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대의 말대로라면, 창산의 눈보라는 이튿날 오후까지 지속될 것이다. 게다가 적어도 눈이 멈추고 나서야, 산에 올라와 구조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이 소식을 듣자 야영지에 남아있던 집사가 나서서 모두에게 잠자리를 매련해 주었다.“저희가 방을 제공해 드릴 테니, 오늘 저녁은 모두 이곳에서 푹 쉬기 바랍니다. 내일 일은 내일에 다시 이야기합시다.”야영지에 머무른 사람들은 모두 부잣집 도련님이나 아가씨들, 혹은 이진 또는 이건과 같은 사람들이다.대부분 산속에서 야영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 전혀 야영지에 적응하지 못했다.그러나 현재 상황으로서 지낼 곳을 찾지 못한다면, 저녁에 분명 얼어 죽을 것이기에 그들은 마지못해 야영지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다음은 방 배정의 문제였다.만약 함께 온 무리의 사람들로 방을 나눈다면 분명 방이 모자랄 것이다. 결국 한참을 토론한 결과, 남녀가 따로 방을 쓰기로 결정했다.즉, 오늘 저녁 이건은 이진과 따로 지내야 된다는 것이다.방금 이진이 걱정하던 모습을 생각하자 이건은 마음이 아파,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장난스럽게 이진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오늘 밤은 나 혼자 재밌게 놀아야겠네. 자기야, 내 생각 너무 많이 하진 마.”이진은 입을 오므리더니 웃고 있던 이건을 보게 되었다. 이진은 마음속으로 이건의 유치함을 비웃었지만, 조금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이진은 이건을 놀리기 위해 손을 흔들며 장난스레 말했다.“그럼 진짜 이건 씨 생각 안 할 거예요! 안 그래도 오늘 밤에 잘생긴 남자들과 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마침 이건 씨도 바쁘셔서 다행이네요.”이건은 미소를 감추더니 장난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손을 내밀어 이진의 허리를 가볍게 꼬집었다.“절대 안 돼!”모두 정리를 마친 뒤 점심시간이 되자 다들 홀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음식도 준비되지 않았다.그러자 누군가가 집사를 찾아가 물었는데 집사는 그제야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야영지에는 취사도구가 없어서 밥을 드시려면 스스로 불을
설아는 갑작스러운 시선에 등 뒤에 식은땀이 가득했는데, 그저 묵묵히 주먹을 쥔 채 마음을 가라앉혔다.그리고 가는 눈썹을 찌푸리고는 가볍게 기침을 하더니 비꼬듯이 말했다.“이진 씨, 혹시 밥하시기 싫으셔서 장작 패러 가겠다고 하시는 거 아니에요?”그들은 야영지에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아 자기소개를 했기에, 서로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혹시 장작 패러 갔다가, 또 힘없다고 꾀부리시려는 건 아니죠?”설아의 목소리는 잔잔한 바람이 스치는 것처럼 부드러웠지만, 꺼낸 말들은 듣기 거북했다.하지만 야영지에 있는 많은 여자들은 잇달아 설아의 편을 들었다.이유는 매우 간단했다.이진과 이건의 사이좋은 모습이 질투 되었기에 이진한테 적의를 품은 것이다.여자들은 이진을 가리키며 속닥거렸지만, 이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남자들을 따라 출발했다.이진이 괜한 일에 힘을 소모할까 봐, 이건은 자상하게 이진의 도끼를 들어주려고 했다.이진도 이건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싱긋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한 후 도끼를 그에게 넘겼다.이때 남자들 사이에 누군가가 몰래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바로 설아를 좋아하는 방하민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설아는 기분이 좋아 그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이건과 이진을 보자마자 표정이 달라지더니, 더 이상 하민을 상대하지 않은 채 그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이유를 물어도 그저 이진이 싫다고만 말했다.설아가 이진을 싫어하자 하민도 덩달아 이진을 싫어하기 시작했고, 기회를 봐서 설아를 도와주려고 했다.이진이 도끼마저 혼자 들지 않으려고 하자, 하민은 설아의 말대로 이진이 일하기 싫어 꾀를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하민은 자기도 모르게 비꼬기 시작했다.“방금 누군가는 출발하기 전에 장작을 패겠다고 잘난 척하시더니, 왜 도끼를 남한테 맡기는 걸까요?”하민은 말을 하면서 그럴듯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참, 제가 보기엔 도끼를 들 힘조차 없는 것 같은데, 왜 괜히 장작을 패겠다고 따라온 건지.”주변
그들은 곧 장작을 다 패고 야영지로 돌아왔다.몇 명의 아가씨들은 방 안에서 열기를 찌를 듯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때때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나긋나긋한 표정을 지었다.이진이 돌아온 것을 보자 그녀들은 분분히 입을 다물고는 이진을 쳐다보았는데, 모두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방 안이 잠시 조용해지더니 설아가 앞장서서 이진에게 시비를 걸었다.“이진 언니가 돌아오셨네요? 남자분들이 언니를 챙기느라 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아무것도 할 줄 모르시면서 억지는 왜 부리셨어요?”“그러게,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지? 난 창피해서 못 나서겠던데.”“나도 이진 언니의 뻔뻔함에 탄복하게 되었어.”말을 하던 여자들은 저마다 웃기 시작했고, 모두 호의적이지 않은 표정으로 이진을 쳐다보았다.이때 이진은 작은 장작 한 묶음을 안고 있었는데, 그녀는 여자들의 말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빠른 눈동자로 방안 구석구석을 훑어보며, 장작을 내려놓을 만한 곳을 찾으려 했다. 그 여자들은 이 작은 장작들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전혀 몰랐을 것이다.이진의 이런 모습을 보자 여자들은 또 이러쿵저러쿵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설아의 목소리가 특히 우렁찼다.“참, 우리가 몇 마디 좀 했다고 잘난 척하시는 것 좀 봐. 장작 몇 개 가지고 유난을 떨기는, 저 정도는 우리들도 쉽게 들 수 있을 거야.”“맞아, 맞아.”몇 사람은 설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지만, 일어나서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이진은 그제야 방금부터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여자들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무표정으로 장작을 안은 채 여자들 앞에 다가갔다. 이진은 별다른 표정 없이 설아의 주먹 만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설아는 이진의 차가운 눈빛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자리를 옆으로 옮겼다.“뭐, 뭐 하시려는 거예요?”사실 하민이 방금 설아에게 전화해, 이진이 자신에게 도끼를 휘두른 일을 말해주었다.설아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이진의 실력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설아는 뒤에서
이건은 말을 마치고는 이진의 곁으로 다가가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장작더미를 보더니, 상황을 바로 알아차렸다.이건은 여자들의 뜨거운 눈빛을 무시하고는 곧장 이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이진의 섬세한 피부를 매만지며, 때때로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이건의 따뜻한 눈동자에는 온통 이진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는데, 방금 설아를 경고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방금 그 장작들이 엄청 무거웠을 텐데 손이 아프진 않아?”이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아파요.”“여기는 내가 치울 테니까 먼저 가서 좀 쉬어.”이건은 이진이 홀로 이렇게 무거운 장작을 옮기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이진은 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전 먼저 여자분들과 함께 밥을 해야 되니까, 좀 이따 밥 먹고 나서 쉬면 돼요.”이때 옆에서 지켜보던 설아는 얼굴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설아는 이 자리에 있는 여자들이 모두 부잣집 아가씨들이기에, 이건이 조금이나마 이진을 탓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은 전혀 설아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이진을 보살피기만 했다.설아가 질투심이 활활 타올라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안색이 어두워지자, 원래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들이 몰래 설아를 비웃었다.그러나 설아는 남이 비웃는 것을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이진을 향해 소리 질렀다.“누가 당신과 함께 밥을 한대요? 전 밥하겠다고 말한 적 없어요!”이진의 매서운 눈빛은 날카로운 칼처럼 설아에게 꽂혔다.“밥을 하지 않는다면 먹지도 마세요. 이곳에선 아무도 당신을 아가씨로 보지 않을 것이니, 밥을 하든 말든 당신의 선택이에요. 그리고 당신들도 마찬가지예요.”이 말을 마치고 이진은 몸을 돌려 식재료를 운반하러 갔다.그 아가씨들은 방금까지 설아를 비웃고 있었는데, 이진의 말을 듣자 모두 표정이 굳어졌다.이건이 옆에서 차갑게 쳐다보자 그녀들은 놀란 나머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우물쭈물 이진을 따라갔다.한바탕 소란을 겪은 후, 여자들은 더 이상 입을 함부
평소라면 시혁의 이간질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을 이건이지만 오늘은 상황이 달랐다.이건의 옆에 시끄러운 여우 년이 앉아있었기 때문이다.설아는 줄곧 눈치 없이 말을 걸어오는 것도 모자라 이진에게 ‘누명’을 씌웠다.만약 이대로 놔둔다면 분명 계속해서 이진의 신경을 건드릴 것이다.이건은 이것만은 절대로 참을 수 없었다!이런 생각에 이건은 차갑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한시혁 씨께서 잘 모르시나 본데, 제 아내는 엄청나게 너그러운 사람이에요. 게다가 제 취향과 습관을 아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절 존중해 주시거든요. 이 음식은 제가 줄곧 익숙하고 좋아하는 맛이라, 제가 잘 먹기만 한다면 이진은 누가 만든 건지를 둘째 치고, 제가 많이 먹기를 바랄 거예요.”사실 이건은 진작에 이 요리들이 전부 이진이 만든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이진이 만든 요리만을 먹을 수 있고, 그 맛을 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이건이 방금 한 말들은 그와 이진의 애틋한 관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설아의 주제넘은 행동들을 은근히 비꼬았던 것이다.이진은 이건의 말 뜻을 알아차리고는 눈썹을 찡긋거리더니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설아는 이건의 말을 잘못 이해하기만 했다. 앞서 이야기한 말들은 모두 흘려듣고는 이건이 맛있다고 했던 말만 계속 떠올렸다.설아는 두 눈을 반짝이며 이건을 쳐다보며 물었다.“이건 오빠, 정말 설아가 만든 음식이 맛있어요?”설아는 말을 하면서 이건에게 다가갈 기회를 엿보더니, 곧 부끄러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두 눈을 감았는데 그 모습을 무척 행복해 보였다. “이건 오빠도 참, 이렇게 대놓고 칭찬하시는 건 너무 부끄럽잖아요!”이진은 설아의 말을 듣자 오한이 느껴졌고, 눈꺼풀이 계속 뛰었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식사를 마친 후 모두 홀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이건은 몇 번이나 이진을 찾으려고 했지만, 설아가 껌딱지처럼 붙어있어 도저히 도망칠 수 없었다.이 장면을 본 시혁은 내심 기뻐하더니 이진을 찾아 이
이진과 이건이 함께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혁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주먹을 꽉 쥐었다. 심지어 손톱이 손바닥의 살을 스쳤는데도 시혁은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윤이건, 기다려!’시혁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소리를 지르고는, 옆에 놓인 나무를 세게 걷어찼다.“윤이건.”한 쌍의 검은 눈동자는 이미 분노와 질투로 가득 차서, 더 이상 다른 것을 담을 수 없었다.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자, 시혁은 옆에 놓인 유리컵을 닥치는 대로 힘껏 쥐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유리잔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그대로 부딪혀 깨지자, 셀 수 없이 많은 유리 조각들이 날려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루트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 놀라더니, 혹시라도 날아오는 유리 부스러기에 다치기라도 할까 봐 멀리 자리를 피했다.주변이 곧 조용해지더니 유리 조각들은 빛에 반사되어 차가운 빛을 반짝였다. 또한 시혁의 마음도 유리조각들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루트는 겁에 질린 채 시혁을 멀리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떠났다.‘혹시 머리에 문제 있는 사람 아니야?’한편 이진은 이건의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구석으로 갔다.제대로 서기도 전에 이건은 한눈에 이진의 손목에 새로운 상처가 생긴 것을 보았다.이건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얼른 이진을 붙잡고는,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잡고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그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어 이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어쩌다가 다친 거야?”이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진은 자신의 손목에 상처가 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진은 한참을 생각한 후 에야 진지하게 대답했다.“장작을 팰 때 살짝 그어진 걸 거예요.”이건은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왜 말 안 했어? 아프진 않아? 상처를 싸매야 되는 거 아니야? 괜히 처리를 잘 못 다가 흉터가 생길지도 몰라.”“작은 상처일 뿐이라 괜찮아요.”이진의 눈에 이 정도 작은 상처는 정말 별것 아니었다.
그 사람이 빠르게 떠나는 모습을 보자 이진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눈보라가 이렇게 세게 불어오는 와중에, 이런 외진 곳에 누군가가 나타날 리는 없지 않아요?”그리고 방금 그 사람의 표정은 매우 당황해 보였고, 사과할 때의 눈빛도 무척 이상했다. 마치 무언가를 하다가 들킨 사람 같아 보였다.이진은 이 사람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이건 씨, 전 저 사람이 이번 사건과 관계있다고 봐요. 저 사람의 행동을 한번 지켜봐 주세요.”“그래.”두 사람은 곧 홀에 돌아왔다.홀에 들어서자, 이건은 방금 나타난 그 사람을 찾으려고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그 사람이 마침 시혁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이건은 그동안 마음속에 맴돌았던 추측들을 떠올리며 시혁에 대한 의심을 더해갔다.“이진아.”이건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난 아직도 이 일이 한시혁 씨와 관계있는 것 같아. 저것 좀 봐.”이진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건의 눈빛을 따라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루트가 다가왔는데, 루트는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이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이건은 상황을 지켜보더니 자리를 비켜주려고 했는데, 이진은 이건의 팔을 잡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루트는 곧 그들 앞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이진 누나, 저는 하루라도 빨리 백 년 성학련을 찾아 서둘러 할머니를 치료해 줘야 돼요.”그가 시간을 지체할수록, 할머니가 병상에 더 오래 누워 계셔야 한다는 생각에, 루트는 더욱 안절부절못하여 한시도 기다릴 수 없었다.루트는 입술을 오므리며 망설이는 표정으로 말했다.“제가 먼저 찾으러 가보면 안 될까요? 만에 하나 한 번에 찾을 지도 모르잖아요. 이진 누나, 저한테 먼저 백 년 성학련이 어떻게 생겼고, 보통 어디에 자랐는지 알려주시면 안 돼요?” 루트의 말을 듣자 이진은 그제야 루트를 데리고 창산에 온 주요 목적이, 성학련을 따는 것이라는 걸 기억해 냈다. 오늘 너무 많은 일들을
이건의 진심 어린 관심에 이진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정말 괜찮아요. 이건 씨는 다른 사람이 한 요리를 못 드시잖아요. 괜히 저 때문에 저녁을 굶기라도 하면 안 되죠.”이건은 결국 이진을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말했다.“그럼 몸조심해야 돼. 조금이라고 아프다면 바로 가서 쉬어. 내가 있는 한 아무도 널 뭐라 할 수 없을 거야!”말을 하던 이건은 매서운 눈동자로 우연을 노려보았는데, 마치 그녀를 경고하는 것 같았다.그런 눈빛을 본 우연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더니, 입을 다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우연의 매니저는 기분이 조금 상했다.우연은 그녀가 직접 발굴한 배우인 데다가, 그녀의 ‘보물’이나 다름없기에, 매니저는 우연이 괴롭힘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게다가 매니저는 이건이 계속해서 이진을 감싸고도는 모습에, 질투가 나기도 했다. 매니저는 자기도 꽤나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이런 생각에 화가 잔뜩 난 매니저는, 우연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그냥 일하기 싫다고 말하면 될 것을, 굳이 아프다고 핑계 댈 건 없잖아. 하마터면 나까지 속을 뻔했어.”그리고 명함을 하나 꺼내더니 이진을 보며 말했다.“이건 제 명함이에요. 이진 씨는 연기에 재능이 있으신 것 같은데, 만약 배우 하실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제가 직접 이진 씨를 도와드릴게요.”우연의 매니저는 이를 악물며 말을 마쳤다.이에 대해 이진은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잘 생각해 볼게요.”매니저는 이진의 대답을 듣고 차갑게 웃더니 자리를 떠났다.이진은 신경 쓰지 않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계속 요리를 했는데 부엌은 그제야 조금 조용해진 것 같았다.갑자기 들려온 여자의 울음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는데, 모두 깜짝 놀라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을 보자 우연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있었는데, 도끼는 한쪽에 버려져 있었고 얼굴에는 온통 눈물자국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