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은설은 유진우가 이토록 막무가내이고 쩍하면 주먹을 쓰는 사람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전에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 믿었었는데 지금 보니 사람을 잘못 봐도 너무나 잘못 봤다. 악인을 여태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니...그 순간 남궁은설은 유진우가 더욱 미웠고 원망스러웠다.“은설 씨, 장난친 거니까 너무 긴장해 하지 말아요. 저 사람들이 먼저 날 건드리지 않는 이상 난 절대 어쩌지 않아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흥! 방금 그게 어딜 봐서 장난이야? 은설이가 막지 않았더라면 진작 손을 썼겠지.”유연지가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유진우, 싸움 좀 한다고 함부로 해도 되는 줄 알아? 여긴 장군 저택이야. 소란 피워도 되는 곳이 아니라고!”한솔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누군가 날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어쩌지 않아. 하지만 건드리면 절대 가만 안 둬. 충고니까 명심해.”유진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은설아, 저 자식 완전히 미쳤어. 그냥 내쫓아버리는 건 어때? 안 그러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유연지가 또다시 부추기기 시작했다.“맞아!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고 했어. 오늘은 장군님 생신이라 귀한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저놈이 소란이라도 피우면 남궁 가문의 체면이 뭐가 돼?”한솔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은설아, 저 자식을 내쫓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좋은 선택이야.”나머지 몇몇도 남궁은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유진우 씨, 여기 당신 반기는 사람 없으니까 나가 주세요.”남궁은설은 이를 꽉 깨물고 결국 내쫓았다.친구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유진우가 여기서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면 생일 연회를 망쳐버리게 된다.“날 내쫓겠다는 건가요?”유진우는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자신을 비웃듯 웃었다.“은설 씨, 저 사람들도 손님이고 나도 손님이에요. 고작 몇 마디 말 듣고 날 내쫓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그는 줄곧 남궁은설을 여동생이라 생각했기에 오해를 받아도 그 어떤 원망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사이가 틀어져서 친구로 남
“믿지 마, 은설아.”상황이 다르게 돌아가려 하자 유연지가 다시 나서서 이간질했다.“널 구했다는 둥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둥 다 거짓말이야. 유진우는 처음부터 다른 목적을 가지고 너한테 접근했어. 다 네 호감을 얻으려고 일부러 꾸민 계획이라고. 지금까지 한 행동들 전부 가짜야. 그러니까 절대 믿지 마!”“맞아. 저 자식은 다른 속내가 있어. 좋은 놈이 아니라고. 항상 경계해야 해!”한솔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그들의 말에 남궁은설은 조금 전까지 생겨났던 미안함이 순식간에 다시 사라졌다.‘그래, 날 도와준 건 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은혜도 아니지. 어젯밤에 진짜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나 혼자 속고 있었을 거야. 유진우는 날 속였으니까 미안해할 필요도, 고마워할 필요도, 마음 약해질 필요도 없어.’그 생각에 남궁은설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다시 유진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다신 진우 씨 보고 싶지 않으니까 당장 나가세요!”“당신...”장 어르신이 화내려 하자 유진우가 말렸다. 유진우의 두 눈에 실망과 차가움이 짙어졌다.“은설 씨 지금 날 엄청 미워하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더는 알짱거리지 않고 이만 가볼게요.”그러고는 바로 돌아서서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남궁은설이 내쫓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은 것 같은데 뻔뻔스럽게 버티고 있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남궁을용의 생일은 마음만 전해주면 되었다.“흥, 진작 꺼졌어야지. 재수 없어!”유연지가 싫은 티를 팍팍 냈다.“지금 당장 가주님께 알려서 유진우가 나가면 잡아들이라고 해.”한솔은 바로 옆에 있는 부하에게 분부했다. 파티를 망쳐서는 안 되지만 유진우를 가만히 두겠다는 뜻도 아니었다. 남궁 가문의 도련님을 때렸으니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지.“장군님 오셨습니다.”유진우가 연회장을 나가던 그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백발이 성성하고 체격이 우람한 남궁을용이 한 무리 사람들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왔다.그가
“인마, 죽으려고 찾아왔어?”남궁보성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매섭게 째려보았다.“재밌네... 아주 재밌어.”사람들 속에 있던 서문천명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어젯밤 일 때문에 밤새워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유진우가 직접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말 겁도 없는 녀석이었다.“하하... 저 자식 인제 죽었어. 장군님께 걸렸으니 도망치고 싶어도 못 도망칠 거야.”한솔이 흉악스럽게 웃었다.“쌤통이야, 아주! 진작 꺼졌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쓸데없이 눈앞에서 알짱거리더니 꼴좋다. 저게 바로 죽음을 자초한다는 거지.”유연지는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고소해했다. 그들은 남궁을용이 손자가 얻어맞은 사실을 알게 되어 공개적으로 복수할 거라고 생각했다.“장군님, 마음은 전했으니 전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유진우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인사했다.“거기 서!”그 모습에 한솔이 갑자기 튀어나와 앞을 막으면서 호통쳤다.“인마, 장군 저택이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그런 곳인 줄 알아?”그러면서 남궁을용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자신을 어필할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 되었다. 만약 장군에게 잘 보인다면 앞으로 출세할지도 모르니까. 유진우도 제압하고 장군에게도 잘 보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그 생각에 한솔은 자신의 영리함과 관찰력에 스스로 감탄했다.‘난 정말 대단해.’“뭐야?”갑자기 튀어나온 한솔을 보고 남궁을용은 멈칫했다.‘이 자식은 또 어디서 튀어나왔어? 뭐 하자는 거야?’“아까는 날 내쫓더니 또 가지 말라고? 대체 무슨 뜻이야?”유진우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흥, 시끄러워!”한솔이 무섭게 몰아붙였다.“장군님의 눈앞에서 알짱거린 것도 모자라 사람들의 기분을 더럽혀놓고 그냥 가려고? 꿈 깨!”“맞아. 네가 나쁜 마음을 품고 장군 저택에 들어왔다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어. 다행히 장군님께서 예리한 안목으로 너의 정체를 알아봤지. 오늘 넌 어디도 도망 못 가.”유연지가 또박또박 말했다.유진
“네?”갑작스러운 따귀에 한솔과 유연지는 어안이 벙벙했다. 두 사람은 얼굴을 움켜쥐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소란 피운 건 유진우인데 우릴 왜 때려?’그 시각 남궁 가문 사람들과 하객들도 전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줄곧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장군이 많은 사람 앞에서 게다가 생일날에 누군가를 때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장... 장군님, 사람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저 자식은 죄인이에요. 다른 나쁜 짓 못 하게 잡아들여야 한다고요.”한솔이 설명하려 했다.“네, 장군님. 저 자식이 어젯밤에 진혁 도련님도 다치게 했다고요. 극악무도한 놈을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유연지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그녀는 남궁을용이 앞뒤 진실을 몰라서 제지한 줄 알았다.“닥쳐!”남궁을용이 눈을 부릅뜨자 엄청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유진우 씨는 내 손녀 목숨을 구한 남궁 가문의 은인이야. 그리고 내 귀한 손님이고. 한 번만 더 헛소리 지껄였다간 싹 다 내쫓는 수가 있어!”그의 말에 한솔과 유연지는 순간 얼어붙어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장군 저택에서 쫓겨나면 그들이 봉변당하는 건 물론이고 그들 가족도 전부 영향받게 된다. 심지어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남궁을용에게 밉보이면서까지 그들과 왕래하려는 가문은 없을 테니까.“할아버지...”보다 못한 남궁은설이 일어서서 뭐라 하려는데 남궁무원이 가로챘다.“아버지, 오늘 생신이신데 화내시면 어떡해요. 일단 화부터 푸세요.”남궁은설을 막은 건 지금 이 순간 사실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궁을용이 이렇게까지 얘기한 이상 이유가 뭐든 남궁 가문은 반드시 따라야 했고 절대 어겨서는 안 되었다. 특히 많은 하객 앞에서 남궁을용의 권위를 절대 도발해서는 안 되었다.“흥!”남궁을용은 두 사람을 싸늘하게 째려보고는 유진우에게 시선을 돌렸다.“진우 씨, 자리로 가자. 오늘 누가 또 불만 있나 지켜보겠어.”그러고는 유진우의 손을 잡고 귀빈석으로 걸어갔다. 귀빈석은 남궁 가문의 핵심 인물이
현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금주 총사령관이 장군님 생신 축하드리러 왔습니다. 한없는 복을 누리시고 만수무강하십시오!”“진강시 이 시장이 장군님 생신 축하드리러 왔습니다. 원기 왕성하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하동 그룹 회장이 장군님 생신 축하드리러 왔습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부하의 외침과 함께 화려한 옷차림의 거물들이 연이어 도착했다. 대권을 손에 쥔 총사령관, 한 도시를 관리하는 시장, 그리고 재벌뿐만이 아니라 각계 거물도 모두 참석했다. 그들이 준비해온 선물도 전부 아주 귀한 보물들이었다.“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 자,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가주 남궁무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객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남궁을용은 웃음으로 사람들의 인사에 답했다.“셋째 도련님 오셨습니다.”그때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람들은 소리를 따라 약속이나 한 듯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얀 옷차림에 얼굴이 준수한 한 중년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고 그의 뒤로 망토를 걸친 두 사람이 따라왔다.“어머, 장군님의 막내아들 남궁해수 아니야?”“남궁해수가 가족들이랑 갈등이 있고 난 뒤로 몇 년 동안 소식이 끊겼다던데 오늘 갑자기 돌아왔네.”“아들로서 아버지 생신 축하하러 오는 건 당연한 거지.”걸어들어오는 중년 남자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남궁을용에게 아들 셋이 있는데 바로 첫째 남궁무원, 둘째 남궁보성, 셋째 남궁해수였다. 세 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건 남궁해수였다. 용감무쌍하고 머리도 총명하여 신임을 받았고 심지어 후계자로 직접 거명되기도 했다.그런데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남궁해수는 권력을 포기하고 가출했다. 그렇게 족히 5년이나 종적을 감추다가 오늘에서야 모습을 드러냈다.“해수?”그의 얼굴을 본 남궁무원이 화색이 도는 얼굴로 재빨리 맞이했다.“해수야, 이게 얼마 만이야. 드디어 돌아왔구나.”그러면서 남궁해수를 꽉 껴안았다.“큰형,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남궁해수가 히죽 웃
냉랭한 한마디에 남궁무원과 남궁보성의 얼굴에 지어졌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들은 막냇동생이 가장 예쁨받고 중시를 받는다고 생각했다.‘해수가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기뻐해야 정상 아닌가? 왜 되레 정색하시지? 5년이나 지났는데 부자간에 풀지 못할 오해가 뭐가 있다고.’“아버지, 전에는 제가 철이 없었고 어리석었어요.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남궁해수는 말하면서 허리 숙여 인사했다.“그동안 생각 많이 했어요. 잘못했어요, 아버지. 부디 넓은 마음으로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될까요?”“뭐?”남궁을용은 놀란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그의 막내아들은 늘 고집이 셌고 절대 남에게 허리를 굽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나타나 사과를 하다니, 확실히 철이 든 듯싶었다.“아버지, 지나간 건 다 지나갔잖아요. 해수도 잘못을 뉘우쳤으니까 그만 용서하세요.”남궁무원이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그래요, 아버지. 그때 일 다 오해잖아요. 가족끼리 화목하게 지내면 풀지 못할 게 없어요.”남궁보성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남궁해수의 예의 바른 모습에 남궁을용의 표정도 드디어 사그라들었고 손을 내저었다.“됐어,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어. 일단 자리에 앉아.”“고맙습니다, 아버지.”남궁해수는 다시 한번 허리 굽혀 인사했다.“해수야, 이리 와서 앉아.”남궁무원은 아주 친절하게 남궁해수를 끌고 자리에 앉았다. 그는 예전부터 막냇동생을 예뻐했었다. 오랜만에 만나 그런지 더욱 기분이 좋았다.남궁 가문의 다른 핵심 인물들도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그들은 남궁을용이 내려놓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남궁해수가 가출한 일이었다. 하여 5년 동안 아무도 남궁을용 앞에서 남궁해수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이젠 남궁해수가 돌아와 먼저 사과를 건넸으니 그때의 오해도 다 풀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늘부로 남궁 가문은 더욱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시간이 흐르자 명성과 지위가 높은 분들이 또 많이 찾아왔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경호원 두
그런데 선물 박스를 열어보던 남궁을용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박스 안에 귀한 물건이나 성의가 담긴 물건은 없었고 흰 천이 담겨있었다.“준비했다던 선물이 이거야?”남궁을용이 눈살을 찌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물었다.“왜요? 마음에 안 드세요?”남궁해수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여전히 굽신거렸다.“마음에 안 드냐고?”남궁을용의 표정이 확 굳어지더니 선물 박스를 그대로 바닥에 던지면서 호통쳤다.“네가 뭘 선물했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봐.”콰당!선물 박스가 깨지면서 안에 담겨있던 흰 천이 드러났다.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사람들은 순간 멍해졌다.“어떻게 된 거야? 생신에 흰 천을 선물했다는 건 무슨 뜻이야?”“저건 그냥 흰 천이 아니고 목을 맬 때 쓰는 백릉이야.”“뭐? 백릉? 말도 안 돼. 저걸 왜...”“이러니까 장군님께서 화나셨지. 누구라도 절대 못 참았을 거야. 남궁해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랬대?”“...”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조금 전까지 뜨거워졌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랭해졌다.“해수야, 이걸 왜 준비했어? 잘못 가져온 거 아니야?”남궁무원이 눈살을 찌푸렸다.“해수야, 당장 치워. 남들이 보면 웃어.”남궁보성이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 생일에 이런 불길한 물건을 선물하는 건 잘못되기를 바란다는 건가?“제가 준비한 선물 마음에 안 드시나 봐요.”남궁해수는 주변의 이상한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백릉을 주워 먼지를 툭툭 털면서 웃었다.“이 백릉은 저희 아내가 썼던 물건입니다. 족히 5년 동안 버리지 않고 간직했어요. 언젠가 아버지께 드리려고요...”그의 말에 현장이 떠들썩해졌다. 특히 남궁 가문 가족들의 표정이 급변했고 두려움에 떨었다.그해 그 일은 알게 모르게 금기가 되어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꺼내지 못했다.남궁해수가 과거를 잊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 돌아온 줄 알았는데 그 일을 다시 꺼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해수야,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푹!살을 파고드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남궁해수의 이 공격은 아무런 조짐도 없이 남궁무원의 가슴을 그대로 찔렀다. 시뻘건 피가 칼끝을 따라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으악...”남궁무원은 넋이 나간 얼굴로 가슴팍을 찌른 칼을 내려다보았다. 늘 중요시하고 예뻐했던 막냇동생이 자신을 찌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아주 과감하고 잔인하게.그 순간 모든 사람이 충격에 빠졌다. 조금 전까지 점잖고 미소를 잃지 않던 남궁해수가 갑자기 친형에게 칼을 휘두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전에는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린 거라고 설명해도 되었지만 이젠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너... 너 감히...”남궁무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뭔가 얘기하고 싶었지만 시뻘건 피를 잔뜩 토했다. 결국 몸을 비틀거리면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형, 긴장할 거 없어. 심장 비껴가서 당장은 죽지 않으니까 얌전히 누워있어. 알짱거리지 말고.”남궁해수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 끝에 묻은 피를 닦았다. 마치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한 듯 차분하기 그지없었다.“짐승만도 못한 놈! 간덩이가 부었구나!”그때 남궁을용이 노발대발했다.“좋은 말로 타이르는 네 형을 찔러?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여봐라, 저 불효자식을 잡아들여!”“네!”남궁을용의 명이 떨어지자 한 무리 무장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남궁해수는 전혀 겁이라곤 없는 얼굴로 손수건을 바닥에 던졌다.곧이어 벽 쪽에 두 줄로 섰던 경호원들이 동시에 움직였는데 하나같이 맹호처럼 달려들었다. 실력이 아주 뛰어났고 속도도 빨랐다. 게다가 진작 예상이라도 한 듯 움직이자마자 압도적이었다. 방금 들어온 무장 병사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바닥에 줄줄이 쓰러졌고 반항할 기회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대반전이 일어났다.“뭐야?”갑작스러운 상황에 남궁을용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연회장 안에 자객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왔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다시 말해 이 자리에 있는 일부 하객들이 매수당했다는 뜻이었다.“해수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