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숙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몸속의 혈맥이 이젠 깨어났으니 할머니와 집으로 돌아가자. 이제부터 넌 주술교의 성녀야. 죽이고 싶은 사람 다 죽여도 돼.”“저...”황은아는 입을 벌렸다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에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은아야, 주술교는 그리 좋은 곳이 아니야. 너에게는 더 나은 선택이 있어.”유진우가 진심으로 말렸다.“성녀의 피가 흐르면 주술교의 공법이 가장 잘 어울려. 은아가 돌아간다면 중점적으로 가르칠 생각이야.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쪽도 쉽게 따라잡을 거라 믿어.”공대숙이 우쭐거리며 말했다.“수련이 중요하긴 하지만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면 평생 후회한다고요.”유진우가 반박했다.“이 녀석아, 잘못된 길로 들어서다니? 우리 주술교는 선과 악이 분명해. 해야 할 복수가 있으면 하고 갚아야 할 은혜가 있으면 갚아. 이런 겉만 번지르르한 명문 파벌의 위선자들과 비하면 훨씬 더 낫지. 우리 명성에 먹칠하지 마.”공대숙이 경고를 날렸다.“은아야, 스스로 선택해. 나랑 갈 거야, 아니면 주술교에 갈 거야?”유진우는 선택권을 황은아에게 넘겼다.황은아는 바로 결정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한참 동안 곰곰이 고민하던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들고 진지하게 말했다.“아저씨, 할머니와 함께 갈래요.”“하하... 역시 우리 손녀야!”공대숙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드디어 후계자가 생겼다.“은아야,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어. 주술교에 발을 들인다면 다시는 다른 걸 택할 수 없단 말이야. 그때가 되면 후회해도 늦어.”유진우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주술교는 천하제일 사파로 불렸고 모든 명문 파벌과 대립 면에 서 있었다. 황은아가 성녀가 된다면 불명예를 안게 될 것이고 무수히 많은 무림 인사들에게 쫓길 것이다. 그 대가는 너무나도 무겁고 컸다.“아저씨가 날 위해서 그런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갈래요. 강해져서 복수할 거고 사람들이 날 두려워할 정도로 강해
착하게 살아봤자 득이 될 게 없다면 착한 마음을 버리는 수밖에. 정의가 통하지 않는다면 사악함으로 온 세상을 지배하는 수밖에.황은아가 이렇게 변한 건 다 어쩔 수가 없었다.“은아야, 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 난 널 응원해.”유진우는 손을 들어 황은아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다정하게 말했다.“이것만은 명심해. 이 사부가 영원히 네 뒤에 있다는 거. 만약 버티기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돼. 하늘이 무너져도 이 사부가 대신 막아줄게.”“네!”황은아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당장이라도 왈칵 쏟을 것만 같았다.“선배님, 그럼 은아 잘 부탁해요.”유진우는 공대숙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주술교에서 은아를 괴롭혔다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그래?”공대숙은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실룩였다.“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제 신분을 알았으니 우리 유씨 가문 사람은 절대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는 거 잘 알 겁니다.”유진우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하하... 재밌네. 아주 재밌어.”공대숙이 피식 웃었다.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유진우를 달리 보게 되었다. 성격이 이상할수록 왠지 모르게 더 끌렸다.“은아야, 나중에 다시 만나자.”유진우는 황은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꽃무릇을 챙기고 돌아섰다.사람은 각자 가야 하는 길이 있기에 아무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었다. 그가 해야 하는 건 그저 잘 되길 묵묵히 기도하는 것뿐이었다.“사부님, 잘 가요...”멀어져가는 유진우의 뒷모습을 보며 황은아는 이를 꽉 깨물었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렇게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은아야, 이 조무래기들은 할머니가 대신 죽여줄까?”공대숙의 시선이 갑자기 파벌의 제자들에게 향했고 눈빛도 날카로워졌다.순간 겁에 질린 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떨었다. 하지만 또 감히 도망칠 수도 없었다. 정말 죽음을 기다리는 순한 양이 따로 없었다.“아니요. 제 복수는 제가 할게요!”황은아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머릿속에 새겼다.“너희들 잘 들어. 오늘 살려두는 건 내가 자비를 베풀어서가 아니야. 언젠가는 너희들을 싹 다 죽여버릴 거야. 오늘 너희들이 한 짓, 내가 백배 천배 갚아줄 테니까 기다려. 갖은 고통을 주면서 죽지 못해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줄 거야. 그러다가 공포와 절망감 속에서 천천히 죽여줄게. 그전까지는 꼭 살아있어. 무슨 수를 써서든 죽지 말고 살아있어. 너희들의 목숨은 나만 끊을 수 있으니까 내가 다시 복수하러 올 때까지 기다려!”
황은아는 황동해의 시신을 업고 떠났다. 가기 전 남긴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고 등골이 오싹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긴 했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평범해 보이는 소녀가 주술교의 성녀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주술교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주술교의 성녀를 건드렸다는 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거나 다름없었다.게다가 그들은 성녀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어찌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있겠는가?이제부터 그들은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두려움 속에 살아야 할 것이다. 죽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송 맹주님, 인제 어떡해요? 우리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렸어요.”조경수가 창백해진 얼굴로 비틀거리면서 송만규 앞으로 걸어갔다. 아까 유진우의 공격에 중상을 입은 게 데미지가 너무도 컸다.장수현과 격심대사는 상태가 더욱 심각했다. 한 사람은 팔이 잘려 나갔고 한 사람은 눈이 먼 게 정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뭘 그렇게 당황해요?”송만규가 두 눈을 부릅떴다.“공대숙과 주술교의 4대 호법만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우릴 어쩔 수 있겠어요?”“하지만 우리가 황동해를 죽음으로 몰아갔고 주술교의 성녀까지 건드렸어요. 앞으로 엄청난 후환이 있는 건 분명하다고요.”조경수가 근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흥, 본투비 레벨도 아닌 계집애가 뭐가 무섭다고 그래요? 걔가 마스터가 된 다음에 다시 봅시다.”송만규가 싸늘하게 말했다. 이미 천영 구슬을 손에 넣었으니 대 마스터가 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황은아가 아니라 주술교 교주 공대숙이라도 전혀 두렵지 않을 것이다.그 시각 벽하파 진영.“예슬아, 그만 쳐다봐. 우리 같은 별거 아닌 사람은 진우 마스터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야.”옆에서 넋을 놓고 쳐다보는 한예슬을 보며 심연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젓더니 유진우가 사라진 방향을 보면서 감탄을 쏟아냈다.“진우 마스터는 천재
약신왕 조안태가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선미 씨를 구할 수 있는 건 검은 꽃무릇과 봉황 독충밖에 없어요. 만약 유 장로가 제때 영약을 가져온다면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시간이 지체될수록 가능성이 점점 작아지죠.”“진우 씨, 대체 어디 갔기에 아직도 안 와요?”조아영이 울상이 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이 일을 아직 부모님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충격받고 쓰러질까 봐.쾅!그때 누군가 방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곧이어 피범벅인 유진우가 비틀거리면서 들어왔다. 차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약신왕 선배님, 찾았어요. 영약 찾았어요.”유진우는 옷의 지퍼를 열어 조심스럽게 묘한 빛을 내뿜은 검은 꽃을 꺼냈다.“찾았어요?”자세히 살피던 조안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진짜 검은 꽃무릇이 맞네요. 좋아요... 너무 잘됐어요.”“선배님, 이 검은 꽃무릇만 있으면 선미 씨 살릴 수 있죠?”유진우가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거의 목숨으로 이 영약을 바꾼 거나 다름없었다.“살릴 수는 있는데 유 장로의 피가 필요해요.”조안태가 설명했다.“전에 치료하면서 유 장로 혈액에 송장꽃의 해독 성분이 생겼거든요. 선미 씨 깨어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네, 얼마나 필요해요? 마음껏 쓰세요.”유진우는 두말없이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칼로 베려 했다.“잠깐만요.”조안태가 재빨리 말리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유 장로,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지금 기와 혈이 부족해서 피를 뽑으면 몸이 버티지 못할 텐데요.”“버틸 수 있어요. 괜찮으니까 선미 씨부터 살려주세요.”유진우가 계속 다그쳤다.“정말 괜찮겠어요?”조안태가 눈살을 찌푸렸다. 유진우의 얼굴만 봐도 원기를 전부 소진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런 상태로 서서 말한다는 것조차 엄청 힘들 텐데 피까지 뽑는다면 정말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영감님, 그릇 가져오세요.”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유진우가 분부를 내렸다. 곧이어 장 어르신이 큰 그릇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유진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땐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햇볕이 창문으로 비쳐 들어와 방 안을 환하게 비췄고 눈이 다 부실 지경이었다.“진우 씨, 드디어 깼네요!”옆에 있던 조아영이 눈을 뜬 유진우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나 얼마나 잤어요?”유진우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금방 깨어난 터라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3일이나 누워있었어요. 약신왕 선배님이 진우 씨가 괜찮다고 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관까지 준비할 뻔했다니까요.”조아영이 말했다.“3일이요? 그렇게나 오래 잤다고요?”유진우는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문득 뭔가 떠올랐다.“아 참, 선미 씨는요? 어떻게 됐어요? 깨어났어요?”“언니요?”조선미 얘기에 조아영의 낯빛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울먹였다.“우리 언니... 결국에는 이 세상을 떠났어요...”“네? 죽었다고요?”유진우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가뜩이나 창백한 안색이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새하얘졌고 마치 넋을 놓은 사람처럼 멍해졌다.“어떻게 이럴 수가...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 검은 꽃무릇을 찾아왔는데 왜 죽어요? 대체 왜?”유진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조선미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고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살릴 수 있다며? 그런데 왜 못 살렸어? 대체 왜?’“안 되겠어요. 선미 씨 보러 가야겠어요. 내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절대 못 믿어요.”유진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틀거리며 밖으로 뛰어나가려 했다.“뭘 못 믿어요?”그때 문밖에서 한 여자가 걸어 들어왔다. 아름다운 외모에 훤칠한 키, 그리고 남다른 분위기는 마치 한 폭의 그림에서 걸어 나온 선녀 같았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조선미였다!“선미 씨?”눈앞의 아름다운 여인을 본 순간 유진우는 어안이 벙벙했다.“안... 죽었어요?”“죽다니요?”조선미가 이상한 표정으로 물었다.“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왜 죽어요?”“하지
유진우는 조선미를 꼭 끌어안고 그녀의 체온을 느끼면서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그제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한참 후, 유진우가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됐어요, 그만 안아요. 나 숨 못 쉬겠어요.”조선미는 히죽 웃으며 유진우의 등을 토닥였다. 그의 품에 안긴 이 순간이 참 행복했지만 너무 꽉 안은 탓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콜록... 미안해요. 내가 너무 흥분했나 봐요.”유진우는 그제야 알아차리고 재빨리 손을 풀었다. 방금은 저도 모르게 껴안은 거라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이러니까 더 기분 좋은걸요? 당신이 날 엄청 걱정했다는 뜻이니까요.”조선미가 달콤하게 웃었다. 유진우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 같아 너무도 좋았다.이제 둘은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이가 되었다. 이 점만 봐도 이청아와 비교할 수 없었다. 결혼 한번 했으면 뭐? 두 사람은 목숨까지 바꾼 사이인데.“여보, 쉬고 있어요. 약이 다 달여졌나 보고 올게요.”조선미는 발끝을 들고 유진우의 얼굴에 입맞춤한 후에야 방을 나섰다. 아름다운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유진우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도 이 순간이 행복한 건 마찬가지였다.‘드디어 큰 고비를 넘겼어.’“영감님.”유진우는 정신을 차리고 문 앞에 있는 장 어르신을 불러 물었다.“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어요?”조선미도 3일 동안 의식이 없었고 유진우도 잠을 3일이나 잤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의 일주일이 지났다.“요즘 서울이 비교적 조용하더라고요. 별다른 일이 없었어요.”그런데 장 어르신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아 참, 조씨 가문 쪽을 주의 깊게 살펴야겠어요. 조군해가 가주 자리에 앉은 후에 조군해 부녀가 조씨 가문의 공신과 원로들을 싹 다 내쫓았어요. 지금 조씨 가문의 상황이 좋지 않아요.”“조군해는 지금 자기 편이 아닌 사람을 배제하려고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싹 다 내쫓고 있어요. 이런 어리석은 방법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거나
“여보, 약 먹을 시간이에요.”유진우와 장 어르신이 한창 얘기를 나누던 그때 여자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따운 조선미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자기 그릇을 들고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요염하게 웃는 그녀의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탕약을 조심스럽게 유진우의 입가에 가져갔다.“자, 여보. 약 마셔요.”유진우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이 장면 왜 어디서 본 것 같지?’“여보, 왜 그래요? 얼른 마셔요.”조선미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쁜 두 눈에 장난기가 가득했다.“어... 안 마시면 안 돼요?”유진우는 온몸으로 거절했다.“당연히 안 되죠. 이건 내가 정성 들여 달인 약이란 말이에요.”조선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왜요? 내가 설마 독약이라도 탔을까 봐 그래요?”“어휴, 이렇게 예쁜 선미 씨의 손에 죽는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죠.”유진우는 한마디 한 후 탕약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약이 너무 써서 안절부절못하는 유진우의 모습에 조선미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됐어요, 그만 호들갑 떨고 밥 먹으러 가요. 당신이 좋아하는 반찬 가득 준비했어요.”조선미는 휴지로 유진우의 입을 닦아준 후 팔짱을 끼고 방을 나섰다.따르릉...그런데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조선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알았어, 금방 갈게.”대답을 마친 그녀는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무슨 일이에요?”유진우가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소현이가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나 봐요. 지금 당장 가봐야겠어요.”조선미가 설명했다.“그래요? 그럼 나와 같이 가요.”유진우는 지체하지 않고 장 어르신더러 운전하라고 했다.홍길수가 떠난 후 유진우는 홍소현을 딸이라 생각하면서 챙겼다. 딸에게 일이 생겼다는데 당연히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그 시각, 새싹 어린이집.“빌어먹을 년이 대체 딸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이 계집애가 우리 아들 얼굴 다 할퀴어놓았잖아! 우리 아들이 얼마나 귀하게 자랐다고.
유씨 가문 묘원, 일명 왕씨 가문 묘원은 약 800묘의 광활한 면적을 자랑한다. 묘원 내부는 경치가 아름답고 나무들이 우거져 있으며 널찍한 도로와 다양한 시설이 완벽히 갖춰져 있다. 묘원 곳곳에는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사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봄에는 벚꽃이 만개하여 꽃바다가 펼쳐지고 여름에는 푸른 잔디가 깔려 시원한 느낌을 준다. 가을이 되면 단풍잎이 흩날리며 감탄을 자아내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쌓여 은빛으로 뒤덮인다. 유씨 가문 묘원은 개방형으로 유씨 가문의 자손들뿐만 아니라 서경을 위해 공헌한 많은 장병들도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매년 추모 기간 때마다 묘원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떤 사람들은 고인의 묘를 참배하러, 또 어떤 이들은 순국열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서경 사람들은 이 점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은 현재 누리고 있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이 모두 순국열사들이 목숨을 바쳐 쟁취한 결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시간 후, 유진우와 이청성은 차를 타고 유씨 가문 묘원의 정문에 도착했다.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두 사람은 간단히 변장을 했다. 이청성은 섬유 재질의 인조 얼굴 가면을 쓰고 평범한 얼굴로 변장했다. 이는 사전에 준비한 것이었다. 서경에 도착해 종일 망사 모자나 베일을 쓰고 다닐 수는 없었기에 오히려 주목을 끌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청성은 평범한 얼굴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매와 기품은 여전히 돋보였다. 묘원 안을 걷는 동안 그녀를 힐끗거리는 남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연지 랭킹 1위의 무게감이었다. 얼굴을 보지 않더라도 그녀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유진우는 기억을 더듬으며 묘원의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억이 맞는다면 어머니의 묘는 묘원의 가장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고 비교적 한적한 곳이었다. 약 10분 정도 걸었을 때, 유진우는 드디어 진왕비의 묘를 찾아냈다. 다른 묘소에 비해 진왕비의 묘는 훨
서경 왕성.유진우와 이청성은 비행기에서 내려 조용히 승합차에 올랐다. 그들은 매우 신중하게 행동했으며 아무의 주목도 받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두 사람만이 함께 떠난 것으로 그들의 밀사와 근위병은 이미 전날 밤에 서경에 도착해 있었다. 이렇게 하니 더욱 은밀하고 안전했다. 차 안에서 이청성은 창문 너머로 번화한 거리를 바라보며 새로운 것들에 흥미를 느꼈다. 연경의 번잡함과 비교하면 서경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역 풍경이든, 문화든, 연경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고 평소 연경을 떠날 일이 거의 없었던 이청성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서경이 이렇게 많이 변했을 줄은 몰랐어요. 어렸을 때 이곳에 왔을 땐 대부분 낮은 건물들뿐이었는데 십여 년 만에 연경 못지않게 번화해졌네요.” 이청성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그러게요. 서경이 정말 많이 변했어요. 이제는 저조차도 길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유진우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에게 모든 것이 이미 변해버린 모습이었다. 왕부에 돌아가도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당신 아버지는 정말 위대한 분이에요.” 이청성은 감동한 듯 말했다. “아바마마께 들었는데 20여 년 전 서경은 아직도 황폐하고 끊임없는 전쟁이 이어지는 곳이었다고 해요. 백성들은 고통 속에 살아갔고 정말 메마른 땅에 굶주린 시체가 들판을 덮은 그런 상태였죠.” 그런데 서경왕 유만수가 나타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유만수는 연경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놀라운 군사적 재능을 보였다. 군에 입대한 후에는 연전연승하며 많은 공을 세웠고 당시 그는 ‘세상에 비할 자 없는 명장’으로 불렸다. 어린 나이에 후작이 되고 장군의 자리에 올랐으니 정말 대단한 영광이었다. 모두가 유만수가 연경에 돌아가 발전하면 ‘천하의 권력을 쥔 이인자’가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결정을 내렸다. 바로 서경에 정착해 국경을 지키겠다고 한 것이다.
“일리가 있네요.” 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번 경천 랭킹은 큰 변동이 있었어요. 이원무와 백준이 연이어 죽고 반유림은 행방불명이며 부규환은 한 칼에 쓰러졌죠. 작년 톱10 중 4명이 사라졌으니 정말 큰 손실이에요. 다행히 새로운 강자들이 등장해 공백을 메웠어요. 정말 ‘강산은 인재가 계속 이어지고 신세대가 구세대를 대체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네요.” 이청성은 감탄하며 말했다. “새로 순위에 오른 이들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유진우는 갑자기 물었다. “5위, 채원진, 호룡각의 신임 각주죠. 이 사람은 아바마마께서도 전에 당신에게 언급하셨던 인물이에요. 송원호란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 중이에요. 이원무가 죽으면서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 거죠.” 이청성이 대답했다. “채원진이란 사람은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예전에는 경천 랭킹에 없었는데 이원무가 죽자마자 순위에 올랐고 그것도 그렇게 높은 위치인가요?” 유진우는 약간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게 말이죠. 채원진이라는 사람은 아주 깊이 숨어 있던 인물이에요. 이원무가 억누르고 있던 시절에는 채원진의 존재를 눈치챌 수 없었죠. 하지만 이원무가 죽고 나서 채원진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고 엄청난 수단으로 호룡각 잔당들을 정리했어요. 그러면서 천기각이 그제야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5위라는 평가는 보수적인 것이고 그의 실제 실력은 삼대파의 종주들과 견줄 만하다는 평이 많아요.” 이청성의 말투는 점점 진지해졌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군요?” 유진우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경천 랭킹의 강자는 순위마다 큰 격차가 있었다. 예전에 백준은 혼자서도 경천 랭킹 강자 3명과 싸워 완벽히 우위를 점했으니 말이다. 또한 자신이 부규환과 싸웠을 때 서로 막상막하였고 술법을 써야 겨우 승리했었다. 그렇다면 부규환보다 더 상위에 있는 채원진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와 맞닥뜨린다면 이길 수 있을지는커녕 목숨을 건지는 것조차 어려울 수도 있었다. “호룡각 부각
“어쨌든 이 진무열이 천교 랭킹에서 3위를 차지할 정도라면 분명 비범한 능력을 가졌을 겁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보세요. 그래도 친척이잖아요.” 이청성은 반쯤 농담 식으로 말했다. “적일지 아군일지 아직 모릅니다. 난 진씨 가문에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어요.” 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온화하고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진씨 가문에 의해 가문을 떠나야만 했고 이후 한 번도 그곳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진씨 가문이 결코 좋은 집안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진무열이 어떻든 유진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물론 진씨 가문이 인재를 길러내는 데 있어 독보적인 능력을 가진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공주님은 그 정도 실력을 가졌으니 천교 랭킹에도 올라야 정상 아닌가요? 그런데 왜 이름이 없죠?” 유진우가 문득 물었다. “이건 무림인들의 세계의 순위표예요. 황실 인물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청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천기각이 아무리 강력한 정보기관이라 해도 모든 걸 완벽히 알 수는 없어요. 이 순위표는 단지 참고용일뿐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용국은 땅이 넓고 숨은 고수들이 많으니 우리가 모르는 곳에 더 강한 인물들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건 맞는 말이네요.” 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고 사람 위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 법. 천교 랭킹에 들지 않은 강자가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마지막 순위표를 발표할게요. 이번에는 경천 랭킹입니다.” 이청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경천 랭킹은 용국 최정상 강자들의 순위표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각 지역의 거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먼저 경천 랭킹 1위는 여전히 변함없는 존재, 용호산의 장선기입니다.” “그리고 2위와 3위는 큰 변화가 있었어요. 이전에는 호룡각 각주 이원무와 서경검선 백준이 차지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2위가 검종의 종주, 홍흥조예요.” “3위는 천하회의 종주, 소
“신병 랭킹 4위는 취설검, 소유자는 홍흥조.” “신병 랭킹 5위는 패왕도, 소유자는 소명.” “신병 랭킹 6위는 추성검, 소유자는 한서.” “신병 랭킹 7위는 천뢰도, 소유자는 진무열.” “신병 랭킹 8위는 황천검, 소유자는 홍군림.” “신병 랭킹 9위는 창궁검, 소유자는 유장혁.” “신병 랭킹 10위는 폭우이화침, 소유자는 당흠.” 이청성은 신병 랭킹의 순위를 차례로 읊으며 그에 관련된 정보를 전달했다. 신병 랭킹에는 신병의 이름뿐 아니라 그 소유자의 정보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신병 랭킹 상위 10위에 두 자루나 이름을 올리다니, 이게 기쁠 일인지 걱정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군.” 유진우는 리스트를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병 랭킹에 오른다는 건 겉으로는 영광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동시에 커다란 위험을 동반한다. 이른바 ‘옥이 무거우면 지키는 자가 고생한다’는 말처럼 신병을 손에 넣은 이상 이를 지킬 만한 강한 실력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지의 고수들이 신병을 노리고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두 자루나 가졌으니 속으로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청성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무도 고수들이 제대로 된 병기를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혼자서 두 자루를 차지했으니 그들이 얼마나 부러워할지 상상이 가네요.” “저는 번거로운 일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신병 랭킹이 발표된 이상 앞으로 제 무기를 노리는 고수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겠군요. 일일이 방어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예요.” 유진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청성은 웃으며 대꾸했다. “사람들이 당신의 검을 빼앗으려면 먼저 자신의 실력을 고려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만 잃게 될 테니 그런 멍청한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오호? 무슨 뜻이죠?” 유진우는 흥미롭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곧 알게 될 겁니다. 이제 나머지 두 개의 리스트를 들려줄게요.” 이청성
“당신이?” 유진우는 놀란 눈으로 이청성을 바라보며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공주 전하, 당신은 귀족 중의 귀족이고 신분이 고귀합니다. 이런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건 어울리지 않아요. 제가 당신을 끌어들일 순 없습니다.” “뭐죠? 저를 무시하는 건가요?” 이청성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순간, 날카로운 백색 강기가 그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와 창문을 뚫고 날아가더니 정원에 있는 바위산을 강타했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위산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마스터 강기?” 유진우의 동공이 흔들렸다. “설마 당신이 무도 마스터란 말입니까?” 여성이 무도를 수련하는 것은 남성보다 훨씬 어렵다. 그중에서도 여성이 마스터 경지에 이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유진우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해 보이는 이청성이 이미 마스터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더 놀라운 점은 그와 오랫동안 함께 있었음에도 그녀의 정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여자는 정말 철저히 감추고 있었구나.’ “제 실력은 당신만큼은 아니지만 부담을 덜어줄 정도는 됩니다.” 이청성은 평온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남자였다면 황제 자리는 틀림없이 당신 것이었을 겁니다!” 유진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친제감 사람들이 대체로 무력을 추구하지 않고 점복술, 기문둔갑에 더 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청성이 마스터 경지에 이를 정도로 무술에 능통하다면 그녀가 익힌 술법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녀가 이전에 사용했던 호신 부적만 보더라도 이는 명백했다. “빈말 그만하고요.” 이청성은 손을 흔들며 대화를 끊었다. “당신을 돕겠다고는 했지만 조건이 있어요.” “어떤 조건이죠?” 유진우가 물었다. “간단합니다. 저를 도와 용원의 기를 찾아주세요.” 이청성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물론 찾으면 공평하게 나누죠.”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도 아니면서 용원의 기는 왜 찾으려고 하는 겁니까?” 유진우
그 무엇보다도 배신이 가져온 심리적 충격이 가장 컸다. “유장혁 씨, 제가 한 가지 충고하겠어요. 말라죽은 낙타가 말보다 크다고 하잖아요. 호룡각이 비록 큰 타격을 입었지만 남은 잔당들 역시 여전히 강력한 세력입니다. 절대 방심하면 안 됩니다.” 이청성은 엄중한 말투로 말했다. “알고 있어요.” 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할 겁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제가 혼수상태에 있던 이 사흘 동안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유진우가 다시 물었다. “당신 말에 생각난 게 있네요.” 이청성은 무언가 떠올린 듯 말했다. “황실 정보에 따르면 최근 호룡각 잔당들이 연경을 떠난 것 같아요. 그들이 운영하던 은밀한 사업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하더군요.” “연경을 떠났다고요? 어디로 갔죠?” 유진우는 다급히 물었다.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판단해 보면 호룡각 잔당들은 서경으로 향한 것 같아요.” 이청성이 말했다. “서경?” 유진우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설마 서경왕부를 노리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겠어요! 지금 바로 서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상처가 땅겨 아팠고 이내 숨을 들이켰다. “움직이지 말아요!” 이청성은 그의 어깨를 눌렀다. “지금 당신은 원기가 크게 손상됐고 관통상을 입었어요. 비록 제가 옥로고를 발라줬지만 완전히 회복하려면 며칠 더 쉬어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호룡각은 이미 준비를 마쳤을 테니 이번 서경행에는 큰 음모가 있을 거예요. 반드시 그들을 막아야 합니다!” 유진우는 단호히 말했다. “지금 당신 상태로 어떻게 막으려는 건가요?” 이청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채원진의 실력은 깊이를 알 수 없고 곁에는 강력한 고수들이 있어요. 당신이 전성기라 해도 그들을 막기 어렵겠죠. 지금처럼 부상 중인 상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 채 유진우는 점차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그의 상반신은 두꺼운 붕대로 감겨 있었고 팔다리는 무겁고 힘이 없었으며 숨결 또한 매우 약했다. “나 안 죽었나?” 유진우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방 안의 환경을 둘러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 와본 적이 있는 곳 같았다. “깨어났군요?” 이때, 이청성이 맑은 죽 한 그릇을 들고 천천히 방으로 들어왔다. “당신 부상이 심각했지만 기초 체력이 좋아 다행히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구했나요?” 유진우는 놀란 기색을 띠며 물었다. “그럼 누구겠어요?” 이청성은 담담히 대답했다. “전에 내가 준 호신 부적이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의 심맥을 지켜주고 강력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줬어요. 덕분에 당신을 저승 문턱에서 끌어낼 수 있었죠.” “그 호신 부적에 그런 기적 같은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런 귀한 물건, 혹시 남은 거 없나요? 두어 개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유진우는 뻔뻔스럽게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 최근 그의 상황이 너무 위험했다. 강적을 만나지 않으면 가까운 주변에서 내통자가 나오기 일쑤였다. 며칠 만에 몇 번이나 생사를 오갔으니 목숨을 지킬 보물이 간절히 필요했다. “흥! 당신은 그걸 장바구니에 들어 있는 배추쯤으로 아는 건가요? 있다고 쉽게 줄 수 있는 물건인 줄 알아요?” 이청성은 짜증 섞인 말투로 답했다. “호신 부적 하나를 만들려면 제가 10년의 수명을 소모해야 해요. 게다가 호신 부적이 파괴되면 저도 그만큼 부상을 입어요. 지금껏 제 생에 단 두 사람에게만 호신 부적을 준 적 있습니다. 한 사람은 우리 아바마마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10년 수명을 소모한다고요? 그렇게 귀한 건가요?” 유진우는 깜짝 놀랐다. 수명을 대가로 만든 보물은 확실히 범상치 않았지만 동시에 위험성도 매우 컸다. 특히 이처럼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지는 소모품이라면 그 가치가 더욱 어마어마했다. “제가 농담하는 줄 알았어
놀랍게도 그는 바로 유진우에게 중상을 입은 사철수였다. “사 장로님, 부상당하셨습니까?” 용좌에 앉아 있던 가면을 쓴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쉰 듯한 음색이었다. “작은 부상입니다. 죽지는 않겠지요.” 사철수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다시 또 기침하며 피를 토해냈다. “보아하니 꽤 심각한 것 같은데 이 약을 복용하십시오.” 가면을 쓴 남자가 갑자기 손을 휘두르자 검은색 약이 공중으로 튀어 날아갔다. “감사합니다.” 사철수는 약을 재빨리 잡아들고는 망설임 없이 머리를 젖혀 그것을 삼켰다. 호룡각의 영단묘약은 엄청 귀중한 보물로 아무리 심각한 부상이라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영단묘약은 상층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송 어르신...” 사철수가 뭔가를 말하려던 찰나 가면을 쓴 남자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지금 저는 채 씨입니다. 저를 채 선생이라 부르든 채 각주라 부르세요. 과거의 이름은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채 각주.” 사철수는 몸을 낮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 장로님, 제가 맡긴 임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면을 쓴 채원진이 물었다. “유장혁의 심장을 칼로 찔렀습니다.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지금쯤 이미 죽었을 겁니다.” 사철수가 보고했다. “훌륭하네요!” 채원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 장로님, 또 한 건의 큰 공을 세우셨군요!” “채 각주, 당신이 시킨 대로 했으니 제 딸을 풀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철수는 간절히 부탁했다. 그가 여전히 호룡각의 명을 따르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딸 때문이었다. 그의 사랑하는 딸은 이미 호룡각에 의해 감금된 상태였다. 1년에 한 번밖에 얼굴을 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명령에 불복하거나 배반하려는 기색을 보이면 그의 생명은 물론 딸 역시 끔찍한 고문과 굴욕을 겪게 될 터였다. 이것이 호룡각이 간첩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단순하고도 폭력적이며 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