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은 입찰을 포기했기 때문에 굳이 현장에 가진 않았다.정희는 이 일을 알고는 바로 이진의 방 문을 두드렸다.“왜 입찰을 포기한 거야?”정희는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난 항상 제멋대로잖아. 전에 우리가 나눴던 얘기가 일리 있다고 생각되어 포기한 거야.”이진은 담담하게 말을 하고는 소파에 앉아 차를 마셨다.정희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나는 네가 이 프로젝트를 엄청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결국은 양보하였네.”“넌 내가 이 프로젝트를 따냈으면 좋겠어?”이진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정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저었다.“이 호텔에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겠어.”정희가 겁에 질린 모습을 보자 이진은 웃음을 터뜨렸다.이때 정희가 갑자기 물었다.“하루 종일 방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이진은 창밖의 화창한 날씨를 보았는데 오늘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호텔의 화원에 심은 꽃을 낮에 본다면 아주 예쁘다고 들었는데 산책이나 가봐야겠어.”정희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자 두 사람은 함께 다시 화원에 왔다.낮의 화원에는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여있어 단번에 두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이 호텔은 장식에 엄청 신경 쓴 것 같아.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화원을 가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정희는 꽃을 감상하며 말했다.이진은 그녀의 말에 가볍게 웃었는데 갑자기 구석에 있는 물건에 시선이 끌렸다.그녀는 천천히 걸어가서 그 물건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바로 천 조각이었다.‘이 화원에 어떻게 이런 이상한 천 조각이 나타날 수 있는 거지?’이진은 의심을 품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그날 밤 미친 여자의 치마가 갑자기 생각났다.‘이 재질과 무늬라면 그 여자가 입었던 거잖아?’이런 생각에 이진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는데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왜 그래? 천 조각일 뿐인데 뭘 그리 뚫어져라 보고 있어?”정희가 가까이 다가와 물었는데 그녀도 이 천 조각이 어딘가 낯익었다.“이거 혹시
이진이 말을 마친 후 세 사람은 숨을 죽이고 주위를 살펴보았다.갑자기 고요한 공기 속에서 어딘가 소리가 들려왔다.“저쪽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아!”정희가 말하자 이진은 바로 소리가 나는 곳을 보았는데 그곳에는 문이 하나 있었고 소리는 그 아래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소리가 지하에 있으니 그 여자가 지하실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이진은 차분하게 분석하고는 정희가 말을 하기도 전에 걸음을 내디뎌 지하실로 걸어갔다.시우는 정희를 단단히 감싸고 따라갔다.이진이 지하실 문을 열자 여자가 발버둥 치는 소리가 더욱 분명해졌다.“바로 여기야!”이진은 말을 하며 재빨리 아래로 내려갔다.세 사람은 어두컴컴한 지하실로 내려갔는데 시우는 손전등을 열어 지하실 한쪽을 밝게 비췄다.정희는 놀란 마음에 눈을 크게 떴다. 그 미친 여자는 지금 밧줄로 손발이 묶여 있었고 입은 테이프로 막혀있었다.여자는 그들을 보자 희망을 보았는지 얼른 몸을 비틀었다.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얼른 앞으로 나가 여자의 몸에 있는 끈을 풀어주고 그녀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찢었다.“괜찮으세요?”이진은 여자의 상태를 살펴보며 물었다.여자는 전보다 정신이 들어 보였지만 여전히 무서워하며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자 이진이 말했다.“걱정 마세요. 저희는 당신이 남긴 천 조각을 보고 당신을 구하러 온 거예요.”여자는 그제야 좀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여전히 경계하며 이진과 그녀의 뒤에 있는 정희, 시우를 보고 있었다.“이제 어떡하지? 차라리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게 어때?”정희가 말했다.“일단 먼저 밖으로 나가 어떻게 된 일인지부터 물어봐야겠어.”이진은 고개를 돌려 말한 뒤 땅에 앉아있는 여자를 부축했다.가까스로 여자를 지하실에서 데리고 나온 일행은 발각되지 않도록 은밀한 곳을 찾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이때 이진은 여자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하여 진지하게 여자를 보며 물었다.“아가씨, 이제 저희한테 당신의 신분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이진은 방금 여자를 부축하고 나올 때 이미 여자
“내가 보기에 이 가짜 하윤범은 분명 뭔가 의도가 있을 거야.”이진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녀의 얼굴에 걱정이 드러나자 정희는 다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은 웬만해선 이런 표정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왜 갑자기 이런 표정이야?”정희는 다급하게 물었다.“전에 이건 씨가 한 말이 맞아. 이 중에는 분명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 거야. 이사장부터 문제가 있다면 분명 호텔과 해변 프로젝트에도 문제가 있을 거야!”이진은 눈썹을 세게 찌푸리며 말했다.정희와 시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는데 그들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진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시우를 보며 물었다.“시우 씨, 지금 이건 씨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당장 가서 말해줘야 돼요!”시우는 잠시 당황하더니 곧 아침에 이건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는데 오늘 그는 분명 하윤범과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었다.“빨리 말씀하세요!”이진은 무척 긴장된 표정을 보였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진정하려고 노력했다.“윤이건, 이건이는 오늘 계약을 체결하러 갔을 거예요.”시우는 그제야 말했다.“게다가 이미 시작되었을 거예요.”시우는 시계를 보았는데 이때는 이미 계약 시간이 지난지 오래되었다.“큰일 났어.”이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어디서 계약하기로 했나요?”“어제 입찰회가 진행되었던 회의실에서 계약한다고 들었어요.”시우가 말을 마치자 이진은 재빨리 몸을 돌려 떠났다.“이진아, 어디 가는 거야?”정희는 이진을 따라잡으려 했지만 그들의 옆에는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다.“난 이건 씨를 찾으러 갈 테니 너희들은 먼저 저 여자분을 챙겨드려.”이진은 말을 마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급한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이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빠른 걸음으로 회의실로 가면서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전화는 계속 연결되지 않고 있었다.이진은 점점 마음이 급했지만 그래도 기대를 품고 회의실로 달려
이진은 그의 이런 자화자찬을 듣자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몸을 돌려 회의장을 나섰다.이건은 이진이 자기를 무시하고 떠나려 하자 재빨리 그녀를 따라갔다.“자기야, 방금까지 날 걱정했으면서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거야? 마치 날 따돌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이건은 흐뭇한 마음으로 그녀를 따라가며 물었는데 그의 시선은 시종 이진의 아름다운 옆태를 보고 있었다.“당신한테 별일이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만 가봐야겠어요.”이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는데 그녀는 괜한 걱정 한 것 같아 기분이 좀 언짢았다.이건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진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이진은 평소와 같아 보였지만 이건의 말을 들으려고 발걸음을 서서히 늦추고 있었다.두 사람은 한참 걸다가 호텔 로비에서 이건과 정희를 만났다. 정희는 이진과 이건이 함께 나오는 것을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이진 앞으로 걸아가 이건은 몇 번 보고는 이진에게 물었다.“어떻게 되었어?”“이미 하윤범이 가짜라는 걸 알아차리시고 그를 경찰서에 보내셨어.”이진은 담담하게 말했는데 사실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정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다시 이건을 보았는데 그는 평소같이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눈빛은 줄곧 이진을 향해있었다.시우도 이건의 곁으로 다가가 놀란 모습으로 물었다.“왠지 요즘 바빠 보인다 싶었는데 이미 하윤범이 수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던 거네.”이건은 시우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는 그저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이진은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그 여자는?”“이미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었으니 걱정 마.”정희가 말했다. 그녀와 시우는 그 여자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준 후 이진을 찾으러 온 거다.이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이건이 바로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자기야, 날 찾으러 와줘서 고마워.”이건이 말을 꺼냈는데 그는 이진의 마음속에 여전히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 이진을 보던 눈빛이 매우 반짝였다
이진은 이건의 이런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잠시 멍하니 서있기만 했는데 이건은 한 마디만 하고는 벌써 포기하고 말았다.‘이런 애교를 부리는 건 그래도 좀…….’“당신!”이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 뭔가 말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자기야, 이제 내 맘 알겠지? 아직도 화가 난 거야?”이건은 반짝이는 눈으로 이진을 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옆에 있던 정희와 시우도 전 과정을 목격했고 모두 기대하는 눈빛으로 이진을 보고 있었다.이진은 곧 기침을 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다신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마세요.”이건은 이 말을 듣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이진의 태도가 매우 분명했기에 화가 풀린 것이다.뒤이어 그들은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한편 시혁은 넓은 소파에 앉아 컴퓨터로 메일을 열어보았는데 그 안의 사진을 보자 순식간에 분노가 솟구쳐 온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그것은 그가 반디 호텔에 숨겨둔 직원이 보낸 사진들이었는데 그 속에는 호텔에서 발생한 일들과 그들이 그 미친 여자를 찾은 일, 그 후의 모든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시혁은 차가운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보스, 하윤범이 잡혔어요.”핸드폰 너머의 남자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계속 이진과 윤이건을 주시하고 있어. 무슨 상황이 생긴다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보고하도록 해.”시혁은 간결하게 분부한 뒤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그는 사진 속의 장면들을 주시하며 머릿속으로 호텔에서 발생한 일들을 정리한 뒤 두 손을 주먹 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는 핏줄이 현명하게 보였는데 그의 화난 기분을 더 잘 보여주었다.시혁은 유연서가 임무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아 손을 뻗어 책상 위의 핸드폰을 들어 유연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방에 있던 유연서는 시혁이 걸어온 전화를 보자 심장박동이 빨라졌는데 결국 손을 부들부들 떨며 전화를 받았다.“한, 한시혁 씨, 무슨 일이세요?”유연서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그녀는 최
“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할게.”한시혁이 간단하게 답했다.이진은 이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마디 더하다가 전화를 유연서에게 돌려주었다.유연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들여다보니 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아직 화해하지 않았어요?”이진은 이전에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아직 화해하지 않았지만, 괜찮아요,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유연서가 굳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정희가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와 손에 든 약을 소파 위에 올려놓았다.“그만해요, 이건 저와 이진이가 산 약이에요, 또 뭐가 필요하면 말해요.”한참을 찾고서야 겨우 다 찾은 정희는 조금 힘든 모습이다.“정말 고마워요. 늦었으니 빨리 돌아가 쉬세요.”유연서은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감사를 표시했다.‘그래도 배려심은 있네’이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정희를 데리고 나갔다.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진은 또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나서 몸을 돌려 말했다.“아, 민시우가 내일 우리를 데리고 불고기 먹으러 간다고 하던데, 쉴 겸 같이 가요.”이진은 유연서를 보며 초대의 마음을 전했다.이 일은 돌아오는 길에 민시우가 우연히 제기한 것인데, 반디 호텔에 불고기가 유명하다고 하였으나, 계속 맛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윤이건에게 같이 가자고 하였다.윤이건도 이진이가 명확히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승낙했고 가기로 결론이 난 것이다.유연서는 멍하니 있다가 답했다.“네.”답을 듣고 이진과 정희는 그제가 떠났다.방 안이 다시 조용해진 다음 유연서는 핸드폰을 다시 쳐다보았고 한시혁이 다시 전화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일정에서 윤이건이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다음날 오전, 약속대로 몇 사람이 호텔 로비에 모였다.민시우는 유연서를 보며 어제 자기가 불고기를 먹겠다고 했을 때 유연서를 부르지 않은 것을 알고 조금 어색했다.그러나 이미 온 이상 같이 먹는 것도 별문제 아
이진은 메뉴를 대충 보고 몇 가지 요리를 가리켰고, 나머지는 민시우가 바쁘게 움직였다.이진 옆에 앉은 윤이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내밀어 식탁 밑에서 이진의 손을 꼭 잡았다.이진은 원래 몇 번 반항했지만 윤이건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얼마만에 다시 잡은 손인데 더 잡아야지.”윤이건이 서운한 듯 말했다.뭐라고 꾸중도 할 수 없는 이진은 그냥 내버려두고 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식닥에서 이진은 윤이건과 함께 앉았고, 정희와 민시우는 그들 맞은편에 앉았고 유연서만 혼자 앉았다.마음이 불쾌한 유연서는 윤이건이 이진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 또 시선을 돌려 그들이 꽉 잡은 손을 보고 미칠 것만 같이 질투하였다. 그리하여 얼굴표정도 아주 나빴다.얼마 안지나 불고기가 나왔다. 이 옥상에서는 즉석 구이를 채택하고 요리사는 손님의 메뉴에 따라 옆에 있는 그릴에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고 요리사가 불고기 굽는 것도 볼 수 있었다.요즘 살이 좀 빠진 것 같은 이진의 얼굴을 보고 윤이건이 말했다.“이따가 많이 먹어, 내가 고기 썰어 줄게.”이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나 그렇게 많이 먹지 못해요.”“안 돼. 너 살 빠진 거 좀 봐.”윤이건이 말이 끝나자 옆이 종업원도 요리를 올리기 시작했다.이곳의 요리사 기술은 일품이고 구운 고기도 매우 맛있었다. 이진은 특급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어 맛보았는데 정말 최고의 맛이었다.그녀는 칭찬의 표시로 고개를 약간 끄덕였고, 윤이건은 그녀의 반응을 보고 돌아서서 그녀를 위해 더 많은 고기를 썰어 그녀의 접시에 담았다.이를 본 민시우는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포착되자 몸을 돌려 쑥에게 음식을 집었다.“자, 많이 먹고 살 쪄요.”민시우가 빙그레 웃으며 정희에게 말했다.정희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그래도 즐겁게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이렇게 좋은 고기인데 많이 먹어줘야지.’옆에서 외톨이 유연서는 완전히 배제된 느낌이다. 비록 그녀들의 요청을 받고 왔지만 그래도 그 분위기 속
모두에게 음식을 나누어 준 후, 이진은 침착하게 윤이건의 옆에 앉아 우아하게 자신의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었다.유연서는 자리로 돌아온 이진에게 밀려나며 달갑지 않은 감정이 북받쳤지만, 그녀 역시 숨을 참으며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질투에 차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왔다.이진 역시 유연서의 이상한 눈빛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음식을 먹었다.이진은 유연서가 아직 그 무슨 짓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유연서가 간 다음 윤이건의 안색은 많이 좋아 졌고 계속 이진을 위해 고개를 세심하게 설고 소스까지 만들었다.“이거 내가 만든 소스인데 맛있을 거야, 먹어봐.”윤이건은 이진의 접시에 담긴 불고기에 소스를 뿌리며 그녀 귓가에 속삭였다.정희는 약간 감탄하며 이 장면을 바라보았다. 윤이건은 정말 평소 그 냉담한 모습을 버리고 일거수일투족에서 귀족적인 기질을 한껏 드러냈지만, 모든 부드러움은 옆에 있는 이진에게만 주어지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여전히 냉담한 모습이었다.보아하니 확실히 진정한 사랑인 것 같았다. 정희는 안심하고, 곧 시큰둥한 눈으로 유연서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진한테서 윤이건을 빼앗아? 어림도 없지.”민시우는 정희의 풍부한 표정을 보고 그녀의 속마음이 궁금해져 고기를 썰어주기도 했다.“정희야, 이 고기 빨리 먹어봐.”민시우는 밝은 눈으로 이진을 보았다.민시우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정희는 가슴이 따뜻해졌지만 냉담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민시우가 정희에게 고기를 썰어주려고 할 때 맑은 전화벨 소리가 그의 동작을 멈추게 하였다.민시우는 약간 의심스러워 눈살을 찌푸리고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 전화를 한 사람은 그의 부하였다.다들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음식을 먹었지만, 다음 순간 민시우의 얼굴빛은 순간 변했고 분노와 충격적인 얼굴로 입을 벌려 믿기지 않은 듯이 전화 저편의 계속되는 사과를 들었다.“무슨 일이예요?”정희는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