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의원으로 돌아온 후, 유진우는 답답한 마음에 혼자 술을 마셨다. 한잔 또 한잔 끊임없이 술잔을 비웠다.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속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3년 동안의 감정을 어쩌면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았다.“선생님, 선생님...”유진우가 취기가 살짝 올라왔을 무렵 누군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의원 대문을 열어보니 밖에 아리따운 소녀 두 명이 서 있었다. 그중 한 소녀는 하얀 옷차림에 얼굴은 한없이 청순하고 귀여웠는데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순진해 보였다.그리고 다른 한 소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뚜렷한 이목구비에 기개가 흘러넘쳤다. 그런데 상처 입은 복부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 바람에 얼굴에 핏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저기 오빠, 여기 혹시 의사 선생님 계세요? 제 친구가 다쳤는데 급히 치료받아야 해서요!”흰옷 차림의 소녀가 다급하게 말했다.“제가 의사예요. 얼른 들어와요.”유진우가 길을 비켜주었다.“고마워요, 오빠.”흰옷 차림의 소녀가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옆 사람에게 말했다.“언니, 내가 부축해줄 테니까 들어가요.”“잠깐!”도윤진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설아, 이 사람 술 냄새가 진동하는 게 주정뱅이가 틀림없어. 나 이 사람 못 믿어!”“그런데 언니 지금 피를 많이 흘려서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생명에 위험이 있어요.”남궁은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괜찮아, 나 더 버틸 수 있어. 지원팀이 오길 기다리면 돼. 아무튼 내 목숨을 절대 이런 사람한테 맡길 수는 없어!”도윤진이 입술을 꽉 깨물며 강렬한 눈빛으로 말했다.그녀의 상처는 찰과상이 아니라서 일반 의사들은 치료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술주정뱅이에게는 더욱 맡길 수가 없었다.“실례지만 지원팀이 30분 내로 도착하나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물었다.“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에요?”도윤진이 싸늘하게 쏘아붙였다.“다름이 아니라 지금 가슴 쪽에 혈기가 쌓여있고 경맥이 막힌데다가 복부에는 계속 피가 흐르고 있어
“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누군가가 의원 대문을 발로 걷어찼다. 일고여덟 명 정도의 검은 옷차림에 복면을 쓴 킬러들이 살기를 내뿜으며 쳐들어왔다.“큰일 났어! 저 사람들이 쫓아왔어!”도윤진의 낯빛이 확 굳어졌다.전에 킬러들에게 매복 공격당한 바람에 경호팀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도윤진과 남궁은설만 겨우 빠져나왔다. 성공적으로 도망쳤다고 생각했으나 킬러들이 끝까지 쫓아올 줄은 미처 몰랐다.“설아, 내가 저들을 막고 있을 테니까 넌 얼른 뒷문으로 도망쳐!”도윤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내가 도망치면 언니는 죽어요. 저들의 목표는 나예요. 차라리 그냥 잡혀가는 게 나아요!”남궁은설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설아, 난 경호팀 팀장으로서 너의 안전을 책임지는 게 내 직책이야. 그러니까 언니 말 들어!”도윤진이 몸으로 막아서며 강렬한 눈빛을 내뿜었다.“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오늘 둘 다 도망 못 가!”한 민머리 남자가 흉악스럽게 웃으며 걸어왔다. 다른 킬러와 달리 그는 복면을 쓰지 않았고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송강?”도윤진의 낯빛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요즘 4대 악인이 살인 같은 극악무도한 짓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4인의 무술 실력이 뛰어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미치광이 같아 걱정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그리고 송강이 바로 4대 악인 중 한 사람이었다.“어? 윤진 씨가 날 알고 있었네?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일세.”흉악스럽게 웃는 송강의 눈빛에 조롱이 가득 담겨있었다.“송강! 누가 너한테 시켰든 내가 두 배로 줄 테니까 여기서 멈춰!”도윤진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윤진 씨, 돈이 좋긴 하지만 난 사람한테 더 관심이 있어. 두 사람을 잡아가면 돈이 부족할 일이 없을걸?”송강이 비웃듯이 말했다.“우리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당신도 잘 알 텐데!”도윤진이 경고를 날렸다.“죽이진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단지 두 사람의 신분을 빌려서 일을 좀 처리하려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다치고 싶
“아주 겁이 없는 녀석이로구나! 좋아!”한바탕 웃고 난 뒤 송강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너처럼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녀석은 정말 오랜만이야!”“잔말 말고 얼른 돈이나 물어내.”유진우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기분도 별로인데 쓸데없는 소리까지 지껄이니 한대 확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하하... 처맞기 전까지 계속 돈 달라고 할 건가 보네?”송강이 흉악스러운 웃음을 짓더니 손을 흔들었다.“가서 저 자식의 손발을 부러뜨려! 언제까지 큰소리 치나 똑똑히 지켜보겠어.”“네!”킬러 몇몇이 두말없이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저마다 그의 목숨을 앗아갈 기세였다.“잠깐! 아까 분명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했잖아!”남궁은설이 큰 소리로 말했다.“은설 씨, 난 단지 저 자식을 죽이지 않겠다고만 약속했어. 그런데 저 자식이 죽음을 자초하는데 나라고 뭐 별다른 수가 있겠어? 혼쭐이라도 좀 내줘야지!”송강이 입을 쩍 벌리고 웃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처참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금 유진우에게 달려들었던 킬러들이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맥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들 순식간에 온몸이 굳으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쓰러진 킬러들을 자세히 살피던 사람들은 킬러들의 목에 은침 하나가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뭐야!”갑작스러운 상황에 송강마저도 화들짝 놀라며 경계하기 시작했다.은침으로 혈을 찌르는 건 그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은침을 날려 혈 자리를 찔러서 쓰러 눕히는 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저 사람 은침도 날릴 줄 알았어?”도윤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은침을 날리는 스킬은 암살 스킬 중 하나인데 일반 암살 스킬보다 수련하기 훨씬 더 어려웠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녀야 할 뿐만 아니라 10년을 하루같이 매일 수련하는 노력이 필요했다.“야 이 자식아, 너 대체 누구야? 누군데 감히 내 일에 끼어들어?”송강이 실눈을 뜨며 천천히 칼을 빼 들었다.
“독충? 당신도 독충에 대해서 알아요?”도윤진이 고개를 돌려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조금 알죠.”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정통 무술이 아니라 비뚤어진 무술을 하는 자만이 남을 미혹시키는 이런 독충술을 배우죠. 역시 당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요!”도윤진이 갑자기 칼을 유진우에게 겨누며 살기를 내뿜었다.“당신 대체 누구예요!”“언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 오빠는 우리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라고요.”남궁은설이 재빨리 몸으로 막아섰다.“설아, 비켜! 정체불명인 이 사람을 반드시 제대로 조사해야 해!”도윤진의 눈빛이 살아있었다.“날 조사하기 전에 아무래도 그쪽 머리부터 어떻게 된 건 아닌지 검사받는 게 좋겠어요.”유진우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독충술로도 병을 치료하고 사람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거 몰라요? 독충술에 능한 자들 중에 나쁜 사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모두가 다 나쁜 건 아니잖아요. 쓰는 사람의 인품이 어떤지 봐야죠. 그리고 당신 같은 정통 무술파들은 뭐 나쁜 짓을 안 하는 줄 알아요? 민가를 습격하여 약탈하고 재물을 빼앗았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아요!”“헛소리하지 말아요! 지금 궤변이나 늘어놓고 있잖아요!”도윤진이 호통쳤다.“궤변?”유진우가 코웃음을 쳤다.“지금 당신 행동 좀 봐봐요. 정통 무술 집안 출신인 사람들은 다 당신처럼 은혜를 원수로 갚나요?”“당신...”도윤진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언니, 제발 그만 해요! 오빠가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면 아까 왜 우릴 살려줬겠어요?”남궁은설이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마음으로 살려줬는지 어떻게 알아?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도 있어!”도윤진은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말투가 아까보다 훨씬 누그러들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도리에 어긋남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부르릉!”그때 문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차량 십여 대가 의원 문 앞에 나란히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면서 엘리트 경호원들이 빠르게 내리더니 의원을 물샐틈없
이튿날 이른 아침.“똑똑똑...”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유진우가 잠에서 깼다. 문을 열어보니 안병서가 문밖에 떡하니 서 있었다.“안 회장님,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로 오셨어요?”유진우가 하품하며 물었다.“좋은 소식이 있어요, 진우 씨.”안병서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진우 씨가 필요하다고 했던 현주과 있잖아요. 그 행방을 찾았어요!”“현주과?”유진우도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그게 정말이에요?”현주과는 다른 영약과 마찬가지로 아주 드물고 귀한 영약이었다. 만약 현주과를 손에 넣는다면 이제 세 가지 영약만 더 구하면 된다. 그러면 수명단을 제조할 수 있다!“당연하죠!”안병서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현주과는 원래 약신궁의 보물인데 요즘 누군가 고가에 사 갔대요.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 청운 리조트에 머물고 있답니다.”“그래요? 그게 누군데요?”유진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남궁 가문의 남궁보성입니다.”안병서가 대답했다.“남궁보성? 그자는 왜 현주과가 필요하대요?”유진우가 실눈을 뜨며 물었다. 남궁보성을 만난 적은 없지만 예전에 남궁 가문과 인연이 조금 있었다.“그 집 딸이 희귀병에 걸렸는데 현주과로 치료해야 한다고 들었어요.”“혹시 그 딸 이름이 남궁은설인가요?”“남궁은설을 아세요?”안병서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알긴 알죠. 어제 만났었거든요.”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진우 씨?”안병서가 떠보듯이 물었다.“전 무슨 일이 있어도 현주과를 손에 넣어야 해요. 오늘 아무래도 뻔뻔함을 무릅쓰고 청운 리조트에 다녀와야겠어요.”유진우는 나갈 채비를 마친 후 안병서의 차에 올라탔다.그에게 있어서 현주과는 매우 중요했다. 이런 귀한 보물은 보통 하나밖에 없다. 이 기회를 잃는다면 언제 또 현주과가 나타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하여 그는 한시도 기다릴 수가 없었다.30분 후, 청운 리조트 응접실.남궁보성이 메인 자리에 앉아 유진우와 안병서를 내려다보았다. 일인자 자리에
“뭐? 갑자기 왜?”남궁보성의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저... 저도 모르겠어요. 방금 아가씨를 깨우러 갔는데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어요. 몸도 얼음장같이 차가웠고요.”도우미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도우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남궁보성과 도란영은 이미 문을 박차고 나가 딸의 방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그런데 딸의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두 사람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남궁은설이 태양열 옥침대에 조용히 누워있었는데 늘 따뜻하던 옥침대에 얼음과 서리가 한층 껴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핏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사지가 딱딱하게 굳었을 뿐만 아니라 머리에도 서리가 내려앉았다. 게다가 몸 전체에서 차가운 하얀 안개가 피어올랐는데 얼핏 보기에 얼음 동굴에서 나온 것만 같았다.“설아!”당황한 도란영이 황급히 그녀에게 달려갔다. 손을 비비고 입김을 불어 넣으며 딸의 몸을 녹이려 애를 썼다.“큰일 났어!”딸의 맥박을 짚어보던 남궁보성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 맥박은 아주 약했고 기운도 잡혔다 안 잡혔다 확실하지가 않았는데 당장이라도 목숨을 잃을 것만 같았다.그가 황급히 딸의 체내에 내공을 불어넣자 주변의 얼음과 서리가 그제야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궁은설의 몸은 여전히 차갑고 딱딱했으며 의식도 돌아오지 않았다.“여보, 당장 손명호 명의님께 연락하여 얼른 오시라고 해!”남궁보성이 재촉했다. 그의 내공으로 딸의 심장을 잠시나마 뛰게 할 수는 있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선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네, 네...”도란영은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바로 휴대 전화를 꺼내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런데 통화를 마친 그녀의 표정이 말이 아니게 어두웠다.“명의님이 지금 오시는 길이 긴 한데 저녁이 돼서야 도착할 것 같대요.”“저녁? 그때까지 못 버텨!”남궁보성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윤진이한테 전화해서 강능에 있는 명의란 명의는 전부 모셔오라고 해.”“알겠어요!”도란영이 다시 휴대 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그
상황을 알게 된 후 도윤진뿐만 아니라 도란영도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만약 유진우의 신분을 진작 알았더라면 남궁보성이 그를 쫓아내게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딸을 도와준 적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이만하길 천만다행이에요. 이 약을 버렸더라면 설이가 위험할 뻔했어요.”도란영은 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찔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러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설이 잠시는 안정됐지만 한기가 완전히 가시진 않았어.”남궁보성이 남궁은설의 상태를 살핀 후 분부했다.“윤진아, 의원에 가서 유진우 씨 데리고 와.”“아저씨 설마 그 사람이 설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믿는 건 아니시죠?”도윤진의 표정이 복잡했다. 색안경을 끼고 유진우를 봐서 그런지, 계속 믿음이 가질 않았다.“치료 방법이 무엇인지 들어나 보려고 그래.”남궁보성이 대답했다. 그는 20대 초반밖에 안 된 젊은이가 놀라운 의술을 지녔을 거라는 걸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런데 알약의 효능을 직접 보고 나니 호기심이 생긴 건 사실이다. 하여 그에게 대체 어디서 약을 구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윤진아, 아저씨 말 들어. 설이를 위해서라도 일단 그자부터 데리고 와서 물어보는 게 좋겠어.”도란영이 옆에서 재촉했다.“알겠어요.”도윤진은 내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평안 의원.집으로 돌아온 유진우는 먼저 찻주전자에 차를 끓인 후 두 잔 따랐다. 한 잔은 안병서에게, 다른 한 잔은 그가 마셨다.안병서는 그가 건네는 찻잔을 깍듯하게 두 손으로 받았다.두 사람이 알고 지낸 지 수년이나 됐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나란히 앉아서 차를 마신 건 처음이었다.“진우 씨 현주과가 꼭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설마 이렇게 포기하실 건가요?”한껏 여유를 부리는 유진우의 모습에 참다못한 안병서가 먼저 물었다.“당연히 포기 안 하죠. 저 지금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어요.”유진우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타이밍를 기다린다고요?”
“멈춰!”호통 소리와 함께 홍진호가 위풍당당하게 걸어들어왔다.“아저씨, 신원도 확인되지 않은 저런 사람한테 설이의 목숨을 맡길 수 없어요!”“진호야, 네가 설이를 걱정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어. 저 사람한테 맡기는 수밖에.”남궁보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누가 방법이 없대요? 제가 누굴 모셔왔는지 보세요.”홍진호가 손을 내밀어 바깥을 가리키자 뭇사람들도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수수한 옷차림에 몸이 뚱뚱한 한 노인이 유유자적하게 걸어오고 있었다.“손명호 명의님?”노인이 나타나자마자 현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마치 꿈에 그리던 우상이라도 만난 듯 저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눈앞의 이 자가 바로 세상을 놀라게 한 명의라고 불리는 손명호였다.침술 면에서 손명호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교수라도 명의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정도였다.“정말로 손명호 명의님이라고?”남궁보성 일행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반갑게 맞이했다. 손명호가 저녁이나 돼서야 도착할 줄 알았는데 벌써 왔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명의님, 저녁에나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도란영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명의님이 길이 막혀서 오시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제가 헬기를 타고 직접 모시러 갔어요. 다행히 그래도 제때 도착했네요.”홍진호가 대답을 가로챘다.“그래그래. 역시 진호가 약삭빨라. 아저씨가 사람 하나는 제대로 봤다니까.”남궁보성이 흐뭇하게 웃었다. 손명호가 도착하니 그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과찬이십니다, 아저씨. 제가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요, 뭐.”홍진호가 자연스럽고 의젓하게 말했다.“명의님, 시간이 급박하니 제 딸 좀 빨리 살려주세요.”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남궁보성은 재빨리 손명호를 옥침대 앞으로 안내했다.“가주님, 저더러 치료하라고 하지 않았나요? 지금 이건 또 무슨 뜻이죠?”유진우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젊은이의 호의는 고맙지만 명의님이 왔으니 위험을 무릅쓸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그
“응?”유진우의 시선이 느껴지자 문관옥은 밀려오는 불안함에 눈꺼풀이 떨렸다.조금 전, 백호랑이 시간을 끄는 틈을 타 그는 이미 단약을 삼켜 빠르게 상처를 치유하는 동시에 체력 역시 회복하고 있었다.몇 분 정도 지나자 상처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금세 사라졌고 체력도 빠르게 돌아왔다.그 반면, 유진우는 계속 이어지는 전투에 엄청난 체력을 소모했을 것이다.이제 역전된 기세에 문관옥은 어쩌면 자신에게도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 생각이 들자 문관옥은 더 자신감을 얻었다.물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여러 명이 한꺼번에 공격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비겁한 방식일지라도 단독으로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나았다.“영웅 여러분, 유진우의 기력이 거의 다 소진되었을 겁니다. 우리 다 같이 힘을 합치기만 한다면 분명 죽일 수 있을 겁니다.”문관옥이 큰 소리로 외쳤다.그 말에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유진우의 모습은 문관옥의 말처럼 체력이 부족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유진우에게 무모하게 덤비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백호랑이 데리고 온 군사들의 시신은 아직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광경은 피로 새겨진 교훈이었다. 그 누가 감히 선뜻 나설 수 있을까?“오늘의 임무를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리스크가 있어야만 성공이 따르는 겁니다. 저놈만 죽이면 여러분들은 평생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문관옥이 차분한 말투로 사람들을 유혹했다.그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더니 각자의 얼굴에 의욕이 넘쳤다.유진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은 혼자일 뿐이었고 방금 몇 차례의 전투를 통해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을 것이다.그들이 힘을 모아 공격하기만 한다면 승산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죽는 게 무섭지 않다면, 어디 한 번 앞으로 나와 봐.”유진우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자 사람들은 놀란 기색으로 뒷걸음질 쳤다.조금 전의 혈투를 똑똑히 목격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두려움으
“윽...”그때 문관옥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갑자기 피를 내뿜었다.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손에 든 빙화검을 바닥에 꽂아 가늘게 떨리는 몸을 지탱했다.마지막 공격에서 문관옥이 크게 다친 것이 분명했다.“뭐라고요?”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경악했다.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을 수 없어 하는 모습이었다.‘문관옥이 졌다고? 말도 안 돼!’문관옥은 4대 군신들의 우두머리였고 전쟁터에서 많은 사람들과 싸워왔었다.방금 공격에서 보여준 건 대 마스터가 되어야만 쓸만한 기술들이었다.‘그런 고수가 어떻게 질 수 있어? 유진우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문관옥도 이길 수 없을 만큼?’“계속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문관옥은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그가 전력을 쓴 공격도 쉽게 막아냈으니 말이다.문관옥은 유진우를 쉽게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다쳐버렸다.‘정말 말도 안 돼!’‘어떻게 된 거지? 유진우는 분명 사라진 지 10년이나 지났어. 서경왕부의 도움이 없는데 어떻게 이 정도로 강한 실력을 갖춘 거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내가 실력을 숨긴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약한 거야. 제대로 된 싸움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할 만큼.”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너!”문관옥은 이를 악물고 뭐라 말하려 했지만 또 피를 뿜었다.“4대 도련님 중에서 네가 최약체 아니야?”유진우가 말했다.실력으로만 봐서는 천하회의 한비영이 문관옥보다 훨씬 나았다.“날 너무 업신여기는 거 아니야?”화가 난 문관옥이 명령했다.“백호랑! 내 명을 들어. 당장 이놈을 죽여!”“돌진!”명령을 받은 백호랑들은 칼을 들고 유진우를 향해 돌진했다.이 백호랑들은 모두 문관옥이 정성껏 길러낸 호위무사들로 충성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실력도 강했다.물론 그도 백호랑이 정말 유진우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공격하라고 명령한 건 시간을 끌면서 유진우의 기력을 소모하기 위해서였다.이번 작전에 참여한 세력들은
“대 마스터...문 도련님의 한 방은 분명 대 마스터에 버금 가는 실력입니다!”채지웅은 그를 올려다보며 놀라움이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그는 유진우도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문관옥이 더 강할 줄은 몰랐다.‘마스터의 경지로 대 마스터의 실력을 발휘하다니... 말도 안 돼. 역시 천교는 다르다는 건가?’“이런 기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온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노윤하는 입을 딱 벌린 채 충격을 금치 못했다.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고수라고 생각했지만 문관옥 같은 고수 앞에서 자기는 정말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너무 대단하시네요. 제 실력이 문 도련님 절반이라도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요...”사호문 제자들도 깜짝 놀랐을 뿐만 아니라 속으로 경외심을 느꼈고 뛰어난 실력을 갖춘 문관옥을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인제야 그들은 마침내 천교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깨달았다.“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문관옥이 칼을 휘두르는 걸 보면서 유진우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살짝 스텝을 밟고는 칼을 들어 앞으로 찌를 뿐이었다.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지만 화려한 테크닉도 없는 그저 단순한 공격이었다.그러나 문관옥이 들고 있는 거대한 칼날에 비하면 유진우는 코끼리 앞에 선 개미처럼 작고 약해 보였다. 입김만 불어도 부서질 듯이 말이다.“죽어!”유진우가 정면으로 맞서자 문관옥은 칼을 든 손에 힘을 더 세게 주었다. 그리고는 양손에 칼을 꼭 쥐고 아래로 내리쳤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우의 칼끝이 무관옥의 칼날을 정확하게 찔렀다.순간, 공포스러운 파동이 하늘 높이 치밀어 오르더니 사방으로 휘몰아쳤다.지나가는 곳에 있던 꽃과 나무는 온데간데없이 증발해 버렸고 바닥마저도 한층 벗겨져 버렸다.관전하는 무사들도 쓰러져서 곤두박질쳤다.모든 것이 가라앉고 나서야 무사들이 바닥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에 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구덩이 안에는 흑백의 그림자로 보이는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었다.흰색은 유진우였고 검은색은
문관옥의 맹렬한 기세에 유진우는 그저 검으로 막아내기만 했다. 그리고는 그저 문관옥이 마음껏 공격하게 내버려두었다.하지만 그것이 사람들 눈에는 문관옥이 계속 유진우를 누르고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보였다.계속해서 공격한다면 문관옥이 곧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문 도련님께서 익힌 기술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공격하면 할수록 위력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이 싸움을 보니 유장혁이 더 이상 당해 내지 못할 것 같네요...”“천재라고 하길래 뭐 얼마나 대단하나 했는데... 결국 문 도련님 같은 천교를 당해낼 수 없잖아요!”“문 도련님 파이팅입니다! 유진우를 죽여버려요!”기세등등하게 공격을 이어 나가는 문관옥을 보며 그들은 놀라워 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일부 사호문 제자들은 함성을 지르며 응원했다.“죽여라! 죽여라!”문관옥은 미친 듯이 웃으면서 손에 든 칼을 점점 더 빨리 휘둘렀다. 그러면서 기세도 점점 더 거세졌다. 그의 공격은 마치 바람에 소나기가 휘몰아치는 것처럼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유장혁, 아까는 그렇게 건방지더니... 왜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막지만 말고 반격해 봐! 공격해 보라고!”“왜 방어만 하고 있어?”“설마 두려운 건 아니겠지?”“전에는 그렇게 멋있고 대단하던 사람이었잖아. 지금은? 겨우 내 공격을 버티고 있는 주제에!”“그러면서도 천재라고? 웃기지도 않아!”“너한테 그럴 자격 따위 없어!”“어때? 내 실력이 느껴져? 많이 무섭지? 절망적이지?”“안타깝지만 오늘은 아무도 널 구해줄 수 없어!”문관옥은 공격하면서도 계속 비아냥거리는 말을 해댔고 유진우로 하여금 절망을 느끼게 하려 했다.하지만 그의 꼼수에 유진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사실 그는 문관옥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문관옥은 대단하지만 유진우보다는 약했다.다른 조직이 아닌 호룡각이었기에 유진우는 겨우 이 정도의 사람들만 보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래서 그는 분명 다른 고수
문관옥의 무기는 빙화검이라는 칼이었는데 전설적인 3대 검 중 하나였다.이 칼은 위력이 셀 뿐 아니라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때론 한기가 엄습하고 때론 화염이 치솟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두 속성 모두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력이 강할 수록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문관옥은 앞으로 돌진하면서 빙화검을 칼집에서 꺼냈 다.뜨거운 붉은 불꽃이 순식간에 칼날 전체를 뒤덮었다. 불길이 마치 짐승처럼 포효하는 듯했고 칼날이 지나가는 곳마다 땅의 화초들이 검게 타들어갔다.“화염 첫 번째 기술!”문관옥이 손목을 살짝 움직이더니 화염을 내뿜는 긴 칼을 높이 쳐들고 허공을 가르며 유진우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굉음이 울려퍼졌다.화염에 휩싸인 긴 칼이 갑자기 폭발하여 거대한 칼날이 허공에 떠서 형성되었다.칼자루는 길이가 십여미터쯤 돼 보였고 너비는 3미터 쯤인 것 같았다. 주위에는 불꽃이 감돌며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언뜻 보기에는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칼날이 유진우을 향해 이렇게 무겁게 내리꽂히는 듯했다.“너무 무서운데요? 이게 문 도련님의 실력이였군요. 역시 강하세요.”“맞아요, 역시 도련님이세요. 거의 마스터 수준아닌가요?”“문 도련님 같은 분만이 유진우와 겨룰 수 있죠.”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칼날을 보고 있자니 모두들 자신도 모르게 놀라움을 나타냈다.비교하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었지만 경원종 고수들의 공격과 비교해 보면 문관옥의 공격은 차원이 달랐다.이게 바로 일반 고수들과 천교의 차이였다.“검!”유진우가 이렇게 말하자 땅에 떨어졌던 청하검이 그대로 10여 미터 거리를 날아오더니 유진우의 손에 쏙 들어왔다.유진우는 한 손으로 검을 들고 머리 위에 꽂혀지는 불꽃을 살짝 건드렸다.그러자 하얀 빛이 순식간에 검을 뚫고 나와 빙화검의 불꽃에 세게 부딪쳤다.쿵하는 큰 소리와 함께 두 칼날이 마주쳤다. 그 찰나, 땅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에너지가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휘몰아쳤다.지나가는 곳마다 온통 난장판이었
펑!여기저기로부터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위력이 넘치는 번개들은 유진우의 커다란 손바닥 그림자 속에 빨려 들어갔고 바람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칼날은 전부 터져버려 모양을 유지할 수 없었으며 날카로운 얼음덩이들은 순식간에 물로 녹아버렸다.경원종의 모든 공격은 전부 무력화 되고 말았다.그뿐만 아니라 비연교 제자들의 암기들도 반사되어 공중에서 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려오며 사방에서 땡그랑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이럴 수가.”오행 진법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 채지웅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다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경원종의 다른 고수들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금방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한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았으니 현재 기진맥진한 그들은 독 안에 든 쥐와 다름이 없었다.“도망가야 해! 얼른 도망가야 해!”노윤하가 소리를 지르며 허겁지겁 줄행랑을 놓았다.유진우의 손바닥 그림자에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 같은 강렬한 위기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그의 공격은 일반 마스터가 다다를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으니 유진우는 이미 대 마스터의 문턱을 밟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펑!흰색의 손바닥 그림자가 곧장 따라와 사방을 휩쓸자 미처 피하지 못한 경원종의 고수들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가까이에 있던 사호문 제자들은 상황파악도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뒤에 숨어서 암기를 날리던 비연교 제자들도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유진우가 만들어낸 커다란 손바닥 그림자는 도살장의 분쇄기처럼 그곳에 남아있는 적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버렸다.지금 이곳은 지옥이 다름없었다.이곳저곳에서 피가 튕기고 산산조각이 난 시체들이 떠다녔다.바닥이 새빨간 피에 물들여져 피로 된 길고 긴 길을 만들어냈다.손바닥 그림자가 유유히 사라지자 이상한 침묵이 흘렀다.경원종에서는 채지웅 혼자 살아남고 전멸했다.채지웅은 바닥에
전에는 경원종이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방금 경원종 고수가 쓰는 진법을 보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경원종이 명불허전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채 종주님, 경원종의 오행 진법을 보니까 정말 눈이 번쩍 트이네요. 우리가 도울 필요도 없어 보여요. 경원종 혼자서도 유진우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요!”노윤하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와 채지웅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공로를 빼앗을 수 있을꺼 생각했었는데 사호문 문주가 죽고 나니까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유진우도 정말 대단하긴 해요. 오행 진법을 쓰지 않았더라면 감당할 수 없었을 겁니다.”채지웅은 두 손을 짊어지고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물론입니다. 그래도 오행 진법에 의해서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만할 수 있어요. 그만큼 그자가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는 의미니까요.”도금칼과 이화검 모두 유진우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그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증명하기에 충분했다.오행 진법이 변화무쌍한 진법이어서 다행이었다. 하늘과 땅의 힘을 빌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채 종주님, 공로를 세우셨으니 돌아가시면 반드시 큰 상을 받게 될 겁니다. 그때 가서도 저희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노윤하가 요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노 교주님 걱정 마세요. 저희 경원종이 상을 받게 된다면 비연교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채지웅은 들뜬 마음으로 직접 다짐했다.“채 종주님께 감사드립니다.”노윤하가 공손하게 말했다.두 사람이 승리를 축하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돌멩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돌멩이들은 온 지면을 뒤덮으며 굉음을 냈다.순간, 산더미처럼 쌓인 돌덩어리가 폭발하는 것이었다.누군가가 돌멩이들 사이로 날아올라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었다.그는 수십 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르고 나서야 다시 천천히 바닥에 착지했다.아니나 다를까 흙을 헤치고 나온 유진우였다.“뭐? 안 죽었다고?”조금도 다치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다섯 자루의 검을 보면서도 유진우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손바닥을 살짝 들어 올려 위로 치켜올릴 뿐이었다.쾅!강력한 에너지가 손바닥에서 폭발하더니 빠른 속도로 그 이화검들을 삼켜버렸다.펑!다섯 발의 폭음과 함께 다섯 개의 이화검이 폭죽처럼 동시에 터지며 하늘의 불꽃이 되어 바람에 흩날려갔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채지웅이 깜짝 놀라면서 중얼거렸다.나머지 경원종 고수들도 서로 마주 보며 놀라워했다. 이화검의 순발력과 파괴력은 도금칼보다 훨씬 뛰어난 데다가 그들은 방금까지 전력을 다해서 그를 공격했기 때문이었다.그들의 예상대로 유진우가 이 살인을 막아냈더라도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하지만 유진우는 멀쩡할 뿐만 아니라 이화검의 공격도 손쉽게 피했으니 말이다.그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계속해! 마법진 변경!”채지웅은 깜짝 놀랐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오행 진법은 변화무쌍하여 7가지 공격방법이 있었다. 이화검도 안 되면 또 다른 공격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그는 유진우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약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곤지함!”채지웅은 손목을 바들바들 떨면서 황토색 부적 한 장을 꺼내 바닥으로 내리쳤다.나머지 고수들도 그를 따라서 부적을 바닥에 내던졌다.펑!황토색 부적 다섯 장이 땅에 떨어지면서 폭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유진우가 서 있는 지면이 갑자기 움직이더니 빠른 속도로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우 주위 10미터 반경의 땅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더니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유진우는 반응할 틈도 없이 깊은 구덩이에 빠져버렸다.“곤산붕!”그 순간, 채지웅은 즉시 진법을 바꿔버렸다.그는 방금 생긴 깊은 웅덩이를 빠른 속도로 메꿔버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유진우는 완전히 생매장당했다.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경원종 고수를 지휘하며 진법으로 큰 바위들을 옮겨와서 유진우가 생매장된 곳을 막아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는 산처럼 쌓여버렸다.생매장된 유
독성을 가지고 았는 다트는 마치 비 내리듯 끝없이 유진우를 향해 쏟아졌다.순식간에 유진우가 모두의 타깃으로 되었다.“마법진!”다트들이 떨어지려고 할 때 채지웅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그 후 경원종 고수들은 몇 명이 즉시 뿔뿔이 흩어져 유진우 곁에 원 모양으로 둘러섰다.그들 손에는 어느새 금색 부적 한 장이 들려 있었다.“도금칼!”채지웅은 명령과 함께 손에 든 금색 부적을 내던졌다.유진우를 에워싸고 있던 나머지 경원종 고수들도 즉시 부적을 내던졌다.다섯 장의 부적이 유진우를 향해갔다.곧이어 기괴한 장면이 발생했다.하늘하늘하던 부적에서 순간 빛이 크게 번지더니 다섯 자루의 거대한 금색 칼로 변해 유진우를 찌르려 하는 것이었다.그 칼은 아주 날카롭고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으며 파괴력이 강해 보였다.무도 마스터라도 감히 정면으로 맞서지 못할 정도의 위력을 가진 칼이었다.그리고 이 마법진은 경원종의 오행 진법으로 변화무쌍한 데다가 위력이 무궁무진한 진법이었다.또 다섯 사람이 힘을 합쳤기에 실력이 배로 늘어났을 것이었다.죽음에 가까워진 상황이 아니면 결코 쉽게 쓰지 않는 진법이었다.하지만 유진우를 죽이기 위해 경원종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질질 끌지 않고 한 방에 죽여버릴 생각이었다.“고작 이것밖에 못 하나요?”다섯 자루의 금빛 검을 본 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안색을 바꾸지 않고 발을 한 번 굴렀다.흰색 진기가 몸에서 터져 나와 타원형의 보호막을 만들어 주었다.그 보호막은 유진우를 감싸고 있었다.철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다섯 자루의 금빛 검이 유진우의 보호막에 부딪혔다. 그러자 그 검들이 순식간에 부서지더니 빛이 되어 흩어지는 것이었다.결국 유진우는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았다.“응”채지웅은 미간을 찌푸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오행 진법의 도금칼은 날카롭기로 유명한 무기였다.하지만 유진우의 보호막조차 뚫지 못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마법진 변경!”채지웅은 주저하지 않고 즉시 경원종 고수를 지휘하여 진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