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말을 하지 않고는 정희와 함께 유연서를 방에 데려다주었다.이진이 술에 취한 유연서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몸을 돌리자 정희가 뭔가를 말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할 말 있어?”정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방금 화원에서 웨이터들이 한 말 너도 들었지?” 이진은 방금 그 대화들을 떠올리더니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반디 호텔의 장부에 결손이 생겨 곧 파산하게 된다는 건 이 중에 분명 뭔가 비밀이 있을 거다.“맞아, 하지만 떠도는 말들은 굳이 듣지 않는 게 좋을 거야.”사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미 해변 프로젝트의 진실성을 추측하고 있다.정희는 그제야 깨달은 듯이 이진에게 말했다.“난 애초부터 이 호텔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 방금 그 직원들도 알고 있는 일을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거야.”정희의 다소 화가 나고 놀란 표정을 보자 이진은 고개를 돌려 깊이 잠든 유연서를 보았다. 그리고 곧 정희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갔다.“넌 어떻게 생각해? 너야말로 이 프로젝트를 인수하려고 했잖아. 만약 그 직원들의 말대로라면 큰 손실을 보게 될 거잖아.”이진은 잠시 웃더니 말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한편 유연서는 두 사람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는 눈을 떴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방금까지 취해 보이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사라졌다.“역시 속임수에 빠져든 거야.”방금 이진과 정희가 반디 호텔의 적자에 대해 토론한 것을 생각하자 유연서는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창밖의 캄캄한 하늘을 보면서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홀로 중얼거렸다.“일이 재밌게 흘러가겠네.”“말해봐, 이제 어떡할 거야?”정희는 이진보다 더 조급해하며 물었다.“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이진의 침착한 모습을 보자 정희는 초조해 죽을 것만 같아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 두 웨이터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반디 호텔의 계좌에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
이진은 상황을 보더니 얼른 앞으로 나아갔다.“아가씨, 괜찮으세요?”이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가까이 다가가자 여자의 몸에 있는 상처들이 뚜렷하게 보였는데 그 상처들은 절대로 여자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생긴 것이다.“아파, 아파!”여자는 뭔가를 피하는 듯 불안해하며 소리쳤다.“어디가 아프세요? 어디 부딪힌 거 아니에요?”정희도 몸을 웅크리고 걱정하며 물었다.이진이 손을 내밀어 여자를 부축하려던 찰나 그 여자는 옹알옹알 헛소리를 한 뒤 이진과 정희를 밀어내고 허겁지겁 도망쳤다.이진은 눈빛이 굳어지더니 중심을 잡고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정희를 붙잡았다.“저 여자 왜 저러는 거지? 어디 아프냐고 물어봐도 말 안 하고.”정희는 팔을 주물럭거리며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은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이진은 오히려 더욱 깊은 눈빛으로 그 여자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그러자 정희가 고개를 돌리며 이진에게 말했다.“이 호텔에 이상한 곳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방금 계좌 결손인 데다가 지금은 또 미친 여자를 만나다니.’이진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눈썹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저 여자 확실히 수상해.”정희는 의문을 품은 채 이진을 보았다.“여자의 모습은 거지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았을 때 그녀가 입고 있었던 치마의 가치는 2000만 원이 넘어.”이진은 담담하게 말하면서 점점 이 호텔이 남모를 비밀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2000만 원?”정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2000만 원의 옷을 입을 만한 사람이 이런 모습일 리는 없어.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할만한 사정이 있을 거야.’“그럼 어떻게 해야 돼? 저 여자 혹시 협박이라도 받은 건 아니겠지, 아니면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야?”정희는 어찌할 줄 몰랐는데 한편으론 그 여자가 걱정되었다.여자의 몸에 난 성차는 보기만 해도 아찔했기에 틀림없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먼저 따라가
정희는 화가 나다 못해 말을 이어가지 못했는데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말했다.“어서 도와주러 가자. 안 그러면 맞아 죽을지도 몰라! 방금 봤던 그 상처들은 분명 이곳에서 생긴 걸 거야! 우리라도 도와줘야 돼!”그녀는 생각할수록 조급했는데 안에 있는 여자가 나쁜 사람에게 제압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되어 얼른 일어서서 뛰쳐들어가려고 했다.이진은 정희가 충동적으로 행동하려는 것을 보고 얼른 그녀의 팔을 붙잡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해선 안 돼.”“저 여자가 쓰러질 정도로 맞고 있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어?”“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돼.”이진은 정희를 나무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리고 조용한 오두막을 한 번 보고는 다시 정희의 눈을 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우리가 지금 충동적으로 나서면 저 여자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 게다가 네가 달려든다고 해도 그들을 이길 거라는 확신도 없잖아, 저 안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여자를 구할 수 있겠어?”정희는 이진의 말을 듣자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여전히 걱정되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돼? 이대로 계속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이진은 빠르게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좀 있다가 다시 와보는 건 어때? 지금이 밤이긴 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너무 많아, 새벽에 사람이 없을 때 다시 온다면 안전할 거야.”정희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먼저 이곳을 떠나야겠어.”두 사람은 말을 마치고는 조용히 오두막을 떠나 호텔 로비 입구에 왔다.이때 정희가 물었다.“호텔 로비에 갈 거야?”이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녀는 오두막과 그 여자의 비밀이 더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반디 호텔의 뒤 화원에 어떻게 그런 오두막이 생긴 걸까.’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꽤 재밌다고 느꼈다.“분명 뭔가 비밀이 있을 거야.”“그럼 먼저 호텔 방으로 돌아가자.”이진은 로비 안의 떠들썩한 장면을 보자 다소 피
이진은 얼른 벽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 작은 오두막에 이렇게 많은 기구가 들어있다는 건 분명 이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발생했다는 거다.온몸에 상처투성이고 2000만 원짜리 치마를 입고 있었던 여자를 떠올리자 이진은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자는? 왜 안 보이는 거지?”정희는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혹시 가해자한테 끌려간 거 아니야?’이런 생각에 정희는 또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진은 정희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누구 있어요?”아무도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진은 멀지 않은 곳의 침대가 조금 흔들리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피해자들이 나쁜 사람을 피하기 위해 가장 많이 숨는 곳은 침대다.이진은 심지어 여자가 침대 밑에서 끊임없이 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천천히 앞으로 나가자 아니나 다를까 여자가 제대로 숨기지 못한 치마는 그녀가 화원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이진은 내색하지 않은 채 정희를 향해 사람이 침대 밑에 있다는 눈짓을 보냈다.정희도 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는데 두 사람은 함께 몸을 살짝 숙였다.그리고 손을 뻗어 침대 밑에 있는 여자를 잡은 뒤 밖으로 끌어냈다.여자는 심하게 발버둥 치기 시작했는데 여자는 몇 번이나 정희의 손에서 벗어났다.“얼른 끌어내!”이진은 여자의 팔을 꼭 잡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끌어내려고 했다.정희가 온 힘을 다하자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여자를 침대 밑에서 끌어냈다.여자는 끌려 나오자마자 횡설수설하다가 결국은 울음을 터뜨렸다.“아니, 싫어, 오지 마!”여자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손발을 휘저었는데 심지어 눈앞의 이진과 정희를 다치게 만들 뻔했다.정희 역시 어쩔 줄 몰랐는데 우선 이 여자를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가 문제였다.이진은 차분하게 쪼그리고 앉아 여자 옆에서 그녀의 등을 가볍게 다독였다.“무서워하지 않아도 돼요. 저희는 당신을 구하러 온 거예요.”이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자를 위로했다.여자는 여전히 무서워 몸을
이진은 여자 앞으로 가서 더 많은 정보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정희는 너무 두려운 마음에 어쩔 줄 몰라 이진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우리는 먼저 이곳을 떠나 저 여자를 도와줄 사람부터 찾아야 돼.”이진은 눈살을 찌푸리고 좀 더 지켜보려 했지만 결국 정희를 이기지 못하고 오두막에서 나오게 되었다.“뭐가 그렇게 급해? 난 더 물어볼 정보가 있단 말이야.”이진은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이미 저 지경이 되어버려 물어봐도 소용없으니 일단 빨리 사람을 찾아 구해주는 게 낫겠어.”정희는 칠흑 같은 하늘을 보며 걱정했다.“만약 방금 그 사람이 돌아오기라도 하면 어떡해.”이진은 입을 오므렸는데 정희가 한 말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그녀가 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정희를 연루시킬 수는 없다.두 사람은 황급히 밖으로 나가며 곧 뒤 화원을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눈앞에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났다.정희는 깜짝 놀랐고 이진은 경계심을 가진 채 눈앞의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정희를 자신의 뒤에 숨겼다.달빛 아래에서 희미하게 볼 수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하윤범이었다.방금 오두막에서 본 그림과 여자의 이상한 반응을 떠올리자 하윤범을 보는 이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정희도 그를 알아보고는 의심스러워하며 물었다.“하윤범 씨? 왜 이곳에 계신 거죠?”이진도 하윤범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그가 새벽에 이렇게 비밀스러운 장소에 나타났다는 것은 정말로 그 여자와 연관 있다는 건가?’이진은 말을 하지 않은 채 하윤범의 반응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하윤범은 잠시 놀라더니 곧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이진 씨와 정희 씨는 이 늦은 시간에 방에서 쉬지 않고 산책하러 나오신 건가요?”하윤범은 정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주인 행세를 하며 물었다.“저희, 저희는 그냥 아무렇게 걸어 다니는 거예요.”정희가 입을 열었다.“하윤범 씨도 늦은 시간인데 나오셨잖아요? 그렇다면 당신도 이 늦은 시간에 안 주무시고 산책을 하시는 거예요?”이진이 침착하게
“걱정 마, 어디 또 도망갔을 지도 몰라. 어차피 호텔의 면적이 크지 않아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을 거야.”정희는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하윤범 씨, 방금 저희가 왔을 때는 분명 사람이 있었는데 당신과 함께 온 지금은 사라져 버렸네요.”정희는 하윤범의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하윤범은 그녀의 말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만약 당신들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제가 부하들을 시켜 한번 찾아보도록 할게요. 하지만 그 여자가 왜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건지는 한번 제대로 조사해 봐야겠어요.”정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진과 함께 떠났다.“하윤범 씨, 저희가 잘 못 본건 절대 아니니까 이 호텔을 잘 정돈하셔야 할 것 같네요.”이진은 하윤범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갈 때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당연하죠. 그러나 아직 잘 모르는 일이니 일단 증거를 찾고 진행하도록 할게요.”하윤범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이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오두막을 나섰다.하윤범은 깨끗이 정리된 오두막을 보고 입을 오므린 채 문을 닫았다.방으로 돌아오자 하윤범은 시혁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하윤범, 내가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고 경고했지?”시혁의 화가 가득 난 목소리를 듣자 하윤범은 눈썹을 찡그리더니 곧 놀란 듯한 말투로 말했다.“벌써 들으셨어요?”“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두 똑똑히 알고 있어.”시혁은 소리를 높여 말했다.“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 내가 조용히 행동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지금 무슨 짓을 벌인 거야?”하윤범은 그의 말에 눈빛이 흔들렸는데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태도를 바꾸어 변명하기 시작했다.“죄송해요,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어요. 참지 못해 그 여자한테 잠깐 손을 댄 것뿐인데 그 여자가 제가 없는 틈을 타 도망간 것도 모자라 이진 씨한테 발견될 줄을 몰랐어요.”하윤범은 계속 변명을 늘여갔다.“오두막 안의 물건들은 그렇게 이진 씨한테 들킨 거예요.”“지금 그딴 말들을 변명이라고 지껄
윤이건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눈살을 찌푸렸다.“YS 그룹과 AMC의 기획안이 모두 훌륭해 둘 다 남기기로 결정했습니다.”하윤범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그러자 무대 아래에서 한바탕 의론 소리가 들려왔다.‘그렇다면 승부를 어떻게 가린다는 거지?’이건은 무의식적으로 이진에게 눈길을 돌렸지만 이진은 줄곧 하윤범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이건도 두 손을 꼭 잡은 채 하윤범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보려고 했다.“그래서 저는 이 두 회사에서 결승전을 통해 승자를 겨뤄 그중 승자와 합작을 하려고 합니다.”하윤범은 담담하게 말했다.이진은 가볍게 웃었는데 이 일은 절대로 이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입찰이 끝난 후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떠났다.“이진아, 할 말이 있어.”이건이 이진을 붙잡자 이진은 평온한 눈길로 그를 보았다.“하윤범은 분명 뭔가를 의도하며 이런 결과를 내린 거야. 이렇게 결승전을 벌이는 건 분명 우리 둘 사이의 모순을 심화시켜 서로 원망하게 만들기 위해서야.”이건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진은 그저 이건의 말을 우습게 생각하며 대답했다.“이번 입찰 결과는 실력으로 정할 것이니 윤이건 씨는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부터 생각하시죠.”뒤이어 그녀는 냉정하게 몸을 돌리며 떠났다.이건은 망설임 없이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자 한숨을 쉬었다. ‘정말 싸우기라도 해야겠네.’연회장을 나서자 정희는 일찌감치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정희는 이진의 곁으로 다가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물었다.“그럼 너와 이건 씨가 한 번 더 비겨야 되는 거야?”이진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방금 이건이 한 말을 다시 떠올리더니 그의 말도 꽤나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윤이건 씨가 방금 말했는데 하윤범 씨가 이렇게 하는 건 나와 윤이건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서라네.”정희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말했다.“윤이건 씨의 말이 일리가 있긴 해.”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하윤범의 행위와 이건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하윤범 씨가 굳이 나와 윤
이진은 입찰을 포기했기 때문에 굳이 현장에 가진 않았다.정희는 이 일을 알고는 바로 이진의 방 문을 두드렸다.“왜 입찰을 포기한 거야?”정희는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난 항상 제멋대로잖아. 전에 우리가 나눴던 얘기가 일리 있다고 생각되어 포기한 거야.”이진은 담담하게 말을 하고는 소파에 앉아 차를 마셨다.정희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나는 네가 이 프로젝트를 엄청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결국은 양보하였네.”“넌 내가 이 프로젝트를 따냈으면 좋겠어?”이진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정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저었다.“이 호텔에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겠어.”정희가 겁에 질린 모습을 보자 이진은 웃음을 터뜨렸다.이때 정희가 갑자기 물었다.“하루 종일 방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이진은 창밖의 화창한 날씨를 보았는데 오늘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호텔의 화원에 심은 꽃을 낮에 본다면 아주 예쁘다고 들었는데 산책이나 가봐야겠어.”정희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자 두 사람은 함께 다시 화원에 왔다.낮의 화원에는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여있어 단번에 두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이 호텔은 장식에 엄청 신경 쓴 것 같아.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화원을 가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정희는 꽃을 감상하며 말했다.이진은 그녀의 말에 가볍게 웃었는데 갑자기 구석에 있는 물건에 시선이 끌렸다.그녀는 천천히 걸어가서 그 물건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바로 천 조각이었다.‘이 화원에 어떻게 이런 이상한 천 조각이 나타날 수 있는 거지?’이진은 의심을 품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그날 밤 미친 여자의 치마가 갑자기 생각났다.‘이 재질과 무늬라면 그 여자가 입었던 거잖아?’이런 생각에 이진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는데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왜 그래? 천 조각일 뿐인데 뭘 그리 뚫어져라 보고 있어?”정희가 가까이 다가와 물었는데 그녀도 이 천 조각이 어딘가 낯익었다.“이거 혹시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