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분노에 찬 고함과 함께 한 무리 정장 차림의 엘리트 경호원들이 손에 방망이를 들고 호탕하게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다들 뭐 하는 사람들이야? 감히 제멋대로 감방에 쳐들어와? 반란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거야?!”서태영이 으름장을 놓았다.그는 지금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유진우를 빨리 아작내야 했으니 감히 막아서는 자는 그의 원수나 다름없다!“서 경장, 카리스마가 넘치네요!”한 무리 사람들이 흩어지자 화끈한 몸매의 절세미인이 당찬 표정으로 기세등등하게 걸어들어왔다.“조선미 씨?”서태영은 그녀를 보더니 분노가 살짝 사그라들며 굳은 표정으로 변했다.“유진우, 너 운 좋은 줄 알아. 네 여자친구가 지금 널 구해주러 왔네?!”위풍당당한 조선미를 보자 이청아가 살짝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기쁘면서도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들었다.같은 여자로서 자랑스럽지만 그녀는 조선미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다만 문제는 지금 조선미만이 유진우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선미 씨, 이 늦은 시간에 뭣 하러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데려왔어요? 이거 대체 무슨 뜻이죠?”서태영은 조선미 일행이 더는 다가오지 못하게 앞을 가로막았다.“흥! 무슨 낯짝으로 그걸 내게 물어요? 이유 불문하고 사람을 마구 체포하는 게 당신들 감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에요?”조선미가 코웃음 치며 쏘아붙였다.“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네요.”서태영이 모른 척하며 시치미를 떼기 시작했다.“그래요? 좋아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당장 유진우 씨 풀어요. 난 오늘 진우 씨 데리러 왔어요. 얼른 안 풀면 나 무슨 짓 할지 몰라요!”조선미가 날카롭게 말했다.“풀다니요? 이 사람은 죄질이 엄중하고 명백한 증거까지 있는데 선미 씨가 풀라고 하면 풀어줘야 하나요? 이 세상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예요? 법이 있긴 있어요?”서태영이 당당하게 말했다.좀 전에 유진우에게 얻어맞아 바지에 똥오줌을 지렸기에 그 원한을 삼킬 수 없었다.하여 조선미의 심기를 건
1까지 센 후 안병서는 두말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펑!”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총알이 서태영의 귀를 뚫었다.“으악!”서태영은 비명을 지르며 피가 철철 흐르는 귀를 감싸고 연신 뒷걸음질 쳤다. 그는 쉴 새 없이 입을 나불거렸다.“드디어 미쳤어! 진짜 총을 쏘다니?!”그는 안병서가 단지 겁주는 거라고 여겼는데 진짜 총을 쏠 줄이야!“다음엔 귀로 끝나지 않을 거야.”안병서는 총구를 움직이며 차갑게 말했다.“마지막으로 물을게. 풀어줄 거야 말 거야?!”“너, 너 정말...”서태영은 식겁하여 몸을 벌벌 떨었다.안병서가 충동적으로 진짜 그를 쏴죽일까 봐 너무 두려웠다.서태영이 풀어줄지 말지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문 앞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곧이어 백발의 노인이 경호팀 한 팀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걸어들어왔다.“황상수?!”순간 감방 전체가 고요한 정적에 빠졌다.눈앞의 이 노인은 이 도시의 오너이자 강능에서 공식인정한 최고 대표이다!만인이 우러러보는 진정한 빅 보스이다!“하하, 황상수 씨 왔네. 유진우! 넌 이제 끝장이야! 선미 씨랑 안 회장을 움직일 수 있으면 뭐해? 황상수 씨가 계신 한 오늘은 아무도 널 못 구해!”황상수가 나타나자 전에 겁에 질려있던 우현이 불쑥 미친 듯이 웃어댔다.마치 구세주라도 본 것처럼 말이다.조선미와 안병서가 그에게 준 압력이 너무 커서 오늘 밤에 과로사로 죽을 줄 알았다.다행히 황상수가 제때 도착하여 그의 뒷배가 되어줄 것 같았다.“안 회장! 저 자식 때문에 날 때리고 총까지 겨눠?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군! 인제 우리 장인어른이 왔으니 당신 어떻게 설명할지 지켜보겠어!”서태영이 사악한 미소를 날리며 표독스럽게 말했다.‘다들 방금 미쳐 날뛰었잖아? 이 도시의 오너가 왔어. 계속 날뛰어봐!’“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야! 하필이면 이때 나타나?!”조선미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상수는 장내를 휩쓸어버릴 실력을 지녔다.조선미와 안병서가 힘을 합쳐도 그에게 살짝 뒤처진다.가장 중요한
“망했어... 이젠 끝장이야!”서태영이 체포되자 우현은 벼락을 맞은 듯 사색이 되었다.황상수의 등장부터 서태영의 체포까지 모든 게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너무 갑작스러운 나머지 그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단 하나 명확한 건 황상수가 인정사정없이 사위까지 체포했다는 사실이다.동아줄로 여겼던 장인어른이 순식간에 목숨을 위협하는 악마가 돼버렸다.세상사 한 치 앞도 헤아릴 수가 없다!우현은 넋 놓고 있다가 고개 돌려 무덤덤한 표정의 유진우를 힐긋 쳐다봤다.처음부터 끝까지 유진우는 이 모든 걸 짐작이라도 한 듯 줄곧 덤덤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자식, 대체 정체가 뭐야? 황상수까지 이토록 겁에 질리게 하다니? 안도균, 너 대체 무슨 괴물을 건드린 거냐고?!’“그리고 이 사람들도 싹 다 체포해!”황상수의 명령 하에 우현 일행도 전부 체포됐다.함께 역경을 물리쳤던 두 친구는 후회가 밀려와 눈만 멀뚱거렸다.오늘 본인들이 끝장났다는 걸 체감한 듯싶었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갑자기 판이 뒤바뀌자 조선미도 어안이 벙벙했다.황상수가 나타났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일이 번거로워질 거로 여겼다.그런데 정작 황상수는 유진우를 난처하게 굴지 않았을뿐더러 도리어 서태영을 체포하다니...가족도 전혀 봐주지 않는 그의 행동이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나 잘못 본 거 아니지? 황상수 씨가... 우릴 돕고 있어?!”이청아도 못 믿겠다는 듯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황상수와 서태영의 관계를 알게 된 후 그녀는 내심 불안했다.심지어 본인과 유진우가 함께 끝장날 거로 여겼다.그런데 정작 결과는 입이 쩍 벌어지게 했다.설마 황상수가 이토록 정의롭고 청렴한 관직자란 말인가?“자네가 바로 유진우인가? 역시 듣던 대로 인물이 출중하군.”모든 걸 해결한 황상수가 유진우의 앞으로 걸어갔다.근엄한 얼굴에 드디어 한줄기 미소가 드러났다.“처음 뵙겠습니다, 황상수 씨.”유진우가 고개를 살짝 수그렸다.“오늘 일은 실로 미안하게 됐네. 다
그 시각, 모 정원의 별장 안에서.안도균이 한창 화려한 옷차림의 젊은 남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그 남자의 뒤엔 도복을 입은 여자 호위 두 명이 서 있었다.여자 호위는 허리에 장검을 차고 늠름하게 서 있었는데 아무도 선뜻 다가가지 못할 아우라를 내뿜었다.“도균 씨가 말한 우금환이 그렇게 대단해요?”화려한 옷차림의 남자가 커피잔을 들고 먼저 질문을 건넸다.“그렇다니까요, 경준 씨.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아주 대단해요.”안도균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얼마 전에 갑자기 내상을 입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우금환 한 알을 먹고 죽을 고비에서 살아났어요. 만병을 치료하는 알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말로만 들어선 짐작이 안 가네요. 물건 어디 있어요? 일단 한번 볼게요.”화려한 남자가 서서히 손을 내밀었다.“우금환이 워낙 진귀하다 보니 저에게 아직 재고가 없어요.”“재고도 없으면서 한밤중에 왜 날 이리로 불렀어요? 지금 날 놀려요?!”진경준이 싸늘하게 말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경준 씨, 제가 어찌 감히 경준 씨를 놀리겠어요! 걱정 마세요. 제가 이미 사람을 보내서 약 처방을 구해오라고 했으니 곧 있으면 도착할 겁니다.”안도균이 웃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감히 현무문을 농락했다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는 본인이 더 잘 아실 거예요!”진경준이 으름장을 놓았다.“당연하죠. 약 처방만 얻으면 제가 바로 제작해서 첫 번째로 생산된 우금환을 전부 경준 씨에게 드릴게요.”안도균이 웃으며 아양을 떨었다.“그래요, 역시 일 처사가 깔끔하네요.”진경준이 흡족한 듯 머리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돌아가서 아버지한테 안도균 씨에 관한 미담을 몇 마디 해야겠어요. 혹시 알아요? 아버지가 기쁜 마음에 도균 씨를 높은 자리에 올리실지!”“고마워요, 경준 씨!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게요!”안도균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전에 그는 직접 조사에 나섰는데 우금환이 내상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무사의 수련에도 엄청난 도움을 준다고 했다.이 약재는
“안도균, 당장 나와!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그의 고함이 천둥처럼 정원 상공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이제 막 문 앞에 다다른 안도균이 그의 목소리를 듣더니 울화가 치밀었다.“어떤 바보가 감히 내 저택에서 설쳐대?!”안도균이 씩씩거리며 걸어 나오더니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유진우를 보자 살짝 놀란 듯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너였어... 너 이 녀석 이미 체포된 거 아니야? 어떻게 또 도망쳐 나왔지?”안도균이 서태영을 매수하여 유진우를 감방에 처넣었다.제아무리 조선미가 지켜준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유진우가 탈출해 나올 수가 없다.“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운 거 너 맞지?”유진우가 차갑게 물었다.“여기까지 찾아왔으니 이미 답이 정해진 거 아니야?”안도균이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내가 그렇게 했어! 그러게 누가 너더러 눈치 없이 굴래? 이미 기회를 많이 줬는데 네가 소중히 여기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이런 하책을 댈 수밖에 없지!”“그래, 인정하면 된 거야.”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네게 속죄할 시간을 줄게. 스스로 두 팔을 자르고 강능에서 썩 꺼져. 영원히 돌아오지 마. 그렇게 하면 나도 더는 캐묻지 않을게.”“스스로 두 팔을 잘라? 강능에서 꺼져?”안도균은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박장대소했다.“야 이 자식아! 너 약 잘못 먹었어?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이딴 식으로 말을 뱉어? 조선미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네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그는 아마도 유진우가 조선미의 도움을 받고 감방에서 나온 거로 여기는 듯싶었다.“그럼 내 제안을 거부하는 거네?”유진우가 싸늘하게 되물었다.“이 새끼가!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돼? 네가 제멋대로 우리 집에 쳐들어왔어. 지금 널 죽여도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해! 물론, 내가 워낙 인자하다 보니 네게 살 기회를 한 번 줄게. 우금환의 처방을 내놓는다면 네 목숨을 한 번 살려줄 거야.”안도균이 실눈을 뜨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안도균은 충격과 공포에 빠져 순간 식은땀이 쫙 났다.그는 무려 내공이 절정에 치닫는 고수라 검을 한번 휘두르면 천근 무게의 거대한 파워가 생성된다!대체 누가 손가락으로 그의 검을 절단한단 말인가?유진우는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내가 누군지는 진작 알고 있었잖아!”유진우가 서서히 다가오며 싸늘하게 말을 내뱉었다.“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야!”안도균이 당황해하며 연신 뒷걸음질을 쳤다.“우금환 처방은 됐어. 이번 일은 서로 한발 물러서!”“난 이미 기회를 줬어. 네가 헛되이 한 거지. 인제 와서 후회해? 이미 늦었어!”유진우는 갑자기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가 양손으로 그의 어깨를 힘껏 짓눌렀다.철컥철컥, 소리가 두 번 울리자 안도균의 두 팔이 전부 부러졌다.“으악!”극심한 고통에 안도균은 저도 몰래 비명을 질렀다.하지만 비명을 미처 지르지도 못한 채 유진우가 또다시 그의 복부에 주먹을 한 방 휘둘렀다.에너지가 폭발하며 안도균의 단전이 그대로 파열됐고 그의 입에서 선홍빛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안도균은 바닥에 쓰러진 채 꿈쩍하지 않았다.“네가... 감히 내 무공을 폐기해?!”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고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됐다.“안 회장 체면을 봐서 널 살려둘게. 그렇다고 온전히 살아갈 생각은 하지 마. 넌 내 손아귀에서 못 벗어나!”유진우는 코웃음 치며 안도균의 옷깃을 확 잡더니 뒤로 힘껏 내팽개쳤다.안도균의 몸덩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대문에 쾅 하고 부딪혔다.이때 대문이 서서히 열렸다.안병서가 사람들을 거느리고 차가운 얼굴로 안에 들어왔다.“병서 형! 나 좀 살려줘요! 제발요!”피를 토하던 안도균은 한 무리 사람들을 보더니 구세주라도 찾은 듯 애원하기 시작했다.“살려줘? 널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해!”안병서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요행으로 목숨 한 번 건졌다고 생각하지 마. 남은 수십 년 동안 넌 블랙 프리즌에서 지내야 할 거야. 오늘의 네 행위를 평생 속죄하며 살아!”“블랙 프리즌이라니?”안도균의
유진우의 신분을 알게 된 안도균은 온몸에 힘이 풀렸다.그는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두 눈에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본인은 이미 끝장났다는 걸 철저히 깨달았다.아무도 그를 구해줄 수 없고 또 감히 그럴 수도 없다.“이 녀석 끌어내.”안병서의 명령 하에 부하들이 안도균을 꽁꽁 묶어 차에 실었다.비록 진실을 알게 됐지만 안도균은 여전히 평생 블랙 프리즌에 갇혀 있어야 한다.그곳에서 나갈 방법은 단 하나, 죽은 뒤 사람들에게 들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뿐이다.“멈춰! 다들 뭐 하는 거야? 당장 안도균 씨를 내려놔!”이때 진경준이 두 명의 여자 호위를 데리고 기세등등하게 걸어 나왔다.실은 참견하고 싶지 않았지만 안도균의 실력이 너무 볼품없었다!싸움에서 졌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잡혀가기까지 하다니, 참다못한 진경준이 그제야 입을 열고 이 상황을 말렸다.안도균이 폐인인 건 맞지만 아직 조금이나마 이용 가치가 남아있다.우금환을 손에 넣기 전까지 안도균에게 일말의 사고도 일어나선 안 된다.“상관없는 사람은 참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안병서가 차갑게 경고장을 날렸다.“내가 한사코 참견하겠다면 어쩔 건데?!”진경준이 두 손을 옷 주머니에 넣고 거만을 떨며 앞으로 다가왔다.“넌 도균의 부하야?”유진우가 담담하게 물었다.“부하? 나 참... 걔가 내 따까리겠지!”진경준이 머리를 쳐들고 오만한 표정으로 답했다.“다만 개를 패더라도 주인이 누군지는 알아야지. 내 허락도 없이 누가 감히 안도균을 데려가래? 나 화내기 전에 얼른 안도균 풀어!”“내가 싫다면?”유진우가 되물었다.“싫어? 하하... 이 새끼가!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아냐고? 감히 나한테 이딴 식으로 말을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진경준이 능멸에 가까운 눈빛으로 말을 쏘아붙였다.“네가 누군지는 내 알 바 아니고, 관심도 없어. 안도균은 오늘 아무도 못 구해. 그러니까 너도 화를 자초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유진우가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이
그 시각, 이씨 일가의 별장 안에서.이청아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청아야! 너 드디어 왔구나. 엄마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누나! 괜찮아? 안에서 뭐 나쁜 짓 당하진 않았어?”장경화, 이현 일행이 그녀에게 안부를 물으며 잔뜩 흥분해 있었다.이청아가 서태영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알게 된 이후로 그들은 줄곧 두려워하며 딸아이가 걱정됐다. 이청아가 봉변이라도 당했을까 봐 마음을 졸였다.하여 갖은 인맥을 동원하고 돈도 가득 건넸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다들 불안하고 초조해할 때 뜻밖에도 이청아가 스스로 집에 돌아왔다.“엄마, 나 괜찮아요. 걱정 끼쳐드려서 미안해요.”이청아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녀는 오늘 많이 놀라긴 했지만 다행히 무사하게 집에 돌아왔다.“이게 다 그 재수탱이 유진우 때문이야! 걔만 아니면 너도 잡혀들어갈 일이 없잖아!”장경화가 원망을 늘려놓았다.“맞아! 비겁하고 파렴치한 자식, 부도덕한 일만 골라서 하지! 누나 앞으로 그 녀석 멀리해. 안 그러면 조만간 피해를 볼 거야!”이현도 한마디 덧붙였다.“사실 이번 일은 진우랑 상관없어. 누군가가 일부러 우릴 함정에 빠트렸어.”이청아가 해명했다.“왜 상관이 없어? 걔가 떳떳하면 어떻게 잡힐 리가 있겠어?”“맞아! 왜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유진우만 해쳐? 걔 성품이 비열하다는 걸 충분히 증명해주잖아!”두 모자는 연신 맞장구를 쳐댔다.이청아는 다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래도 호준이가 제일이라니까. 네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 사람을 찾아 나서며 도움을 청했어. 이런 남자야말로 백 년에 한 번 나타날까 하는 인물이야!”장경화가 불쑥 화제를 돌렸다.“맞아, 누나! 이번에 호준 형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누난 아마 나오지도 못했을 거야!”이현이 옆에서 부추겼다.“호준 선배가 도와줬다고? 확실해?”이청아는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 형이 아니면 또 누가 있어? 강씨 일가와 돈독한 사이라 강천호 씨한테
“방법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문제가 좀 있어요.”제갈영군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새 왕이 즉위하려면 폐하의 허가와 백관의 승인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워요. 게다가 폐하의 뜻을 받고 백관을 모시려면 앞뒤로 최소 사흘은 걸려요. 지금 우리 상황으로는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없죠.”“에이, 설마? 즉위가 그렇게나 복잡해요?”장범규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다들 천우가 어르신의 아들이라는 걸 알잖아요. 그럼 당연히 서경왕 자리를 잇는 게 맞지 않나요?”“맞아요! 급할 때는 융통성도 발휘해야 하는 거잖아요.”주한휘가 곁에서 맞장구쳤다.“두 분 다 서경왕위를 산적 두목 뽑듯 생각하시는 건가요? 깃발 하나 꽂고 술 몇 사발 마신 다음 큰소리 몇 마디로 끝낼 일이 아니에요. 농담하지 마세요.”제갈영군이 약간 어이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서경왕위는 서경 백성만이 아니라 천하 모든 사람의 안위와도 연결돼 있죠. 서경이 혼란스러워지면 천하가 뒤숭숭해지고, 서경이 안정되면 천하도 평안해져요. 과장이 아니라 서경왕위의 무게는 폐하의 황위에 전혀 뒤지지 않아요. 그런 중요한 자리를 함부로 정하고 아무나 앉을 수 있겠습니까?”“맞아요. 저도 천우가 빨리 왕위를 이어서 군심을 안정시키면 좋겠지만, 왕위 계승은 장난이 아니죠.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거고 남들 입방아에 오르기 딱이니까요.”이의진이 고개를 저었다.규율과 절차 없이는 질서가 서기 어려운 법. 서경왕 자리의 무게는 그만큼 무겁다. 폐하의 명령과 문무백관의 증인이 없으면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다들 너무 규칙만 따져서 이 좋은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어요.”장범규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지금 도련님이 왕위를 잇지 못하면 유태범의 대군이 쳐들어올 때 어쩌자는 겁니까?”주한휘가 난처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은 제후님, 혹시 다른 방도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냥 말씀 좀 해주세요. 더는 뜸 들이지 말고요.”제갈영군이 은성종을 바라봤다.“두
“뭐라고요? 목격자를 전부 없애버린다고요?”그 말을 듣자 장범규의 안색이 급변했다.“농담하는 거 아니죠? 북쪽 4대 제후는 모두 유태범의 사람인데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고 전부 죽인다는 게 말이 돼요?”“큰일을 하는 자는 마음이 독해야 하는 법입니다. 오랫동안 전장을 누빈 사람한테 약간의 희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제갈영군이 덤덤하게 말했다.“물론 이건 마지막 계획이에요. 만약 북쪽 4대 제후가 무사히 왕위를 빼앗고 병부를 손에 넣는다면 유태범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이 바로 왕위를 이어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만약 북쪽 4대 제후가 실패하면 유태범은 큰일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예요.”욕심이 많은 자일수록 더욱 광기 어린 행동을 보일 것이다.예전에 유태범은 위왕에게 억눌려 힘을 숨기고 기회를 기다렸다. 위왕이 세상을 떠난 지금 속박을 벗어난 유태범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렇다면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네요.”장범규는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흑용군은 서경에서 가장 강하고 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흑용군을 장악한다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만약 유태범이 표기 대장군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다시 왕실을 구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면 흑용군을 대량으로 동원할 가능성이 컸다.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었다. 오직 승자만이 왕이 되고 패자는 반역자가 될 뿐이니까.“제후님들은 모두 서경의 기둥입니다. 혹시 좋은 해결책이라도 있습니까?”이의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전 싸우는 것만 잘하지, 머리를 쓰는 건 절대 안 돼요.”장범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저도 그렇습니다.”주한휘도 고개를 내저었다.“회음 제후님은 재능이 뛰어나니 뾰족한 수가 있으면 얘기해보시죠.”제갈영군의 시선이 은성종에게 향했다.그들이 성문 앞의 십만 대군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은성종의 회유책 덕분이었다.장교들의 가족과 친구를 이용하여 그들을 설득하고 항복하게 했다.많
지금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유태범이 흑용군을 이끌고 오는 것이었다.“너희 둘은 주모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력자야. 사형은 면해도 처벌은 면치 못해.”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여봐라. 저 두 놈을 끌고 가서 감시하고 내 명령 없이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거라.”“알겠습니다.”몇 명의 친위대가 재빨리 다가가 포박된 진승민과 강윤기를 강제로 끌고 갔다.“장군님, 항복한 병사들을 처리해 주십시오. 오늘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 더 이상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이의진이 석태혁을 보며 말했다.“알겠습니다.”석태혁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왕비님 자비에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그때 네 명이 군중 속에서 걸어 나왔다.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병사들이 자동으로 길을 터주었는데 네 사람이 바로 남쪽 4대 제후였다.맨 왼쪽으로부터 제갈영군, 그다음은 은성종, 주한휘, 장범규가 나란히 서 있었다.“저희가 너무 늦게 온 바람에 왕비님께서 많이 놀라셨죠? 부디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은성종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겸손한 태도로 예를 표했다.“그런 말씀 마십시오. 만약 제때 와주시지 않았다면 왕부가 위험에 처했을 겁니다. 제후님들 모두 공신이십니다.”이의진은 재빨리 다가가 허리 굽힌 은성종을 일으켜 세웠다.사실 남쪽 4대 제후가 이렇게 빨리 군대를 보내 지원해 줄 거라는 건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다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밤낮으로 달려왔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왕부를 지키고 서경을 지키는 건 우리의 책임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은성종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맞습니다. 만약 위왕님께서 저를 살려주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왕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어요.”장범규가 호탕하게 말했다.남쪽 4대 제후 중에서 그는 가장 솔직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왕비님, 앞으로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왕부의 어려움은 곧 우리의 어려움이니 당연히 도와야죠.”주한휘가 웃으며 말했다.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겠다는 말이 서경왕부 상공에 계속 맴돌았다.이미 공포에 질려 있던 반군들은 더욱 두려움에 떨었고 전투 의지를 완전히 잃었다.쨍그랑, 쨍그랑, 쨍그랑...점점 더 많은 병사들이 손에 든 무기를 던졌고 고집을 부리는 일부 병사들은 즉시 체포되어 포박당했다.왕부를 오랜 시간 공격했음에도 함락되지 않았고 성문을 지키던 군대도 모두 패배하고 말았다.네 명의 제후 중에 둘은 포로가 되어 잡혔고 둘은 도망쳤다. 대세를 잃을 그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항복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하지만 명분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목숨을 헛되이 버리려 하지 않았다.“난 방금 한 약속을 지킬 것이다. 항복한 사람에게는 죄를 묻지 않겠다.”무기를 던진 반군을 보며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 강압적이지 않았고 강렬한 기세도 내뿜지 않았으며 오히려 말투가 부드러워졌다.항복한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꼈다.“왕비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많은 장교들이 무릎을 꿇고 감사를 표했다.“왕비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장교들이 앞장서자 많은 병사들도 무릎을 꿇었다.몇 분 만에 조금 전까지 죽이겠다고 달려들던 사람들의 무릎을 전부 꿇렸다.이의진의 자비에 모든 병사들은 진심으로 감동했다.“너희 둘은 어떡할 거야?”이의진이 뒤에 매달려 있는 진승민과 강윤기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왕부 대문에 매달려 있었는데 꼴이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저... 저희도 항복하겠습니다.”진승민과 강윤기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굴복했다.왕부의 지원군이 도착했다는 건 그들이 성문 밖에 주둔시킨 군대가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했다.게다가 왕부를 포위 공격하던 선봉 부대는 모두 무릎을 꿇고 항복했고 그들 두 사람까지 인질이 되었다.이런 상황에서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항복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 희망이 남아 있었다.만약 대장군 유태범이 흑용군을 이끌고 도착한다면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
명령을 받은 후 진승민의 병사들은 모두 무기를 버렸다.“그리고 너. 네 부하들도 전부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해.”이의진은 칼끝을 돌려 강윤기의 목에 겨누었다.살기등등한 이의진의 눈빛에 강윤기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무기 전부 내려놔.”쨍그랑, 쨍그랑, 쨍그랑...금속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또 한 번 들렸고 강윤기가 통솔하던 병사들도 무기를 버렸다.전장의 약 60%에 달하는 군대가 전투를 포기했다. 나머지 40%는 무기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전투는 사기가 떨어지면 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이미 무기를 버렸는데 어찌 더 공격할 수 있겠는가?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제후가 이미 사라져 수만 명의 군대를 지휘하는 우두머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두머리가 사라졌으니 당연히 당황하는 수밖에.“다들 잘 듣거라. 너희들의 제후는 이미 도망갔고 너희들이 죽든 말든 아무 관심이 없어. 아직도 그런 사람을 위해 싸울 것인가? 너희들이 명령에 따라 움직인 것이고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아. 그래서 무기를 내려놓으면 오늘 일어난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주겠다.”“물론 계속 저항하면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땐 모든 사람을 반역자로 취급할 것이다. 그럼 너희들은 참수될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심각한 처벌을 받을 것이니 너희들이 알아서 판단하거라.”이의진의 강렬하고 힘찬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보이지 않는 위엄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제후님이 정말 도망갔어? 그럼 우린 어떡해?”“나한테 물으면 내가 누구한테 물어?”“이 싸움은 원래 해서는 안 되는 싸움이었어. 왕실을 구원하고 범인을 잡긴 개뿔. 이건 그냥 반역이야. 이 일에 책임을 묻는다면 우린 모두 죽을 거라고.”“진 제후님과 강 제후님도 이미 항복했는데 우리도 항복할까? 왕비님께서 우리한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셨잖아.”“...”전장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의견이 분분했다.그들은 이미 전투 의지를 완전히 잃었지만 명령이
“됐어. 그만 좀 웅얼거려. 유태범이 왕이 될 수 있을지는 오늘 밤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제갈영군은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듯 손을 크게 휘둘렀다.“여봐라. 반역자들을 잡아들여서 감시하거라!”“알겠습니다.”친위대가 즉시 앞으로 나와 노정한과 하원휘를 포박했다.“제갈영군. 우리 모두 한 지역의 제후이고 동등한 위치에 있는데 사람들 앞에서 이러는 건 우리 체면을 너무 짓밟는 거 아니야?”노정한이 소리쳤다.“체면?”제갈영군이 코웃음을 쳤다.“이미 반역자로 잡혔는데 무슨 체면이 더 있어?”“제갈영군, 아직 승패가 결정된 것도 아니고 대세도 정해지지 않았어. 대장군님이 왕이 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어?”노정한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맞아. 세상일은 돌고 돈다고 했어. 지금 한껏 위세를 부려도 영원히 부릴 수 있을 것 같아? 아무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야. 그러니까 적당히 해.”하원휘가 맞장구를 쳤다.“너희들이 오늘 밤을 넘길 수 있을지도 아직 모르는데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쳐? 정말 주제를 모르는구나. 여봐라, 어서 저 둘의 입을 막아라. 더 이상 시끄럽게 떠들지 않게.”제갈영군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너...”노정한과 하원휘가 뭐라 더 말하려던 그때 입을 강제로 틀어막은 바람에 웅얼거리는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끌고 가.”제갈영군이 손을 휘두르자 부하들이 바로 그들을 차에 태웠다.제갈영군의 시선이 앞쪽의 유진우에게 향하더니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어딘가 낯이 익은데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나?”“네, 만난 적이 있어요. 전 서경왕부 사람입니다.”유진우가 대답했다.“그래?”제갈영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왕부의 고수들은 내가 전부 알고 있는데 당신은 전혀 모르겠어. 대체 누구지?”“제 신분은 나중에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유진우는 제갈영군에게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인사한 뒤 순식간에 사라졌다.“빠르네.”제갈영군은 놀란 나머지 두 눈이 다 휘둥
하여 그들은 전혀 믿지 않았다.“하하하... 이 지경이 됐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제갈영군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비웃었다.“그래. 그렇게 보고 싶다면 보여주지.”제갈영군은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휙.금빛 광선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더니 펑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터져버렸다.잠시 후 머나먼 길 끝에서 갑자기 일사불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고 리듬이 빠르면서도 동일했다.노정한과 하원휘는 발밑의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땅의 진동은 더욱 강해졌다.노정한과 하원휘는 움찔하더니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 하지만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칠흑같이 어두운 그림자가 눈앞에 나타났다.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거리를 전부 덮고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말... 말도 안 돼.”눈앞에 빽빽하게 서 있는 병사를 본 순간 노정한과 하원휘는 멍해졌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요행을 바랐고 제갈영군이 겁을 주기 위해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기가 죽어버렸다.그들의 십만 대군이 성문을 지키고 있어서 정상적인 이치대로라면 외부 군대가 들어올 리가 없었다.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군대가 나타났다는 건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 바로 그들의 십만 대군이 정말로 항복했다는 것이다.제갈영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들이 스스로를 속여왔던 것이었다.“노정한, 하원휘, 너희들이 지금 본 건 단지 일부야. 우리 동맹에는 세 개의 군대가 더 있고 세 제후가 이끌고 각각 세 방향에서 왕부를 향해 빠르게 진격하고 있어. 내 예측이 맞다면 이미 왕부에 가까워졌고 어쩌면 너희 군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을지도 몰라. 너희는 이미 사방으로 포위됐어. 항복하지 않는다면 전멸되는 건 시간문제야. 그래서 아까 이미 대세가 기울었고 다시 역전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한 거야.”제갈영군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을 쿡쿡 찌르는 그의 말에 두 사람은 얼굴이 다 창백
제갈영군의 말에 노정한과 하원휘는 충격에 빠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말도 안 돼.”하원휘가 단호하게 부인했다.“우리 십만 대군은 장비도 잘 갖춰져 있고 훈련도 잘되어 있는데 항복한다는 게 말이 돼?”“맞아.”노정한도 전혀 믿지 않고 소리쳤다.“설령 남쪽 4대 제후의 군대를 모두 합친다고 해도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우리 십만 대군을 무너뜨릴 수 있겠어? 지금 우리한테 겁주려고 과장한 게 분명해.”남쪽 4대 제후의 총 군사력은 20~30만 명에 불과했다. 전부 동원한다고 해도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10만 대군을 이길 수 없었다.그들의 대군은 이미 많은 방어 시설을 구축해 놓았기에 두세 배에 달하는 적을 상대하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게다가 남쪽 4대 제후의 군대를 전부 동원하는 건 불가능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일부는 도시를 지켜야 했다.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이기는 건 더욱 어려웠다.“정면 돌파는 당연히 불가능하지.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제갈영군이 비웃으며 말했다.“너희 장교들은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어. 만약 그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우리가 장교들의 친척이나 친구들을 군영에 데려와 설득한다면 결과가 어떨지 한번 예상해볼래?”그 말을 들은 순간 노정한과 하원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멍해졌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사실 그들이 왕성을 포위한 것 자체가 명분 없는 행동이었다. 비록 왕실을 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긴 했지만 수많은 백성들에게는 여전히 반역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군 내부에서도 이미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단지 군령 때문에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불안감의 씨앗은 이미 마음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만약 속전속결로 대장군을 왕위에 올리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특히 방금 제갈영군이 말한 것처럼 장교들의 친척이나 친구를 데려
이런 말로 일반 백성을 속일 수는 있어도 제갈영군의 앞에서 이 수작을 부리는 건 그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다.“제갈영군, 여기까지 온 이상 숨길 필요도 없을 것 같으니까 솔직하게 얘기할게.”하원휘는 두 걸음 앞으로 다가와 진지하게 말했다.“위왕님께서 돌아가신 지금 위왕 자리가 비었어. 무릉 제후는 누가 새로운 서경왕이 되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제갈영군이 차갑게 웃었다.“무릉 제후도 잘 알 텐데. 새로운 왕이 될만한 가장 적합한 분이 표기 대장군 유태범이라는 걸.”하원휘가 고개를 쳐들고 말을 이었다.“대장군님께서 서경왕이 되셔야 우린 더 나은 발전과 더 많은 영토, 그리고 더 많은 군사를 가질 수 있어. 이게 지금 대세고 절대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야. 무릉 제후는 현명한 사람이니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알 거라 믿어.”“나더러 너희들 편에 서라는 건가?”제갈영군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그래.”하원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대장군님께서는 그동안 세운 공이 많고 권력을 쥐고 있으며 능력까지 뛰어나 서경왕의 자리에 오르는 데 부족함이 없어. 좋은 새는 좋은 나무를 택하고 현명한 신하는 현명한 군주를 섬긴다고 하잖아. 대장군을 따른다면 앞날이 무궁무진한 건 물론이고 원하는 모든 걸 얻을 수 있어.”“맞아, 무릉 제후. 우린 조정의 신하로서 서로 원한도 없잖아. 현명한 왕을 섬긴다면 우린 분명 승승장구할 수 있을 거야.”노정한이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들어보니 나쁘지 않군.”제갈영군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렇다면 제안에 동의한다는 건가?”하원휘는 제갈영군을 설득한 줄 알고 두 눈이 다 반짝였다.“무릉 제후가 무공이 뛰어나니 우리를 위해 저 자객을 처리해 준다면 대장군님께 좋게 얘기해줄게.”노정한이 유진우를 가리키며 말했다.“잠깐. 내가 언제 동의한다고 했어?”제갈영군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했다.“난 충신이야. 너희들 같은 배신자들과는 다르다고. 그러니까 너희들의 그 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