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아직 완벽히 나으신 건 아닙니다.”유진우의 표정이 급격히 진지해졌다.“철수 삼촌 체내의 진기를 제거한 건 사실이지만 이미 몸의 기능이 많이 손상되었어요. 기경팔맥 역시 큰 부상을 입었고요. 지금은 거의 혼수상태나 다름없습니다. 철수 삼촌 깨어나려면 경맥을 다시 구축해 환골탈태의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경맥을 다시 구축하고 환골탈태까지?”유공권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전설속의 세골단뿐이야. 그런데 세골단은 이미 오래전 그 제작법이 대가 끊겨버렸지. 그런 물건을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세골단은 고대 서적에서나 볼 수 있는 성약으로 복용 시 환골탈태, 즉 환생에 가까운 효과를 이룰 수 있는 약이다. 경맥이 끊어졌든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자이든 세골단만 있으면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전해 내려오지만 유일한 문제라면 세골단은 워낙 희귀한 약이라 유공권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괜찮습니다. 제가 마침 세골단의 제조법을 확인했고 전부 외웠으니까요.”유진우가 불쑥 말했다.“뭐?”순간 유공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네... 네가 세골단 제조법을 알고 있다고?”“네. 전에 저희 집에는 고대 서적들이 아주 많았거든요. 어렸을 때 제조법을 보았고 지금까지도 똑똑히 기억합니다.”서경왕부의 장서각은 천하의 서적이 전부 모인 거대한 도서관과 같은 곳, 책 한 권, 한 권마다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유진우에게 그곳은 완벽한 놀이터나 마찬가지였고 한 번 보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능력자인 그는 그곳의 모든 책의 내용을 머리에 담은 상태였다.“세상에.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세골단 제조법까지 알 줄이야.”유공권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유일한 문제였던 제조법까지 해결되었으니 더 거리낄 게 없었다.“잠깐...”이때 무언가 떠올린 듯 유공권이 다시 입을 열었다.“제조법은 알고 있다지만 단약사는 어디서 찾을 거지? 세골단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단약사는 온 세상을
유공권의 질문에 오히려 유진우가 당황했다.못하는 거?무예, 의술, 단약술, 현술, 도가 비법, 남강의 독충술, 그 외에도 온갖 이상하고 다양한 스킬들까지 섭렵한 그가 못하는 건 정말 거의 없는 듯했다.“음... 제가 워낙 다양한 책들을 읽어서요. 이것저것 조금씩 아는 게 꽤 많습니다.”유진우가 겸손하게 대답했다.“조금씩?”유공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무예를 따지면 저 나이에 내공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천재 중의 천재이다.의술도 그렇다. 그가 10년 넘게 노력해도 해결하지 못했던 사철수의 진기를 제거한 것도 유진우다.게다가 최고의 명약이라고 부르는 세골단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최고의 단약사들만 가능한 일이다.그 어느 분야를 봐도 최고 중의 최고, 천재 중의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한데 이게 겨우 아는 정도라니.‘자네가 겨우 아는 정도면 이 세상 사람들 전부 바보 천치나 다름없겠어. 겸손이 지나치군.’“제가 단약술에 능한 건 맞지만 단약 제조에는 재료 또한 아주 중요합니다. 약재는 명의님께서 신경 써주시길 바랍니다.”“그래. 우리 구세당에 다른 건 몰라도 약재는 차고 넘치지.”유공권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세골단에 사용되는 약재는 워낙 희귀한 것들이라서요. 제가 바로 적어드리겠습니다.”유진우가 종이에 약재 이름들을 적어나가고 이를 확인한 유공권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적은 것 중 대부분은 구할 수 있겠지만 세 가지는... 워낙 희귀한 것이라 장담을 못 하겠네.”평생을 희귀한 약재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던 유공권도 난처하게 만들 정도의 귀한 약재니 난처할 따름이었다.“어느 세 가지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빙심연, 용혈삼, 금수옥. 이 세 가지 약재네.”유공권이 세 군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이것들 전부 최상품 약재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야. 우리 구세당은 물론이고 연경의 모든 병원과 약재고를 뒤져도 구하긴 힘들 걸세.”“명의님, 이 세 가지가 바로 가장 중요한 재료입니다. 대체할 수 있는 약재도
그런데 가족도 출입 금지인 이곳을 이제 갓 알게 된 젊은이에겐 허락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건...”유공권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쳐들어왔다고 얘기할 수도 없고 난처하네.’“철수 삼촌과 아는 사이입니다. 아저씨를 뵙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고요.”유진우가 핑계를 대자 유공권도 부랴부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분이 바로 철수님 조카란다. 조카가 삼촌 병문안 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조카요?”유진우를 훑어보던 유성신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할아버지, 저 사람 진짜 조카 맞아요? 아니, 이상하잖아요. 아저씨가 혼수상태에 빠진 게 벌써 10년째인데 갑자기 조카라는 사람이 나타난 거 말이에요.”“그런 소리하지 마. 진우 군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하지만...”유성신이 뭔가 더 말하려던 그때, 유공권이 손을 들며 그녀를 제지했다.“됐어. 할 얘기 있으면 다음에 다시 해. 그나저나 큰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아, 그게... 장용 그 사람이 또 왔어요. 전에 할아버지가 처방해 준 약을 먹었는데 낫긴커녕 증상이 더 심각해졌다고. 제대로 해명하지 않으면 구세당을 부숴버리겠다고 난리를 치네요.”유성신이 이를 빠득 갈았다.자초지종을 들은 유공권이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시간을 조금은 끌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이렇게 바로 찾아올 줄이야.”“그게... 우리 구세당이 워낙 목이 좋고 가게 규모가 크지 않나. 전에 한 의약회사가 우리 구세당을 인수하려고 했었는데 내가 몇 번을 거절했더니 그때부터 이렇게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는 이들이 생기고 있네.”유공권이 설명했다.“하, 갑질을 한다 이거군요.”유진우가 눈썹을 치켜세웠다.“경찰에 신고라도 하시지 그러셨어요.”“휴... 소용없어. 경찰이 들이닥치기 직전 전부 도망치는데다 설령 잡힌다 해도 다음엔 다른 사람들을 보내면 그만이야. 그리고 큰 세력이 뒤를 봐주고 있으니 체포된다 해도 며칠 만에 풀려나고 말이야.”유공권이 한숨을 쉬었다.평생 명의로 이름을 날렸지만 이런 문제
“장 어르신, 며칠 못 뵌 사이 화가 많이 나셨네요. 제가 탕약이라도 지어드려서 화를 좀 가라앉히게 할까요?”기척이 들리자 유공권이 유진우과 유성신을 데리고 천천히 내려왔다.그는 어지럽혀진 의원을 보며 약간 찡그렸지만 곧 표정을 되찾았다.“오! 유명의, 드디어 나왔구나. 난 또 네가 겁쟁이라서 나오지 않는 줄 알았지!”장용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 영감, 제가 감히 당신을 화나게 한 적이 있던가요? 여러 번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는 건 규칙에 어긋나는 거 아닙니까?” 유공권이 담담하게 말했다.“유명의,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이 구세당에 온 건 당연히 병을 보러 온 거지 뭐 별다른 이유가 있겠어? 내가 환자라는 사실이 불편한가?” 장용이 비웃으며 말했다.“장 어르신이 병을 보러 오신다면 저도 당연히 환영하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장 어르신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유공권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제 병 얘기나 해.”장용은 갑자기 옷을 열고 배에 있는 상처를 드러내며 거의 고름이 나올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부위를 가리켰다. “유명의, 지난번 당신이 약을 발라주면 금방 나을 거라고 했잖아. 지금 봐봐, 상처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졌다고. 이 책임을 어떻게 질 건가?”“장 어르신, 제가 드린 금창약은 외상을 치료하는 데 쓰는 약입니다. 상처가 악화될 리가 없으니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유공권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장용이 일부러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상처를 이렇게 만든 건 정말 대단한 수작이었다.“잘못? 상처는 당신이 싸매줬고 약도 당신네 의원에서 산거잖아. 지금 문제가 생겼는데 당신네 구세당이 발뺌하려고 하네? 그렇게는 안 되지!” 장용이 큰소리로 말했다.“장 어르신, 당신의 의도를 잘 알겠습니다. 이제 돌려 말하지 말고 바로 말하세요.” 유공권이 차갑게 말했다.“시원하군!”장용은 카운터에서 뛰
“장용! 당신이 감히 함부로 굴면 내가 신고해서 잡아넣을 겁니다!” 유성신이 겉으로만 강한 척하며 외쳤다.“신고? 하하하......”이 말을 듣자 장용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그의 뒤에 있던 여러 명의 부하들도 함께 웃으며 희롱하는 눈빛을 보냈다.그들이 남쪽 구역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데는 배경이 없을 리가 없었다.“유 아가씨, 정말 귀엽네요. 점점 더 마음에 들어요.”장용은 사과를 먹으면서 웃으며 다가갔다. “어떻게 신고할 건지 한 번 말해 봐요. 지금 피해자는 나예요. 당신네 구세당의 돌팔이 때문에 내 상처가 악화된 거잖아요. 순경이 오면 피해자인 나를 잡을까요, 아니면 당신네 구세당 사람들을 잡을까요?”“당신......” 유성신은 말문이 막혔다.장용이 일부러 트집을 잡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들에게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실질적인 증거가 없으니 억울하게 참아야만 했다.“장용, 당신 간도 크군요, 내 후배를 괴롭히다니?”이때, 잘생긴 남자가 갑자기 들어왔다.그는 양복을 입고 머리를 뒤로 넘긴 채 걸음걸이에서 귀족적인 기품이 느껴졌다.“대선배?”유성신은 그를 보자마자 눈이 반짝이며 기쁘게 맞이했다.“강청, 드디어 왔구나.”유공권도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그 사람은 바로 그의 대제자이자 남쪽 구역의 유씨 가문의 아들, 강청이었다!유씨 가문은 남쪽 구역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가로 영향력이 엄청났다.평범한 불량배들은 감히 덤비지도 못했다.“사부님, 후배, 괜찮으세요?” 강청은 좌우를 둘러보았다.“대선배, 우리는 괜찮아요. 하지만 이 장용이란 자식이 정말 나빠요. 여러 번 와서 소란을 피우고 우리 구세당을 망가뜨리겠다고 해요.” 유성신은 고자질을 시작했다.“오? 구세당을 망가뜨리겠다?”강청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매서운 눈길을 장용에게 보냈다. "장씨! 네가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없다고 구세당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누가 너한테 그런 용기를 줬냐?”“오! 유 도련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장용은 비웃으며 가볍게 주먹
연경에는 팔대 가문이 있는데 송씨 가문은 그 중 하나다. 백년 가문으로서 송씨 가문의 세력은 연경에서 뿌리가 깊고 배경이 매우 좋다. 특히 남쪽 구역에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이는 남쪽 구역의 지배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고 있었다! 남쪽 구역에서 송씨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존재는 같은 대가문인 왕씨 가문뿐이었다. 유씨 가문은 명문이긴 하지만 송씨 가문과 같은 대가문에 비하면 한 단계 낮은 수준이었다.그래서 송씨 가문의 이름을 듣고 나자 강청의 안색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의 거만한 태도는 완전히 사라지고 대신 두려움과 신중함이 나타났다.“유 도련님, 당신의 신분이 고귀한 건 알지만 어떤 일들은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송씨 가문이 화를 내면 결과가 아주 심각할 테니 스스로 잘 판단해 보세요.” 장용은 입을 벌리고 웃으며 말했다.구세당의 배경은 그가 이미 조사한 바 있었고 강력한 배경이 없었다면 감히 이렇게 함부로 굴지 못했을 것이다.“장용!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송씨 가문과 연관될 수 있겠어?” 강청이 단호하게 말했다.“송씨 가문은 공개적으로 움직이기 어렵고 평판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게 되는 거죠.” 장용은 비웃으며 말했다. “유 도련님, 하나 더 충고하자면 쓸데없이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건방지군! 네가 뭐라고 감히 나한테 그렇게 말하느냐?” 강청은 체면이 상한 듯 말했다.“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송씨 가문은 다르죠. 만약 당신이 끝까지 나서려 한다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장용이 차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흥! 네가 송씨 가문을 들먹이면 내가 겁을 먹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연경은 법이 있는 곳이고 송씨 가문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 강청이 겉으로는 강하게 말했다.구세당의 모든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명문가로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정말인가? 송씨 가문은 할 수 없고 유씨 가문은 할 수 있단 말인가?”
“송 집사님, 제가 송씨 가문을 모욕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건달이 구세당에서 난동을 부리니 제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청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송충은 비록 송씨 가문의 집사에 불과하지만 그의 뒤에는 송씨 가문의 도련님 송영명이 있었다. 정말 어쩔 수 없을 때까지는 송영명과 대립하고 싶지 않았다.“난동? 내가 보기에는 구세당이 손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 같은데?” 송충은 턱을 들고 그의 검은 점에 난 몇 가닥의 털을 만지며 말했다. “장용의 말에 따르면, 구세당의 무능한 의사가 그의 병을 더 악화시켰고 그는 정의를 찾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저는 그게 당연하다고 봅니다.”“맞습니다, 맞아요...” 장용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불평을 시작했다. “송 집사님, 구세당이 이리 무례해서 제 목숨을 반쯤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인정하지도 않고 오히려 제가 난동을 부린다고 말합니다. 제발 저를 위해 정의를 찾아주세요!”“말도 안 돼! 당신은 분명히 여기서 행패를 부리는 거야!” 유성신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이렇게 뻔뻔스러운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명백히 사람을 속이면서도 피해자인 척했다.“행패? 내 배에 있는 상처가 증거야!” 장용은 다시 한 번 옷을 걷어 올려 거의 썩어가는 상처를 드러냈다.“유 도련님, 보셨습니까? 장용이 구세당의 무능한 의사에게 이렇게 당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그들의 편을 들겁니까?” 송충은 불쾌한 어조로 경고했다.“겨우 상처 하나 때문에 보상해주면 그만이지. 얼마면 되겠어요?” 강청은 물었다.이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돈을 더 쓰는 것도 상관없었다.“보상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돈은 필요 없습니다.” 장용은 고개를 저으며 구세당의 간판을 가리켰다. “내 요구는 간단해요. 구세당을 내게 넘기면 이 일은 끝납니다.”“헛소리! 너의 그 작은 상처로 구세당 전체를 넘기라고? 꿈도 꾸지 마!” 강청이 소리쳤다.“유 도련님, 이 작은 상처가 내 목숨을 앗아갈 뻔했어. 내 목숨 하나로 구
“응?”갑작스러운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유진우에게로 쏠렸다.“이봐! 넌 어디서 굴러 들어왔냐? 여긴 네가 말할 자리가 아니야.” 장용의 눈빛이 불쾌해졌다.“나는 구세당에 새로 온 의사야.” 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네가 말했지? 네 상처를 치료하면 보상은 필요 없다고. 그래서 내가 한번 해보려고.”“해보려고? 너 따위가?” 장용은 비웃으며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상황 파악도 못하고 설치는 풋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봐! 당신이 뭔 상관이에요? 우리 할아버지가 아직 말도 안 했는데 당신이 나서서 명령을 해요?” 유성신의 얼굴이 차가워졌다.그녀는 화를 낼 데가 없었고 이제 마침내 분노를 터뜨릴 대상을 찾았다.“구세당을 보상으로 내놓기 싫다면 상처를 치료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요.” 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흥!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해? 당신이 치료할 수 있다고요?” 유성신은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시골에서 온 돌팔이 의사가 어떻게 구세당에서 나서서 뽐낼 수 있단 말인가?“이봐, 새로온 의사, 너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방해하지 마!” 강청이 소리쳤다.유진우의 나이로 보아 구세당에서 견습생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이런 자리에서 말할 자격도 없었다.“왜요? 당신들이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요?” 유진우가 반문했다.“나...” 유성신은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옆에 있던 강청도 눈살을 찌푸리며 유진우를 불쾌하게 쳐다보았다.견습생 따위가 그의 말을 반박하다니? 참으로 대담한 녀석이었다!“이봐, 나는 당신의 용기를 높이 평가해요. 하지만 당신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예요. 동의할지 말지는 유명의가 결정할 일입니다.” 장용은 차갑게 미소를 지으며 유공권을 바라봤다.“유명의, 시간을 끌지 말고 결정을 해. 상처를 치료할 건가? 아니면 보상할 건가?” 송충이 재촉하기 시작했다.“이건...” 유공권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난감해졌다.현재 상황은 정말 어려웠다.송
“네 말은 누군가 4대 제후가 동시에 반란을 일으키게 조종하고 있단 말이야?”이의진이 얼굴을 찌푸렸다.“맞아요.”유천우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지금 서경에서 4대 제후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죠.”“유태범!”이의진은 깊게 고민하지도 않고 말했다.“작은아버지는 야심이 크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에요. 4대 제후의 손을 빌려서 우리가 병부를 내놓게 압박하고 있는 거예요.”유천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분석했다.“만약 우리가 따르지 않는다면 4대 제후는 반란을 일으켜 우리가 군대를 동원하게 압박한 다음 유태범이 중간에서 방해하면서 우리한테 불리하게 할 겁니다. 우리가 반란을 진압하는 데 실패하면 서경왕부의 위엄이 크게 손상될 거예요. 그러다가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해질 때 구세주처럼 나타나서 백성들을 구하고 4대 제후를 제압할 계획인 거죠. 그때가 되면 유태범은 만인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왕이 될 겁니다.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듯이 유태범이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되면 새로운 서경왕이 되겠죠. 아주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웠네요.”유천우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심각해졌다. 유태범이 꾸민 건 음모가 아니라 공공연한 모의였다. 하지만 상대가 나쁜 짓을 꾸미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해결하기 어려웠다. 이게 바로 공공연한 모의의 무서운 점이다.“그렇다면 유태범이 진작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네.”이의진이 얼굴을 찌푸렸다.“지금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거야. 군대를 동원할 수도 없고 설득도 불가능하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해?”“나머지 4대 제후와 아버지의 옛 부하들과 손을 잡아야만 유태범과 겨룰 수 있을 겁니다.”유천우가 대답했다.“일리 있어.”이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나머지 4대 제후를 모셔오도록 할게. 같이 모여서 상의하는 게 좋겠어.”“어머니, 제가 직접 갈게요. 그래야 성의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죠.”유천우가 직접 나섰다. 나머지 4대 제후
“형, 난 진짜 안 돼요.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은 형밖에 없어요.”유천우의 얼굴에 조급한 기색이 드러났다.“됐어. 왕위 얘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 안팎으로 불안이 끊이지 않아. 일단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야.”유진우가 화제를 돌렸다.“형이 나서서 이끌어준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난 지금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어.”그러자 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유태범 일당이 아직 내가 서경으로 돌아온 걸 모르고 있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어. 내가 돌아온 걸 몰라야 유태범이 무슨 꿍꿍이라도 꾸민다면 제때 해결할 수 있지. 그리고 호룡각의 잔당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어. 기회를 봐서 싹 다 일망타진할 거야.”“그런 거였군요.”유천우는 그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알겠어요. 그럼 서경왕부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일은 나한테 맡기고 형은 보이지 않는 음모들을 해결해주세요.”“그래. 그렇게 하자.”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아 참. 그리고 이거.”유천우는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금색 영패 하나를 꺼내 유진우에게 건넸다.“이건 내 군령이에요. 이것만 있으면 내 결사대원 800명을 동원할 수 있고 필요한 순간에 꽤 도움이 될 겁니다.”그의 결사대원 800명은 모두 엄선해서 뽑은 고수들이었다.유천우가 태어난 순간부터 이의진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몰래 그들을 훈련시키면서 힘을 비축했다.20년이 지난 지금 결사대원 800명은 무서울 정도로 성장했다.“알았어. 영패는 일단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돌려줄게.”유진우도 거절하진 않았다.지금 이청성의 도움을 받고 있긴 했지만 호룡각의 잔당들에 비하면 아직 역부족이었다. 이젠 유천우의 결사대원 800명이 더해졌으니 싸울 힘이 생겼다.“천우야!”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조금 전 나갔던 이의진이 다시 다급하게 빈소로 들어왔다. 유진우는 재빨리 가면을 쓰고 근위병인 척 옆에 섰다.유천우와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었던 건 형제끼리의 믿음 때문이
“형?”유천우는 인피 가면을 벗은 남자를 보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이내 기쁨에 겨워했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서경왕부에 위장 잠입한 유장혁이었다.“많이 컸구나, 천우야. 이젠 혼자서도 일을 척척 해내고.”유진우는 배다른 동생 유천우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사실 조금 전 유천우와 이의진의 얘기를 전부 다 들었다. 유천우가 자신을 믿어준 것에 대해 무척이나 고마웠다. 물론 이의진이 걱정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지금까지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형제끼리 물고 뜯고 부자끼리 서로 죽이는 걸 수두룩하게 봐왔다. 자기 아들을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형, 서경에는 언제 왔어요?”유천우가 물었다.“이틀 정도 됐어.”유진우가 대답했다.“아버지 돌아가신 거 알았어요?”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유진우는 빈소의 영정사진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부자는 1년 전 강능에서 만났다. 그런데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다시 만났을 때 유진우는 빈소에 서 있었고 유만수는 관 속에 누워있었다.‘이건 뭐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유진우는 관 앞으로 걸어가 반쯤 열린 관뚜껑 사이로 그 안에 누워있는 유만수를 보았다. 얼굴이 평온한 걸 보니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았다.하지만 어찌 된 건지 그렇게 미워했던 유만수의 얼굴을 본 순간 슬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내가 만약 서경에 빨리 돌아왔더라면, 빨리 만났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왜?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유진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형, 사실 최근 2년 사이 아버지 건강이 점점 나빠져서 특효약으로 연명하셨어요. 의사는 아버지가 천인오쇠라고 하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어요. 천천히 쇠약해져서 죽는 것보다 이 결과가 아버지한테는 오히려 해방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어요.”유천우가 울먹거리며 말했다.“범인은 잡았어?”유진우가 돌아서서 물었다.“홍복홍이 지금 조사하고 있어요.”유천우가 대답했다.“서경왕부에 숨은 스파
그래야만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라도 지킬 수 있다.지금 왕위를 이어받을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은 표기 대장군 유태범밖에 없었다.첫째로 유태범은 유씨 가문 사람이라 왕족에 속했기에 명분이 정당했다. 둘째로 표기 대장군으로서 서경의 절반에 달하는 군대를 거느리고 있어 권력이 하늘을 찔렀다. 셋째로 유태범은 오랜 시간 동안 힘을 키워왔다. 인맥, 위신, 공로 모두 왕위에 오르기에 충분했다.현재 유태범이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적지 않은 관원들은 애도를 표한 후 바로 대장군 저택으로 가서 유태범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었다.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히 서경왕부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의진은 그들을 제압할 힘이 없었다.“어머니, 벌써 종일 여기 계셨어요. 들어가서 쉬세요. 이러다가 몸이 상하실까 걱정됩니다.”수심과 피곤이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을 본 유천우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어찌 편히 쉴 수 있겠어.”이의진이 고개를 내저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더 조심해야죠. 서경왕부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왕비인 어머니가 버티셔야 합니다. 절대 쓰러져선 안 돼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이의진은 뭐라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유천우가 가로챘다.“어머니, 이번에는 제 말을 들어주세요. 먼저 들어가서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아버지 곁을 지켜도 괜찮아요.”이의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천우는 도우미 두 명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너희 둘, 어머니를 방으로 모시고 잘 보살펴드려.”“알겠습니다.”두 도우미는 대답한 후 이의진을 부축했다. 무릎을 하도 오랜 시간 꿇고 있어 다리가 저린 나머지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천우야, 너도 몸 잘 챙겨. 절대 방심해선 안 돼.”이의진이 당부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유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나가는 걸 본 후에야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다들 돌아가. 여긴 나 혼자 지키면
그 시각 서경왕부 문 앞.유태범 등 3인은 한 무리의 근위병들을 이끌고 서둘러 걸어 나왔다.서경왕부를 떠난 후 조군영이 참다못해 물었다.“대장군님, 이의진 모자가 주제도 모르고 저렇게 날뛰는데 계속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합니까?”“당연히 내버려 둘 순 없지. 하지만 너무 대놓고 움직여서도 안 돼. 흑용군의 대부분 고급 장교들이 서경왕부에 충성해서 정말 싸우기라도 한다면 우리한테 좋을 게 없어.”유태범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조군영이 또 물었다.“대놓고 움직일 수 없다면 몰래 압력을 가해야지.”유태범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서경에 내란이 일어서 서경왕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진정한 리더가 누구인지 알게 될 거야.”“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이간질시킬게요. 백성들의 원한이 커져서 서경왕부도 감당이 안 될 때 대장군님이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겁니다. 그때가 되면 서경의 백성들은 대장군님께 고마워할 것이고 새로운 서경왕으로 모시겠죠.”눈치가 참 빠른 조군영이었다.“맞아. 아주 영특하구나, 너. 나중에 내가 서경왕 자리에 앉으면 표기 대장군 자리는 네 것이 될 거야.”유태범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대장군님.”조군영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얼른 움직여. 빠를수록 좋아. 절대 그 어떤 흔적도 남겨선 안 된다는 거 명심해.”유태범이 신신당부했다.“알겠습니다. 제가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조군영은 인사를 올린 후 자리를 떠났다.“대장군님, 일반적인 내란이라면 서경왕부의 뿌리를 흔드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반드시 강력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고원이 귀띔했다.“그건 나도 알고 있어.”유태범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동안 난 내 사람을 몰래 키워왔어. 8대 제후 중에 절반이 내 사람이야. 내 명령 한마디면 주저하지 않고 날 도와줄 거야.”“진작 준비하고 계셨군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고원이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서경왕이 되면 절대 섭섭지 않게 해줄게.”
“유태범은 오랫동안 야심을 숨겨왔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이 기회에 무조건 권력을 빼앗으려고 할 겁니다. 이 일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요.”유천우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맞아. 대놓고 움직이진 못해도 뒤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할 거야. 앞으로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해.”이의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위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절대 함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형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유천우가 한탄하듯 말했다.“천우야, 네 능력도 네 형 못지않아. 네 형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이의진이 그를 격려했다.“어머니, 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어요. 형님에 비하면 한참 부족합니다.”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이의진이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 장례식이 끝난 후에 폐하께 말씀드려서 너한테 왕위를 물려주게 할 거야. 앞으로 서경왕은 너고 그 중책을 맡아야 해.”“어머니, 왕위는 형 거예요. 전 그 자리를 물려받을 생각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서경왕은 형만이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고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천우야, 다른 일은 남한테 양보해도 이건 절대 안 돼!”이의진이 어두운 목소리로 호통쳤다.“그 자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꿈에 그리는 자리인지 알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거라고!”“전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저한테 있어서 권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아버지처럼 매일 애쓰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왕이 되면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걱정거리만 태산일 텐데. 그럴 바엔 맨날 먹고 놀면서 편히 살겠어. 그게 더 좋은 거 아닌가?’“이 녀석아, 일이 네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전에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건 다 네 아버지가 있어서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금 아무 권력도 손에 쥐지 않는다면 나중에 아주 처참한 결말을 맞이할 거란
“유장혁?”그 소리에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때 유씨 가문의 천재는 이름을 널리 떨쳤었다. 그런데 10년 전 자금성의 난이 터진 후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고 현재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런 그의 이름을 갑자기 들으니 놀랄 만도 했다.“도련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세자 전하의 생사도 불투명한 데다가 어디 있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그런 분한테 서경왕의 자리를 맡긴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 아닌가요?”조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두 손까지 펼쳐 보였다.“그러게요, 도련님. 제발 현실을 잘 알고 말씀하세요. 세자 전하께 기댈 바엔 차라리 대장군님께 기대는 게 더 낫죠.”고원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유천우가 자기 자신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실종된 지 10년이나 된 사람을 얘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얘기는 없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형도 꼭 돌아올 겁니다. 그때 가서 형이 왕위를 이어받아도 문제없죠.”유천우가 싸늘하게 말했다.“도련님, 제가 하는 말이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세자 전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면 어떡해요? 서경왕의 자리를 계속 비워둘 작정인가요?”조군영이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형님 죽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조 장군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유천우가 말했다.“살아있다면 지금 어디 계시는 거죠? 왜 나타나지 않는 겁니까?”조군영은 일부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형님한테 소식을 전했으니 꼭 올 겁니다.”유천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설마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니죠?”조군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위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퍼지면 서경 전체가 크게 흔들릴 거예요.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고요. 지금 당장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도 나서서 유천우를 설득했다.“형한테 자리를 물려주는 건 아버지의 유언이에요. 지금 명령을 거역하겠단 겁니까?”
사람들이 뒤돌아보니 거친 삼베옷을 입고 상복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차가운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남자는 위엄이 넘쳤고 온몸에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빈 조군영과 고원마저도 그를 보자마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표정이 진지해졌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유만수의 작은 아들 유천우였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유천우는 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여 예전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도 많이 저질렀었고 서경의 사고뭉치라 불리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2년 동안 유천우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더는 빈둥빈둥 놀지 않고 군에 들어가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처음에 사람들은 유천우가 군대에서 3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도련님이 군대의 혹독한 훈련을 버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런데 뜻밖에도 유천우는 군대에서 자리를 잡았고 공까지 세웠다.짧은 2년 사이에 병사에서 흑용군의 부장으로 성장했다. 든든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놀라운 성과였다.사람들은 그제야 유천우가 응석받이로 자란 도련님이 아니라 군사 천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천우야, 드디어 온 거야?”아들을 보자마자 이의진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 저도 모르게 밀려왔다.“어머니, 소식 다 들었어요.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유천우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군영과 고원에게 시선을 옮겼다.“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몰아붙이는 겁니까?”“그게...”조군영은 고원의 눈치를 슬쩍 봤다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도련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도 대국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현재 서경왕부에 리더가 없어서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많은 문제가 생길 거예요.”“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은 충성을 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대국?”유천우는 코웃음을 치고는 더는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
“서경 대원수의 직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부 투표를 거칠 뿐만 아니라 폐하께 보고하여 최종적으로는 폐하의 결정을 받아야 해요.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어요.” 이의진의 눈빛이 경계로 가득했다.유태범이 왔을 때 그녀는 처음에는 형제 간의 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군영과 고원의 몇 마디 말에 그녀는 갑자기 깨달았다.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유태범은 흑용군에서 유만수 다음가는 위망을 가지고 있었다.표기대장군으로서 그는 많은 심복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반의 병권도 장악하고 있었다.왕이 세상을 떠난 후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유태범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유태범이 지금 이미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다는 점이다.왕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권력을 탈취하려 하다니, 그녀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유만수의 죽음이 이 자들과 호룡각 잔당들이 암묵적으로 결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만약 유태범이 병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할 것이다.“마마, 급할 때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찌 폐하의 결정을 기다릴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빨리 국면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조군영이 계속해서 말했다.“맞습니다!”고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장수가 밖에 있으면 군령도 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폐하는 상황을 전혀 모르니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그래야만 소인배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폐하에게 보고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내부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승복할 수 있어요.”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투표라니요? 이게 투표할 일입니까? 전 서경을 둘러봐도 대장군님보다 원수 자리에 더 적합한 분이 누가 있습니까?” 조군영이 말했다.“그렇습니다, 왕비마마! 공적으로 보나, 위망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어르신을 제외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