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사람 불러서 불을 꺼요! 곧 도착할 겁니다.”전화를 끊자마자 유진우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으며 최대 속도로 구세당으로 향했다.길 위의 신호등은 신경 쓰지 않았고 마치 바람을 가르며 내달리듯 전속력으로 달렸다.그렇게 평소 20분이 걸리던 거리를 유진우는 10분도 채 안 걸려 현장에 도착했다.유진우가 도착했을 때에도 소방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구세당은 이미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있었고 1층은 전소되었으며 맹렬한 불길이 2층으로 번지고 있었다.많은 이웃들이 물통을 들고 불을 끄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이대로라면 5분도 안 되어 3층까지 불길이 번질 것이 분명했다.“빨리! 빨리 사람들 좀 불러와요!”유공권은 손에 소화기를 들고 절박하게 외치며 불을 향해 계속 쏘고 있었다.그의 옷은 너덜너덜해졌고 온몸이 그을려 있었다. 이미 여기저기 피부가 화상을 입어 있었고 매우 처참해 보였다.“유 명의님, 사철수 아저씨는 어떻게 됐어요? 구해냈나요?”유진우는 급히 달려가 물었다.“사철수 씨는 아직 안에 있어요! 불이 너무 빨리 번져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불을 끌 수가 없어요. 이대로면 큰일입니다!”유공권은 얼굴에 불안과 공포가 가득했다.소화기는 이미 다 써버렸고 그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내가 가서 구해내겠습니다!”유진우는 더 이상 말없이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바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진우 씨, 미쳤어요?! 빨리 나와요! 그러다간 죽어요.”유공권은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유진우는 이미 불길 속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하늘을 보며 한탄했다.“이제 다 끝났어, 모든 게 끝이야!”“대박! 방금 누가 불 속으로 뛰어들었어? 저렇게 용감할 수가 있나?”“뭐? 네가 잘못 본 거 아니야? 이런 불길에 뛰어드는 사람이라니... 말이 안 돼!”“나도 봤어, 분명 한 사람이 뛰어들었어. 믿을 수 없군!”유진우의 목숨을 건 행동에 많은 구경꾼들은 충격을 받아 그만 물을 뿌리는 것도 잊어버렸다.불길은 점점 더 거세졌고 2층은
“쿵!”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유진우는 불길에 휩싸인 채로 높이 뛰어올라 바닥에 착지했다.그의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지면에는 몇 개의 균열이 생겼다.“휘익...” 바람이 불자 유진우의 몸에 붙어있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그의 피부 표면에서 희미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그 모습은 마치 신비롭고 환상적인 광경을 연상케 했다.“응?”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경험이 풍부한 소방대원조차 놀라움에 말을 잃었고 아무도 엄청난 불길 속에서 사람이 살아서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게다가 그는 3층 창문을 깨고 나왔고 불길 속에서 거의 무사히 나왔으니 말이다.이 용감하고도 무모한 행동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내가 잘못 본 건가? 방금 들어갔던 사람이 정말 살아서 나왔단 말이야?”“그뿐만 아니라 사람도 구해냈잖아.”“이 사람 도대체 누구야? 불에도 타지 않고... 이건 말도 안 돼!”잠시 침묵이 흐른 후, 현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모든 이들의 시선이 유진우에게 집중되었고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진우 씨? 진우 씨 정말 괜찮아요?”유공권은 놀라 어쩔 줄 몰랐다.“운이 좋았죠. 불길이 전부 타기 전에 제때 빠져나왔습니다.”유진우는 이렇게 말하며 품속에 있던 이불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이불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흰 연기가 피어오르긴 했지만 불에 타지는 않았다.이불을 펼치자 삐쩍 마른 사철수가 조용히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숨이 약간 가쁘기는 했지만 다행히 무사했다.“정말 다행이네요. 사철수 씨가 무사하다니!”유공권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감격에 목이 메었다.조금 전까지 유공권은 사철수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진우가 용감하게 불 속으로 뛰어들어 그를 구해냈다.유진우는 사철수의 상태를 점검한 후, 그를 차에 태우고 자리를 정돈했다.그러고 나서 유공권을 돌아보며 물었다.“유 명의님, 구세당이 이렇게 갑자기 불이 난 이유가 뭘까요?”“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잠깐
유공권은 평소에 가난한 이들에게는 진료비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그는 자신이 세상을 살아오며 하늘과 양심에 떳떳하고 구세당을 찾은 모든 환자들에게 진심을 다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자신이 평생 쌓아온 선행의 결과가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대반 생애의 노력과 정성이 한순간에 불타 없어진 것이었다.그는 깊은 절망과 회의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유 명의님, 비록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는 한 가지 의심이 듭니다.”유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누가요? 대체 누가 이렇게 악독한 짓을 했단 말이죠?”유공권은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송씨 가문이요.”유진우는 차갑게 두 글자를 내뱉었다.“송씨 가문이요?”유공권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비록 증거는 없었지만 유진우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구세당을 차지하기 위해 송씨 가문은 이전부터 온갖 협박과 회유를 사용해 왔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며칠 전에는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보낸 장용이라는 깡패도 송씨 가문과 관련이 있었다.만약 누군가가 불을 질렀다면 가장 의심이 가는 쪽은 송씨 가문이었다.“차지할 수 없다면 파괴한다... 송씨 가문 정말 악랄하네요.”유공권은 분노에 떨며 말했다.수십 년간 쌓아온 노력이 한순간에 파괴되었으니 그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그때, 하얀색 마세라티가 갑자기 도로 옆에 멈췄다.곧이어 조수석의 문이 열리며 송충이 먼저 나와서 뒷좌석 문을 공손히 열어 송영명과 안세리를 내리게 했다.이 순간에도 소방대원들은 여전히 물을 뿌리며 불을 끄고 있었고 주변에는 검은 연기와 먼지가 자욱했다.송영명은 햇빛을 가려주기 위해 안세리의 위로 우산을 펼쳤다.“어이! 여기 무슨 일이야? 왜 불이 난 거지?”송영명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며 일부러 놀란 척을 하며 곧이어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유 명의님, 정말 조심성이 없으시네요. 이거 보세요. 남쪽 구역에서 가장 유명한 의관이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지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
“뭐 하는 거예요?”타들어 가는 수표를 보던 안세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유진우가 그녀의 체면을 아예 무시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거절하면 그만이지, 수표를 태워버리기까지 했다. 그럼 안세리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이봐, 유진우, 이게 지금 무슨 뜻이야?”그 모습을 본 송영명이 언짢아하며 호통쳤다.“우리 세리가 너한테 돈을 주는 건 은혜를 베푸는 거야. 주제도 모르고 뭐 하는 짓이야?”“나한테 돈을 주면 그대로 받아야 해? 내가 뭐 거지인 줄 알아?”유진우가 코웃음을 쳤다.안씨 가문에 대한 인상이 정말 좋지 않았다. 어제 안세리가 이용한 일이든 오늘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일이든 사람은 겉만 보고 모른다는 게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다.“흥! 네 꼴을 봐봐. 거지랑 다를 게 뭐야?”송영명이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계속 더 함부로 지껄였다간 맞는 수가 있어.”유진우의 눈빛이 점점 싸늘해졌다.“너!”송영명이 화를 내려던 그때 안세리가 손을 들어 말렸다. 그러고는 물기를 머금은 듯 빛나는 눈빛으로 유진우를 조용하게 쳐다보았다.“진우 씨,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 우린 분명 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왜 자신한테 기회를 주지 않는 건데요?”“세리 씨 신분이 높아서 난 그럴 자격이 없다고 전에도 얘기했었죠? 친구는 됐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 친구라는 말을 들으니 더욱 귀에 거슬리는 것 같았다.“세리야, 저런 보잘것없는 자식을 신경 써서 뭐 해?”송영명이 고개를 내저었다.“그래요. 당신이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는 연락하지 맙시다.”안세리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고 눈빛도 점차 싸늘해졌다.안씨 가문의 딸인 그녀는 신분이 아주 귀했다. 평소 어딜 가든 아부하는 사람만 가득해서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안세리가 자세를 낮추고 유진우에게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이미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그런데 유진우는 그녀의 호의 따위 받질 않았고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명의님, 구세당을 파는 것 말고는 더 나은 선택이 없어요. 그리고 우리 말고 살 사람도 없고요.”안세리가 다정한 말투로 설득했다.남쪽 구역은 안씨 가문과 송씨 가문의 천하인데 그들의 동의가 없이 누가 감히 구세당을 이어받겠는가?“안 팔아요! 죽어도 안 팔아요! 내 구세당을 빼앗아갈 궁리 하지도 말아요!”유공권이 노발대발하면서 소리를 질렀다.반평생 동안 수많은 피와 땀을 흘리면서 일궈 세운 오늘날의 구세당이었다. 그런 구세당을 어찌 팔 수가 있겠는가? 그것도 이런 양심 없고 욕심만 가득한 인간에게 말이다.심지어 구세당이 이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돈 버는 기계가 되어 결국에는 명성이 완전히 바닥날 거라는 예상이 들었다.“팔지 않겠다고요?”송영명이 싸늘하게 웃었다.“명의님, 잘 생각하고 대답하는 게 좋을 겁니다. 우릴 거절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에요.”“난 이미 살 만큼 다 살았어요. 죽어도 여한이 없는데 당신들을 두려워하겠어요?”유공권의 두 눈에 핏발이 다 섰다.“명의님의 강직한 품성과 두려움 없는 용기는 참으로 존경해요. 근데 명의님은 괜찮아도 가족 생각은 하셔야죠. 명의님의 후손들이 걱정되지도 않으세요?”송영명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유공권은 마치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렸다.‘그래. 난 두려운 게 없고 죽는 것도 무섭지 않은데 우리 가족은 어떡해? 저 사람들 살인과 방화까지 서슴없이 저지르는데 뭔 일인들 못 하겠어?’“내가 기억하기로 명의님한테 아주 예쁜 손녀가 있던데... 앞날도 창창한 젊은 나이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얼마나 안타까워요. 안 그래요?”송영명이 웃을 듯 말 듯했다.털썩!그 순간 유공권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고 안색이 잿빛이 되었다.자신이 송영명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그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아무리 물러서지 않고 배짱이 있어도 명문가의 권력 앞에서는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이런 권력을 건드렸다간 목숨을 잃을 가능성도 있었다.
“60억요?”그 소리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일제히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유진우였다.“인마, 방금 뭐라고 했어?”송영명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마저 들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세리도 눈살을 찌푸리면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명의님, 60억으로 구세당을 사겠습니다.”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그리고 구세당을 원래 모습으로 복구하고 명의님은 여전히 구세당의 수석 의사로서 구세당의 크고 작은 일들을 관리하면 됩니다. 약속드릴게요.”그 소리에 유공권은 순간 멍해졌다. 유진우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재건하고 권력이 바뀌지 않는다는 건 유공권더러 계속 구세당을 관리하면서 선행을 이어가라는 뜻이었다.유일하게 달라진 점이라면 앞으로 구세당이 얼마를 벌든 그와는 상관이 없었다. 물론 구세당의 명성과 유공권의 정신적 지주를 지킬 수만 있다면 그깟 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진... 진우 씨, 진심이에요?”유공권이 재차 확인했다.“그럼요.”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구세당은 의술로 사람들을 구하고 행복을 가져다줬어요. 저도 의사로서 이런 훌륭한 의원이 돈 버는 도구가 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지킬 생각인데 명의님은 저한테 팔 의향이 있으신지요?”“팔죠. 당연히 팔죠. 근데...”유공권은 말을 멈추고 송영명 일행을 쳐다보았다.얼마에 팔든 상관이 없었고 심지어 유진우에게 공짜로 줄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유공권은 유진우를 자신의 후임으로 생각했으니까.그런데 문제는 송씨 가문과 안씨 가문에서 구세당을 눈독 들이고 있었다. 유진우가 구세당을 사겠다는 건 두 가문과 맞서 싸우겠다는 뜻이었다. 이런 행동은 아주 위험했다. 만약 구세당을 유진우에게 판다면 유진우를 해치는 것과 다름없었다.“이 자식아, 둘이 지금 짜고 나한테 장난쳐?”송영명이 코웃음을 쳤다.“지금 네 꼴을 봐봐, 거지랑 뭐가 달라? 너 같은 사람은 가진 걸 다 팔아도 60억을 마련하지 못해. 근데 구세당을 사겠다고? 그럴 자격이나 있어?
유진우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웃기만 할 뿐 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빨간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냈다.빨간 카드 정면에 금색의 용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주 위풍당당하고 위엄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뒷면에 제왕이라는 금색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이건 드래곤 은행의 제왕 카드인데 자산이 1조 원이 넘는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카드야. 그리고 이 카드 한 장으로 용국의 아무 은행에서 현금 100억을 찾을 수도 있고. 인제 말해봐 봐. 내가 이래도 구세당을 살 수 없을 것 같아? 그깟 60억이 없을 것 같아?”유진우는 빨간 카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마음껏 비웃었다.“뭐? 드래곤 은행의 제왕 카드?”카드를 본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드래곤 은행은 용국에서 가장 큰 은행이었고 국고와도 연결되어 있었다.은행에서는 이용 고객들을 여러 등급으로 나뉘었는데 차례로 일반 VIP, 골든 VIP, 플래티넘 VIP, 블랙 골든 VIP, 다이아몬드 VIP 그리고 최고급 레벨의 제왕 VIP였다. 그리고 제왕 VIP가 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했다.첫 번째 조건은 개인 재산이 적어도 1조 원에 달해야 했고 두 번째 조건은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거물이어야만 했다.예를 들어 명문가의 가주거나 선행을 많이 해서 명성이 자자한 재벌, 또는 나라의 기둥이 되는 인재여야만 가능했다.드래곤 은행의 제왕 VIP가 된다면 부의 피라미드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돈을 버는 게 물을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그런데 문제는 용국 전체에 제왕 VIP를 소유한 사람이 50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각계 거물들이 통제하고 있어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써서는 안 되었다.“네... 네가 왜 드래곤 은행의 제왕 카드를 갖고 있어?”귀한 카드를 본 순간 송영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명문가 도련님인 그마저도 블랙 골든 카드밖에 신청하지 못했다. 유진우의 제왕
“뭐라고요? 평생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고요?”그 소리에 옆에 있던 유공권의 낯빛이 급변하더니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사실 유공권도 유진우의 제왕 카드가 진짜인지 의심했었다. 하여 안세리의 협박에 이토록 당황한 것이었다. 자신 때문에 유진우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진우 씨, 얼른 카드 다시 넣어요. 안 그러면 큰일 난다고요.”유공권이 유진우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짜 제왕 카드를 제때 없앤다면 큰 불행은 막을 수 있었다.“유진우 너 아주 간덩이가 부은 놈이구나! 감히 제왕 카드를 위조해? 죽고 싶어?”송영명이 싸늘하게 쳐다보았다.“진우 씨, 지금 뉘우칠 기회를 줄게요. 잘못을 인정하고 그 카드를 없앤 다음 여길 떠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해줄게요.”안세리가 고개를 들고 의기양양한 말투로 말했다.“내가 왜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거죠? 보고도 진짜인지도 모르는 건 당신들인데. 믿지 못하겠으면 지금 나랑 드래곤 은행으로 갑시다.”유진우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드래곤 은행의 제왕 카드는 유천우가 가기 전에 준 것이기에 가짜일 리가 없었다.“그만 해요, 유진우 씨!”안세리가 굳은 표정으로 호통쳤다.“내가 이미 가짜인 걸 발견했는데도 고집을 부릴 거예요? 난 지금 당신한테 되돌릴 기회를 주는 거라고요. 그런데도 계속 고집을 부리면 나도 더는 참지 않아요!”“왜요? 날 잡기라도 하게요?”유진우가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럴 필요가 있다면 그래야죠!”안세리가 또박또박 말했다.“난 당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가만히 지켜보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감옥에 가야만 정신을 차려서 잘못을 뉘우치고 바른길로 돌아올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난 지금 당신을 위해서 이러는 거라고요.”“날 위해서요? 하하... 참 귀에 거슬리는 말이네요.”유진우가 냉랭하게 웃었다.“세리 씨가 참 가식적인 사람이란 생각 안 해봤어요? 남을 해치고 있으면서 뭘 그렇게 허울 좋은 말만 하고 정의의 사도인 척해요? 정말 역겨워서 못 봐주
점심을 먹고 난 후, 유진우는 갑자기 이청성의 전화를 받았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상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날 장소는 성서의 옛 저택으로 정했다. 성서에 있는 그 오래된 집은 유진우가 이미 구매해 놓은 곳으로 주로 밀사 훈련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전에 소현무에게 피해를 보았던 여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서경의 밀사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의 큰 뜻은 다시는 자신들처럼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깊은 뜻에 유진우는 존경을 표했으며 그들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손도운의 훈련을 거친 그 여자들은 이제 입문 단계에 있지만 진짜 임무를 수행하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의 연습이 필요했다. 유진우는 그들이 평생 임무를 수행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의미였다. 밀사들은 잠재적인 위협이 있을 때만 활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그들은 거의 죽을 각오로 임무를 수행한다. 30분 후, 유진우는 성서의 오래된 집에 도착해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청성이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이청성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면사포와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매만 봐도 여전히 매우 유혹적이었다. 특히 그녀에게서 풍기는 신비롭고도 매혹적인 기운은 마치 타고난 매력처럼 사람들을 쉽게 끌어당기는 느낌을 주었다. “왔어요?” 이청성은 직접 유진우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공주마마, 갑자기 절 찾으시다니,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유진우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 이렇게 친해졌는데 공주마마라 부르는 게 좀 어색하지 않나요? 다른 호칭을 쓰는 건 어때요?” 이청성은 미소를 머금은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뭐라 부르면 되나요? 아가씨? 아니면 여사님?” 유진우는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 그런 거 말고 그냥 청성 씨라고 불러도 되잖아요. 왜 그렇게 격식을 차려요?” 이청성은
원인은 간단했다. 유진우는 배신자를 극도로 혐오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인 자들은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했다. 반란을 일으킨 다섯 명을 처형한 후, 그들을 따랐던 고급 장교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처분이 내려졌다. 강등될 자는 강등되고 포섭할 자는 포섭하며 감옥에 가야 할 자들은 감옥에 보냈다. 구체적인 처분은 자발적인 배신이었는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유진우는 반란을 수습하는 동시에 홍복홍에게 유만군의 한 부대를 이끌고 보물 지도의 위치를 따라 호룡각의 보물 창고를 찾아가도록 지시했다. 모든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호룡각에도 고수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대 마스터인 홍복홍 앞에서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손쉽게 호룡각의 잔당을 소탕하고 보물 창고에 있던 모든 재물을 회수해 왔다. 사철수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물 창고 안에는 재물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서경 왕부에서 동원한 수백 대의 대형 트럭과 수만 명의 인력을 총동원해야만 창고를 완전히 비울 수 있었다. 그 모든 재물의 양과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이 보물만으로 서경의 향후 20년 군자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창고 하나만으로 이 정도라면 남은 세 개의 보물 창고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나라를 사고도 남을 부가 될 것이었다. 보물을 가져온 뒤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바로 공로를 논하고 상을 주는 일이었다. 남방의 세 명의 제후인 회음 제후 은성종, 평양 제후 장범규, 선평 제후 주한휘는 모두 큰 공을 세운 자들이었기에 마땅한 보상을 받았다. 그들의 휘하에 있던 장군과 병사들도 저마다 공훈에 따라 상을 받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어느덧 사흘이 지나 있었다. 3일 후, 정오. 유진우가 식사하던 중 홍복홍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나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세자 전하, 아뢸 일이 있습니다.” 홍복홍은 몸을 숙이며 최대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
“됐어, 시간도 늦었으니 일찍 방에 들어가서 쉬어.”유만수는 피곤한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유만수가 유진우한테 왕위를 계승해 줄 생각을 했던 건 한편으로는 유진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책감 때문에 조금이나마 보상을 해주고 싶어서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진우는 야망도 없고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그러니 유만수도 싫다는 아들을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얼마 남지 않은 삶이니 이젠 두 아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 외에 일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유진우는 뭔가를 말하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우는 아직 왕이 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확실히 아니었다.다른 사람들한테는 서경의 왕은 최고의 권세를 대표하고 무궁무진한 부귀영화를 대표하며 세계 정상에 서는 위풍을 대표하겠지만, 유진우한테 서경의 왕은 너무 무거운 자리였다.그 자리는 오르기만 하면 짊어져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더 이상 자기 자신보다 전체 서경, 더 나아가 천하의 백성을 생각해야 한다.유진우는 자신은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 이렇게 무거운 책임을 질 자신이 없었다. 유진우는 이번만큼은 그냥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칠 동안 유진우는 왕부에서 시간을 보냈다.반역을 평정하는 이번 일은 호룡각을 소탕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처리해야 할 사소한 일이 많았다.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아 유진우가 그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했다.먼저 유태범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였다. 유진우는 유태범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첫째, 병권을 반납하고 서경에 머물며 매일 개를 산책시키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한가로운 귀족으로서 부귀한 삶을 누린다. 단, 어떤 세력도 있어서는 안 되며 수중의 호위대도 백 명을 넘지 말아야 한다.둘째, 어느 정도의 금전을 가지고 서경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발전한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왕부는 절대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제가 한 약속이니 제가 지켜야죠.”유진우가 꿀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는 보물 황옥주를 가지고 있어 용원의 기를 찾는 데 성공할 확률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야말로 해변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다.“그래. 그럼, 네 말대로 용원의 기는 네가 찾아봐. 그런데 문제는 그걸 찾고 난 다음에는 뭐 할래?”유만수는 되물었다.“그건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해요. 아직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 안 해봤어요.”유진우는 고래를 저으며 말했다.“생각할 필요 없어. 내가 하라는 대로 해.”유만수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약속을 지킨 뒤 두말 말고 다시 돌아와서 왕위를 이어받아. 뒷걱정 없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놓을 테니까.”“말했잖아요. 저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아요.”유천우는 단번에 거절했다.“내 아들인 네가 왕위를 이어받지 않으면 누가 이어받아? 설마 정말 천우에게 이 중책을 맡길 생각이야?”유만수는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했다.“천우는 학문도 능하고 무술도 능한데 안 될 건 또 뭐예요?”유진우가 반박하며 물었다.“우수한 건 맞지만 천우는 대장군이 더 어울려. 서경의 왕은 아니야.”유만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서경이 세력이 크긴 하지만 내우외환이 끊지지 않고 있어.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많은 세력이 반드시 들고 일어날 거야. 그때가 되면 천우가 막아낼 수 있을 거 같아? 천우한테 왕위를 계승하는 건 그를 해치는 길이야.”“그럼, 저는 왜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예요?”유진우가 물었다.“너는 팔자가 굳세고 대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야. 이 세상에서 너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연경에 있는 분도 같은 생각이야. 네가 서경의 왕이 된다면 전체 국면을 안정시킬 수 있어. 나중에 서경에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너는 그만한 중책을 다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야.”유만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듣다 보니까 결국 저는 정세
유태범은 분한 마음에 울화통이 터졌지만 그렇다고 감히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유진우와 유천우가 거절하며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왕은 그 두 사람 중에서 나와야 한다는 걸 유태범도 잘 알고 있었다.조금이라도 허튼 생각을 한다면 그의 최후도 채원진과 똑같아질 것이 뻔했다.“그만! 그만! 이 녀석들이! 왕위를 계승하라는데 무슨 처벌을 받듯이 말하고 있어? 그게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야?”두 아들의 태도에 화가 난 유만수는 욕을 퍼부었다.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왕위를 값이 없이 여기며 서로 안 한다고 싸우는 두 아들 때문에 유만수는 너무 창피했다.“저는 정말 생각이 없어요. 천우한테 물려 주세요.”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저는 왕위를 감당할 재목이 아니에요. 무조건 형을 시키세요.”유천우는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둘 다 입 다물어!”유만수는 탁자를 세게 치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내가 결정해. 너희들이 제멋대로 이래라저래라할 일이 아니야! 그리고, 내가 몸만 괜찮았다면 너희들이 왕위를 이렇게 빨리 넘겨받을 수 있었을 거 같아?”유만수가 화를 내자 유천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절대 못 하겠다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자기 생각을 밝히고 있었고 유진우는 여전히 자신과 상관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유만수는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겨우 감정을 가라앉히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모두에게 말했다.“자식놈들이 모두에게 못 볼 꼴을 보여줬네요. 왕위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오늘에는 모두 즐겁게 먹고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냅시다.”“자자, 다들 마십시다.”장범규는 웃으면서 분위기를 풀었다. 그는 누가 왕위를 이어받든 상관없었다.결정은 순전히 유만수의 손에 달렸으니, 장범규는 누가 왕이 되었던 유만수의 결정을 따르고 지지할 생각이었다.방금까지 얼어있던 분위기는 금세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다만 아까와 달리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다.첫 번째 부류는 회음 제후 은성종을 필두로 유진우를
“뭐?”유진우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며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서경의 왕위는 수많은 사람이 바라지만 누구도 얻을 수 없는 자리였다.이렇게 존귀하고 최고의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자리를 서로 마다하는 유진우와 유천우 때문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예전에는 왕의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웠거늘, 유진우와 유천우는 완전히 반대였다.두 사람은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양보하며 왕위를 전혀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런 일은 처음이라 유진우를 지지하던 사람도 유천우를 지지하던 사람도 모두 입만 벌린 채 얼어있었다.당사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있는데 정작 두 형제는 서로 양보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었다.“형, 애초에 약속했잖아요. 형이 왕이 되고 내가 장군이 돼서 형을 보좌한다고. 왜 말을 바꿔요?”유천우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언제? 난 그런 약속 한 적 없어.”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게으르기도 하고 내 마음대로 하고 사는 것에 익숙해. 구속받는 것도 싫고 부담스러워서 싫어. 그리고 너를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아. 왕위는 네가 더 합당해.”“합당하기는 개뿔!”유천우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내 능력이 어느 정도 인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애당초 나는 왕이 될 재목이 아니에요. 하지만 형은 다르죠. 형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우수하고 형이야말로 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계승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후계자예요.”“천우야, 함부로 너 자신을 낮추지 마. 네가 나보다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야. 너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야.”유진우가 말했다.“난 몰라요! 아무튼 서경의 왕은 형이 하세요!”유천우는 화가 나서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익지 않은 참외를 억지로 비틀어 따봤자 그 참외는 달지 않아. 나는 큰 포부도 없고 남을 위하는 고상
유태범의 말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쳐다봤다. 지난날 표기대장군이었던 유태범은 인품 논란은 많았지만,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유태범은 여러 차례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오늘 이 자리까지 오른 것이었다.그러니 유태범처럼 패기 있고 안목이 있는 사람조차 유진우가 왕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했다.조금 전에 그들은 유진우를 지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로 생각해 유천우를 지지했지만 지금 보니 그건 아니었다.먼저 전쟁의 신 조무진이 힘을 보탰고 이어서 표기대장군 유태범이 지지했으니, 이 두 사람의 선택은 많은 사람들의 결정을 바꾸기에 충분했다.“셋째야, 왜 장혁을 선택하겠다는 건지 자세히 말해봐.”유만수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제가 장혁을 선택한 이유는 조무진과 비슷합니다. 저는 한 사람의 재능과 능력을 더 중시합니다.”유태범은 진지하게 말했다.“이번에 호룡각을 어떻게 소탕했는지 모두 잘 알 거로 생각합니다. 전부 장혁이 작전을 짜고 계략을 펼쳤기에 교활하기 여지없던 채원진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호룡각의 숨겨진 보물까지 전부 찾아냈죠. 이건 그야말로 아주 큰 공이 아닙니까? 종합해 보면 장혁의 용기와 지략은 왕위를 계승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입니다. 천우는 대장군이 되기에는 손색이 없지만 왕의 자리에 오르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유태범의 말이 끝나자, 유만수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한휘는 흥분하며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허튼소리! 이번 호룡각을 소탕한 것은 유진우 한 사람만의 공이 아니잖아요. 유천우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유천우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되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재능과 능력으로 따지면 유천우는 유진우보다 못 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젊고 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요.”“선평 제후,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러십니까? 저는 그냥 가족의 일원으로서 제 생각을 말했을 뿐이고 모든 권한은 저의 형님한테
“괜찮아. 오늘은 가족 연회야.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식구와 마찬가지이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걱정 말고 해봐.”유만수가 웃으며 말했다.“위왕 님께서 물어보셨으니 그럼, 사양하지 않고 말씀 올리겠습니다.”조무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두 손을 맞잡아 가슴에 올려 예의를 갖추고 말했다.“제 의견은 지극히 제 개인 생각일 뿐이니, 혹시 의견이 달라도 저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말아주십시오.”“전쟁의 신께서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당신은 나라의 기둥과 마찬가지인 사람이니 보는 눈이 분명 다를 거로 생각합니다.”“전쟁의 신께서는 누구를 지지하는 겁니까? 어서 말해보세요.”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용국의 전쟁의 신이자 왕족 조씨 가문의 후계자인 조문진의 영향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모든 사람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여 있었다.“자, 그럼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조무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정중하게 말했다.“종합적인 능력과 현명함을 바탕으로 한다면 저는 유진우가 서경의 왕으로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진우에게는 많은 단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서경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어 서경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둘째는 토대가 없어 대중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왕 님께서 저 자리에 오르실 때도 똑같은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그 당시 많은 세력이 위왕 님께 좋지 않은 눈총을 보냈었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위왕 님은 뛰어난 개인 능력으로 서경의 영토를 넓히며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여 지금의 지위와 영광을 얻었지요. 유진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개인 능력으로 보면 위왕 님보다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서경뿐만 아니라 용국 전체에서도 유진우 같은 사람은 더 없을 겁니다. 저는 유진우에게 조금만 시간을 준다면 그는 반드시 훌륭한 서경 왕이 되어 여러분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제 생각입니다. 여러분께서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마음껏 말씀하셔도 됩니다. 저는 여기까
은성종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똑똑한 사람이라면 유천우의 지지자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유천우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걸 잘 알 텐데, 서경의 인재로서 어린 제갈량이라고 불리는 은성종이 왜 반대로 유진우를 지지하는지 모두 의아해했다.“회음 제후,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주한휘가 반박했다.“유진우의 무도 재능은 서경 전체를 놓고 보면 확실히 따라올 사람이 없지만, 왕의 자리는 싸움을 잘한다고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유천우는 학문과 무예를 골고루 겸비한 데다 지지자까지 많으며 무엇보다 전쟁에서 몇 년 동안 연마하여 모든 면에서 매우 훌륭합니다. 만약 유천우가 왕이 된다면 서경은 분명 더욱 빛날 것입니다!”유천우는 황제의 조카이자 주한휘의 미래 사위이고 양측은 이미 혼약까지 맺은 사이였다.그러니 주한휘는 유천우가 왕의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자기 딸은 왕비가 되는 것이고 본인도 자연히 신분이 상승할 테니 무조건 유천우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저도 선평 제후의 견해에 동의합니다.”흑용군 주장 한 명이 말했다.“유진우가 우수하다는 건 물론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서경을 떠난 지 여러 해가 되었고 서경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유천우는 다르지요. 어릴 때부터 서경에서 자랐으니, 인맥도 넓고 군사 내막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천우가 왕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맞습니다. 유진우는 10년 동안 서경을 떠나 있었으니 그를 따르지 않을 자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유천우가 왕이 되는 것을 지지합니다.”이때 일부 군사의 고급 장교들이 모두 유천우를 지지하기 시작했다.유진우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서경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그들한테 유진우는 서먹서먹했지만, 유천우는 달랐다.유천우가 예전에는 믿음직하지 못했던 건 맞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뛰어난 성과를 보였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유천우의 성격상 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