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끊겼던 그 감정이 다시 되살아났다. 이때의 이진은 침대에 앉아 있었고 물러설 곳이 없는 상태였다. 비록 이진은 마음속으로는 기뻤지만 방금 누군가 쳐들어왔던 기억이 너무 강렬한 듯했다. 막 피하려고 할 때 눈앞은 갑자기 어두워졌고 그 후 이진의 입술은 따스한 온기로 뒤덮였다. “읍…….” 갑작스러운 키스에 이진은 무의식적으로 끙끙 소리를 냈고, 머리는 순간 새하얘졌다. 마치 머리가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진은 심장박동이 빨라졌고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싫은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이 더 컸다. 이진은 눈을 살짝 뜨고 지척에 있는 윤이건의 훤칠한 얼굴을 보더니 완전 무의식적으로 뺨을 한 대 때려버렸다. 착- 갑작스레 울리는 소리는 조용한 병실에서 유난히 우렁차게 들렸다. 이 한 대에 이진은 비록 힘을 주진 않았으나 확실히 윤이건을 놀라게 했다. 사실 윤이건은 말할 것도 없고 때린 이진조차도 멍해져 눈만 껌뻑거렸고 얼굴은 굉장히 불그스름 해졌다. “저, 저는…….” 이진은 정말로 윤이건을 때릴 마음은 없었다. 다만 갑작스러운 친밀감이 그녀를 놀라게 했을 뿐이었다. 다행히도 윤이건은 잠시 얼어붙어 눈을 껌뻑거리더니 순간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괜찮아요, 내가 너무 급했나 봐요.” 윤이건이 오히려 화라도 냈다면 이진의 마음은 조금 더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이건의 이런 자상함은 이진으로 하여금 더욱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입꼬리를 오므리고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윤이건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윤이건은 전화기 쪽에서 들려오는 간단한 보고를 몇 마디 듣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회사 쪽에 처리할 일이 생겼습니다. 먼저 가볼 테니 푹 쉬세요.” 말을 마친 윤이건은 일종의 위로의 의미로 이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윤이건은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방금 그가 말한 것도 사실이고 자신의 마음이 조금 급한 것뿐이었다. 윤이건은 두 사람 사이의 시간은 아직 충분하기에 이렇게
윤이건의 설명을 들은 이진은 모든 것을 이해한 듯했다. 유연서가 이 땅에 투자를 하려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해를 보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분명 이진을 함정에 빠뜨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필경 지금 유연서의 신분은 GN 그룹의 주주였기에 이 화가 이진에게 전부 미칠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을 생각한 이진은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즉시 핸드폰을 들고 케빈에게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 그러나 이진이 손가락이 막 스크린에 닿으려 할 때 마침 케빈에게서 먼저 메시지가 전송되어 왔다. [대표님, 아랫사람이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유연서가 이문권을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계속 주시하거라. 어떤 정보도 놓쳐서는 안 된다.]사실 아직 이진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케빈은 이미 유연수와 이문권을 추적하도록 두 사람을 더 보내 정보 수집량을 늘리도록 했다. 그리고 마침 유연수와 이문권의 뒤를 밟던 이진의 부하들은 마음속으로 그들을 비웃고 있었다. 그들은 유연수와 이문권이 자신들의 실력을 너무 믿어서인지, 아니면 머릿속에 위기의식이 부족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런 담판의 만남을 호텔 로비의 커피숍에서 갖다니, 정말 조금도 경계심이 없는 것 같았다. 이문권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커피 두 잔을 주문한 후 다리를 꼬고 앉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유연수를 바라보았다. “안색이 이렇게 안 좋은 걸 보니 유연수 씨의 복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나 봅니다?” 이문권의 한 마디는 유연수의 정곡을 크게 찔렀고 그녀는 커피를 받아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는 잔을 탁- 하고 내려놓았는데 마치 분노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난 이진 그 년을 반드시 죽게 할 거야!” 이 말을 들은 이문권은 두 눈이 번쩍였는데 그것이 도대체 기쁨인지 노여움인지 전혀 구별해 낼 수 없었다. “제가 유연서 씨를 찾을 때부터 저는 이미 유연서 씨가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필요한 것이 있기에 즐
이문권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유연수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지금 유연수가 이진 앞에서 센 척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문권 쪽의 세력 덕분이었다. 만약 이문권 쪽 세력을 잃게 된다면 유연수는 정말 의지할 곳이 하나도 없었다. 이걸 생각한 유연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결국 울분을 참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시 머물러 커피를 마시던 이문권도 자리를 떴다.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그들을 관찰하던 부하들도 조용히 떠났고 그들은 촬영한 영상을 정리해 이진에게 보냈다. 이 영상은 화면은 아주 또렷했으나 소리가 매우 흐릿했다. 하지만 이것은 해커 마스터인 이진에게 있어서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이진은 동영상을 컴퓨터로 옮긴 후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있던 윤이건은 놀란 나머지 입을 떡 벌렸다 다시 다물었는데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전혀 모르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깊은 무력감이 또 밀려왔다. 윤이건은 한쪽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오히려 부인인 이진만 정신없이 바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지만 윤이건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동영상 화면과 소리를 모두 조정한 이진이 그의 팔소매를 끌어당겼다. 이에 따라 컴퓨터에서는 또렷한 대화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문권과 유연수 각자의 목적을 들은 이진은 콧방귀를 뀌었고 옆에 있던 윤이건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주 죽으려고 발버둥을 치는구나.” 이 말을 들은 이진은 원래 컴퓨터 스크린에로 향했던 시선이 멍한 표정으로 윤이건을 향했다. 말하자면 윤이건이 독설을 퍼붓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이건 정말 신기할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 말을 내뱉은 윤이건도 그제야 반응했고 자신의 이 난폭한 모습을 이진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듯했다. 윤이건은 입을 오므리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보고 난 이진은 갑자기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저, 갑자기 어머니의 일기가 생각났어요.”“일기?
사실 이진은 넓은 환자복 아래 몸에 딱 붙은 나시도 입고 있었다. 다만 상처가 갈비뼈 위치에 있었기에 이 나시는 반으로 잘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이 화면은 윤이건을 충분히 놀라게 했다.아마도 윤이건은 부인이 너무나 당당하게 자기 앞에서 옷을 벗을 거라고 생각지 못한 듯했다. 원래는 윤이건이 이진을 놀려보려 했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자신이 약간 희롱당한 느낌이었다. 윤이건은 무의식으로 고개를 돌려 밖에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고개를 다시 이진 쪽으로 돌렸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만약 지금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방 안의 상황을 보기라도 한다면 윤이건은 당장이라도 경호원을 시켜 이 사람을 제대로 심문할 지경이었다.“옷 좀 잘 입어.” 이진은 윤이건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다소 찜찜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진은 여전히 손으로 옷감을 천천히 벗고 있었는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약을 갈아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옷을 벗지 않으면 약을 어떻게 갈아준 건데요?” 이 말만 들으면 아무래도 매우 이상하게 들리지만 사실 공기 중에 노출된 이진의 피부는 정말 일부분이었다. 이진은 마치 헬스장에서 입는 스포츠 속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남들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윤이건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이진의 복부는 옆구리의 화장 흉터와 희고 부드러운 온전한 피부는 양쪽 거즈로 감싸져 있었다. 이런 감정적인 갈등은 윤이건으로 하여금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도저히 모르게 했다. 이 감정은 정말 사람을 괴롭게 했다. 윤이건은 이를 악물더니 이진의 앞으로 가 그녀의 옷을 꽁꽁 싸매는 것이었다. “약 안 바꿔요?” 윤이건의 그윽한 눈빛을 본 이진은 매우 즐겁게 웃기 시작했고 마치 이제 완전히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진은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소중히 여겨지는 느낌을 받아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아마 이 감정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보고 싶은 감정일 것이다. “바꿔야지! 약물도 유효기간이 있는데 안 바꾸었다
윤이건이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그가 남양에서 사귄 친구였다. YS 그룹은 남양에서 비록 큰 영향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거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연결하기란 여전히 매우 쉬웠다. 상대방도 갑자기 윤이건의 전화를 받고 살짝 의아했지만 이문권이이란 이름을 듣자 바로 침묵했다. “이 사람은 남양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너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거니?” 처음부터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기엔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윤이건은 그것을 설명할 기분도 아니었다. “그가 내 사람을 건드렸어.” 남양의 친구는 이 말을 듣자 웃음을 터뜨렸다. 이 몇 글자만으로도 이미 이문권은 몇 번이고 죽을 이유는 충분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내가 방금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 사람이 남양 쪽에 차입금이 많고 게다가 연체된 상황이라 하던데.” “알겠다.” 이 간단한 대답을 들은 윤이건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일은 하는 건 너무나도 편했는바 많은 쓸데없는 말들을 생략할 수 있었다. “이따가 데이터를 보내줄 테니, 네가 하나하나 확인해 보아라.”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윤이건은 전화를 끊고 의자를 돌리고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며칠이 지나도록 윤이건은 이진이 교통사고를 당한 그 순간을 한 번도 자세히 회상해보지 못했다.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감히 떠올릴 엄두가 나질 않았다.윤이건은 조금이라도 떠올리면 마치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아 당장이라도 교통사고와 연루된 사람들을 모조리 총살해 버릴 것 같았다. 뒤에 서있던 비서는 모든 것을 보고 있었데 아마 윤이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는 것 같았다. 비서는 윤이건을 방해하지 않고 천천히 물러났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이진은 서둘러 퇴원하여 이 모든 일을 밝히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때 한참 동안 잠잠하던 이 씨 가족이 갑자기 또 나타났다. 다만 이번에는 우두머리인 이기태가 전처럼 병원에 쳐들어와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대신 경
이 말을 듣자 케빈은 안색이 확 변했다. “대표님, 그래도 되겠습니까? 윤이건 대표님께서 잘 보살펴 드라라 하셨는데…….” “넌 이제 그의 부하가 된 것이냐?” 이진이 농담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케빈은 여전히 놀라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케빈은 얼른 무슨 변명이라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이진은 가볍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걱정 마. 이미 오늘 아침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내가 아주 잘 회복되고 있어 이 상태로 퇴원해도 된다고 했어.” 케빈은 이진을 부축하면서 병원을 걸어 나왔는데 마음속으로는 진정으로 퇴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생각지 못했던 것은 병원 대문을 막 나서자 입구가 막혀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진은 응급 환자가 실려오는 줄 알고 얼른 물러서려고 했다.그러나 이진이 몸을 돌리려고 할 때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몸을 돌려 이 사람들의 우두머리를 쳐다보니 이영이 아니겠는가?그리고 이영을 따라 주변을 살펴보니 사람들은 전부 카메라를 들고 있거나 녹음펜을 들고 잇는 것이 기자가 틀림없었다. “언니, 퇴원하신 걸 보니 정말 기쁩니다! 여기서 언니를 만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이영의 말에 이진은 깜짝 놀랐다.이 아이의 새빨간 눈을 보니 그동안 이렇게 조용했던 것은 연기를 하러 간 것이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 기자들의 빈번한 플래시는 이진을 더욱 숨 막히게 만들었다.말하자면 이진은 지금 막 퇴원했기에 몸은 여전히 허약한 상태였다.그리고 이진은 이영이 마지막 체면까지도 버리고 이렇게 뻔뻔하게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눈앞은 사람들로 완전히 꽉 막혀버려 도망치고 싶어도 그럴 수조차 없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우는 척 능청스러운 연기를 하는 이영의 모습에 이진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 울기 시작했다.갑작스러운 울음에 케빈마저 당황해 온몸이 굳어버렸고 이영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영의 서투른 연기에 비해 이진의 연기는 마치 여왕급이
이진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이영은 멍청하게 제 자리에 서서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했다. 필경 두 사람은 마주치기만 하면 싸웠는데 한 번의 예외도 없는 듯했다. 그리고 이진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이영을 당해낼 수 없게 했다. 다시 말해 이영은 이진을 상대할 준비를 마쳤고 미끼를 물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지금…….다행히 이런 위장 연기를 수없이 해온 이영은 곧바로 다시 반응했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두 번째 연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진에게 넘어간 기자들의 마음은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 이 추세를 눈치채지 못한 이영은 여전히 자신의 연기를 이어가며 아까보다 더욱 비참한 울음소리를 냈다. “언니,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요? 아버지께서 엄청 걱정하고 있어요. 이미 병까지 난걸요.” 이진은 입을 가리고 은근히 웃고 있었다. 정말 그녀의 자제력이 강하지 않았더라면 당장에서 웃음을 뿜어버렸을 수도 있다. 이영은 지금 여론의 기세를 위해, 동정을 얻기 위해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프다고 저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 방법은 꽤 괜찮은 수단이었다.그리고 이때 이진이 말을 잇지 않자 이영은 손바닥에 힘을 꽉 쥐더니 괴로운 듯 연기를 이어갔다. “언니, 아버지는 정말 많이 아프셔요. 이미 나이도 많으시잖아요. 그리고 지금 집안엔 수입도 없는 상황이란 말이에요.” 이영은 말하면서 허리를 굽혀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려 했다. 사실상 이 연극은 그녀가 연기를 계속하지 못한다면 오늘 이영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기자들은 전부 어리둥절해졌고 이영이 더 이상 연기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이진은 알고 있었다. 이진은 끝나가는 연극의 불씨를 한 번 더 살려냈다. “그래? 아버지가 어쩌다…….” 이진의 이 물음은 마침내 끝났다고 생각했던 연극에 또다시 불씨를 지폈다. “언니, 제가 지금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계약한 건 아시죠? 그 이유가 바로 아버지 병원비를 벌기 위해서에요.” 이영은 말하다 보니 또
이 한마디에 모두들 고개를 돌려 누가 한 말인지 보려고 했다.그러나 고개를 돌리자 모두 의심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어 도저히 누가 꺼낸 말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맞은편에 서있던 이진은 그 기자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래도 사리분별이 되는 기자가 있긴 한가 보네.’이진은 이영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더니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는데 그녀의 모습은 분명 효성이 넘치는 딸 같았다.“네 말을 들으니 이기태 씨도 정말 힘드시겠어. 몸이 안 좋으신데도 의지가 이렇게 굳건하시다니.”기자들은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몇몇 기자들이 이영을 쳐다보던 눈빛은 심지어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뀌었다.비록 이진에 관한 뉴스가 핫하고 대중들의 주목을 끌긴 하지만 그들은 이런 식으로 이영에게 농락당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이영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계속 이대로 진행된다면 언론이 뒤집힐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영은 여전히 화가 났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결국 이영은 많은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눈빛 속에서 돌아섰다.그러나 아무도 이영이 떠난 것과 그녀가 이전에 지어낸 이야기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방금 그녀들의 대화를 들은 기자들은 그저 이진을 향해 미친 듯이 찍어댔다.이진은 전에 있었던 일들 때문에 인터넷에서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지만 그녀는 이런 것들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일부러 인터넷을 들여다보진 않았다.한편 이진을 좋아하던 팬들은 한동안 그녀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조금 실망스러웠다.마침 오늘 이 인터뷰가 올라오자 인터넷이 또 순식간에 들끓었다.[세상에! 그래서 우리 만능의 여신이 GN 그룹의 대표라는 거야?][태생부터 남다른 거 아니야? 너무 대단한 분이네!][그래서 이진이 정말 YS 그룹의 대표 윤이건의 부인이라는 거야?]모든 신분이 한데 연결되자 누구도 더 이상 이진을 무시할 수 없었다.하지만 이진은 이것 외에도 고민이 너무 많았기에 인터넷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이날 퇴원한 후, 케빈은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