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의는 운이 참 잘 따라주네. 하필이면 안 아가씨의 목숨을 구해주다니, 정말 귀인을 만난 거와 다름없어.”그 천만 원짜리 수표를 보면서 어르신과 아주머니들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이 돈은 그들이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기엔 충분했다.“빌어먹을!”전기훈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이 횡재는 본래 그의 것이어야 하는데 뜻밖에 나타난 유진우에게 먼저 빼앗겼다.현재의 밑바닥에서 위층으로 뛰어들 수 있는 기회를 이 녀석이 전부 망쳤다.“고맙네요.”유진우는 사양하지 않고 수표를 받았다.그는 돈을 위해 사람을 구하는 건 아니지만 남이 주는 돈 또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유신의, 난 아직 볼일이 남았으니 다음에 또 만납시다.”“기억해 두세요, 무슨 일이 있거든 안씨 가문에 저를 찾아오십시오.”안세리는 작별 인사를 건네고는 빠른 걸음으로 이곳을 떠났다.방금 강에서 건져내어 이미지 손상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서둘러 돌아가 빗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야!”호위무사는 갑자기 전기훈을 부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너 좀 전에 유신의가 세 침만으로 우리 아가씨를 살릴 수 있다면 바닥에 있는 걸 전부 먹는다고 말했었지? 이제 먹어도 돼.”“네?”땅 위의 토사물을 바라보며 전기훈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이것들은 모두 위에서 토해낸 것으로 징그럽고 끈적끈적했으며 죽은 물고기도 한 마리 들어있었다.이걸 먹는다고? 어떻게?“어서!”호위무사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고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온몸을 감쌌다.그의 뒤로 몇 명의 호위무사가 앞으로 나서서 전기훈을 호시탐탐 노리며 언제든 출동할 준비가 되어있었다.전기훈이 감히 안 먹겠다는 말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모두에게 한 대 얻어맞았을 것이다.“먹... 먹을게요...”전기훈은 어쩔 수 없이 울상을 지으며 바닥에 있는 토사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치웠다.그는 몇 번이나 속이 메스껍고 구역질이 나 토할 뻔했지만 결국 억지로 삼켰다.안 그러면 자신이 토
“유명의? 유명의께서 오셨다고?”유공권이 들어 온 것을 본 사람들이 단번에 우르르 몰려들자, 유진우는 졸지에 반대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유진우가 조금 전 보여준 실력도 당연히 좋았으나, 유공권에 비하면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필경 유공권은 세간에 떨친 명망도 있을뿐더러 오랜 시간 민심도 깊이 얻어왔기 때문이다.그 지위는 누구도 흔들 수 없을 것이다.“유명의! 드디어 와 주셨군요, 구세당이 하마터면 큰 봉변을 볼 뻔했습니다!”“그래요, 그래요! 방금 사람이 죽는 줄 알았다니깐요, 신의 님이 도와주셔서 다행히 구 세당의 간판은 지켰네요!”“유명의, 저 신의님이 설마 새로 들인 제자는 아니겠죠?”“……”어르신과 아주머니들의 열정 가득한 목소리가 가십의 본색을 충분히 보여줬다.시끌벅적한 상황에 갓 문을 열고 들어온 유공권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여러분, 침착하십시오…… 침착하십시오……”유공권이 손을 내리누르며, 뭇사람들이 차차 조용해지는 것을 보고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천천히 말해 주시죠, 급한 것 없습니다.”“저요, 제가 말하죠! 이래 봬도 예전엔 저기 다리 밑에서 이야기꾼을 해왔었다니까요! ”한 어르신이 자처해 방금 일어 난 일을 구구절절 과장을 보태어 연설 해댔다.유진우가 어떻게 사람을 구했는지, 죽어 가던 사람이 어떻게 기사회생했는지, 어떤 수로 구세당을 구했는지 줄줄이 영웅담을 늘어놓았다.어찌나 생동하고 흥미진진한지, 주위에 서 있던 아주머니들이 연달아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 어르신을 보는 시선에도 존경의 눈빛이 역력했다.이런 입담으로는 곧바로 먼저 짝을 지을 선택권이 주어질 게 분명했다.“그런 일이 있었군요.”다 듣고 난 유공권은 홀연히 머리를 끄덕이고는 유진우의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 “젊은이, 도와줘서 고맙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 정도의 의술을 갖고 있다니, 영웅이 따로 없군 그래.“유명의, 과찬입니다. 한참 모자란 실력일 뿐입니다.” 유진우가 겸손히 말했다
“아니 할아버지, 왜 또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들인 거예요?” 유성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스레 말했다.“성신아, 그게 무슨 예의냐!”유공권이 얼굴을 굳혔다. “이 젊은 청년은 방금 우리 구세당을 구한 은혜로운 분이다. 차라도 대접하는 게 도리지 않겠냐.”“저자가 뭘 도우면 뭘 도왔다고 그래요?” 유성신은 유진우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 듯 되물었다.“우리 성심당에서 의료사고가 날뻔했다. 이 청년이 도와줬기에 망정이지, 간판을 뜯어 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유공권이 엄격한 투로 말했다. 혹시나 안씨 가문 아가씨가 구세당에서 죽기라도 했으면 간판을 뜯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 뻔했다.“할아버지, 농담도 정도껏 하세요. 저희 구세당에 의사가 얼마나 많은데 어떤 병인들 못 고친다고 바깥사람이 돕는다고 하시는 거예요?” 유성신은 전혀 믿을 생각이 없었다. 구세당은 명성이 자자해 큰 병원에서 보낸 환자를 치료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유진우의 나이가 고작 얼마나 된다고 천하의 구세당의 의사보다 더 실력이 좋단 말인가?“성신아,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다. 유진우는 나이는 어리나 의술만은 절대 너에게 지지 않을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유공권이 말했다.“매번 같은 말만 하시잖아요. 됐어요, 두 분이 대화하세요, 전 방에 돌아갈게요.”유성신은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유진우를 곁눈으로 훑고 방으로 돌아갔다.“청년, 내가 손녀를 평소 곱게 키우다 보니 예절을 잘 모르는 것 같네. 이해해 주게나.” 유공권은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괜찮습니다. 아가씨가 솔직한 것이지요.” 유진우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 이리 앉아서 말하게.”유공권은 안내한 자리에 유진우가 앉는 것을 확인하고는 차를 따랐다. “그래 청년, 나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인가?”구세당에 오는 사람은 두 종류밖에 없었다. 하나는 병을 보이러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승을 모셔 의술을 배우러 오는 것이다.그는 내심 상대가 후자이기를 기대하고 있었
유공권은 2층 문을 걸어 잠그고 제 자리에서 배회하다 결국엔 3층으로 올라갔다.3층은 이미 철저하게 봉인되어 있었다. 철제문이요, 방범 문이요, 감시카메라, 경보기, 없는 것이 없었다.그 철통같은 방어는 가히 파리 한 마리도 들어갈 구멍이 없다고 해도 좋았다.몇 겹의 자물쇠를 열고나서야 유공권은 3층에 올라설 수 있었다.3층은 아주 어두웠다. 대부분의 방에는 사람의 눈을 속일 잡동사니들이 놓여있었다. 유독 가장 안쪽에 있는 방만은 정갈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그와 같은 시각, 방안의 병상에는 한 빼빼 마른 중년 남성이 누워있었다.남자는 이미 정신을 잃은 지 오래였고, 호흡은 미약했다. 숨을 쉬어도 몸에 거의 기복이 없을 만큼 쇠약해, 마치 이미 죽은 시체와도 같았다.유공권은 남자의 침대 곁으로 와 습관적으로 맥을 짚어 보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하……이제 10년이야. 자네는 대체 언제 눈을 뜰 수 있는 건가?”“명의 유공권의 이름을 갖고서도, 자네의 병을 고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유공권은 연신 머리를 저었다. 그리고 단약을 하나 꺼내 남자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 모습은 불쌍하기 그지없었다.그는 장장 10년을 사철수를 보살펴왔다.10년 동안, 셀 수 없는 고서를 찾아 읽고,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시도해 봤으나 시종 사철수를 깨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목숨만 간신히 이어가는 것이었다.“은인, 전할 말이 있소.”“오늘 유진우라는 젊은이가 자네를 찾아왔다오. 하지만 그 속을 다 알 수 없어 다시 돌려보냈다네.”“그 젊은이가 쉬운 인물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네. 혹시 그자가 원수 집안이라면 우리는 좋게 넘어지지 못할걸세.”“그자가 수소문해서 이곳까지 찾아냈다면 필연 철저히 준비가 되어있었을 터.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구세당도 당신을 감출 수 없을지도 모르오.”“은인이여…… 내 말이 들린다면 제발 빨리 눈을 떠주시오.”유공권은 한편으로는 사철수의 몸을 안마하며, 다른 한편으
유공권은 여전히 흉흉한 눈으로 유진우를 노려보았다. 그의 표정에서 일말의 실마리를 찾아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러나 그는 어떠한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경계하는 말투로 물었다. “내가 왜 자네를 믿어야 하지?”“유명의, 제가 만약 복수를 하러 온 것이라면, 당신 둘을 처리하는 건 먼지 털듯 수월했을 겁니다.”유진우가 말하는 새에 손가락 사이로 튕긴 원기가 폭발하듯 뿜어나갔다.찰나에, 창가에 둔 꽃병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어엇?”유공권은 눈꺼풀을 꿈적하더니 차츰 얼굴을 굳혔다.원기만으로 손끝 하나 대지 않은 채 꽃병을 부수다니, 무도의 고수일게, 분명하다.혹여나 살인할 마음이 있었다면, 그의 힘으로는 확실히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그러니 지금 그에게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었다.“유명의, 실례가 많았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유진우가 다시 한번 공수했다.“좋다! 자네가 은혜를 갚으러 왔다는 건 한번 믿어보겠어. 하지만 이미 늦었다네.”유공권은 자리를 비켜 병상위의 사철수를 바라보았다. “사철수는 10년 전에 이미 불구가 되어 여태 한 번도 일어나지 못했다네. 수없는 방법을 써봤지만, 아무런 쓸모도 없었어.”“유명의, 제게 기회를 주십쇼. 저는 몇 가지 기문 의술을 쓸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유진우가 병상 앞에 섰다.“자네가?”유공권은 머리를 저었다. “젊은이, 내가 자네를 무시하는 게 아닐세. 사철수의 병은 절대 자네가 생각하는 만큼 쉬운 일이 아니네. 그자의 몸에는 강력한 원기가 도사리고 있어, 여태 풀어낼 수 없었지. 약 끊음으로 간신히 목숨만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오.”10년 전, 사철수는 심한 상처를 입어 원기를 크게 다쳤다. 그탓에 신체기능은 거의 전멸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아무리 애를 써서 목숨을 이어간다 한들, 병의 근원을 처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제일 큰 관건은 사철수의 몸 안에는 하나의 무시무시한 원기가 끊임없이 그의 칠경팔맥을 파괴하고 있
“번거롭긴 하지만 정말 치료할 수 있습니다.”유진우가 진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유명의 도움이 필요합니다.”“청년, 자네가 이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내 이 구세당을 팔아도 문제없어!”유공권은 말하다 말고 화제를 돌렸다. “한데 대체 어떻게 자네가 이 실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단 말인가?”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 당연 허투루 모험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자신의 은인을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젊은이에게 맡길 수는 더더욱 없었다.“명의께서 사 아저씨의 몸속에 원기가 도사리고 있다고 하셨죠. 만일 제가 그 원기를 소멸시키면 증명이 될 수 있겠습니까?” 유진우가 되물었다.“흠?”유공권은 두 눈을 부릅뜨고 엄숙히 말했다. “청년, 이 원기는 독한 패기가 가득 차서 웬만한 의술로는 해결할 수가 없어. 여기서 헛된 말 늘어놓지 말게.”‘이 원기가 그렇게 간단히 풀릴 수 있다면 지금껏 해결 못 할 리가 있나?’“평범한 의술로는 당연히 해결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의술뿐만이 아닙니다. 현술도 있죠!”유진우는 당당히 덧보탰다. “유명의, 제게 반 시간만 주십쇼. 기필코 이 원기를 소멸시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그……”유공권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했다.솔직히 그는 유진우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다.하나는 상대가 하도 젊었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목적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다.심지어 눈앞의 사람이 선한지 악한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유명의, 당신이 사 아저씨가 장장 10년을 버텨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리라 믿습니다. 이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은 없을 겁니다. 만일 따로 방도가 없다면, 제게 한번 맡겨 보시죠.” 유진우가 설득했다.그 말을 들은 유공권은 침묵을 금할 수 없었다.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철수는 이미 극한의 상태이다. 그조차도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석 달? 다섯 달? 어쩌면 더 짧을지도 모른다.이대로 방치하고만 있으면 신선이 온다고 해도 살릴 수 없을 것이다.짤막
이와 동시에 체내의 현청진기가 빠르게 모여 조금씩 사철수의 경맥에 흘러들기 시작했다.“쿵... 쿵... 쿵...”사철수의 심장이 빠르게 뜀과 동시에 거센 진기가 순식간에 용솟음치며 유진우의 현청진기를 덮쳤다.두 진기가 서로 부딪히는 순간, 사철수는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듯 몸을 움찔거렸지만 유진우는 살짝 미간을 찌푸릴 뿐 바로 현청진기를 컨트롤하며 사철수와 대결하기 시작했다.멸혼탈백진이 만들어낸 진기는 굉장히 강력하며 마치 맹수처럼 주위의 모든 침입자들을 잠식할 수 있는 존재였다.사철수의 안전을 위해 유진우는 정면 맞대결이 아닌 공격을 흘려보내는 방식을 택했다.끊임없이 자신의 진기를 전송하여 멸혼탈백진의 진기를 소모하는 방식이었다. 진법의 진기가 전부 소모되고 더 이상 실행이 될 수 없게 되는 순간 진법은 파괴될 것이다.시간은 천천히 흘러가고 유진우는 정신을 집중한 채 끊임없이 사철수의 체내에 진기를 불어넣었다.어느새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샘솟고 안색도 확연히 창백해졌다. 에너지 소모가 워낙 커서였다.평소였다면 이렇게까지 큰 힘을 들이지 않았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사철수의 안위, 그렇기에 멸혼탈백진의 진기 하나하나를 두 배의 진기를 들여 파괴해야 했다.“쿵, 쿵, 쿵...”두 진기가 부딪히며 사철수의 심장은 더 빨리 뛰기 시작했고 얼굴이 새빨개진 건 물론 온몸이 뜨거워졌다. 체온이 어찌나 올라갔는지 정수리 위로 흰 김이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유공권은 초조했지만 행여나 유진우에게 방해가 될까 숨을 죽이고 바라볼 뿐이었다.“하, 성가시네...”어느새 유진우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체내의 진기가 전부 사라지는 게 느껴지며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멸혼탈백진을 파괴하기 전에 진기가 먼저 사라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재앙이니까 말이다.“우웅.”유진우가 불안해하던 그 순간, 항상 하고 다니던 천영 구슬이 빠르게 돌아가더니 거대한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유진우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가뭄의 단비와 같은 지원에
“펑!”유진우의 손가락이 사철수의 가슴에 닿는 순간, 사철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온몸을 격렬하게 떨더니 코와 입에서 검붉은 피를 쏟아냈다.체내의 경맥 중 절반이 파괴되어 가뜩이나 엉망인 몸이 한순간 더 허약해졌고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버렸다.하지만 다행인 건 그동안 그를 괴롭혀왔던 멸혼탈백진 역시 그 순간 파괴되었다는 사실이었다.“은인님!”깜짝 놀란 유공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부랴부랴 달려간 그는 사철수에게 아직 숨이 붙어있는 걸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유진우, 그러게 내가 무리하지 말라니까! 왜 사람 말을 안 들어! 너 때문에 은인님이 돌아가실 뻔한 건 알아?”다급해진 유공권은 바로 욕설부터 내뱉었다.한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쉬는 유진우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빠진 모습이었다. 탈진한 듯 한참을 가만히 있던 그는 한참 뒤에야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대답했다.“상황이 제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마지막에 모험을 하긴 했지만 다행히 성공했어요. 철수 삼촌 체내에 있는 진기를 전부 풀어냈습니다.”“풀어냈다고?”이에 흠칫하던 유공권이 사철수의 맥을 짚어보았다.비록 약하긴 했지만 더 이상 맥에서는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정말 성공했다고? 그럴 리가.”유공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10년 동안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음에도 해결되지 않았던 증상을 이제 겨우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해결해 내다니.‘정말 천재라 이건가...?’침을 꿀꺽 삼킨 유공권은 혹시 자신이 착각한 건가 싶어 몇 번을 더 확인해 보았지만 유진우 덕분에 강력한 진기가 제거된 건 물론 사철수를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던 고통 역시 와해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자존심이 상하는 것과는 별개로 현술 분야에선 유진우가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남을 유공권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능력을 가졌다니. 천재가 따로 없구나.’“정말 신기한 치료방법이었어. 존경스럽군. 스스로가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 은인님을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