라요. 그런데 지금 이런 문제가 생겼는데 결사의 각오로 임하지 않
“네가?”벌떡 일어선 조윤지를 보며 조군해는 살짝 놀란 눈치였다. 자기 딸이 자진해서 나설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좋아요. 저도 윤지가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선미 대신 윤지를 시집보내는 건 어때요?”그때 조군표가 나서서 힘을 보태자 나머지 사람들도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얼굴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조윤지가 확실히 조선미와 견줄만 했다. 그런 그녀를 선우희재에게 시집보내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다.“윤지야, 이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조군수가 진지하게 말했다.“셋째 작은아버지, 전 이미 충분히 생각했어요. 선미가 싫다고 하면 제가 시집갈게요.”조윤지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정말로 가문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겠어?”조군해가 계속하여 캐물었다.“제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어요? 조씨 가문의 딸로서 이건 저의 책임이에요.”조윤지가 또박또박 말했다.겉으로는 정의롭고 늠름한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무척이나 기뻤다.‘희생은 무슨. 웃기고 있네.’선우희재는 권력이 있고 배경도 있어 앞날이 창창한 데다가 얼굴까지 잘생겼다. 이런 훌륭한 남자는 줄곧 그녀의 이상형이었다.예전에 조선미가 선우희재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조선미가 먼저 포기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자신의 팔자를 바꿀 기회를 놓칠 조윤지가 아니었다.선우희재와 결혼한다면 선우 가문의 사모님이 될 것이다. 그 자리는 만인이 우러러보는 자리라 권력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형님, 윤지가 시집가겠다는데 형님 생각은 어떠세요?”조군수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조군해에게 물었다. 선우 가문은 생각보다 위험한 곳이라 희생을 자처하는 조카가 마음이 쓰였다.“그게...”조군해는 난감한 듯 눈살만 찌푸렸다.사실 선우희재에게 시집가는 게 좋은 일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특별하여 혹시라도 양측의 갈등이 심해지면 나중에 복이 될지 화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아빠, 전 이미 결정했어요. 아무도 제 생각을 바
조군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똑똑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윤지와 함께 선우 가문에 가서 자세히 얘기하고 올게요.”“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아버지.”조윤지는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그럼 수고 좀 해줘요, 둘째 형.”조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여러분, 저희 좋은 소식을 기다리세요.”조군표는 사람들에게 예를 표한 후 조윤지와 함께 저택을 나섰다.조군수는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그때 조선미의 방 안.조선미는 두 눈을 꼭 감고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었고 유진우는 옆에 앉아 조심스럽게 약을 발라주었다.다행히 조선미 얼굴의 상처가 깊지 않아 특수 연고를 바르니 눈에 띄게 많이 좋아졌다.“언니, 좋은 소식 있어.”그때 조아영이 흥분한 얼굴로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응? 무슨 좋은 소식?”조선미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유진우의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았다.“아까 가족회의에서 둘째 큰아버지가 다른 애를 선우 가문에 시집보내겠다고 했더니 조윤지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언니 대신 선우희재에게 시집가겠다고 했대. 그리고 다들 동의했대.”조아영이 기쁨에 겨운 얼굴로 말했다.“조윤지가 선우희재에게 시집가겠다고 했다고?”그녀의 말에 조선미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아영아, 그게 정말이야? 네가 잘못 들은 건 아니고?”“잘못 듣긴. 내가 정확히 들었어.”조아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둘째 큰아버지가 조윤지와 함께 선우 가문에 협상하러 갔어. 선우희재만 동의한다면 우린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너무 잘됐네.”조선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조윤지는 부귀영화를 좋아하니까 선우희재의 상대로 가장 어울리긴 하지.”“그럼 그럼. 언니는 눈치 볼 필요 없고 조윤지도 원하는 대로 됐고, 우리도 선우 가문과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돼. 정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법이야.”조아영이 웃으며 말했다.“벌써 좋아하긴 일러요. 이 일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유진우가 갑자기 찬물을 확 끼얹었다.“그게 무슨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