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유진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땐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햇볕이 창문으로 비쳐 들어와 방 안을 환하게 비췄고 눈이 다 부실 지경이었다.“진우 씨, 드디어 깼네요!”옆에 있던 조아영이 눈을 뜬 유진우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나 얼마나 잤어요?”유진우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금방 깨어난 터라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3일이나 누워있었어요. 약신왕 선배님이 진우 씨가 괜찮다고 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관까지 준비할 뻔했다니까요.”조아영이 말했다.“3일이요? 그렇게나 오래 잤다고요?”유진우는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문득 뭔가 떠올랐다.“아 참, 선미 씨는요? 어떻게 됐어요? 깨어났어요?”“언니요?”조선미 얘기에 조아영의 낯빛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울먹였다.“우리 언니... 결국에는 이 세상을 떠났어요...”“네? 죽었다고요?”유진우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가뜩이나 창백한 안색이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새하얘졌고 마치 넋을 놓은 사람처럼 멍해졌다.“어떻게 이럴 수가...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 검은 꽃무릇을 찾아왔는데 왜 죽어요? 대체 왜?”유진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조선미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고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살릴 수 있다며? 그런데 왜 못 살렸어? 대체 왜?’“안 되겠어요. 선미 씨 보러 가야겠어요. 내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절대 못 믿어요.”유진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틀거리며 밖으로 뛰어나가려 했다.“뭘 못 믿어요?”그때 문밖에서 한 여자가 걸어 들어왔다. 아름다운 외모에 훤칠한 키, 그리고 남다른 분위기는 마치 한 폭의 그림에서 걸어 나온 선녀 같았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조선미였다!“선미 씨?”눈앞의 아름다운 여인을 본 순간 유진우는 어안이 벙벙했다.“안... 죽었어요?”“죽다니요?”조선미가 이상한 표정으로 물었다.“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왜 죽어요?”“하지
유진우는 조선미를 꼭 끌어안고 그녀의 체온을 느끼면서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그제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한참 후, 유진우가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됐어요, 그만 안아요. 나 숨 못 쉬겠어요.”조선미는 히죽 웃으며 유진우의 등을 토닥였다. 그의 품에 안긴 이 순간이 참 행복했지만 너무 꽉 안은 탓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콜록... 미안해요. 내가 너무 흥분했나 봐요.”유진우는 그제야 알아차리고 재빨리 손을 풀었다. 방금은 저도 모르게 껴안은 거라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이러니까 더 기분 좋은걸요? 당신이 날 엄청 걱정했다는 뜻이니까요.”조선미가 달콤하게 웃었다. 유진우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 같아 너무도 좋았다.이제 둘은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이가 되었다. 이 점만 봐도 이청아와 비교할 수 없었다. 결혼 한번 했으면 뭐? 두 사람은 목숨까지 바꾼 사이인데.“여보, 쉬고 있어요. 약이 다 달여졌나 보고 올게요.”조선미는 발끝을 들고 유진우의 얼굴에 입맞춤한 후에야 방을 나섰다. 아름다운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유진우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도 이 순간이 행복한 건 마찬가지였다.‘드디어 큰 고비를 넘겼어.’“영감님.”유진우는 정신을 차리고 문 앞에 있는 장 어르신을 불러 물었다.“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어요?”조선미도 3일 동안 의식이 없었고 유진우도 잠을 3일이나 잤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의 일주일이 지났다.“요즘 서울이 비교적 조용하더라고요. 별다른 일이 없었어요.”그런데 장 어르신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아 참, 조씨 가문 쪽을 주의 깊게 살펴야겠어요. 조군해가 가주 자리에 앉은 후에 조군해 부녀가 조씨 가문의 공신과 원로들을 싹 다 내쫓았어요. 지금 조씨 가문의 상황이 좋지 않아요.”“조군해는 지금 자기 편이 아닌 사람을 배제하려고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싹 다 내쫓고 있어요. 이런 어리석은 방법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거나
“여보, 약 먹을 시간이에요.”유진우와 장 어르신이 한창 얘기를 나누던 그때 여자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따운 조선미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자기 그릇을 들고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요염하게 웃는 그녀의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탕약을 조심스럽게 유진우의 입가에 가져갔다.“자, 여보. 약 마셔요.”유진우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이 장면 왜 어디서 본 것 같지?’“여보, 왜 그래요? 얼른 마셔요.”조선미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쁜 두 눈에 장난기가 가득했다.“어... 안 마시면 안 돼요?”유진우는 온몸으로 거절했다.“당연히 안 되죠. 이건 내가 정성 들여 달인 약이란 말이에요.”조선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왜요? 내가 설마 독약이라도 탔을까 봐 그래요?”“어휴, 이렇게 예쁜 선미 씨의 손에 죽는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죠.”유진우는 한마디 한 후 탕약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약이 너무 써서 안절부절못하는 유진우의 모습에 조선미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됐어요, 그만 호들갑 떨고 밥 먹으러 가요. 당신이 좋아하는 반찬 가득 준비했어요.”조선미는 휴지로 유진우의 입을 닦아준 후 팔짱을 끼고 방을 나섰다.따르릉...그런데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조선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알았어, 금방 갈게.”대답을 마친 그녀는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무슨 일이에요?”유진우가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소현이가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나 봐요. 지금 당장 가봐야겠어요.”조선미가 설명했다.“그래요? 그럼 나와 같이 가요.”유진우는 지체하지 않고 장 어르신더러 운전하라고 했다.홍길수가 떠난 후 유진우는 홍소현을 딸이라 생각하면서 챙겼다. 딸에게 일이 생겼다는데 당연히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그 시각, 새싹 어린이집.“빌어먹을 년이 대체 딸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이 계집애가 우리 아들 얼굴 다 할퀴어놓았잖아! 우리 아들이 얼마나 귀하게 자랐다고.
“개소리 집어치워!”최숙자가 두 눈을 부릅떴다.“지금 아비도 없는 자식과 우리 귀한 아들을 비교해? 우리 아들 머리카락 한 올도 네 딸 목숨보다 귀해. 경고하는데 지금 당장 무릎 꿇고 빌어. 빌지 않으면 절대 가만 안 둬!”“사모님, 무슨 그런 억지를 부리세요? 분명히 사모님 아들의 잘못인데 왜 우리가 사과해야 하는데요?”김정아가 눈살을 찌푸렸다.짝!최숙자는 다짜고짜 손을 들어 김정아의 얼굴을 후려갈기며 욕설을 퍼부었다.“사과하라면 사과할 것이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한 번만 더 뭐라 했다간 그 입 확 찢어버릴 거야.”“당신!”김정아는 이를 꽉 깨물고 최숙자를 째려보았다. 상대가 이토록 막무가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과는 그렇다 쳐도 손찌검까지 하다니, 사람을 괴롭혀도 적당히 괴롭혀야지.“우리 엄마 때리지 말아요!”홍소현이 갑자기 김정아의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렸다. 작은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나쁜 사람, 이 마귀 아줌마, 울트라맨더러 때리라고 할 거예요.”“어쭈? 이년이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화가 난 최숙자가 다시 한번 홍소현의 얼굴을 후려갈기자 홍소현은 맥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코피가 터져버리고 말았다.“소현아!”화들짝 놀란 김정아가 다급하게 딸을 껴안았다. 퉁퉁 부은 홍소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김정아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아비도 없는 자식은 맞아도 싸!”뚱뚱한 아이는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우쭐거렸다.“두 천민은 잘 들어.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한 다음에 우리 아들의 병원비 2억 물어내. 그렇지 않으면 콩밥 먹을 줄 알아.”“당신... 무슨 이런 억지를 부려요?”김정아도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경찰에 신고하겠어요. 경찰이 온 다음에 해결해요.”그러더니 휴대 전화를 꺼내 신고하려 했다.“신고?”최숙자는 그녀의 휴대 전화를 확 빼앗아 바닥에 냅다 던지며 욕했다.“빌어먹을 년아, 신고한다고 될 것 같아? 우리 남편은 경관이고 내 남동생은 더 엄청난 거물이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넋이 나갔다. 누군가 나서서 최숙자의 아들을 때릴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최숙자는 이 바닥에서 횡포하기로 소문이 자자했고 아무도 그녀를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아이고, 우리 아들.”놀라움도 잠시 최숙자는 뒤뚱뒤뚱 달려가 정신이 혼미해진 아들을 끌어안았다. 코가 비뚤어지고 입에서는 피가 흘렀으며 앞니가 두 개나 빠져있었다. 특히 얻어맞은 볼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벌겋게 퉁퉁 부어있었다.“아들아, 엄마 놀라게 하지 마. 얼른 일어나.”당황한 최숙자는 연신 아들의 인중을 눌렀다. 아들이 무사히 깨어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바로 흉악해졌다.“누구야? 방금 누가 우리 아들 때렸어? 당장 나와!”최숙자는 벌떡 일어나 돌아섰다. 이까지 바득바득 가는 게 당장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였다.“나다!”유진우는 굳은 얼굴로 한 발짝 나섰다. 특히 김정아와 홍소현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본 후에는 눈이 완전히 돌았다.“개 같은 자식이 감히 내 아들을 때려? 내가 누군지 알아?”최숙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까지 남을 괴롭히는 쪽은 그녀였지, 누구에게 맞아본 적이라곤 한 번도 없었다.짝!유진우는 두말없이 한 번 더 뺨을 후려갈기며 물었다.“누군데?”“난...”최숙자가 얼굴을 움켜쥐고 입을 열려는데 유진우는 다시 한번 뺨을 후려갈겼다. 그 바람에 최숙자는 비틀거리면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당신 누군데?”유진우가 다시 한번 물었다.“난...”짝!최숙자가 입을 열려고 할 때마다 유진우는 가차 없이 후려갈겼다.“한 번 더 묻겠다. 당신 누구야?”유진우가 싸늘하게 물었다.“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최숙자는 욕설을 퍼부으려 했다. 그런데 기회를 줄 유진우가 아니었다. 또다시 최숙자의 얼굴을 사정없이 내리쳤다.“대체 누구냐고?”짝!“말해.”짝!“왜 말 안 해?”짝!“아까는 엄청 나댔잖아? 말해봐 봐, 당신이 누군지.”유진우는 때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유진우의 대담한 행동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과하면 쉽게 해결될 일을 굳이 크게 만들었다. 이젠 최숙자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놓았으니 팔다리가 부러지든 생매장당하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짝!유진우는 또 한 번 최숙자의 뺨을 내리쳤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최숙자를 보며 물었다.“말해. 대체 누구야?”하도 얻어맞아 얼굴이 다 비틀어졌다. 최숙자는 머리가 빙빙 돌면서 어지러워 방향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멈춰!”그때 어린이집 원장이 갑자기 인파 속을 헤집고 다급하게 뛰어왔다. 얼굴이 퉁퉁 부은 최숙자를 보더니 화들짝 놀란 얼굴로 재빨리 부축하여 의자에 앉혔다.“아이고, 사모님, 어쩌다 이렇게 다치셨어요? 누가 그런 거예요?”최숙자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고 유진우를 가리켰다.“간덩이가 아주 제대로 부었구나!”원장이 돌아서서 노발대발했다.“당신 누구야? 누군데 사모님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당신이 얼마나 큰 사고를 쳤는지 알기나 해?”“당신은 또 누군데 감히 나에게 삿대질이야?”유진우의 표정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나?”원장은 가슴을 쫙 펴고 오만하게 말했다.“난 이 어린이집 장 원장이야. 어린이집의 크고 작은 일들은 전부 내가 관리해.”“장 원장이라고? 마침 잘 왔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최숙자를 가리켰다.“이 여자가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면서 사람을 괴롭혔어. 당장 내쫓아!”“헛소리 집어치워!”장 원장이 두 눈을 부릅뜨고 호통쳤다.“사람을 때린 건 당신이면서 사모님을 모함해? 정말 적반하장이 따로 없네.”“내가 이 여자를 때린 건 맞을 짓을 했으니까 때린 거야. 두 눈 똑바로 뜨고 봐. 우리 형수님 얼굴의 상처와 소현이 몸에 난 상처 전부 다 이 여자의 짓이야. 난 단지 이 여자가 했던 방법으로 그대로 갚아줬을 뿐이고.”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맞아요, 원장님. 저 두 모자가 일부러 시비 걸고 우리를 괴롭혔어요.”김정아가 설명했다.“입 다물어!”장 원장은 소리를 지르더니 유진
유진우의 말에 장 원장은 화가 난 나머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동안 장 원장의 눈치를 보며 기를 못 폈던 학부모들은 몰래 고소해하기도 했다.‘평소 사람을 그렇게 업신여기더니 꼴좋다.’“날 욕했어? 네까짓 게 뭔데 감히 날 가르치려 들어?”장 원장은 눈에 뵈는 게 없는 듯 노발대발했다.“당신 딱 기다려! 내가 홍소현을 어린이집에서 쫓아내고 어디도 못 가게 막아버릴 거야! 평생 학교도 못 다니게 할 거라고!”“막아버리겠다고?”유진우는 코웃음을 치고 장 원장을 발로 확 걷어찼다.“어디 한번 해봐? 당신 재주가 어떤지 오늘 지켜볼 테니까.”유진우의 발에 걷어차인 장 원장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자마자 바로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경비, 경비, 다 어디 갔어? 당장 오지 못해?”장 원장의 성난 목소리와 함께 경비원 두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런데 손을 쓰기도 전에 유진우의 날카로운 눈빛에 얼어붙고 말았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고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마치 맹수에게 잡힌 먹잇감처럼 꼼짝도 하질 못했다.“당신들 거기 서서 뭐 해? 가서 쥐어 패버려!”두 경호원이 가만히 있자 장 원장은 노발대발하면서 그들의 따귀를 내리쳤다.“쓸모없는 것들. 내가 이따위로 일하라고 월급 준 줄 알아? 정말 하나도 쓸모없어!”두 경호원은 얼굴을 움켜쥐고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장 원장, 대체 어린이집을 어떻게 관리했기에 거지 나부랭이가 여기 와서 행패야?”그때 최숙자가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더니 분노를 터트렸다.“경고하는데 오늘 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가만 안 둬!”“네?”장 원장의 표정이 잔뜩 굳어지더니 쪼르르 달려가 눈치 보며 말했다.“사모님, 이건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다 저 자식이 미쳐 날뛴 거라고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신고했으니까 경찰이 곧 올 겁니다. 오늘 절대 이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흥, 저 두 천한 년도 절대 가만두지 마!”최숙자가 표독스럽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장 원장이 말했다.“여보?”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유문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여보, 왜 이렇게 된 거야?”“저놈이... 저놈이 한 짓이에요!”최숙자가 부들부들 떨며 손을 뻗어 유진우를 가리켰다.“당신이야?”유문승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당신이 내 와이프 때렸어?”“맞아요.”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히 인정했다.“이 아주머니가 너무 막무가내로 구는 바람에 버릇 좀 고쳐준 것뿐이에요.”“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네! 감히 내 여자의 몸에 손을 대?”유문승의 눈빛에서 분노가 이글거렸다.“말해봐.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거야?”이 구역에선 아무도 그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감히 그의 와이프를 때릴 수 있는 사람은 뒷배경이 아주 대단하거나, 골 빈 철없는 멍청이들뿐이다.상대의 신분을 아직 확실히 인지하기 전이기 때문에 유문승은 일말의 여지는 남겨야 했기에 심한 말까진 내뱉지 않았다.“일단 이 아주머니한테 사과하라고 하세요. 그럼 오늘 일은 문제 삼지 않을게요.”“뭐라고? 사과?”유진우의 말에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저 사람 미친 건가?때린 건 본인인데, 맞은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한다고?또한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자리는 유 경감의 눈앞이라는 것이다.아예 유 경감을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의미나 다름없다.“미친놈!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옆에 서 있던 장 원장이 참지 못하고 일갈했다.“이분은 수천만 명을 수하로 두신 유 경감님이셔! 감히 그런 분 앞에서 말도 안 되는 객기를 부려? 살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유 경감은 경찰청에서 명실상부 2인자다.단 한마디 말만으로도 보통 서민들의 생사 정도는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얼른 저놈을 유치장에 잡아넣어요!”최숙자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그 표독스러운 눈빛은 당장이라도 유진우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만 같았다.“사람을 때려놓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대체 무슨 배짱으로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