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욱!”칼날이 번쩍이더니 규철의 목이 단번에 잘려나갔다.곧이어 그의 머리가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지며 두 번 구르다가 멈췄다.두 눈은 마치 구리 방울처럼 크게 뜨였고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죽기 직전까지도 규철은 자신이 유진우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의부였던 안중기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렇다, 안중기는 그의 의부였다.규철이 가장 궁핍하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안중기가 그를 구해 안씨 가문으로 데려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규철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심껏 안중기를 위해 일해 왔다.그래서 안중기가 유진우를 독살하라고 지시했을 때,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이것이 자신이 의부인 안중기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심지어 유진우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에게 독을 시험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고 목숨을 내걸었다.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의부 안중기의 치명적인 일격으로 규철은 목숨을 잃게 되었다.정말로 억울하고 분했다....“뭐죠?”규철의 시체를 바라보던 유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안중기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냉담하게 말했다.“안 집사님, 이게 무슨 뜻이죠?”“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방금 많이 놀라셨죠?’안중기는 곧바로 칼을 거두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집안에서 이런 배신자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다행히 제가 제때 발견해서 큰일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그래요? 그럼 내가 집사님께 감사라도 해야 하나요?”유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안중기가 이렇게 빨리 나타난 것은 분명히 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했고 조금 전 그 일격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명백히 사람을 없애려는 목적이었다.하지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안씨 가문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적대감을 드러냈는지 말이다.“감사는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니까요.”안중기는 침착하게 대답했다.“사실 이 일은 제
“가주님, 듣기로는 어르신께서 깨어나셨다면서요?”유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말투에서 미묘하게 바뀐 호칭이 느껴졌다.“맞네. 아버지께서 깨어나셨지만 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고 정신도 불안정해. 한동안은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군.”안두천이 대답했다.“걱정 마세요. 후유증일 뿐이라 곧 회복될 겁니다.”유진우는 말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며 말했다.“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전에 약속했던 금수옥과 빙심연, 언제 받을 수 있을까요?”“그건...”안두천은 잠시 머뭇거리며 옆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그러자 송자현이 대화를 이어받으며 차분하게 말했다.“우리 안씨 가문은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킨다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우리도 바빠서 진우 씨 한 사람만을 위해 일할 수는 없거든.”“사모님, 거래할 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반문했다.“최고급 영약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소식이 있으면 곧바로 알려줄게.”송자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기다리라고요? 계속 기다리다간 내 목숨이 먼저 날아갈지도 모르겠군요.”유진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의 대화를 통해 그는 안씨 가문이 이미 그를 제거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확신했다.그 이유는 아마도 옥로고 제조법 때문일 것이다. 이런 귀중한 비법은 안씨 가문이 사람을 제거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기다릴 수 없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어.”송자현은 냉담하게 말했다.“됐습니다. 더는 기대할 수 없겠군요. 그렇다면 이만 작별하시죠.”유진우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고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멈춰!”그때, 송자현이 갑자기 소리쳤다.“사모님, 더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유진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뒤돌아보았다.만약 안씨 가문이 진짜로 대립각을 세우려 한다면 그는 결코 이곳을 가만히 떠나지 않을 작정이었다.“진우 씨, 우리 할아버님께서는 몸이 허약해 보양식이 필요해. 전에 준 용혈삼이 최고의 보양식인데... 그걸 돌려주셨
“뭐죠? 지금 이 상황에서 손을 쓰겠다고요?”유진우는 앞뒤를 둘러보며 냉소적인 웃음을 지었다.“나는 여러분들의 딸을 구했고 그 후에는 약제를 전해 주었으며 어제는 어르신을 저승 문턱에서 끌어내 왔습니다. 이토록 많은 일을 해왔는데 안씨 가문은 감사는커녕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다니...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진다면 안씨 가문의 체면과 명성이 어떻게 될 것 같으십니까?”이 말에 안두천을 포함한 모두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안두천은 가문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규철에게 독을 쓰게 했던 것이다.그렇게 하면 만일 문제가 생기더라도 규철을 희생양으로 삼아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제 규철이 죽은 상태에서 공공연히 문제를 일으킨다면 어떤 비난을 받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살인과 배신,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소문이 퍼지면 안씨 가문의 신뢰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 분명했다.심사숙고 끝에 안두천은 일단 물러나기로 결정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 선생은 우리 안씨 가문에 큰 은혜를 베푸신 분인데 어찌 그리 무례하게 굴 수 있단 말이야? 정말 예의가 없군! 어서 물러서!”안두천은 송자현을 꾸짖으며 길을 막고 있던 무도 고수 둘을 밀어내고 유진우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정말 미안하네. 우리 아내가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 말이 지나쳤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라네.”이 부부는 상황에 따라 서로 역할을 나눠 하나는 위협하고 다른 하나는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상례였다.위협이 통하면 좋고 통하지 않더라도 완전히 체면을 잃지는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안씨 가문에도 이성을 가진 사람이 있군요. 아예 체면은 신경도 안 쓰는 줄 알았습니다.”유진우는 비꼬듯이 웃으며 말했다.“너...!” 송자현은 곧바로 반발하려 했지만 안두천의 눈빛에 의해 멈췄다. 그리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의 은혜, 우리 안씨 가문은 결코 잊지 않을 거야. 혹시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말만 해. 할
“빨리 사람 불러서 불을 꺼요! 곧 도착할 겁니다.”전화를 끊자마자 유진우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으며 최대 속도로 구세당으로 향했다.길 위의 신호등은 신경 쓰지 않았고 마치 바람을 가르며 내달리듯 전속력으로 달렸다.그렇게 평소 20분이 걸리던 거리를 유진우는 10분도 채 안 걸려 현장에 도착했다.유진우가 도착했을 때에도 소방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구세당은 이미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있었고 1층은 전소되었으며 맹렬한 불길이 2층으로 번지고 있었다.많은 이웃들이 물통을 들고 불을 끄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이대로라면 5분도 안 되어 3층까지 불길이 번질 것이 분명했다.“빨리! 빨리 사람들 좀 불러와요!”유공권은 손에 소화기를 들고 절박하게 외치며 불을 향해 계속 쏘고 있었다.그의 옷은 너덜너덜해졌고 온몸이 그을려 있었다. 이미 여기저기 피부가 화상을 입어 있었고 매우 처참해 보였다.“유 명의님, 사철수 아저씨는 어떻게 됐어요? 구해냈나요?”유진우는 급히 달려가 물었다.“사철수 씨는 아직 안에 있어요! 불이 너무 빨리 번져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불을 끌 수가 없어요. 이대로면 큰일입니다!”유공권은 얼굴에 불안과 공포가 가득했다.소화기는 이미 다 써버렸고 그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내가 가서 구해내겠습니다!”유진우는 더 이상 말없이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바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진우 씨, 미쳤어요?! 빨리 나와요! 그러다간 죽어요.”유공권은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유진우는 이미 불길 속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하늘을 보며 한탄했다.“이제 다 끝났어, 모든 게 끝이야!”“대박! 방금 누가 불 속으로 뛰어들었어? 저렇게 용감할 수가 있나?”“뭐? 네가 잘못 본 거 아니야? 이런 불길에 뛰어드는 사람이라니... 말이 안 돼!”“나도 봤어, 분명 한 사람이 뛰어들었어. 믿을 수 없군!”유진우의 목숨을 건 행동에 많은 구경꾼들은 충격을 받아 그만 물을 뿌리는 것도 잊어버렸다.불길은 점점 더 거세졌고 2층은
“쿵!”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유진우는 불길에 휩싸인 채로 높이 뛰어올라 바닥에 착지했다.그의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지면에는 몇 개의 균열이 생겼다.“휘익...” 바람이 불자 유진우의 몸에 붙어있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그의 피부 표면에서 희미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그 모습은 마치 신비롭고 환상적인 광경을 연상케 했다.“응?”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경험이 풍부한 소방대원조차 놀라움에 말을 잃었고 아무도 엄청난 불길 속에서 사람이 살아서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게다가 그는 3층 창문을 깨고 나왔고 불길 속에서 거의 무사히 나왔으니 말이다.이 용감하고도 무모한 행동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내가 잘못 본 건가? 방금 들어갔던 사람이 정말 살아서 나왔단 말이야?”“그뿐만 아니라 사람도 구해냈잖아.”“이 사람 도대체 누구야? 불에도 타지 않고... 이건 말도 안 돼!”잠시 침묵이 흐른 후, 현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모든 이들의 시선이 유진우에게 집중되었고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진우 씨? 진우 씨 정말 괜찮아요?”유공권은 놀라 어쩔 줄 몰랐다.“운이 좋았죠. 불길이 전부 타기 전에 제때 빠져나왔습니다.”유진우는 이렇게 말하며 품속에 있던 이불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이불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흰 연기가 피어오르긴 했지만 불에 타지는 않았다.이불을 펼치자 삐쩍 마른 사철수가 조용히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숨이 약간 가쁘기는 했지만 다행히 무사했다.“정말 다행이네요. 사철수 씨가 무사하다니!”유공권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감격에 목이 메었다.조금 전까지 유공권은 사철수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진우가 용감하게 불 속으로 뛰어들어 그를 구해냈다.유진우는 사철수의 상태를 점검한 후, 그를 차에 태우고 자리를 정돈했다.그러고 나서 유공권을 돌아보며 물었다.“유 명의님, 구세당이 이렇게 갑자기 불이 난 이유가 뭘까요?”“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잠깐
유공권은 평소에 가난한 이들에게는 진료비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그는 자신이 세상을 살아오며 하늘과 양심에 떳떳하고 구세당을 찾은 모든 환자들에게 진심을 다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자신이 평생 쌓아온 선행의 결과가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대반 생애의 노력과 정성이 한순간에 불타 없어진 것이었다.그는 깊은 절망과 회의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유 명의님, 비록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는 한 가지 의심이 듭니다.”유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누가요? 대체 누가 이렇게 악독한 짓을 했단 말이죠?”유공권은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송씨 가문이요.”유진우는 차갑게 두 글자를 내뱉었다.“송씨 가문이요?”유공권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비록 증거는 없었지만 유진우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구세당을 차지하기 위해 송씨 가문은 이전부터 온갖 협박과 회유를 사용해 왔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며칠 전에는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보낸 장용이라는 깡패도 송씨 가문과 관련이 있었다.만약 누군가가 불을 질렀다면 가장 의심이 가는 쪽은 송씨 가문이었다.“차지할 수 없다면 파괴한다... 송씨 가문 정말 악랄하네요.”유공권은 분노에 떨며 말했다.수십 년간 쌓아온 노력이 한순간에 파괴되었으니 그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그때, 하얀색 마세라티가 갑자기 도로 옆에 멈췄다.곧이어 조수석의 문이 열리며 송충이 먼저 나와서 뒷좌석 문을 공손히 열어 송영명과 안세리를 내리게 했다.이 순간에도 소방대원들은 여전히 물을 뿌리며 불을 끄고 있었고 주변에는 검은 연기와 먼지가 자욱했다.송영명은 햇빛을 가려주기 위해 안세리의 위로 우산을 펼쳤다.“어이! 여기 무슨 일이야? 왜 불이 난 거지?”송영명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며 일부러 놀란 척을 하며 곧이어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유 명의님, 정말 조심성이 없으시네요. 이거 보세요. 남쪽 구역에서 가장 유명한 의관이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지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
“뭐 하는 거예요?”타들어 가는 수표를 보던 안세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유진우가 그녀의 체면을 아예 무시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거절하면 그만이지, 수표를 태워버리기까지 했다. 그럼 안세리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이봐, 유진우, 이게 지금 무슨 뜻이야?”그 모습을 본 송영명이 언짢아하며 호통쳤다.“우리 세리가 너한테 돈을 주는 건 은혜를 베푸는 거야. 주제도 모르고 뭐 하는 짓이야?”“나한테 돈을 주면 그대로 받아야 해? 내가 뭐 거지인 줄 알아?”유진우가 코웃음을 쳤다.안씨 가문에 대한 인상이 정말 좋지 않았다. 어제 안세리가 이용한 일이든 오늘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일이든 사람은 겉만 보고 모른다는 게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다.“흥! 네 꼴을 봐봐. 거지랑 다를 게 뭐야?”송영명이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계속 더 함부로 지껄였다간 맞는 수가 있어.”유진우의 눈빛이 점점 싸늘해졌다.“너!”송영명이 화를 내려던 그때 안세리가 손을 들어 말렸다. 그러고는 물기를 머금은 듯 빛나는 눈빛으로 유진우를 조용하게 쳐다보았다.“진우 씨,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 우린 분명 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왜 자신한테 기회를 주지 않는 건데요?”“세리 씨 신분이 높아서 난 그럴 자격이 없다고 전에도 얘기했었죠? 친구는 됐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 친구라는 말을 들으니 더욱 귀에 거슬리는 것 같았다.“세리야, 저런 보잘것없는 자식을 신경 써서 뭐 해?”송영명이 고개를 내저었다.“그래요. 당신이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는 연락하지 맙시다.”안세리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고 눈빛도 점차 싸늘해졌다.안씨 가문의 딸인 그녀는 신분이 아주 귀했다. 평소 어딜 가든 아부하는 사람만 가득해서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안세리가 자세를 낮추고 유진우에게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이미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그런데 유진우는 그녀의 호의 따위 받질 않았고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명의님, 구세당을 파는 것 말고는 더 나은 선택이 없어요. 그리고 우리 말고 살 사람도 없고요.”안세리가 다정한 말투로 설득했다.남쪽 구역은 안씨 가문과 송씨 가문의 천하인데 그들의 동의가 없이 누가 감히 구세당을 이어받겠는가?“안 팔아요! 죽어도 안 팔아요! 내 구세당을 빼앗아갈 궁리 하지도 말아요!”유공권이 노발대발하면서 소리를 질렀다.반평생 동안 수많은 피와 땀을 흘리면서 일궈 세운 오늘날의 구세당이었다. 그런 구세당을 어찌 팔 수가 있겠는가? 그것도 이런 양심 없고 욕심만 가득한 인간에게 말이다.심지어 구세당이 이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돈 버는 기계가 되어 결국에는 명성이 완전히 바닥날 거라는 예상이 들었다.“팔지 않겠다고요?”송영명이 싸늘하게 웃었다.“명의님, 잘 생각하고 대답하는 게 좋을 겁니다. 우릴 거절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에요.”“난 이미 살 만큼 다 살았어요. 죽어도 여한이 없는데 당신들을 두려워하겠어요?”유공권의 두 눈에 핏발이 다 섰다.“명의님의 강직한 품성과 두려움 없는 용기는 참으로 존경해요. 근데 명의님은 괜찮아도 가족 생각은 하셔야죠. 명의님의 후손들이 걱정되지도 않으세요?”송영명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유공권은 마치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렸다.‘그래. 난 두려운 게 없고 죽는 것도 무섭지 않은데 우리 가족은 어떡해? 저 사람들 살인과 방화까지 서슴없이 저지르는데 뭔 일인들 못 하겠어?’“내가 기억하기로 명의님한테 아주 예쁜 손녀가 있던데... 앞날도 창창한 젊은 나이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얼마나 안타까워요. 안 그래요?”송영명이 웃을 듯 말 듯했다.털썩!그 순간 유공권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고 안색이 잿빛이 되었다.자신이 송영명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그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아무리 물러서지 않고 배짱이 있어도 명문가의 권력 앞에서는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이런 권력을 건드렸다간 목숨을 잃을 가능성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