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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병원.

남용걸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최선정은 눈물을 흘리며 멍하니 있었다.

남지훈과 남가현이 번갈아가며 위로를 한 덕분에 최선정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중환자실은 면회 시간이 아니면 보호자가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중환자실 입구에서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남지훈, 이 개자식아!"

병원 내부로 누군가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청춘 돌려내! 내 청춘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라고!"

의자에 앉아있던 남지훈은 이 소리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런 짓을 할만한 사람은 이효진 말고 없었다.

그는 급히 창문으로 다가가 아래층을 내려다보았다.

이효진은 손에 확성기를 들고 붉은 현수막 아래에 서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현수막에는 남지훈을 모욕하는 글로 가득했다.

"너랑 같이 먹고 자고 네 뒷바라지까지 다 한 나를! 이렇게 매정하게 버리다니! 쓰레기 같은 자식아! 당장 나와!"

이효진은 확성기를 들고 계속해서 소리쳤다.

병원 전체는 그녀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지훈이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증을 품었다.

사람들은 가녀린 여자를 이 지경으로 만든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경호원들 조차 제지시킬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들이 그녀의 주위에 몰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사태를 제지해야 할 몇 명의 경호원들은 이 광경을 흥미롭게 구경만 하고 있었다.

병원 위층.

남가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여자로서 이효진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남동생이 이효진에게 매정하게 굴지 않았더라면 결코 이런 사단까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

게다가 병원에서 이런 소란을 벌이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이 사건의 당사자인 남지훈에게 화살이 향할지도 몰랐다.

남가현은 남지훈을 바라보았다.

"누나."

남지훈은 결국 숨김없이 이효진과 김명덕 사이에 발생했던 일들을 자신의 누나에게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남가현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쩐지, 지훈이가 아까 효진이한테 왜 그렇게 화를 낸다 했어. 어떤 남자가 그런 상황에서 이성을 유지할 수 있겠어?'

남가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실이 어떻든 우선 저것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아.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건 적절치 않아."

남지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소란스러운 저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아무리 끝난 사이라 할지라도 이효진이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걸 그대로 방치할 수만 없었다. 만약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이효진은 결국 병동까지 달려들어와 소란을 피울게 분명했다.

그러면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질 것이다.

남지훈이 내려오는 걸 발견한 이효진의 목청이 더욱 커졌다.

그녀는 남지훈을 향해 소리쳤다.

"남지훈! 내가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 너 같은 건 남자도 아니야!

너랑 10년을 함께한 날 매정하게 버리고! 곧 30살이 되어가는데도 집 한 채도 없는 주제에! 고작 원피스 하나 사달라고 했다고! 감히 나한테 꺼지라고 하다니! 그러면서 지는 뒤로 다른 여자랑 결혼이나 하고!"

"이효진, 내가 너한테 뭘 못해줬는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남지훈, 나한테 똑바로 말해! 안 그럼 조용히 안 끝날 줄 알아!"

이효진은 눈물을 흘리며 고함을 질렀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남지훈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별별 사람들 다 있네. 10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를 배신하고 다른 사람이랑 결혼을 하다니! 그렇게 안 생겨서는 참… 짐승보다 못한 자식!"

"두 눈 번쩍 뜨고 저런 놈을 집안에 들이지 말아야지! 저런 걸 사위로 들인 그 집안도 참 콩가루 집안이겠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어!"

"젊은 사람이 사람 됨됨이가 안 됐어! 짐승도 아니고 말이야! 개 돼지보다 못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사람들은 남지훈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남지훈에게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는 꼬리표가 어느새 붙어버렸다.

남지훈은 어이가 없었다.

바람을 피운 이효진은 상처를 받은 비참한 여주인공이 되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진짜 피해자는 남지훈이었지만 가해자가 오히려 더 당당한 꼴이었다.

남지훈은 어두워진 얼굴로 이효진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 겨우 화를 참고 있었다.

이효진은 자신을 피해자이자 연약한 여자로 포장해 모두의 동정을 받고 있었다.

덕분에 모두들 남지훈을 탓하고 있었다.

남지훈이 아무리 진실에 대해 해명을 한다 해도 이 상황에선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효진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간단해! 얘기했잖아! 1억 6000만 원 배상금으로 달라고! 안 그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거야!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닐 거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릴 거야!"

남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나 돈 없어!"

"돈이 없어?"

이효진이 차갑게 웃었다.

"그럼 차용증이라도 써! 차용증 써주면 내가 갈게! 그리고 너 오늘 월급 들어오는 날 아니야? 그것부터 나한테 넘겨! 남은 돈은 천천히 갚아. 더 이상 내 생활비를 책임져줄 사람도 없다고!"

그녀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다시 말했다. "너한테 낭비한 내 십년! 10년을 1억 6000만 원으로는 배상해달라는 게 과한 요구야?"

그녀는 영악하게 자신이 처한 환경을 적절히 이용했다.

그녀가 이렇게 목소리를 높여가며 얘기하자 듣고 있던 사람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래! 청춘을 값으로 매길 순 없지만 그래도 돈이라도 받아야지, 아님 억울해서 쓰나!"

"흥! 오히려 적은 돈이지! 이렇게 예쁜 아가씨의 10년을 허무하게 낭비 했으면 더 많은 돈으로 보상해야지! 너무 적어!"

남지훈은 이마에서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그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효진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해 보였다. 결국 그녀의 목적대로 된 셈이었다.

대중의 힘을 빌려 남지훈을 굴복시킨 셈이다.

이효진은 돈을 어떻게든 꼭 받아낼 것이다.

남지훈에게 현재 돈이 없다 하더라도 차용증만 있으면 언제든지 돈을 받아낼 수 있었다.

차용증에 적힌 1억 6000만 원은 남지훈이 평생 동안 일만 해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효진은 그런 남지훈의 돈으로 김명덕과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

그는 이효진의 이런 얕은 수법이 역겹긴 했지만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효진에게 고함이라도 질렀다간 모두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남지훈이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있을 때 엘파 비즈니스 차량 한 대가 머지않은 곳에 주차되었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운전기사가 차 문을 공손히 열었다.

사람들은 차로 시선을 돌렸다.

차에서 내린 소연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우연히 현수막에 남지훈의 이름이 기재된 걸 확인한 그녀는 눈썹을 찌푸렸다.

"쟤 이름이 왜 저기에 있어?"

소연은 의아한 얼굴로 그곳을 주시했다.

남지훈이 1800만 원의 행방에 대해 말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현수막에 표시된 사람이 웬지 그녀의 남편 같았다. 그녀는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가씨, 어르신께서 거기에 안 계십..."

운전기사가 급히 소리쳤다.

소연은 병문안을 하기 위해 병원에 왔다. 하지만 병문안보다 남지훈과 관련된 일이 그녀에게 더욱 중요했다.

"어르신은 이따가 찾아뵐게요!"

소연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인파들 사이에서 이효진에게 농락 당하는 남지훈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남지훈, 돈 주고 깔끔하게 끝낼래 아님 계속 이렇게 소란을 피울까? 돈 없으면 차용증이라도 써!

그리고 오늘 들어온 월급 당장 나한테 계좌이체해! 며칠간 조용하게 지내줄 테니까! 안 그럼 계속 이렇게 소란을 피울 거니까 잘 생각하고!"

이효진은 목청을 높여 말했다.

남지훈이 입을 열려는 그때, 그의 코끝으로 익숙한 향기가 전해왔다.

짝!

뺨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퍼졌고 많은 사람들은 입을 쩍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너 같은 게 감히 지훈이한테 돈을 요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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