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군대까지 동원한다고?”조군표의 말에 사람들은 전부 겁에 질렸다.원래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다. 선우희재만 고개를 끄덕인다면 두 가문의 혼약은 여전히 유효이다. 그런데 결과가 이럴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대체 내가 선미보다 뭐가 부족하다고 나랑 결혼하지 않겠다는 건데!”조윤지는 이를 꽉 깨물고 분노를 터트렸다.여자로서 먼저 구혼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존심을 다 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선우희재는 그녀의 체면 따위 안중에도 두지 않고 가차 없이 내쫓아버렸다.심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마 이보다 더한 모욕은 없을 것이다.“선우희재도 동의하지 않고 선미도 시집가지 않겠다고 하면 인제 어떡해요?”누군가 갑자기 물었다.“그냥 차라리 맞서 싸우죠?”조윤지가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선우희재가 우리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데 우리도 선우희재의 체면을 세워줄 필요가 없죠.”“윤지야, 말조심해.”조군해가 재빨리 그녀를 말렸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이런 소리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었다.“셋째야, 족장인 네가 결정 내려봐.”조군표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조금 전 선우 가문에서 하도 무시를 당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었다.“결혼 상대를 바꾸지 않겠다면 다른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죠.”조군수가 진지하게 말했다.“저의 50살 생일 연회를 미리 치를 생각인데 결혼식 당일에 하려고요. 그때 하객들을 많이 초대해서 연회를 크게 열 겁니다.”“50살 생일 연회요?”그의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서로 눈치만 살폈다. 이 와중에 생일 연회를 미리 치르는 게 의미가 있을까?“셋째야, 이번 생일 연회를 통하여 선우 가문에 압력을 가하겠다는 말이야?”잠깐 고민하던 조군해가 가장 먼저 눈치챘다.“맞아요.”조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선우희재가 결혼을 몰아붙인다면 전 생일 연회를 열 겁니다. 권력이 있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 앞에서 설령 선우 가문이라고 해도
“아들, 여긴 어떻게 왔어? 국경 지대를 지키고 있는 거 아니었어?”조군표는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환한 얼굴로 아들을 맞이했다.“국경 지대는 지금 아주 안전하거든요. 그래서 휴가 내고 미리 왔죠.”조일명이 웃으며 말했다.“그래그래, 잘 왔어. 1년 못 본 사이에 몸이 더 좋아졌네?”조군표는 뿌듯한 얼굴로 조일명의 어깨를 토닥였다. 조씨 가문의 젊은 세대 중에서 그의 아들이 가장 출세했다.“아버지, 좋은 소식 하나 알려드릴게요. 저 진급했어요. 이젠 범표사 부대의 고급 장교라 수천 명의 군대를 거느릴 수 있어요.”조일명이 자랑스럽게 말했다.“뭐? 고급 장교?”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다들 경악하면서도 부러움에 찬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고급 장교에서 한 단계 더 진급하면 장군이 된다.아직 30살도 채 안 되는 나이에 고급 장교가 되었으니 조일명의 앞날은 그야말로 창창했다.“하하... 좋아! 너무 잘 됐어!”조군표가 함박웃음을 지었다.“우리 아들 너무 훌륭해. 1년 사이에 또 진급했어. 아버지도 네 덕에 체면이 서는구나.”“역시 피는 못 속여.”조군해가 부러움에 찬 얼굴로 말했다.“어린 나이에 벌써 이런 엄청난 성과를 거두다니, 앞으로 절대 선우희재에게 뒤지지 않을 거야.”“우리 조씨 가문에 또 훌륭한 인재가 나타났어.”조군수도 무척이나 뿌듯해했다.20대에 고급 장교 자리에 앉았으니 장군이 되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일명아, 축하해. 우리 중에 네가 가장 출세했어. 앞으로 잘 나간다고 이 누나를 잊어서는 안 돼. 알았지?”조윤지는 벌써 잘 보이려고 알랑거렸다.“누나도 참, 우린 가족이잖아. 앞으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조일명이 가슴팍을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하하... 역시 누나를 가장 아끼는 건 너밖에 없어.”조윤지가 히죽 웃어 보였다.“아 참, 아버지, 아까 선우 가문 얘기를 하는 것 같던데 대체 무슨 일이에요?”조일명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무슨 일이
그 후 며칠 동안 조씨 가문에서는 초대장을 보내며 조군수의 50세 생일 연회를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5대 가문 중 하나인 조씨 가문은 자손들이 많았고 인맥도 아주 넓었다. 그리고 족장인 조군수는 뭇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하여 그의 생일 연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서울의 절반이 떠들썩했다. 수많은 유명 인사와 재벌들이 생일 연회에 참석하기로 했다.5일 뒤 이른 아침, 조씨 별장.생일 연회 때문에 조씨 가문 전체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히 움직였고 규모도 상당히 컸다.오늘은 조군수의 생일 연회이자 선우희재가 신부를 맞이하러 오는 날이다.조씨 가문은 이 자리를 빌려 선우희재에게 압력을 가하여 물러서게 할 작정이다.그 시각, 한 여자의 방.조선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하얗고 부드러우며 촉촉하고 광택이 도는 얼굴을 보면서 놀랍고도 기뻐했다.다친 후로 그녀는 단 한 번도 거울을 보지 않았다. 혹시라도 흉측할까 봐 자신의 얼굴을 보기 두려웠다.그런데 지금은 흉측하던 상처가 말끔하게 사라졌고 흉터도 남지 않았다. 심지어 치료를 마친 후 그녀의 피부가 더욱 부드러워졌다.유진우가 만든 연고가 상처를 치료할 뿐만 아니라 피부 미용에도 아주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여보가 만든 약이 이렇게나 좋을 줄 몰랐어요. 정말 흉터가 하나도 남지 않았네요.”조선미는 손가락으로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를 살살 어루만지며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흉터가 남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요. 인제 믿겠어요?”유진우가 씩 웃어 보였다.“아주 좋아요. 비연단은 피부 미용에 도움이 되고 이 연고는 상처를 치료하고 흉터를 없애줘요. 두 가지를 한데 합친다면 그야말로 천하무적이겠는데요?”조선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더니 바로 사업 계획을 짰다.“여보, 이 약을 대량 생산할 수 있어요? 출시만 한다면 아주 불티나게 팔릴 거예요.”“당신 머리가 똑똑하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실망밖에 줄 게 없어서 어쩌나...”유진우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이 연고를 만드는데 필요한
오늘은 조군수의 50세 생일 연회라 사회의 유명 인사들이 축하해주러 많이 몰려왔다.연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연회장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하객들도 계속 도착했다.“진우 씨? 진우 씨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그때 한 여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뒤에서 들려왔다.유진우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몇몇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바로 얼마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현미리, 주하늘, 나동수, 정건우 등이었는데 전부 조선미의 친구들이었다.용씨 가문의 한 집사가 계약 때문에 아트버스터 퀸인 현미리를 귀찮게 굴었을 때 유진우가 나서서 집사를 혼쭐낸 적이 있었다.그러다가 용호걸이 중주로 돌아간 후에는 그들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여기서 또 만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저기요, 묻고 있잖아요. 왜 아무 말이 없어요? 예의도 없어, 정말.”주하늘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당연히 생신을 축하해주러 왔죠. 왜 왔겠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들 중에서 현미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딱히 호감이 가지 않는 스타일이었다.“흥, 아직도 선미에게 매달려 있어요? 자기 주제가 어떤지 몰라요?”정건우는 그를 대놓고 무시했다.“유진우 씨, 충고하는데 선미는 재벌 집 딸이에요. 당신 같은 루저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상대라고요. 그러니까 제발 제 주제 좀 알아요.”나동수가 싸늘하게 말했다.그들의 눈에 비친 유진우는 그저 전형적인 기생오라비에 불과했다. 여자의 기분을 잘 달래주는 것 말고는 별다른 재주도 없었다. 이런 사람은 절대 남 앞에 내놓을 만한 그릇이 못 된다.“사람을 함부로 무시하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에요. 나에게 과분한 상대인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흥, 배경도 없고 능력도 없는 빈털터리 의사가 선미와 어울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나동수의 얼굴에 경멸이 담겨 있었다.“다들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네요.”더는 그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유진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자리를 떠나려 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 에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예의도 없어요? 정말 상스러운 사람이네요!”주하늘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았다. 상대의 말투가 한없이 침착하고 평온했지만 전부 정곡을 콕콕 찔렀다.“맞아! 역시 촌놈은 촌놈이야. 예의라고는 하나도 없어.”정건우도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다. 가정환경도 우월한 지식인이 언제 저런 촌놈에게 욕을 먹은 적이 있었겠는가?“난 항상 상대를 봐가면서 얘기를 해요. 당신들이 날 이렇게 비꼬면서 내가 예의 바르게 대할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죠?”유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당신...”주하늘은 뭐라 반박해야 할지 몰라 이를 꽉 깨물었다.“됐어. 다들 선미의 친구들인데 소소한 일 때문에 싸워서야 하겠어?”상황이 좋지 않자 현미리가 나서서 수습했다.오늘은 조선미 아버지의 50세 생일 연회가 열리는 날이다. 이런 날에 소란을 피우면 주인에게 민폐만 된다.“됐어. 저런 촌놈과 더는 말 섞지 마. 우리 체면만 깎여.”나동수는 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경멸 섞인 표정을 지었다.“하긴. 배운 게 없는 사람과 실랑이를 벌여봤자 내 입만 아프지, 뭐.”주하늘은 유진우를 째려보았다.“흥,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오라비 주제에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 말고 또 무슨 재주가 있겠어?”정건우는 계속하여 그를 비꼬았다.“몹쓸 놈.”유진우는 한마디 내뱉고는 자리에 앉았고 더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당신...”그들은 유진우를 노려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또 하마터면 노발대발할 뻔했다.원래는 유진우를 처참하게 짓밟으면서 우월감을 뽐낼 생각이었지만 밑천도 못 건지고 말았다. 우월감은커녕 되레 유진우에게 모욕만 당했다.‘정말 재수 없어!’그들이 한창 씩씩거리던 그때 문 앞이 시끌벅적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장교 제복 차림에 체격도 우람한 한 남자가 부관 두 명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그리고 남자 옆에는 우아한 자태에 얼굴도 예쁜 한 여자가 있었다.“저 장교는 누구셔? 엄청 위풍당당하시네.”주하늘의 두 눈이 반짝
“내가 선미의 마음을 얻게 되면 너에게도 기회가 있어.”나동수는 직설적으로 대답했다.조윤지과 조선미는 모두 같은 레벨의 미인이기 때문에 마음을 얻기가 쉽지 않다.“헤헤... 그럼 우리 같이 열심히 노력해 보자.”정건우는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다.“조씨 가문의 유전자는 너무 훌륭해. 모두 다 미남 미녀이니 말이야. 만약 내가 조일명에게 시집간다면, 낳은 아이도 분명 매우 예쁠 것 같아.”주하늘은 홀딱 빠져버린 얼굴이었다.말을 들은 나동수 몇 사람은 어이가 없었다.‘아직 손도 안 댔는데 벌써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는 거야?’“어... 두 사람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것 같은데? 설마 내 미모 때문인가? 안 돼, 나 화장 좀 고쳐야겠어.”조일명이 이쪽으로 오자 주하늘은 놀라고 기뻐하며 급히 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나동수과 정건우는 즉시 자세를 고쳐 잡고 귀족 공자의 모습을 보였다.“일명아, 저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바로 조선미의 남자, 유진우야. 유진우가 아니었다면 우리 집에 문제가 많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내 동생 준서도 유진우 때문에 죽었어.”조윤지가 들어서자 앉아서 차를 마시는 유진우를 알아차리고 눈에서 차가운 빛이 스쳤다.“이런 화근을 조선미는 왜 곁에 두는 거야? 귀신한테 홀렸나?”조일명이 좀 불만스럽게 말했다.“내가 여자만 아니었어도 유진우 저 녀석에게 매운맛을 보여줄 텐데.”조윤지가 부채질하기 시작했다.“누나, 이런 난폭한 일은 나한테 맡겨. 내가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줄게!”조일명은 차갑게 웃다가 웨이터로부터 술 한 잔을 받아 약을 몰래 넣었다.“일명아, 너 방금 뭘 넣은 거야?”조윤지는 가까이 있어 곧 이상함을 발견했다.“강력한 설사약이야.”조일명은 사악하게 웃었다.“이따가 유진우가 이 술을 마시면 그 자리에서 똥오줌을 가누지 못하게 되는데 그때 가서도 감히 우리 가문에 머무르는지 보자고.”“너 이 방법, 정말 좋은데?”조윤지의 눈이 번쩍 뜨였다.사람들 앞에서 실수로 똥오줌을 싸면 앞으로
“안 마셔요, 꺼져요.”간단한 몇 마디에 놀라서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조일명이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부터 만인의 주목을 받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온갖 방법으로 조일명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조일명이 유진우에게 술을 권하는 것을 보았을 때, 주하늘, 나동수, 정건우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모두 매우 놀랐다. 조일명 같은 사람이 술을 대접한다는 것은 엄청 영광스러운 일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났다. 하지만 그들은 유진우가 거절할 뿐만 아니라 거만하게 “꺼져” 라고 답을 할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주변 사람들은 물론 조일명 자신도 잘못 들은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조일명은 어떤 사람인가? 조씨 가문의 도련님이자 범표사의 고급 장교, 미래를 주름잡는 장군님이다. 평소에 어디를 가든지 여러 사람이 그를 추대한다. 아무렇게나 웃어 주면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다.그런 그가 권하는 술은 일반인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저 녀석은 무슨 근거로 감히 거절을 하는 것이지?“못 들었어요? 꺼지라고요.”유진우는 다시 한번 반복했다. 여전히 차갑고 시원스럽게 말했다.“간뎅이가 부었구나!”“감히!”그 순간, 장내가 떠들썩해졌다.조일명의 비위를 맞추려는 일부 사람들이 잇달아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의분에 찬 그 모습은 다른 사람이 보면 무슨 깊은 원한이 있는 줄 안다.“저 녀석 미쳤나? 감히 장교에게 불손한 말을 하다니?”주하늘은 경악하는 얼굴이었다.그녀는 유진우가 이렇게 대담하고 조일명을 안중에도 두지 않을 줄 몰랐다.“흥, 이따가 유진우가 어떻게 죽는지 보자고.”정건우는 남의 재앙을 보고 기뻐했다.“역시 멍청해.”나동수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현미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근심이 하나 더 늘었다. 유진우에 대한 그녀의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책임감 있고 혈기 있는 남자인 것 같았다. 하지만 유진우가 방금 한 행동은 확실히 좀
“당신들 중 누구라도 마시고 싶으면 마셔요. 어차피 난 안 마실 거니까.”유진우는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위협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흥, 마시든 말든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여봐라, 술을 먹여!”“네!”두 명의 부관은 듣자마자 사람을 불러 강제로 술을 먹이려 했다.“꺼져.”유진우는 손바닥을 뒤집어 두 명의 부관을 바닥에 쓰러뜨렸다. 두 사람은 맞아서 코피가 났고 이가 날아갔으며 일어서지 못했다. “저 놈이 감히 사람을 때리다니?”이 광경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고 분노했다.공연히 부관을 구타하는 것은 작은 죄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총까지 쓸 수 있다.“네이놈,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부관이 맞은 것을 보고 조일명은 마침내 화를 냈다.불쑥 손을 내밀어 주먹을 유진우의 얼굴로 향했다. 범표사의 고급 장교로서 그의 무도 조예는 자연히 낮지 않았다. 지금은 본투비 초기 수준이다. 또래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할 만하다.조일명의 공격에 유진우는 몸을 사리지 않고 왼손을 등에 지고 오른손을 내밀어 조일명의 주먹을 덥석 잡았다.“탁.”잠잠한 소리만 들린다.조일명은 공세를 잠시 멈추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유진우가 뜻밖에도 그의 주먹을 받을 줄 몰랐다.비록 그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지만 선천무사로서, 아무렇게 날린 주먹은 천근만큼 무거워 결코 일반인이 무리하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이로부터 상대방은 무술에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좀 치네. 어쩐지 날뛰더라니, 그렇다면 오늘 본때를 보여주겠어.”조일명은 천천히 자신의 외투를 벗었다.비록 유진우가 그의 주먹 한 방을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충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선미 씨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만약 당신이 계속 욕심을 부리면 나를 탓하지 마세요.”유진우가 쌀쌀하게 말했다.“날 다치게 한다고? 허허... 정말 웃기는군!”조일명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네가 좀 주먹질한
방금 황은아가 던진 검은 안개 폭탄은 그녀가 이전에 만든 하얀 안개보다 독성이 백 배 더 강했다.하얀 안개는 만성 독으로 중독되면 사지가 힘없이 늘어지고 의식을 잃고 쓰러지며 신속히 구출되면 살 가능성도 있다.하지만 검은 안개는 달랐다.강력한 부식성은 몇 초 만에 살아있는 사람을 피와 살이 뒤섞여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로 만들었다.“괴물 같은 여자네.”문관옥은 하늘에서 맴돌고 있는 황은아를 보며 이를 악물고 분노했다.독 안개 하나만으로 수백 미터를 뒤덮던 정예병들을 순식간에 몰살시켰으니 살상 능력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웠다.만약 황은아가 같은 폭탄을 몇 개 더 던진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어때?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 좀 감이 와?”황은아는 거대한 독수리를 타고 상공에서 내려다보며 소리쳤다.“늙은이들! 상황 파악됐으면 얼른 꺼져! 아니면 폭탄 몇 개 더 던져서 여기를 너희들이 무덤으로 만들어주겠다.”그녀는 말하며 몇 개의 검은 구슬을 꺼내 흔들었다.명백한 위협이었다.지하의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흩어져 숨을 곳을 찾았다.하지만 이 황무지에 독 안개를 피할 만한 적당한 은신처는 없었다.피신처라 해봐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었다.“이제 어떡하죠? 일단 철수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한 총수가 땀범벅인 상태로 달려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유장혁만 상대할 때는 병력이 많아서 밀어붙일 수 있었지만 강력한 황은아의 독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처참한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직접 키운 병사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기는 힘들었다.“철수?”부규환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상부의 명령은 그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유장혁을 죽이는 것이다. 이대로 탈영병이 되려는 것이냐?”“도망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숨어서 해독 방법을 찾은 후 임무를 수행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총수가 얼른 해명했다.“십만 대군이 어린애한테 쫓겨 도망친 일이
하늘 위에서 검은 독수리를 타고 맴돌던 황은아는 냉정한 눈빛으로 지상에 빼곡히 들어선 병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부규환의 빠른 대처로 인해 이전에 퍼진 독 안개는 절반 정도의 병사들만 쓰러뜨리는 데 그쳤지만 그녀의 능력으로 남은 병사들도 쓰러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주술교가 제일 두려워하지 않는 게 바로 인해전술이었다.“은아?”독수리를 타고 하늘을 나는 황은아를 보며 유진우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자신에게 가장 먼저 도착한 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제자라는 사실에 감탄이 나왔다.“아저씨! 괜찮으세요?”황은아가 멀리서 물었다.“괜찮다. 아직 버틸 수 있어.”유진우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그는 황은아에게 답하여 얼른 허리춤에서 단약 한 알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계속된 전투로 인해 기력과 진기가 크게 소모된 상태였지만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는 단약 덕분에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어린 계집아이가 어디서 감히 나서느냐? 정체를 밝혀라!”부규환이 고개를 들어 황은아를 바라보며 외쳤다.“내 입에서 정보를 빼내려는 거라면 헛수고야!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황은아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늙은이! 다시 한번 경고하지. 당장 사람들을 데리고 꺼져! 그렇지 않으면 독을 살포해 모두 황천길로 보내버릴 테니까!”“흥! 어린 것이 말은 호기롭구나!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부규환이 차가운 얼굴로 응수했다.“네가 누구든 내 알 바 아니야! 또 지껄이면 네 입부터 독으로 봉해버릴 줄 알아!”황은아가 외쳤다.“건방진 계집이네!”부규환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손바닥을 들어 허공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웅!순식간에 금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손바닥 모양의 기운이 허공을 가르며 황은아와 독수리를 향해 날아갔다.부규환의 공격이 황은아와 독수리에 닿기 직전 흰빛의 검기가 측면에서 날아들어 금빛 손바닥을 베어내며 폭발을 일으켰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검기과 기운이 서로 부딪히며 산산이 흩어졌다.검기를 날린 이는 다름 아
쿵! 쿵! 털썩!여 무사들이 쓰러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많은 무사가 잇따라 쓰러졌다.이 상황은 빠르게 확산하며 이제는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후방에 서 있던 가장 먼저 안개를 들이마신 병사들은 도미노처럼 차례로 쓰러지기 시작했다.열 명, 백 명, 천 명, 만 명...엄청난 수의 병사들이 중독 증상을 보이며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안개가 지나간 자리마다 마치 강풍에 낙엽이 쓸리듯 몇 분 만에 십만 대군의 절반이 쓰러졌다.“이게 무슨 일이야! 왜 뒤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쓰러지는 거지?”여덟 명의 지휘관은 곧 이상함을 감지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독이다! 안개에 독이 섞여 있어! 모두 조심해!”한 교가 외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중독되어 쓰러지는 병사들의 수는 계속 늘어났고 멈출 기미가 없었다.이대로 가다가는 전군이 괴멸할 위기였다.“어서! 해독제를 복용하라!”여덟 명의 지휘관이 연신 외쳤다.의무병들이 일부 해독제를 비축하긴 했지만 십만 대군 전체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그러나 지금은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조차도 다행인 상황이었다.“이게 무슨 일이야! 멀쩡하던 전장에 왜 갑자기 독 안개가 나타난 것이냐! 대체 누가 이런 짓을 꾸민 거지?”문관옥이 미간을 찌푸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하지만 현장이 워낙 혼란스러웠던 탓에 단서를 찾기 어려웠다.“설마 유장혁에게 동료가 있는 건가?”눈을 가늘게 뜬 부규환의 얼굴에 음산한 기운이 스쳤다.안개의 독성은 미미했기에 무도 고수들에게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하지만 무장한 병사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이었다.몇 분만 더 지나면 십만 병사 중 90%가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그렇게 되면 인해전술은 더 이상 펼칠 수 없을 것이다.“일어나라!”결국 부규환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그가 몸을 떨자 금빛 광채가 전신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그 금빛은 마치 생명력을 가진 듯 빠르게 형태를 갖추더니 눈 깜짝할 새에 거대한 금강 형상으로 변했다.“으아아!”
진산 기슭 아래, 포효와 함성 그리고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유진우는 한 자루의 검을 들고 십만 대군 속을 종횡무진하며 검 끝이 닿는 곳마다 무적의 기세를 보였다.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수십 명이 피 웅덩이 속에 쓰러졌다.그러나 유진우가 아무리 격렬히 싸우고 있다고 해도 주변의 병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많아졌다.밀려오는 파도처럼 한 무리를 척살하면 또 다른 무리의 병사들이 덮쳐왔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병사들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십만 대군이 가만히 서서 목을 길게 빼고 죽기를 기다린다 해도 사흘 밤낮으로 베어야 할 것이다.하지만 십만 대군은 모두 정예병들이었다.갑옷을 입고 방패를 든 그들을 처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유진우의 실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혼자서 십만 대군을 도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사람은 기계가 아니니 고강도의 싸움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다.유진우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조금씩 체력이 소모됐다.단시간 내에는 눈에 띄지 않겠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로는 서서히 누적되고 기력은 점차 소진될 것이다.결국 유진우는 병사들의 인해전술에 의해 패배할 운명이었다.“흥! 죽여라!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문관옥은 멀리서 전투를 관전하며 냉소를 지었다.어차피 죽는 건 자기 병사가 아니니 그는 조금의 안타까움도 느끼지 못했다.‘실력으로 보니 많아야 만 명 적도 죽이는 게 한계겠네.’체력이 고갈되면 유진우는 곧 도살될 양처럼 무력해질 것이다.“1년 사이에 실력이 이 정도로 향상되다니 역시 남겨두면 안 될 불씨야.”부규환이 중얼거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유진우의 전투를 지켜보았다.유진우의 재능으로 볼 때 몇 년만 더 성장할 시간을 준다면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죽여라! 다 죽여라! 전진!”여덟 명의 지휘관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도록 지시했다.상부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죽여라!”500명의 정예병이 차량에서 뛰어내리며 앞으로 돌진했다.그때 대형 트럭의 측면 문이 열리며 빼곡히 들어있던 사람들이 드러났다.그들은 검은 전투복을 입은 채 가면을 쓰고 강철 검을 들고 있었다.하나같이 기운이 강대했는데 무도 고수가 분명했다.“돌격!”트럭 위의 가면을 쓴 남자가 장도를 휘두르자 트럭 안의 무사들은 주저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양측 병력은 곧바로 격렬한 혈투를 벌이기 시작했다.조무진의 병력이 더 많았다. 게다가 훈련도 잘되어 있어 공격과 방어가 일체화된 강력한 전력을 자랑했다.반면 가면을 쓴 암살자들은 다섯 명씩 조를 이루어 완벽한 호흡으로 협력하며 매우 맹렬하게 돌격했다.일순간 양측은 팽팽히 맞서며 승부를 가릴 수 없는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다.“진무사?”조무진은 자세히 살펴보다가 이내 단서를 발견했다.가면을 쓴 암살자들은 모두 정예 무사로 각별히 선발된 사람들이 분명했다.일반적인 무림 문파였다면 격전속에서 이토록 통일된 움직임을 보여줄 수 없었다.오직 공식적이고 엄격한 훈련을 받은 무사만이 이러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연경 전체에서 봤을 때, 이 정도의 실력과 동기를 가진 집단은 진무사밖에 없었다.진무사까지 출동한 것을 보니 조무진은 사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때 500리 떨어진 한적한 산림 속.조홍연이 정예 병력 한 부대를 이끌고 산적 토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일부 저항이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산적들은 정예군을 보자마자 쥐가 고양이를 보듯이 산채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그들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않았다.조홍연은 단 한 명의 병력 손실도 없이 가볍게 임무를 완수했다.“홍연 님, 산적들은 이미 도망쳤고 저희는 무사히 산채를 점령했습니다. 현재 전리품 정리 중입니다.”조홍연의 측근 중 하나인 여자 장군 공요가 다가와 보고했다.조홍연은 산채의 나무 성벽 위에 서서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서 기쁨은 찾아볼 수 없었다.“홍연 님, 왜 그
홍군림이 백준을 막아서 검을 상대하고 있을 때, 다른 한편 동방의 진산에서 백 리 떨어진 곳에서 조무진이 정예병 500명을 이끌고 급히 진산으로 향하고 있었다.상황이 갑작스럽게 발생한 탓에 병력이 많지 않았지만 이 500명은 그의 직속 친위대로 구성된 강력한 전투력의 부대였다.안에는 적지 않은 무도 고수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만 명 규모의 일반 군사들과 맞서도 전혀 밀리지 않을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더 빨리! 더 속도를 내라! 반드시 최단 시간 안에 서하사에 도착해야 한다.”조무진은 차량에 앉아 연신 재촉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의 이런 반응은 함께 차량에 타고 있던 두 명의 여자 부하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평소 조무진은 전쟁의 신으로 불리며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담담히 대응하던 사람이었다.‘그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냉철한 판단으로 대응해 온 그가 지금 이토록 다급한 모습을 보이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조홍연 쪽은 어떠한가? 연락이 닿았느냐?”조무진이 갑자기 물었다.“아가씨는 가문 장로들에 의해 긴급 임무에 차출되어 현재로서는 연락이 닿지 않지 않아 일단 메시지를 남겨놓았습니다. 아가씨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즉시 지원하러 올 것입니다.”한 여자 부하가 답했다.“무슨 임무? 다 헛소리야! 늙은 놈들이 일부러 방해를 놓은 게 틀림없어!”조무진이 분을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이 중요한 시점에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조홍연을 멀리 차출보내는 건 조씨 가문에서 황가와의 충돌을 피하고자 유장혁이 죽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행위였다.“도련님, 유 도련님께서는 복이 많으신 분이니 분명히 무사하실 겁니다. 너무 염려 마세요.”여자 부하가 조심스럽게 위로를 건넸다.“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조무진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지금 연경성은 이미 폭풍전야다. 황권 뒤에 숨은 세력들조차 움직이기 시작했어. 내 추측이 맞다면 10년 전의 그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 벌어질
그의 옷자락은 바람에 나부끼며 속세를 벗어난 듯 초탈한 기운을 뿜어냈다.보통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곧바로 무릎을 꿇고 선인을 외쳤을 것이다.슉!흰옷의 검객이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가던 중 갑자기 하얀 보검 하나가 땅에서 솟구쳐 오르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그 검은 마치 도전장을 내미는 듯했다.“누가 내 길을 막는 것이냐!”흰옷의 검객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검선 선배님의 검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들어왔습니다. 하여 후배가 가르침을 청하러 왔습니다.”이때 웃통을 벗은 준수한 청년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라 하얀 보검 위에 가볍게 발을 디뎠다.허공에 떠오른 청년과 검이 검선 백준과 마주 섰다.“네 놈은 누구냐?”백준이 청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후배 검종, 홍군림이라 합니다. 천 리 길을 달려와 검선 선배님께 몇 수 가르침을 청하고자 합니다.”준수한 청년 홍군림이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 그의 태도는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았다.“홍군림? 검종에서 천하를 누비며 다니는 자?”백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약간 놀란 기색을 보였다.“검종에서 절세의 천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보니 과연 소문대로네. 어린 나이에 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니... 유장혁 그 자식보다 낫구나.”“선배님, 과찬입니다.”홍군림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홍군림, 오늘 중요한 일이 있으니 정말 가르침을 청하려 한다면 다음 기회로 미뤄라.”백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다음을 기약하기보다 어렵게 만났으니 이번 기회에 부디 선배님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홍군림은 물러서지 않았다.“네 말은 일부러 날 막고 있다는 거냐? 설마 검종이 호룡각이 부리는 개가 된 것은 아니겠지?”백준의 얼굴이 서서히 차가워졌다.“제 행동은 검종과도, 호룡각과도 무관합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흥미일 뿐입니다.”홍군림은 담담히 대답했다.“저는 세 살 때부터 검을 익혀 검도의 극한에 이르렀습니다. 선배님의 검이 빠를지 제 검이 빠를지
“뭐라고?”부규환의 말에 유진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유진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만수는 서경에 머물면서 막대한 병력을 쥐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에는 실력 있는 고수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너희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호룡각의 세력이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서경왕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호룡각이 눈엣가시 같은 서경왕부의 존재를 참을 리가 없었다.호룡각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서경왕부를 상대하기에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다시 말해 유만수가 건재한 서경왕부의 세력은 절대 약화하지 않을 것이며 호룡각또한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세력이라는 뜻이었다.그러나 부규환의 말투를 보니 지금은 상황이 이미 많이 바뀐 듯했다.“도련님,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부규환이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호룡각은 10년간 치밀하게 준비해 왔습니다. 언젠가 서경왕부를 제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제 그날이 머지않았습니다.”“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거야!”유진우가 외쳤다.“도련님,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오늘 살아서 나갈 수 없을 테니까요.”부규환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흥! 나를 죽이려고?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야!”유진우가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아무리 숨겨둔 병력이 많다고 해도 나도 혼자 온 게 아니다! 지원군이 오고 있으니 누가 이길지는 두고 봐야겠지.”“도련님의 계획은 이미 호룡각에 간파되었습니다. 말씀하신 지원군은 아마 오늘 도착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의 도련님은 저희 수중에 들어온 먹잇감에 불과합니다.”부규환이 담담하게 말했다.“하하하, 유장혁!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겠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실력이 강하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겠구나!”문관옥이 참지 못하고 조소를 터트렸다.경천 랭킹 10위에 오른 강자가 직접 나섬과 더불어 10만 외성 군의 정예병을 내세웠으니 유장혁이 아무리 숨겨둔 비장의 수가 있다고 해도 마지막 발버둥
왜 무림에는 고수들이 넘쳐나고 강자가 끊임없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공무원과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는지를 사람들은 이제야 알았다.그 이유는 실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수십만 대군이 밀고 들어오면 설령 하늘을 찌르는 능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어떤 문파라도 관군의 정예 병력과 대적하게 되면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될 뿐이다.“포위하라!”명령과 함께 10만 대군이 안팎으로 유진우와 일행을 완전히 둘러쌌다.병사들은 각자 창과 칼을 들고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으며 살기 가득한 기운이 사방을 압도했다.“나는 옥면 군신 무관옥이에요. 팔방제후는 어디 있어요?”그 순간 무관옥이 앞으로 나와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초품 군신의 위엄을 지닌 그는 이품 고급 장교에게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처럼 느껴졌다.팔방제후로 불리는 실권자들도 무관옥의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그의 질문은 대답 없이 공허하게 메아리쳤고 병사들은 오직 무표정하게 대형을 유지하며 무관옥을 무시했다.“이게 무슨 일이죠? 당신들의 고급 장교 어디 있는 거예요?”무관옥은 불만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무관옥은 30만의 백호랑을 연경으로 보낼 수 없지만, 군신으로서 어떠한 고급 장교도 그를 보고 정중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군신님, 오늘 외성군의 지휘는 제가 맡고 있습니다.”그때 중앙 대열에서 하얀 옷을 입은 얼굴 창백하고 수염이 없는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노인의 키는 훤칠하고 체격은 마른 편이며 날카로운 음성이 다소 섬뜩하게 들렸다.“부 내관님?”부 내관을 본 순간 무관옥의 눈동자가 급격히 수축하였다. 좀 전까지 드러냈던 거만한 태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비록 관직은 높지 않지만, 그 지위는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그는 천자의 측근이자 대내 제1고수로 꼽히는 인물이고 경천 랭킹 10위에 오른 절정 고수 부규환이었다.“군신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문제는 이제 제가 처리하겠습니다.”부규환은 고개를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