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졌다.은도의 시신이 아직 식지 않았기에 유진우는 이 머리를 들고 그의 영혼을 추모하기로 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유진우의 무시와 경멸에 분노한 문관옥은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즉시 손을 들어 공격을 시작하며 주먹을 내질렀다.“슈웅!”주먹 표면에서 뜨거운 금빛 광채가 발사되어 마치 포탄처럼 유진우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유진우는 피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반격해 하얀빛이 순간적으로 폭발했다.“쾅!”금빛과 하얀빛이 공중에서 충돌하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거대한 기압파가 일어나며 몇 겹으로 쌓인 파도가 점점 높아졌다. 이 전투의 여파는 마치 태풍처럼 주변을 휩쓸었고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 기세에 휘말려 사람도 물건도 이리저리 날아갔다.두 명의 마스터 고수들의 싸움에서 나오는 여파는 보통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은 서둘러 멀리 피했다.“역시 무도 마스터답군, 이렇게 날뛸 줄이야.” 문관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까 그 일격은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지만 마스터 고수 정도의 실력자만이 막을 수 있는 기술이었다.“문관옥, 난 오늘 너와 얽히고 싶지 않다. 더 방해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유진우가 차갑게 말했다.“날 막겠다고? 정말 네가 오늘 이곳에서 문왕부의 사람을 죽이고도 무사히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넌 열 번을 죽어도 모자라, 이 자식아!”그 말과 함께 문관옥은 다시 두 개의 금빛 주먹을 내질렀다.두 개의 금빛 주먹 그림자는 하나가 앞서고 하나가 뒤를 따르며 연속으로 유진우를 강타했다.유진우는 발을 쿵쿵 구르며 자갈을 띄워 올린 후 손을 휘둘렀다.“쓱, 쓱, 쓱.”자갈은 마치 총알처럼 연이어 발사되며 문관옥의 금빛 주먹 그림자를 꿰뚫었다. 결국 두 번의 충격으로 금빛은 공중에서 폭발해 기세가 사라졌다.이 틈을 타 문관옥은 갑자기 유진우에게 다가와 오른 주먹에서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천붕지열!”
흩날리던 먼지들이 하나둘 땅에 떨어졌고 폭발구역에는 거대한 깊은 구멍이 선명하게 새겨져 버렸다. 그 구멍은 대략 10미터는 돼 보였고 말라비틀어진 우물 마냥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깊고 거대한 구멍의 변두리 지역에 서 있던 유진우와 문관옥은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진우는 여전히 문한성의 잘려나간 머리를 손에 들고 무표정한 얼굴과 차가운 눈빛으로 문관옥에게 시선을 돌렸다. 문관옥은 유진우와 달리 잔뜩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상대조차 할 수 없는 강한 적을 바라보는 듯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먼저 나서서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이게 말이 돼? 저렇게 강력한 공격을 저놈이 막아냈다니?” “막아낸 것만 아니라 심지어 다치지도 않았어.” “세상에! 우리 연경에 언제 이렇게 강한 천재적인 강자가 나타난 거지? 옥면 군신과 겨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기려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정말 말이 안 되는데?” 실력이 비슷해 보이는 두 사람을 본 주위 사람들과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문왕부 고위층 사람들은 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문왕부가 얼마나 강대하고 센 사람들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체 용국을 놓고 말하더라도 그들과 겨룰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고 그 사람들은 전부 다 천재들이었다. 예를 들어 조씨 가문의 쌍둥이별, 천하회의 한비영 그리고 검종의 홍군림. 이 셋을 빼고는 수년간 그들의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무명의 남자 한명이 문관옥의 상대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너 도대체 누구야?” 유진우를 멸시하고 얕보던 문관옥의 눈빛은 이미 변한 지 오래였고 이내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방금 부딪힌 그 하나의 주먹만으로 이미 문관옥은 가슴이 철렁해졌다. 왜냐하면 그 순간 문관옥은 유진우의 실력이 자기 생각만큼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문관옥은 아무도 모르는 무명의 남자가 도
자신을 노려보는 문관옥의 눈빛에 대머리 남자는 깜짝 놀라 연신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며 자리를 떠났다. 대머리 남자는 그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문관옥의 심기를 건드려 버렸다. “여봐라!” 그때, 문관옥의 외침 소리에 두 명의 근위병이 얼른 달려 나오며 물었다. “군신님, 무슨 일이십니까?” “모든 자원과 인력을 동원해 유진우라는 사람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라. 나는 꼭 저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내야겠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관옥이 명령을 내리자 근위병들은 대답을 마치고는 바로 떠났다. “감히 내 구역에서 저렇게 당당할 수 있어? 도대체 뭐 하는 놈인지 나는 꼭 알아야겠다.” 문관옥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그저 상대방을 잘 파악하고 상대의 숨겨놓은 패를 알아낸다면 자연스럽게 그를 상대할 방법이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 유진우는 문한성의 잘린 머리를 손에 들고는 당당하게 옥면 산장을 빠져나왔다. 이런 행동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유진우는 알고 있었지만 이미 그는 그런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문한성의 죽음으로라도 은도의 넋을 기리고 싶었다. 문한성뿐만 아니라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잘린 머리를 천으로 감싼 뒤, 유진우는 직접 운전을 해 은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 시간은 이미 황혼 즈음이 되었고 은씨 가문 저택에는 하얀 천들이 여기저기 가득 걸려있었다. 은도의 죽음은 은씨 가문에게 큰 충격과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한 방면에는 신분 때문에, 또 다른 방면은 이익 때문이었다. 옥로고는 이미 제일 잘 나가는 약이 되어 장사는 하루가 다르게 잘 되고 있었고 제일 큰 투자자이던 은도는 은씨 가문에게 있어 “돈 나무”였다. 그러나 갑작스런 “돈 나무”의 죽음은 은씨 가문에게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 기회를 틈타 재벌 집안이 되고 싶었지만 이미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 시각, 빈소 안. 한 개의 관이
“뭐라고?” 두 사람의 의미심장한 말들은 듣고 있던 은국성은 순간 분노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상황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두 남성은 얼른 은국성을 말리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형님, 저 두 분 다 부잣집 사람들입니다. 절대 함부로 막 나서지 마십시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으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만약 여기서 저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저희 은씨 가문에게는 큰 재앙이 초래될 것입니다.” 그들의 말에 은국성은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들끓던 화를 삼켰다. “은 족장님, 너무 격동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몸 상할라.” 안세리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듯 말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으니 작은 은씨 가문 따위는 자신의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뭐 하려는 겁니까? 내 딸은 이미 죽었는데 설마 직접 찾아와 비웃으려는 겁니까?” 은국성이 물었다. “어머, 은 족장님. 말씀 그렇게 함부로 하지 마세요. 저희도 은도 씨와 자매처럼 정을 붙였는데 은도 씨의 죽음은 저희에게도 큰 상심이에요.” 은국성의 말에 안세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동정하듯 대답했다. “그래요. 저희는 은도 씨의 부도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빈소로 달려왔어요. 이렇게 해야 저희의 성의를 알아주실까 해서요.” 옆에 있던 봉연주 또한 안세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이미 애도를 충분히 한 것 같으니 이만 가보셔도 됩니다.” 은국성은 두 사람의 말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쫓아내려는 대답을 했다. “은 족장님, 너무 성급해 하지 마세요. 저희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은도 씨 때문도 있지만 은씨 가문과 한가지 거래를 하려고 왔어요.” 안세리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저희는 지금 장례를 치르는 중입니다. 거래 따위 할 마음도 없으니 이만 가보시지요.” 하나뿐인 딸도 죽은 마당에 은국성은 두려울 것이 없었고 잔뜩 굳은 얼굴로 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은씨 가문에서 왜 문왕부의 사람들을 건드린 거야?” 빈소를 지키던 은씨 가문 사람들은 다들 불안하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은씨 가문은 그저 작디작은 이류 집안일뿐인데 어찌 감히 문왕부 같은 거대한 세력을 지닌 사람들과 겨룰 수 있겠는가? 한 치의 과장도 없이 만약 문왕부가 결정을 내려 복수의 칼날을 간다면 하루 저녁에 은씨 가문을 망하게 하고 죽임으로 내모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도대체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은국성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비록 인정하기는 싫지만 확실히 지금 은씨 가문은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전에 문한성의 제시한 조건을 수락했지만 완성조차 하지 못했고 딸이 희생까지 했지만 여전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은 족장님, 급해 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곳에 온 원인은 당신들을 도와 이 난관을 헤쳐나가려는 것뿐이니까요.” 안세리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저희는 문왕부랑 아주 깊은 정을 나누고 있답니다. 저희가 입만 조금 뻥끗한다면 은씨 가문에게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봉연주 또한 안세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녀와 이청아의 관계로 놓고 말하면 이 정도 난관을 해결하는 것은 그저 한마디만 하면 간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신들과 저희는 아무런 연관도, 정도 없는 사이인데 왜 도우려는 것입니까?” 은국성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천하에는 공짜로 거저 주는 밥 따위 존재하지 않기에 그는 두 사람의 조건을 얌전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까 말한 거래에 관련된 말을 다시 꺼내야겠군요.” 안세리는 씩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옥로고는 은씨 가문 소유의 재산이죠? 당신들은 옥로고의 비방과 그 약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으리라 믿어요. 제 요구는 아주 간단해요! 그것들만 넘긴다면 은씨 가문에게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만들어줄게요. 어때요?” “헛된 꿈 꾸지 마십시오!” 안세리의 말을 들
“유진우?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누군가의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린 순간, 유진우를 발견한 안세리는 미간이 잔뜩 찌푸려지더니 안색이 어두워져 갔다. 전에 있던 경력과 일들은 아직까지도 두 사람 사이를 물과 불 마냥 다투게 만들었다. “야! 거기 유 씨 남자. 왜 어딜 가도 네가 있는 거지? 재수가 없으려니까.” 봉연주 또한 마찬가지로 전에 은씨 가문에서 개업한 회사에 찾아갔다가 환영은커녕 한차례 교훈을 받았으니 유진우에 대해 좋은 마음은 없었다. “둘이 이곳에 온 이유가 옥로고의 비방을 얻어내기 위함이라면 포기하기를 바라.” 유진우가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흥. 우리가 뭘 하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 너 자신이 놓인 처지부터 생각하시지?” 그의 말에 안세리가 콧방귀를 끼며 물었다. “그래! 이미 네 한 몸 보호하기도 힘든 처지에 놓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우리까지 상관하려고?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나 봐?” 봉연주도 안세리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그녀들은 은도의 죽음이 무조건 문한성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얼른 기회를 틈타 이득을 얻고 싶었다. 유진우는 그저 어항에 갇힌 물고기 한 마리일 뿐이라 문한성에 의해 발견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그녀들을 유진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사람 취급조차 해주지 않았다. “옥로고의 비방은 우리 은도 씨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이니 누가 마구잡이로 빼앗아가려고 한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유진우가 안세리와 봉연주에게 마지막 경고장을 날리듯 말을 꺼냈다. “왜? 우리한테 겁이라도 주려는 셈이야?” 봉연주는 유진우의 말에 입을 삐죽 내밀며 비웃기 시작했다. “그저 자그마한 무부일 뿐인 사람이 뭐가 잘나서 이러는 거지? 정말 우리랑 어깨를 나란히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해? 헛된 꿈 꾸지 마.” “유진우, 너랑 관련된 일이 아닌 이상 상관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야. 아니면 은도 씨의 오늘이 너의 내일이 될 테니까!” 안세리가 사뭇
그래서 그들은 두렵기 시작했다. 은씨 가문 사람들의 절실한 말들을 듣고 있던 안세리는 화가 살짝 풀렸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의 체면을 살려주기로 하고 전화를 안 걸어도 돼요. 심지어 저는 은씨 가문을 도와 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줄 준비도 됐어요. 하지만 아직 문제는 단 하나죠? 당신들은 꼭 옥로고의 비방을 저한테 넘기셔야 해요.” “문제없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저희는 옥로고의 비방을 넘길 준비 다 마쳤습니다.” 은씨 가문의 넷째 삼촌이 안세리의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지금 은씨 가문의 삶은 그나마 안정적인 상황이라 비방 하나 때문에 전체 가문이 위기에 처해있는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은 족장님, 족장님 뜻은 어때요?” 안세리가 은국성을 쳐다보며 그의 의견을 물었다. 은국성은 이빨을 꽉 깨물고 망설이는 듯싶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비방을 내놓지 않으면 안씨 가문과 봉씨 가문이 찾아오는 데다가 문왕부 사람까지 올 것이 불 보듯 뻔했으니 은씨 가문에서는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러한 일들과 예시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좋아요. 이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제일 정확한 선택을 하셨군요.” 안세리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왜 아직까지도 넋 놓고 있는 거죠? 얼른 비방을 내놓으세요.” 봉연주가 은씨 가문 사람들을 보채며 말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은씨 가문의 넷째 삼촌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은국성을 부축하더니 떠날 채비를 하였다. “잠깐만!” 그때, 가만히 있던 유진우가 입을 뗐다. “비방은 저와 은도 씨의 피와 땀입니다. 절대 넘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야, 이제 그만하지? 사람이 그렇게 이기적이면 안 되는 거야. 너 혼자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이 사람들까지 두렵지 않은 게 아니잖아?” 안세리의 표정이 또다시 싸늘하게 식어가더니 그에게 물었다. “유진우 씨, 이쯤이면 됐습니다. 저희 좀 놔주십시오. 저희는 이 사람들을
“고작 이런 사람들을 고수라고 불러? 도대체 어디서 나온 용기지?” 유진우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쓱 보더니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여봐라!” “감히!” 그녀의 목소리에 유진우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보기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남자가 안세리와 봉연주를 무시하다니 참으로 간도 크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흥! 체면을 주려고 해도 이렇게 내팽개치는구나.” 봉연주는 콧방귀를 뀌더니 바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여봐라! 당장 이놈을 데리고 나가거라.” “네!” 그녀의 말에 그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유진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꺼져!” 유진우가 분노에 차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순간적으로 진기들이 폭발해 나왔다. 쿵! 그러자 몇십 명이나 되던 고수들이 큰 차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빈소 밖 몇 미터 뒤로 날아가 버렸다. 매 사람마다 다 입에서 시뻘건 피를 뱉으며 고통에 겨워 몸도 제대로 겨누지 못했고 일어서지도 못했다. “응?”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은씨 가문 사람들은 물론 안세리와 봉연주 또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유진우를 쳐다봤다. 그 누구도 유진우의 실력이 이렇게 강해 그저 걸음만으로도 몇십 명의 고수를 물리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안세리와 봉연주는 서로 눈을 마주 보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만약을 대비해 그녀들은 오늘 특별히 고수들을 요청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녀들은 다 이 무사들이 유진우를 손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진우가 오히려 이 고수들을 식은 죽 먹기 식으로 상대할 줄은 몰랐다. ‘유진우 저놈 도대체 왜 저렇게 센 거야?’ “지금도 내 몸에 손을 댈 생각이 있어?” 유진우가 말을 하며 봉연주 쪽으로 몇 걸음 다가오자 봉연주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너... 너 다가오지 마! 나는 봉씨 가문의 큰 아가씨이자 그
그러다가 친위대가 완전히 모이자 자객은 갑자기 놀라운 실력을 드러냈다.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친위대를 유인하여 주변 방어력을 약화시키고 더 쉽게 암살하기 위해서였다.“X발, 정말 간사하고 교활한 놈이군. 어서 철수해.”친위대가 제때 복귀할 수 없다는 걸 안 진승민은 그제야 당황하며 옆에 있는 장교들과 함께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최적의 철수 시기를 놓쳤다.자객의 공격 속도는 그들의 철수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단 2분 만에 양측의 거리는 20m도 채 남지 않았다.“제후님, 저희가 자객을 막을 테니 먼저 피하십시오.”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몇 명의 장교들은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 들고 자객을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패배했다.“X발, 절대 가만 안 둬!”강윤기가 분노를 터트리면서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강 제후님, 흥분하면 안 됩니다.”진승민이 급히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앞으로 달려나간 강윤기가 자객의 목을 베려던 순간 자객이 검날을 덥석 잡더니 강윤기의 어깨를 찔러버렸다.“너 대체 누구야?”강윤기는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자객은 아무 말 없이 갑자기 강윤기의 옷깃을 잡고 하늘로 내던졌다.휙.강윤기는 마치 발사된 포탄처럼 수백 미터 날아가 왕부 대문을 넘은 후 마당에 떨어졌다.쿵.곧이어 굉음이 울렸다. 강윤기의 몸이 땅에 떨어지면서 구멍이 생겼고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온몸의 뼈가 얼마나 부러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강윤기.”대문을 지키고 있던 이의진은 급히 몸을 돌려 검을 강윤기의 목에 겨누고 외쳤다.“지금 당장 병사들한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명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 손에 죽을 것이다.”...왕부 밖.강윤기가 날아가는 것을 본 진승민은 깜짝 놀라 잠시 멍해졌다가 곧바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그는 그제야 후회했다. 만약 자객이 이렇게 강하다는 걸 알았다면 노정한과 하원휘처럼 빨리 도망쳤을 것이다.
하원휘는 매우 현명했다. 자객의 기세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바로 친위대를 지휘하여 뒤로 물러섰다.푸른 산이 남아 있으면 땔나무 걱정은 없다고 자객을 잠시 피했다가 체력이 고갈될 때 대군들이 포위해서 죽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진 제후님, 하 제후님 말이 맞습니다. 안전이 우선이니 저도 뒤로 가서 잠시 피해있겠습니다.”하원휘가 철수하자 노정한도 더는 지체하지 않고 친위대의 보호를 받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흥, 겁쟁이들.”진승민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불만을 드러냈다가 강윤기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강 제후님은 용맹한 분이니 저 두 분처럼 겁먹고 물러나지는 않겠죠?”“당연히 물러나지 않죠.”강윤기가 몸을 풀면서 싸늘하게 웃었다.“자객 한 명뿐이지 않습니까? 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습니다.”제후가 된 그는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살아남았다. 큰 전투도 겪은 그가 작은 자객 하나에 겁을 먹을 리는 없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저 자객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봅시다.”진승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크게 휘둘렀다.“진을 치고 자객을 잡아라.”“알겠습니다.”그의 말에 친위대 수백 명이 바로 칼을 뽑아 들고 자객을 향해 공격하려 했다.“자객을 잡아라.”강윤기도 지지 않고 칼을 뽑아 들고 자신의 친위대를 지휘하며 다른 방향에서 공격을 펼쳤다.그들의 친위대는 정예 중의 정예였다. 혼자서 백 명을 손쉽게 해결할 정도로 일반 병사들보다 훨씬 강했다.자객의 실력이 대단하긴 해도 수많은 병사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는 건 아직 진짜 정예병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그들의 친위대가 투입되면 지금처럼 휘젓고 다니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아니나 다를까 두 제후의 친위대가 투입되자 자객의 돌격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친위대는 실력, 장비, 전투 경험 모두 일반 병사보다 훨씬 뛰어났다. 최고의 강자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지만 제한하는 역할은 할 수 있었다.또한 일반 병사는 일반 철 갑옷을 입었으나
옆에 있던 하원휘가 말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해지더니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저기 좀 봐요. 저게 대체 뭔가요?”사람들이 하원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서 한 줄기의 검은 빛이 내려오더니 대군들 속에 떨어졌다.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고 먼지가 피어올랐다.강력한 충격파는 마치 해일처럼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충격파가 지나간 곳마다 사람이 나가떨어졌고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단 한 번의 충격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X발, 대체 뭐야?”진승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먼지가 너무 심해서 방금 떨어진 게 무엇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혹시 운석 조각 같은 건 아닐까요?”노정한이 의아해하며 말했다.“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졌다고요? 그런 우연이 있을 리가요.”강윤기는 전혀 믿지 않았다.“제가 봤어요. 사람이었어요.”눈치 빠른 하원휘가 떨어진 지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저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먼지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오더니 4대 제후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그 사람은 검은 검을 들고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는데 지나가는 곳마다 병사들이 맥없이 쓰러졌고 아무도 막지 못했다. 무장병사들은 그의 앞에서 맥없이 쓰러졌다.순식간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자객이다. 어서 막아라!”하원휘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군사를 모아 갑자기 튀어나온 자객을 공격하려 했다.“흥, 그래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입니다. 우리한테는 대군이 수만 명이 있어요. 저자가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저 많은 병사를 뚫고 우리의 목을 벤다는 건 불가능합니다.”진승민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비록 적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를 먼저 잡으라고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대부분은 암살로 우두머리를 제거했다.이렇게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우두머리를 죽이려는 행위는 그야말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왜냐하
“이것들이 죽으려고.”몰려드는 무장병사들을 보며 유천우는 순식간에 분노를 터트렸다.그는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고 칼을 들고 인파 속으로 돌진했다.지금의 그는 이미 무도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랐고 게다가 수년간 전장을 누빈 덕에 쌓은 전투 경험 또한 풍부했다.혼자서 적진을 누비는데도 아무도 막지 못할 정도로 용맹했다.“도련님을 지키고 놈들을 죽여라!”이의진이 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있던 유만군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전부 죽여버려.”석태혁이 장검을 휘두르며 백여 명의 유만군을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했다.유만군의 수는 적었지만 모두 엄청난 실력을 지닌 고수였고 게다가 훈련도 잘되어 있었다.무도 마스터인 석태혁의 지휘 아래 그들은 파죽지세로 적진을 휘저으며 나아갔다.백여 명의 부대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수만 명에 달하는 대군의 심장을 찔러 가차 없이 죽여버렸다.혹시라도 암살당할까 봐 4대 제후는 친위대의 보호 아래 즉시 전장에서 멀리 도망쳤다.“왕부 안에 저런 정예 부대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가차 없이 적을 베어버리는 유만군을 보며 진승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다행히 백여 명밖에 안 되는군요. 수가 적어서 망정이지, 안 그러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노정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추측건대 저들이 바로 유만군일 겁니다. 유만수가 흑용군의 정예 병력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들을 뽑아 만든 부대인데 전부 뛰어난 실력을 지녔습니다.”강윤기가 말했다.“그렇군요. 어쩐지 엄청 대단하더라니.”하원휘가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숫자가 적어서 우리한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해요. 지금은 용맹해 보이지만 체력이 고갈되면 목숨을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진승민이 말을 이었다.“혹시 무슨 변수가 생기진 않겠죠?”노정한이 갑자기 물었다.“무슨 변수요? 왕부가 포위된 이상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왕성 밖에도 우리 대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면 즉시 알아차릴 수 있어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걸 본 이의진은 반가워하다가 이내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왜냐하면 아들이 갈 때와 마찬가지로 몇 명만 왔을 뿐 군대는 한 명도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혹시 실패했어?”마음이 무거워진 이의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바로 남쪽 4대 제후를 설득하여 북쪽 4대 제후와 맞서는 것인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듯했다.“간덩이가 부은 것들! 감히 왕부로 쳐들어와? 모두 죽고 싶어?”유천우가 호통쳤다.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마치 천둥처럼 현장 전체가 크게 울렸다.4대 제후의 수만 병사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도련님께서 돌아오셨군요.”진승민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 4대 제후는 왕부 안에 진범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위왕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부득이하게 들어가서 수색해야 하니 길을 비켜주십시오.”“수색은 무슨 수색.”유천우가 냉담하게 외쳤다.“왕부가 어떤 곳인데 함부로 수색하겠다고 난리야? 저리 썩 꺼지지 못해?”“도련님, 저희는 진심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움직이는데 이렇게 계속해서 방해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진승민이 태연하게 물었다.“흥. 내 앞에서 가식 떨지 마! 너희들의 속셈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없어.”유천우가 차갑게 말했다.“도련님,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진승민이 말했다.“진승민, 한 번만 기회를 줄게. 만약 지금이라도 떠난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너희들은 여전히 서경 제후이고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유천우는 말하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하지만 만약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반역을 하려 한다면 내가 장담하는데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도련님, 저희는 대국을 생각해서 이러는 것이니 부디 길을 비켜주십시오.”진승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나머지 세 사람 역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그들은 물러설 이유가
“그럼 왕부에 들어가기 전에 나부터 죽이고 가!”이의진은 검을 든 채 꼿꼿이 서서 강력한 기세로 홀로 대문을 지켰다.그녀의 무공은 그리 강하지 않았고 고작 선천 무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뿜어내는 기세는 무도 마스터보다 훨씬 강했다.일반 병사들은 물론이고 진승민조차도 압도되어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다른 세 제후에게 눈짓을 보낼 뿐이었다.위협은 위협이고 압박은 압박이지만 적어도 명분은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의 조롱을 받고 만민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살인범을 추적한다는 명분으로 왕부를 포위했다. 비록 행동이 과격하긴 하지만 나중에 슬픔에 북받쳐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하지만 압박 과정에서 왕비를 죽인다면 아무리 변명하고 이유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그뿐만 아니라 서경 각지의 세력들이 동요할 것이고 심지어 연경에서도 군사를 보내 진압할 것이다.어찌 됐든 이의진은 서경 왕비이자 용국의 공주이기도 하니까.그런 신분을 가진 그녀 앞에서 그들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간단히 말해 왕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일 수 있어도 이의진만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되었다. 하여 이의진이 함께 죽자는 듯한 태도를 보인 순간 오히려 그들이 당황했던 것이었다.“세 분,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진승민은 옆에 선 세 제후를 보며 낮게 물었다.“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이유가 없죠.”노정한이 차갑게 말했다.“맞습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가면 성공인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강윤기가 맞장구를 쳤다.“물론 압니다. 제 말은 왕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겁니다.”진승민이 낮게 말했다.“왕비의 목숨만 해치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하원휘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제후님 뜻은... 묶어놓자는 말입니까?”진승민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다른 방법이 있나요?”하원
무거운 왕부 대문이 쿵쾅거리면서 진동했다.매번 쿵쾅거릴 때마다 마치 거대한 망치가 심장을 강타하는 듯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문 열어.”이의진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대문을 열라고 명령했다.그녀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대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던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이런 상황에서는 대문을 굳게 닫고 방어에 힘써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알아서 문을 열어?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다른 함정이라도 있나?’“진승민, 노정한, 강윤기, 하원휘. 나와!”이의진이 칼을 든 채 꼿꼿이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강렬한 기세에 문밖의 병사들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그녀가 부른 네 명은 북쪽 4대 제후이자 이번 반란의 주요 세력들이었다.“뭐야? 일을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숨으려고? 4대 제후라는 사람들이 모두 쥐새끼처럼 숨어다니는 졸개들이야?”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이의진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차고 힘찬지 왕부 안팎으로 울려 퍼졌다.잠시 후 왕부 앞에 있던 병사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넓은 길을 터주었다.곧이어 갑옷을 입고 망토를 걸친 각기 다른 모습의 중년 남자 네 명이 나란히 걸어왔다. 그들이 바로 북쪽 4대 제후였다.“진승민,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노정한,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강윤기,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하원휘,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네 사람은 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동시에 몸을 숙여 예를 올렸다.“흥, 너희들 눈에 내가 왕비로 보이긴 하느냐?”이의진이 싸늘하게 말했다.“왕비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루 왕비는 영원한 왕비십니다.”진승민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만약 너희들이 나를 왕비로 생각했다면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았겠지.”이의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왕비님, 오해하셨습니다. 저희는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니라 왕실을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진승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습니다.”옆에 있던 노정한
깊은 밤, 서경왕부 대문 앞.수많은 무장병사들이 거대한 왕부를 물샐틈없이 에워쌌다. 멀리서 바라보면 검은 무리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는데 그 수가 자그마치 수만 명에 달했다.이들은 단지 선봉 부대일 뿐이었고 사실 왕성 밖에는 북쪽 4대 제후의 군대와 유태범의 친위대까지 위장한 채 주둔하고 있었다.그 시각 왕부 안.이의진은 상복을 입은 채 차가운 표정으로 살기등등하게 대문 앞에 서 있었다.손에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있었는데 온몸에서 풍기는 위엄과 살기는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왕부의 생사가 위기에 처하자 왕비인 이의진은 망설임 없이 맨 앞에 나섰다. 그녀의 뒤에는 석태혁과 갑옷을 입은 유만군이 서 있었다.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왕부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이었다.유만군의 뒤에는 왕부의 병사들과 식솔들이 서 있었다.병사들은 칼을 들었고 식솔들은 몽둥이를 들었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 듯 굳건한 자세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그리고 뒤쪽 내원으로 들어가면 왕부의 노약자와 부녀자들이 상복을 입고 무기를 든 채 멀리 떨어진 대문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만약 유만군이 쓰러지고 병사들과 식솔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들 역시 망설임 없이 달려나가 왕부와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아빠... 엄마... 무서워요...”열 살 남짓한 한 소년이 두 손에 칼을 들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소년이 언제 이런 끔찍한 상황을 겪어봤겠는가.왕부가 포위당하고 밖에 수만 명의 대군이 매복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소년은 왕부의 운명이 다했고 오늘 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걸 직감했다.“쓸모없는 녀석.”한 중년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소년에게 호통쳤다.“우리 유씨 가문의 사나이는 전장을 누비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겁쟁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네가 오늘 한 발짝이라도 물러선다면 네놈을 먼저 베어버리는 수가 있어.”“아빠...”겁에 질린 소년은 덜덜 떨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울
“그건...”유진우는 망설이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세자 전하.”은성종이 갑자기 두 손을 맞잡고 예를 표하면서 말했다.“제가 재주는 부족하지만 세자 전하를 위해 가시밭길이라도 기꺼이 헤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절 믿어주신다면 이 일은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제가 은밀히 충신들한테 연락하여 빠르게 힘을 모으겠습니다. 때가 되어 세자 전하께서 신호만 주신다면 반드시 성공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제후님은 역시 의로운 분이시네요. 정말 진심으로 존경합니다.”유천우가 진심으로 감탄했다.“그렇다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유진우도 두 손을 맞잡고 공손하게 인사했다.“세자 전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건 저의 영광입니다.”은성종이 말했다.“제후님, 큰일 났습니다.”그때 한 병사가 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와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방금 들어온 소식인데 서경왕부가 대군에 포위당해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합니다.”“뭐? 포위당했다고?”이 말을 들은 순간 유진우와 유천우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들이 떠난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변고가 닥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말해봐.”유천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병사는 은성종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북쪽의 4대 제후들이 정예 부대를 이끌고 어젯밤 몰래 왕성에 잠입했는데 왕성 호위대의 장교급 군관들이 모두 인질로 잡힌 바람에 군 전체가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틈에 북쪽의 4대 제후들이 왕실을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왕부를 포위했어요. 겉으로는 간신배들을 처단하고 서경왕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군사를 일으켜 권력을 빼앗으려는 겁니다.”쾅.유천우가 화를 내면서 상을 세게 내리쳤다. “이것들이 아주 제대로 미쳤구나. 감히 서경왕부를 포위해?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절대 이럴 수가 없어.”그는 설령 4대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기껏해야 성문 앞에 병력을 주둔시켜서 압박을 가하는 정도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