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누군가의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린 순간, 유진우를 발견한 안세리는 미간이 잔뜩 찌푸려지더니 안색이 어두워져 갔다. 전에 있던 경력과 일들은 아직까지도 두 사람 사이를 물과 불 마냥 다투게 만들었다. “야! 거기 유 씨 남자. 왜 어딜 가도 네가 있는 거지? 재수가 없으려니까.” 봉연주 또한 마찬가지로 전에 은씨 가문에서 개업한 회사에 찾아갔다가 환영은커녕 한차례 교훈을 받았으니 유진우에 대해 좋은 마음은 없었다. “둘이 이곳에 온 이유가 옥로고의 비방을 얻어내기 위함이라면 포기하기를 바라.” 유진우가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흥. 우리가 뭘 하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 너 자신이 놓인 처지부터 생각하시지?” 그의 말에 안세리가 콧방귀를 끼며 물었다. “그래! 이미 네 한 몸 보호하기도 힘든 처지에 놓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우리까지 상관하려고?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나 봐?” 봉연주도 안세리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그녀들은 은도의 죽음이 무조건 문한성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얼른 기회를 틈타 이득을 얻고 싶었다. 유진우는 그저 어항에 갇힌 물고기 한 마리일 뿐이라 문한성에 의해 발견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그녀들을 유진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사람 취급조차 해주지 않았다. “옥로고의 비방은 우리 은도 씨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이니 누가 마구잡이로 빼앗아가려고 한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유진우가 안세리와 봉연주에게 마지막 경고장을 날리듯 말을 꺼냈다. “왜? 우리한테 겁이라도 주려는 셈이야?” 봉연주는 유진우의 말에 입을 삐죽 내밀며 비웃기 시작했다. “그저 자그마한 무부일 뿐인 사람이 뭐가 잘나서 이러는 거지? 정말 우리랑 어깨를 나란히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해? 헛된 꿈 꾸지 마.” “유진우, 너랑 관련된 일이 아닌 이상 상관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야. 아니면 은도 씨의 오늘이 너의 내일이 될 테니까!” 안세리가 사뭇
그래서 그들은 두렵기 시작했다. 은씨 가문 사람들의 절실한 말들을 듣고 있던 안세리는 화가 살짝 풀렸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의 체면을 살려주기로 하고 전화를 안 걸어도 돼요. 심지어 저는 은씨 가문을 도와 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줄 준비도 됐어요. 하지만 아직 문제는 단 하나죠? 당신들은 꼭 옥로고의 비방을 저한테 넘기셔야 해요.” “문제없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저희는 옥로고의 비방을 넘길 준비 다 마쳤습니다.” 은씨 가문의 넷째 삼촌이 안세리의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지금 은씨 가문의 삶은 그나마 안정적인 상황이라 비방 하나 때문에 전체 가문이 위기에 처해있는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은 족장님, 족장님 뜻은 어때요?” 안세리가 은국성을 쳐다보며 그의 의견을 물었다. 은국성은 이빨을 꽉 깨물고 망설이는 듯싶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비방을 내놓지 않으면 안씨 가문과 봉씨 가문이 찾아오는 데다가 문왕부 사람까지 올 것이 불 보듯 뻔했으니 은씨 가문에서는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러한 일들과 예시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좋아요. 이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제일 정확한 선택을 하셨군요.” 안세리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왜 아직까지도 넋 놓고 있는 거죠? 얼른 비방을 내놓으세요.” 봉연주가 은씨 가문 사람들을 보채며 말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은씨 가문의 넷째 삼촌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은국성을 부축하더니 떠날 채비를 하였다. “잠깐만!” 그때, 가만히 있던 유진우가 입을 뗐다. “비방은 저와 은도 씨의 피와 땀입니다. 절대 넘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야, 이제 그만하지? 사람이 그렇게 이기적이면 안 되는 거야. 너 혼자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이 사람들까지 두렵지 않은 게 아니잖아?” 안세리의 표정이 또다시 싸늘하게 식어가더니 그에게 물었다. “유진우 씨, 이쯤이면 됐습니다. 저희 좀 놔주십시오. 저희는 이 사람들을
“고작 이런 사람들을 고수라고 불러? 도대체 어디서 나온 용기지?” 유진우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쓱 보더니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여봐라!” “감히!” 그녀의 목소리에 유진우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보기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남자가 안세리와 봉연주를 무시하다니 참으로 간도 크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흥! 체면을 주려고 해도 이렇게 내팽개치는구나.” 봉연주는 콧방귀를 뀌더니 바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여봐라! 당장 이놈을 데리고 나가거라.” “네!” 그녀의 말에 그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유진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꺼져!” 유진우가 분노에 차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순간적으로 진기들이 폭발해 나왔다. 쿵! 그러자 몇십 명이나 되던 고수들이 큰 차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빈소 밖 몇 미터 뒤로 날아가 버렸다. 매 사람마다 다 입에서 시뻘건 피를 뱉으며 고통에 겨워 몸도 제대로 겨누지 못했고 일어서지도 못했다. “응?”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은씨 가문 사람들은 물론 안세리와 봉연주 또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유진우를 쳐다봤다. 그 누구도 유진우의 실력이 이렇게 강해 그저 걸음만으로도 몇십 명의 고수를 물리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안세리와 봉연주는 서로 눈을 마주 보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만약을 대비해 그녀들은 오늘 특별히 고수들을 요청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녀들은 다 이 무사들이 유진우를 손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진우가 오히려 이 고수들을 식은 죽 먹기 식으로 상대할 줄은 몰랐다. ‘유진우 저놈 도대체 왜 저렇게 센 거야?’ “지금도 내 몸에 손을 댈 생각이 있어?” 유진우가 말을 하며 봉연주 쪽으로 몇 걸음 다가오자 봉연주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너... 너 다가오지 마! 나는 봉씨 가문의 큰 아가씨이자 그
“유진우, 네가 지금 스스로 죽을 길을 만들고 있구나?” 안세리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유진우를 보며 협박하듯 말했다. “지금 명령하는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싹싹 빌어. 아니면 문한성 씨에게 정말 전화를 걸어 친히 와서 너를 죽이라고 할 테니.” 그녀의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이 또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진우야, 정말 큰 사고를 치는구나. 두 분 다 재벌 가문 사람들인데 왜 손을 대니? 정말 겁을 상실한 거야?” “뭐 하고 있어? 빨리 머리를 숙여 사과하지 않고! 문한성 그 사람이 정말 온다면 넌 오늘 뼈로 못 추스를 거야.” “혼자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우리까지 끌어들여? 우리 은씨 가문은 정말 너 하나 때문에 망해가는구나.” 주위 사람들의 당황한 표정과 안절부절 해하는 모습을 발견한 안세리와 봉연주 두 사람은 또다시 득의양양해지기 시작했다. ‘때릴 수 있으면 어쩔 건데? 문왕부의 군대들까지 이길 수 있어?’ 두 사람은 문한성이 오기만 한다면 유진우가 아무리 세고 능력이 좋대도 죽음을 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어때? 이제 좀 무서워? 무섭다면 당장 무릎을 꿇어.” 안세리가 유진우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가? 무섭다고?” 유진우는 안세리를 벌레 보듯 보며 물었다. “먼저 전화라도 걸어보지 그래? 걸리는지 확인부터 하라고.” “내가 지금 너한테 겁만 주는 것 같아? 좋아! 그럼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어.” 안세리는 쓸데없는 말들 대신 핸드폰을 바로 꺼내 문한성의 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번이나 그에게 전화를 걸어도 상대방은 묵묵부답이었다. 봉연주의 핸드폰으로 문한성에게 전화를 걸어도 결과는 똑같았다. “왜? 안 받나 보지? 내 핸드폰으로도 해볼래?” 유진우가 다급해진 안세리를 보며 피식 웃더니 물었다. “너... 너 너무 잘난 척하지마. 문한성 씨 지금 바빠서 안 받을 거야. 이미 문자를 보내놨으니 확인만 한다면 바로 달려올 거야! 그때가 되면 너의 제삿날도 멀지 않았다고.” 안세리는 유진우를 째려
“야! 너 이제 진짜 끝났어.” “감히 문 어르신의 아들과도 같은 사람을 죽였으니 문왕부를 건드린 거나 마찬가지야. 용국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너 몸 하나 숨길 곳은 이제 없을 거야.” 그때, 봉연주 또한 안세리와 함께 유진우를 마구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늘 문왕부를 자신의 든든한 “뒷산”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문한성과 이청아를 아주 친절히 챙기고 보살폈다. 그들이 자신을 보호하기만 한다면 자신은 마음대로 활개를 치고 다녀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에서도 유진우가 자신의 든든한 “뒷산”을 죽이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이건 이미 간이 크다고 형용할 수도 없을 만큼 대담하고 정신 나간 짓이었다. “죽... 죽었어? 문한성이 죽었다고?” “유진우! 진우야, 너는 네가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지는 알고 있니?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정말 너 하나 때문에 떼죽음 당하게 생겼구나.” 문한성의 잘려나간 머리를 발견하고 멍해 있던 사람들은 이내 정신을 차린 뒤, 너나 할 것 없이 통곡을 해대며 유진우를 탓하기 시작했다. 그의 죽음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기에 문왕부 쪽에서 책임을 물게 만든다면 전체 은씨 가문 또한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뻔했다. “누가 지은 죄면 누가 책임지는 게 맞습니다. 제가 문한성을 제 손으로 직접 죽였으니 무슨 결과가 있다 해도 저 혼자 책임집니다.” 유진우가 느긋하게 입을 뗐다. “책임? 네가 책임을 질 수 있어?” 은씨 가문의 넷째 삼촌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저 사람은 연경의 왕족이야! 손으로 하늘도 가릴 수 있는 대단한 존재라고. 도대체 네가 무엇으로 저런 존재들과 겨룰 건데?”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우리까지 끌어들이고 지*인가 말이야! 너... 너는 정말 우리 가문에게 들이닥친 재앙과도 같은 사람이야.” “맞는 말이야! 우리 은씨 가문은 그저 조용히 살고 싶었을 뿐인데... 네 놈이 문한성을 죽인 것도 모자라 머리를 가지고 우리 가문에 찾아왔다니! 이건 우
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나는 내 모든 수단과 인맥을 동원해 안씨 가문과 봉씨 가문을 멸망시키고 죽일 거야.”“멸망? 웃기시네.”안세리는 유진우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깔깔 대기 시작했다.“진우야, 유진우. 넌 네가 정말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 맨발의 의사와도 같은 존재인 주제에 감히 우리 두 가문이랑 맞서 싸우려고?”“그러니까 말이야. 제 한 몸 보호하기도 힘들게 된 마당에 우리를 협박해? 뭐 하나 알려줄까? 나 이미 조금 전에 문왕부 사람에게 몰래 연락을 했어. 그 사람들이 온다면 너는 발이 열 개라도 도망갈 수 없을 거야.”봉연주가 자신만만해하며 안세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그녀들의 눈에 유진우는 이미 죽음을 피면 하지 못하는 사람이자 죽기 전 발악을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난 이미 기회를 줬고 너희들이 그 기회를 놓친 거야.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마.”말을 마친 유진우는 핸드폰을 꺼내 여러 명에게 문자를 돌리기 시작했다.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연경의 인맥을 물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다 불러냈다.유진우는 꼭 안씨와 봉씨 가문이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다.“허세하고는.”안세리가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어갔다.“고작 문자 몇 통 보낸다고 우리한테 위협이 될 것 같아? 웃기시네! 우리가 어떤 큰 장면들을 못 봤을 것 같니? 이제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다고.”“믿기지 않는다면 직접 두고 보라고.”유진우는 안세리의 말에 짧은 대답만 할 뿐 불필요한 말들은 하지 않았다.그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증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그래! 오늘 한번 두고 보자고. 과연 누가 재수 없는 사람이 될지 말이야.”안세리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유 씨. 간이 그렇게 크다면 도망칠 생각도 하지 말라고. 조금 있다가 문왕부 사람들이 와도 이렇게 당당할지 지켜볼게.”봉연주 또한 유진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장
뛰뛰! 군용 지프차들은 은씨 가문의 저택에 들어선 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빈소 앞에 멈춰 섰다. 이내 한 명의 부장이 차에서 내리자 무장을 한 병사들이 벌 떼처럼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누가 전화를 걸었습니까?” 어두운 얼굴을 한 부장은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빈소 안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저요! 제가 건 전화예요.” 부장의 말에 봉연주는 얼른 손을 뻗어 대답을 했다. “저는 봉씨 가문의 봉연주라고 해요. 문한성 씨와 아주 깊은 교류를 하고 있는 사이였죠. 방금 누군가가 문한성 씨를 죽인 것을 발견해서 신고했어요. 얼른 범인을 잡아가 주세요.” “범인이 누굽니까?” 봉연주의 말에 부장이 그녀를 쓱 쳐다보며 물었다. 문한성의 부고 소식은 이미 전체 문왕부에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유진우가 옥면 산장에 들이닥쳐 문한성을 죽인 것은 물론 그의 머리를 들고 걸어 나갔다는 소문 말이다. 소식을 들은 문설봉은 분노에 가득 차 친히 범인을 잡아 엄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문왕부의 군들이 동원되었고 사방을 뒤지며 범인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까 신고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빈들을 동원해 범인을 잡아 문왕부에게 공헌을 할 생각에 빠르게 움직였다. “저 사람이 범인이에요!” 봉연주는 뒤를 돌아 유진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저 사람뿐만 아니라 은씨 가문 전체가 다 범죄를 도와준 사람들이죠. 반드시 다 잡아야 해요.” 그 순간, 안세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에 은씨 가문의 사람들은 넋이 나간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안세리 씨, 저희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저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렇게 함부로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그래요! 저희는 유진우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사람 모함하지 말아 주세요.” “저희가 비방을 순순히 내놓을 테니 제발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둘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숙이며
전에 은국성이 비방을 내놓기로 약속한 원인도 가문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안세리가 지금 한 입으로 두말을 하며 은씨 가문 전체를 해하고 있으니 그의 눈에 그녀는 악독하기 그지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자신을 욕하는 은국성의 말을 들은 안세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더니 바로 몸을 돌려 부장을 향해 공손히 손을 모아 입을 열었다. “장군님, 문한성 씨 죽음이 헛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다 잡으셔야죠. 꼭 엄벌에 처하고 지은 죄에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세리의 말에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휙 내저으며 말했다. “여봐라! 여기 있는 모든 용의자들을 다 체포하라. 데리고 가서 꼭 죄를 알려야 한다.” “멈춰!” 부장의 말에 유진우가 갑자기 앞으로 두 걸음 나서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문한성은 내가 죽인 것이니 은씨 가문 사람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그 어떤 결과도 책임질 생각이니 저를 데려가십시오.” “흥! 너 같은 살인범은 당연히 엄벌에 처할 것이다. 하지만 공범들 또한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되는 법이지.” 부장이 대답했다. “만약 지금처럼 마음대로 나오신다면 문한성과 똑같게 만들어 드리겠다고 보장하겠습니다.” 유진우가 날 선 눈빛으로 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뭐라고? 지금 나를 위협이라도 하는 게냐? 정말 죽음을 앞두고 있어 아무것도 눈에 뵈지 않는 모양이구나.” 부장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총을 꺼내 들었다. “유 씨. 몇십 대의 총구가 지금 너를 조준하고 있네? 네가 과연 이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겠어?” 봉연주가 피식 웃으며 유진우를 비웃었다. “유진우, 이제 그만 포기하지 그래? 지금 항복하면 죽어도 뼈는 남길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안세리도 질세라 봉연주와 함께 유진우를 보며 놀려댔다. “전 아직도 같은 생각입니다. 오늘 그 누가 감히 마음대로 나선다면 다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말을 하는 유
유진우와 이청성은 원래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포니테일 여자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화살을 두 사람에게 겨누자 잠시 반응이 없었다.“그래! 저 사람들은 열몇 가지 음식이 있고 전부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아 보이잖아. 근데 우리 상에 올라온 건 전부 쓰레기야!”“당장 우리 음식도 바꿔줘! 그렇지 않으면 정말 화낼 거야!”많은 사람들이 소란을 피웠고 말하면서 식탁 위의 음식을 바닥에 힘껏 내던져 온통 엉망진창이 되었다.“죄송합니다. 저희 작은 가게 능력으로는 정말 저렇게 유명한 음식으로 바꿀 수가 없어요.”종업원이 울상을 지으며 난감해했다.“바꿀 수 없다고? 그 말은 우리가 저런 음식을 먹을 돈이 없다는 거야?”매부리코 남자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지금 사람을 차별 대우하겠다는 거야? 우리가 누군지 알아? 우리가 바로 강호에서 유명한 비설파 제자들이야. 만약 우리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이 가게는 오늘로 끝이야!”포니테일 여자가 흉악하게 소리쳤다.“오해, 모두 오해입니다.”종원은 화들짝 놀라며 설명했다.“저 유명한 음식들은 전부 손님이 직접 데려온 요리사가 요리한 겁니다. 저희는 그저 주방만 제공했을 뿐이에요.”“뭐? 요리사를 데리고 왔다고? 지금 장난쳐? 누가 요리사를 데리고 다녀?”포니테일 여자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죽음의 사막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보물을 찾으러 오는데 요리사를 곁에 두는 것이 말도 안 되었다.“정말입니다. 제가 직접 봤어요. 제가 어찌 감히 여러분을 속이겠어요.”종업원이 확신에 차서 말했다.그 말을 들은 비설파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결국 유진우와 이청성에게 시선을 돌렸다.“이봐, 그 음식들 정말 그쪽 사람들이 만든 거야?”포니테일 여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위에서 내려다보며 물었다.“맞아요.”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였다.“밖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직접 요리사를 데리고 왔어요.”“그래?”포니테일 여자는 식탁 위의 요리를 자세히 보고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새우 볶음, 쏘가리구
“에취!”여관에서 막 옷을 갈아입던 유진우는 갑자기 재채기하고 속으로 ‘도대체 누가 나를 생각하는 거지?'라고 중얼거렸다.유진우는 코를 비비고 방을 나와 여관 식당에 도착했다.이 여관은 초등학교를 개조했기 때문에 식당의 면적도 작지 않았는데 대략 이삼백 제곱미터였다.백여 명이 식사하기에 넉넉했다.“여기요!”유진우가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이청성이 손을 들어 흔드는 것을 보았다.앞으로 다가가 보니 테이블 위에 이미 십여 가지 맛있는 음식이 놓여 있었다.“이 음식들은 전부 우리 주방장이 만든 거예요. 안전하고 맛도 있으니 안심하고 드세요.”이청성이 설명하자 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조심성이 많으시네요.”그는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집 밖에 나오면 조심하는 게 맞죠. 이곳은 죽음의 사막 경계지역으로 아주 혼잡해요. 경각심을 늦추면 언제 죽을지 몰라요.”이청성은 젓가락을 집어 들고 천천히 씹으며 우아하게 먹었다.두 사람이 밥을 먹고 있을 때, 청의를 입고 보검을 든 젊은 남녀들이 갑자기 들어왔다.이 사람들은 분위기가 강하고 눈빛이 날카로우며 압박감이 넘쳤다. 옷차림을 보니 강호의 문파 제자일 것이다.그중 선두주자는 마른 체구의 매부리코 남자로,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인상이 다소 험상궂어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대선배님, 이곳은 너무 낡았어요. 그리고 더러운 물건도 많은데 어떻게 여기서 식사를 하겠어요?”포니테일을 한 여자가 사방을 둘러보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어쩔 수 없어. 이번에는 상황이 열악하니 대충 때워.”매부리코 남자가 좋은 말로 달랬다.“그래요. 온 김에 대충 먹죠 뭐. 배고파 죽겠어요.”포니테일 여자는 그나마 깨끗한 자리를 찾아 앉더니 외쳤다.“종업원! 여기에서 가장 좋은 요리로 당장 준비해!”“네!”종업원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그리고 요리사에게 몇 가지 귀한 요리를 준비해서 먼저 내놓으라고 당부했다.그러나 포니테일 여자가 음식을 집어 한 입 먹자마자 곧바로 토했다.“퉤! 이
“전에는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달라요.”팀원들의 비웃음에 진이수는 부인하지 않았다.서로 생사를 함께한 형제자매들이라 못할 말이 없었다.“청성 아가씨는 정말 특별해요. 비록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분명 절세미인인 느낌이 들어요.”체격이 우람진 한 대머리 남자가 늠름하게 말했다.“황소야, 청성 아가씨는 대장님이 마음에 두신 여자야. 분수에 넘치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난 그냥 한 말인데 왜 내가 감히 대장님 여자를 뺏는 것처럼 말해?”대머리 남자가 멋쩍게 웃었다.“대장님, 모처럼 설레는 여자를 만났으니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마시고 용감하게 행동하세요. 대장님의 남성적인 매력이라면 충분할 거예요!”단발머리 여자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왠지 한발 늦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진이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가씨 옆에 수행 경호원이 있는데 두 사람 같은 차에 타고 온 걸 보면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아. 난 아마 기회가 없을 거야.”전에 유진우를 겨냥한 건 질투심 때문이었다.게다가 이청성이 유진우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면 두 사람은 분명 평범한 친구 사이가 아닐 것이다.“대장님, 방법만 정확하면 넘어오지 않는 여자는 없어요.”단발머리 여자가 실눈을 뜨며 말했다.“그래?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진이수는 순간 흥미가 돋았다.“아주 간단해요. 아가씨 옆에 있는 그 경호원이 죽기만 하면 대장님에게 기회가 생기지 않겠어요?”단말 머리 여자가 놀라운 말을 하자 진이수는 안색이 굳어져서 좌우를 둘러보며 아무도 엿듣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은하야, 함부로 말하지 마. 행동에는 규칙이 있는 법이야. 우리는 탐험대이지 용병이 아니야.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훔치는 일은 일단 소문이 나면 앞으로 누가 우리를 찾겠어?”“저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면 누가 알겠어요?”은하는 웃을 듯 말 듯 말했다.오랜 세월 강호를 누비며 서로 속고 속이며 생사를 걸고 싸웠으니
진이수의 갑작스러운 적대적 태도에 유진우는 잠시 당황하며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 초면이고 아무런 악연도 없는 상황인데 왜 이렇게 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까?’ “진 대장님, 우리가 전에 만난 적 있나요?” 유진우는 가볍게 물으며 손을 천천히 내렸다. “만난 적 없는데요.” 진이수의 표정은 차가웠다. “그렇다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유진우가 되물었다. “저는 그저 청성 씨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 진이수는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 “죽음의 사막은 위험이 도사리는 곳으로서 들어간 사람 중 살아 돌아온 사람이 거의 없어요. 강한 실력과 전문적인 지식, 경험이 없다면 일반적인 사람은 하루도 살아남지 못해요. 청성 씨가 저를 고용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청성 씨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죠. 그런데 당신은 전문적인 경호원이 아닌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당신의 능력이 의심되네요. 사막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청성 씨가 오히려 당신에게 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돼요.” 진이수의 말은 매우 직설적이고 거칠었다. “진 대장님, 청성 씨가 저를 데려온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의 역할은 단지 길을 안내하는 것뿐이에요. 위험을 피하고 그것만 잘하면 됩니다. 그 이상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저를 평가할 권리는 없습니다. 제가 할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유진우는 차분하게 답했다. 그는 성격이 온화한 편이지만 이처럼 자신을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돈을 받는 일도 적당히 해야죠. 이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그렇게 대충할 수 없어요.” 진이수는 여전히 진지하게 말했다. 그의 눈빛은 이청성을 향했다. “청성 씨, 이 일과 관련된 뛰어난 경호원을 몇 명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저를 믿으신다면 그들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 물론 비용이 더 들겠지만요.” “진 대장님, 그 마음은 고맙지만 저는 유진우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가 있기 때문에 제 안전은 문제가 없을 거예요.” 이청성은
차량은 일정한 속도로 순조롭게 달렸다. 결국, 그들은 다음 날 오전에 죽음의 사막의 가장자리 지역에 도착했다. 사막의 가장자리에는 크지 않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약 500-600가구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마을에는 여관, 주유소, 마트 등이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필요한 물건들은 다 갖추어져 있었다. 탐험대들에게 이 마을은 중요한 보급소로 위험한 순간에 생명의 은인이 되기도 한다. 사막에 들어가기 전이나 사막을 빠져나오는 이들은 모두 이 마을에 잠시 머물며 정보를 얻고 물자도 보충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막으로 물자를 운반하기 어려운 탓에 마을의 물가가 외부보다 몇 배나 비쌌다는 것이다. 이청성의 차량 행렬은 마을에 들어가 ‘희망의 집’이라는 이름의 여관 앞에 멈췄다. 이 여관은 원래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곳으로 방이 아주 많아 100명 넘게 수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청성 씨, 도착했습니다.” 차량이 멈추고 한 명의 용병 옷을 입은 남자가 이청성의 차 창문을 두드렸다. 그 남자는 30대 중반의 키 큰 남자였고 황색 군복을 입고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강한 인상의 얼굴을 지닌 그 남자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느낌을 주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진이수, 탐험대의 대장이며 죽음의 사막에 두 번 들어가 성공적으로 살아 돌아온 경험이 있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이청성은 그에게 큰돈을 주고 가이드를 맡겼다. 이번 탐험도 그가 이끌게 되었다. “진 대장님, 이곳이 바로 사막의 마을인가요?” 이청성은 차 문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부분의 건물은 낮고 허름해 보였다. 사막의 모래바람에 오랜 세월 닳고 닳아 마을은 전반적으로 허술하고 거칠게 보였다. 하지만 ‘희망의 집’이라는 여관은 예외였다.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자주 청소하는 듯했다. “맞습니다. 반경 100리 내에 이 마을 하나뿐입니다. 죽음의 사막에 가까워서 ‘사막의 마을’이라 불리죠.” 진이수는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 “이
왕부에 돌아온 유진우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두 통의 편지를 썼다. 하나는 유만수의 서재에 두었고 다른 하나는 유천우의 침실에 놓았다. 이 두 통의 편지는 사실 떠나기 전에 그들에게 남기는 작별 인사였다. 유진우는 감정적인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했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 떠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일 때가 있었다. 황혼이 내려앉을 무렵, 유진우는 이청성의 차에 몸을 싣고 서남의 사막으로 향했다. 서남에서 가장 거대한 사막은 ‘죽음의 사막'이라고 불린다. 이 사막은 환경이 극도로 험하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잘못 들어가면 거의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물론 죽음의 사막은 위험하지만 그 안에는 보물도 숨겨져 있고 금광도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수많은 탐험대가 생명을 걸고 사막에 들어가 운을 시험하려 한다. 운이 좋으면 보물을 발견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목숨을 잃고 만다. 과장하지 않고 말하자면 매년 수백 명이 보물을 찾아 사막에 들어가다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도 죽음의 사막에는 끝없이 많은 탐험대가 몰려든다. ‘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는다'는 말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일확천금을 꿈꾸며 사막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청성은 당연히 죽음의 사막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 신비로운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죽음의 사막에서 탐험했던 경험이 있는 전문 탐험대에게 큰돈을 지급해 길잡이를 맡겼다. 자신의 호위대와 합쳐 총 100명 이상의 인원과 30대가 넘는 차량이 함께 떠났다. 그중 절반 이상은 물자를 실은 차량이었다. 음식, 물, 나침반, 통신 장비, 응급처치 키트, 자외선 차단복, 구조 도구 등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청성은 부족함 없이 모든 물품을 준비했다. 밤이 깊어졌다. 차량 행렬은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었다. 유진우는 자리에 기대어 창밖으로 달빛을 바라보며 얼굴에 어떤 감정도 드러내
점심을 먹고 난 후, 유진우는 갑자기 이청성의 전화를 받았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상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날 장소는 성서의 옛 저택으로 정했다. 성서에 있는 그 오래된 집은 유진우가 이미 구매해 놓은 곳으로 주로 밀사 훈련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전에 소현무에게 피해를 보았던 여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서경의 밀사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의 큰 뜻은 다시는 자신들처럼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깊은 뜻에 유진우는 존경을 표했으며 그들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손도운의 훈련을 거친 그 여자들은 이제 입문 단계에 있지만 진짜 임무를 수행하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의 연습이 필요했다. 유진우는 그들이 평생 임무를 수행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의미였다. 밀사들은 잠재적인 위협이 있을 때만 활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그들은 거의 죽을 각오로 임무를 수행한다. 30분 후, 유진우는 성서의 오래된 집에 도착해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청성이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이청성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면사포와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매만 봐도 여전히 매우 유혹적이었다. 특히 그녀에게서 풍기는 신비롭고도 매혹적인 기운은 마치 타고난 매력처럼 사람들을 쉽게 끌어당기는 느낌을 주었다. “왔어요?” 이청성은 직접 유진우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공주마마, 갑자기 절 찾으시다니,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유진우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 이렇게 친해졌는데 공주마마라 부르는 게 좀 어색하지 않나요? 다른 호칭을 쓰는 건 어때요?” 이청성은 미소를 머금은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뭐라 부르면 되나요? 아가씨? 아니면 여사님?” 유진우는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 그런 거 말고 그냥 청성 씨라고 불러도 되잖아요. 왜 그렇게 격식을 차려요?” 이청성은
원인은 간단했다. 유진우는 배신자를 극도로 혐오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인 자들은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했다. 반란을 일으킨 다섯 명을 처형한 후, 그들을 따랐던 고급 장교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처분이 내려졌다. 강등될 자는 강등되고 포섭할 자는 포섭하며 감옥에 가야 할 자들은 감옥에 보냈다. 구체적인 처분은 자발적인 배신이었는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유진우는 반란을 수습하는 동시에 홍복홍에게 유만군의 한 부대를 이끌고 보물 지도의 위치를 따라 호룡각의 보물 창고를 찾아가도록 지시했다. 모든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호룡각에도 고수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대 마스터인 홍복홍 앞에서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손쉽게 호룡각의 잔당을 소탕하고 보물 창고에 있던 모든 재물을 회수해 왔다. 사철수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물 창고 안에는 재물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서경 왕부에서 동원한 수백 대의 대형 트럭과 수만 명의 인력을 총동원해야만 창고를 완전히 비울 수 있었다. 그 모든 재물의 양과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이 보물만으로 서경의 향후 20년 군자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창고 하나만으로 이 정도라면 남은 세 개의 보물 창고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나라를 사고도 남을 부가 될 것이었다. 보물을 가져온 뒤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바로 공로를 논하고 상을 주는 일이었다. 남방의 세 명의 제후인 회음 제후 은성종, 평양 제후 장범규, 선평 제후 주한휘는 모두 큰 공을 세운 자들이었기에 마땅한 보상을 받았다. 그들의 휘하에 있던 장군과 병사들도 저마다 공훈에 따라 상을 받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어느덧 사흘이 지나 있었다. 3일 후, 정오. 유진우가 식사하던 중 홍복홍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나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세자 전하, 아뢸 일이 있습니다.” 홍복홍은 몸을 숙이며 최대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
“됐어, 시간도 늦었으니 일찍 방에 들어가서 쉬어.”유만수는 피곤한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유만수가 유진우한테 왕위를 계승해 줄 생각을 했던 건 한편으로는 유진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책감 때문에 조금이나마 보상을 해주고 싶어서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진우는 야망도 없고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그러니 유만수도 싫다는 아들을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얼마 남지 않은 삶이니 이젠 두 아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 외에 일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유진우는 뭔가를 말하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우는 아직 왕이 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확실히 아니었다.다른 사람들한테는 서경의 왕은 최고의 권세를 대표하고 무궁무진한 부귀영화를 대표하며 세계 정상에 서는 위풍을 대표하겠지만, 유진우한테 서경의 왕은 너무 무거운 자리였다.그 자리는 오르기만 하면 짊어져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더 이상 자기 자신보다 전체 서경, 더 나아가 천하의 백성을 생각해야 한다.유진우는 자신은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 이렇게 무거운 책임을 질 자신이 없었다. 유진우는 이번만큼은 그냥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칠 동안 유진우는 왕부에서 시간을 보냈다.반역을 평정하는 이번 일은 호룡각을 소탕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처리해야 할 사소한 일이 많았다.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아 유진우가 그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했다.먼저 유태범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였다. 유진우는 유태범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첫째, 병권을 반납하고 서경에 머물며 매일 개를 산책시키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한가로운 귀족으로서 부귀한 삶을 누린다. 단, 어떤 세력도 있어서는 안 되며 수중의 호위대도 백 명을 넘지 말아야 한다.둘째, 어느 정도의 금전을 가지고 서경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발전한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왕부는 절대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