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가 어떤 미인을 본 적이 없을까 봐, 고작 매혹술에 넘어가겠어?정말 그를 하반신으로 사고하는 사람으로 보나?“도련님, 왜 이렇게 화가 나셨어요?”홍양은 착지한 후 매혹적인 미소를 띤 얼굴로 천천히 유진우의 곁으로 걸어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어 술을 두 잔 따랐다.“이곳에 찾아온 사람은 모두 저희의 손님이니 도련님께서 취향루에 오신 것은 홍양의 영광입니다. 제가 먼저 한 잔 마시겠습니다.”홍양은 말을 마치고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별말씀을요.”유진우는 무표정으로 예의상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도련님, 저는 안씨 아가씨의 친구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조금 있다고 들었는데 도련님께서 과거의 일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신다면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홍씨 아가씨, 저희 몇 사람의 원한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끼어들어서 좋을 거 없어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도련님같이 훌륭한 인물은 아량도 넓으실 텐데 굳이 두 여자와 따질 필요가 있을까요? 도련님께서 오늘 저 홍양의 체면을 세워주신다면, 훗날 이 은혜를 반드시 두 배로 갚아드리겠습니다.”홍양의 웃음은 더 짙어졌다.말하는 사이 동공의 흰자위는 갑자기 밝아졌고 특이한 향기가 더 진하게 풍기는 것 같았다.홍양의 분위기는 더욱 매혹적이고 여성스러워졌으며 마치 여우가 꼬리치 는 것 같았다.이는 그녀가 매혹술을 사용했다는 표현이었다.매혹술을 한번 사용하면 어떤 남자도 감당해내기 힘들었다. 만약 시간이 길어지면 자제력이 약한 사람은 마음이 현혹되어 그녀의 말을 고분고분 듣기까지 했다.이 수단은 문제 생긴 적이 없었다.“홍씨 아가씨, 이 체면은 드리기 힘들 것 같네요.”유진우는 끄떡없이 싸늘하게 말했다.“그리고 아가씨의 매혹술을 거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 수단은 저에게 소용없으며 매우 무례한 행동이니 자중하기 바랍니다!”유진우는 자중하라는 단어에서 갑자기 언성을 높여 홍양의 심금을 강하게 두드렸다.“네?”홍양은 벼락을 맞은 듯 움찔하더니
유진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열쇠를 한 눈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왜 이렇게 신비스러운 거야? 설마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 아니지?”“무슨 말을 그렇게 해. 연약한 여자 둘이서 무슨 음모를 꾸밀 수 있겠어?”안세리는 억지웃음을 지어내며 대답했다.“맞아. 우리는 진심으로 뇌우 치고 있어. 절대 한 치의 속셈도 없어. 그렇지 않으면 천벌 받아 죽을 거야!”봉연주는 심지어 천벌로 맹세까지 했다.유진우를 설득하기 위해 그녀는 큰마음을 내렸다.이 말을 들은 안세리는 눈가가 움찔했다. 그녀는 봉연주를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생겨났다.‘천벌을 받을 거면 혼자 받을 거지 왜 나까지 끌어들이고 그래.’“음모나 속셈이 따로 없다면 두 사람도 나랑 같이 다녀오자.”유진우는 아주 덤덤하게 말했다.“아...”안세리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봉연주를 힐끔 보고는 급하게 변명했다.“연주 씨가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움직임이 불면하잖아. 난 여기에 남아서 연주 씨를 돌봐주어야 해. 게다가 그 범인이 흉악하기 그지없는데 우리처럼 연약한 여자가 같이 올라가는 건 너무 위험해.”“맞아, 맞아. 너무 위험하고 불편해.”봉연주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안세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유진우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두 사람을 바로 까밝히지는 않았고 그저 약 한 병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냉담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해서 나는 두 사람을 못 믿겠어. 그래서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두 사람은 먼저 이 독약을 먹어. 만약 내가 위에서 무슨 일을 당하게 된다면 두 사람도 나랑 같이 황천길을 걷는 거야.”“어?”이 말을 듣자마자 안세리와 봉연주는 온몸이 굳어지면서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안 그래도 마음이 켕기는 그녀들은 지금 저도 모르게 당황했다.그녀들은 유진우가 이런 요구를 제기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우야, 이럴 필요 있을까? 우리가 일 층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건데 굳이 무섭게 독약까지 먹어야 해?”안세리는 마른 군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
오직 권세가 높은 사람만이 천자호 방에 입주할 수 있었다.“선생님, 방에 도착하셨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호위무사는 유진우를 천자 4호 방에 안내해 드린 후 인사를 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유진우는 방문 앞으로 걸어가 가볍게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그는 자세히 주위의 기운을 느껴보았지만 아무런 위험을 느끼지 못했다.적어도 살기를 느끼지 못했다.달칵 소리와 함께 유진우는 열쇠로 방문을 열고 안으로 곧장 걸어 들어갔다.방안은 전반적으로 웜 톤이어서 따뜻한 분위기를 띠었으며 디퓨저가 켜져 있었다.입구의 바로 맞은 편에는 단향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 세트가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술과 디저트가 놓여있었다.왼쪽 칸막이에는 빨간색 거즈가 드리워져 있었는데 안에는 각종 성인용품이 꽉 차 있었다.오른쪽 칸막이에는 흰색 거즈가 드리워져 있었으며 안에는 침대와 궤짝이 있었다.유진우는 방안을 대충 훑어보았는데 곧 오른쪽 칸막이 안의 침대에 한 사람이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했다.하지만 그 사람은 이불을 덮고 있어서 누구인지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거기 누구죠? 얼른 정체를 드러내세요.”유진우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침대 위의 사람은 마치 잠든 것처럼 꼼짝하지 않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얼굴을 드러내지 않으실 거면 저의 무례함을 탓하지 마세요.”유진우는 군말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싫어 침대 앞으로 걸어가 이불을 홱 들었다.하지만 눈앞의 상황을 보고 그는 흠칫 놀라며 눈을 의심했다.왜냐하면, 침대 위에 누워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벌거벗은 홍양이기 때문이었다.몸매가 아리땁고 피부가 눈처럼 새하얀 홍양이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는 모습은 마치 완벽한 예술품 같았다.모든 남자에게 있어서 이건 정말 치명적인 유혹이었다.그러나 지금의 유진우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왜냐하면, 홍양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이 시각, 홍양은 몸을 살짝 움츠린 채 옆으로 누워있었는데 그녀의 가슴에는 작은 칼 하나가 꽂혀있었고
“너... 너 이 살인범! 감히 홍양을 죽이다니? 정말 극악한 놈이야!”“여봐라! 어서 이 사람을 잡아!”취향루의 두 여자는 끊임없이 소리를 치고 비명을 지르면서 바로 유진우를 살인범으로 지목하였다.두 여자가 이렇게 한바탕 난리를 피운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유진우는 사람들에게 빙빙 둘러싸였다.사람들은 너도나도 두 눈을 부릅뜨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이었다.홍양은 취향루의 간판으로서 수많은 구애자가 있었다. 오늘날 홍양이 갑자기 이렇게 숨을 거둔 것은 자연히 안타까운 일이었다.그리고 더욱이는 살인범에 대한 분노였다.“참, 담도 커라! 감히 취향루에서 행패를 부리다니.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취향루는 천하 회의 산업인 데다가 홍양은 한비영의 여동생이야. 네 이놈 오늘 딱 걸렸어! 어디 감히 도망칠 수 있나 보자!”“당장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라.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남겨두지 않을 거야!”“...”주위의 사람들은 왁자지껄 떠들어 댔다.무서운 모습을 한 그들은 마치 유진우를 토막 내 버릴 것만 같았다.“홍양은 제가 죽인 것이 아니에요. 제가 방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이미 죽었어요.”유진우는 무표정으로 말했다.“어디서 헛소리를 지껄여! 방 안에 당신 한 사람만 있는 거 우리가 다 봤어. 당신이 안 그랬으면 누가 했다는 거야?”“맞아! 당신이 홍양을 죽였어. 우리가 똑똑히 봤어!”두 여인은 슬픔과 분노가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그녀들은 유진우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이 자식! 넌 이미 현장에서 딱 걸렸어. 변명할 생각하지 말고 눈치가 있으면 얼른 투항해!”“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이놈이 홍양을 죽인 거 맞아. 우리 같이 이 극악무도한 놈을 잡아서 홍양의 원수를 갚아 주자!”일부 홍양의 구애자들은 욕설을 퍼붓다가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으르렁거리며 유진우에게 달려들었다. 다들 그를 찢어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우는 발로 땅을 한 번 내디뎠다.순간 그의 몸을 중심으로 웅장한 진기가 폭발했다
하지만 방 안의 함정이 홍양의 시체일 거라고는 안세리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다들 알다시피 홍양은 한비영의 여동생이었다.홍양이 죽으면 한비영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고 이 일과 연관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무사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유진우뿐만 아니라 그녀들도 같이 봉변당할 것이었다.이 시각 안세리는 그제야 자신이 문관옥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문뜩 깨달았다.안세리는 언제든지 버림당할 수 있는 바둑에 불과했다.하지만 지금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다.안세리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이 일에서 발을 빼는 수밖에 없었다.“네 말은 이 일이 너희들과 상관이 없다는 거야?”유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정말 아무 상관이 없어.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안세리는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맞아, 맞아. 우리도 당한 거야. 절대 오해하지 마.”봉연주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그래. 너희들과 상관이 없다고 말하니까 물어보는 건데 그럼 누구와 상관이 있는 거야? 누가 이렇게 시켰어?”유진우가 되물었다.“그건...”안세리는 안색이 확 굳어지더니 무의식적으로 봉연주를 바라보았다.봉연주도 마음이 많이 켕기기에 눈빛을 피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말하기 싫어? 아니면 지어내지 못하겠어?”유진우의 눈빛에는 살기가 핑 돌았다.“난 너희들에게 이미 기회를 주었어. 너희들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거야. 이렇게 된 이상 나를 탓하지 마.”말을 마친 뒤 유진우는 손을 확 내밀어 단번에 안세리의 목을 잡고 그녀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악!”안세리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으며 아름다운 얼굴은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고 이마에는 핏대가 섰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순식간에 온몸에 퍼지더니 그녀는 미친 듯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유진우! 너 함부로 하지 마! 우리는...”이 상황을 보고 봉연주가 몇 마디 협박하려고 했는데 삽시에 목이 조였다.유진우는 다른 한 손으로 이미 봉연주의 목을 졸랐으며 그녀를 휠체어에서 치켜들었다.“너희 두 사람...
“하 마담, 마담... 마담이 나한테 장난치는 건 아니죠? 홍양이... 진짜 죽었어요?”빡빡이 남자는 여전히 믿기 힘든 표정이었다.홍양은 천하회의 일원으로 실력도 뛰어나고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사람이라 쉽게 누군가의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죽을 수 있지?“황 집사님! 이런 엄청난 사건을 갖고 제가 어떻게 장난칠 수 있겠어요? 제 쪽 계집 둘이 방금 똑똑히 봤어요. 지금 홍양의 시체는 위층에 그대로 누워있어요. 집사님이 믿지 못하겠다면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도 좋아요.”하 마담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너희 둘, 빨리 위로 가서 확인해!”빡빡이 남자는 망설이지 않고 부하들에게 위로 가서 당장 확인하라고 명령했다.잠시 후, 부하 두 명이 허둥지둥 내려오더니 하 마담과 똑같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홍양이 죽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홍양은 단 한 방에 즉사했고 저항할 기회조차 없었다.확인 사살을 당한 빡빡이 남자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유진우를 쏘아보며 호통쳤다.“네 이놈! 네놈이 무슨 짓을 한 줄 알고 있어? 홍양을 죽인 건 큰 죄야! 넌 백번 죽어도 벌을 받기엔 부족해! 거기 누구 없어? 이 개자식을 잘게 썰어 개밥으로 만들어 버려!”빡빡이 남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유진우에게 사형을 선고했다.홍양이 억울하게 죽어서는 안 되니 오늘 반드시 범인이 그 죄를 제대로 치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죽여라!”천하회의 무사들은 긴말하지 않고 즉시 칼을 들고 돌진했다.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는 유진우는 한 손을 들어 올렸다.슝, 슝, 슝...대량의 은침이 유진우의 옷소매에서 튕겨 나가면서 모든 천하회 무사들이 그 자리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자리에 서 있는 무사들의 목에는 은침이 꽂혀 있었다.무사들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무슨 상황이야?”구경하는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응?”빡빡이 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안세리와 봉연주를 바라보았다.“우, 우리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무죄예요!”봉연주는 겁에 질려 연신 고개를 저으며 변명했다.“황 집사님, 우리는 홍양과 친구인데 어떻게 친구를 해칠 수 있겠어요? 절대 저 비겁한 소인의 헛소리에 넘어가지 마세요!”안세리는 애처롭게 가냘픈 표정을 지으며 울먹거리는 말투로 하소연하고는 유진우를 가리켰다.“다 저놈 때문이에요. 저 사람이 홍양을 죽였고 지금 우리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거예요. 우리는 보시다시피 힘없는 여자라서 반항할 방법도 없어요. 황 집사님,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 저놈은 홍양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해요!”두 여자의 애처롭고 비참한 모습에 가뜩이나 화가 가득했던 빡빡이 남자는 화를 화산처럼 분출하며 외쳤다.“자식아! 남자라면 감당할 건 감당해야지. 두 여자에게 네 죄를 씌우는 게 남자로서 해야 할 일이야?”“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야. 가장 독한 건 여자 마음이라는 말 못 들어봤어? 저 둘은 네 상상 이상으로 독한 여자야. 저 둘의 말을 믿는다면 결국 너만 손해 보게 될 거야.”유진우가 차분한 말투로 경고했다.“헛소리하지 마!”빡빡이 남자는 눈을 크게 부릅뜨며 소리쳤다.“지금 모두가 한결같이 네가 홍양을 죽였다고 증언하고 있어. 아직도 변명할 거야? 네놈은 관짝을 보지 않고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독한 놈이구나.”말이 끝나자 빡빡이 남자는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려고 준비했다.빡빡이 남자가 긴 칼을 공중에서 휘두르자 섬뜩한 검광이 번뜩이더니 이내 유진우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하지만 유진우는 피하지도 않고 대신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펑!섬뜩한 검광이 순식간에 꺾였고 유진우에게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않았다.빡빡이 남자는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예측한 듯, 검광으로 유진우의 주의를 끌면서 한편으로는 몸을 붙여서 검광과 함께 앞으로 나서서 유진우의 목을 겨냥했다.이 일격은 빠르
“뭐지? 내 몸이 갑자기 무거워진 것 같은데?”“강력한 압박감이 느껴지는데 혹시 고수가 등장한 건가?”갑작스러운 중압감이 드세게 느껴지며 조금 전까지 시끄러웠던 취향루는 금세 조용해졌다.이상하게도 사람들 마음속에 큰 재앙이 닥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솟구쳤다.“응?”유진우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거의 동시에 입구 쪽에서 키가 훤칠하고 흰옷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흰옷의 남자는 날이 선 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녔고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하는 손짓 하나하나에서 패기가 넘치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흰옷의 남자는 세상을 내려다보는 왕처럼 위엄이 넘쳐나 다들 저도 몰래 깊은 경외감을 느끼며 고개를 숙이고 싶어지게 했다.“한비양이야! 천하회의 한비양!”흰옷의 남자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경악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순식간에 취향루 전체가 떠들썩해졌다.“뭐? 저 남자가 한비양이라고? 그러길래 저렇게 늠름하고 위풍당당해 보이지.”“세상에! 여기서 한비양을 보게 될 줄이야, 오늘 정말 오기 잘했어.”“한비양까지 직접 올 줄은 생각지 못했네. 오늘 이 소동이 간단하게 수습될 건 같지 않구나.”흰옷의 남자 한비양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모두가 호들갑을 떨며 숭배하는 한비양은 도대체 누구지?한비양은 연경 4대 도련님 중 한 명이자, 천하회의 유일한 도련님이었다.한비양의 재능은 뛰어났고 실력도 강력해 백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천재였고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모두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인물이었다.일반인들과 평생 접점이 없을 천재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다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한비양?”유진우은 두 눈을 가늘게 떴고 얼굴에 이상한 감정이 스쳤다.한비양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조무진과 동급인 것으로 보아 절대 평범한 인물일 수는 없었다.현재로서는 한비양의 기운이 문관옥에 결코 뒤지지 않았고 오히려 좀 더 강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왔어! 드디어 한비양이 왔어! 이제
두 손이 맞붙으며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유진우는 몸을 한 번만 움찔했을 뿐인데 모든 힘을 가볍게 막아냈다. 반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유진우의 한 손에 의해 수십 미터나 날아가며 땅에 떨어졌고 코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온몸의 경락이 반쯤 부서져버렸다. “너... 너 어떻게 이렇게 강한 거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가슴을 움켜잡았고 얼굴에는 놀람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유진우는 분명 독에 중독되었고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단순한 한 방으로 나를 이렇게 쉽게 물리친 거지? 우리의 실력 차이가 이렇게 컸던 건가?’ “내가 기습당하기 전에 내 실력을 조사하지 않았나?” 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입가에는 검은 피가 묻어 있었다. 사철수 몸속의 독은 이미 모두 빠져나갔고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유진우 자신은 부상을 입고 독에 중독되었지만 깊은 수련 덕분에 당장 쓰러지지는 않았다. “넌 아무리 강해도 결국 그냥 무도 마스터에 불과하다. 우리는 충분히 널 죽일 수 있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큰 소리로 외쳤다. 호룡각이 파괴된 날, 그곳의 고위 인물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남은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 싸웠고 사실상 더 이상 조직을 구성할 수 없었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는 잘 모르지만 서경 왕부의 음모였고 유진우가 그 모든 일의 주범이라고 알고 있었다. 오늘 그는 유진우가 서경 왕부의 밀사를 만나러 온다는 비밀 정보를 받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복수를 꿈꿨지만 상대가 이토록 강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흥! 만약 내가 그저 평범한 무도 마스터였다면 아마 오래전에 죽었을 거야. 지금 살아있는 게 기적이지.” 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건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눈을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유진우가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라면 이렇게 젊은 나이에 대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빠르고 정확하게 내리쳤다. 전신의 강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고 뒤에서 기습 공격을 한 탓에 방어할 틈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유진우가 여전히 사철수를 치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주변 상황을 전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긴 칼을 내리칠 때 유진우는 재빨리 호신 진기를 발동시켜 몸에 방어막을 만들었다. “쾅!”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긴 칼이 유진우의 호신 진기를 강하게 가격했다. 그 충격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진기의 파장이 퍼져 나갔다. 엄청난 반동에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칼은 튕겨져 나가고 그는 몸이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자신은 전력을 다해 칼을 내리쳤고 심지어 기습 공격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유진우는 죽지는 않아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를 보면 전혀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밀려서 뒤로 물러섰다. ‘이 어린놈이 나보다 더 강하다고?’ “윽!” 그때, 치료 중이던 유진우가 갑자기 검은 피를 토했다. 얼굴은 온통 새카맣게 변했다. 방금 전 독기는 너무 강력해서 유진우의 몸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막을 수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사철수를 치료하는 데 너무 많은 진기를 소모한 탓이었다. 그로 인해 독소를 억제할 수 없었고 그대로 오장육부에 침투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기습에 맞서려고 무리하게 방어를 했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충격이 겹쳐 결국 피를 토하게 된 것이다. “하하하, 결국 너도 다 죽어가고 있구나!”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유진우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 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한 방에 바로 무너지네.’ “이번엔 너의 목숨을 가져가겠다!”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떨어진 칼을 다시 움켜잡고 유진우에게 달려들어 한 번 더 칼을 휘둘렀다. “전하!” 중상을 입
“난 너랑 시간 낭비할 생각 없어! 꺼져!”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더 이상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맹렬히 공격을 시작했다. 원래 서로 비슷한 수준이던 손도운은 금세 밀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실력은 결국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전에 손도운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와 팽팽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의 뜨거운 혈기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손도운의 그 우세는 사라졌고 남은 건 오직 순수한 실력 차이였다. 이제 싸움은 더 이상 간단한 기술이나 혈기 싸움이 아니었다. 실력의 차이가 승패를 가를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죽어라!”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 공격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격렬해졌다. 손도운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직 방어할 뿐 반격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3분 내로 손도운은 완전히 패배할 것이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 모습을 본 유진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고 앞에 나서려는 순간 갑자기 경계심이 솟구쳤다. 아직 반응하기도 전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발아래에서 검은 안개가 퍼져 나갔다. 유진우는 본능적으로 호신 진기를 발동시켜 방어막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검은 안개는 마치 영혼처럼 유진우의 호신 진기를 뚫고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 안개가 눈, 귀, 입, 코, 그리고 피부의 모든 모공을 통해 침투해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유진우는 깜짝 놀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아무리 많은 것을 봐왔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호신 진기마저 막지 못하는 이런 괴이한 안개는 대체 뭐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유진우는 곧바로 기운을 모아 독을 빼내려 했다. 비록 이 검은 안개가 매우 이상하긴 했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그것을 제거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장혁아! 괜찮아? 아무
손도운의 검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빨랐다.게다가 그의 검술은 극히 사납고 위압적이며 전형적인 군무 스타일로 꾸밈이 없고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었다.그의 모든 움직임과 검법은 살인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깔끔하고 효과적이면서 매우 폭력적이었다.4대 호법의 진형이 신비롭기는 했지만, 손도운의 빠른 검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들이 진형을 바꾸려고 할 때마다 손도운은 빈틈을 발견하고 빠른 검으로 돌파했다.한 차례의 교전 끝에 네 사람은 완전히 제압당해 반격할 여지가 없었다.“손 장군님이 이렇게 강한 무도 마스터인 줄 몰랐네요!” 사철수는 조금 놀랐다.“유만수의 근위병이자 밀정단까지 이끄는 자인데 당연히 평범할 리가 없죠.” 유진우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손도운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는 예사롭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유만수로부터 중임을 받고 연경까지 먼 길을 왔다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손 장군님의 나이를 보아하니 겨우 30대에 불과한데 이런 성취를 거둘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위왕 님 곁에는 숨은 인재들이 많네요.”사철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끝났네요.”유진우가 불쑥 말했다.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도운의 공세가 거세졌다.거센 파도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칼날의 기세는 막을 수 없었다.초반부터 기세가 꺾인 4대 호법은 순간적으로 압박을 받아 열수를 버티기도 전에 손도운의 빠른 검에 처져 입과 코로 피를 뿜으며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졌다.“흥! 감히 전하를 해치려고 해? 그전에 내가 든 검이 동의하는지 물어봐!”손도운은 살기가 가득한 아우라를 뿜으며 위풍당당하게 말했다.그가 유진우를 마주했을 때 보여준 겸손함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고수를 만났네.”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손을 들어 계속 공격하려는 4대 호법을 제지했다.“이제 당신 차례야!”손도운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고 칼끝을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얼굴을 향해 겨눴다.“흥! 네가 4명을 이겼다고 해서
그들은 어둠 속을 지니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용사들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소중하고 중점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다.“전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도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하의 신분이 특수하여 모든 세력이 은밀히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밀정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쉽게 노출될 수 있었다.“손 장군님, 왕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텐데 지금 상황이 어떤지 말씀해 주세요.” 유진우가 다시 물었다.“전하, 지금 상황은...”손도운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갑자기 아래층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그들은 눈길을 주고받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그들이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가면을 쓴 암살자 무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암살자들은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선두에 선 한 사람은 붉은 옷을 입었고 그 옆에 있는 네 명은 흰옷을 입었고 나머지는 모두 검은색 옷을 입었다.“당신들 누구야?”왕현이 가장 먼저 검을 뽑아 유진우의 앞에 막아섰다.“전하, 먼저 가세요. 제가 뒤따라가겠습니다.”손도운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천천히 뽑았다.“유장혁! 네가 우리 호룡각을 무너뜨리고 각주를 죽였으니 오늘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줄게!”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분노하며 소리쳤다.“고작 당신들 몇 명만으로 날 죽일 수 있겠어요?”유진우는 조용히 앉아서 차를 천천히 마시며 말했다.전혀 개의치 않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이 오만한 놈아, 오늘 호룡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줄게!”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진 쳐! 저놈을 죽여라!”“예!”옆에 있던 흰옷의 암살자 네 명은 아무 말 없이 곧바로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네 사람의 속도가 매우 빨랐고 움직임이 신비로웠으며 그들이 피하고 이동하는 모습은 거의 잔상만 보일 뿐이었다.가장 관건적인 것은 네 사람의 공격과 방어가 매우 잘 조율되어 있었고 진법이 완성되면서 살상력이 배가되었다.“나
“짧게는 반달, 길게는 1년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유진우의 몸은 경직되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자신이 늘 유만수의 부작위를 원망했어도 그들은 결국 같은 피가 흐르는 부자였다.유만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불안해하고 있었다.그의 곁에 남아있는 가족은 몇 명밖에 안 되는데 유만수까지 떠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 소식 확실한가요?”유진우는 침착해 보이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만 테이블 밑에 숨어 있던 손을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었다.“전하, 이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확실합니다. 어르신께서 제가 전하께 알려드리는 것을 원치 않으시지만, 저는 전하께서 이 사실을 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손도운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어르신께서 항상 몸이 정정하셨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예요?”사철수가 물었다.“지난 10년 동안 어르신께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서경을 지키고, 오랑캐의 침략을 막고, 모든 내부 세력도 항상 경계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어르신께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손도운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유만수의 근위병으로서 그는 모든 것을 안중에 두고 있었다.예전의 서경왕은 손가락만 까딱해도 조정과 민간을 뒤흔들 정도로 위엄있고 패기가 넘쳤다.그러나 이제 영웅은 죽어가고 있으며 그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다.“휴... 어르신께서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셨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서경 전체뿐만 아니라 용국의 절반에 가까운 영토도 함께 짊어지셨습니다. 비록 높은 공들을 세웠지만 몸이 너무 많이 상했습니다.”손도운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유만수...또 다른 말은 없었어요?” 유진우는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서경은 전하의 영원한 집이니 전하께서 힘들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언제든지 돌아오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손도운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의 제왕 빌딩은 예전의 북적거림과는 달리 조금 한산해 보였다.특히 2층은 예약석이라 외부인 출입이 불가능했다.유진우는 자신의 신분을 밝힌 후, 왕현과 사철수를 데리고 계단을 올랐다.이때 2층 VIP 코너에는 단 한 사람만 앉아 있었다.그 남자는 검은 옷에 평범한 외모, 평범한 몸매와 평범한 기질을 가졌고 아무런 특징이 없어 보이는 매우 평범한 일반인으로 보였다.“전하, 소인 인사드리옵니다.” 유진우가 나타나자 그 남자는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누구시죠?”유진우는 담담히 물었다.“소인의 이름은 손도운이고 어르신의 근위병입니다. 어르신께서 전하가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저를 보내 전하를 도우라고 하셨습니다.”“근위병이라고요?”유진우는 손도운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다시 물었다. “당신의 신분을 어떻게 증명하죠?”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가 아니었다. 명확한 증명이 필요했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이건 어르신께서 소인한테 주신 영패입니다. 한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손도운은 주머니에서 영패를 꺼내 양손으로 건넸다.유진우는 영패를 받아 자세하게 살펴보고 마침내 경계심을 풀었다.확실히 서경왕부의 영패였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근위병만이 얻을 자격이 있었다.영패로 상대방의 신분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손 장군님, 반가워요.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되니까 얼른 일어나세요.”유진우는 영패를 돌려주는 동시에 손도운을 일으켜 세웠다.“전하, 감사합니다.”손도운은 기쁘면서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손 장군님, 이분은 한때 중군 부장이었던 사철수 장군님이에요.”유진우는 사철수를 가리키며 말했다.“사 장군님, 사 장군님의 명성을 오래전부터 많이 들었는데 오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에요.”“손 장군님, 천만에요. 난 이제 늙었어요. 앞으로는 그쪽 젊은이들의 세상이에요.”사철수는 웃으며 말했다.“이분은 제 친구 왕현이에요.” 유진우가 왕현을 가리키며 말했다.“왕현 형
식사를 마친 유진우는 이만 자리를 뜨기로 했다.이틀 밤낮을 잠만 자다 보니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얼른 돌아가야 했다.차에 오르기 전 이청성은 유진우를 불러 세웠다.“유진우 씨, 내가 어젯밤에 점쳐봤는데 아직 당신의 위기가 완전히 해소된 거 아니에요. 앞으로 한동안은 반드시 조심해야 해요.”“명심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넨 후 곧 차에 올라탔다.차에 탄 유진우는 먼저 조선미한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한 다음 조무진과 조홍연 두 사람한테 연락해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설명했다.그리고 왕위 계승 전이 시작되면 반드시 조정 전체에 재앙이 닥치게 될 것이고 왕족인 조씨 가문 역시 벗어날 수 없으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명확히 알렸다.한 시간 후 유진우는 별장에 도착했다.같은 시각 별장에서 윤아는 요리하고 사철수와 유공권은 서예를 연구했으며 왕현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누구야?”유진우가 문을 여는 순간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왕현이었다.“저예요.”유진우는 즉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진우 형님, 드디어 돌아왔네요.”왕현이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이틀 동안 어디에 있었어요? 왜 아무 연락이 없었어요?”유진우는 웃으면서 대답했다.“급한 일이 생겨서 처리하느라 이틀이나 걸렸어요.”유진우는 차마 자신이 이틀 동안 잠을 잤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진우 형님, 전에 주신 서신은 서경으로 돌려보냈어요.”왕현이 말했다.“그래요.”유진우는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며 말을 돌렸다.“아참, 아저씨랑 유명의는 어때요?”“그들은 괜찮아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요 며칠 동안 경계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어요.”왕현이 말했다.“다행이네요. 왕현 씨 수고가 많아요.”“전하 돌아오셨어요?”이때 사철수와 유공권이 서재에서 나왔다.두 사람은 줄곧 집에만 있다 보니 지난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고 그다지 걱정될 것도 없었다.“아저씨, 안색이 점점
“뭐라고요?”이청성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늦게 반응했다.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사실 저는 공주님께서 황제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아마 폐하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만약 그런 생각이 있으시다면 서경왕부를 대표해서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요.”유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장혁 씨! 농담하지 마세요. 하나도 안 웃겨요!”“저는 그냥 여자일 뿐이고 그런 자격이 없어요. 황궁 내에서도 저를 받아들일 수 없을 거예요.”“여자라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죠?”유진우는 진지하게 말했다.“누가 여자면 황제가 될 수 없다고 했어요? 신종여왕도 여성이었지만 황제 자리에 올랐잖아요. 지금 공주님은 신종여왕보다 조금 젊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노력만 한다면 분명히 해낼 수 있어요.”“유장혁 씨가 믿어줘서 고맙지만, 저는 그런 생각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비현실적인 생각을 버려줘요.”이청성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지금까지 단 한 명의 여황제가 있었고 그 여황제는 좋은 기운과 기회가 따랐기에 작은 희망이란 가능성이 있었다.이청성은 그런 전설적인 인물과 자신을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게다가 만약 자신이 권력을 쥐고자 한다면 세상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그때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런 상황은 이청성이 가장 원하지 않는 그림이었다.“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됐어요. 저는 그냥 한 번 제안했을 뿐이에요. 물론 공주님께서 마음을 바꾸시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유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이성민이 말했듯이 이청성은 왕족 중에서 황제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이청성은 여성이다.이 길을 걷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그뿐만 아니라 세 명의 황자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궁 안의 신하들 또한 이청성이 황제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청성 자신이다.이청성이 그런 마음가짐을 가졌다면 유진우는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